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3 11:51:37
}}}}}}}}} ||
[clearfix]
|
알베르트 마리아 포르스터 (Albert Maria Forster)
|
나치 독일의 정치인, 친위대
대장이다.
2. 초기 행적
형무소 소장이던 부친아래
바이에른 왕국의
퓌르트에서 태어난 포르스터는 학교졸업 후 은행에서 일하다가
1923년
11월 7일에
나치당에 입당해
뮌헨 폭동에 참가했지만 폭동 실패 후
나치당이 해체되자
율리우스 슈트라이허와
헤르만 에서가 주동한 대독일민족 조합에 가입했다.
1925년
2월에
나치당을 재건중이던
히틀러와 처음 만난 포르스터는 나치당의 반유대주의 신문인 <슈트르머>의 편집기자가 되었다.
1925년
4월 5일에
나치당에 복당한 포르스터는 나치당의 연설가로 활동했는데
1926년
5월 12일에 친위대에 입대해
1928년
2월부터
1930년
10월까지
뉘른베르크의 독일국가상업인 연합에 출납장으로서 근무했다.
1929년
12월에
함부르크의 친위대 지도자가 된 후
1930년
9월 14일에
나치당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나치당 국회의원단의 노동자부문 고문이 되었다.
1930년
10월 15일에 단치히 지구 지도자로 임명된 포르스터는
폴란드 침공후인
1939년
9월 20일에
히틀러,
하인리히 힘러,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와 함께 폴란드 점령지구의 통치를 담당하는 중요인물이었다.
5. 전후 재판과 최후
전후
1945년
5월 27일에
영국군의 포로가 된 포르스터는
1946년
8월에
폴란드로 인계되어
1948년에
폴란드에서 개최된 법정에서
학살과
전쟁범죄 혐의로 사형판결을 받고
1952년
2월 28일에
바르샤바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