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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7 09:28:44

1942년

1939년 1940년 1941년 1942년 1943년 1944년 1945년
연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1950년대 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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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1942년
대한민국 24년
단기 4275년
불기 2486년
간지 신사년 ~ 임오
주체 31년
민국 31년
일본 쇼와 17년
( 황기 2602년)
만주국 강덕 9년
베트남 보대 17년
파시스트 기원 XX ~ XXI
이슬람력 1360년 ~ 1361년
히브리력 5702년 ~ 5703년
페르시아력 1320년 ~ 1321년
에티오피아력 1934년 ~ 1935년
인류세력 11942년
로마 숫자 MCMXLII
탄소측정연대 BP[1] 8년

1. 개요2. 사건
2.1. 실제2.2. 가상
3. 탄생
3.1. 실제
3.1.1. 1월3.1.2. 2월3.1.3. 3월3.1.4. 4월3.1.5. 5월3.1.6. 6월3.1.7. 7월3.1.8. 8월3.1.9. 9월3.1.10. 10월3.1.11. 11월3.1.12. 12월3.1.13. 일자불명
3.2. 가상
4. 사망
4.1. 실제4.2. 가상
5. 히트작
5.1. 영화
6.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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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럽 태평양 전선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광풍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것과 동시에 모든 추축국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해.[2][3]특히 동부전선에서는 나치 독일이 모스크바를 코앞에서 놓쳤지만 청색 작전을 발동, 카프카스와 볼가 강까지 도달하는 등 추축국의 최대판도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소련군은 레닌그라드를 사수하고 스탈린그라드도 지켜내었고, 그리하여 이 해의 후반부에 다다르면 점점 독일의 우세가 약해지기 시작한다. 태평양에서는 미군이 특공대를 보내 도쿄 한가운데에 깜짝 공습을 가하는 한편 일본의 네임드 항모 네 척을 함재기를 가지고 치열한 전투 끝에 가라앉혀서 태평양의 제해권을 잡음과 동시에 항모의 시대를 열었다. 이것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주도권은 연합국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던 한반도에서는 8대 조선총독 고이소 구니아키가 집권하면서 징병제가 실시되어 무고한 한국 청년 및 소년들이 강제 징집 및 징병되어 전쟁터로 끌려갔고 부녀자 및 처녀나 소녀들도 정신대 및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전락당하는 비통을 겪기도 했던 격랑의 해였다. 특히 위안부를 지속적으로 부정하는 문제는 오늘날 한국 일본의 갈등거리로 남아있다.

본해 개최될 예정이었던 1942 FIFA 월드컵 당연하게도 취소된다.

2. 사건

2.1. 실제

2.2. 가상

3. 탄생

3.1. 실제

3.1.1. 1월

3.1.2. 2월

3.1.3. 3월

3.1.4. 4월

3.1.5. 5월

3.1.6. 6월

3.1.7. 7월

3.1.8. 8월

3.1.9. 9월

3.1.10. 10월

3.1.11. 11월

3.1.12. 12월

3.1.13. 일자불명

3.2. 가상

4. 사망

4.1. 실제

4.2. 가상

5. 히트작

5.1. 영화

6. 달력

1월 2월 3월
1 2 3 1 2 3 4 5 6 7 1 2 3 4 5 6 7
4 5 6 7 8 9 10 8 9 10 11 12 13 14 8 9 10 11 12 1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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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월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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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월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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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월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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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efore Present [2] 2차대전에서 가장 치열했고 가장 결정적이었던 전투들은 대부분 이 해에 몰려 있는데, 대서양 전투에서 U보트가 전쟁으로 가장 큰 전공을 올린 해가 1942년이고, 일본과 미국 해군 전력 차가 잠시나마 가장 좁혀진 시점이 1942년이며, 나치군이 가장 모스크바에 근접했던 시점도 1942년, 일본에 처음으로 미군 항공기가 들어온 시점도 1942년, 롬멜을 비롯한 아프리카 군단이 가장 혈투하던 시점도 1942년, 중국 전선이 최악으로 치달았던 시점도 1942년이었다. [3] 하지만 이와 동시에 추축국의 운명이 결정되었는데, 독일은 6월 28일을 시점으로 청색 작전을 발동해 캅카스를 향한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고, 이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캅카스를 점령하기 위한 A집단군과 그들의 후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스탈린그라드로 향하는 B집단군으로 나뉘며 스탈린그라드 전투라는 최악의 시가전으로 정예군 소모를 강요당했다.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소련의 반격으로 파울루스의 6군이 포위당해 전멸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동부전선의 공세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겨버린다. 한편 아시아에서는 미국이 진주만 공습을 당한지 단 6개월 만에 미드웨이 해전으로 일본의 항공모함 4척을 완전히 침몰시켜버리며 태평양 전선에 대한 공세능력을 궤멸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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