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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Karl Edmund August Genzken 카를 에드문트 아우구스트 겐츠켄 |
출생 | 1885년 6월 8일 |
독일국 홀스타인주 프레츠 | |
사망 | 1957년 10월 10일 (향년 72세) |
독일 함부르크 | |
복무 | 슈츠슈타펠 (1933년 ~ 1945년) |
최종계급 |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중장 (집단지도자)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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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치 독일의 군의관이다.2. 초기 행적
홀스타인 주의 프레츠에서 태어난 겐츠켄은 고등학교졸업 후 튜빙겐 대학, 마르부르크 대학, 뮌헨 대학, 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1915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1912년부터 1919년까지 독일 해군에서 군의장교로 근무한 그는 잠수함 의무국에서 종군하며 빌헬름스하펜에서 근무 후 종전이 되자 고향인 프레츠로 돌아와 1934년까지 의사로 일했다.3. 나치당 입당
1926년 7월 7일에 나치당에 입당한 겐츠켄은 1933년 11월 5일에 친위대에 입대했다. 1934년에 독일 국방군 부속 예비사관으로 베를린 병원에서 1년간 근무한 후 1937년 2월 1일에 친위대 해골부대의 지휘관이 되었다.4. 생체실험
테오도어 아이케가 친위대 해골부대 겸 강제수용소 총감으로 취임하자 겐츠켄은 의사장이 되었다. 겐츠켄이 담당한 임무는 수용소 인원의 치료로, 명목상으론 의료행위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론 의약품을 빼돌려 사복을 채우고 유전질환 치료라는 이유로 수용소에서 강제불임수술을 시행하기도 했다. 1939년 가을부터 1940년까지 해골사단 위생부에서 일한 겐츠켄은 패전까지 무장친위대 위생부장관 겸 강제수용소 인체실험 책임자였다.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장티푸스 치료실험으로 1943년에 친위대 중장 및 무장친위대 중장으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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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친위대 중장 겐츠켄 |
5. 전후 재판과 최후
재판에 회부된 겐츠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