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 반란 지도자 · 할거정권 군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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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魯爽(? ~ 454년)
유송의 장수이자 반역자. 아명은 여생(女生). 부풍군(扶風郡) 미현(郿縣) 출신.
유송의 초대 황제 무제 유유에 대항하다가 패배하여 후진으로 망명한 노종지의 손자이자 노궤의 아들이었다.
2. 생애
노상은 어린 시절에 무예에 뛰어나서 북위의 태무제가 이를 알고 항상 노상을 측근으로 두었다. 449년, 노궤가 죽은 뒤 노상은 영남장군(寧南將軍),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임명되고 양양공(襄陽公)에 봉해져 장사(長社)에 진수하였다. 노상은 어린 시절에 북방에서 자랐기 때문에 북방의 풍습에 익숙했고 중화의 풍습은 없었다. 한편으로 술자리에서 여러 차례 잘못을 저질러서 태무제가 노상을 처벌하려고 했다.태무제가 남정을 시작하려고 하는 가운데 노상은 영창왕(永昌王) 탁발인[1]을 따라 수양(壽陽)으로 출정했는데 이때 아우인 노유(魯瑜)와 함께 위무(尉武)에서 유강조를 물리친 뒤 과보(瓜步)에 이르러 아우인 노수와 함께 유송으로의 귀환을 도모했다. 태무제가 호륙(湖陸)으로 돌아갈 때 노상 형제는 태무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남쪽과 원한이 있는데, 남쪽에서 매번 군대를 보낼 때마다 항상 조상의 무덤에 화가 미치는 것을 염려했으니 함께 유골을 고향으로 맞아들이고 평성에서 장례를 다시 지낼 것을 청합니다.
태무제는 노상 형제의 주청을 받아들였다. 장사에는 600에서 700에 달하는 북위의 군인들이 있었는데, 노상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들을 속였다.
남쪽에 적군이 있으니 300명의 기병을 국경선으로 보내 정찰하게 하라.
300명의 기병들이 정찰을 떠난 뒤 노상은 심복들을 이끌고 밤에 남은 기병들을 습격하여 모두 죽이고 호뢰관으로 달아났다.
노상은 셋째 동생이 북위에 있었지만 남은 가족들이 모두 노상을 따랐으며, 노상은 부곡과 더불어 자신을 따를 의향이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여남(汝南)으로 달아났다. 또한 아우인 노수에게는 허창을 따라 수양으로 돌아가게 했으며, 유송의 남평왕(南平王) 유삭에게 귀순할 뜻을 전했다.
유삭을 통해 소식을 접한 문제 유의륭은 매우 기뻐해서 노상을 독사주예주진류동군제음복양5군제순사(督司州豫州陳留東郡濟陰濮陽五郡諸軍事), 정로장군(征虜將軍), 사주자사로 삼았다. 노상은 여남에 이른 뒤 독예주의양송안2군제군사(督豫州義陽宋安二郡諸軍事)가 더해지고 의양내사(義陽內史)를 겸임했으며, 장군과 자사의 직함은 종전과 같이 받았고 의양에 진수하였다. 노상의 다른 형제나 조카들도 모두 관작과 더불어 후한 상을 받았으며, 북위에서 온 이들이 모두 6,883명에 달했다. 이때가 451년이었으며, 북위에서는 노상의 할아버지 노종지의 무덤을 파헤쳤다.
452년 입조하였다. 이때 북위에서 태무제가 중상시 종애에 의해 독살당하자, 유송 조정에서는 다시 북벌을 추진하려고 했다. 5월, 노상은 노수, 정천조(程天祚) 등과 함께 보병과 기병, 형주의 군대 4만을 이끌고 허창, 낙양 방면으로 출진하였다. 8월, 북위의 영평공(永平公) 독발파(禿髮幡)가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이후 노상은 대색(大索)으로 진군했는데, 이때 북위의 예주자사(豫州刺史) 탁발복란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상은 용맹하지만 방비를 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지금 성을 나오면 노상이 반드시 성을 점령하러 올 것이다. 단산(檀山)에 복병을 배치한다면 틀림없이 노상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탁발복란의 말대로 노상은 과연 밤에 진군했는데, 노수가 노상에게 간언을 했음에도 이를 듣지 않고 계속 진군하였다. 그리고 동이 틀 때 북위의 기병들이 노상에 대해 협공을 시도했으나 노수의 분투로 인해 북위군은 호뢰관으로 후퇴하였다. 노상은 계속 진군한 뒤 본래 수군이 황하로 진입하기를 기다리며 수문을 차단했으나, 왕현모가 확오(碻磝)를 공격하다가 실패하여 퇴각하고 수군이 오지 못하자 결국 회군하였다. 노상은 수백 리를 전전하며 분투하다가 곡강(曲强)에 이르렀는데, 이때 북위군은 노상의 군대가 지치고 굶주렸다는 것을 파악한 뒤 정예 병사들을 이끌고 공격했으나 노상의 분투로 인해 후퇴하였다.
453년, 문제 유의륭의 태자인 유소가 유의륭을 시해하고 스스로 제위에 오르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한편 이 사태에 대해 남초왕(南譙王) 유의선이 유소를 토벌하고자 거병하자, 노상은 곧바로 유의선을 명을 받고 병사들을 이끌어 양양(襄陽)으로 입성한 뒤 옹주자사(雍州刺史) 장질(臧質)과 함께 강릉(江陵)으로 향했다. 노상은 유의선으로부터 평북장군(平北將軍)으로 임명되고 파릉태수(巴陵太守), 탁지교위(度支校尉)를 겸임하였다. 노상은 강릉에 머물렀다가 사태가 정리된 뒤 사지절(使持節), 독예사옹진병5주제군사(督豫司雍秦幷五州諸軍事), 좌장군(左將軍), 예주자사로 임명되었다. 노상은 수양에 이른 뒤 빈객들에게 아첨하고 선비들에게 작위나 벼슬을 주었으며, 인마를 모으기 시작했다.
노상은 유의선, 장질과 오랫동안 교류했는데, 유의선 또한 노상의 용력에 기대고 싶어서 서로 의기투합했다. 454년, 유의선이 노상에게 가을에 함께 거병하자고 약조했다. 하지만 노상은 술에 취해서 유의선과의 약조를 깨고 바로 그날 거병했다. 노상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황표(黃標)를 싣게 했고 건평(建平) 원년을 칭했으며, 직접 제왕의 예복을 만들고 제단에 올랐다. 또한 장사 위처목(韋處穆), 중병참군(中兵參軍) 양원구(楊元駒), 치중(治中) 유등지(庾騰之)가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하여 살해하였다.
유의선과 장질은 노상이 이미 거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거병했으며, 노상을 정북장군(征北將軍)으로 삼았다. 노상은 자신이 만든 여복(輿服)을 강릉으로 보내고 유의선과 장질 등에게 함께 거병하자고 부추겼다. 노상의 호조(戶曹)에는 다음의 문서가 있었다.
승상(丞相) 유씨(劉氏)가 천자를 보좌하니 이름은 의선(義宣)이요, 거기장군(車騎將軍) 장씨(臧氏)가 지금 승상을 보좌하니 이름은 질(質)이요, 평서장군(平西將軍) 주씨(朱氏)가 지금 거기장군을 보좌하니 이름은
수지(脩之)입니다. 모두 문서가 도착하는대로 따르십시오.
유의선은 이 문서를 보고 경악했으며, 노상이 보낸 물품은 모두 경릉현(竟陵縣)에 남기고 들이지 못하게 했다.
노상은 역양(歷陽)으로 출진한 뒤 채석기에서 장강을 건너 장질과 함께 진군하는 한편 아우 노유를 몽롱(蒙蘢)으로 파견했다. 역양태수(歷陽太守) 장유서(張幼緖)가 군대를 받고 몽롱을 토벌하고자 출정하였다. 장유서는 좌장군(左軍將) 설안도를 선봉으로 삼고 별도로 수군을 파견하였다.
설안도가 대현(大峴)에 당도할 때 노상이 이미 군영을 세우자, 효무제는 노상의 진영을 함락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기회를 살피라고 명했다. 장유서가 군대를 이끌고 퇴각하여 투옥된 뒤 효무제는 효기장군(驍騎將軍) 원호지, 진군장군(鎭軍將軍) 심경지, 설안도에게 노상의 토벌을 명했으며, 소현(小峴)에서 노상과 조우하였다. 노상은 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전투를 앞두고도 술을 너무 마셔서 취해 있었다. 결국 설안도가 노상을 찔러서 말에서 떨어트렸고 설안도의 부하인 범쌍(范雙)이 노상을 참수한 뒤 노상의 목을 건강으로 보냈다. 수양이 평정된 뒤 노상의 자제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노상은 만인지적으로 칭송받았던 장수였지만 설안도가 노상을 참수하고 돌아오자, 당시 사람들은 관우가 안량을 벤 것도 이 사건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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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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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 진전 · 진번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위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호영 · 서도 · 두릉 · 주철무(1) · 정령세 · 심각 · 육자륭 · 전도집 · 낙문아 · 손창 · 서세보 · 주부 · 순랑 · 주경 · 노실달 · 소마하 · 임충 · 번의 68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조지례 · 채경력 · 종원요 · 한자고 · 화교 · 유사지 · 사기 · 모희 · 심군리 · 육산재 6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심형 · 우려 · 부재 · 고야왕 · 요찰 70권 「순리전(循吏傳)」 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71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7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최위조 · 조충지 · 가희경 · 원준 · 유소(昭)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협 · 하사징 · 임효공 · 안협 · 기소유 · 두지위 · 안황 · 잠지경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완탁 73·74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瑜) · 가은 · 곽세통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구걸 · 사각수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인 · 손극 · 하자평 · 최회순 · 왕허지 · 오경지 · 소예명 · 소교처양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 구관선 · 손담 · 화보 · 해숙겸 · 한영민 · 유풍 · 봉연백 · 오달지 · 왕문수 · 악이지 · 손법종 · 유도민 · 등담공 · 도계직 · 심숭소 · 순장 · 길분 · 견염 · 조발호 · 한회명 · 저수 · 장경인 · 도자장 · 성경준 · 이경서 · 사린 · 은불해 · 사마고 · 장소 75·76권 「은일전(隐逸傳)」 도잠 · 종소문 · 심도건 · 공순지 · 주속지 · 대옹 · 적법사 · 뇌차종 · 곽희림 · 유응지 · 공기 · 주백년 · 관강지 · 어부 · 저백옥 · 고환 · 두경산 · 장영서 · 오포 · 서백진 · 심인사 · 완효서 · 등욱 · 도홍경 · 제갈거 · 유혜비 · 범원엽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77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78·79권 「이맥전(夷貊傳)」 임읍 · 부남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 백제국 · 신라 · 왜 · 부상국· 하남왕국 · 탕창 등지 · 무흥국 · 형옹주·예주만 · 고창 · 쿠처 · 우전국 · 파사국 · 연연 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