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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요제프 괴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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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초대 국민계몽선전장관
나치 독일 제2대 총리
파울 요제프 괴벨스
Paul Josef Goebbels
파일:파울 요제프 괴벨스 정면 사진.jpg
출생 1897년 10월 29일
독일 제국 라인란트 묀헨글라트바흐 라이트
사망 1945년 5월 1일 (향년 47세)
나치 독일 베를린 퓌러붕커
(現 독일 베를린 미테구 브란덴부르크문 요양원 앞마당)
재임 기간 국민계몽선전장관
1933년 3월 14일 ~ 1945년 5월 1일
나치 독일 제2대 국가수상
1945년 4월 30일 ~ 1945년 5월 1일
서명
파일:파울 요제프 괴벨스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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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colbgcolor=#fff,#191919>165cm, O형
종교 가톨릭 무종교 ( 반신론)
정당
시민권 독일인
학력 본 대학교 (문학 / 중퇴)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문학 / 중퇴)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문학 / 중퇴)
뮌헨 대학교 (문학 / 학사)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문학 / 박사)[1]
부모 아버지 프리츠 괴벨스
어머니 카타리나 마리아 괴벨스
배우자 마그다 괴벨스(1901년 ~ 1945년, 1931년 결혼)
자녀 헬가 주자네 괴벨스 (1932년 ~ 1945년)
힐데가르트 트라우델 "힐데" 괴벨스
(1934년 ~ 1945년)
아들 헬무트 크리스티안 괴벨스
(1935년 ~ 1945년)
홀디네 카트린 "홀데" 괴벨스
(1937년 ~ 1945년)
헤트비히 요한나 "헤다" 괴벨스
(1938년 ~ 1945년)
하이드룬 엘리자베트 "하이데" 괴벨스
(1940년 ~ 1945년)
의붓아들 하랄트 크반트[2] (1921년 ~ 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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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타임지 표지

1. 개요2. 생애3. 개인적인 특징
3.1. 이성 관계3.2. 마그다 괴벨스와 아이들
4. 선거 이력5. 저작6. 어록
6.1. 그의 말로 잘못 알려진 것들
7. 관련 서적8. 대중매체
8.1. 영화8.2. 게임8.3. 소설8.4. 만화
9. 평가10. 여담11. 참고 자료12. 관련 문서13. 둘러보기14.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중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총력전 연설[3]
나치 독일 정치인으로, 베를린 관구장 및 중앙선전국장과 국회의원, 국민계몽선전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아돌프 히틀러의 가장 가까운 심복 중 한 명으로, 인문학 엘리트로서의 장점을 살려 주도면밀한 대중연설 능력을 통해 독일 국민들에게 극단적인 반유대주의를 설파하며 홀로코스트 등 나치의 여러 악행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그가 사용한 선전 · 선동 방식은 전후 세계의 정치 언론에 큰 영향을 주었기에 프로파간다의 제왕으로 칭해지기도 한다.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파울 요제프 괴벨스/생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개인적인 특징

파일:요제프 괴벨스의 모습.jpg 파일:요제프 괴벨스의 측면 모습.jpg
소아마비 때문에 다리가 굽는 신체 장애가 있었다. 이는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박사 학위만큼이나 잘 알려진 개인적인 특징이다. 이는 어려서는 물론 커서 나치당원과 장관에 이르기까지 정적들의 공격대상이었고 괴벨스 자신도 장애를 잊지 않았다. 군대는 면제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는 않고 대학에 다닐 때 징집된 적이 있다. 현역은 아니고 군대에 비품을 공급하는 보훈 단체에서 행정병으로 몇 달 일하다가 높으신 분이 괴벨스의 꾀죄죄한 외모를 보고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유대인 초등학교 교사[4] 엘제 얀케와 결혼을 고민할 때도 여자 쪽에서는 괴벨스의 다리 장애가 유전이 될까봐, 괴벨스는 엘제 얀케의 어머니가 유대인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대판 싸우는 원인도 되었고 나치당 관구장이 될 때도 말이 많았으며 장관으로 출세했을 때도 정적들은 군 복무 경력과 신체 장애를 빗대 "방구석 병사", "빼어난 외모의 게르만 청년"이라 비꼬거나 "절름발이 악마"라는 멸칭을 붙였다.

장관이 되고 나서는 다른 나치당 간부들만큼 흥청망청은 아니어도 꽤나 해먹었다. 우선 유대인 부호를 협박해서 땅을 헐값에 가로채고 괴링의 양해를 받아 산림 구역에서 법을 어기고 주건물 방 개수만 21개, 욕실만 5개짜리 별도의 영화관과 연회홀이 딸린 저택을 300만 라이히스마르크를 들여서 만들었다. 내부 장식도 가구나 식기는 물론이고 하나에 3만 마르크나 하는 루이 16세 양탄자를 까는 등 실내 장식에도 펑펑 써댔다. 물론 여기엔 재벌 출신인 마그다의 취향도 한 몫 했다. 이 대부분의 돈은 당연히 영화계의 뇌물이나 선전부 예산을 삥땅쳐서 빼돌렸다. 나치당 베를린 관구장 시절에도 상당수의 베를린 관구 당예산을 빼돌려서 소송비용이나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데 썼다. 한가지 재밌는 여담으로 300만 마르크를 들인 이 저택에 아돌프 히틀러를 초대했는데 히틀러는 현관 앞에서 얼굴을 찌푸리며 총통 관저로 돌아가 버렸다. 그 이유는 괴벨스가 300만 마르크로 사치해서가 아니라 저택 현관에 걸린 그림이 히틀러의 기준으로 천박해서였다.

3.1. 이성 관계

모든 여자들이 나의 피를 끓게 만든다.
1926년 그의 일기에서
주변에 여자들이 많았다. 이는 그가 피아노를 잘 다루었고, 화술과 매너가 좋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시골 여인 하나를 꼬셔서 사귄 적이 있다. 얀카 슈탈헤름이라는 부자집 따님과는 신분 차이로 헤어지지만 오랫동안 진지하게 사귀는 사이였고 엘제 얀케라는 유대인 초등학교 교사와도 나치당에 들어가고 베를린 관구장으로 가기 전까지도 헤어지지 않았다. 한때 나치당에 있음에도 결혼을 심각하게 고려했고 베를린 관구장으로 부임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헤어질 정도. 베를린에 가서도 여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자주 바뀌었으며 아내 마그다와 결혼하던 시절에도 전 여자친구인 슈탈헤름과 양다리를 걸쳤으며 바쁜 와중에도 다른 여자들도 만났다. 권력을 잡은 뒤 선전장관이라는 직책상 배우들의 출세에 대해 최종권한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여배우들과 염문이 많았으며 그 문제가 불거져 정적이던 힘러는 "우리는 여직원을 농락하는 유대인 사장에 대해 비난해왔는데[5], 이제는 괴벨스 장관이 그 비난을 듣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1345551-0CB24A0D000005DC-215_233x404.jpg
리다 바로바(Lida Baarova)(1914년 ~ 2000년)
특히 체코 병합 이후에는 체코 출신 여배우 리다 바로바와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문제가 되어 아내 마그다 괴벨스와는 이혼 직전까지 갔다. 리다 바로바는 원래 약혼자[6]까지 있던 여자였는데 괴벨스가 데리고 다니면서 성관계를 하다가 남배우인 전 약혼남에게 주먹질을 당했다는 둥 멱살을 잡혔다는 둥 결투를 했다는 둥 루머가 돌았고 극장에선 리다 바로바가 나오면 선전장관의 창녀라고 다들 수근대는 등 소문이 다 퍼졌다. 사회적 시각과 마그다 괴벨스의 인맥[7]을 생각한 히틀러의 불호령으로 사건을 대충 수습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했지만. 참고로 리다 바로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 살아남았고 전후 증언에서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다."라고 공언하였다고 한다. 정작 괴벨스는 대학 시절 연인 얀카 슈텔헤름이 자신이 진정 사랑한 연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3.2. 마그다 괴벨스와 아이들

[navertv(37113777, start=1950)]
[다큐] 영상의 세기 PREMIUM 제14부 - 운명의 연인들中[8]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81px-Bundesarchiv_Bild_146-1973-034-56%2C_Magda_Goebbels.jpg
마그다 괴벨스
아내 마그다 괴벨스는 1901년 태생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처녀일 때 성은 리첼로 어릴 때 어머니가 생부와 이혼하고 유대인 출신 부자 남편과 재혼했다. 상류층 영양들이 다니는 기숙학교를 다녔고 아비투어에도 합격했으나 19세 때 나이가 40줄에 애 둘 딸린 재벌 크반트 가문과 결혼했다. 8년간 짧은 결혼 생활 동안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바쁘다고 얼굴도 보기 힘든 남편을 두고 마그다가 젊은 남자와 당당하게 바람을 피우면서 자연스레 이혼한다. 이혼할 때 아들 하랄트 크반트를 데리고 나온다. 서양식 사고방식의 위엄인지 전 남편 & 전 시가(媤家)와 사이는 나쁘지 않았으며 이혼할 때도 풍족하게 한 보따리 챙겨서 나온다. 오히려 이혼하고 나서 전 남편 & 전 시가와의 사이가 더 좋아졌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이혼하고 할 일 없이 소일하던 마그다는 심심풀이로 베를린 스포츠궁에서 열린 나치당 집회에 놀러갔다가 깊은 감명을 받고 그 날 즉시 나치당에 입당한다. 매우 열성적이어서 재벌집 마나님 출신이면서도 무급으로 베를린 나치당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에 나섰고 이때 괴벨스를 만난다. 이미 이 시절엔 괴벨스는 국회의원도 되고 나치당 베를린 대관구장이 되어 있었지만, 출신 배경 차이란 게 있었기 때문에 괴벨스가 약간 꿀리는 감도 없지 않았다. 생부와 모친과 옛 시가인 크반트 가문까지 모두 결혼에 반대했지만 첫 아이를 밴 상태에서 조용하게 결혼했다. 이후 인맥과 영향력으로 괴벨스가 출세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남편보다 더 열렬한 총통 추종자에다 히틀러도 마그다를 좋아했기 때문에 독신인 히틀러를 돕는 제3제국 퍼스트 레이디로 불릴 정도였다.

그녀는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해서 외국어에 약한 괴벨스나 히틀러를 대신해서 외국 손님들을 접대하고 다리를 놓는 데도 안성맞춤이었다. 괴벨스가 한때 히틀러의 신임만 있을 뿐 권력층에 밀려나 찬밥이 되었을 때도 마그다에 대한 히틀러의 신임은 탄탄했다. 괴벨스가 리다 바로바와 바람이 났을 때는 괴벨스의 오른팔 선전부 차관이며 연하인 카를 항케와 맞바람을 피우며 이혼도 불사했으며 괴벨스는 괴벨스대로 아이들을 뺏겠다며 으름장을 부린다. 그러나 히틀러가 마그다를 달래며 "리다 바로바는 추방하고 마그다의 허락 없이는 괴벨스가 아이를 만날 수 없다. 1년만 그렇게 살아보고 정 안되겠으면 그때 이혼해라."는 조건을 내걸어 결국 남편과 재결합한다.

제3제국 다산 정책을 몸소 실천해서 전 남편에게서 1남인 하랄트를, 괴벨스 사이에서 1남 5녀을 낳아 총 2남 5녀를 낳았다.

파일:파울 요제프 괴벨스 가족 사진.jpg
사진의 맨 오른쪽 공군 상사 비행복[9]을 입은 이는 아내 마그다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하랄트 크반트[10]로, 괴벨스는 그도 데려와서 의붓아들로 함께 키웠다.

태어난 순서는 헬가 (1932년 9월 1일), 힐데 (1934년 4월 13일), 헬무트 (1935년 10월 2일), 홀데 (1937년 2월 19일), 헤다 (1938년 5월 5일), 하이데 (1940년 10월 29일).

맏딸 헬가는 무척 영리하여 일찍부터 히틀러의 귀여움을 받았다. 참고로 전부 H로 시작하는 이름인데 일부 역사학자들은 아이들의 이름이 모두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헌사로 H로 시작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11] 헬가는 똑똑해서 괴벨스가 기대하며 아낀 반면 외아들 헬무트는 자주 공상에 빠져서 "남자애 혼자 여자 형제들 사이에 키워서 저러나?" 하고 괴벨스가 많이 걱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치 독일의 패망 직전 총통벙커에서 그 아이들을 모조리 살해 후 자살한 사실이 유명하다. 아이들의 시신(그냥 잠자는 듯한 모습이지만 시신이다보니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으니 클릭시 주의 요망) 괴벨스 가족의 시신은 소련군이 입수했는데 맏딸 헬가는 얼굴에 저항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 다운폴과 유사하게 예방 주사 놓는다고 SS 군의관을 시켜 모르핀을 투여하고, 자고 있을 때 부부가 직접 청산가리를 먹였다고 한다. 괴벨스는 아이들을 해치기 전에 망설였지만 마그다가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그 이유가 총통 각하가 없는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였다.[12] 마그다와 친한 알베르트 슈페어가 남긴 회고록을 제외하고는 마그다가 나서서 죽였다는 증언이 일치한다. 슈페어 회고록에선 총통 벙커에서 마지막으로 마그다와 인사할 때 괴벨스가 질투해서 둘만의 이야기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 원망도 한다.

의붓아들인 하랄트 크반트는 전쟁 전 공군 사병으로 입대, 부사관 시절 장교후보생을 지원해 공수부대 장교로 복무했다. 1941년 크레타 전투 때 부상당하기도 했고, 1944년에 이탈리아 전선에서 영국 육군의 포로가 되었기에 살아남았다. 최종 계급은 공군 중위였다. 마그다가 죽기 전 총통벙커에서 보낸 편지는 기적적으로 하랄트에게 전해졌다는 일화가 있다. 전후에는 크반트 가문으로 돌아가 사업가로 활동하다 1967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다. 친부자 관계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은근히 괴벨스와 닮은게 특징. 의붓아버지와의 관계는 비교적 양호했던 것 같다. 여담으로 2014년 10월, 하랄트의 친족이자 BMW의 대주주인 요한나 크반트[13]가 독일 최고 부호 반열에 올랐다고 영국 일간지 타임스가 보도했다. 요한나 크반트와 그녀의 두 아들딸의 BMW 지분을 합하면 46.7%에 달하는데, 이에 따르면 크반트 일가의 재산은 245억 파운드(약 42조 2983억 원)에 달한다. #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28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 비례대표
(베를린 비례선거구)[14]

810,127 (2.6%) 당선 (9위) 초선
1930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 6,379,672 (18.25%) 당선 (2위) 재선
1932.7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 13,745,680 (37.27%) 3선
1932.11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 11,737,395 (33.09%) 당선 (1위) 4선
1933.3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 17,277,180 (43.91%) 5선
1933.11 나치 독일 총선 39,655,244 (92.11%) 6선
1936 44,462,458 (98.8%) 7선
1938 48,751,587 (98.93%) 8선[총리]

5. 저작

괴벨스의 저작으로 가장 방대한 자료는 《괴벨스의 일기》다. 20대 중반(1923년)부터 거의 매일 꼼꼼하게 쓴 일기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와 나치 시대, 괴벨스와 히틀러 등 기타 나치 인사들을 연구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1차 자료다.[16] 2만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이라서 1 ~ 2년 또는 2 ~ 3년 정도의 양으로 나눠서 출판했고[17] 전쟁 말기에 쓴 일기는 동독에 남아있어서 90년대에나 연구가 시작되었고 훨씬 늦게 발간되었다. 괴벨스의 인물평이나 당시 시대 여론이나 루머들이 솔직하게 적혀있다. 그렇지만 일기라고 해서 완전히 자신만의 생각을 쓴 것만은 아닌 게 나치 집권 후 출판사로부터 자신의 사후 20년 출판을 조건으로 막대한 선인세를 받고 팔았기에 히틀러나 나치 정권에 대해선 완전히 자기검열 없이 쓴 것이라곤 볼 수 없다.

저작으론 몇 차례의 개작을 거친 반(半) 자전적 소설 《미하엘》이 있다. 자전적 소설이 아닌 반 자전적 소설인 것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던 리하르트 플리스게스(Richard Flisges)가 노동자로 일하다 광산에서 사고사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집필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미하엘 포어만(Michael Vormann)은 현실의 친구 플리스게스와 파울 요제프 괴벨스 자신을 투영하여 암울한 환경에서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내용이다. 저자 본인부터가 그다지 좋은 작품은 아니었던 것으로 평했지만, 히틀러의 《 나의 투쟁》처럼 집권 후 불티나게 팔려서 10쇄를 넘게 찍어냈다. 대한민국에도 2017년 4월에 번역, 출간 되었다.

그 밖에 베를린 관구장 시절 공산당이 집회 때, 연극을 이용하는 걸 따라한답시고 정치적인 희곡을 몇 편 썼지만 역시 평은 좋지 않다. 나치당 입당 하기 전 실업자일 때, 언론사에 발표한 논문이 6편 정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나치당 시절 정치적으로 쓴 글 모음. (영문판) 1920년대 ~ 1933년, 1933년~1945년.

6. 어록

파일:요제프 괴벨스의 연설.jpg
당원들에게 연설하는 괴벨스 장관[18]
본문 항목에 소개되지 않은 단편적인 문구와 어록, 연설문.
※주의: 이 어록들 중에는 실제로 괴벨스가 하지 않았음에도 유명한 어록들도 많다. (출처 필수)
"내가 이렇게 과장된 반유대주의를 싫어한다는 것을 너도 알 거야.(...) 유대인이 내게 절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욕설이나 편 가르기, 아니면 심지어 박해를 해서 그들을 없앨 수는 없다는 말이야. 만일 이런 식으로 그들을 없앨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주 천박하고 비인간적인 일이야."
1919년 2월 17일 연인 안카 슈탈헤름에게 한 의미심장한 말[출처]
민주주의가 철천지 원수에게 자신을 파멸시킬 방법을 손수 알려주었다는 이야기는 아마도 민주주의를 비꼬는 풍자 중 가장 뛰어난 것이 될 것이다.[20]
Wenn unsere Gegner sagen: Ja, wir haben Euch doch früher die Freiheit der Meinung zugebilligt, ja, Ihr uns, das ist doch kein Beweis, daß wir das Euch auch tuen sollen! Daß Ihr das uns gegeben habt, das ist ja ein Beweis dafür, wie dumm Ihr seid!"
우리의 상대가 "그래, 전에 우리는 당신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었잖아"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당신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했지! 하지만 그건 우리가 당신들에게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증거가 아냐! 당신들이 멍청하다는 증거일 뿐!"
1935년 12월 4일 연설.
선전은 본질상 일종의 예술이다. 그리고 선전원은 엄밀한 단어상 의미에 있어 민중 심리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선전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매일 매 시간 민중의 맥박 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떻게 맥박이 뛰는지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맥박의 박자에 맞추어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1935년
이 얼마나 이상한 민족입니까! 다른 민족이라면 저항하기 위해 대중들이 봉기했을 겁니다. 가련한 독일! 상놈의 나라! 불량한 나라! 유대인들이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우리를 평가했습니다!
1928년, 베를린 거리 연설.
Im Uebrigen muss man feststellen, dass was diese Herren auf propagandistisch-politischem Gebiet in den vergangenen 14 Jahren geleistet haben, dass ist eine wahre Stuemperarbeit gewesen.
바이마르 공화국 신사분들의 지난 14년간 프로파간다 정치부문에서의 성과는 참으로 서툴렀습니다.

Wenn obschon sie alle oeffentlichen Mittel fuer sich in Anspruch nahmen, haben sie nichts anderes zuwege gebracht, als dass sie jetzt ueber politische Machtwirkung ueberhaupt nicht mehr in Frage kommen. Die nationalsozialistische Bewegung wird ihnen nun zeigen, wie sie es eigentlich haetten machen sollen.
언론에 대한 통제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고작 한 것은 새로운 정치기반을 다지는데 아무쓸모없는 정치 스캔들을 감추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이제 국가사회주의 운동이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제대로 보여줄 것입니다.

Man muss naemlich gut regieren, und mit einer guten Regierung auch eine gute Propaganda betreiben. Das eine gehoert zum anderen. Eine gute Regierung ohne Propaganda kann ebensowenig bestehen wie eine gute Propaganda ohne eine gute Regierung. Beide muessen sich einander ergaenzen.
좋은 통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좋은 프로파간다 정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둘은 서로 때어놓을 수 없습니다. 좋은 프로파간다 정책이 없는 좋은 정부는 좋은 프로파간다 정책을 펼치는 좋지 못한 정부보다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Und wenn die jüdischen Zeitungen heute noch glauben, durch versteckte Drohungen die nationalsozialiste Bewegung einschüchtern zu können, wenn sie heute glauben, unsere Notverordnungen umgehen zu dürfen, sie sollen sich hüten! Einmal wird unsere Geduld zu Ende sein, und dann wird den Juden das freche Lügenmaul gestopft werden.
그리고 아직도 유대 언론들이 국가사회주의 운동을 위협할 수 있고 우리의 방어 조치를 회피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의 인내심도 바닥날 것이고, 유대인들의 거짓되고 건방진 주둥이를 닥치게 할 것입니다!

(중략)

Im Uebrigen koennen unsere SA Maenner und Parteigenossen auch darueber beruhigt sein, dass eher als wir alle denken die Stunde des Endes des Roten Terrors gekommen sein wird.
SA와 당원동지 여러분! 빨갱이들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하지 마십시오! 적색 테러단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s wird auch der sozialistischen Presse nicht gelingen die Dinge ins Gegenteil umzuluegen, Wenn die Rote Fahne, in tuepischer Juedischen Frechheit wagt zu behaupten, dass unser Kamerad Maikowski und der Polizeiwachtmeister Zauritz von unseren eigenen Kameraden erschossen worden ist.
그 누가 볼셰비키 언론들이 유대인의 오만한 기사단인 적색 전선이 우리의 동지인 마이코프스키와 경찰관 자우리츠를 쏘아죽였을때 감히 우리 손으로 죽였다고 거짓말을 떠들어댄 것을 부정하겠습니까?

so muss ich sagen, diese Juedische Frechheit hat laenger gelebt als sie in Zukunft noch leben wird. Und wir werden den Herren vom Karl-Liebknecht-Haus bald Töne beibringen, die sie noch niemals vernommen haben.
이 오만불손한 유대인 놈들의 지금까지 산 날이 앞으로 살 날보다 많을 것이며 그리고 곧 카를 리프크네히트 당원 놈들을 평생 잊지 못할 만큼 두들겨 패 줄 것입니다!
1933년 2월 10일 나치당 집회 개최사[21]
메마른 대지가 비바람을 갈망하듯 단 한 사람을 원합니다. 단 한 사람! 민족이여 깨어나라! 폭풍이여 몰아쳐라![22]
Wir werden als die größten Staatsmänner aller Zeiten in die Geschichte eingehen oder als ihre größten Verbrecher.
우리는 역대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니면 역사상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는 때에 일기장에 쓴 말.[23]
게토를 가로질러 차를 몰았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모든 것을 상세하게 둘러보았다. 무엇이라 형용할 수가 없다. 인간은 하나도 없으며 짐승들 뿐이다. 때문에 이것은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외과적인 차원의 문제이다. 칼로 절단을 하되 아주 사정 없이 잘라내야 한다.
1939년 폴란드 유대인 거주지역에서.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전의 가장 큰 적은 '지식인주의'이다.
여론조사라는 것은 대상을 누구로 잡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지.[24]
Aus dem Generalgouvernement werden jetzt, bei Lublin beginnend, die Juden nach dem Osten abgeschoben. Es wird hier ein ziemlich barbarisches und nicht näher zu beschreibendes Verfahren angewandt, und von den Juden selbst bleibt nicht mehr viel übrig. […] An den Juden wird ein Strafgericht vollzogen, das zwar barbarisch ist, das sie aber vollauf verdient haben. Die Prophezeiung, die der Führer ihnen für die Herbeiführung eines neuen Weltkrieges mit auf den Weg gegeben hat, beginnt sich in der furchtbarsten Weise zu verwirklichen.

유대인들은 이제 총독부에서 루블린을 시작으로 동부로 추방되고 있다. 여기에는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없는 상당히 야만적인 과정이 사용되고 있으며, 유대인들 자신의 모습은 별로 남지 않았다. [...] 유대인들에 대한 형사 판결이 내려지고 있는데, 이는 야만적이지만 그들에게는 마땅한 일이다. 새로운 세계대전을 일으키겠다는 퓌러의 예언이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
1942년 3월 27일에 쓴 일기.
독일 선전방송 Die Deutsche Wochenschau의 1943년 2월 25일 651호 방영본[25]
Ich frage euch: Wollt ihr den totalen Krieg? Wollt ihr ihn, wenn nötig, totaler und radikaler, als wir ihn uns heute überhaupt noch vorstellen können?
묻겠다, 제군은 총력전을 원하는가? 만약 필요하다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완전하고 전면적인 전쟁을 원하는가?

Ich frage euch: Seid ihr bereit, mit dem Führer als Phalanx der Heimat hinter der kämpfenden Wehrmacht stehend diesen Kampf mit wilder Entschlossenheit und unbeirrt durch alle Schicksalsfügungen fortzusetzen, bis der Sieg in unseren Händen ist?
묻겠다. 제군은 이 땅(조국)의 군단으로써, 투쟁의 국방군을 총통과 함께 뒷받침하며, 어떠한 운명의 결과에도 굴하지 않고 결연한 의지로 우리가 승리를 거머쥘 때까지, 이 투쟁을 해나갈 준비가 되었는가?

Nun, Volk, steh auf, und Sturm, brich los!
지금이야말로, 국민들이여, 일어나라! 폭풍이여, 떨쳐 나가라!
1943년 2월 18일 총력전 연설.
민중은 그저 빵 한 조각과 왜곡된 자극적인 정보만 주면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수 있다.
빌헬름 2세 패배한 체제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가 최선을 다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이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라 성공적인 결과다.
빌헬름 2세의 사망 이후 독일 언론에 내린 보도지침.
괴벨스 최후의 연설
베를린 수비대여! 제군의 아내,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이 제군을 지켜보고 있다. 제군에게 그들의 인생, 운, 신변 그리고 미래가 달려있다. 제군이 제군의 임무를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제군이 그 임무를 매우 훌륭히 수행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진실의 시간이 마침내 도래했다. (중략)

나는 내 선전부 직원들과 베를린에 남을 것을 확언한다. 나의 아내와 아이들도 베를린에 있고 그들은 베를린에 남을 것이다. 나는 제국 수도에 대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실시할 것이다. 나의 행동과 생각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삶과 우리의 공통 적에 대한 방어를 위한 것이다. 우리 수도의 방어벽에 몽골의 폭풍은 반드시 부서질 것이다. 수도에서의 우리의 싸움은 국가의 향방을 결정짓는 결정적 전투가 될 것이다. 열성적인 수비대는 볼셰비키 놈들의 손에 제국의 수도가 함락되지 않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전투와 과업 앞에 굳건히 서있다. 우리의 목표는 국민의 자유와 다가오는 행복한 미래를 위한 제국의 사회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1945년 4월 21일 괴벨스 최후의 대국민 연설. 라디오 연설 중간 중간에 간간히 포성을 들을 수 있다.

6.1. 그의 말로 잘못 알려진 것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
실제로 괴벨스가 이런 말을 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으나 그의 대표적인 어록으로 유명하다.[26] 내용상 비슷한 말로는 이탈리아의 프로그래머 알베르토 브란돌리니가 2013년에 공표한 '개소리 비대칭성 원리(Bullshit asymmetry principle)'가 있다. #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출처 불명의 가짜 명언이나, 괴벨스의 어록으로 자주 인용된다.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의 배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준다.
괴벨스의 어록이라 하여 국내 언론에서 무수히 많이 등장하지만 출처는 없고, 외국에서는 이 말 자체가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누군가가 괴벨스의 명의를 도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도 강조되었지만 괴벨스는 선전을 진실과 진리를 다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신이 거짓말을 자주 하면 할수록 대중들은 그것을 믿게 되며 마침내 자기 자신도 믿게 된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버전이 등장하지만 괴벨스가 실제로 하지 않은 말이다. 미국 의회에서 발행한 서적 중 1958년 발행된 부분에서 처음 나온 말이며, 이것은 수십만 페이지의 웹사이트에 출처 없이 유포되고 있는 그에 대한 가장 큰 거짓말이다.

괴벨스는 언제나 선전이 진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27] 그의 연설과 작문, 개인적 일기 어느 곳에서도 위와 같은 발언을 찾을 수 없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거짓말임에도, 이것은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반복되어 선전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믿게 되었다. 즉, 괴벨스의 가짜 어록을 퍼뜨린 사람은 다소 기괴한 방식으로 자기 주장이 옳음을 증명한 것이다.
문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권총을 꺼내 든다.
괴벨스가 실제로 하지 않은 말이다. 이 또한 어디에서도 증거조차 발견된 기록이 없고, 근거 또한 있다고 보기 어렵다. 괴링이 한 말이라고 알려진 경우도 있으나, 사실은 한스 요스트라는 시인이 쓴 희곡에서 나온 대사다.

허나 나치 사상을 반영한 희곡이기도 하고 한스 요스트 본인도 그 알프레드 로젠베르크한테 문학상까지 받았을 정도로 열렬한 나치 지지자였던지라, 나치즘을 연구할 때 자주 활용되는 인용구이기도 하다.

7. 관련 서적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Ralf Georg Reuth)가 쓴 《괴벨스》[28]가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29]으로 국내 발간되어 있다.

원서 제목은 그냥 《괴벨스》인데, 국내판에서 괴벨스 뒤에 대중선동의 심리학이라 제목을 붙여서 제3제국의 선동 정책을 다룬 책인지, 심리학을 다룬 책인지 헷갈리게 만들어 놨다. 내용은 그냥 괴벨스의 전기다. 하지만 파울 요제프 괴벨스를 깊게 다룬 책 중에 거의 유일하게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선동 내용 중에 "예나에 이은 라이프치히를 공간적으로 가깝다" 식으로 번역한 사소한 오역[30]이 있지만 읽어볼 가치가 있다. 현재 나무위키 파울 요제프 괴벨스 문서의 상당 부분이 이 책이 출처다.

괴벨스의 선동 관련 내용은 《괴벨스 프로파간다》[31] 책을 참고해도 된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쓴 반(半) 자전적 소설 《미하엘[32] 역시 국내 발간되어 있다.

8. 대중매체

나치당의 선전, 선동을 담당하는 핵심인물이자 브레인이다 보니 출연이 잦은데, 괴벨스 본인말고, 괴벨스 특유의 선전, 선동 능력을 모티브로한 캐릭터들도 상당히 많다.

8.1. 영화

파일:wkrwjsaudqkfzlfl rhlqpftm.jpg

영화《 작전명 발키리》에서는 미국의 연극 배우 하비 프리드먼(Harvey Friedman)이 연기했다.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다운폴의 괴벨스 역을 맡은 배우 울리히 마테스보다는 싱크로율이 높은 편이며 괴벨스 특유의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잘 보여주었다. 작중 톰 크루즈가 연기한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톰 윌킨슨이 맡은 프리드리히 프롬과 함께 늑대굴에 가서 히틀러에게 발키리 작전 승인 결재를 받으러 온 중요한 장면에서 히틀러와 함께 있는 고위 인사들 가운데 하나로 잠시 등장했고 슈타우펜베르크를 중심으로 한 국방군 장교들의 쿠데타로 인해 체포될 위기에 처하지만 곧바로 살아있는 히틀러와 연결이 됨으로써 자신을 체포하러 온 레머 소령[33]에게 직접 전화를 바꿔 생존한 히틀러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레머는 죽은 줄 알았던 히틀러의 목소리를 듣고 반 멘붕에 빠지며 히틀러는 그 자리에서 레머에게 쿠데타 세력 구성원들의 생포를 명령하고 그렇게 쿠데타의 진압이 시작되므로 중요한 장면을 맡았다.

파일:다운폴 괴벨스.jpg

영화《 다운폴》에서 괴벨스 역을 맡은 배우는 울리히 마테스(Ulrich Matthes)다. 스크린샷을 보면 알겠지만 현실의 괴벨스와는 그렇게 닮진 않았다. 아래 부분은 여단지도자[34] 빌헬름 몽케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몽케:
* ... Herr Minister, wenn diese Männer nicht bewaffnen können, dann können sie nicht kämpfen. Sie sterben sinnlos.
* ... 장관님, 무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맞서 싸울 수 없습니다. 모두 개죽음을 당할 겁니다.[35]

괴벨스:
* Ich kann kein Mitgefühl empfinden. Ich wiederhole: Ich kann da kein Mitgefühl empfinden! Das Volk hat dieses Schicksal selbst gewählt. Ja, das macht für manche Leute ein Überraschung sein. Geben Sie sich keinen Illusionen hin. Wir haben das Volk ja nicht gezwungen. Es hat uns selbst beauftragt. Jetzt wird Ihnen eben das Hälschen durchgeschnitten.
* 난 그들(국민들)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단 말이오! 이건 모두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일입니다. 그래요, 어떤 사람들에겐 충격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당신은) 스스로를 속여선 안 될 일이지요.[36] 우리는 한 번도 국민들에게 우리를 뽑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국민들이 우릴 선택했으니,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겁니다.
파일:attachment/der_untergang.jpg
마지막 사진은 쌍따봉이 아니라 국민들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인해 목이 따일 것이라는 뜻이다.
한스 프리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증언한 바에 의하면, 괴벨스는 패망 직전 4월 21일 선전부 직원들과의 마지막 회의에서 "과거 국제연맹 탈퇴를 결정하는 국민투표에서 독일 민족의 절대 다수가 양보의 정치에 반대하고 명예와 모험의 정치에 찬성한 것, 즉 독일 민족 스스로가 현재와 같은 상황을 원했던 것"이라고 말했다.[37] 그리고 한스 프리체의 자서전에 의하면 같은 자리에서 괴벨스는 직원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부하가 되라고 강요한 적이 없으며, 나와 함께 일하려고 스스로 자원한 당신들은 곧 목이 잘릴 것이다."라 하고 비웃으며 나갔다고 한다.

영화상에서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친위대 안에서도 열렬한 히틀러 숭배자들이 배속되는 총통경호대 아돌프 히틀러(LSSAH) 출신의 친위대 소장인 빌헬름 몽케, 거기다 국민돌격대가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죽어가는 게 무의미하다고 했다가 저런 말을 들었다. 그야말로 그나마 남아있던 충성심마저 산산조각날 지경의 충격적인 장면. 마지막에 같잖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는 표정의 썩소를 짓는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에 의한 비극의 책임이 나치당만이 아닌 그들에 동의한 독일 국민 모두에게 있다는 씁쓸하지만 분명한 교훈을 남긴다.[38] 다운폴/패러디 항목도 참조할 것.

파일:maxresdefaultInglouriousBasterds sylvester groth.jpg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09년작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는 독일의 배우 질베스터 그로트(Sylvester Groth)가 연기했는데, 연출 자체는 잘 했지만 괴벨스와의 싱크로율이 그리 높지는 않으며 히틀러보다 키가 크기까지 해서[39] 리얼리티는 많이 떨어진다.

인도 영화 Gandhi to Hitler에도 나왔다. 인도 영화이다 보니 괴벨스를 포함한 독일인 캐릭터들을 모두 인도인 배우가 맡았다.

8.2. 게임

8.3. 소설

8.4. 만화

9. 평가

그는 결코 성급하지 않았다. 주도면밀하고 냉철했다. 얼음처럼 차가웠고 악마적이었다.
오토 야콥스, 속기사
지금까지도 나치당 내에서 악명이 높은 사람들은 당연히 히틀러, 괴링, 힘러, 괴벨스 정도인데[46], 여기서도 괴벨스는 유별나며 심지어 히틀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중 괴링은 우스꽝스러운 나치즘의 돼지 이미지가 강하고, 힘러의 악명은 학살을 저지른 것인데 그런 상황을 설계한 것이 괴벨스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히틀러는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악명이 높은 게 당연하지만, 괴벨스는 나치당 내에서도 손꼽히는 악마였다. 사실 괴벨스는 나치당 내 여러 유형 중에서도 워낙 특별한 유형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47] 괴링은 흔해 빠진 부패한 유형이고, 힘러 같이 광신적 충성심과 사명감에 불타 돌쇠처럼 기계적으로 나치에 충성한 인물은 한, 둘이 아니었다. 반면 괴벨스는 북독일 라인란트 출신 노동자 계층 출신이란 점에서 프티부르주아 출신 고등학교 중퇴자 히틀러와 통하는 면이 있었으며, 둘 다 반(反) 자본주의적이고 반(反) 권위적이며 현란한 선동가이자 연설가였다. 또한 괴벨스는 금발이고 키가 크며 건장한 모습이 대부분인 아리안족과는 달리 흑발에 키가 작고 발을 저는 연약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뛰어난 말솜씨와 교활함으로 자신의 장애를 극복했으며 자신의 출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그의 인기 비결이기도 했다. 괴벨스는 권위를 혐오했지만 추구했고 지성인 출신이지만 연설은 지성적인 언어를 쓰지 않았다.

괴벨스에 대한 책을 썼던 롤프 호흐후트는 스스로 열광했기에 타인을 열광시켰던 신도라고 했던 반면 요아힘 페스트는 최후까지 마키아벨리스트였던 자라고 했다. 괴벨스를 다룬 다른 작가들은 합리적인 선동가라든가 " 장애에 대한 보상을 총통 신앙과 세계관으로 대리 충족했다."는 다양한 평가가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괴벨스가 가진 그만의 능력을 절대로 무시할 순 없다. 남들과는 다른 장애를 갖고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과는 다른, 아니 오히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그만의 언변 능력으로 독일 국민들을 사로잡고 하나로 뭉쳤다. 이렇게만 보면 장애를 극복한 뛰어난 연설가로 평가받아야겠지만 문제는 그 뛰어난 능력을 나치즘과 히틀러를 위해 써먹었다는 점이다. 그의 재능만큼은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 천재성을 악하고 교활한 자가 갖게 되었을 때 어느 정도까지의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지 잘 보여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10. 여담

파일:노려보는 괴벨스.jpg
* 유대인 출신의 사진가 알프레드 에이젠슈타트(Alfed Eisenstaedt)[50]가 찍은 사진이 유명하다. 단, 이것이 에이젠슈타트가 유대인인지를 알기 전과 후의 사진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출처

11. 참고 자료

12.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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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파시스트들이 전쟁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파시즘이나 나치즘 등 전간기의 주요 파시스트들은 '전쟁'을 이데올로기적인 수단으로 여겼다. }}}}}}}}}

14. 외부 링크


[1] 박사 학위 논문: 빌헬름 폰 슈츠의 독일 낭만극 역사에 대한 기여 (1922) [2] 마그다 괴벨스가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괴벨스의 집에서 같이 살며 친아들 대접을 받았다. [3] 1분 27초 쯤엔 연설에 참석한 알베르트 슈페어도 보인다. [4] 당시 유럽에는 유대인 마을이었던 게토안에 유대인 전용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는데 초등학교 역시 그 전용시설 중 하나였다. [5] 당시 나치 유대인을 비하할 때 써먹던 레퍼토리 중 하나가 금발벽안의 게르만 여자를 사들이는 / 착취하는 음흉한 뚱뚱보 유대인 사장이었다. [6] 메트로폴리스에서 프레더를 연기했던 구스타프 프뢸리히(Gustav Fröhlich). [7] 상류사회 출신으로 친정과 전 남편 집안 양쪽을 통해 독일 상류사회에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히틀러가 독신이었으므로 괴링의 아내 에미 존네만과 함께 실질적인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 국민적으로도 알려져서 나치에서 이상적인 이미지로 독일 어머니나 주부를 대표해서 방송 연설을 하기도 했다. [8] 2019년 11월 30일 방송. 20세기 영상 매체 발명 후 기록된 영상들을 수집하여 역사의 뒷편에서 펼쳐진 대표적인 러브 스토리를 다룬 다큐멘터리. 32:30 부분에서 마그다와 괴벨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9] 당시 독일 공군은 항공기 승무원용으로 위 같은 밑단이 짧고 주머니 등 돌출부를 최소화한 비행복을 만들었다가, 이를 공군 전체의 전투복으로 확대 지급했다. [10] 바이에른 지방에 기반을 둔 부호 가문 출신이다. BMW의 최대주주였던 헤르베르트 크반트가 바로 하랄트의 이복형이다. [11] 마그다의 어머니 아우구스테 베흐렌트(Auguste Behrend)는 이 가족이 각각의 연속적인 아이들에 대해 H로 시작하는 새로운 아기 이름을 찾는 순수한 취미를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12] 영화 다운폴에서 마그다 역을 맡은 배우 코리나 하르포히는 이 장면을 찍은 뒤 큰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13] 1926. 6. 21.~2015. 8. 3. 하랄트의 이복형인 헤르베르트의 세번째 부인이다. 즉 형수-도련님 관계. [14] 제2선거구 [총리] 괴벨스 내각 출범. 1945.05.01 사망으로 궐위 [16] 다른 나치 독일 고위직의 1차 자료에는 알베르트 슈페어의 회고록 《기억 - 제3제국의 중심에서-》도 있다. [17] 시대순은 아니다. [18] 1934년 8월 베를린 루스트 가르텐 공원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하는 괴벨스. 그의 사진 중 가장 잘 알려진 사진 중 하나이다. [출처] 1차 출처 : Joseph Goebbels an Anka Stalherm am 17. 2. 1919, BA Koblenz, NL118/126 / 2차 출처 :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117 ~ 118p [20] 앞선 항목에 '무임 승차자', '면책 특권자'와 연계되는 문구로, 보장한 자유에 무임승차해서 체제를 조롱하고 뒤엎는 데도 민주적 방식으로 뽑힌 면책특권(국회의원)을 가지고 이용하고 있다는 뜻. [21] 이 연설이 있고 난지 정확히 한달도 안된 2월 27일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 터졌다. 방화범이 공산주의자라는 점을 빌미삼아 나치당은 독일 공산당 당원들을 마구잡이로 폭행, 체포하였다. 이후 치루어진 선거에서 나치당과 국가인민당이 과반 324석을 훌쩍 넘기는 340석을 얻었다. 이 기세를 몰아 히틀러는 수권법을 통과시켰고 7월 14일 정당신설금지법을 통과시켜 일당독재 체제를 완성했다. 워낙 절묘한 타이밍에 터진 사건이었기 때문에 나치 방화설도 있었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여 논쟁 중인 사안이다. [22] 원래 출전은 19세기 민족시인 테오도르 쾨르너이다. 괴벨스는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다. [23] 이 말은 진짜로 들어맞았다. 물론 후자로. [24] 그의 어록 중에서 현대에도 쓰이는 말들 중 하나. 여론 조작을 간단히 설명한 예라 볼 수 있다. [25] 본래 괴벨스의 총력전 연설은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배를 인정하는 동시에 연합국의 공세에 조국이 위험에 처했다고 역설하고 특히 전쟁에서 질 경우 모든 것을 잃는다고 강조한 후 독일의 전쟁 수행 의지가 떨어지고 있다는 연합국의 선전을 조롱하며 총력전을 촉구하는 걸로 끝난다. 하지만 651호 방영분은 앞의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배와 패배 시 겪게 될 참상 부분은 방영하지 않고 연합국의 오판을 조롱하는 부분시점부터 방영했다. [26]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이 "괴벨스의 어록"이라는 거짓 선동 또한 문장 단 한 줄로 해내졌으며,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 많은 증거를 가져와야 했다. [27] "우리의 투쟁과 선전은 하나의 최고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전의 기초로서 진실과 진리만을 취하는 것입니다." - 괴벨스 [28] 아마존닷컴 [29] 네이버 도서 [30] "1807년 예나 전투에서 패하고 독일이 나폴레옹 치하로 들어갔다가 1813년 해방 전쟁에서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승리로 독일이 나폴레옹 치하에서 독립한다. 상반된 사건의 시간적 연속성을 비슷한 사건의 공간적 연속성"이라 잘못 써놨다. 초판인쇄 후 2012년에 나온 쇄까지도 아직 수정이 안 되어있다. [31] 네이버 도서 [32] 네이버 도서 [33] 소위 나치 독일 전문 배우라고 할 수 있는 토마스 크레치만이 연기했다. 본인이 괴벨스 역할을 한 경력도 있다. [34] 국방군 소장급 계급이다. 영미권 계급으로는 준장계급에 상응한다. [35] 여기선 개념있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이 사람도 나치 전범 용의자란 걸 잊으면 안된다. 이 사람은 됭케르크 철수작전 당시 무장친위대가 영국 및 프랑스군 포로들을 대상으로 자행했던 보름하우트 학살 사건(Wormhaudt Massacre)에 연루된 사람이다. [36] 너도 이 체제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으니 불편한 진실들을 다 알텐데 이제 와서 착한 척하냐며 비꼬는 것이다. [37] 1933년 11월 12일 수권법 통과 이후 나치당 일당 체제에서 치러진 첫 총선을 말한다. 이때 연방 총선과 더불어 국제 연맹 탈퇴 국민 투표가 이루어졌고 독일 국민들은 이때 95.08%의 압도적인 찬성을 보냈다. 공산당의 주요 근거지 중 하나였던 함부르크 지방은 84%가 찬성했던 반면 동프로이센 선거구에서는 선거인의 97%가 찬성했다. [38] 단, 괴벨스는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것이, 독일인들이 모두 나치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고 나치는 이런 반대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괴벨스의 저 말은 물타기 수준의 핑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독일인 민중 절대다수가 휘둘리지 않고 저항했으면 그런 일도 없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이 교훈은 전후 연합군이 독일인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사항이기도 했다. 연합군이 주도한 탈나치화 과정에서의 주된 내용으로 히틀러와 나치당을 지지하고 그들의 침략전쟁을 지지했으며, 약자에 대한 학살에 동조 혹은 묵인했던 사실을 탈나치화 노역과 함께 가장 강조했다. 그리고 바로 이 교훈을 독일인들은 잊지 않고 있으며 그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고 히틀러와 나치를 증오하는 이유이다. [39] 실제 괴벨스는 확실히 히틀러보다 키가 작았는데 히틀러 역할을 맡은 배우 마틴 부트케보다 키가 무려 6cm나 더 커서 히틀러와 괴벨스가 둘이 같이 서있는 것을 보면 매우 어색하다. [40] 현실에서 괴벨스와 함께 히틀러의 후계자였던 카를 되니츠는 여기 붙었다. [41] 히틀러가 죽기 전에 저 넷 중 후계자를 지명하긴 하는데(누구인지는 플레이어의 선택) 당시 히틀러는 암살 미수의 후유증으로 중태에 빠졌다가 겨우 깨어나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연설장에서 느닷 없이 SA 에른스트 룀을 찾는 대사가 백미. [42] 2대 총통은 마르틴 보어만이다. [43] 헤스는 그가 같은 게르만 민족 국가뭐?인 미국에 충성해서, 힘러와 괴링은 유진의 사업에 투자하려고, 에른스트 룀은 자기 취향( ...)이라서 [44] 괴벨스 본인은 국민과 여론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으나, 국민 그 자체를 여론전의 수단으로 쓰는, 쉽게 말해 21세기 민주국가 특유의 갈라치기를 상상조차 못했다고... [45] 고대 화성인들과 마법소녀들에게 쓰러진 악의 제국 가리쿠스 제국의 간부중 하나. [46] 나치 독일의 실질적인 2인자라고 볼 수 있는 마르틴 보어만은 인지도가 매우 낮다. [47]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괴벨스의 특별함은 고학력이 아니었다. 나치당 내 초기 멤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베를린 훔볼트 대학 법학 박사 빌헬름 프리크, 뮌헨 공과대학 공학박사 프리츠 토트, 엔지니어 출신 고트프리트 페더, 변호사 한스 프랑크, 약사 출신 그레고어 슈트라서, 하버드 출신 한프슈탱글, 건축가 로젠베르크와 알베르트 슈페어, 농학 석사 출신 힘러와 발터 다레, 언론인 발터 풍크, 폰 쉬라흐, 루돌프 헤스 등 의외로 대부분이 번듯한 집안 출신에 대학 이상의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48]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악마는 한 쪽 다리가 인간의 다리와 발이 아닌 염소의 다리와 발굽으로 되어 있어 절뚝거리며 걷는다고 믿었다. 절름발이가 범인이라는 그 유명한 반전도 사실은 여기서 기인한 것. [49] 프랑크 헨젤이라는 사람이 옮겨놓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50]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상징하는 V-J Day in Times Square를 찍은 사진사다. [51]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프리체는 나치당 법률 연구회에 가입하는 등 나치즘을 열렬히 지지했던 것은 맞지만 나치당을 지지했을 뿐 전범행위에 대해선 가담한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