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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2:55

무제(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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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 초대 황제
무제 | 武帝
파일:송무제 유유.jpg
출생 363년 4월 16일
동진 양주 진양군 단도현 경구리
(現 장쑤성 전장시 단투구)
즉위 420년 7월 10일
동진 양주 단양군 건강현 남교
(現 장쑤성 난징시)
사망 422년 6월 26일 (향년 59세)
유송 양주 단양군 건강현 황궁 서전
(現 장쑤성 난징시)
능묘 초녕릉(初寧陵)
재위기간 동진의 예장군공
406년 10월 ~ 418년 12월
동진의 송공
418년 12월 ~ 419년 10월
동진의 송왕
419년 10월 ~ 420년 7월 10일
초대 황제
420년 7월 10일 ~ 422년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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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F51BA><colcolor=#ece5b6> 본관 팽성 유씨
유(裕)
부모 부황 효목제
모후 효목황후, 계모 효의황후
형제자매 부황 기준 3남 중 장남
모후 기준 외아들
배우자 무경황후, 영락태후, 문장태후
자녀 7남 9녀
신장 175cm
아명 기노(寄奴)
덕여(德輿)
작호 예장군공(豫章郡公)
→ 송공(宋公) → 송왕(宋王)
묘호 고조(高祖)
시호 무황제(武皇帝)
연호 영초(永初, 420년 ~ 422년)
등록기준지 서주 팽성군 팽성현 수여리
(現 장쑤성 쉬저우시)
}}}}}}}}} ||
파일:유송무제.png
'''역대고인상찬에 실린 초상화 '''
1. 개요2. 생애3. 평가4.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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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진(東晉)의 무장이자, 위진남북조시대 유송(劉宋)의 건국자.

묘호는 고조(高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 휘는 유유(劉裕). 자는 덕여(德輿). 연호 영초(永初)로 재위한 2년간 쓰고, 송 소제가 7개월을 더 썼으며 다음해 정월에 개원했다.

특이하게도 유유의 생몰 기간이 59년으로 그가 건국한 유송의 존속 기간인 59년과 일치한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무제(유송)/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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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

" 모용수는 아버지와 형( 모용황 모용각)의 명성을 등에 업고 과거의 공업을 회복했으나 유유는 미천한 가문에서 일어나 홀로 대업을 이루었으니 유유가 더 뛰어납니다."


- 최호(崔浩, 북위의 대신), 북위 탁발사가 유유와 모용수의 능력을 논하자 대신 최호가 내린 평가[1]
"유유의 공적은 조조를 넘어서나 용인에서는 조조만 못하다."
" 조적, 유익, 환온, 사안의 백 년 경영도 유유의 공적에 미치지 못한다."


- 왕부지(王夫之, 명나라 말기의 학자), 『독통감론(讀通鑑論)』

근 370년에 이르는 위진남북조시대 역사상 한족 출신으로 가장 큰 군공을 세운 희대의 명장으로, 위진남북조시대에 걸쳐 한족 출신 가운데 군사적 재능이라는 측면에서 최고로 여겨지는 인물들은 조조, 환온, 유유, 진경지 정도가 있다. 유유는 이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었다고 평가된다.

유유는 산동과 하남, 촉, 그리고 일시적이지만 관중 일대까지 수복했다. 즉, 낙양 장안, 두 옛 수도와 청주 일대까지 점령한 것이다. 동진 환온 양나라 진경지 낙양까지 수복했고, 장안까지는 장악하지 못했다. 게다가 남조 역사상 유일하게 산동을 완전히 점령했다. 후대의 평에 따르면 그는 통솔력이 있고, 통찰력이 있어 앞을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으며, 용감하고 과단성, 군사적 재능, 정치적인 감각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검소하여 옷차림이 소박했고, 유희와 연회를 거의 열지 않았으며 궁녀들을 대부분 내보내 수가 적고 축재도 하지 않았다. 또 영주에서 호박으로 만든 베개를 진상했는데 광택과 색깔이 아름다워 황금 100냥을 호가했다. 그러나 유유는 이걸 부수고 가루로 만들어 장병들의 부상을 치료하는데 쓰게 했다.

유유는 원래 몸에 열이 많았고, 예전에 손은 토벌전에서 칼에 맞은 상처가 있어 노년이 된후 늘 몸을 차게 하는 약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누군가 석상을 진상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었다는 이유로 부수게 했다. 광주에서 진상한 정교하고 아름다운 는 되돌려주게 하고 그 담당 관원에게 다시는 이런 걸 바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유유는 자기가 경구와 단양에서 농사짓던 시절에 사용하던 쟁기같은 농기구와 등불 등을 보존하여 황궁에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창업의 어려움을 일깨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유지가 자손들에게 잘 전해지도록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일찍, 무언가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기도 전에 숨진 탓에 그의 안배는 유송의 앞날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유유 본인은 일생을 아주 바쁘게 살고 열심히 살았으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쑨원, 황싱과 함께 신해혁명 3존 중 하나였던 장빙린(章炳麟)은 악비와 함께 그를 가장 숭배하고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둘 다 남방의 병사를 이끌고 북방의 이적( 오랑캐)을 격파시켰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의 자식농사는 한 마디로 완전히 실패했다. 본인이 아무리 위대해도 자식 농사의 실패가 어렵게 이룩한 창업을 하루 아침에 망친 것이다. 어찌보면 세습제의 한계를 그 누구보다 여실히 보여준 인물. 사실 이런 평가는 그의 아들 송문제 유의륭에게 더 적합한 얘기일 수도 있다. (유유는 적어도 유의륭이라는 좋은 왕재를 가진 아들을 두기라도 했지 유의륭의 아들복은 아버지보다 더 없었으니까.)[2]

어쨌거나 유송 왕조의 명운을 따져봤을 때 그 왕조에서 제대로 된 군주가 이들 부자들 뿐이라는 점에선 참 지지리도 운 없는 부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이후에는 전란의 극치인 위진남북조시대임을 감안하더라도 개념이 있는 마지막 황제인 순제를 제외하고 노답 근친상간 미친놈부터 살인이 목적 그 자체인 사이코패스 살인마까지 출몰하는 등 집안이 무슨 저주를 받았나 싶을 정도의 막장들이 출몰했다.

그렇지만 유유의 공적은 확실히 유효했다. 유유는 북벌을 통해 남조 북조와 맞설 힘을 갖추게 하였고[3], 지방군벌들을 정리하여 남조 내부를 안정시켰다. 비록 송 말기와 제나라가 들어서며 가끔씩 내전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동진 말기처럼 혼란스러운 때는 양 말기밖에 없었는데, 이는 유유가 동진을 평정하고(417년) 133년이 지나서야 등장했다. 유유가 동진의 군벌을 정리한 덕분에 유의륭이나 소연 같은 명군들이 남조를 부강시킬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무엇보다 유유의 군사적 재능은 탁월했다. 동진의 모든 혼란을 수습하고, 북벌을 통해 남조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적 성과를 얻었다. 유의진이나 서규지 같은 휘하 지휘관의 패전을 제외하면 유유군은 늘 승리했다. 유유는 적의 의도를 간파했고, 이에 알맞는 전략을 구사하여 항상 승리를 거두었다. 유유가 장안을 유의진에게 맡긴 것만을 제외하면 전략적인 실수도 없었다. 북위군을 각월진으로 격파한 것이나 손은군과의 회전을 보면 임기응변이나 전술적 능력이 매우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서진 혜제 사마충보다 더 지적장애자였던 안제 사마덕종을 죽인 것 때문에 후세에 혹평을 듣기도 하지만, 유유 입장에서도 살려주는 것이 더 이득임에도 부득이하게 죽일 수밖에 없던 것이 자기가 살아있는지조차도 몰랐던 자에게 덥석 황위를 받으면 누가 봐도 찬탈이라는 티가 확 나니까 말이다. 아무리 선양이 정치적 쇼라고 해도 최소한의 틀은 갖춰야 효과를 발휘하는데 황제라는 작자가 이 모양이면 어쩔 수가 없었다.[4] 권력을 쥔 이상 놓치면 잘해봐야 개털이 되어 실각이나 하면 천행이고 못하면 본인은 물론 가족, 친척들까지 멸족이라 어쩔수없이 제위를 지켜야 하기 때문.

그리고 사마덕문을 세운 후 폐위하고 그 일족을 죽인 번거로운 절차를 거친 것도 형이 후사없이 죽으면 친동생이 제위를 이어받는 것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지켜졌던 원칙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권력자라도 이건 어쩔 수 없었고, 일족을 죽인 것도 기반이 약했던 유유 일가의 특성상 살려두었다간 큰 위협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취해진 조치였다.

또한 남조의 문벌귀족이 몰락하게 되는 계기가 인물이라 할 수도 있다. 남조는 황제와 귀족들의 대립이 극심했는데, 남조 최고 귀족가문인 왕(王)씨, 사(謝)씨, 원(袁)씨, 소(蕭)씨는 황제만 아닐뿐 사회적으로는 황제 이상의 권력을 지닌 가문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황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유유는 실질적인 업무를 7품 이하의 관료들이 맡도록 하였고[5], 이후의 황제들도 귀족들의 특권은 인정해줄지언정 유유의 정책을 계속 이어나갔다.[6]

그리고 133년쯤 지나 양무제 말기 후경의 대란이 일어났을 때, 난을 진압해야할 고위관료들은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한다. 이 난리통을 어떻게든 진패선이 진압하고, 남조의 마지막 정권인 진을 세웠지만 이때의 피해를 남조는 다시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수나라의 주도로 천하통일이 이루어지게 된다. 정작 그 수나라는 수문제의 아주 훌륭한 치세를, 다음 황제인 수양제가 대차게 말아먹은 덕분에 수양제의 이종사촌 형제인 이연에게 찬탈당하고, 실질적으로는 당나라에 의해서 위진남북조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된다.

4. 둘러보기(계보)

송서(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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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劉裕) 유의부 유의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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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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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로 토욕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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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 · 저거몽손 유소(劉劭) · 유준(劉濬)
100권 「자서전(自序傳)」
심약
(1) 본명이 사유(謝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인(景仁)으로 표기되었다.
(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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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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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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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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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권 「황후전(皇后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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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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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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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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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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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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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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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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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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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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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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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권 「채곽전(蔡廓傳)」 30권 「하상지전(何尙之傳)」 31권 「장유전(張裕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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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무 ·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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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권 「왕무등전(王茂等傳)」
왕무 · 조경종 · 조의종 · 석천문 · 하후상 · 길사첨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 장혜소 · 장징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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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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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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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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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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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에 유유에게 패한 것도 있어 탁발사는 유유 생전에 유송의 땅 1평도 건드리지 않았다. [2] 물론 유의륭도 유탄(유의륭의 6남)이나 유휴인(유의륭의 12남)과 같은 나름 괜찮은 자식들도 있었고(실제로 유의륭은 유탄을 태자로 삼고자 하였다.) 비교적 정상인들도 있었으나 이들은 유창(유의륭의 9남)을 제외하곤 유의륭 사후 효무제 명제가 다 죽여버리면서 제 명에 못살았다. [3] 당시 중국 인구 대부분이 하남과 하북일대에 살고 있었다. 학계는 위진 남북조 시기강북의 인구를 2000~3000만으로 잡는데 강남 인구는 500~1000만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유의 북벌을 계기로 남조는 일시적이나마 북조를 넘어선 국력을 갖출수 있게 됐다. [4] 차라라 사마덕종의 나이가 어리고 태후의 섭정을 받고있는 처지라면 좀 나았다. 그 경우 태후를 협박하면 그만이기 때문. [5] 남조의 귀족층들은 구품관인법을 통해 7품이 아닌 6품으로 관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이렇게 안하는 귀족을 찾기가 어려웠다. [6] 시간이 지나며 문벌귀족들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었다. 남조에서 수십년 주기로 벌어진 내전과 지배층 교체는 이를 더욱 가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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