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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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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McDonald's
파일:맥도날드 로고.svg
<colbgcolor=#c20d00><colcolor=#ffc300> 국가
[[미국|]][[틀:국기|]][[틀:국기|]]
창립일 1940년 5월 15일 ([age(1940-05-15)]주년)[1]
설립일 1955년 4월 15일 ([age(1955-04-15)]주년)[2]
창립자 리처드 제임스 맥도날드 (Richard James McDonald)
모리스 제임스 맥도날드 (Maurice James McDonald)
설립자 레이 크록(Ray Kroc)[3]
[[회장|{{{#ffc300 회장}}}]] 크리스 켐프친스키[4] ( Chris Kempczinski)
CEO
기업 유형 상장기업
기업 구분 대기업
시가총액 1,919억 8,544만 달러
(약 259조 3,723억 원, 2023년 9월 29일 종가 기준)
매출액 231억 8,260만 달러
(약 31조 3,196억 9,300만 원, 2022년 기준)
주소 McDonald’s Corporation 110 N. Carpenter St.
Chicago, IL 60607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Threads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틱톡 아이콘.svg | 파일:텀블러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핀터레스트 아이콘.svg | 파일:레딧 아이콘.svg | 파일:스포티파이 아이콘.svg | 파일:Google Play 아이콘.svg | 파일:App Store 아이콘.svg | 파일:스냅챗 로고.svg | 파일:미디엄 아이콘.svg 파일:미디엄 아이콘 화이트.svg

1. 개요2. 역사
2.1. 시작과 성장2.2. 판매 부진, 그리고 회복
3. 부동산4. 메뉴5. 맥딜리버리6. 맥도날드 크루7. 대한민국의 맥도날드8. 세계의 맥도날드9. 도시전설10. 황금 아치 이론
10.1. 반론
11. 사건 사고12. 여담13. 관련 문서1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attachment/맥도날드/f0018015_4f0a989a67817.png
파일:external/2.bp.blogspot.com/100_2769.jpg
<rowcolor=#ffc300>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에 위치한 최초의 맥도날드 매점.
지금은 맥도날드 박물관
일리노이 데스플레인에 있는 현재는 사라진[5] 맥도날드 1호점.
한때는 박물관으로 공개했었음. 1955 버거의 유래
미국의 글로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기업.

일리노이 시카고에서 최초로 탄생했으며, 패스트푸드로는 단연 세계 1위인 다국적 기업으로 전 세계 각지에 영업점을 두어 진출해 있다. 그 위상은 단순한 음식 체인점을 넘어, 햄버거의 대명사이자 코카콜라· 아이폰 등과 함께 미국 자본주의 세계화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이며 물가 상황 측정을 위한 하나의 경제 지표로 자리 잡아 있다.[6][7]

상호명은 창업자 형제의 성씨인 맥도날드(McDonald)에 명사의 소유격 어미 -'s를 붙인 표현에서 유래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맥도널즈'로 표기되지만 한국에서의 상호명은 '맥도날드'로 정했다.[8] 일단 라디오 코리아같은 미주 한인방송에서부터 맥도널즈라고 발음한다.

2. 역사

2.1. 시작과 성장

맥도날드의 초기 역사는 꽤나 어둡고도 독특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

창업자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리처드 제임스 맥도날드(Richard James McDonald, 1909. 2. 16.~1998. 7. 14.)와 모리스 제임스 맥도날드(Maurice James McDonald, 1902. 11. 26.~1971. 12. 11.) 형제이지만 맥도날드를 현재와 같은 위치로 끌어올린 기반을 마련한 것은 '레이 크록(Ray Kroc, 1902. 10. 5.~1984. 1. 14.)'이라는 체코계 미국인 사업가였다. 크록은 맥도날드의 창업자는 아니지만 맥도날드를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이끈 주역이기 때문에 창업자들보다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9] 다만 창업자 형제들도 요식업계의 판도를 바꾼 시스템을 개발한 업적이 있어, 기업 경영이 아닌 요식업쪽으로 가면 더욱 크게 주목 받는다.

맥도날드 형제가 운영하던 맥도날드 식당은 지금의 맥도날드와는 많이 달랐다. 1937년 형제와 형제의 아버지는 "에어드롬(The Airdrome)"이라는 이름으로 캘리포니아 몬로비아 공항 근처에 매점을 열었다. 이후 1940년 5월 15일, 매점을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에 옮기고 이름을 McDonald로 바꾸었다.[10][11]창업 초기인 1940년대는 고속도로 운전자들이 차에 탄 채로 즉석에서 햄버거 밀크셰이크 등을 사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드라이브인 노점이 인기를 끌었다.[12] 맥도날드도 이와 같은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맥도날드는 지금처럼 햄버거가 아닌 바비큐를 주력 메뉴로 삼았다. 오히려 햄버거는 당시 취급한 27가지 메뉴 중 하나인 곁다리에 가까웠다. 가게 이름도 '맥도날드 페이머스 바비큐'였다. 얼마간 돈벌이가 쏠쏠했지만, 사업이 정체되자 맥도날드 형제는 사업을 재검토했다.

맥도날드 형제는 드라이브인 자체의 한계점을 파악했다. 주문하고 음식을 받는 데 시간이 걸렸고[13], 주문을 받을 점원들도 많이 필요해 인건비 지출이 심했으며, 고객들의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메뉴도 많아서 그만큼 낭비가 심했다.

그래서 맥도날드 형제는 대대적으로 시스템을 손을 봤다. 점원이 주문을 받는 대신 직접 손님이 주문하도록 바꿨고 매출을 검토한 결과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간편하게 즉석에서 소비할 수 있는 메뉴인 햄버거 감자튀김, 음료수라는 것을 파악했고 선택과 집중에 따라 과감히 메뉴를 정리하여 햄버거 위주의 라인업을 갖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맥도날드 형제가 가장 중요시한 변화는 바로 속도전이었다. 30분을 기다려야 나오는 음식들을 30 만에 나올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인근 공원의 테니스코트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가며 가장 효율적인 주방 동선과 기구의 배치를 고안했다. 그리고 실제 크기로 그린 전개도 위로 직원들을 보내 직접 동선을 몸에 익히도록 지시했다.

맥도날드 형제의 시스템은 손님이 직접 햄버거를 주문하고, 조리원 1명은 패티만 굽고 다른 1명은 을 굽는 식으로 햄버거 조리를 분업화하여 햄버거 가격과 주문한 햄버거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절반 이상 줄였다. 그리고 접시나 식기류를 제공하지 않고 종이 포장으로만 충분한 핑거 푸드를 냄으로써 비품 가격과 품을 줄일 수 있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혁신에 반발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직접 주문하고 직접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손님도 끊기고 원래대로 회귀해야 되냐고 형제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었다. 하지만 결국 고속으로 요리가 나오는 창의적인 식당으로 탈바꿈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바로 이것이 패스트푸드의 시작이다.

1954년, 믹서기 외판원으로 일하고 있던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 형제의 식당에서 일반적인 수요 이상으로 밀크셰이크용 믹서기를 많이 구입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샌버너디노에 있는 맥도날드 식당에 찾아가게 되었다.

셰이크 제조기 외판원이었던 크록은 마치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이 축소된 것 같은 이 식당의 경영 방식에 감탄했고, 맥도날드 형제에게 자신이 프랜차이즈 관리를 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맥도날드 형제는 과거에 자신들이 했던 프랜차이즈점의 품질 관리에 실망했던 전력[14]이 있어 점포 확장에 너무 소극적이었다. 양보다는 질을 우선시했던 셈.

그러나 맥도날드의 시스템에 가능성을 본 크록은 집요한 설득 끝에 프랜차이즈 사업의 수락을 받아낸다.[15] 크록은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리며 프랜차이즈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결국 맥도날드 형제와 불화가 일어난다. 1954년 전국적으로 햄버거 체인 사업을 확대하자는 크록의 제안에 맥도날드 형제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큰 현관이 있는 하얀 집이 보이지? 그게 바로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우리 집이야. 우리는 저녁마다 현관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고, 여기 있는 우리 가게를 내려다보면서 평화를 느끼면 되는 거야. 우리는 이 가게를 운영하면 그만이지 더 이상 복잡한 구조를 만들 필요는 없어. 더 많은 가게를 내면 그만큼 더 많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삶을 즐기고 있고. 그게 바로 우리가 바라는 생활이야."
- Fast Second

당연히 레이 크록은 그것에 만족할 리가 없었고, 자신이 1955년 4월 15일 일리노이에 설립한 첫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점을 1호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을 시작으로 자신의 맥도날드 사업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1955 버거도 그렇고 맥도널드 홈페이지에 가면 연혁이 이 시점부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1955년 개점 당시 맥도날드 가격을 보면 햄버거는 15센트, 치즈버거는 19센트, 프렌치 프라이&음료수는 10센트, 밀크셰이크는 20센트였다. 당시 미국인의 1인당 GDP가 2578달러였던 것에서 추산하면 일당은 7달러 안팎이었으니 맥도날드 외식은 당시 미국 서민들의 외식에 안성맞춤 수준이었던 셈.[16]

이후 레이 크록은 법률자문을 받아 "프랜차이즈 사업을 돕는 맥도날드란 이름의 부동산 회사"를 별도로 설립하여 프랜차이즈 사업에 관한 맥도날드 형제와의 계약을 회피하고,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점들의 토지를 소유해 사업을 장악하게 된다. 이 부동산 회사가 결국 지금의 맥도날드가 된다. 레이 크록의 맥도날드는 전국적인 사업이 된 반면 고작 점포 하나를 가진 맥도날드 형제는 결국 1961년에 270만 달러와 연 이익의 1.9%를 지급받는 조건으로 자신들이 가졌던 원래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사업의 권리를 크록의 회사에 판다. 그러나 이익의 1.9%지급은 구두로 계약하였고 이를 증명하질 못해 이에 대해서는 한 푼도 못 받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점포에서 맥도날드란 이름을 쓸 수 없게 되자 'The Big M'이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였지만, 별 재미는 못 봤다. 그래도 나중에 맥도날드의 친선대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결국 로열티는 못 받았으니 좋은 결말은 아닌 셈.[17]

이 일화를 다룬 영화 ' 파운더'가 2017년 4월 국내에 개봉했다. 작중 레이 크록 역은 마이클 키튼이 분했다. 겉으로 드러난 시놉시스만 보면 마치 맥도날드 홍보 영화, 레이 크록의 성공담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실제 내용은 레이 크록에 대한 비판이 주된 내용인 피카레스크 영화에 가깝다. 크록의 행보를 비판적으로 그린 것은 아니고 미화 비하 없이 그대로 그렸는데 워낙 실제 인물이 한 짓이 있다보니 주인공 크록을 욕하게 될 수밖에 없다. 성공한 직후에 40년 가까이 함께한 조강지처와 이혼한 것, 유부남인 상태에서 나중에 아내가 되는 조앤에게 한 눈에 반한 것(자서전에서 "금발의 매력에 반했다"고 표현), 창업자 맥도날드 형제를 엿먹인 것, 맥도날드 형제가 오리지널 맥도날드 점을 넘기길 거부하자(이들은 같이 고생한 창립 멤버들에게 레스토랑의 권리와 운영을 통째로 넘기겠다고 했다) 이에 앙심을 품고 "Big M"이라고 이름을 바꾼 맥도날드 형제의 가게 바로 옆에 맥도널드 점포를 차려서 이들을 망하게 한 것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McDonald라는 이름은 당연히 창업자의 성에서 따온 것인데 어원을 따져보면 Mc은 게일어에서 ~의 아들을 뜻하며(Mac으로 쓰기도 함) Donald는 켈트어 dumno(세상)과 val(지배자)에서 온 것. 세상의 지배자의 아들이라는 뭔가 대단한 이름이 된다. 정작 이 이름을 가진 창립자 형제는 거의 패가망신했다는 게 아이러니.[18]

2.2. 판매 부진, 그리고 회복

2014년 연간 순이익이 15% 감소한 47억 달러를 기록했고, 기업 60년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내더니 미국에서 지난 6분기 내내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부진 여파에 대해선 웰빙 버거 바람으로 인해 맥도날드의 정크푸드가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 있다. 맥도날드 측은 항생제 안 넣은 닭고기를 넣겠다고 밝혔지만 그러자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게 문제였다. 싼 정크푸드라는 이미지로 세계에 널리 자리 잡은 맥도널드가 웰빙 버거라는 광고는 먹히지 않을 것이란 비아냥도 나왔다.

결국 쇠고기 패티를 사용하고 3분의 1lb(약 150g)로 무게를 늘린 새로운 메가 버거를 한시적으로 출시하기로 했다. '서로인 써드 파운드 버거'라는 이름을 붙인 이 새로운 버거를 $4.99(약 5,500원)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책정해 경쟁사들의 웰빙 버거에 맞설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시그니처 버거라는 이름으로 소비자가 직접 빵, 치즈, 야채 등 토핑을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프리미엄 수제버거 메뉴도 내놓았다.

국내에서는 매장당 매출액이 1위인 만큼 전세계적인 맥도날드 부진 경향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빠르고 쉽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수제 버거를 통해 좀 더 고급스러운 이미지까지 더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

3. 부동산

1974년 미국 대학교에서 맥도날드 창업자 레이 크록의 강연이 열렸다. 강연이 끝난 후 레이는 학생들에게 '내가 무슨 사업을 하느냐' 라고 물어봤다. 학생들은 그저 농담으로 생각하고 웃으면서 햄버거 사업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레이는 "틀렸소. 난 햄버거 장사가 아니라 부동산 사업을 한다오." 라고 말했다. 그는 체인점의 부지와 위치가 사업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알고 있었다.
맥도날드는 단일 기업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거리와 교차로에 땅을 갖고 있다. 사실 말그대로 레이 크록의 맥도날드사는 맥도날드 형제와의 식당 프랜차이즈 계약을 편법으로 우회하려고 부동산업 기업으로 등록되어있다.

즉 대중적으로 햄버거를 판매하여 이득을 취하는 곳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햄버거는 2차적인 부분이고 실제로는 부동산 사업을 벌이는 업체라는 것이다.

기존의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이미 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장을 내도록 해주었고 저렴한 프랜차이즈 비용을 받는 방식이라, 처음 매장을 열 때 높은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맥도날드의 경우 회사가 직접 부동산을 소유해 매장을 개업할 때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고, 매장 설립 이후 프랜차이즈 비용에 임대료를 포함하여 받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경쟁 업체보다 빠른 속도로 매장 수를 늘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경영 전략이었다. 이런 사업 방식을 유지하려면 맥도날드 본사가 소유한 부동산이 매장 영업이 잘될 만한 입지여야 하며, 결론적으로 이 모델은 맥도날드 본사가 지역의 상권 분석을 정확히 해서[19] 좋은 위치의 부동산을 소유해야만 성립 가능하다.

맥도날드는 부동산을 취득하여 맥도날드를 오픈하고 햄버거 가게 점주로부터 렌트비와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한 예로 맥도날드가 오픈되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초기에는 이런 이점을 활용하여 주변 부동산을 선점한후 차익을 남기고 매매하여 매우 많은 이득을 남겼다고 한다.

사실 이런 맥도날드의 방침은 꽤 그럴듯한 전략이었다. 어떤 곳에 맥도날드 매장이 들어서면 흔히 옆에 KFC 버거킹, 한국일 경우 롯데리아, 필리핀의 경우 졸리비가 같이 생긴다. 그리고 여기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는 경향이 있었다. 맥도날드도 바보는 아니니 상권이 형성될 만한 곳을 골라서 부동산을 사서 직영점을 꾸미고, 경쟁사가 이런 맥도날드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주변에 가맹점을 내는 것. 상권이 형성되면 당연히 부동산이 오른다. 이런 맥도날드 버프라는 게 실존했다.

실제로 한국맥도날드 홈페이지의 임차 정보란에 "건물 임대의 경우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와 근교 지역을 우선으로 투자를 받습니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사람이 많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 대도시에서도 사람이 몰려 장사가 될 만한 곳을 고르고 골라 거기에만 점포를 내는 것이다. 대구의 모 매장은 삼성전자서비스 삼성 디지털프라자가 입점해있는 부지를 사 버린 뒤 건물을 허물고 맥도날드가 직영점으로 들어왔다. 맥도날드가 들어온 뒤 삼성전자서비스옆에는 하이마트가 들어오고 맥도날드 옆에는 스타벅스 승차 구매점(DT)도 생겼다. 덤으로 부근에 있던 롯데리아는 사라졌다.[20]

그래서 다른 프랜차이즈는 지점 매출액의 6-10%를 건물주에게 임대료로 지불하는데 맥도날드는 10-15%를 임대료로 맥도날드 본사에 지불한다. 그래서 맥도날드 본사의 영업이익의 30%가 부동산 임대수익이다. 가맹 지점 점주는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지만 확실한 상권이라 투자 위험이 적고 불황을 거의 타지 않는 안정적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월마트와 맥도날드가 이러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가맹점에 임대해 주는 전략을 사용하는 대표적 프랜차이즈이다.

4.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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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맥딜리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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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맥도날드 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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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대한민국의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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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계의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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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도시전설

쇠고기 100% + 소금 + 후추 패티를 쓰며, 식재료의 원산지 표기가 의무화된 이후 불고기버거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일부 버거를 제외하면 패티 재료는 엄연히 소고기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일종의 도시전설, 고양이, 캥거루, 등의 고기, 곤충 애벌레나 알, 거미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의문의 재료가 들어간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 미국에서 나돌았고 이에 대한 해명을 겸해 BEEF 100%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레이 크록이 처음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워낙 광대한 미국 땅덩어리다 보니, 직영점이라도 본사 측이 제시한 조리법을 무시하고 패티를 만드는 등 품질 평준화가 꽤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서부 쪽 점포들은 원가를 절감한다며 쇠고기에 염통 등 내장 부위를 갈아 넣어 저질 패티를 만드는가 하면, 히스패닉 고객들의 입맛을 맞춘다며 부리토나 엔칠라다[21] 같은 메뉴를 멋대로 추가하는 등의 계약 위반 행위로 문제가 되었다. 어쩌면 패티 재료에 대한 수많은 루머는 이런 사업 초기의 시행 착오 에피소드에서 파생되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대박이었던 것은 지렁이 버거 사건으로 여러모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는데, 이에 대해 지렁이 사육 시설 세우고 관리하는 형태의 광고를 만들어서 「돼지고기나 쇠고기 가격이 지렁이 키워서 고기 만드는 것보다 싸다」는 내용을 내보냈다.[22] 그런데 이게 최악급의 광고 전략이 되어버렸다.[23] 사람들에게 정크푸드 이미지와 지렁이가 꿈틀하는 모양새를 그대로 각인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긁어 부스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주 나오는 루머가 '패티의 양이 줄었다'인데 이것도 순도 100% 기분 탓이다. 왜냐면 다른 건 몰라도 패티의 제작 공정은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패티는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다. 이유는 간단한데, 전 세계 맥에서 쓰는 패티 굽는 그릴은 완전 동일 규격으로 나간다. 양을 함부로 줄일 경우는 두 가지 문제가 벌어지는데, 양을 줄이기 위해서는 패티 제작하는 기계의 규격을 독단적으로 바꿔야 하고, 그걸 굽는 그릴도 바뀐 크기에 맞춰서 커스터마이징을 해야 한다. 즉 고기 양 줄이기 위하여 들여야 하는 비용이 더 비싸질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준.

실제로는 패티가 아니라 빵이 양으로 장난치기가 쉽다. 위에서 패티는 세계적으로 규격이 정해져 있다고 했는데, 반대로 번즈의 경우는 정해진 규격이 없다. 각국에서 조달 가능한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빵은 그냥 알아서 상식적인 범위에서 맞추면 된다. 실제로 햄버거가 크네 작네는 패티의 양보다 빵의 양에 더 의존한다.

2008년 6월 5일자 100분 토론에서 뉴라이트 전국연합 측 패널 임헌조는 「맥도날드 햄버거 패티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와 내장을 갈아서 만든다」고 말해서 파문과 비웃음을 일으켰다. 한국 맥도날드 햄버거 패티는 호주 & 뉴질랜드산 쇠고기를 쓴다고 당당하게 홍보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한국 맥도날드는 소송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며 임헌조는 "자세히 알아보지 못했다"라는 희대의 망언을 터뜨렸다.

10. 황금 아치 이론

No two countries that both had McDonald's had fought a war against each other since each got its McDonald's.
맥도날드가 있는 어느 두 나라도 그것이 생긴 이후로 서로 전쟁한 적이 없다.

Golden Arches Theory.

황금 아치 이론은 경제학자 토머스 프리드먼이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주장한 이론으로, 그 내용은 '맥도날드가 있는 나라끼리는 전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황금 아치'란 맥도날드의 로고를 이르는 것이다. 맥도날드가 진출한 나라는 그만큼 구매력이 받쳐주는 안정적이고 두터운 중산층이 존재한다는 뜻이기에, 요지는 '일정한 경제 수준에 이른 나라들은 비슷한 체격의 나라와 전쟁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화로 인하여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각국 경제가 긴밀하게 얽히므로 전쟁을 안 할 때보다 전쟁을 할 때 잃을 것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때 이 이론이 다시 주목받았는데,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양국 모두 맥도날드가 진출해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으로, 아르메니아에는 맥도날드 점포가 없다. 한편 맥도날드 아제르바이잔 트위터 계정은 아제르바이잔을 응원하는 트윗을 올려서 논란이 되었다. 해당 트윗은 곧 삭제되었다. #

황금 아치 이론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대체로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정말로 "맥도널드가 진출해 있는 두 나라끼리 싸운 적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는 논쟁적이다. 이는 '전쟁'이 무엇인가, 또한 '나라'가 무엇인가에 대한 확고한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89년 맥도날드의 종주국인 미국은 맥도널드가 있는 파나마 침공했다. 이 군사행동에 대한 미국측의 입장은 "자신들은 파나마를 침공하여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마약 밀매범인 마누엘 노리에가를 체포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수행한 것 뿐이다"라는 것이다. 즉, 미국은 이것을 전쟁이 아니라고(특히 침략전쟁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한 나라가 군사력을 동원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정부수반을 체포했다면 그것은 전쟁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할수도 있고, 이 주장에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다만 이를 전쟁으로 처도 황금아치이론의 반례와 맞지 않은 게 당시 파나마 내 맥도날드 지점은 미군기지 내에 입점한 상태이었기 때문에 맥도날드가 파나마에 진출했다고 보긴 힘들다. 애초에 미군 기지내는 주재국의 법이 통하지 않는 치외법권이다. 그리고 황금아치이론 고안 이전에 파나마 침공이 발발했고 프리드먼이 그 전쟁 당사국인 미국의 시민이었으니 전혀 모를 리가 없다.

이외에도 황금 아치 이론의 예외가 될 수 있는 사례는 적지 않다. 인도 파키스탄의 양국은 카슈미르 지역의 영유권을 두고 장기간 갈등을 벌여왔고, 특히 1999년에는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까지 벌어졌다. 이는 "맥도날드가 진출한 나라 사이에서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명제에 대한 아주 강력한 반증이 된다. 하지만 그래도 꼭 황금 아치 이론을 옹호하고 싶다면 이 군사적 충돌이 카슈미르의 카길 지역이라는 제한된 범위에서, 양국의 인구 및 병력 규모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3만명/5천명이라는 제한된 병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지적하여 이는 전면전이라기보다는 격화된 국경 분쟁에 더 가깝다고 해석할수는 있을 것이다. 황금 아치 이론의 핵심이 "전쟁으로 인해 입을 손해(특히 경제적 손해)가 크기 때문에 전쟁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임을 생각할 때 카길 전쟁 정도의 '격화된 국경분쟁'은 한 국가 전체의 경제적 상황에 악영향을 끼치는 수준에는 이르지 않고, 이 때문에 해당국가가 전쟁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반론할 수 있는 것.

또 다른 사례로 1999년 나토 유고슬라비아 공습, 즉 당연히 맥도날드가 있는 나토 19개 회원국이 이미 맥도널드가 들어가있는 유고슬라비아를 공습한 상황이 있다. 특히 이 사태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가 출간된 직후 일어났기에 당장 황금아치이론이 틀렸다는 비판의 근거가 되었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프리드먼 자신이 반박했는데, 그에 따르면 코소보 전쟁은 맥도널드가 들어간 '국가간의 전쟁'이 아니라 신 유고연방(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 연합)과 그에서 독립하려던 코소보간에 벌어진 내전에 나토군이 평화유지군으로 개입한 사례이기에 두 나라 사이의 전쟁 가능성에 대한 황금아치이론은 애초부터 한 나라의 내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프리드먼의 반론에는 다소 납득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프리드먼은 '세계화는 한 나라 안에서 찬성파와 반대파간의 충돌을 부를 수 있다'는 것으로 (맥도날드가 들어가 있는) 유고슬라비아의 내전을 설명하려고 시도했지만 이 설명이 과연 '이질적 민족집단 사이의 갈등에 의한 유고슬라비아의 내전과 해체'를 적절하게 설명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황금 아치 이론이 설명하는 것이 '안정적이고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된 나라는 잃을 것이 많기에 전쟁을 선택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면, 내전 역시 국가 구성원의 재산과 안전을 파괴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왜 내전에는 이론이 적용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르게 볼 경우, '이미 별개인 국가간에 벌어지는 갈등의 폭력적 조정방법'인 전쟁과 '별개이고 싶은데 한데 묶여있는 상태의 연방국가가 폭력적으로 해체되는 과정'인 내전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으므로 '전자를 전제로 짜여진 이론은 후자에는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프리드먼이 주장한 것이 결국 '안정적이고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된 국가는 전쟁으로 인해 그 경제적 번영을 잃는 것이 두려워 전쟁이라는 수단을 선택하지 않는다'임을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국가간의 전쟁이 아닌 내전에서는 각 구성단위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다른 사례를 더 찾아보자면 2006년 이스라엘 레바논 헤즈볼라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의 예를 들 수도 있다. 그리고 이에 맞서 황금 아치 이론을 옹호하고 싶을 경우 <헤즈볼라는 합법 정당이자 정치세력의 성격도 가지고 있지만 반 서방 성향의 테러조직이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고, 반면 레바논은 중동국가 치고는 친 서방 성향이 상당히 강한 편이기에 설령 헤즈볼라가 포함된 정치동맹이 집권한다 해도 헤즈볼라의 성격을 곧 레바논이라는 국가의 성격과 등치시킬수는 없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은 국가간의 전쟁이 아닌 국가 대 무장단체의 충돌이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고 반론할수도 있을 것이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황금 아치 이론은 또 한번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맥도널드가 들어가 있으므로, 양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은 황금 아치 이론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사례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 사태가 세계에 안겨준 충격이 상당했기에 아예 해당 전쟁이 황금 아치 이론과 현실이 어긋난 첫 번째 사례라고 잘못 아는 이들도 종종 있지만, 물론 그렇지는 않다. 특히 러시아는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이미 황금 아치 이론에 어긋나는 사례를 만든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례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는 황금 아치 이론의 핵심이 <잃을 것이 많은 나라들끼리는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라는 점을 생각할 때 러시아가 전쟁으로 인해 발생할 단기적인 손실보다 우크라이나를 장악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함으로써 얻을 장기적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에 전쟁을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소위 신냉전 시대의 정세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당장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국제 정세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결과일 수 있다는 것. 사족으로 황금 아치 이론과는 무관하게 맥도날드는 침공 이후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하여 러시아 내 점포를 빼겠다고 했다.

또한 신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생각한다면 같은 현상을 토머스 프리드먼과 약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도 가능하다. 프리드먼은 맥도날드가 세워지는 것을 "상당한 구매력을 갖춘 안정적인 중산층이 형성될만한 경제적 수준에 이르렀다"는 징후로 해석했지만, 맥도널드가 가진 다른 상징성에 중점을 두어 해석할수도 있는 것이다. 본 문서에도 소개된 것처럼 맥도널드는 흔히 미국식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가장 중요한 상징 중 하나로 여겨진다. 어떤 나라에 맥도널드가 들어산다는 것은 그 나라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범 세계적 시장경제체제에 합류하였음을 보여주는 징후라는 것이다. 이 점은 구 동구권 붕괴 이후에 모스크바를 비롯한 동구권 국가의 수도에 맥도날드가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충격이자 새로운 시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반미주의적 관점으로 표현하면 대략 "맥도날드는 미제국주의의 상징이다" 정도가 될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어떤 나라에 맥도널드가 들어섰다는 것은 그 나라가 미국과 우호적인 교류관계를 구축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할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이후 국제정세에서 미국이 차지한 위상을 생각하면 맥도날드가 있는 나라는 미국의 우방국이거나, 최소한 한 진영의 중심축인 미국을 적대시하지는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이 점은 러시아가 황금 아치 이론의 예외 케이스를 자주 만드는 것에 대한 나름의 설명이 될 수 있다. 소련은 제2세계의 수장으로 미국의 라이벌이었지만 공산권 붕괴와 소련 해체로 패배한 이후의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편입되었으며 모스크바와 키이우, 트빌리시에 들어선 맥도널드는 바로 그 살아있는 증거였다. 하지만 자국의 상황을 어느 정도 추스른 후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서 빠져나와 다시 과거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패권국가의 위상을 회복하기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에는 자신의 영향권 내에 있었지만 이제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국가들을 재장악하기 위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맥도널드가 있는 나라끼리 전쟁을 벌이는 경우가 드물다"는 현상을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참여한 국가들끼리 전쟁을 벌이는 일은 드물다"라고 해석한다면, 미국에게 패배하여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있던 러시아가 그 영향력에서 빠져나오고, 또 과거에 가졌던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와 전쟁을 벌이는 것이므로 예외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물론 러시아 문제를 또 다른 방향에서 해석할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극단적인 친 러시아-친 푸틴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프리드먼이 코소보 전쟁 사례에 대해 제시한 반론과 비슷한 반론 역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푸틴 자신이 자국의 행보가 '침략전쟁'이라는 비판에 반론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논리처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한 나라였으므로 2014년의 위기든 2022년의 전면 침공이든 국가간의 전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할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황금 아치 이론은 과학적 법칙(자연 법칙)과 같이 정확하고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이론이 설명하는 대상에 대한 정의부터 이론의 적용에 대한 해석까지 사회과학 분야에서 자연과학과 같은 수준의 명확성을 기대할수도 없다. 하지만 이 이론을 현실 사회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경향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면, 종종 예외가 발생한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일반적인 상황을 설명하는데는 충분히 유효한 이론일 수 있을 것이다.

10.1. 반론

어떤 명제에 대한 예외 사례가 발발했을 때 이중해석은 전형적인 견강부회로 '글로벌 자본주의화가 된 나라끼리 전쟁을 하지 않는다'나 '미국 주도의 질서에 불합하는 나라끼리는 전쟁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할 경우 명제에 불합하는 사례가 발발하면 단순히 배제해 버리는 폐단을 낳게되어 사실상 사례를 위한 명제로써 귀납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례를 명제에 끼워 맞춘 연역이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우선, 맥도날드가 진출한 두나라끼리 전쟁이 발발했다고 치자. 황금 아치 이론 추종자는 해당 국가의 완전하지 않은 친미 경향, 자본주의를 구실로 '사실 그 나라는 저러니 황금 아치 이론은 유효하다'라고 할 만하다. 왜냐면 친미경향, 글로벌 자본주의에 완전히 편승했단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까 말이다. 설령 명백한 친미, 글로벌자본주의 국가 간에 전쟁이 발발해도 문제없다. 왜냐? 그냥 이중해석을 하나 더 고안하고 해당 국가는 사실 이러한 기준에 불합해 아직도 황금 아치 이론이 유효하다고 우기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키프로스 전쟁 당시 같은 나토소속이었던 그리스 튀르키예가 군사적으로 대립한 적이 있다.

일부 예외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적절하지 않다. 일단 맥도날드는 1955년 처음 개장했는데 애초에 1955년 이래로 국가와 국가간 전쟁 자체가 극히 드문 예외이다. 그 전쟁을 많이 한다는 미국조차도 1955년 이래로 이라크를 제외하면 국가를 상대로 침공 전쟁을 개시하진 않았다.[24] 더군다나 남오세티야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은 모두 러시아가 직접 참전한 전쟁인데 웃긴건 러시아는 맥도날드가 진출한 나라하고만 전쟁을 했단 점이다. 맥도날드가 진출한 나라하고'만' 전쟁을 수행했는데 이를 과연 일부 예외라고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2차대전 이후에 한정하여 항상 유효했던 민주평화론과는 달리 황금 아치 이론은 이미 폐기된 이론이라고 봐도 충분하며 과거 천동설이나 사회진화론처럼 옛날에 유행했던 이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1.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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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여담

9.11 테러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방영된 맥도날드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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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맥도날드 형제가 캘리포니아 주 샌 버너디노에 처음 레스토랑을 차린 시점. [2] 레이 크록이 일리노이 주 시카고 근교에 처음 프랜차이즈 1호점을 세운 시기. 현재 맥도날드에서는 이 때를 첫 시작으로 보고 있다. 1955 버거의 1955가 여기서 유래한 것. [3] 최초의 가게 창립자인 맥도날드 형제에게 사업 확장을 제안하여 프랜차이즈 사업을 영위하는 주식회사로서의 맥도날드를 설립한 인물. 미국에서는 창립과 설립을 구분하고 있다. 그의 전기를 다룬 영화의 이름이 파운더(설립자)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4] 2024년 3월 19일 보도자료에서 이사회 의장(회장)과 최고경영자(CEO)를 겸직한다고 명시되었다. # [5] 상습 홍수 지역에 위치해있어 관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맥도날드 본사가 유지를 포기, 2017년 12월 철거되었다. [6] 특히 코카콜라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데 햄버거 세트에 콜라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7] 게다가 코카콜라와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둘 다 각각 맥도날드와 코카콜라를 처음 만든 원조 창업자(맥도날드 - 맥도날드 형제, 코카콜라 - 펨버턴)보다 중간에 등장해서 맥도날드와 코카콜라를 사들인 사람(맥도날드 - 레이 크록, 코카콜라 - 에이서 캔들러)이 크게 성공했다. 유사 사례를 더 찾아보면 버거킹 스타벅스, 팬 아메리칸 항공( 냉전 시기에 자본주의권의 상징처럼 인식될 정도로 유명한 항공사였으나 1991년 파산했다)도 있다. [8] "접두사 Mac˗, Mc˗은 자음 앞에서 '맥'으로, 모음 앞에서는 '매ㅋ'로 적되, c나 k, q 앞에서는 '매'로, l 앞에서는 '매클'로 적는다." 관련 자료. [9] 비슷한 예로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가 있다. 창업자는 아니지만 중도 합류해서 새로운 시스템/전략을 구축하고 그 기업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성장시켰다는 점이 비슷하다. [10] 이 매점은 최초의 맥도날드 매점이 되었다. [11] #(8분50초께), 한 샌버너디노 출신 미국인이 자신의 고향을 돌아보는 동영상에 1호점이 나왔는데 거의 폐점 수준으로 초창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참고로 이 동영상은 몰락한 샌버너디노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본래 맥도날드 1호점 설립 당시만 해도 중산층의 도시였다고 하지만, 2022년 촬영 당시에는 게토 수준이 되어버린 마을 모습이 충격적이다. 해당 유튜버도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빈곤하고 위험한 곳이라고 할 정도다. [12] 같은 드라이브인이지만 지금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주차장 한가운데 매장을 만들고 차를 매장 앞에 대면 점원이 나와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 주는 방식이었다. 아울러 여기에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롤러걸'이라 불리던 젊은 여성 점원이었다. # 롤러 스케이트를 착용하고(신속함을 위해서) 주문받은 음식을 가져다주던 이른바 웨이트리스였다. 이는 20세기 초중반 미국 문화를 설명할 때 밈처럼 등장하는 명물이 되었다. 롤러 걸은 맥도날드 고유의 접객방식이 아니라 당시 공장이나 사무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3] 이들이 주력 메뉴로 삼은 바비큐는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이다. 느긋하게 외식으로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면 테이크아웃으로는 별로 환영받는 메뉴는 못 된다. [14] 새크라멘토 피닉스 같은 인근 지역에 지점을 냈지만 주방 위생이 불량하거나 임의로 팔릴 만한 메뉴를 추가하는 등의 행위가 지점들에서 나타났다. [15] 크록의 판단력은 정확했다. 1956년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연방 도로교통법을 시행하고 미국 전국을 잇는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라 불리는 미국 고속도로 개발 및 확장이 활기를 띄면서 장거리 여행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이에 요식업과 숙박업이 크게 혜택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16] 1955년 당시 1달러는 2024년 가치로 환산하면 약 11.65달러니 개업 당시 맥도날드 가격을 2024년 가치로 환산하면 각각 약 1.7달러/2.2달러/1.2달러/2.3달러다. 그리고 당시 미국의 1인당 GDP/일당을 2024년 가치로 환산하면 30033달러/83.4달러다. [17] 형인 모리스는 레이를 원망하며 살다 10년 후인 1971년에 심부전으로 69세에 죽었다. 동생 리처드는 1998년에 사망하며 형보다 27년이나 더 오래 살고, 크록보다도 14년이나 더 살았으며, 그가 죽을 때 남긴 재산은 180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290만 달러) 정도였다. 물론 미국에서 그 정도면 어지간한 자영업자치고는 돈을 많이 번 거지만, 지분 보유만 증명할 수 있었어도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돈을 가져갔을 테니 엄청나게 안타까운 결말. 다만 동생인 리처드는 워낙 오래 살아서 그랬는지 가족들이 분쟁에 엮이는 것을 꺼려 공개적으로 레이 크록을 비판한 적이 없고, 자신은 그를 원망하거나 과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망하고 굶어죽을 정도로 몰락한 것은 아니고 평생 먹고 살 정도의 돈은 벌었으니 굳이 판을 키우지 않고 살고 싶었던 듯. (애초에 사업을 키우고 싶은 생각도 없었던 것으로 보아 크게 일을 벌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녔던 것으로 보인다.) [18] 물론 '경영적 측면'에서 날려먹은 게 많아서 그런 것이지, 상술했듯 맥도날드를 빼앗기고도 이 형제에게 '경제적인 빈곤'은 없었다. [19] 참고로, 매우 전문적인 부동산 업자들도 정확히 하기 쉽지 않은 것이 상권 분석이다. 주거용 부동산의 경우 분양했는데 10년이 지나도 분양이 안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할인폭만 굉장하다면 모두 소화되지만,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상권분석 및 투자에 실패했을 시 경매로 모조리 팔려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20] 같은 구에 새로 생긴 맥도날드 모 매장도 바로 옆에 있던 롯데리아를 쫒아냈다. [21] 또띠아에 소를 넣고 돌돌 만 뒤 그 위에 소스를 뿌려먹는 음식이다, [22] 대략 비둘기 꼬치와 마찬가지 모양새다. 이쪽도 닭고기가 비둘기보다 싸기 때문에 비둘기를 쓸 리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23] 이에 대해서는 반발도 존재한다. STICK과 같이 마케팅을 다룬 책에서는 잘했다라고 보지만, 일반 상식을 다룬 책들에서는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4]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 민주 공화국은 당시 미승인국이었다. [25]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26] 극중 철종이 "보리(麥)와 콩(豆), 즉 보리빵과 콩고기로 만든 요리로 배(肚)를 살찌운다(妠)"고 뜻풀이를 하였다. [27] 21년 8월부터 국내에서는 JUSTOUCH만 가능. [28] 타 앱은 뱉어낸다고.. [29] 맥너겟 10조각, 음료, 후렌치 후라이, 그리고 BTS가 선택한 스위트 칠리 소스와 케이준 소스 구성 [30] 사실 이미 2019년 대한민국에 맥도날드 공식 앱이 런칭되었을 당시에도 탑재되어 있었다.(일부 국가 한정 및 사전 테스트 목적으로 보여진다) [31]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프로모션 [32] 롯데 잇츠의 경우 롯데리아만이 아닌 엔제리너스 크리스피크림 도넛의 어플도 겸하나 롯데리아때문에 포함. [33] 고장, 교체, 기타 등등 [34] 사실 핸드 스캐너부터 고정식 리더기까지 종류 · 기기 불문 (특히) 휴대폰 인식이 잘 안되면 이 방법으로 쉽게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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