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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1:26:42

약한 것은 죄악

힘 없는 정의는 무능에서 넘어옴
1. 개요2. 예시3. 원인4. 오버도그마5. 약자의 최후6. 그래서 약한 것은 죄악인가?
6.1. 본질적 측면
7. 캐릭터로서8. 창작물의 사례
8.1. 번외 1: 강자는 진리8.2. 번외 2: 힘 없는 정의, 무능하고 약한 게 진짜로 해악이 되는 경우8.3. 반례: 약하지만 진정한 용기와 정의로운 마음, 뼈를 깎는 노력 등등으로 극복한 경우
9. 관련 문서

1. 개요

삶은 나약함을 용서하지 않아. 소위 '자비로움'이란 종교적 헛소리지 동정은 영원한 원죄야. 약자들에게 동정을 느낀다는 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지.”
오직 강자만이 약자들을 몰살시키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 영화 몰락, 방공호에서 식사 중인 요제프 괴벨스 아돌프 히틀러의 대화 中
약한 것은 단순한 무능을 넘어 도덕적으로 잘못됐다는 사상. 유의어로는 힘의 논리가 있지만 힘의 논리는 선악의 문제를 다루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약한 것은 죄악’이라는 사상은 더 극단적이라 볼 수 있다.

2. 예시

몇 가지 예로 일단 '명문대생/장교/공무원&대기업&전문직 종사자가 더 도덕적일 것이다.'나 '부자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더 도덕적일 것이다.'와 같은 선입견을 꼽아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사례는 현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 예로, 고문 기술자로 유명한 범죄자 이근안의 재판 과정에서 그의 깔끔한 필체를 본 재판관들이 '이런 바른 글씨를 쓸 정도로 학식 있는 사람이 고문과 같이 야만적인 행위를 했을 것 같지 않다'며 그에게 유리한 판단을 했다는 차마 믿기 힘들지만 엄연히 필기로 남아 있는 선례가 존재한다. 이뿐만 아니라 각종 범죄나 도덕적 지탄을 받는 행위에 대해 이런 식으로 지엽적인 요소만 보고 '이렇게 점잖은 사람, 또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이 설마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겠냐'는 식의 감성팔이 변호는 강한 것을 죄악시하는 예 못지않게 수두록히 찾아볼 수 있다.
일본 드라마 < 리갈 하이>의 변호사 코미카도 켄스케가 역설하는 문제점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 및 고정관념에 얽매여 맹신하는 경우나 다수결의 원칙을 곡해하여 다수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그것이 선하다거나 옳다고 주장하는 경우 역시 넓은 의미에서 강약약강에 가까운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정서 역시 각각의 사안을 논리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다수성이나 소수성, 또는 대상의 강함이나 약함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고 하는 점에서 강한 것을 죄악시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고, 단지 그 방향이 바뀌어 있을 뿐이라는 비판이 가능한 것이다.

역사 속 악인들의 대부분은 의외로 악과는 거리가 먼 외모를 가지고 있거나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보듯이 평범한 경우가 의외로 많고, 심지어는 가담자들이 학살이나 전쟁범죄에 가담한 후에 국제법이나 군법에 전쟁범죄로 인정되어 재판을 받아도 제대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 경우는 보통 원인이 가해자측의 책임전가 논리에서 나온 경우가 대다수로, 자신들은 상관의 명령대로 했을 뿐이며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고 부하가 자신의 의도를 확대해석했다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합리화를 해서 피해자에게 책임전가를 하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든 말빨로 빠져나간 유능한 악인들은 아무런 반성이나 뉘우침도 없이 현실 역사에서 천수를 누리다가 갔다.

3. 원인

유능한 악인들은 능력만으로 손쉽게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이나 야망을 이루기 위해 권력을 휘둘러 약자들을 이용하거나 희생시키며,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숙청하기를 반복한다. 더군다나 아무리 행동이 옳지 못해도 능력은 좋기 때문에, 단지 인성이나 행동이 단순히 반 인륜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권력을 가진 유능한 악인을 몰아내거나 쫓아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볼 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건 위 #예시 문단에 적힌 것처럼 현실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불의 혼란이 판을 치는 현실 속에서 약자들끼리나마 뭉쳐 아나바다를 실천하거나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처럼 해 보는 등으로 상처를 갖고 있는 서로를 위로하며 물건을 공유하면 좋겠지만 실상은 자기 먹고 사는 문제에만 급급하다 보니 이웃을 멀리하거나 돈을 악착같이 벌려고 하기도 하고, 약자들끼리 만날 수밖에 없으면 서열을 나누거나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힘이란 상대적이므로 약자들에게서도 위아래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강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기도 하며, 욕망이 없어도 악은 악으로 처단하다가 닮아 버리기도 하고, 어떤 약자가 같은 약자인 자기 편에 안 낀다는 이유만으로 그 약자를 적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흉보면서 닮는다는 속담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선행을 실천할 때 의로운 일을 이루는 자는 불공평하게도 불행해지며 사회에서 철저하게 외면되거나 배제되어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상에서처럼 현실에서 선행을 실천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한 선행 때문에 도와주고 누명쓰기 같은 억울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놓이며, 결국에 결말이 매우 나쁘거나 일생 전체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기에 제일 위험하고 무모한 행동이자 쓸모없는 짓임을 삼척동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으며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나 어른의 사정을 사회를 살아가다가 알게 되어도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묵인해서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출세지향적인 사고방식을 주입한 바람에 자기중심적인 사고관을 지녀 성장한 아이들에게 올바른 인성을 가지게 하는 것은 이런 주입식 사고방식에 오래 노출되어버린 이상은 어렵다. '엄친아', '엄친딸'이 거저로 나온 게 아니며, 남을 누르고 내가 성공해 사는 것만 가르친 나머지 전인교육은 등한시한 오점은 피할 수 없다.

약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그 범죄자가 속한 특정한 사회적 약자 계층 혐오와 연결되는 역사깊은 경향이 존재한다. 이런 논리에서는 약자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악한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면 이민자 혐오, 미국에서의 흑인 혐오, 산업혁명 시기 도시빈민 혐오와 같은 것들이 있으며 18-19세기 즈음의 영국에서는 도시빈민들이 구원되지 못할 죄악의 집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현실의 수사기관들은 의인들을 실적 올리기 용도로 뽑아먹기만 하고 의로운 일을 이루다가 설령 목숨을 잃게 되었어도 그 가족이 평생 받는 어마어마한 고통에는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으며 대부분의 대중도 금세 뇌리에서 지워버리거나 무시하기 일쑤다. 이 문제는 생존자 편향으로도 설명된다.[1] 제 몸을 상우는 걸 감수해서라도 정의를 실천하느냐,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걸 직접 두 눈으로 보더라도 무시하고 조용히 지나가느냐는 예로부터 모든 나라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현재도 다름없이 여전히 지속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사회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제적 사회적 뒷받침이나 일말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 단순히 이론적으로 협행을 논하는 데에만 그친다고 하면 이러한 논쟁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영웅이 악인을 심판하는 내용을 담은 권선징악 형태의 창작물들이 계속돼서 만들어질 것이다.

재미있게도 사회에서 약자 배려가 많아질수록 이에 반발해 약자에게 강한 풍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각종 소수자 보호와 복지 정책이 많이 등장할수록 반대편에 선 대다수가 역차별을 주장하며 반대하는 것 등이 그 예시. 현실에서 사상을 가진 사람은 소수자 보호를 위하는 최소한의 복지정책 등도 다수를 역차별하는 것으로 여기며, 강함을 유능함과 선함의 증거로, 약함을 무능함과 악함의 증거로 본다.

' 언더도그마', ' 강강약약' 문서에 적힌 악용/오용 문제 때문에 소위 ' 감성팔이'나 ' 무임승차'의 폐해를 겪어 염증이나 피로감, 거부감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정치 성향과는 별개로 언더도그마를 아예 극혐하는 수준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늘었다. 사회에 만연한 약자 혐오가 확대재생산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사회적 약자들의 막장 행각을 비난하는 글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널리 퍼지고 있다. 물론 이 글들의 대부분은 확인할 수 없으며, 검증되지 않았고, 주관적, 개인적 경험으로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의 막장행각이 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러한 글이 널리 공감을 얻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가난 혐오, 약자혐오가 팽배한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혐오로 말미암아 가난한 자들이 더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인식과 고아는 범죄를 많이 일으킨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이 과거부터 존재했기에 요즘에 만들어진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그저 감정에 호소하거나 단순관찰 결과, 추론을 근거로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고아 중에는 범죄자가 많다는 주장이 그러했다.[2] 고아이므로 사랑을 못 받기에 스토킹 범죄를 저지르고, 그 예시로 김유정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예시이며 모든 고아가 사랑을 받지 못해 애정결핍에 빠져 범죄를 저지른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람은 너무나도 다양해서 부모가 있든 없든 아무런 생각이 없는 아이가 있는 반면, 부모에게 크게 기대하는 아이도 있기 때문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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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버도그마

특히 2010년대 이후로 가난 혐오와 맞물리면서 일각에서는 언더도그마를 비판하기 위해 가난 = 악, 부자 = 선이라는 \'오버도그마(Overdogma)', \'탑도그마(Topdogma)' 같은 조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 수평 폭력' 개념과는 구별하여야 한다. '수평 폭력'은 강자가 다른 강자에게, 약자가 다른 약자에게 저지르는 폭력이며 강자나 기득권이 무조건 더 선하다고 믿는 개념이 아니다.

'언더도그마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언더도그마' 개념의 오남용 사례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강자 쪽에 명확히 잘못이 있음을 지적받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책임과 비판을 희석하기 위해 '언더도그마를 경계하라'고 양비론으로 물타기를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수평 폭력'보다는 (가칭) '오버도그마' 또는 '탑도그마'로 해석하는 쪽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언더도그마에서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선과 악은 가난과 부유함과 상관이 없다는 점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언더도그마를 비판하면서 자신들도 똑같이 누구(가난한 자)는 악이고 누구(부자)는 선이라는 극단적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행동을 가지고 판단해야지, 단순히 돈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다. 어느 쪽이건 적절히 알아서 해석해 받아들이는 최소한의 융퉁성마저 없이 그대로 심취해버리면 현실성 없는 소아병적인 사상밖에 안 되는 것 또한 동일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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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약자의 최후


' 힘 없는 정의는 무능'이란 언록이 있듯이 몇몇 위인들의 대표적인 어두운 면이기도 하다. 윈스턴 처칠은 "평화는 강자의 특권이며, 약자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안토니오 무치와 엘리사 그레이는 세계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하고도 가난해서 특허를 지원하지 못했으며, 결국 돈과 명성을 겸비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그 업적을 가로채는 바람에 무치와 그레이의 노력은 그들의 살아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다. 한편 벨은 우생학에 심취해 있어서, 장애인들에게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을 설파하기도 했다.[8]

6. 그래서 약한 것은 죄악인가?

개개인의 도덕적 가치관에 따른 견해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우선 현대 법치 사회의 보편적인 도덕 관념으로 보면 약한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애초에 특정한 개념에 대해 선악을 부여하는 행위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성품과 특성에 따라 선악을 나눌 수 있다는 사상은 덕윤리에서 기반한 것인데, 현재 덕윤리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으며 일부는 덕윤리가 윤리학에서 가지는 위상을 의심하기도 한다. 자세한 것은 윤리학 문서 참조.

윤리적 측면을 차치하더라도 '약한 것은 죄악'이라는 논리는 그 모호함 때문에 근거를 뒷받침하지 못한다. '약하다'라는 개념은 결국 상대적인 것으로, 비교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학적으로도 이런 주장은 타당한 논거로 인정받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든 모든 면에서 강하거나 약할 수는 없으니, 결국 진정한 강자와 약자는 존재할 수 없다.

강자가 있으면 약자도 존재하는 법이다. 강함과 약함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절대적인 죄악이 있을 수가 없다. 사실 이런 극단주의적 논리는 현실에서 정말 진지하게 신봉되는 사상이라기보다는 창작물에서 흔히 사용되는 악역의 클리셰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창작물에서도 대체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악역들의 말로가 어떨지 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창작자들도 이런 아전인수식 주장을 좋게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보통 이런 주장을 하는 캐릭터들이 되려 자기가 박살날 때 "아, 내가 약해서 박살나는구나. 내가 죄인이고 내가 다 잘못됐다."라고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9] 보통 "이럴 수가! 내가 이런 하찮고 하등한 녀석들에게 당한다고? 말도 안 돼! 이럴 순 없다!"라고 현실부정하거나, 아니면 살려달라고 찌질대거나, 악행으로 인한 대가를 치를 때가 닥치자 피해자에게 "너가 잘못을 할 만한 이유가 있어서 욕을 먹은 것이다"라는 식으로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며 누명을 씌워서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자 탓으로 떠넘기려고 하다가 주인공 일행이 선역이면 쓰레기를 보는 눈과 함께 끔살당하거나 끌려가는 식으로 추하게 퇴장하고, 완벽한 선역이 아니라면 아예 말조차 끝내지 못하고 인격 자체를 깡그리 무시당하는 조롱을 들으면서 쓰레기보다도 못한 하찮은 개먹이나 꼭두각시 취급을 받으면서 죽은 뒤에도 세계관 내에서 입만 산 무뇌아나 맹인 취급을 공공연히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에서도 홀로코스트 전쟁범죄 가담자들이나 학교폭력 가해자들과 그들을 올바르게 크도록 도와줘야 하는 가해자의 막장 부모나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교사들이 이런 잘못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10] 즉, 대부분의 경우는 정말 그런 논리를 신념으로써 엄수한다기보다는 그냥 자기 힘에 취해서 날뛰는 삼류 악당에 가깝다.

삶은 나약함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긴 히틀러는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베를린 공방전 당시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한 게르만 민족이 저열한 슬라브 족속들에게 지속적으로 패전하자 독일 민족은 패배자니 살아남을 가치가 없다느니, 독일 민족은 약한 걸로 판명되었어. 나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없다는 등의 망언을 남기며 독일 지배하에 있는 모든 영토에서 사회 기반 시설을 포함한 독일의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약한 것은 죄악을 넘어서서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는 주장을 했고, 그에 따라 슬라브 족속에게 패배하는 나약한 게르만 민족은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낸것으로 보아 언행일치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똑같은 독일 민족인 자신은 훌륭한 지도자라며 예외처리를 한 것을 보면 그냥 죽는 순간까지 정신을 못 차린 것.

애초에 인간이 원시 시절부터 어떻게 살아남아 와서 현재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인간은 다른 야생동물들에 비해 힘도 약하고, 피부도 튼튼하지 못하며, 임신 기간도 10개월로 매우 길어서 번식력도 낮은 등 생태계에서 너무나 불리한 조건을 가진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고유의 장점인 높은 지능과, 유용한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손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그것을 무기삼아 살아남았다. 만약 인류가 이 따위 개똥철학을 진리랍시고 수용한다면 인간은 모두 악한 존재이며, 이런 논리를 찬양하는 자도 역시 인간일 테니 그 역시 결국 악한 존재라는 결론이 나오고 만다.

게다가 강함/약함은 사람마다 선천적으로 다르게 타고나는 것이며, 이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후천적인 노력으로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약함을 기반으로 시작한 사람은 강함을 기반으로 시작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노오력을 해야 한다. 자의적인 선택도 아닌 특성 때문에 누구는 선천적으로 죄인이라거나 죄를 벗기 위해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불평등하고 억울한 일이다. 기독교에서 원죄를 주장하긴 하지만, 이마저도 "사람마다 평등하게 죄인이다."이지 " 누구는 유죄인데 누구는 무죄이다."가 아니며, 죄를 씻는 법도 '믿음'이지 의지드립이나 노오력이 아니다.

실용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약한 것이 죄악이라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을 인정하면 곧 강도, 살인 등 힘의 우열 때문에 일어나는 범죄들에 대해 '당한 놈이 나쁜 것'이라는 논리 또한 인정되는 것이며,[11] 국가 단위로 이런 논리를 수긍하면 법치주의의 근간이 무너지고 무법지대로 전락하는 꼴이 된다.

더군다나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절대적인 힘은 무조건 좋은 결말을 맞이한 것이 아니었다. 이 경우 마지막에 가서는 지배층의 절대 부패를 불러왔기에 결국 힘을 올바르게 쓰지 못한 나라들은 민중들에게 온갖 패악이나 나라의 사회 구조에 대한 혐오와 실망감, 지배계급을 향하는 증오와 불신만을 남기다가 스스로의 파국을 불러일으킬 전쟁이나 피지배 계급의 반란 또는 대다수인 민생들의 분노와 실망감 요구를 반영한 혁명이나 개혁을 통해서 버티지 못해 멸망하거나 무너지고 말았다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한다.

그럼 강자가 힘으로 눌러버리면 그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으나, " 다구리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이 약자의 머릿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면 그 어떤 강자도 차마 버틸 수가 없다.[12] 강자든 약자든 목숨은 한 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학교폭력을 봐도 알 수 있듯, 약한 학생을 물리적이나 정신적으로 가해를 입힌 학생은 증거가 있고 세상에 알려지면 졸업하지 못해 징계처분 받고 퇴학당한다. 이처럼 사람은 어떤 힘을 지녔든간에 신뢰를 쌓고 인정을 받아야 나름 평탄하게 살 수 있는데, 역으로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사회적 매장을 당한다면 그 힘은 오히려 무용지물이 된다. "힘 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라는 말도 이를 반증했다고 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북한의 김정은처럼 현실에서도 인권 의식이 없는 대부분의 막장 국가들이나 역사 속의 독재자나 폭군들 현대에서는 이런 식으로 사회적 약자나 민생들을 억압하며 가혹하게 통치를 해오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시민 혁명이나 노동 운동 피지배 계급의 반란 또는 지배층 간의 내분이 일어나거나 전쟁에 의해 체제 자체가 없어지는 쪽으로 붕괴되어 멸망한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현실 세계에서 이 사상을 실행하려고 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이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가 눈앞에 닥치자 "패배자인 독일 국민은 살아남을 가치가 없는 민족이다!"는 광란에 빠져[13] 파리 같은 여러 점령지는 물론 자국의 모든 시설들을 파괴하려 했다. 다행히 시설 파괴 명령은 히틀러에게서 관련 행정권을 위임받은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가 그 권력을 이용해 이를 막았고, 파리 파괴는 파리 주둔군의 총사령관 디트리히 폰 콜티츠가 이를 무시하고 히틀러에게는 거짓으로 파괴했다 보고하면서 무사히 지났다. 이는 슈페어와 콜티츠가 이후 전범재판에서 정상참작을 받아 감형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14][15]

가상 세계의 예를 들면 서방 제국 연맹(1번 항목)이나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 이쪽은 인질극이나 테러에서 인질이 되거나 휘말려서 사망하면 " 알아서 피했어야지. 누가 그 자리에 있으랬나?"라는 논리로 그냥 마구잡이로 진압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자가 소외되고 상처받는 등 비인간적인 경쟁 그로 인하는 도태가 심화됨에 따라서 불합리한 일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딱히 악인이 아니더라도 의외로 많은데, 그것이 세상의 어쩔 수 없는 이치라고 합리화하는 것이 차라리 스스로의 마음이 편해서이고, 실제로 '세상의 이치'인 게 어느 정도 맞기도 한다.[16] 이를 진심으로 여기는 독선과 위선, 본인과 상관없는 무고한 이들에게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악한 본성, 남들과 달리 유달리 뛰어난 처세술과 사회성, 임기능변 능력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본인의 말을 믿게 끌어들여 단기간에 많은 사람을 현혹해서 속일 수 있고, 무엇보다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행동력과 자본 권력을 가진 이들이 독재자나 범죄자, 학살자가 되는 것뿐이다.

전시 상황에서의 적의 양민학살이나 점령지 포로를 상대로 하는 고문이나 죽을 때까지 평생 사라지지 않는 PTSD를 남기는 신체적 육체적 폭력 여성이라면 십중팔구 매춘부가 되며 아이들의 경우 적에게 노예로 팔려가는 아동 인신매매. 거주 중인 민간인과 적국 포로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생체실험 같은 현실 인류사에 존재했던 전쟁범죄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이런 반인륜적인 짓을 행하는 것 자체가 약한 것은 죄악이라는 인식이 아주 작정하고 생겨버리지 않는 한은 불가능할 정도이며 현실과 가상을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규칙인 인륜을 가볍게 저버리고 현실에서 이 사상을 진짜로 실행에 옮긴 학살자나 범죄자 악인들은 세상이 아무리 변화했다고 하더라도 누구든지 나쁘게 보는데 현실에서는 이들의 최후가 상황에 따라서 갈린다. 말빨이나 운빨로 살아남아 해외로 망명을 하거나 신분을 세탁하거나 은신했다가도 당연하게도 마지막에는 정보기관에 붙잡혀서 결국에 훌륭한 철창행 열차에 탑승하기도 했지만, 운 좋게 빠져나간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이다.일본 제국의 상당수의 전범들과 요제프 멩겔레, 아돌프 아이히만, 전두환 등은 죽어서도 영원히 천수를 누렸으며 심지어 본인들이 죽기 전에도 끝까지 결백과 무죄를 주장하며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이들이 "암살이 두려워서 잠은 편하게 잘 수 없다"고 한 말이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너스레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강자는 약자를 먹는다는 약육강식이나 약한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찬성하고 옹호하며 그런 막장 사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뒷세계 권력자를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고, 적어도 현실에서는 그런 생각을 굳이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애초에 약한 것이 죄악이라는 사상은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생각이며 권위주의여도 완전히 정당화될 수 없다. 사실 민주주의 말고도 왕국들로 나라가 구성되던 시절에조차도 '약한 것은 죄악'이라는 단순무식하고 1차원적인 생각을 하는 국가는 흔하지 않았다. 그런 단순한 나라들은 기록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진작에 정벌당했고, 로마 제국을 비롯해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나라들은 모두 약자에 대한 구제책들을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의 겉치레나마 마련하고 시행해왔다.

쉽게 생각해서 강함에 선악이나 옳고 그름은 없다. 힘 자체가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그 힘을 쓰는 자가 어떤 이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차이도 무시하지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없이 불공평하게, 부족하게 태어난 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는 것인가? 진짜 약자가 죄악이고 강자가 정의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강자마다 인성도 가치관도 다 다르다. 그리고 약육강식의 약점은 인류는 지구상의 유일한 지성체이고 짐승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과연 정말로 야생의 짐승들에게서 이뤄지는 약육강식과 인간들이 정의하고 생각하는 약육강식이 진정으로 같다고 볼 수 있을까? 인간의 인본주의적 약육강식이 반드시 자연법칙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오히려 야생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인 약육강식보다는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인 적자생존에 더 가깝다. 코뿔소를 예로 들면, 누가 봐도 육체적으로는 코뿔소가 강하고 쥐가 약하다. 하지만 코뿔소는 멸종위기이고 쥐는 셀 수 없을 만큼 전세계에서 번성한다.

국제사회에서는 약한 것이 죄악이 될 수 있다고는 하는데 이것도 절반만 맞는 말이다. 기본적으로는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보다 우위에 있으며 더 영향력이 크지만[17] 국제사회에서 오로지 힘만이 정의였다면 이미 미국이 진작에 세계를 통일했거나 중국이 아시아 전역의 외교적 패권을 쉽게 거머쥐고 아시아 전체와 러시아의 극동 지역을 정복했을 것이고, 튀르키예가 진작에 오스만 제국 당시 옛 영토를 쉽게 재정복했을 것이며, 러시아가 동유럽, 핀란드, 중앙아시아를 손쉽게 정복하고 유럽 전체까지 장악했을 것이며 영국, 프랑스는 전세계에 식민지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고 사우디[18]가 전세계에 이슬람 근본주의화를 끝마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강자가 약자 편에 선 다른 나라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거나, 심지어 이 때문에 대구 전쟁처럼 강자가 약자에게 양보하는 사례도 있다. 물론 이런 점은 역시나 다른 국가들의 견제에 의한 것이며 순수한 도덕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생각의 저변에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형성된 '지들 좋을 대로 하게만 내버려두면 끝도 모르게 가고 아예 공멸까지 갈지 모르니까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라는 기본 이념이 깔려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약한 것이 정말로 죄악이 되는 곳은 교도소 죄수들이 대표적인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교도소는 정치, 경제사범들 같이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자나 권력자가 죄수가 된 경우거나 혹은 사형수나 무기수 등 이미 인생 끝나서 자기한테 거슬리면 살인도 서슴지 않게 될 정도로 잃을 것이 없어진 경우를 제외하곤 싸움 잘하는 순서대로 서열이 정해지는 곳이다보니 약자들은 핍박받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절도사범이나 사기꾼 등 무력과는 거리가 먼 범죄자거나 경범죄자들이 더 힘이 강한 수감자, 특히 조폭 수감자들한테 핍박받는 것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미국이나 중남미 지역은 이게 더 심해서 교도소 내에서 살인도 적잖게 일어난다. 특히나 미국 교도소의 경우 신참 죄수들은 고참 죄수들한테 자신도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살아남기가 어렵고, 따라서 잡범들은 먹잇감이 되기 쉬우며, 신참 죄수들이 고참들한테 자신도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바로 아동 성범죄자를 공격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범죄자들은 아예 공격을 받을 알이 없게 보호 구금(일종의 격리)되는 경우도 있다.

다르게 변질되는 계열로는 '내가 이긴 편에 붙어있으니까 이긴편에 (속했다고 나는 생각하는) 나는 정의이며 진편에 있는 너는 악이다!'로 나가는 경우도 흔하다.

6.1. 본질적 측면

약하다 강하다는 어떤 종류의 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사실관계에 대한 명제일 뿐이지, 윤리적 명제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즉 약한 것은 본질적으로 죄도 자랑도 아닌 것. 이는 키가 작거나 돈이 적은 것이 죄도 자랑도 아닌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를 혼동하면 자연주의의 오류에 빠진다.

위의 국제 외교 관계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정치현실주의를 잘못 이해한 사람들이 무작정 '나라의 힘이 약한 것은 죄악'이라고 주장하거나 강대국들의 모든 행동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19] 이 부분은 복잡한 문제이므로 자세한 것은 정치현실주의 문서로.

7. 캐릭터로서

만화, 영화, 소설, 게임 등 여러 창작물에서 나오는 주제이자 클리셰이기도 하다. 보통 이런 대사가 나온다면 이 주인공 측을 일방적으로 박살낸 상태에서 말하는 것이 일반적. 이 외에도 "이 세상은 약육강식." "약한 것들은 살아있을 자격이 없다." 같은 대사들이 있다. 이런 대사를 듣는 건 보통 리더격인 주인공이 대부분이며, 동료들은 쓰러져 있다거나 꼼짝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 역시 일반적. 단순히 육체적 약함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약함까지 포함한다.

약한 것들은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캐릭터는 배틀물, 특히 현실세계가 아닌 세계에 존재하는 캐릭터에게서 악역으로 자주 나오는 성격이다.

그 이유는 단순히 강한 것에 취해 양민학살을 일삼는 사이코패스 악당에게서부터 독재자가 되어 폭정을 일삼는 높으신 분들이 되거나 이 세계에 절망하거나 패도주의에 빠져서 약한 사람을 모두 없애려는 극단론에 빠진 현실주의자가 대부분이다.[20] 그리고 그 수준이 작건 크건 이런 악당들이 스케일 크게 날뛰기 시작하고 주인공들이 이를 막는 것이 왕도 배틀물에서 자주 나오는 최후 결전 스토리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선하거나 악역이 아닌 자들이 이런 사상을 가질 경우, 현실의 벽으로 말미암아 무너져 내려 일종의 자기혐오와 열등감, 자신이 이루지 못하는 정의를 이루는 자들에 대한 동경심이 섞인 복잡한 캐릭터성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사상을 버리게 되는 과정에서 구원을 얻기도 한다.

이런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캐릭터가 작품의 마지막에서 최후나 몰락이 곱게 다뤄지거나 벌을 받지 않고 마무리하는 경우는 작가가 애초에 의도적으로 작품 내용 전체를 권악징선 형태로 만들지 않는 한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대부분은 결말에서 그동안의 악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개과천선하는 모습이 묘사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설령 있다고 해도 뒤늦게나마 자각을 하게 되고 후회하며 살거나 죽을 때까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롭게 살아가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반 사람처럼 평범하게 사는 경우는 찾아보기 드물다.

이것 역시 작가 개개인의 상상력과 서사력이 없다면 묘사하기 힘들고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현실 21세기에선 이런 생각은, 특히 사람 목숨이 오가는 문제라면 보통은 다 큰 성인이 품을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모두가 도덕과 시민의식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자라는 사회에서 사람 목숨갖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사이코패스 취급을 받는다. 한마디로 감수성 풍부할 청소년기에나 잠깐 겪어볼 전형적인 중2병 속성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짜 다 큰 성인이 이런 '철없는' 생각을 가지고 살인까지 해댈 납득갈만한 동기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이런 사상을 품은 캐릭터성에 대해 무난히 좋은평가를 받는건 힘들다.

설령 작품이 인기가 있어도 작가의 상상력, 충분한 사전 자료 조사, 전무기 고증, 역사적 사실 반영, 작품 관련 실제 인물을 방문해 인터뷰하여 증언 수집 개인의 경험 또는 필력이 부족하여 악역의 최후를 작중 행적에 비해서 너무 가볍게 표현하거나 결말에서 악행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고 속죄하는 모습조차 묘사되지 않으면 팬들에게 작품의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늘어나서 완결된 이후에도 대차게 비아냥을 들으며 까이거나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에서 악역 미화로 제대로 지적당하고 욕먹기 딱 좋다. 특히 한권으로 끝나는 단편소설이 아니라 여러 권의 시리즈 형태로 장기간에 걸쳐서 출간되는 장편소설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하게 드러난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악인은 언젠가는 주인공이 무찔러야 세계관의 진정한 평화를 위하기 때문에 작중에서 거의 최종 보스이자 세계관 최강자로 취급된다. 자신들의 최후나 몰락을 결말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도 현실의 경우에는 거의 십중팔구 악인 본인과 자신을 과거에 따랐던 부하들과 함께 다 같이 동반 자살을 하거나 적국 스파이나 저격수로 인해 벌어진 저격이나 암살과 같이 결코 좋지 않은 선택이나 방법으로 최후를 받아들이는 게 흔하다.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경우는 수뇌부 전체가 잡혀서 포로가 되어 벌을 받고 그 중에 악인이 있다면 거의 높은 확률로 대부분이 사형을 당하는 식으로 최후를 맞이한 경우가 대다수다.

권선징악을 다루고 있는 매체들도 약한 것은 죄악이라고 외치거나 주장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이며 애초에 이런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합리화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동이나 다름이 없어서 제아무리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절대로 정당화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이러한 인물이 현실에서 온갖 권모술수를 부려서 마침내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데 성공할 경우 상황이 어떻게 불행해질 수 있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주인공이나 주인공 측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는 작가나 소설가 입장에서는 악인들의 최후와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그리고 그들을 막아 세우려는 세력 간의 갈등을 작품 내에서 얼마나 사실적으로 잘 묘사 하는지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것 역시 작가 개인의 서사력이나 상상력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고 단순하게 다루기 힘든 데다가 철학적이고 복잡하며 어려운 소재이기도 하기에 많은 작가들이 고민하는 경우가 꽤 많이 있다.

조직에 속한 캐릭터라면 전력을 깎아먹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상관이나 동료나 부하가 적한테 지면 너는 약하니까 죽으라며 방치하거나 자신의 손으로 죽여버린다. 특히 죽인 조직원이 간부나 최중요 인물일수록, 조직에 화력을 담당할 전력은 다 줄어가는데 적은 수를 계속 유지하고 강해져 나중에 불리해지는 악수가 된다. 나중에 자신이 왜 졌냐고 물으면 정의의 편인 적이 동료를 믿지 못한 너의 잘못이라고 일갈을 듣는 건 클리셰.

대체로 권선징악을 다룬 매체의 경우 이 클리셰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악인이나 악의 조직들은 결말에 더 강해져서 맞서는 정의의 편인 주인공에게 최후의 발악마저 먹히지 않고 완전히 패배하여 본인들이 평소에 외치던대로 '죽어 마땅한' 약자가 되면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는 비굴한 모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도 평소 강자가 우월하다고 주장하던 부류가 정작 본인이 위기에 처하면 갖은 합리화를 대며 목숨을 구걸한 사례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은근히 현실적이다.

한편으로는 이 클리셰를 부숴서 '강자에게 죽어야 하는 약자의 운명'을 자신에게도 예외없이 적용해서 패배했을 때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도 나온다. 이런 경우 사상은 분명히 잘못되기야 했지만 적어도 내로남불은 아니므로 최소한 비겁하지는 않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더 나아가서 자신도 언젠간 약자의 위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가정을 받아들이며 방심하지 않고 강자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더 강해지려고 끝임없는 노력과 계책을 세우면서 자신의 부하들에게도 이를 강조하고 따라하기를 지시하는 노력파 악당도 있다.

8. 창작물의 사례

데빌맨- 데몬족

8.1. 번외 1: 강자는 진리

약한 것은 죄악을 뒤집어서, 반대로 강한 자를 진리로 여기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클리셰도 존재한다. 이런 클리셰의 캐릭터들은 선악을 떠나서, 강인함과 용기를 중히 여기는 전투광이나 전쟁광이 많다.

8.2. 번외 2: 힘 없는 정의, 무능하고 약한 게 진짜로 해악이 되는 경우

8.3. 반례: 약하지만 진정한 용기와 정의로운 마음, 뼈를 깎는 노력 등등으로 극복한 경우

인간찬가와 상당히 겹친다.

9. 관련 문서



[1] 그런 고통을 받는 가족은 옛날이 좋았다기도 할 수 있는데, 이런 문제 때문에 이를 무턱대고 좋았던 옛날 편향으로 몰면 안 된다. [2] 실제로는 오히려 비슷한 환경 조건을 고려하면 고아들이 더 착한 경우도 많으며 비슷한 조건의 다른 통계에서도 일반적으로 혈연 같은 개인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변수를 비슷하게 맞추면 큰 차이는 없다. # [3] 김유정은 일찍 부모를 잃기는 했으나 원래 집이 부유했던 경우다. 말년이 불우했지만 성장기에는 당시로선 보기 드문 고학력자인 데다가 스포츠에도 뛰어났고 체격도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았던 소위 인싸여서 흔히 생각하는 고아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다만 형이 재산을 날려 먹은 것도 있고 본인도 방탕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세가 기울었다. 오히려 이들 세대에선 생존을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하는 고아들이 일반적인 이미지였기 때문에 작가 김유정을 기억하는 고향의 어르신들이 김유정을 그리 좋게 인식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4] '모든 약자가 선한 건 아니며, 모든 강자가 선한 것 또한 아니다'. 이 당연한 전제를 예상치도 못하고 단어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은 제대로 된 성인의 사고방식이 아니다. [5]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봐 말하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강하다 할지라도 꼭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 나약한 상태에서 발전이 없으면 가능성은 0에 가깝다. [6] 물론 수평적인 동료나 동맹 관계래도 한 쪽이 다른 쪽과 동맹을 지속해서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하여 배신하거나 죽이는 경우가 충분히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보스가 자기보다 아래인 부하를 일방적으로 버리는 쪽이 훨씬 더 처절하게 버려지는 경우이다. [7] 하지만 이것이 안 좋은 점도 있는데, 흡수했는데 오히려 해가 되거나, 자신이 버린 부하가 주인공 일행의 동료가 되거나. 자기 밑에선 별볼일 없던 녀석이 주인공 쪽으로 가버리니 엄청나게 강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 일종의 클리셰. 아군이 된 적 보정 문서로. [8] 다만 이게 좀 오락가락한게 정작 자기 어머니는 청각장애인인지라 청각장애인의 재활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그의 우생학도 장애인을 없애자는게 아니라 정상으로 돌려놓자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말도 있다. [9] 물론 클리셰 파괴의 일환으로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후술될 카드파이트!! 뱅가드 G 칸자키 유이치로가 있는데, 약함은 죄라는 논리로 유나이티드 생추어리 지부를 이끌고 온갖 패악질을 부렸으나 신도 크로노에게 패배한 뒤 "자신의 약함이 죄"라며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에게도 적용하며 유나이티드 생추어리 지부장 자리에서 즉각 은퇴해 버리는 시원한(?) 모습을 보인다. [10] 상대를 인정하는 경우도 대부분 "강자인 네가 내 말을 증명하고 있다!"라고 기뻐하는, 상식이 좀 많이 뒤틀린 케이스이다. [11] 이런 논리가 어느 정도 인정되는 사회가 존재하는데 바로 메이와쿠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범죄의 피해자가 오히려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며 사과하기도 한다. [12] 무슨 히어로물마냥 개인이 격투술이 출중하다고 해서 몽둥이나 칼로 무장한 수십 대 일로 둘러싸여도 다 털어버리고 하는 일은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체격이 강하다고 해 봤자 무림인마냥 광역기를 날리거나 분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체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당장 한 놈을 상대할 때 다른 놈이 몽둥이나 칼로 뒷통수만 후려갈기면 게임 끝이다. [13] 웃기게도 사실 이런 지경에 빠진 이들은 다름아닌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독일의 수뇌부였다. 집권 자체부터가 반유대주의 배후중상설을 내세운 결과물이고 이에 따라 참 많이도 주변국들의 어그로를 끌어가며 팽창주의 행보를 보였고 그렇게나 주변국들이 양보해줬음에도 기어이 전쟁을 일으켰다. 물론 처음에는 폴란드와 프랑스를 단숨에 정복하는 등 1차대전과 비교해 보면 잘 나갔지만 노르웨이 전역에서 노르웨이 점령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해군이 박살나고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는 공군에 타격을 입었으며 결정적으로 독소전쟁이라는 초대형 병크를 터뜨렸다. 물론 당시가 대숙청으로 인해 소련 군부에 구멍이 숭숭 뚫려 핀란드에게도 겨우 이기는 약체가 되었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10주만에 소련을 정복할 수 있다는 둥 겨울 대비를 잘 안 하는 둥의 방심의 끝판왕을 보인 쪽은 히틀러를 포함한 나치 독일의 수뇌부들이었다. 이외에도 청색작전은 워낙 먼 곳을 공격하는 것이라 너무 어려웠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병력을 몰아넣어 날려먹고 제6군은 또 제때 탈출시키지 않아 날려먹는 등으로 독일이 또 다시 패전시킨 진정한 원흉은 히틀러를 포함한 나치 독일의 수뇌부들이었다. 특히나 1차 대전에서 양면전선의 위험성을 보았으면서도,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사전에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었으면서도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도 패배했으면서 소련에 전쟁을 걸어 굳이 양면전선을 만든 행위는... [14] 영화 몰락에서 슈페어가 히틀러와의 독대에서 기반 시설 파괴 명령을 어겼다 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슈페어를 신임하던 히틀러가 뒤통수 제대로 맞은듯한 모습을 하는게 인상적. [15] 사실 콜티츠는 몰라도 슈페어가 감형을 받은 건 연합국과 일종의 사법 거래를 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16] 논점은 다르지만 자위하는 점이 비슷하게 영화 유튜버 발없는새가 영화 기생충 스포일러 리뷰에서 " 가난 미화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없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기본이자 필수 의식주조차 해결이 안 됩니다.", "만에 하나라도 가난한 사람이 더 행복해 보인다면 그 이유는 딱 하납니다. 그렇게라도 현실을 위로하고 부정해야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비판했다. # [17] 지식인인 후쿠자와 유키치만 하더라도 "1백 권의 만국 공법(국제법)이 대포 한 문보다 못하다."란 말을 남긴 바 있다. [18] 참고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근본주의 및 이슬람 극단주의 확산의 진원지로 알카에다와 다에쉬 내 고위 간부의 상당수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다. [19] 다만 미국 중국 등 몇몇 강대국들은 이런 관점에서 외교를 하고 있다. 그래도 미국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모든 나라들은 동등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기에 일반적인 국가들에게 갑질을 전혀 하진 않지만, 반대로 중국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모든 나라들은 동등하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하기에 한국은 대놓고 짓밟으려고 하면서 일본 상대로는 엄청 무시를 하면서 자신들의 우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협박을 한다든가, 미국에 대해서는 동아시아를 제외한 세계 패권을 인정하며 동아시아 지역 패권은 자신들이 가질 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요구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러나 중국이란 나라 자체가 소련과 달리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부분이 적지 않고 미국이 이를 불쾌하게 보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도 중국 상대로 서로 갈 때까지 간 상황이 됐다면 차라리 멸망하더라도 미국의 도움을 받아서 중국의 수족 어딘가는 완전히 절단 내어 버릴 수 있기에 현실적으로는 중국의 바램이 이뤄지기 어렵다. 차라리 진짜 중국의 주인인 타이완이 미국의 도움을 제대로 받아서 그렇게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해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해서, 미국과 함께 타이완이 중국 대륙을 통일해서 미국과 중국이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영원히 금지하고 민주주의&자본주의를 영원히 유지하며, 그렇게 미중 양국이 파이브 아이즈 수준의 영구혈맹을 이루는 게 미래의 인류 우주 진출 등 대발전을 해 나아가야 우주의 미래가 굉장히 밝아진다. [20] 일부 복수귀 캐릭터들이 이런 속성을 가지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대다수가 정의롭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인물이나 단체의 부당한 폭력으로 말미암아 소중한 사람이 죽거나 모든 것이 망가져 버리면서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자기혐오, 절망감에 미쳐버려 복수귀가 되면서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 의미에서 약한 것은 죄악이라는 경우가 있다. 복수귀가 주인공인 장르에서는 주인공의 극단적인 심리상태와 과거의 자신에 대한 혐오감 등을 입체적으로 표현하지 위해 해당 설정을 자주 넣는 편이다. [21] 종족이 가지는 사상. 동물로 치면 종족번싱과 먹이사슬. 사람은 민족, 부족의 전통성 [22] 본인이 약자인 희귀한 케이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업소가 이그드라실 코퍼레이션이 들어서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그 이후로 약하면 강한 자들에게 먹혀버린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약한 자들은 강한 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힘을 길러야 한다'라는 사상을 갖게 되었다. [23] 자세한 건 해당 항목으로. [24] 인간이었을 당시의 아카자가 너무 강해서 정면으로는 싸움이 힘들다고 판단, 우물에 독을 타서 스승과 약혼자가 죽었다.(본인은 당시 아버지 성묘를 하러 가서 죽지 못했다) [25] 금색의 갓슈 단행본 31권에 나온다. [26] 나루토 왈 "지금 공격으로 너도 알았겠지. 너와 내가 싸운다면 둘 다 죽어." [27] 마쿠노우치 잇포의 영향을 받아 개과천선하기 전 [28] 일단 15화 예고편에서 "약한 것은 나쁜 거야."라는 말을 온하준에게 말했다. 심지어 아이를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며 필요 없어지면 죽이는 짓까지 했으니 더더욱 악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에고의 현실 버전이다. [29] 예를들어 "그래도 나름 눈여겨 봤었는데 바닥이 밑바닥이네.", "싸움 좀 했나 봐?? 얼굴은 나보다 못생겼지만ㅋ"라는 식으로 욕하는데 우기명이나 김두치같은 기초생활수급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내놓는다. [30] 한 예로 시스 워리어, 시스 인퀴지터의 초반 퀘스트 지역인 코리반 행성에서 시험을 치르던 생도의 유해를 수습하여 의장대였던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전해주면 슬퍼하긴 커녕 오히려 나약한 놈, 자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응한다. 오히려 이 대화에서 던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하는게 캐릭터의 라이트사이드 수치를 높일 정도이다. [31] 얕보지 않는 사람은 사이타마밖에 없다. [32] 원문은 마케이누, 즉 패배견이다. [33] 투니버스 방영시에는 '네 죄는 나보다 약하다는 거다.' [34] 저 대사가 나온 화의 제목이 바로 정의는 이긴다!! 그러나 이 대사는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승자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인위적으로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자신이 곧 정의이자 선이 되고, 패자에 대해서는 불리한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승자만이 정의가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35] 루피가 도플라밍고를 이겼음을 알고도 그를 약한 놈이라 매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무색하게도 루피의 기지와 나미의 서포트에 패배한다. [36] 물론 별로 먹히지는 않았다. [37] 상술한 강자는 약자를 병탄한다는 대사 직후 내뱉는 "그러니까 빨리... 승부를 내자고..."라는 대사는 네가 나보다 강하니까 어서 약한 나를 병탄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38] 부모라기 보다는 많이 복잡한 관계를 거쳐나온 남매다. [39] 죠타로가 말하길. "뭐라고? 패자가 악이라고? 그럼 역시 네놈을 말하는 거잖냐!!!" [40] 애초에 이부키는 FIVA 본사에서 온 파견사원일 뿐이고 유나생 지부는 칸자키의 관할이라 터치를 하기 힘들었던 것이었다. 물론 FIVA 본사의 권한으로 칸자키에게 브레이크를 걸 수도 있었지만 디펜드 카드를 탈취해서 크로노에게 넘겨주기 위해 암약할 필요가 있었고, 그걸 위해 칸자키에게 별다른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던 것. 크로노가 칸자키를 격파하고 칸자키가 자신의 약함을 죄라 인정하며 유나생 지부장에서 물러난 뒤 스즈가모리 렌을 빠르게 지부장으로 올려 유나생 지부를 정상으로 돌리는 것도 이부키의 공이 컸다. [41] "무력함은 죄다" 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42] 어릴 때 부모 잃은 전쟁고아로 자랐고 유니온의 각종 실험과 학대에 시달리면서 자랐으며 같은 실험체 신세인 아이들끼리 서로 죽이는 실험 속에서 유일하게 생존하는 등 정말로 생존을 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약한 존재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힘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늑대개 팀과 정이 들고 검은양 팀과 동맹을 맺으면서, 약자들을 버려야 한다는 미하엘을 꼭대기에 있는 녀석이 우는 소리 한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등 츤데레 남캐에 가까워졌다. [43] "You still fight for the weak, that's why you lose!" [44] 오로지 힘이 최고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그래서 이름난 격투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다 쓰러뜨리고 그들의 석상을 만들어 조롱하고 있다.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약한 자들을 박멸하는 작업을 몸소 실천했다. [45] 페러스 매너스의 사후 감정 자체를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하며 약자는 도울가치도 없는 소모품으로 취급했으나 가우디니안 헤레시라는 대위기를 겪고 난 이후에는 민간인 같은 약자일지라도 손익을 따져가며 구출할 정도가 된다. [46] 같은 항목에 있는 다른 종족들이 순수하게 '강한 것이 진리이며 따라서 약자는 강자의 논리를 따라야한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이쪽은 '살아있는 모든 자들은 죄를 짊어지고 태어나며 그렇기에 본인의 자유는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 따라서 그 자유를 힘으로 쟁취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들은 죽어 마땅하다.'는 과격한 논리로 해당 항목을 주장한다. [47] 다만 죠셉에게서 인생 처음으로 상처를 입고 나서 굴욕적인 상황을 목격한 시저와 스피드왜건을 죽이려 했다. [48] 오히려 부패한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되바라졌는데 일은 쓸데없이 잘 해서 더 악랄하게 밟아 주고 싶은 놈으로 찍히기 딱 좋은 유형이었다. [49] 메가레인저의 마을 사람들 제외 물론 아이들은 예외. [50] 이에 사이타마도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으며 독자들로부터도 큰 호응과 인기를 얻었다. [51] 사실 우솝은 저격수이기 때문에 우라돌격이나 육탄전에는 당연히 맞지 않으며, 저격수의 장점을 살려 트리키한 전술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굳이 무리하게 자기한테 맞지도 않는 백병전을 하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최근 에피소드인 와노쿠니 편의 적 세력이 백병전 최강인 백수 해적단이었기에 우솝의 약점이 유독 부각될 수밖에 없었던 것. [52] 2021년자 유 퀴즈 온 더 블럭/123회에서 나온 도배사 배윤슬은 주변의 부정적 시선이나 평가는 잠깐뿐이고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이런 꼰대들들이나 헬리콥터 부모들은 배윤슬처럼 못 하고 사람들에게서 멸시되면서 원한을 품었을 수도 있다. 일종의 보상 심리인 셈. [53] 이는 한국이 서구권보다 복지가 열악하여 다른 나라처럼 시행착오를 겪고서 사회적으로 재기하기가 어려운 탓도 있다. 서구권 국가에서는 청년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반대로 말하면 이러한 문제는 한국 사회의 무한경쟁을 비롯한 시스템 자체가 삶의 다양성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형태라는 의미가 된다. 시행착오를 시간 낭비로 여기는 빨리빨리 문제도 있고. 이러한 점은 1989년에 개봉된 한국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도 비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