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9e3039><colcolor=#fff> 라트비아 국가위원회 위원장 루돌프스 방게르스키스 Rūdolfs Bangersk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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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8년 7월 21일 | |
러시아 제국 리보니아현 리가 | ||
사망 | 1958년 2월 25일 (향년 79세) | |
독일 올덴부르크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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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블라디미르 사관학교 니콜라예프 참모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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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군인 | |
복무 |
러시아 제국군 라트비아군 친위대 (1943~1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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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계급 | 무장친위대 중장 | |
참전 |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내전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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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내역 | 철십자 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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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트비아의 군인, 친위대 무장친위대 중장2. 초기 행적
러시아 제국 라트비아 지역에서 태어난 방게르스키스는 부모가 루터파 기독교의 라트비아인이었다. 1895년 10월부터 1899년 7월까지 리가 하사관 훈련대대에 지원한 방게르스키스는 1901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관학교를 졸업해 제93보병연대에 편입되어 1904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다.3. 제1차 세계 대전
1914년에 니콜라예프 참모학교 장교과정을 수료한 방게르스키스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제31군단 참모부의 장교, 제1 우스티 드비나 라튀시대대장으로 종군하며 1918년 3월까지 제17시베리아저격연대장을 지냈다.4. 러시아 내전
러시아 내전당시 예카테리나에서 백군에 참여한 방게르스키스는 1919년에 소장으로 진급해 1919년 3월부터 제8우핌군단장, 제6우핌군단장, 우핌집단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그러나 적군에 밀려 퇴각한 그는 1920년 3월에 제3시베리아군단의 우핌저격사단장으로 있었지만 부대가 적군에게 격파당하자 몽골을 경유하여 하얼빈으로 달아났다. 그 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조선을 경유하여 상하이에 머무른 방게르스키스는 1921년에 일본의 기선인 야마토마루호를 타고 라트비아에 귀국했다.5. 라트비아군
방게르스키스는 독립한 라트비아군에 입대해 1924년 2월부터 제1크루젬사단장, 1924년 12월부터 1925년까지, 그리고 1928년 1월부터 3월까지 라트비아 전쟁장관을 지냈으며 이후 1937년 퇴역하기 전까지 여러 사단을 전전했다.6. 제2차 세계 대전
퇴역 후 타일제조회사에서 일한 방게르스키스는 라트비아가 소련에 합병되자 나치 독일로 달아나 나치에 협력했다.1943년 3월부터 친위대 소장으로 SS 라트비아인 의용군단 총감으로 취임한 방게르스키스는 라트비아의 유대인 학살에 관여하기도 했다. 1945년 2월 20일부터 6월 1일까지 그는 포츠담에서 라트비아 국가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냈는데 6월 21일 영국군에게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