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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rnst-Heinrich Schmauser 에른스트-하인리히 슈마우저 |
출생 | 1890년 1월 18일 |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작센주 호프안데어잘레 | |
사망 | 1945년 2월 10일 (향년 55세)[1] |
소련군 점령하 브레슬라우 근교 알텐로데 | |
복무 | 슈츠슈타펠 (1930년 ~ 1945년) |
최종계급 |
슈투름압타일룽 돌격지도자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대장 (상급집단지도자) 질서경찰 대장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주요 서훈 | 철십자 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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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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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펠릭스 슈타이너, 에른스트 하인리히 슈마우저[2], 콘스탄틴 카머호퍼. |
2. 초기 행적
호프 안데잘레에서 실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슈마우저는 1911년 10월에 바이에른 제11 보병연대에 입대해 그 후 하노버의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서부전선에 종군하여 3번의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1919년 2월에 중위 계급으로 군에서 나와 이후 은행원으로 1933년까지 일했다.3. 나치당 행적
1930년 3월 1일에 나치당에 입당하면서 동시에 돌격대에 입대한 슈마우저는 10월 14일에 친위대로 이적하여 10월 15일에 친위대 대령이 되었다. 12월 15일에는 제7 친위대 연대의 지휘관이 되었는데 1932년 7월에 제20 선거구(라이프치히)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1932년 11월 선거에서 낙선했다. 1932년 8월 27일에 제16 친위대 지구지도자가 되어 10월 6일에 친위대 상급대령으로 승진한 슈마우저는 1933년 7월 3일에 친위대 소장으로 진급했다. 1933년 11월에 제24 선거구(오버바이에른 슈바벤)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1933년 7월 15일 프리드리히 예켈른의 후임으로 친위대 상급지구 남부지구 지도자가 되어 9월 15일에 친위대 중장으로 승진했다.1934년 6월에 일어난 장검의 밤 사건에서 친위대 국방군 연락장교가 되어 7월 1일에 에른스트 룀의 처형을 명령받았던 테오도어 아이케와 미하엘 리페르트와 동행하여 룀이 감금되었던 뮌헨의 슈탄델하임 형무소를 방문하였다. 1936년 3월 29일에 선거구 제26구(프랑켄)에서 국회의원으로 다시 선출되었다. 4월 1일에 신설된 친위대 상급지구 마인강(본부 뉘른베르크)지구 지도자가 된 슈마우저는 1937년 4월 20일에 친위대 대장으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