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6: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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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정치인, 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
무장친위대 및
질서경찰
대장이다.
2. 초기 행적
프로이센 왕국의 슈벨테 출신인 뢰제너는 기술학교를 졸업한 후 전기 기사로 일하다가
1926년
11월 6일에
나치당에 입당하여 동시에 돌격대에 가입했다.
1929년에 친위대로 이적한 뢰제너는
1930년
11월에 아헨의 제73 친위대 대대에 배속되어
1933년에 친위대 중령으로 승진했다.
1933년
11월 12일에
나치당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뢰제너는
뒤셀도르프의 제20 친위대 연대지도자였는데
1934년
5월 12일에 친위대 대령으로 승진하여
9월부터 동프로이센의 제61 친위대 연대지도자가 되었다.
1936년
9월 13일에 친위대 상급대령으로 승진해 친위대 상급지구 오스트 참모장이 되었다가
1938년
11월 1일부터 라인지구 참모장으로 일했다.
1940년
1월 24일에 친위대 소장 겸 경찰소장으로 승진한 뢰제너는
2월부터 질서경찰 소속으로 일하여
3월에 비스바덴의 보안경찰 및 친위대 감찰관으로 임명되어
5월까지 일한 후
6월 18일에 친위대 상급지구 라인 지휘관,
7월 24일에 라인지구 친위대 및 경찰고급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1941년
11월 9일에 친위대 중장 및 경찰중장으로 승진한 뢰제너는
11월 24일에 친위대 상급지구 아르펜란트 지도자 및 현지의 친위대 및 경찰고급지도자로 임명되었다가
1944년
7월 1일에
무장친위대 대장계급이 주어져
8월 1일에 친위대 대장 및 경찰대장의 계급으로 승진했다.
1944년
10월에는 유격대 토벌작전의 부대참모장으로 임명되어
1945년까지 일했다.
4. 전후 재판과 최후
전후
오스트리아로 도망갔던 뢰제너는
영국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된 후, 유격대원의 처형혐의로
유고슬라비아로 보내져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아
1946년
9월 4일에
교수형이 집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