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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9 12:09:11

양효

楊嚻/楊囂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1. 개요

서진의 인물이자 양수의 아들, 양회의 아버지. 사례 홍농군 화음현 사람.《전략》에는 楊嚻, 《진서》 <가충전>에는 楊囂으로 기록되어 있다.

2. 생애

답조공변부인서를 살펴보면 219년에 부친 양수가 죽었는데, 정황상 부친의 사후 시기 이전에서 얼마 안 되는 시기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진나라에서는 태시 초기에 전군장군에 임명되어 중요한 신하가 되었다.

가충이 어머니의 병을 걱정해 관직을 떠났고, 무제가 황문시랑을 보내 그를 위로했는데, 동남쪽에서 일이 있을 때 양효가 명을 받아 가충에게 가서 사마염의 의지를 전하고 60일 동안 가충의 곁에 있다가 궁중으로 돌아갔다.

이후 일찍 죽었다고 언급되지만 생년으로 추정되는 해로 살펴보면 요절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으며, 278년에는 이미 사망했는지 노흠이 사망했을 때 무제가 조서를 내리면서 왕기, 노흠의 집안과 함께 양효의 집안에 조서를 내렸는데, 조서에서 양효가 평소 청빈해 재산을 남기지 않았고, 요사이 기근이 있어서 집을 확인하고 세 집안에 각자 곡식 삼백곡을 내리도록 했다.

조서에서 언급된 기근이 있는 시기는 노흠이 죽은 다음 해인 279년이다.

오치아이 히로키의 논문인 후한 말 위진시기 홍농 양씨의 동향의 분석에 따르면 양효가 가충에게 파견될 때 일어난 동남쪽의 일이 있는 시기는 269년의 일로 보고 있다.

아들 양회와 함께 진나라에서 이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