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9 12: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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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초기 행적3.
나치당 입당4. 친위대 입대5. 전후 재판과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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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정치인,
슈츠슈타펠
대장.
2. 초기 행적
독일 제국의 바덴 대공국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난 케플러는
1901년부터
1905년까지 칼스루에 전문학교를 다니다가
1903년부터
1904년간 1년 한정으로 육군지원병이 되었다.
1905년부터
1910년까지 단치히 공업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1910년에 예비역 소위가 되었다.
1911년부터
1922년까지 바덴에 있는 화학공장에서 주임기사로 일한 케플러는
1921년부터
1933년까지 바이에른 주 오벨바하의 화학공장 공장장으로도 일했다.
1927년
2월에
나치당에 입당한 케플러는
1932년부터
히틀러 전속의 경제고문 상담역으로 일하며 <경제문제 연구위원회>를 설립했다.
1933년
3월 5일에 바덴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케플러는
1933년
1월 4일에
아돌프 히틀러와
프란츠 폰 파펜과의 사이를 중재했다.
7월에 케플러는 경제정책 전권위원으로 임명되어
1934년까지 일했는데 동시에 나치당 전국지도부 경제정책 과장으로도 임명되었다.
4. 친위대 입대
1933년에 친위대 대령계급으로 친위대에 입대해 친위대 전국지도자 개인참모부에서 명예지도자가 되어 친위대 전국지도자 모임을 주재했다.
1934년에 석탄, 석유 주식회사 감독대표로 일하며 후에 군수산업의 감시역도 맡은 케플러는
1935년에 친위대 소장이 되어 원료 및 공업유지관련 산업위원회 대표를 맡기도 했다.
1936년에 4개년 계획을 주도한 멤버이기도 했는데
1937년에 오스트리아 문제의 전권위원이기도 하여 빈 주재 독일대사관의 서기관으로도 일했다.
1938년에 외무성 특무차관이 되어 인접지역의 군수경제 일체화를 위임받은 케플러는
1942년
1월 30일에 친위대 대장으로 승진했다.
5. 전후 재판과 행적
독일의 패전기인
1945년
5월 10일에 체포된 케플러는
1947년에
뉘른베르크 빌헬름 가 재판에 회부되어
1949년
4월 14일에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1951년
2월 1일에 석방된 케플러는
1960년
6월 13일에 클레스프롬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