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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11:00:30

범엽


송서(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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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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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2·3권 「무제기(武帝紀)」 4권 「소제기(少帝紀)」 5권 「문제기(文帝紀)」
유유(劉裕) 유의부 유의륭
6권 「효무제기(孝武帝紀)」 7권 전폐제기(前廢帝紀)」 8권 「명제기(明帝紀)」
유준(劉駿) 유자업 유욱(劉彧)
9권 「후폐제기(後廢帝紀)」 10권 「순제기(順帝紀)」
유욱(劉昱) 유준(劉準)
※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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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3f51ba> 41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42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43권 「서선지등전(徐羨之等傳)」 44권 「사회전(謝晦傳)」
유목지 · 왕홍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사회
45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46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47권 「유회숙등전(劉懷肅等傳)」
왕진악 · 단소 · 상정 · 유회신 · 유수 조륜지 · 왕의 · 장소 유회숙 · 맹회옥 , 맹용부, · 유경선 · 단지
48권 「주령석등전(朱齡石等傳)」 49권 「손처등전(孫處等傳)」 50권 「호번등전(胡藩等傳)」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손처 · 괴은 · 유종 · 우구진 호번 · 유강조 · 원호지 · 장흥세
51권 「종실전(宗室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준고
52권 「유열등전(庾悅等傳)」 53권 「장무도등전(張茂度等傳)」 54권 「공계공등전(孔季恭等傳)」
유열 · 왕탄 · 사경인(1) · 원담 · 저숙도(2) 장무도(3) , 장영, · 유등지 , 유병지, · 사방명 · 강이 공계공 · 양현보 · 심담경
55권 「장도등전(臧燾等傳)」 56권 「사첨등전(謝瞻等傳)」 57권 「채곽전(蔡廓傳)」
장도 · 서광 · 부륭 사첨 · 공림지 채곽
58권 「왕혜등전(王惠等傳)」 59권 「은순등전(殷淳 等傳)」 60권 「범태등전(范泰等傳)」
왕혜 · 사홍미 · 왕구 은순 · 장창 · 하언 · 강지연 범태 · 왕준지 · 왕소지 · 순백자
61권 「무삼왕전(武三王傳)」
유의진 · 유의공 · 유의계
62권 「양흔등전(羊欣等傳)」 63권 「왕화등전(王華等傳)」 64권 「정선지등전(鄭鮮之等傳)」
양흔 · 장부 · 왕미 왕화 · 왕담수 · 은경인 · 심연지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65권 「길한등전(吉翰等傳)」 66권 「왕경홍등전(王敬弘等傳)」 67권 「사령운전(謝靈運傳)」
길한 · 유도산 · 두기 · 신념 왕경홍(4) · 하상지 사령운
68권 「무이왕전(武二王傳)」
유의강 · 유의선
69권 「유담등전(劉湛等傳)」 70권 「원숙전(袁淑傳)」 71권 「서담지등전(徐湛之等傳)」
유담 · 범엽 원숙 서담지 · 강담 · 왕승작
72권 「문구왕전(文九王傳)」
유삭 · 유굉 · 유창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약
73권 「안연지전(顏延之傳)」 74권 「장질등전(臧質等傳)」 75권 「왕승달등전(王僧達等傳)」
안연지 장질 · 노상 · 심유지 왕승달 · 안준
76권 「주수지등전(朱脩之等傳)」 77권 「유원경등전(柳元景等傳)」 78권 「소사화등전(蕭思話等傳)」
주수지 · 종각 · 왕현모 유원경 · 안사백 · 심경지 소사화 · 유연손
79권 「문오왕전(文五王傳)」
유탄 · 유위 · 유혼 · 유휴무 · 유휴범
80권 「효무십사왕전(孝武十四王傳)」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81권 「유수지등전(劉秀之等傳)」 82권 「주랑등전(周朗等傳)」 83권 「종월등전(宗越等傳)」
유수지 · 고침 · 고기지 주랑 · 심회문 종월 · 오희 · 황회
84권 「등완등전(鄧琬等傳)」 85권 「사장등전(謝莊等傳)」 86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등완 · 원의 · 공기(孔覬) 사장 · 왕경문(5) 은효조 · 유면
87권 「소혜개등전(蕭惠開等傳)」 88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89권 「원찬전(袁粲傳)」
소혜개 · 은염 설안도 · 심문수 · 최도고 원찬
90권 「명사왕전(明四王傳)」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91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劉瑜) · 가은 · 곽세도 · 자원평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민 · 손극 · 하자평
92권 「양리전(良吏傳)」
왕진지 · 두혜도 · 서활 · 육휘 · 완장지 · 강병지 · 왕흠지
93권 「은일전(隱逸傳)」
대옹 · 종병 · 주속지 · 왕홍지 · 완만영 · 공순지 · 유응지 · 공기(龚祈) · 적법사 · 도잠 · 종욱지 · 심도건 · 곽희림 · 뇌차종 · 주백년 · 왕소 · 관강지
94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완전부 · 왕도륭 · 양운장
95권 「삭로전(索虜傳)」 96권 「선비토욕혼(鮮卑吐谷渾)」
삭로 토욕혼
97권 「이만전(夷蠻傳)」
임읍국 · 부남국 · 가라타국 · 가라단국 · 반황국 · 반달국 · 사파파달국 · 사자국 · 가비려국 · 고구려 · 백제국 · 왜국 · 형옹주만 · 예주만
98권 「저호전(氐胡傳)」 99권 「이흉전(二凶傳)」
구지 · 저거몽손 유소(劉劭) · 유준(劉濬)
100권 「자서전(自序傳)」
심약
(1) 본명이 사유(謝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인(景仁)으로 표기되었다.
(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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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范曄
(398년 ~ 445년)

유송의 관료이자 역사가로 범태의 아들이며, 자는 울종(蔚宗)이다. 《 후한서》의 저자로 알려진 인물이었지만 사생활에서 비판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역모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2. 생애

범엽의 조상은 순양군(順陽郡) 출신으로, 범엽은 398년 산음현(山陰縣)에서 태어났다. 범엽의 집안은 서진대의 관료인 범귀를 시조로 하는 순양 범씨였다. 범엽은 명문 출신이지만 첩의 소생으로 범태의 서자였다. 범엽의 어머니는 뒷간에서 범엽을 낳았는데, 범엽이 태어날 때 이마가 벽돌에 맞아 상처가 나서 아명을 전(塼)으로 정했다. 범엽은 백부 범홍지의 작위인 무흥현오등후(武興縣五等侯)를 습봉하였다.

범엽은 어린 시절에 배우기를 좋아해서 경서와 사서를 읽었으며, 문장을 잘 지었고 예서에 능하였으며, 음률에 해박했다. 414년, 주에서 주부(主簿)로 벽소했으나 이를 거절했다. 뒤에 범엽은 유송이 들어서면서 팽성왕 유의강의 참군이 되었고 상서외병랑(尙書外兵郞), 형주(荊州) 별가종사사(別駕從事史), 비서승(秘書丞)을 역임했다.

428년, 아버지 범태의 상을 당하여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정서대장군(征南大將軍) 단도제의 사마가 되었고 신채군 태수를 겸임하였다. 단도제가 북벌을 단행할 때 범엽은 자신의 병을 핑계로 동행을 사양했으나 문제 유의륭은 이를 윤허하지 않았고 범엽에게 수로를 통해 물자를 조달하라는 명을 내렸다. 단도제가 회군한 뒤 범엽은 사도부 종사중랑(從事中郞)이 되었고 상서이부랑(尙書吏部郞)을 역임했다.

432년, 팽성왕 유의강의 친모인 태비 왕씨가 죽었다. 장례를 치르는 날 밤에 유의강의 옛 관료들이 동부(東府)에 모였고 당시 범엽의 동생 사도부 좨주 범광연(范廣淵)이 당직으로 있었다. 이때 범엽은 좌서속(左西屬) 왕심(王深)과 함께 범광연의 처소에 머무르며 밤에 술을 마시고 북창를 열고 만가를 감상했다. 결국 이런 모습이 유의강의 분노를 사서 범엽은 선성군 태수로 좌천되었다. 범엽은 자신이 좌천되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우울해져서 자신의 울적함을 달래고자 임지에서 후한의 사적을 정리하였고 이때 완성된 사서가 바로 《 후한서》였다.

438년, 진군장군(鎭軍將軍) 장사왕(長沙王) 유의흔의 장사로 옮기고 영삭장군(寧朔將軍)이 더해졌다. 한편 범태의 적남이자 범엽의 형인 범호(范暠)가 의도군 태수로 부임하면서 범호의 적모도 의도군으로 동행했는데, 439년 범호의 적모가 사망할 때 범엽은 병을 핑계로 제때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가 한참 뒤에 기첩들을 데리고 장례식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범엽은 어사중승 유손(劉損)에게 고발되었으나 문제는 범엽의 재능을 총애했기에 그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다.

장례를 마친뒤 범엽은 후군장군(後軍將軍) 시흥왕(始興王) 유준의 장사가 되었고 남하비군 태수를 겸임하였다. 범엽이 양주(揚州)로 주둔할 때 양주의 사무는 모두 범엽이 처리했다. 뒤이어 좌위장군(左衛將軍), 태자첨사(太子詹事)로 옮겼다. 범엽은 비파를 잘 연주했고 새로운 곡을 작곡할 수 있었다. 문제는 범엽의 노래를 듣고 싶었는데, 범엽은 일부러 모른 척하고 문제에게 곡을 연주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번은 문제가 대신들과 연회를 열 때 문제는 범엽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래를 부르고 싶으니 경은 연주를 하시오.
범엽은 문제의 명에 따라 연주를 했다가 문제가 노래를 끝내니 같이 연주를 끝냈다.

뒤에 공희선이 범엽의 사위인 사종을 통해 범엽에게 접근했다. 공희선은 도박에서 일부러 져서 범엽에게 자신의 재산을 범엽에게 넘겼고, 범엽 또한 공희선의 재산에 관심이 있었고 공희선의 재능을 높이 샀기 때문에 공희선과 사이가 좋아지게 되었다. 공희선이 처음에 범엽을 역모에 가담시키려고 할 때 범엽은 이를 거부했는데 공희선이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인께서 만약 조정이 장인을 후하게 대우한다고 생각한다면 무슨 연유로 혼약을 맺지 않는 것입니까, 집안이 부족해서입니까? 사람들은 장인을 개돼지로 취급하는데, 장인은 충성을 다하여 죽으시려고 하니 이 또한 어리석지 않습니까?
범엽은 공희선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결국 공희선의 역모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서담지가 이러한 사실을 문제에게 고발해서 공희선의 역모가 발각되었고, 범엽도 이에 연루되어 처형됨으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범엽은 심연지와 더불어 문제로부터 대우를 받았고 매번 동시에 불려가는 일이 많았다. 범엽이 만약 먼저 도착하면 반드시 심연지를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갔지만, 심연지가 먼저 도착하면 홀로 문제에게 불려가기도 해서 범엽은 원한이 생겼다.

범엽은 유의강의 부하 관리를 역임하며 유의강의 인정을 받았지만 선성군으로 좌천되면서 유의강과는 사이가 틀어졌다. 하지만 사종이 범엽에게 돌아와서 유의강이 범엽에게 사죄하고 싶고 다시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자는 말을 전했다. 범엽은 문제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문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신이 양한의 고사를 살펴보니 번왕들은 저주나 남의 재난에 쾌재를 부르면 곧바로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하물며 유의강의 간사한 마음과 행적이 드러나서 사방이 알고 있지만 지금은 아무런 탈이 없기 때문에 소신은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커다란 병폐가 상존하면 틀림없이 반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형제들 사이의 일은 신하들이 입 밖에 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소신은 폐하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범엽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