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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지명/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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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三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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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60년서주지도.png
1. 개요2. 팽성국(彭城國)3. 하비군(下邳郡)4. 동해국(東海國)
4.1. 이성군(利城郡)4.2. 창려군(昌慮郡)
5. 낭야국(琅邪國)6. 동관군(東莞郡)7. 광릉군(廣陵郡)8.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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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107년에 처음 자사를 설치할 때, 이 방면을 맡는 자사의 감찰 구역이 원래 태산(泰山)과 회수(淮水) 사이의 동부 해안 지방을 가리키던 지방 이름인 서주(徐州)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서주자사부가 되었다. 주로 현재의 장쑤성 북부와 산둥성 남부 일대에 해당한다.

군웅할거 시기에는 당시 서주자사 도겸이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보하여 사실상 도겸의 영역이 되었고 이후 서주목에 임명되었다. 이후 도겸의 후계자가 된 유비가 그 세력을 물려받았다. 그 뒤에 서주를 여포에게 빼앗겼다가, 결국 여포를 멸망시킨 조조가 서주를 차지하게 되었다. 유비가 잠시 복귀했으나 조조에게 패주한 뒤론 영영 서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유수구 전투 이후인 213년 무렵 조조는 손권과의 대치가 장기화할 거로 생각하고 회수(淮水) 이남의 주민들을 회수 이북으로 옮기려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장강을 건너 이주해 버려(...) 무려 10만 호(戶)가 손권에게 유출된 일이 있었다. 이것이 단순히 기록의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이 일로 인해 하비군과 광릉군 남부 일대는 사실상 폐현(廢縣)되어 무인지대가 형성되었다. 훗날 손준이 255년에 장강을 건너와 광릉군의 일부 현을 점거하긴 했으나, 실제로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 소득이라 할만한 일이 되진 못했다.

2. 팽성국(彭城國)

항우 서초에 연원을 둔 곳으로, 전한 때에는 초왕의 식읍인 초국(楚國)이었다. 후한 때인 70년에 초왕이 철봉(撤封)되면서 초군(楚郡)이 되었는데, 88년에 팽성왕이 책봉되면서 팽성국으로 개편되었다.
지명 [-207]서초국→[-202]초국→[70]초군→[88]팽성국→[220]팽성군(彭城郡)→[222]팽성국→[222]팽성군→[232]팽성국
소속 서초(西楚)→[한]서주자사부→[서진]서주
치소 팽성현
전입 [277]패국 광척현
전출 [238]광척현→패국
폐지 [서진]치구현
봉작 유지(劉祗)[2]: 팽성왕(~220)
조거: 팽성왕(222·232~265)
사마권: 팽성왕(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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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초국(7현 114,738호 497,804구): 팽성현[3], 유현, 오현, 부양현, 여현, 무원현, 치구현
초국화락군(和樂郡), 오현→오치현(吾治縣), 부양현→보양현(輔陽縣), 무원현→화락정현(和樂亭縣), 치구현→선구현(善丘縣)
후한 팽성국(8성 86,170호 493,027구): 팽성현, 무원현, 부양현, 여현, 유현, 오현, 치구현, 광척현
서진 팽성국(7현 4,121호): 팽성현, 유현, 광척현, 부양현, 무원현, 여현, 오현 }}}}}}}}}

3. 하비군(下邳郡)

원래 전한 때인 기원전 117년에 형성된 임회군(臨淮郡)이었다.후한 때인 72년에 하비왕이 책봉되면서 하비국(下邳國)으로 개편되었다. 184년 무렵에 하비왕이 단절되었음에도 하비국이 폐지되지 않았으나,[4] 206년에 조치가 이뤄져 하비군이 되었다. 삼국통일 이후 280년에 하비국을 분할해 임회군을 새로 설치했다.
지명 [-117]임회군→[72]하비국→[206]하비군→[222]하비국→[224]하비군→[265]하비국
소속 [한]서주자사부→[서진]서주
치소 [전한]서현→[후한]하비현
임회군: [서진]서현
분합 [서진]임회군: 서현·하상현·우이현·고산현·반정현·회릉현·사오현 및 광릉군 고우현·동양현
전입 [삼국]광릉군 능현
설치 [서진]우이현(재설치)·고산현(재설치)·반정현(재설치) 및 임회군 췌기현
전출 [213?]회음현·회포현→광릉군
폐지 [213?]우이현·고산현·반정현·동성현, [서진]곡양현
출신 동성현: 노숙, 보즐
봉작 조우: 하비왕(222~224)
사마황(司馬晃): 하비왕(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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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임회군(29현 268,283호 1,237,764구): 서현, 취려현, 회포현, 우이현, 구유현, 동현, 사양현, 개양현, 췌기현, 고산현, 수릉현, 염독현, 회음현, 회릉현, 하상현, 부릉현, 동양현, 반정현, 서평현, 고평국, 개릉국, 창양국, 광평국, 난양국, 양평국, 해릉현, 여현, 당읍현, 낙릉국
임회군회평군(淮平郡), 서현→서조현(徐調縣), 회포현→회경현(淮敬縣), 우이현→무광현(武匡縣), 동현→성신현(成信縣), 사양현→감회정현(監淮亭縣), 수릉현→수륙현(睢陸縣), 회음현→가신현(嘉信縣), 회릉현→회륙현(淮陸縣), 하상현→종덕현(從德縣), 부릉현→삭로현(𣝇虜縣), 반정현→저신현(著信縣), 서평현→영취현(永聚縣), 고평국→성구현(成丘縣), 개릉국→성향현(成鄕縣), 광평국→평녕현(平寧縣), 난양국→건절현(建節縣), 양평국→상평현(相平縣), 해릉현→정간현(亭間縣), 여현→미덕현(美德縣)
후한 하비국(17성 36,389호 611,083구): 하비현, 서현, 동국, 수릉현, 하상현, 회음현, 회포현, 우태현, 고산현, 반정현, 회릉현, 취려현, 동성현, 곡양국, 사오국, 양성현, 하구현
서진 하비국(7현 7,500호): 하비현, 능현, 양성현, 수릉현, 하구현, 취려현, 동현
임회군(10현 10,000호): 우이현, 동양현, 고산현, 췌기현, 반정현, 고우현, 회릉현, 사오현, 하상현, 서현 }}}}}}}}}

4. 동해국(東海國)

기록에서는 원래 진(秦)나라의 담군(郯郡)이었다고 하는데, 간독에선 이미 진나라 때부터 동해군(東海郡·東晦郡)으로 쓰였음이 확인된다. 또한 212년에 동해왕이 새로 책봉되었으나, 이 당시엔 동해왕 유선(劉羨)이 이미 재위 중이었다. 기존의 동해왕은 그 봉호(封號)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노국(魯國)을 그 식읍으로 삼고 있었으므로, 아마도 유선이 이때 노왕(魯王)으로 개봉(開封)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지명 [진]동해군→[39]동해국→[58]동해군→[212]동해국→[220]동해군→[232]동해국→[265]동해군
소속 진(秦)→[한]서주자사부→[서진]서주
치소 [진]담현→[206]창려현→[232?]담현
이성군: 이성현
창려군: 창려현
분합 [198]이성군→[206]동해군에 합병: 창려현·합향현·척현·승현·도양현
[198]창려군→[225]동해군에 합병: 이성현·축기현·구현·후구현·감유현 및 낭야국 낭야현·해곡현
전입 [216]낭야군 담현·양분현·척현난릉현
설치 [서진]감유현(재설치)
전출 [206]담현·양분현·척현난릉현[5]→낭야국
폐지 [225]이성군 낭야현·해곡현, [225?]감유현, [서진]도양현
출신 담현: 왕랑· 왕숙· 왕원희 일족, 유우
구현: 미축 일족
봉작 유돈(劉敦): 동해왕(212~220)
조림: 동해왕(232~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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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군: 담현, 당읍현, 건릉현, 난릉현, 해릉현, 동양현, 하비현, 반정현, 췌기현, 증현, 우이현, 회음현, 광릉현, 능현, 양분현, 구현, 무원현, 유양현(游陽縣·연혁 미상), 신동양현(新東陽縣·연혁 미상) 이외 미상
전한 동해군(38현 358,414호 1,559,357구): 담현, 난릉현, 양분현, 하비현, 양성국, 평곡현, 척현, 구현, 개양현, 비현, 이성현, 해서현[6], 난기국, 증현, 남성국, 산향국, 건향국, 즉구현, 축기현, 임기현, 후구현, 용구국, 동안국, 합향현, 승현, 건양국, 곡양현, 사오현, 우향국, 평곡국, 도양국, 음평국, 오향국, 무양국, 신양국, 건릉국, 창려국, 도평국
동해군기평군(沂平郡), 난릉현→난동현(蘭東縣), 양분현→장신현(章信縣), 하비현→윤검현(閏儉縣), 양성국→승한현(承翰縣), 평곡국→단평현(端平縣), 평곡현→평단현(平端縣), 개양현→엽로현(厭虜縣), 비현→순종현(順從縣), 이성현→유천현(流泉縣), 해서현→동해정현(東海亭縣), 난기국→부목현(溥睦縣), 증현→증치현(繒治縣), 즉구현→취신현(就信縣), 축기현→유정현(猶亭縣), 후구현→축기정현(祝其亭縣), 동안국→업정현(業亭縣), 합향현→합취현(合聚縣), 승현→승치현(承治縣), 건양국→건력현(建力縣), 곡양현→종양현(從羊縣), 사오현→식오현(息吾縣), 오향국→서정현(徐亭縣), 무양국→홍정현(弘亭縣), 신양국→박취현(博聚縣), 건릉국→부정현(付亭縣), 창려국→여취현(慮聚縣)
후한 동해국(13성 148,784호 76,416구): 담현, 난릉현, 척현, 구현, 양분현, 창려현, 승현, 음평현, 이성현, 합향현, 축기현, 후구현, 감유현
서진 동해군(12현 11,100호): 담현, 축기현, 구현, 양분현, 이성현, 감유현, 후구현, 난릉현, 승현, 창려현, 합향현, 척현 }}}}}}}}}

4.1. 이성군(利城郡)

198년에 여포가 멸망한 뒤 조조가 설치한 군으로, 동해국의 동부를 분할해 설치했다. 225년 이성군에서 반란이 일어나 태수 서질이 죽었는데, 이때 반란이 평정되면서 폐지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성현·축기현 외에 어떠한 현이 소속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06년에 동해국의 담현·양분현 등이 낭야국으로 이속한 연혁을 살펴보면, 구현·후구현도 이성군에 소속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국시대 중에 동해국 감유현과 낭야국 낭야현·해곡현이 폐지되었으나,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는데, 아마 이 3현도 이성군에 소속되어 있다가 이성군의 반란이 진압당하면서 폐지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4.2. 창려군(昌慮郡)

198년에 여포가 멸망한 뒤 조조가 설치한 군으로, 동해국의 서부를 분할해 설치했다. 206년에 낭야왕이 책봉되면서 폐지되었다. 창려현·합향현 외에 어떠한 현이 소속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06년에 동해국의 담현·양분현 등이 낭야국으로 이속한 연혁을 살펴보면, 척현·승현·도양현 등이 소속되어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즉, 기존의 동해국을 낭야국에 병합하고 동해왕을 전봉(轉封)하여 창려군을 동해국으로 개편한 것으로 여겨진다.

5. 낭야국(琅邪國)

원래 진(秦)나라가 설치한 낭야군(琅邪郡)으로, 전한 때 낭야군 주변 일대는 황족들이 책봉되는 봉국으로 주로 활용되었기에, 낭야군은 보통 주변의 왕국(王國)에서 분봉된 후국(侯國)의 수용소(...)처럼 운영되었다. 이는 왕국에 소속된 군·현들은 그 왕의 식읍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원칙상 왕의 식읍에 또 다른 열후의 식읍을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후한 때에는 열후의 식읍을 무조건 현급의 국으로 분할하지 않았기에 몇몇 군을 후국의 수용소처럼 운영하는 일은 없게 되었고, 80년에 낭야왕이 책봉되면서 낭야국으로 개편되었다. 193년에 낭야왕 유용(劉容)의 후사가 없어 단절되었음에도 봉국을 폐하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가, 206년에 낭야왕이 새로 책봉되었다.
지명 [진]낭야군→[41]낭야국→[206]낭야국→[216]낭야군→[232]낭야국
소속 진(秦)→[한]서주자사부→[서진]서주
치소 [진]낭야현→[전한]동무현→[80]개양현
분합 [198]동관군: 동관현·동안현
전입 [206]동해국 담현·양분현·척현난릉현, [서진]동관군 동안현·몽음현 및 연주 태산군 비현·화현
전출 [198]동무현·제현·거현·고막현→청주 성양군 및 낭야현·해곡현→이성군, [216]담현·양분현·척현난릉현→동해국
출신 양도현: 제갈근· 제갈량· 제갈균· 제갈탄 등 제갈 가문
임기현: 안량, 왕상
거현: 서성
봉작 유희(劉熙): 낭야왕(206~216)
조민(曹敏): 낭야왕(232~265)
사마륜: 낭야왕(265~277)
사마주: 낭야왕(277~)
손휴: 낭야왕(25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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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야군: 낭야현, 부현, 동무현, 감유현, 불기현, 기현, 비현 이외 미상
전한 낭야군(51현 228,960호 1,079,100구): 동무현, 불기현, 해곡현, 감유현, 주허현, 제현, 오성현, 영문현, 고막현, 허수국, 임원국, 낭야현, 불국, 거현, 병국, 부현, 우가국, 검추현, 운국, 계근현, 도국, 고우국, 평창현, 장광현, 횡현, 동관현, 위기국, 창현, 자향국, 기국, 비현, 고광국, 고향국, 유국, 즉래국, 여국, 무향국, 이향국, 신산국, 고양국, 곤산국, 삼봉국, 절천국, 박석국, 방산국, 신향국, 사망국, 안구국, 고릉국, 임안국, 석산국
낭야군진이군(塡夷郡), 동무현→상선현(祥善縣), 제현→제병현(諸幷縣), 고막현→계목현(季睦縣), 임원국→진이정현(塡夷亭縣), 거현→폐동현(祓同縣), 부현→순덕현(純德縣), 고우국→영려현(盈廬縣), 횡현→영구현(令丘縣), 위기국→청천현(靑泉縣), 비현→식명현(識命縣), 즉래국→성목현(盛睦縣), 무향국→순리현(順理縣), 사망국→영향현(泠鄕縣), 안구국→영향현(寧鄕縣), 고릉국→포륙현(蒲陸縣), 임안국→성신현(誠信縣)
후한 낭야국(13성 20,804호 570,967구): 개양현, 동무현, 낭야현, 동관현, 서해현해곡현[7], 제현, 거현, 동안현, 양도현, 임기현, 즉구국, 증국, 고막현
서진 낭야국(9현 29,500호): 개양현, 임기현, 양도현, 증현, 즉구현, 화현, 비현, 동안현, 몽음현 }}}}}}}}}

6. 동관군(東莞郡)

'莞'은 '완'으로도 읽히기에 '동완군'으로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있으나, 지명에 쓰일 때는 '관'으로 읽힌다. 198년에 여포가 멸망한 뒤 조조 윤례가 동관태수가 되었을 때 처음 등장하므로, 당시에 윤례가 장악하고 있던 영역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진서』 지리지에는 동관군을 서진이 설치했다고 쓰여있기에 위나라 때 폐지된 것으로 보는 의견들이 있으나, 위나라 때에도 동관태수가 임명되었던 것을 보면 『진서』 지리지가 군웅할거 이후 시점의 일을 무작정 서진 때 일어난 일로 기록한 사례 중 하나라 생각된다. 아마도 서진 초기에 동관왕이 책봉되면서 동관국(東莞國)이 되었다가 277년에 낭야왕으로 증봉(增封)되면서 낭야국의 지군(支郡)이 되었고, 태강 연간에 낭야왕의 식읍에서 분리되었기에 이런 기록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지명 [198]동관군→[265]동관국→[277]동관군
소속 [198]서주자사부→[277]서주 낭야국→[서진]서주
치소 동관현 운정
전입 [198]낭야군 동관현·동안현 및 태산군 개현·몽음현, [210?]동안군? 임구현, [서진]북해국 주허현·영릉현·극현 및 성양군 안구현 및 제국 광현
전출 [서진]동안현·몽음현→낭야국
봉작 사마주: 동관왕(26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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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동관군(8현 10,000호): 동관현, 주허현, 영릉현, 안구현, 개현, 임구현, 극현, 광현 }}}}}}}}}

7. 광릉군(廣陵郡)

전한 초기인 기원전 154년에 강도왕이 책봉되면서 동양군(東陽郡)을 분할해 강도국(江都國)이 설치되었고, 기원전 120년에 강도왕이 철봉(撤封)되고 새로 광릉왕이 책봉되어 광릉국(廣陵國)이 되었다. 기원전 114년에 사수왕이 책봉되면서 동해군을 분할해 사수국(泗水國)이 설치되었다. 후한 때인 35년에 사수왕이 단절되자, 사수국이 광릉군에 합병되었다. 유수구 전투 이후인 213년 무렵에 조조 손권과의 대치가 장기화될 거라 여기고 회수(淮水) 이남과 장강 이북 사이에 있는 지역의 주민들을 회수 이북으로 이주시키려 했으나,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장강을 건너가 손권에게 망명해 버렸기에 회수 이남 지역에 무인지대가 형성되어, 이 영향으로 광릉군 11현 중 9현이 사실상 폐지되었기에 하비국에서 2현이 이속되어 광릉군을 유지할 수 있었다. 250년에 손권이 당릉현을 점거해 도당(涂塘)을 건설했고, 255년 손준 관구검에게 호응하여 회수 이남에 상비군을 주둔하고자 광릉현 일대를 점령하고, 오양(吳穰)을 광릉태수로 유략을 동해태수로 임명해 보냈으나, 그 일대에서 축성하는 데 실패했다. 서진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야 옛 현들을 복구했다.
지명 [-154]강도국→[-120]광릉국→[10]광릉군→[58]광릉국→[67]광릉군
[-114]사수국→[23]사수군→[25]사수국→[35]광릉군에 병합
소속 [한]서주자사부→[서진]서주
치소 [전한]광릉현→[213?]회음현
사수국: [전한]능현
설치 [280]광릉현(재설치)·강도현(재설치)·고우현(재설치)·동양현(재설치)·사양현(재설치)·염독현(재설치)·여국(재설치)·해릉현(재설치)
전출 [148]당읍현→양주자사부 부릉국?, [서진]능현→하비군 및 고우현·동양현→임회군
폐지 [213?]광릉현·강도현·고우현·동양현·사양현·염독현·여국·해릉현·평안현, [서진]해서현
출신 회음현: 보연사
회포현: 진규· 진등
해서현: 서선
사양현: 진림
해릉현: 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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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광릉국(4현 36,773호 140,722구): 광릉현, 강도현, 고우현, 평안현
사수국(3현 25,025호 119,114구): 능현, 사양현, 우현
광릉국강평군(江平郡), 광릉현→안정현(安定縣), 평안현→두향현(杜鄕縣)
사수국수순군(水順郡), 능현→생릉현(生淩縣), 사양현→회평정현(淮平亭縣), 우현→우병현(于屛縣)
후한 광릉군(11성 83,907호 410,190구): 광릉현, 강도현, 고우현, 평안현, 능현, 동양현, 사양현, 염독현, 여국, 당읍현해릉현[8], 해서현
서진 광릉군(8현 8,800호): 회음현, 사양현, 여현, 해릉현, 광릉현, 염독현, 회포현, 강도현 }}}}}}}}}
여포가 서주를 점거하고 있던 때에 진등이 정식으로 광릉태수에 임명되었다. 『삼국지』 장막전의 주석으로 인용된 『선현행장』에 진등이 동성태수(東城太守)로 나와 있어, 후한 말에 동성군(東城郡)이 설치되었다고 보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기록들에서 엄연히 광릉태수로 나오고 있는 이상 『선현행장』의 오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8. 같이보기

파일:실제 지도 후한 13주.png

[1] 193년 조조가 서주를 침공하면서 무고한 백성들까지 학살하면서 피해가 막심했고, 특히 당시에 자사의 치소인 담현까지 함락당한 일도 있었기에, 도겸이 하비현으로 치소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유비가 서주목을 물려받은 194년 시점에는 확실하게 하비가 서주목의 치소로 언급된다. 이후 위나라 때 서주자사의 치소는 팽성국 팽성현에 있었는데, 아마도 유수구 전투 이후 주민들을 이주시킨 시점에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2] 213년에 아버지 유화(劉和)의 작위를 계승함. [3] 40,196호 [4] 184년에 아버지 유의(劉意)의 작위를 계승한 유의(劉宜)가 수개월 만에 훙서함. [5] 206년에 담현·양분현·척현을 낭야국으로 이속했다고 하는데, 이 중 척현은 낭야국에 인접하지 않으며 당시에는 창려군 소속 현이었기에 난릉현의 오기(誤記)인듯 하다. [6] 『한서』 지리지는 해곡현(海曲縣)으로 오기했다. [7] 『속한서』 군국지는 서해현(西海縣)으로 오기했다. [8] 『속한서』 군국지에는 당읍현이 기재되고 해릉현은 누락되어 있다. 아마도 당읍현이 부릉국에 소속된 것을 파악하지 못하여 발생한 오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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