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시를 작성하기 전에
- 예시 난립 및 신문고성 서술로 인한 독자연구를 막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능력 부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물의를 일으킨 인물만 추가할 것. 또한 위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해도 부자가 다른 쪽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1], 신중하게 고려할 것.
- 국가간 전쟁 및 침략 등의 상황에서 특정 국가의 시점에서는 적이나 해당 국가의 시점에서는 아군이 되는, 즉 시선에 따라 양국의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인물들(예: 광개토대왕, 칭기즈칸, 가토 기요마사, 이토 히로부미 등)은 해당 인물이 국가 차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어느쪽에서도 변호할 수 없는 능력 부족 및 실책을 저지른 인물이 아닌 이상 서술하지 말 것.
- 전근대 사회에서 국가를 무너뜨리거나 무너뜨릴 뻔한 역적이었던 인물(예: 이성계, 이방원, 안록산, 사사명, 무신 집권 시기 지배자들 등)은 그 포악함과 실책 여부가 명확하여 변호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시에는 해당 내용과 함께 서술하고, 전근대적 충성의 개념을 도입하여 단순히 역적이었다는 이유로는 서술하지 말 것.
- 또한,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 등처럼 단순한 말이나 다른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는 개인적인 물의 하나만 가지고 견부 및 견자라고 판단하는 것은 과분하기에, 이 경우는 절대로 예시에 넣지 말 것.
- 예시를 넣으실 때는 '부모 - 자식' 순으로 나열하며, 인지도가 높은 대표성이 있는 사례만 기록 바람.
- 가정적인 문제일 경우 가족의 가정 문제를 감안한다.
- 미묘하거나 애매한 경우는 †.
- 보는 시각에 따라 못난 자녀와 비교하면 호부에도, 훌륭한 부모에게 비교해서 견자에도 포함되는 경우는 ‡.
2. 국내
- 강신규 - 강은희 : 할아버지는 대구광역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고 상주 국채보상운동에 영향을 준 인물이었으나 손녀는 논란이 거센 국정교과서 의무화를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이었고,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한일 위안부 합의 및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련한 논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까이고 있다.
- 강창성 - 강규형 : 아버지는 하나회의 실체를 밝히고 파벌을 뿌리뽑으려 한 이력이 있으며, 국회의원으로서도 의정활동을 잘 했다. 하지만 아들인 강규형은 KBS 이사로 있으면서 횡령을 일삼다가 경질되었다. 다만 강창성 본인도 보안사령관 시절에 야당정치인들을 탄압한 이력이 있어, 견부견자로도 볼 수 있다.
- 견훤 - 신검, 양검, 용검: 아버지는 후백제의 창업자이자 한때 삼한통일에 근접했던 군주. 반면에 아들들은 패륜으로 권력을 찬탈하였고 아버지가 선봉으로 나선 고려군 앞에서 신하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조차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하며 패망했다. 특히 신검은 자신이 아닌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것에 불만을 품고 견훤을 금산사에 가둬버렸다.
- 고나운( 문자명왕) - 고보연( 안원왕): 아버지는 소수림왕 때부터 시작된 고구려 천지개벽 시절을 잘 갈고 닦은 명군이었으나, 아들은 후계 문제로 내란을 초래하여 고구려가 갑자기 힘을 잃어가는 계기를 만들어버렸다.
- 고무휼( 대무신왕) - 고해우( 모본왕)†: 아버지는 주변의 크고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여 고구려의 기틀을 다졌지만, 아들은 학정을 즐기다가[2] 태조대왕 세력에게 제거당했고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하지만
- 고약로( 서천왕) - 고상부( 봉상왕): 아버지는 좋은 평을 들었던 군주였지만, 아들은 시기심에 불타 동생 돌고를 살해하고 폭정을 일삼다가 결국 조카와 국상 창조리에 의해 축출당했다.
- 고을불( 미천왕) - 고사유( 고국원왕): 아버지는 봉상왕의 폭정으로 험난한 역경을 거치며 창조리 등 신료들의 도움을 받아 봉상왕을 실권시키고 왕위에 올라 봉상왕이 망친 고구려를 다시 일으켜 세웠지만, 아들은 고구려의 세력을 무리하게 과시하다가 선비족을 자극하여 그들이 나라를 짓밟고 백성들을 끔살시키고 포로로 끌고 가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고 나중에 백제의 근초고왕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
곽영범 -
이찬[3] : 아버지는 무난한 드라마 PD였지만, 아들은 혼인 신고도 하기 전에
신부를 상대로 가정 폭력을 휘두르다가 유산시키는
살인, 더 나아가면 신부의 뱃속에 있던 본인의 아이를 죽이는 패륜만행을 저질러 물의를 빚었다.
- 김구 - 김신 - 김진, 김양: 조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임정 주석. 그의 아들 김신 역시 훌륭한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이자 전쟁영웅. 두 손자 또한 독립유공자 집안과 공군을 빛내던 사람이었으나 김진 前 주공사장은 금품을 받고 택지개발 도면을 넘기는 등의 비리를, 김양 전 보훈처장은 와일드캣 도입비리 등의 군납비리를 저질러 할아버지와 아버지 얼굴에 먹칠을 하였다.
- 김대중† - 김홍업, 김홍걸 :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나 아버지는 김영삼과 함께 민주투사로 활동했고 대통령까지 역임했었으나, 차남인 김홍업과 삼남인 김홍걸은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되어 아버지의 임기 도중에 감옥을 갔다. 그나마 장남인 김홍일은 군사정권 시절 고문을 받아 불구가 된 바 있어 동정을 받긴 했으니 일단은 예외로 한다.
- 김동리 - 김평우 : 아버지는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명 작가고 뛰어난 후배 작가들을 많이 양성한 문학계의 거인이었지만 차남인 김평우는 법조인이 되어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인 박근혜 일가를 비호하고 법정에서 엽기적인 발언들을 쏟아내며 대중의 조롱과 비난을 받고 있다. 서석구와 엽기 X맨 듀오라는 오명까지 생겼을 정도(...). 만약 박근혜 변호 때 이동흡 변호사처럼 법리적으로 접근하고 재판관에게 예의를 차려서 변론하였다면 호부호자라 하였을텐데, 존경받는 원로 법조인이 어떻게 말년에 철없는 추태와 무례를 저질러서 이렇게 됐는지...
- 김부식† - 김돈중: 아버지도 결점이 적진 않고 논란도 많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고려 중기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삼국사기 저술, 묘청의 난 진압 등 여러가지 업적들을 남긴 인물이다. 하지만 아들이란 작자는 아버지의 빽만 밎고 온갖 못된 짓거리를 일삼다가 무신정변의 씨앗을 만들어 버린 못난 인간이다. 결국 아버지는 이 못된 아들놈 하나 때문에 무신정변이 발생한 이후엔 본인도 부관참시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 김여물 - 김류‡ - 김경징: 할아버지는 탄금대 전투에서 지휘관 신립과 함께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전쟁영웅, 아버지는 인간성에 문제는 있었을지언정 어쨌건 인조를 옹립한 반정공신이지만 손자라는 놈은... 직접 해당 문서를 보자.
- 김영삼† - 김현철: 아버지인 김영삼의 경우 김대중과 함께 민주 투사로 활동했고, IMF와 영남 중심의 지역주의 정치로 말이 많긴 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나름대로 금융실명제와 같은 치적도 있었고 비리를 저지른 적이 없는 청렴한 정치인이였던 반면[4] 둘째 아들 김현철은 김영삼 정부 말기에 부정부패와 비리를 저질러 감옥에 갔다. 다만 첫째아들이자 김현철의 형인 김은철은 아버지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조용히 생활했으므로 제외.
- 김종남 - 김윤태: 아버지는 경찰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들이 사고치더라도 엄한 벌을 내리지 않은 대인배. 아들이 차린 떡볶이집에 기름때를 닦았던 훈훈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 반대로 아들은 인터넷 문화를 망쳐버리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 재혼을 한 경력 때문에 신태일의 아버지와 김윤태의 아버지를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하려는 김윤태의 아버지에 비교하면 실례되는 수준.[5] 게다가 아들은 빚 내용을 거짓으로 덮어씌우고 돈을 벌어먹은 추악한 행각이 드러났다.[6]
- 김종희 - 김승연 - 김동선 : 아버지인 김종희는 기업인으로서 물의를 빚은 적이 없으나, 아들인 김승연은 1993년에 횡령혐의로 구속된 흑역사가 있으며[7] 동생인 김호연과 재산분쟁을 오래 벌이기도 했다.[8] 한동안 잠잠했지만 2007년에 차남인 김동원이 술집에서 맞고 오자, 본인이 직접 해당 술집에 들어가서 종업원들을 청계산으로 끌고가 보복폭행을 했다. 덕분에 붙여진 별명이 청계산 회장님. 이후 2012년에 또 횡령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그리고 김승연의 아들로 승마선수로 더 잘 알려진 김동선은 2010년에 성추행을 저질렀고, 2017년에는 두 건의 폭행사건을 저질렀다. 김종희를 빼고 김승연과 김동선 관계로만 보면 완전히 견부견자이다.
- 김좌진 - 김두한: 아버지는 독립 운동 항쟁을 했던 인물인데, 아들은 기회주의자에 정치깡패이다. 물론 김두한이 나쁜 짓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다시피 한 일들도 기회주의자이니만큼 불순한 의도에서 하였기 때문에 좋게 평가할 여지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 국민들 사이에서의 평판이 어떻든 행실거지만큼은 아버지보다 격이 한참 떨어진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야인시대에서 묘사되는 그 모습은 상당수가 미화된 허구이다.
- 김한수 - 김중원: 아버지는 한국에서 섬유부분 최고의 기술력과 규모를 가진 기업을 만들었고 1973년 단일기업으로서는 한국 최초로 1억불 수출을 하는 데 성공했는데 아들은 이걸 이어받고 20년만에 완전히 날려먹었다. 결국 이것 때문에 마산과 부산, 창원 경제가 작살나고 말았다. 그래서 현재 수도권과 경남권의 격차가 엄청나게 되어버린 결정타가 되고 말았다.
- 김형직 - 김일성: 아버지는 일평생을 한민족의 독립운동에 헌신했는데, 아들은 오히려 한민족을 철저히 학 살하고 분단을 겪게 한 전범 이자 7천 5백만 한민족의 철천지 피의 원수이다. 이 정도면 견자 중에서도 최강급일 듯. 사실 깊게 따지자면 김형직 또한 독립운동가로서의 공로나 인지도는 묻혀진 편이고 또 그 공적마저도 다른 네임드급 독립운동가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일본 경찰에 의해 공개수배를 당해 만주로 망명하여 활약하다가 32세 한창 나이로 공산주의자(!)에게 피살당해서 요절해버린 사람이다. 비록 공적은 초라할지언정 독립운동가로서 헌신하고 평생을 바친 아버지인데 그 자식이 최악의 독재자로 악명이 높으니... 여담으로 김일성 우상화의 일환으로 평안북도 후창군이 김형직의 이름을 딴 김형직군으로 개명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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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학 -
남평우 -
남경필‡, 남경훈 - 남주성: 남상학부터 남경필 형제까지의 3대는
호부호자, 그 증손자 중 한 명은 호부견자에 해당한다.
거의 한국의 조지 부시 부자 수준할아버지 남평우는 증조부 남상학으로부터 이어받은 경남여객을 수도권 굴지의 버스회사로 키워낸데다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아버지 남경필도 1998년 7월 재보선을 시작으로 16, 17, 18,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5선 고지를 밟았을 뿐만 아니라, 원희룡, 정병국과 함께 보수정당 내 소장파 겸 개혁파로 활동한 데 이어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사고라는 메가톤급 악재를 뚫고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 야당과의 연정으로 비교적 성공적인 협치 모델도 보여주어 차기 대선후보로도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었으며, 작은아버지인 남경훈도 경남여객 사장으로 그럭저럭 잘 경영 중이나, 큰손자 남주성은 군복무 시절 후임 폭행에 이어 중국에서 국내로 필로폰을 밀반입하고 집에서 투약을 했던 사실이 적발되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에 제대로 먹칠을 했다. 게다가 단순히 명예상으로 손해를 끼치는 수준을 넘어, 부친 남경필의 정치 커리어 자체를 위협하였으며,[9] 결국 자신의 부친인 남경필이 2018년 6월 13일날 치뤄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전 성남시장에게 큰 격차로 패배하는 작지 않은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 민경희† - 민배홍: 아버지 故 민경희 회장은 선진운수를 창업, 종사자들의 근무조건과 사내 복지와 종사자 대우는 어느 회사 부럽지 않을정도로 기반이 강한 회사로 만들었으나, 아들 민배홍 사장은 수많은 횡령 및 복지투자 미비로 인한 열악한 복지 그리고 직원들에 대한 폭행과 막말 등 여러가지 갑질로 인해 그 회사를 버스 회사 계의 광수 사장네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선진운수(서울) 문서 참조. 다만 민경희 회장 시절에도 횡령 사건이 터진 적이 있기는 하다.
- 박형용 - 박준범: 아버지는 현대차서비스( 현대캐피탈 전신) 창단 멤버로써 강만수, 김호철 등과 함께 현대자동차써비스의 전성시대를 이끌은 인물. 아들 박준범 역시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배구선수로 활동하며 10-11시즌 신인상까지 탔으나, 11-12 시즌에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돼 영구제명되면서 아버지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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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천 -
박삼구, 박찬구: 아버지 박인천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창업주, 장남인
박성용과 차남인 박정구는 그럭저럭 금호아시아나를 잘 이끌었으나, 삼남인 박삼구는 무리하게
대한통운과
대우건설을 지르다가 그룹 전체가 워크아웃에 빠지게 하였고, 4남인 박찬구는 박삼구와 사이가 틀어져 속칭 "형제의 난"을 일으켜 그룹이 찢어지고 치열하게 법정 공방을 벌였다.
박삼구와 그의 손자는 견조견손(犬祖犬孫)임이 밝혀졌다(...).[10]
- 신숙주† - 신정: 비록 부정적인 평가가 존재한다고는 해도[11] 신숙주는 능력은 뛰어났고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명재상인데, 신정은 탐욕스러워서 자기 형제의 재산을 빼앗으려고도 했고, 게다가 왕의 옥새까지 위조해서 남의 재산을 탈취하려다가 결국 적발되어 죽음을 당했다. 이 때문에 신숙주 역시 신정을 두고 저놈이 우리 집안을 망칠 놈이라고 했다고 했을 정도라고 한다.
- 신준호 - 신동학 : 아버지 신준호는 푸르밀의 회장이자 서울여자간호대학교의 이사장으로 활약 중이나 장남인 신동학은 각종 개망나니짓을 저지르고 태국 등지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 다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
유기연 -
유명한: 아버지는 깨어 있는 개화인물이자 아들인
유일한,
유특한 박사를 만든 자랑스런 아버지. 그러나 아들인 유명한은 친일파가 되어 형제들과 부모님의 명예를 더럽혔다. 유일한과 유특한도 유명한과 사실상 의절하다시피 했고, 결국 유명한은 6.25 전쟁 와중 쓸쓸하게 죽었다.
정의구현
- 유길준 - 유만겸, 유억겸: 서유견문의 저자로 유명한 아버지는 을사조약과 경술국치를 반대했던 애국자. 하지만 장남 유만겸은 일제의 중추원 참의직을 지낸 거물급 친일파였으며, 그나마 신간회 등의 독립운동을 했던 차남 유억겸은 일제 말엽에 친일행위를 해 본인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저버렸다. 그나마 유억겸의 경우 광복 이후 체육의 기틀을 닦았던 인물이라는 점은 장남 유만겸에 비해서는 나은 편.
-
안중근 - 안현생,
안준생: 알다시피 아버지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영웅이였으나 장남 안분도는 의문사를 당하고[12] 안준생은 일제의 압박에 못 이겨 변절,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공개 사죄하는 퍼포먼스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분개한 김구가 해방 후에 중국 당국에 처형 요청을 했지만 중국 당국이 거절했다고 백범일지에 적고 있다.[13] 그렇긴 해도 중국에서도 잘 살던 건 아니고 꽤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으니[14] 인과응보라 하겠다.현실에서 몇 안되는 자업자득그리고 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동정론도 일부 있다.[15] 참고로 안준생은 친일파 명단에도 실려 있다. 그리고 그의 누나 안현생 역시 박문사에 사죄의 참배를 올렸다. 다만, 안준생은 일제에 의해 친일파로 변절한 것으로 조작되었다는 증언과 증거들이 나오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실제로 그가 친일파였다는 기존의 주장과 일제의 언플에 불과했다는 설이 주류 학계에서 팽팽히 맞서고 있으므로 일단은 취소선으로 처리했다.[16]
- 연개소문(일각에서는 †) -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아버지는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독재자였지만, 그래도 자신의 나라인 고구려를 지키기 위해서 전심전력으로 노력했으나, 아들들은 사이좋게 화합하면서 고구려를 지켜야 한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안 듣고 권력을 얻으려는 세력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고서 서로 싸워댔다. 일단 맏아들의 경우 동생들을 함부로 의심하다가 쫓겨나고 나서 조국을 당나라 에다 갖다 바쳤으며, 둘째아들은 형을 궁지로 몰아넣어 그 원인을 제공했고, 셋째아들 또한 형들과 싸움질만 하다가 보장왕을 이끌고 투항하여 고구려의 멸망을 초래했다. 아버지와 아들들의 행동이 완전히 상극이다. 그나마 차남 연남건은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항복을 거부한 채 항전함으로써[17], 가문의 명예를 지킨 덕택에 연개소문의 다른 자식들에 비해서는 평가가 나은 편이다.
- 왕전( 공민왕)† - 왕우( 우왕): 아버지는 고려를 구하려 한 개혁군주였지만[19] 아들은 고려의 멸망을 재촉한 암군으로 무리한 요동정벌을 꾀하려다 위화도 회군을 초래하여 위화도 회군 이후 축출되어 귀양지인 강릉에서 죽었다.
- 유림 - 유원식: 단주 유림은 일제강점기의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였다. 외아들 유원식이 일본군이 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된 유림은 그와 부자 인연을 끊기도 했다. 또한, 사위가 이승만 정권의 고위 경찰 간부로 승진하자 딸의 집안과도 인연을 끊었다고 한다. 그러나 며느리(유원식의 부인)의 부고를 듣자 병원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고는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똑같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 이연(선조)† - 이진(임해군), 이혼(광해군)‡, 이보(순화군), 이부(정원군) : 선조의 경유 그 의심병과 그 의심의 대상이 민족의 성웅 이순신이었다는 것 때문에 평가가 박하기는 해도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를 빼면 능군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자식농사의 수준을 보면 이건 망한 것을 넘어선 무언가다. 특히 임해군은 동생인 광해군에 의해 사실상 사사되었는데, 행패가 얼마나 심했는지 당파를 초월해서 그를 죽이라는 상소가 끊이지 않을 수준이었다. 광해군도 왜란기에 명군의 자질이 보일 만큼의 재능과 인품이 있었지만 선조가 끊임없이 괴롭히고 견제하는 바람에 흑화. 결국 인조반정으로 쫒겨나고 말았다. 순화군도 왜란기에 무려 10대 초반이라는 나이로 임해군과 함께 깽판을 치다가 포로가 된 기록이 있으며, 정원군 또한 개차반이었던 행실로 악명을 떨친 바 있다. 그리고 정원군의 아들은 그나마 리즈 시절이라도 있었던 조부, 삼촌과 달리 일대기 자체가 흑역사인 암군으로 등극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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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세종) -
이유(수양대군), 이구(임영대군): 사실 이들은 능력만 보면 호부견자의 견자라고 불릴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았다. 다만 수양대군이 분수를 모르고
분수에 맞지 않는 묘호를 쓰고 있는 데다가
정통성도 없는 주제에 능력까지 없었던 군주로 폄하되는 경우가 많지만, 어쨌든 그가
능양군과 달리 어느 정도 능력은 나름대로 갖춘 군주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임영대군 또한 화포 전문가로
형과 함께
화차 개발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임영대군은
답이 없을 정도로 심하게 여색을 탐하는 호색한이었으며, 수양대군은 명분도 전혀 없는 오로지 자신의 제위에 대한 욕망으로 집권했으며 이후
조카는 물론이고 동복 형제들까지 싸그리 몰살시킨
인간 말종이다. 즉 전혀 무능한 것은 아니지만[20] 인성이
막장이라서 호부견자라는 평이 나오는 것이다. 여담으로 임영대군의 증손자 중 하나가 모견도를 그린 화가
이암이다.
- 이방원(태종) - 이제( 양녕대군): 아버지는 건국된 지 얼마 안된 조선에 피바람을 일으키긴 했어도 500년 조선 왕조의 기반을 다진 명군이었지만 정작 장남인 양녕대군은 순 망나니. 거기다가 아버지 태종과 동생 세종이 사망한 이후 수양대군을 부추겨 다시 한번 왕실에 피바람을 몰고 오게 한 만악의 근원이다. 그래도 다른 아들들은 선량하고 똑똑한 편이었으며, 특히 그 셋째아들이 전무후무의 업적을 이루었다.
- 이석영 - 이규서: 아버지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화신이자 위대한 독립운동가. 그러나 아들은 삼촌인 이회영을 밀고해서 죽게 만든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패륜아. 게다가 차라리 안준생은 동정하는 여론도 있고 독립운동가였던 친척들이 옹호라도 했지[21], 이 쓰레기는 옹호론이 일절 없다.
- 이중섭 - 이태성: 아버지는 비록 불행한 삶을 살다 40세의 나이에 요절했지만 한국 미술계의 큰 획을 그은 화가였으나 아들 이태성은 아버지가 그리지도 않은 위작 그림 작품들을 아버지가 그린 그림이라고 속이기까지 하며 경매에 팔아넘긴 최악의 사기꾼.
- 이재철 - 이명희 - 조현아, 조원태, 에밀리 조: 호외조부견모수외손(虎外祖父犬母獸外孫). 아버지 이재철은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집 명령을 받게되자 일본군 대신 한국광복군에 들어가는 것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22] 광복 후 교통부 차관을 지냈다. 교수 시절에는 제자들이 사법고시에 많이 합격할 수 있도록 도와 존경을 받았다고 하며, 과학기술처 차관 시절에는 가뭄 피해를 입은 이재민을 위해 기부금을 낸 적도 있다. 교통부 차관 시절에는 용산역에서 사고가 나자 직접 현장에서 사고 수습을 지휘했다. 그러나 딸 이명희는 날마다 자택에 직원들을 불러 욕설을 하는 등 화풀이를 하고 심지어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공사장에 들어가 자신을 실수로 할머니라고 부른 직원을 폭행하고 여직원을 밀치고 서류를 마구 던지는 갑질행위를 일삼았다. 또한 이명희의 자녀들인 조현아, 조원태, 에밀리 조 3남매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호전적이고 잔악한 기질을 물려받은 탓에, 갑질논란으로 국제적 망신거리가 되었다. 또 외손 삼남매들은 친할아버지와 비교해서 보더라도 호조견부수손(虎祖犬父獸孫)이다.
- 이하응( 흥선대원군) - 이재면( 흥친왕), 이형(고종): 아버지는 쇄국정책으로 논란이 있고[23] 무리한 경복궁 중건이나 당백전[24] 발행 등등의 잘못된 정책도 있어서 비판받지만, 행보상으로 보면 아들이 왕좌에 오르자마자 섭정 시절 강력한 정치 체제 확립과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 및 민씨 일파 척결 그리고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외세를 물리치는 등 국가 수호와 부패 척결을 통해서 조선 왕조의 존속에 마지막 희망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맏아들이란 놈은 조선의 왕족인 주제에 일본에게 거액에 은사금을 받은데다가 적극적으로 친일의 개가 되어 이씨왕조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 둘째 아들 고종은 친일행위를 하거나 민족배반을 한 막장 왕은 아니었지만, 왕으로써의 자질과 정치 지도력이 아버지 흥선 대원군보다 한참 모자란 것이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집권하자 세도가문들을 일격에 제압했지만, 고종은 민씨 일족 하나도 제어하지 못했다. 그리고 본인도 실정을 저질러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는 계기를 제공하고야 만다. 실제로 동학농민운동 때 대원군을 복귀시키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것만 봐도 아버지보다 무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혈(성종) - 이융( 연산군): 아버지는 조선 왕조의 기틀을 세운 성군 겸 명군이었지만, 아들은 조선 최악&유일한 폭군이자 조선의 3대 막장 군주 중 하나. 물론 성종 대에서 조선의 이런저런 모순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종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나름대로의 노력을 다했던 임금님을 중도에 권력의 단맛에 취해서 미쳐 돌아버린 아들과 비교하는 것은 실례 겸 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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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만 - 장제국,
장제원‡ - 장용준(
NO:EL) : 조부 장성만은 교육자로
동서대학교 설립자였고, 장남 장제국은 동서대 총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차남 장제원은
철새로 욕을 먹긴 하지만정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2016년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활약한 청문회 스타이기도 했다. 다만 장제원의 외동아들인 장용준은 래퍼 및 뮤지션으로서의 역량은 매우 뛰어나나, 본인의 잘못된 행실로 큰 곤혹을 치렀으며, 아버지 장제원의 정치적 커리어까지 위협하기도 했다. 다만 장제원의 경우 바른정당 탈당사태에 동조하면서 철새의 대명사가 되어 자한당이나 바른미래당 양쪽 지지자들에게 둘 다 욕을 먹는 처지가 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 설상가상으로 경찰을 미친개로 비하하는 말을 해서 물의를 샀다.
- 정인보 - 강석진 : 외할아버지는 건국훈장까지 받은 유명한 역사학자 및 국문학자다. 외손자도 서울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되었으나 여학생들을 성추행해서 교수직에서 물러나는 건 물론 실형까지 받게 됐다.
- 정청래† - 정청래의 셋째 아들 : 아버지인 정청래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 국회의원으로, 아버지도 뺑소니와 막말 등 꽤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래도 19대 국회의원 재임시절에 의정활동 성적이 우수한 국회의원 중 한 명이었고 행정안전위원회 간사까지 맡았었다. 또한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에 큰 활약을 보여주는 등[25] 많은 국민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셋째 아들은 동갑내기 여학생의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가슴을 만지고 싶다'라는 등 지속적인 성희롱 메세지를 날리는 등 온갖 성범죄를 저질러 아버지의 명예를 제대로 먹칠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정치적 커리어까지 위협했다.
- 조중훈 - 조양호‡ -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 할아버지인 한진그룹의 창업주 조중훈은 대한항공을 대기업으로 키운 굴지의 기업인이자 담배를 찾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본인이 혐연가인데도 불구하고 담배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정도로 인품이 좋았다. 하지만 아들인 조양호는 한진그룹을 그럭저럭 잘 운영한 편이긴 하나 비리를 저질렀던데다 조남호를 비롯한 동생들과의 분쟁으로 한진그룹이 찢어지게 만든 과오를 저질렀다.[26] 게다가 큰손녀 조현아는 땅콩 회항으로 대한항공의 명성에 먹칠했고 손자 조원태는 누나보다 더 심각한 행실을 보여준, 그야말로 인면귀심의 소유자다. 막내 겸 작은손녀 조현민은 언니의 행패를 임직원 전부에게 넘기는 듯한 발언 등 경박한 언행들로 물의를 빚었고, 내부고발자에 대한 복수를 암시하는 문자를 보내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회사 직원과 광고대행사에 갑질과 욕설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야말로 기업계의 호조견부수손(虎祖犬父獸孫)이 따로없다.
- 차승원 - 차노아† : 모델 출신 배우 중 가장 성공한 배우로 손꼽히는 아버지 차승원과 달리 아들 차노아는 마약에 손대거나 미성년자를 폭행하는 등의 여러 사건에 휘말렸다. 심지어 차승원은 본인의 이미지가 깎일 것을 각오하고 이런 아들을 지키려는 노력을 보여서 좋은 의미로서 멘탈갑으로 칭송받고 있다. 심지어 차노아는 차승원의 친아들도 아닌데! 그래도 친부사건 이후로 정신 차렸는지 헬스 트레이너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 최능진 - 최필립: 최능진은 일제강점기 시기 안창호 계열에서 활동하였던 독립운동가, 해방 후에는 경찰관 주요간부로 지내면서 경찰內 친일반민족 세력들 상대로 맞서 싸우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반면 그의 아들 최필립은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내 친일반민족 세력과 독재정권 밑에 기어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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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오 -
최덕신: (
김일성의 스승이라 북으로 간 것만 빼면)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와는 달리 아들은
거창 양민 학살사건과
동백림 사건의 주범으로 권력에서 소외되자 아예
북한으로 튄
학살자이자
종북 민족 반역자.
헐
- 최무선 - 최해산: 아버지는 고려 말엽부터 평생을 다 바쳐 화포 발명과 개량에 힘썼던 인물로 직접 출진하여 왜구를 격파하기도 했다. 아들 최해산 역시 화포 개량에 힘써 세종대왕에게 중용되었으나 세종 때의 파저강 정벌 때 총대장 최윤덕의 명령보다 진군을 늦게 해서 파면될 뻔 했으나 이때는 세종이 비호하여 넘어갔었다. 이후 북방의 강계 부사로 임명되었으나 여기서도 직무유기와 공금횡령 등을 고의[27]로 벌이다가 결국 탄핵되고 아예 변방인 어연 땅으로 유배되었다. 즉 화포 개량의 업적은 둘 다 있으나 장수나 공직자로서의 책임감은 최해산이 한참 뒤처진다.
- 최윤동 - 최세창: 아버지 최윤동은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과 광복군에서 활동하면서 조선 민중들을 해방시키려고 한 이름난 독립운동가였으나, 아들 최세창은 제3공수특전여단장을 맡으면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고, 부마항쟁과 광주 민주화 운동 때 강경진압을 지시하며 대규모 유혈사태를 야기하는 등 정치군인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통받게 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 최윤성 - 최태민 - 최순실, 최순득: 최태민의 아버지인 최윤성(1892~1945)은 독립유공자이다. 최윤성은 1919년 3.1 운동 때 기미독립선언서 1천여장을 인쇄해 배부한 뒤 피신했고,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징역 8월을 선고받고 1년여 정도 감옥에서 지냈다. 그는 1990년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최태민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가 독립운동으로 가산을 탕진해서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산까지 나라를 위해 헌납한 아버지와 달리 정작 최태민은 일제강점기 순사 출신인데다가, 해방 이후엔 사이비 종교인 영세교를 창시하고 박근혜를 현혹시키며 보이지 않은 곳에서 실권을 누리고 정계를 휘저어놓아 한국의 그리고리 라스푸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게다가 죽은 후에도 자기 딸이 한국 역사상 최악의 국기문란 사건을 일으키며 부를 누리도록 기반까지 마련해 놓았다. 이쯤 되면 보이지 않던 매국노이자 인간 쓰레기다.[28]
- 최진실 - 최준희: 엄마는 1990년대를 상징하는 국민배우이지만, 딸은 그런 엄마의 명성을 이어가기는 커녕 자기 외할머니를 인간 말종으로 모는 자작극이나 일으키면서 제대로 어그로를 끌어버린 패륜아이다. 다만, 이런 최준희도 무조건 패륜아로 몰기도 좀 그런 것이, 최준희는 어릴 때부터 영 좋지 않은 가정사 때문에[29] 고생을 꽤나 했는데, 이런 것을 보면 관심이 필요했던 어찌 보면 안쓰러운 사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한봉수 - 한민구: 조부는 의병장에 4년 6개월동안 33전 1패의 전과를 거둔 명사수에다 나라를 위해 모든 걸 바친 독립유공자, 손자는 육군 대장까지 지낸 군인이었으나, 정작 행정 장성에 가까운 사람이어서 여러모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국방부 장관이 되고 나서 "방산 비리는 생계형 비리"라는 희대의 망언을 하는 바람에 전국민들과 군인들에게 어그로를 제대로 끌며 똥별 인증을 해 버렸다. 또한 탄핵 기각시 계엄령 선포 같은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저승에 있는 조부가 무덤에서 일어나 분노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 홍언박 - 홍사우 - 홍륜: 할아버지는 문하시중을 지낸 중신이자 목은 이색과 같이 문하에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선비이며 김용의 난 당시 끝까지 조정에 충성하다가 살해당했고, 아버지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당시 맹활약한 명장인데다 인망도 있는 인물이었으나, 그 손자이자 아들인 홍륜은 공민왕의 후궁과 간통하는 것도 모자라서 공민왕을 시해하는 반역죄까지 저질렀다. 결국 이 아들의 죄로 인해 아버지 홍사우까지 연좌되어 처형당하고 만다. 홍사우는 이런 아들의 인성을 일찌감치 알아서 공민왕에게 제발 홍륜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간언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 황희 - 황중생, 황보신: 황희 본인도 이런저런 스캔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선 최초, 최고의 명재상으로 이름을 남겼으나, 그 아들들은 음서로 벼슬자리에 오른 주제에 동궁전의 물건을 훔치고 토지를 횡령하는 등의 죄를 저지르는 추태를 보였다.
3. 해외
- 게르마니쿠스 - 칼리굴라: 아버지는 아우구스투스 및 티베리우스 황제 휘하에서 게르만족을 평정하고 군단의 반란까지 막은 로마 제국의 1등 공신으로써 말라리아로 일찍 죽지 않았다면 차기 황제까지 기대할 수 있는 인물이었던 반면, 그 아들은 원로원의 통치 능력이 쇠퇴한 것을 꿰뚫어보고 암살 위협에 대비하여 직접 경호 체제를 개편하여 내부에서 배신하기 전까지 안전을 보장받을 만큼 머리는 좋지만, 통치능력이 없고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것만 생각한지라 나라를 제대로 말아먹었다.[30]
- 고노 요헤이 - 고노 다로: 아버지는 장관 시절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사죄한 양심적인 정치인이었지만 정작 그의 아들은 외무상 장관으로 임명되어 아베 신조 정권의 부역자 노릇을 하며 자신의 모국이 일제 시절 자행한 악행들을 부정, 왜곡하는 망언들을 쏟아내며 일제의 최대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의 분노를 사고 있다.
- 고바야시 아세이 - 고바야시 아사오: 아버지는 원로 CM송, 특촬, 애니메이션 주제곡 작곡가로서 존경받고 있으나 아들은 불륜 논란, 사기 논란을 빚은 데 이어 성추행, 아동 포르노 제조, 매춘 혐의로 체포되는 등 인생을 스스로 망쳤다.
- 고환 - 고연 제외한 북제 군주들. 아버지는 맨몸으로 일어나 이주씨의 난을 제압하고 동위를 건국. 그나마 동위 황실에 대한 존중을 보였다. 그러나 장남 고징은 능력만 좋았지 도덕적으로 막장인데다 황권을 무시하는 행보를 보였고 결국 포로 출신의 시종에게 암살. 동생 문선제 고양은 한술 더떠 동위에서 선양받아 북제를 건국한 이후 원씨황족의 씨를 말려버리고 술주정이 심하며 공포정치를 펼침. 그다음의 동생 효소제 고연은 1년의 짧은 제위에도 열심히 국정을 펼쳐 그나마 북제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군주라는 평가를 받지만 조카의 자리를 찬탈하고 사사시켰다는 정치적 결점이 있음. 그다음 형의 뒤를 이었던 무성제 고담은 마찬가지로 어렸던 고연의 태자를 살해. 그나마도 형들만큼의 능력조차 없었고 향락에 빠지며 간신들을 중용하여 북제가 이때부터 북주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기울어짐.
- 금세종 - 위소왕: 아버지는 중국사의 역대급 폭군들 중 하나였던 선대 왕 때 시작된 폐단을 모두 수습하고 막장 상태였던 금나라를 최전성기로까지 끌어들인 먼치킨 명군이지만, 아들은 장종의 유복자를 임신 중이던 후궁을 피살당하게 만든 후 즉위한 건 그렇다고 쳐도[31] 칭기즈 칸 설득에 실패하고 오히려 그의 기세에 눌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다가 몽골에 금나라 정복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궁정분란을 초래하여 암살당했다.
- 나이젤 피어슨 - 제임스 피어슨: 나이젤 피어슨은 현역시절 명문팀에서 활약하진 않았지만 거진 20년동안 400경기가 넘게 소화한 베테랑이었으며 레스터 시티를 지도할 당시엔 2번의 승격[32]과 EPL 승격 직후 극적인 잔류를 이끈 능력있는 지도자였다. 그러나 아들은 태국에서 미성년자 성매매+인종차별+변태행위 강요 라는 심각한 병크를, 그것도 영국도 아닌 구단주의 나라에서 저질러 축구판에서 퇴출되었다. 게다가 실력조차 형편없어서 1군 경기는 전혀 못나오고 리저브에서나 간간이 나올 수준이었다. 더 안습한 것은 아버지도 구단주의 눈에 찍혀 경질되었으며[33] 후임 감독의 업적이 워낙 어마어마해서 이 분의 업적이 상당부분 뭍혔다.
- 나하스 - 하눈: 아버지 나하스는 암몬의 왕으로 다윗과 우호적인 관계였으나, 아들은 아버지가 죽자 조문 온 다윗의 신하들을 정탐꾼으로 간주하고 크게 모욕했다. 그리고 시리아 용병들을 고용해 다윗을 치려 했으나 도리어 대패하고 만다.
- 넬슨 만델라 부녀: 남아공의 대통령을 역임한 넬슨 만델라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인권운동가이자 정치가. 그는 자서전 인세와 펀드 27개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딸 마카지웨와 제나니는 '만델라'라는 이름을 브랜드로 와인, 의류업체를 운영하여 1,000만 파운드(약 170여 억원)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넬슨 만델라는 그 재산이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기를 원했으나, 딸들은 넬슨 만델라의 사망 이후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분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를 둘러싼 비판에 대하여, 넬슨 만델라의 딸인 마카지웨는 '만델라'는 자신들의 이름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 넬슨 피케 - 넬슨 피케 주니어: 피케 본인은 알랭 프로스트, 아일톤 세나, 나이젤 만셀과 함께 80년대의 포뮬러 1을 대표하는 드라이버면서 브라질인 최초로 트리플 챔피언을 달성했지만 아들은 크래쉬 게이트로 인하여 몰락하였다.
- 노리히토 - 쓰구코 공주: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은 심장마비로 젋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일본 황실에서 개방적이고 깨인 인물로 여러 활동을 많이 했으며, 비슷한 성향인 나루히토 황태자와도 친하게 지내며 그의 힘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노리히토 친왕의 3녀 중 첫째인 쓰구코 공주는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 유학하던 중, 방탕하고 문란한 이성관계로 추문을 빚어 유학을 중단당하고 귀국하였다. 그녀는 2008년 9월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에 입학하여 2013년 3월 졸업했으나, 입학 및 졸업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있다.
- 노혁[34] - 노기: 안사의 난 당시 충절을 지켜 죽은 노혁과 달리 노기는 나라를 말아먹을 뻔한 간신이 되었다. 노혁의 장례를 치러 준 안진경을 사지로 보내 죽게 만든 것부터 해서, 주차-이회광의 난 당시 각종 뻘소리를 내뱉어대고, 그 말을 믿은 당덕종 및 당나라의 조정 대신들이 봉천에서 하마터면 몰살당할 뻔했다.
- 다윗 - 솔로몬† - 르호보암: 시조 다윗은 사울 왕 치세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고를 부유하게 만들었으며 대외 원정에서도 연전연승하며 이스라엘 역사상 최전성기를 이룩했고, 신앙적으로도 잘 행동하여[35] 훗날 예수를 배출할 혈통을 보증받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먼치킨이었으나, 2세인 솔로몬은 아버지가 애써 가득 채워놓은 국고를 토목 사업에 죄다 거덜내었으며[36] 말년에 종교적으로도 타락한 모습을 보여 하느님에게 받은 아버지의 유산, 즉 이스라엘 왕국을 회수당할 위기에 처한다. 죽은 아버지 얼굴을 봐서 반 정도는 남겨두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래도 솔로몬 치세에는 국력이 꽤나 성장한데다가 개인적으로도 지혜의 대명사로 통하여 그렇게 까이지는 않는데, 3세인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왕국이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열하는 걸 막지는 못 할망정 오히려 앞당긴 무능하기 짝이 없는 왕이었다.[37]
- 당태종 - 당고종: 측천무후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다지만, 황권을 제대로 유지한 아버지에 비해 아들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애초에 당고종이 제대로 된 인물이었다면, 측천무후는 그냥 당고종의 황후로만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38] 하지만 이 부분은 당태종이 "내가 겪은 골육상쟁을 자식 대에서는 반복하게 하면 안 된다"고 유능한 차남을 냅두고 유순한 3남에게 양위했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책임이 있기는 하다. 다만, 3남에게 양위한것에 관해서 당시 권신이었던 장손무기가 꽤나 많은 영향을 발휘했었다. 당고종은 장손무기의 조카였다.
- 데이메이 황후 - 쇼와 덴노: 어머니 데이메이 황후는 관동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을 돕고 사망자들을 위로했으며, 나병 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나병의 치료 및 구제사업을 최초로 시행했으며, 황실의 큰어른으로서 국민들이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황족들만 피난 가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피난을 거부하는 등, 그야말로 국민을 가족처럼 여긴 이상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큰아들인 쇼와 덴노는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고, 일본의 전쟁범죄를 명령했다. 그리고 731 부대를 창설한 것도 쇼와 덴노다.
- 도미나가 교지 - 도미나가 야스시 : 일본 입장에선 견부호자이지만 한국과 중국 등 일제 전쟁 피해국 입장에서는 정반대이다. 도미나가 교지는 이시이 시로의 세균전을 반대하기도 했고 마닐라 대학살 당시 최선을 다해서 필리핀 민간인들을 지켜냈다. 심지어 아군인 일본군과의 전투까지 할 각오를 하면서! 아들 도미나가 야스시는 용기 있게 카미카제에 지원했지만 카미카제 자체가 좋은 게 아니니...
- 레오폴드 1세 - 레오폴드 2세 - 아버지 레오폴드는 신생 독립국 벨기에의 첫국왕으로서 뛰어난 외교능력과 정치능력으로 외세와 혁명의 바람속에서 벨기에와 왕가를 탄탄히 다진 국왕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아들 놈은 콩고에서 엄청난 학살을 벌여서 히틀러 이전에 유럽 최악의 학살자로 평가받는다.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있던 당시 서양권에서도 레오폴드 2세의 흑인 학살을 두고 엄청난 비판을 쏟아냈다. 그리고 아버지 레오폴드 1세는 죽은 전처를 그리워하며 정부까지 두었지만 그래도 재혼한 아내를 존중했던 것과는 다르게 레오폴드 2세는 아내를 개무시했다.
- 리하르트 브루노 하이드리히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아버지는 훌륭한 독일의 작곡가였다만... 그의 장남인 라인하르트는 학살을 저지른 천하의 전범 되시겠다. 당연하지만 차남인 하인츠는 호부호자에 해당한다.
- 릭 플레어 - 데이빗 플레어, 리드 플레어: 아버지는 전설적인 프로레슬러이지만, 장남은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 주는 푸시도 못 받아 먹을 정도였으며, 차남은 생전에도 폭행, 음주운전, 헤로인 소지 혐의로 체포되는 등 문제를 일으킨 적이 많았다고 하며 마리화나 중독이었다가 결국 사망한다. 반면 장녀 메건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으며, 차녀 애슐리 플레어는 프로레슬러로서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 모하메드 하디드 - 지지 하디드, 벨라 하디드, 앤워 하디드: 아버지는 이스라엘군에게 땅과 집 다 뺏긴 팔레스타인 난민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스스로 자수성가하여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지만 미국으로 이민을 온 후 낳은 딸과 아들들은 각각 패션모델이 되었으나 인종차별 논란으로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하고 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철학자 아버지와 검투사 아들. 아버지는 병든 몸으로도 국경 안정을 위해 게르만족과 전쟁하다 전선에서 죽었지만, 아들은 황제가 되자마자 재빨리 강화조약을 맺고 돌아온 뒤로 국정은 거의 하지도 않다가 측근에게 살해되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암군 하면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
- 마가렛 대처 - 마크 대처: 평가가 많이 엇갈리긴 하지만 '철의 여인'이라고 불릴 정도의 여걸인 어머니에 비해 아들은 무기 밀매, 용병단 운영, 쿠데타 사주 등의 지저분한 중범죄를 저지르다가 적발되었고 어머니의 후광과 거액의 보석금으로 간신히 풀려났다.
-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 하릴랄: 간디의 장남이나 차남.삼남.사남과 다르게 아버지의명성에 먹칠을 많이했다. 간디가 남아프리카에 있을때 인도로 유학을 와서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한뒤 이혼을 하고 재혼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팔아 돈을 빌린뒤 때먹기도 하였으며 힌두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였다.[39] 그리고 하릴랄은 40여년을 알코올 중독으 로 시달리다 1948년 아버지가 사망한뒤 몇 달뒤에 사망한다.
- 마리오 체키 고리 - 비토리오 체키 고리 : 아버지는 별 탈 없이 ACF 피오렌티나 구단주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줬으나 아들은 제 성질 못 이겨 구단까지 날려먹었다.
- 마틴 루터 킹 - 마틴 루터 킹 3세, 덱스터 스콧 킹, 버니스 킹: 아버지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흑인 인권 운동을 벌여 흑인들은 물론 양심적인 일부 백인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았고 1964년에는 35살의 나이에 노벨 평화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존경을 받은 위인이지만 그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두고 치고받고 싸워 아버지의 명성에 먹칠을 했고 그러다가 막내 버니스가 두 오빠들이랑 의절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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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에 쥬시로[40] & 미즈카와 야에코[41] -
마츠카타 히로키 : 사생활적인 면에서다. 부모는 서로 사별할 때까지 평생을 해로하고 한 해 터울로 세상을 떴지만, 장남은 그야말로 사생활이 막장이기 때문.[42] 반면 동생
메구로 유우키와 비교하면
호부호자.
- 메이지 덴노 - 다이쇼 덴노 - 쇼와 덴노: 메이지 덴노는 한국, 중국 입장에서는 많은 피해를 주었던 인물이지만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여 서구 열강과 대등한 파워를 마련할 수 있도록 기반을 장착한 명군이다. 아들인 다이쇼 천왕 역시 머리가 우둔하기는 하였지만 천왕으로서 정도를 넘지 않았고 성격 역시 선량하여 한국의 영친왕이나 구황족들이 잘 살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에 반해 그 손자는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일본군 위안부 등으로 할아버지가 이룩한 일본제국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 모리 모토나리 - 모리 타카모토 - 모리 데루모토[43]: 할아버지는 뛰어난 지략을 발휘해 쥬고쿠의 패자가 되었고, 아버지도 온화한 성격에 군사 및 외교에 재능이 있었으며[44]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성실하고 온화한 성격[45]에 둘 다 아내를 매우 사랑했다면. 모리 데루모토는 부하인 스기 모토노부를 살해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취하고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세키가하라 전투 때 판단을 잘못해 서군의 패배를 자초하며[46] 가문을 몰락시켜 버렸다. 그나마 아예 싸우지 않은덕분에 가문이 멸문당하지는 않았지만 고쿠타카가 120만석에서 30만석으로 엄청 줄어들었으니 완전 몰락이나 마찬가지이며, 이마저도 원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테루모토를 죽이고 완전히 뺏으려 했으나 테루모토의 친척인 킷카와 히로이에가( 킷카와 모토하루의 3남) 담판을 해서 테루모토의 아들과 첩을 인질로 잡는 조건에서 이 정도로 끝냈으며, 안코쿠지 에케이을 처형하는 대신에 몰락은 면한 것. 다만 가문 몰락 이후에는 생각보다 괜찮은 활약을 펼친다. 내정면에서는 친족들을 억누르고 정치력이 뛰어난 인물인 마스다 모토나가를 등용하여 내정을 닦았고, 오사카 성 전투에는 비밀리에 도요토미를 지원하고, 가문 대대로 반드시 도쿠가와에게 복수할 것을 맹세하는 의식을 만들어서 전수하는 등... 덕분에 훗날 테루모토의 자손들은 에도 막부를 몰락시키고 정한론을 실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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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수 -
모용보,
모용희: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희대의 걸물로 평가받았고 망한
연나라를 다시 일으켰는데, 아들 가운데 하나는 그걸 또 말아먹고 다른 하나는
수양제의 프로토 타입이었다.
대신 모용농이 있긴 하지만…
- 미치코 황후 - 후미히토: 어머니 미치코 황후는 학창 시절 성적도 우수했고, 다재다능했으며, 황태자비와 황후로서 모범적이었다. 반면 차남 후미히토 친왕은 공부를 지지리 못 했으며, 어려서부터 행실도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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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즐 -
보협,
보천: 아버지는
오나라의 승상 중 하나이지만, 장남은 멍청하게 수성하다가 밖에 있던 30만 군량과 병사들을
문관에게 탈취당해 그 문관이 이릉현을 설치했다. 즉 이릉 성은 지켰지만. 이릉은 못 지켰다. 그리고
겨우 병사 2천 명을 거느린 지휘관에게 털리는
똥별이고[47], 차남은 제2의
한종이다. 결국
육손의 아들
육항에게 처형되었다.
한종이나 보천이나 어째선지 대도독 2세들에게 처형당한다.
- 반장† - 반평 : 아버지의 성격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었지만 능력이라도 있어서 손권의 옹호를 받았으나 아들은 그런 것도 없어서 추방당했다. 게다가 반장의 아내는 건업에 살 수 있게 해 줘서 어머니와도 생이별까지 하게 됐다.
- 비렌드라 - 디펜드라: 아버지는 교육 정책에 관심을 쏟고 민생을 살피기 위해 발로 뛰며 입헌군주제를 도입하여 지금까지도 평이 좋은 성군이나 아들은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관총을 살해한 패륜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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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소,
왕원희 -
사마염†: 아버지는
서진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어머니는 검소함을 몸소 실천한 태후였으나 아들은
암군 그 자체. 다만, 사마염의 체제가 지주 사족계급의 영향력 하에서 출범한 점에서 한계가 명백한 데다, 초기에는 나라를 잘 다스렸고 통일
중국을 이룬 점을 들어 호부견자까지는 좀 심하지 않느냐는 평가도 존재한다. 그리고 아버지 사마소도 서진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하기에는 많은 비판이 존재하는 사람인지라...
그런데 사마염과 그의 아들들을 엮으면 견부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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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과 두 아들 : 아버지는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 전역에 명성이 자자했으나 아들들은 아버지 배경만 믿고 비리만 저질러 대서 사무엘이 그들을 사사로 세울 걸 철회해 버린다.
만일 아들들이 착했으면 다윗은 없는 사람
- 상가희 - 상지신: 아버지 상가희는 청나라의 개국공신이자 삼번의 난 때도 조정에 충성해 반란을 진압하려 한 충신으로 평가받지만, 아들은 번왕 자리를 물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켜 삼번의 난에 가담했다. 그나마 상가희의 충성을 강희제가 인정해서 상지신 본인만 처벌받고 집안이 멸문당하는 것은 면하였다.
- 샤푸르 2세 - 샤푸르 3세: 아버지는 사산 왕조의 1차 전성기를 가져온 명군이였으나, 아들은 귀족들을 제어하지 못하고 암살당하는 무능함을 보여줬다. 자그마치 사산 왕조 최초로 신하들에게 암살당한 최초의 샤힌샤로 기록되었다.
- 성룡(방사룡) - 방조명: 아버지는 세계적으로도 명성있는 배우이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아들은 대마초 흡연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 때문에 결국은 아버지가 '자신이 제대로 키우지 못한 탓'이라면서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아들을 대신해 공개 사과를 했다.
- 새리야 나이트 - 페이지: 프로레슬링계의 호부호자에도 들어가긴 하지만...어쨌든 어머니는 남편과 같이 운영하는 인디 레슬러 단체 WAW(World Association of Wrestling)의 선수였고, 딸인 페이지는 기존의 밝고 치장하는 디바들과는 다르게 유일무이한 다크 히어로 이미지에 백안과 흑발이 대조를 이루는 독특한 비주얼과 좋은 기량으로 '안티 디바', '디바 오브 투모로우'라는 별명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WWE 메인로스터로 승격되는 동시에 디바들 중 최고 악역인 AJ 리를 약 1분만에 페이지 터너를 거는 동시에 최초로 최연소 디바스 챔피언에 오르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다만 페이지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인 지금은 이것도 AJ 리에 대한 견제라고 보는 시각이 많으며, 페이지의 기량 하략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약 복용으로 웰니스 프로그램에 적발된 것과 여러번의 트인낭, 특히 챔피언 벨트에 정액을 뿌려 벨트의 가치를 능욕하는 행동을 하였다. 소장용 벨트에 저런 행동을 해도 문제, 특히 경기에 가지고 가야할 소품에 저런 짓을 했다면 더 문제가 커질 일이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카라칼라: 성깔은 부자 모두 비슷했으나, 아버지는 반란으로 휩쓸린 제국을 잔혹하고 독재적으로나마 통합시켰고, 아들은 성질만 더럽고 동생을 죽인 후레자식이다. 특히, 카라칼라는 능력이 부족해서 각종 선심 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이 다시 혼란스럽게 되었다. 게다가 군 장악력은 아버지만 못해 결국 암살당하고 만다. 다만, 위의 콤모두스와는 반대로 이쪽은 나름대로 통치를 잘 한지라 그래도 로마 제국의 황제로 인정은 받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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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견 -
손권‡ -
손노반 : 아버지는
동탁이 반동탁연맹 중 유일하게 두려워 할 정도로 엄청난 무력과 통솔력을 가진 매우 용맹하고 실력있는 명장이었지만, 그 아들인 손권은 젊었을 때는 내치도 좋았고 인재들을 매우 아끼고 잘 활용해서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오나라를 건국까지 했다가 늙어서는 노망이 아주 제대로 나서 막장이 된 걸로 모자라
이궁의 변을 일으키는 짓거리를 저질렀다. 게다가 군재만 따져도 충분히 이 문서에 들 수 있을 정도로
명장이었던 아버지와 형과는 달리, 손권은 정신이 멀쩡하던 젊은 시절부터 군재가 뛰어나지 못했다. 그러기 이전에 아버지인 손견이나 형인
손책은 안 그랬는데 차남인 손권은
주벽이 쩔었다. 손견의 손녀이자 손권의 딸인
손노반은
이궁의 변에 참가해서
손패의 편을 들어
손화을 고립시키게 하고, 손패를 배신해서
막내동생을 태자로 만들고 손패, 손화를 죽게 만들고 나중에
손준과 관계를 맺으며 여동생인
손노육까지 죽인다. 결국 손준이 병사하고 또 기회를 얻으려고
손량과 같이
손침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해서 유폐하다가
손휴에게 주살당한다. 게다가 손노반의 어머니인
보연사는 손권에게 도리어 첩실을 권하고, 왕궁의 다른 여인들을 위해 황후 자리를 거절할 정도로 성격이 좋았다. 손노반의
아빠는 군재, 주벽, 말년을 제외한다면 실드를 칠수가 있지만 손견의 손녀이자 손권의 맏딸인 손노반은 오 황실의 암투를 진두지휘해 내부균열을 촉진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동복동생까지 모함해 죽였다는 점에서 동정의 여지가 없는 인물이다.
할아버지와
어머니에
손녀를 비교해보자면 정말 이 사람이 저 둘의 피를 이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손녀가 함량미달이다. 정사 기준으로 보면 손견은
배송지가 정말로 아예 작정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칭찬을 했을 정도로 평가가 훌륭했는데 손노반은 그냥
이뭐병일 뿐이다. 결국
삼국지시대의
군주들 중에서도 전국구로 가장 명성이 높던 네임드였던 손견은 아들, 손녀라는 최악의 호부견자손들을 얻은꼴이 되었다.
사실 손책도 인성이 좋다고 하기엔 좀...여담으로 손견의 별명이 강동의 호랑이(호부)인데, 이런저런 우연이 겹쳐서 손씨 일가는 문자적으로 호부견자를 양산하게 된다. 우선 손책과 손권에 대한 인물평이 각각 미친개(조조 평)와 개(관우 평)라서 호부견자가 되고, '손견의 아들'을 정사에서는 堅子(삼국지 주유전)라고 표기하는데 이를 한국어로 읽으면 견자가 된다. 같은 이치로 '손권의 아들'인 권자(權子)는 견자(犬子)와 중국어 발음이 같다.[48]그런데 손노반과 손노육 자매의 자는 각각 대호(大虎)와 소호(小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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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제 -
수양제: 아버지는 삼국시대 이후 전란으로 피폐해져 있던 중국을 통일하고 명군의 자질을 보여주었으나,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을 죽이고
연기도 욕나오게 잘했다정권을 장악하였으며 무리한 고구려 원정으로[49] 백성들을 괴롭히고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 쉴레이만 1세 - 셀림 2세: 아버지는 평생 열 세 번의 친정을 단행하며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크게 넓혔고 고전 오스만 법을 정비하여 오스만인들로부터는 입법자, 유럽인들로부터는 대제라는 경칭을 받았으나, 그 아들인 셀림 2세는 제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사를 직접 돌보지 않고 술에만 빠져 산 탓에 주정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쉴레이만 대제의 몇 안 되는 실책으로 인해 하렘 세력이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하고 관료들의 힘이 지나치게 강력해져 황제권이 위협받기 시작했는데, 셀림이 정치를 전혀 하지 않다 보니 셀림의 아들[50]인 무라드 3세 시대부터 이미 전제군주로서의 오스만 황제의 모습은 간 데가 없게 되고 말았다.
- 아버지 부시/바바라 부시(어머니 부시) - 아들 부시: 아버지가 꽤 잘나기도 했지만 아들이 말아먹은 것이 너무나도 많다. 더욱이 아버지는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갔지만 아들은 가문빨로 예일 대학교에 입학했고 그마저도 성적이 개판이라 간신히 턱걸이로 졸업했다. 여기에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데 반해[51] 아들은 젊어서 마약에 손을 댔을 뿐만 아니라 월남전 피하려고 주방위군으로 입대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평판이 매우 안 좋았으며, 통치도 제대로 못해서 네오콘과 월가에 놀아나다가 나라를 제대로 말아먹었다. 오죽했으면 "아들 부시가 그렇게 말아먹었음에도 나라가 건재했다는 것이, 미국이 확실히 초강대국임을 증명하는 것"이란 말까지 나돌 정도이다. 게다가 어머니 바바라 부시는 역대 미국 영부인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평판이 좋은 편으로 미국 사회에선 아버지 부시보다도 인기가 많다. 허버트 워커 부시의 다른 자식들이 플로리다 주지사( 젭 부시)를 지내거나 대기업 임원 등으로 일하고 평판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것을 볼 때 아들 부시의 막장성이 더욱 돋보인다. 무엇보다 아들 부시가 저지른 실책 중 각종 외교/국방 정책들은, 처음부터 아버지 부시가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었던 요소들이 그대로 작용했다. 이에 대해선 해당 문서들을 참조할 것. 신랄하게 표현하면 "대체 아버지에게 뭘 배우기는 했냐?"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 아키히토 - 후미히토: 아버지인 아키히토는 왕세자 시절 선왕 히로히토가 일으킨 전쟁의 참혹함을 보며 1970~80년대 쇼와 시대 당시 일본 황실에서 노부히토 왕자, 다카히토 왕자 등 작은할아버지들과 함께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주의를 추구하며 히로히토의 뒤를 이어 일본 국왕이 된 뒤에도 일본의 제국주의적 만행을 부정하고 일본 헌법의 평화조항을 삭제, 개정하여 전쟁 가능한 국가로 바꾸려는 일본 정치가들의 극우 행태를 비판하였다. 하지만 차남인 후미히토는 집단 자위권 행사 등을 외치는 일본 극우파 정치인들과 합세하여 그들을 지지하여 권력을 탐하고 이외에도 별의 별 구설수에까지 오르는 등 그야말로 답이 없는 망나니[52]...그런데 사실 후미히토는 아버지뿐 아니라 친형인 나루히토와도 비교되며 일본 내에서 지탄 받을 정도. 자세한 건 형만한 아우 없다, 착한 형과 못된 아우 문서 등을 참고.
- 에드워드 1세 - 에드워드 2세: 아버지는 웨일즈와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고 잉글랜드를 발전시키고 중앙 집권화의 초석을 쌓았으며 대외적으로도 큰 활약을 하여 위대한 명군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아들은 스코틀랜드를 날리고 동성애인을 요직에 앉히며 의회의 귀족들과 대립하여 나라를 분열시키다가 결국 아내와 아내의 애인의 쿠데타로 비참하게 죽는다.
- 엘리자베스 2세 -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참전 용사이고 대단히 덕망이 높은 군주라서 많은 영국인과 영연방 국가 국민들에게 깊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으나, 정작 그 아들인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망사건부터 해서 불륜으로 왕실의 위신에 먹칠을 해서 영국인들이 그의 왕위계승을 반대할 지경까지 되었다. 오죽하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후에 찰스 왕세자가 아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손자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 왕세손이 왕위를 이어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정도. 다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며느리였던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아들 찰스 왕세자의 갈등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는데 자세한건 다이애나 스펜서 항목 참조.
- 연소왕 - 연혜왕: 아버지는 작살난 나라를 30년 동안 내정으로 강국을 만들었고 먼치킨을 등용해 웬수였던 제나라를 사실상 멸망상태로 만들었다. 그런데 아들놈은 악의를 싫어하고 모함하다가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고 정신이 차릴 것 같은데 아버지가 죽고 왕위를 오르자, 그 먼치킨을 해임시키고 제나라를 다시 살리게 만들고 연나라는 약소 국가가 되었다.
- 옹정제 - 건륭제† - 가경제: 옹정제의 경우 기반이 처음부터 탄탄하지 않은 상태서 강희제의 뒤를 이었으나 황권 강화와 민생안정에 성공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건륭제 시기의 화려한 업적의 기초가 되었다. 아들 건륭제는 강건성세의 대미를 장식하였으나, 말년에는 탐관오리로 악명을 떨치던 화신을 비호하여 청 왕조 쇠락의 씨앗을 남기는 등 막장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좋은 평가와 나쁜 평가가 공존한 아들 건륭제와는 달리 손자 가경제는 즉위 초부터 백련교도의 난을 제대로 진압 못하고 화신에게서 몰수한 자금을 내탕금으로 처묵처묵하는 등 청나라 몰락의 시작을 열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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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랑 -
왕숙 -
왕개 :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한나라의 대학자였으나 손자는 그
석숭과 대륙의 기상을 보여주는 돈지랄 쇼를 했다. 사실 위의
사마염은 이런 외삼촌을 좋게 보고 있었으나
어머니가 살아계실 땐 티를 내지 못했다.
결론은 사마염이 나쁜놈
- 요 - 단주: 아버지는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으로 '요순시대(태평성대)'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낸 반면, 그의 아들 단주는 그야말로 성격을 말아먹은 인물이었다. 결국 요는 아들 단주가 아닌 왕통이 아닌 순에게 왕위를 넘겼다. 불초(아버지를 닮지 못한 못난 아들), 선양(자신의 아들 등 왕통이 아닌 다른 성을 가진 이에게 왕위를 물려줌)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인물이었으며, 이런 면에서 최초의 호부견자라고 볼 수도 있다.
- 원소 - 원담: 아버지는 비록 위선자의 행보를 걷기는 했어도 후계문제 제대로 정리 못하고 갑자기 죽어서 그렇지 조조를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당대 최강의 세력을 가졌었다. 그런 반면 그 아들은 하도 막장이라 호적 파이고 원소가 죽은 후 정통성도 없으면서 후계 문제를 내세우면서 싸움만을 일으켰고, 아버지가 애써 구축한 하북 지역도 아예 남에게 떠 먹여주기까지 했다. 그나마 뒤늦게 자기 잘못을 후회하고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전사함으로써 그래도 후레자식 취급은 면할 수 있었다.
- 윈스턴 처칠 - 랜돌프 처칠: 윈스턴은 실책을 저지른 일도 적지 않고, 당시 영국 식민지 사람들 입장에선 천하의 개썅놈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주역 중 하나였던 반면 랜돌프는 경망스럽고 술마시고 놀기 좋아해 대학도 중퇴하고 사교계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한량에 망나니였다. 거기다 심각한 낭비벽도 존재. 이후, 아버지가 등 떠밀어 24살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간 것을 시작으로 총 7번을 출마했으나 6번이나 낙선. 결국 술 때문에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다만, 자식 교육이란 면으로 아버지가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 유언 - 유장: 보통 삼국지의 호부견자 하면 유비와 유선, 원소와 원담, 유표와 유종, 조조와 조비를 생각하기 때문에 이쪽은 잘 알려지지 않은 편. 삼국지연의의 인자한 이미지와는 달리 유언은 익주목으로 부임한 뒤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였다고 한다. 게다가 익주에 산적해있던 적들과 막장 상황을 잘 평정하는데 성공 했으나, 아들 유장은 세력 단속을 잘 못해 주변의 적들이 익주를 어지럽히는 원인을 제공한다. 그러다가 자기 부하들이 하나 둘 씩 외부세력에게 익주를 바치려고 시도하다가 유비한테 세력 자체가 넘어가버린다.
- 유연 - 유총: 흉노족의 전조의 시조인 유연은 어렸을 적에 관용이 풍부하고 큰 뜻을 품은 영걸이였다. 능력과 인성이 뛰어나고 여러 사람에게 칭송이 자자하여 흉노의 대선우로 군림하였고 팔왕의 난 때 혼란이 일어나자 산시성 좌국성에서 거병하여 전조을 세우고 조나라 일대를 점령하여 진을 공략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고 차남 유총이 즉위하였다. 유총은 능력은 뛰어났지만 인성이 포악하고 횡음하였다. 영가의 난 이전까진 총명하였는데, 서진 멸망 이후 타락했다. 항복한 진나라 황제에게 모욕을 주고 죽였고, 바른말 하는 신하들을 내쳤고, 황후를 3명을 두었으며, 간신들을 총애하여 폭정을 펼쳐, 아버지가 세운 전조를 막장으로 통치하였다. 죽은 뒤 아들 유찬은 폭정을 펼치다가 근준에게 살해당하고, 시신이 난도질 당하는 업보를 받았다.
- 유유 - 유의륭을 뺀 대부분의 후손들: 유유가 힘들여 건국한 송(육조)를 유유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그의 후손들이 펼친 화려한 막장짓의 향연으로 인해 나라가 세워진지 단 60년만에 멸망하였다. 호부견자의 예시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그냥 정치력이 부족하거나 평범한 폭군 수준이 아닌, 아예 인간을 그만둔 미친자들이 쳘철 넘쳤다. 그나마 3남인 유의륭이 29년간 내치는 제대로 한지라, 저런 정신 나간 왕조가 6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다.
- 유표 - 유종: 아버지는 채씨 일가를 중용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정치도 잘했고, 유비에게 먼 친척이라고 해도 신야 태수라는 크진 않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관직을 줬으며, 유종은 어려서 잘 몰랐다 쳐도 자신의 어머니인 채씨와 외삼촌 채모에게 조종당했으며, 거의 숙부급인 유비를 죽이려고 했다. 기존 서술에는 어리다는 말이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다. 정사상에서 유종은 유기와 동모형제였으며, 채부인의 조카를 아내로 맞았기때문에 채씨 일가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어리다고 할 근거가 없고 성혼까지 이미 한 걸 볼 때 성인의 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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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가와 요시모토 - 이마가와 우지자네: 아버지는 뛰어난 정략 등으로 이마가와 가문의 최전성기를 이룩해냈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어떤 멍청이라 불리던 놈과
싸우다가 전사해 급히 가독을 물려받은 뒤 잘못된 정책으로 이마가와 가문을 한 순간에 최고의 가문에서 최악의 가문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결국
동맹이 뒷치기해서 영지를 다 빼앗기고
옛 부하에게 찬밥 대접을 받은데다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 앞에서 공놀이를 선보이는 치욕까지 당했고 결국 죽을 때까지 영토 회복을 한 번도 못하고 일생 내내 떠돌이 생활을 했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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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와할랄 네루 -
인디라 간디: 아버지는 간디 못지않게 인도 국민에게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딸은 여당과
시크교도들에겐 인간이 아니었다.
- 제갈근 - 제갈각, 제갈융: 능력은 아들인 제갈각이 제갈근보다 더 뛰어났지만 인품과 처신은 아버지인 제갈근보다도 못하였다. 제갈근은 인품이 겸허하고 온후하여 사람들에게 적을 만들지 아니하고 자신이 부족한 군략은 부관들 중 뛰어난자에게 위임하는 등 분수에 맟게 처신하여 명신이라는 이름을 남긴데 비해 아들인 제갈각은 아버지보다 능력은 뛰어났지만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적반하장 행위를 보였고 전투에 한두번 이겨 너무 교만한 나머지 사고를 치는 바람에 국가에 피해를 초래하고 자신도 패망하였다.[54][55] 동생 제갈융은 능력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모두 문제가 많았고 사실상 실권을 잡은 형의 권세에 기대는 꼴이었는데 결국 형과 마찬가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두 형제의 자식들도 졸지에 아버지를 잘못 둔 탓에 전원 몰살당하게 되어 차남 제갈교가 살아있지 않았다면 제갈근의 대는 완전히 끊겨버릴 뻔했다.[56]
- 제임스 1세[57] - 찰스 1세 - 제임스 2세: 조부 제임스 1세( 스코틀랜드 왕으로서는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동군연합의 국왕이 된 후에 두 나라간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고[58], 전국민에게 배포하기 위해 제작한 킹 제임스 성경을 통해 근대 영어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기도 하고, 탁월한 외교 정책과 내정을 통해 민생을 안정시켜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왕이 되었으나, 찰스 1세는 무분별하게 의회를 자극하다가 본인 목숨만 날아가고 그레이트 브리튼의 통합을 60년 가까이 물건너가게 만들었다.[59] 제임스 2세 역시 아버지 찰스 1세 마냥 전제정치를 펴고자 머리 굴리다가 딸 메리 2세와 네덜란드의 정부 수반[60]이던 맏사위 윌리엄 3세에게 폐위되어 프랑스로 쫓겨났다. 그나마 사이에 낀 찰스 2세는 2번의 영국-네덜란드 전쟁에서 패한 것을 제외하면 크롬웰의 독재 정치에 지친 국민들을 달래주며 그냥저냥 평범하게 국정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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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등 -
조숭: 아버지는 중국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한 환관으로 나라를 안정시키며 청류파와 탁류파 모두에게 인정받은 최고의 환관이였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남긴 권력과 재산을 이용해서 태위 관직을 1억전에 사서 논란을 일으켰을 뿐이다.
그래서 아들이 진림한테 이걸로 엄청나게 패드립을 당한다.그리고 지병인 두풍 완치개이득 아님?진림이 사실 화타였음
- 조사 - 조괄: 염파, 인상여는 물론 아버지 조사와 조괄의 어머니조차 아들이 아버지만도 못한 재목임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결국 그 예상대로 장평대전에서 조군을 시원하게 말아먹고[61] 그 자신도 전사했다.[62]
- 조진 - 조상, 조희, 조훈, 조언: 아버지는 위나라의 명장이었지만, 아들인 조상은 조방의 섭정이 되어 동생들, 측근들과 온갖 횡포를 부리다가 사마의에게 처형된다. 부하 환범이 아예 "아버지 조진은 천하의 명장이었지만 그 아들들은 돼지만도 못하다"라고 하면서 인증.
- 존 본 조비 - 스테파니 본 조비 :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사랑 받는 록 그룹 본조비의 리더이자 보컬로 활동하며 별 스캔들 일으킨 적이 없는데 그의 딸 스테파니는 마약 소지, 투약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는 전과가 있다.
- 종요 - 종회: 아버지는 훌륭한 문신이자 서예가로 조 씨 삼대를 받들던 충신이었으나 막내아들 종회는 촉한이 망하자마자 강유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집안을 멸문 직전으로 몰아넣었다.[63] 반란 이전에 자신과 관계가 멀어졌다 판단된 사람이나 전 우들을 죽여버렸던 전과도 있다.
- 진시황 - 호해: 통일이후의 방침등에서 독재자의 면모때문에 평가가 어느정도 갈리기는 하나 전국통일이라는 유래없는 대업적을 이루어낸 위인으로서의 면도 확고했던 반면 그의 둘째아들인 호해는 진시황의 장점만 물려받은 첫째와 달리 진시황의 단점을 모아 그걸 썩혀 이어받은 정도의 호구였다. 결국 조고에게 좋을대로 부려먹히는 바지사장으로 국정을 내팽겨치고 향락에 찌들여살다 진제국이 단 3대만에 멸망하게 만든[64]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 저우언라이 - 리펑: 양아버지와 양아들의 관계이지만 양아버지는 전 중국 인민들의 존경받는 위인인데 반해, 양아들은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계엄령을 선포하며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던 학살자였다.
- 체차 벨리코비치의 아버지와 어머니 - 체차 벨리코비치(Ceca Veličković): 부모님은 평범한 일반 시민이었던데 비해, 딸은 과거 유고슬라비아에서 인기 많은 여가수였지만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학살 범죄자 아르칸과 결혼하고 남편의 권력을 등에 엎고 각종 비리를 자행하여 감옥까지 갔던 악녀였다. 게다가 딸과 부모의 갈등도 심했는데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했을 당시 딸의 연예계 진출을 반대하며 가수 생활을 접고 은퇴하라고 딸에게 압력을 가했고, 1995년에 22살이 되던 해에 아르칸과 결혼하려고 하자 체차의 부모와 여동생은 아르칸이 이혼한 남성에 강도 혐의가 있는 범죄자라는 이유로 딸과 언니의 결혼에 반대했다. 결국 체차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르칸과 결혼을 강행했고, 부모의 반발을 무릅쓴 결혼을 한 이후 이들 부부는 친정집 부모, 여동생과 장인어른/장모님/처제와도 의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이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친딸과 아들도 자기 어머니, 아버지와 외갓집과의 극심한 갈등 때문이었는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이모 등 외가 식구들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65]
- 카를 5세 - 펠리페 2세 - 펠리페 4세까지의 후계자들: 꾸준히 펠리페 2세가 재평가되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훨씬 넓은 영지를 관할하면서 뛰어난 수완과 처신으로 유럽 No.1의 패권을 굳히며 무난히 어려운 시기를 겪어낸 부왕 카를 5세에 비해 아들 펠리페 2세는 극단적인 용렬함과 치명적 인선 미스로 알토란 영토 네덜란드의 반발을 유발해 결국 후대 네덜란드에게 해상의 패권을 내주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또한, 5개 국어를 구사하던 엄친아적 두뇌의 카를 5세에 비해 펠리페 2세는 스페인어에 라틴어, 포르투갈어밖에 구사하지 못했다.[66] 그나마 카를로스 2세에 이르는 나머지 합스부르크 왕조 군주들은 빼도박도 못하는 암군들 뿐이었다. 이를 두고 스페인에서 "카를 5세는 영웅이었으며 펠리페 2세는 그래도 국왕이었고 카를로스 2세는 인간도 아니었다" 라고 회자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스페인 국왕들이 하나같이 유전병에 시달려 전반적인 지능과 신체적 능력이 심각하게 뒤떨어졌던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카를로스 2세는 제외한다. 사실 카를로스 2세의 경우, 왕비 마리아 안나에게 평생을 휘둘리며 살다가 죽기 직전에야 자신의 의지로 결정을[67] 내렸는데 그것은 프랑스의 펠리페 5세에게 자신의 왕위를 물려준다는 것이었다.
- 카를로 안첼로티 - 미노 풀코, 다비데 안첼로티 : 아버지는 AC 밀란의 전성기를 이끈 최고의 감독 중 하나였으나 아들은 제대로 된 자격증도 없이 아버지 배경으로 무려 수석코치 자리에 앉은 낙하산. 이것이 바이에른 뮌헨 선수단과의 갈등의 주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 감독 당시엔 아들을 코치 자리 준 건 물론이고 사위[68] 미노 풀코도 영양사 자리에 앉혀서 논란이 일었다.[6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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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비 -
마코 공주,
카코 공주,
히사히토 친왕:
아키히토 덴노의 차남인
후미히토 친왕의 처자식들.
키코 비는 학창 시절부터 결혼 이후로도 부지런한 노력파에 공부도 열심히 하여 우수한 성적을 올렸는데, 3남매는 공부 못하기로 유명하다. 3남매 모두 입학 및 진학에 대해 "실력도 없는데 돈과 권력의 힘으로 명문학교에 부정입학했다"며 말이 많을 정도.
- 타이라노 키요모리 - 타이라노 무네모리: 아버지 키요모리는 온화하고 인정 많으며 의리있는 성격의 인물로 호겐의 난과 헤이지의 난을 평정하고 무사로서는 처음으로 다죠다이진(太政大臣)에 올라 실권을 장악하여 인세이를 폐지하고 천황가의 외척이 되어 자신의 외손자( 안토쿠 덴노)를 덴노에 즉위시키는 등 사실상 무사정권을 시작한 인물이다. 반면 후계자인 3남 무네노리는 성격이 무르고 용렬하여 헤이케 타도의 원인이 되는 인물로 평가되며 키요모리 사후 4년만에 헤이케 일가가 멸망할 정도로 무능한 인물이었다.[71] 무네모리는 기록에 의하면 가마쿠라에 끌려가 온갖 목숨 구걸을 하며 실컷 조롱당한다. 심지어 요리토모에 의해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이유로 이름을 스에쿠니(末國)로 개명당하고 참수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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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디슨 - 토머스 에디슨 2세: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아버지가 그래도 유명한 발명가인데 반해 큰아들은 '전기 활력 회복기' 라고 이름 붙인 가짜 건강기계를 만들어 팔다 고발당하는 등 아버지 이름을 빌려 사기나 치는 사기꾼이었다. 다만, 아버지 에디슨도 아들의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자식 교육에서는 아버지 쪽이 문제가 더 크다. 그나마 아들 가운데 셋째인 찰스 에디슨이 뉴저지 주의 주지사가 되면서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그런 그도 우리들이 아버지 얼굴은 평생동안 본 게 1주일도 안될 것이라면서 형들이 막가파가 된 게 아버지 탓이 컸다고 비판했을 정도이기에 주니어만을 욕하기엔 생각해볼 문제이다. 일단 여기서는 지능 등 전반적인 사회 생활에 필요한 능력상 결핍은 없는 걸로 나왔으니 호부견자로 친다.
결국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경쟁자 니콜라 테슬라는 팝콘을 씹고 관전할 수 있었다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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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시우스 1세 -
아르카디우스,
호노리우스: 다른 아버지들은 하나라도 제대로 둔 아들이 있다지만 이사람은 두 아들 모두 쓸모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멸망 직전의 제국을 간신히 수습해놓왔건만 아들들로 인해 다시 제국이 분열되었고 특히, 호노리우스는 800년만에 로마가 약탈되게 했다. 다만, 서로마는 이전부터 이미 답이 안나오는 막장 상태였던지라 호노리우스가 아니라도 달라질 건 없었을 것이다. -
딴 건 그렇다 쳐도 스틸리코를 죽인 건 쉴드쳐줄 수가 없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알라리크는 서로마에 얼씬도 못했을 것.-
- 펠레 - 에지뉴: 아버지는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로 브라질의 체육부 장관까지 지낸 인물이지만 아들은 마약에 빠져 아버지의 골칫거리 짓이나 하고 다닌다. 덕분에 아버지의 건강까지 크게 나빠져 지금 펠레는 휠체어에 의존하고 다니고 있다.
- 포숙아 - 손자 포국, 현손 포목 등 후손 모두: 아버지인 포숙은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어 내고 제나라를 위해 분사한 충신이었지만 후손들은 하나같이 견자라는 칭호조차 아까운 막장들 포숙아의 자식놈은 권력 다툼에 미쳐서 높은 전공을 세운 사마양저를 모함하여 내쫓았고, 이어 손자 포목은 다른 대가문인 진=전씨와 영합하여 다른 제나라의 대가문들과 내전을 벌인다. 덕분에 그 안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나라 꼴은 말도 안되게 돌아갔고, 이 내전에서 승리하긴 하였으나 나라는 망가지고 결과적으로 전상의 전씨가 제나라의 최대 권력을 차지하게 된다. 이를 다시 견제하기 위해 포숙아의 현손인 포목은 전씨가 세운 왕을 죽이고 제도공을 옹립.. 하였으나 전상에게 다시 역공을 당하고 결국 전상이 제나라를 먹어치워 포가 일족들은 전상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해외로 도망치고, 포씨 가문도 망하고, 나라(강씨 제나라 → 전씨 제나라)도 망한다. 그야말로 수신제가평천하를 역으로 달성한 중국사 최악의 말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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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미폰 아둔야뎃 -
마하 와치라롱콘 :
딴거 다 제껴놓고 외모부터 따져도아버지는 태국의 왕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국민들에게 존경받아 왔지만, 아들은 문제가 많은 인물이다. 실제 국왕에 즉위할 때도 논란이 있었다.
- 프랑수아 미테랑 - 장 크리스토프 미테랑: 아버지는 프랑스 대통령까지 오른, 사생활에 문제가 좀 있었고 제2차 대전 당시 나치군에게 협력하는 등 여러모로 비판의 소지가 있지만 유능한 정치인이었던 반면에 아들은 탈세, 뇌물수수, 불법 무기 거래 등등 온갖 치부를 일삼아 아버지의 이름과 프랑스의 국격에 먹칠을 했다. 특히, 프랑스와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에서 형성된 부패 커넥션은 이 인간이 상당 부분을 담당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 프랑코 센시 - 로젤라 센시 : 아버지는 별 탈 없이 AS 로마를 잘 경영했지만 딸은 막장 경영으로 인해 한동안 구단이 채권단에 넘어가게 만들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재정이 탄탄한 사람에게 인수되어 그나마 다행.
- 하후돈 - 하후무: 정사에선 군공이 별로라고 까이는 것만 빼면 목민관으로의 평은 좋았고 인망이 많았던 하후돈이지만 아들은 단지 낙하산 인사로서 있다가 정사-연의 다를바없이 하룻밤에 쫄닥 망했다. '유비 - 유선'과 함께 삼국지 최악의 호부견자 케이스 중 하나.
- 한당 - 한종: 아버지는 그렇게나 오나라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충성했건만 아들이 매국노였다. 삼국지시대의 네임드 군주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따랐던 능력있는 공신들도 상당수가 이 문서에 있는 것을 보면 자식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 허서리 소닌 - 허서리 송고투: 아버지는 청나라의 개국공신 중 하나로 죽을 때까지 청 황실을 충성스럽게 보필했으나, 아들은 젊어서는 강희제를 도와 국가를 잘 운영했지만 늙어서는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황자들의 후계자 전쟁에 적극 가담하여 황태자였던 윤잉과 함께 붕당을 형성했고, 윤잉으로 하여금 그 아버지인 강희제를 암살하라고 꾄다. 결국 송고투는 사형을 당하고 윤잉은 서인으로 강등되니 자업자득.
- 헨리 5세 - 헨리 6세: 아버지는 영국 국내의 반란을 진압하고 백년전쟁의 아쟁쿠르 전투에서 수적 열세를 딛고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 영토 절반을 차지, 샤를 6세 사망시 프랑스 차기 왕위 계승의 약속까지 받아놔서 아들에게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 왕위를 보장하는 길을 만들어놨으나 아들은 그 유리했던 전황을 프랑스에서 신의 계시를 들었다는 어떤 농민 누나가 갑작스럽게 등장해 연전연패 당하며 국밥처럼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 프랑스내 영지를 샤를 7세에게 바치다시피하는 추태까지 보이고, 정신병에 걸리고 백년전쟁 패배 후에는 영국 내전인 장미 전쟁까지 불러왔다.
- 후안 카를로스 1세, 소피아 왕비 - 크리스티나 공주: 아버지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국왕은 입헌군주제와 민주적 총선을 실시하여 모든 권력을 국회와 총리에게 넘기고 프랑코의 파시즘 독재 정치에 유린된 스페인을 민주국가로 쇄신시킨 명군이었고[72] 어머니 소피아 왕비는 비록 발칸반도 어느 반도국가의 몰락한 왕조 가문의 왕녀 출신이었지만 남편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을 내조하고 가난한 빈자들과 장애인, 어린이들을 도우며 남편인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 못지 않게 스페인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정작 작은딸 크리스티나 공주는 탈세와 비리들을 저지르고 다니며 스페인 왕실의 명예를 더럽히다시피했다. 어찌나 부정부패의 강도가 심각했는지 부모님 뿐만 아니라 남동생인 펠리페 6세 현 스페인 국왕과 언니 엘레나 공주도 작은누나와 여동생을 옹호하지 않았다.
- 홍치제 - 정덕제: 아버지는 '홍치중흥' 이라 불릴 정도로 나라를 발전시켰으나 아들은 명 4대 암군. 참고로 대부분의 암군은 지능이나 기타 능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서 단지 군주 개인의 성품 혹은 게으름으로 나라를 망친 거라 절대 변명의 여지가 없다.
[1]
예를 들면 부모는 성품이 나쁘고 자녀는 무능한 것으로 불일치한 경우.
[2]
다만, 이 부분은 좀 논란이 있다. 모본왕 문서 참조.
[3]
본명 곽현식.
[4]
실제로 IMF만 아니였으면 지금보다 훨씬 평가가 좋았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5]
실제로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한 증거가 있는데, 김윤태가 신태일 일행과 어울려서 하남에서 인천으로 옮겼을 때 며칠 안 되어서 펑펑 울고 하남으로 되돌아왔다는 언급이 있다. 또한
김윤태가 떡볶이집을 쉬는 날에 기름때를 닦은 일화도 있다.
[6]
반면
김윤태의 양형과 양누나는 별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보면
착한 형과 못된 아우에도 해당된다.
[7]
박철언에게 정치자금을 주었다고 한다. 덕분에 YS가 집권하고서 같이 날아갔던 것.
[8]
김호연은 빙그레를 가지고 독립.
[9]
만일 남주성이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았어도 남경필의 경우 인품이나 능력 면에서 대통령 감으로도 충분한 인물이었으며, 설령 대통령이 되지 못해도 경기도지사로서 연임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큰아들이 그 막장 짓거리를 벌여서
유승민,
원희룡,
안희정 등 동료 정치인들에 비해 엄청난 핸디캡이 생겨버린 셈. 이런 면에서 차남 남주형과
못된 형과 착한 아우 클리셰에도 들어가기도 한다. 남주형은 딱히 물의를 일으키지는 않았던 편.
[10]
손자가
서울 숭의초등학교 수련회 집단폭행사건의 가해자들 중 하나라고 한다!! 참 가지가지도 한다. 이 녀석의 아빠이자 박삼구의 아들 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인물일까?
[11]
이 때문에 신숙주는 변절자라는 비판도 있으며 이 점에서는 견부견자이기도 하다.
[12]
일제에게 암살당했다는 설이 있다. 안중근은 생전에 안분도가 신부가 되기를 원했다고.
[13]
그 때문에 독립투사 안경근(안중근 사촌동생)과 안준생 사이가 벌어졌고(중국 당국이 거절하게 된 것도 안경근이 장제스에게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김구 장례식 때도 나타나질 않았다.
[14]
2차대전이 끝난 뒤로
중국에서도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소문나서 무시당했으며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워져서 온갖 영양실조로 고생했다. 게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로 더 어려움에 빠진 끝에 1951년 몇몇 식구와 안경근이 보는 앞에서 44살로 죽었다.
[15]
참고로 장례식에는 안경근이 봐줬다고 한다. 그때 안경근이 한 말이 "미안하다... 준생아... 삼촌이 널 버렸구나..."라며 손을 잡아 주었다.
[16]
안준생이 억울한 피해자였을 가능성이 높은 게 우선 뼛속까지 독립운동가였던
여운형 선생이나
한용운 선생에 대해서도 일본이 이런 식의 언플을 시도한 전례도 있고, 결정적으로 실제로 안중근 의사의 가족들에 대한 언플질이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다.
캡쳐본,
유튜브 그러니 주류 학계에서조차 안준생이라는 인물을 평가하기가 조심스러워진 상황이다.
[17]
살아서 끌려가긴 했지만, 그것도 셋째 연남산의 배신 때문이었다.
[18]
조선에
임해군이 있다면, 고려에는 효은태자가 있다!
[19]
다만, 공민왕도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그토록 사랑하던
노국대장공주가 사망한 이후말기에는 차츰 방탕해졌고 끝에서는 자신의 측근들에게 살해되는 비극을 맞았다.
[20]
아버지나
할아버지에 비하면 매우 무능한 편이다.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여러가지 제도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한둘이 아니고, 특히 군사제도는 정말 개판으로 만들어놔서 대규모 전쟁이 없었을 때는 별일 없었다만 이후엔
큰 전쟁이 벌어지자 엄청난 피해를 보고 나라가 망할 뻔했다. 또한 할아버지가 그렇게 공신들을 견제를 넘어서 숙청해놨는데도 공신들한테 의지하는 정책을 벌여서 정치도 막장으로 만들어놨다. 공신전을 마구 뿌려서 토지제도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21]
게다가 위의 각주를 봐도 알겠지만, 안준생이 실제로는 친일파가 아니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는 중이다.
[22]
출처
[23]
다만 대원군이 원래부터 쇄국정책을 지향하는 인물은 아니다. 처음엔 천주교에 대해선 온건한 입장이었고, 서양식 무기를 도입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또 이양선 출몰&행패와 당시의 민심을 고려한다면 쇄국정책을 비판할 수만도 없다.
[24]
상평통보의 100배나 되는 금액의 화폐다.
[25]
특히
필리버스터 발언 시간이 은수미의 기록을 깨게 된다.물론 이 타이틀은
이종걸에 넘겼지만
[26]
여기에는 조카들 교육 똑바로 시키라면서 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27]
변방에서 뺑이 치기는 싫은데 여기서 파면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이런 행동을 벌였다.
[28]
그전에 최태민이 최윤성과 부자지간이라는 것부터가 구라일 가능성도 있다.
[29]
부모는 최준희가 1살 때
이혼, 어머니 최진실은 2008년
자살, 외숙부
최진영도 2010년 자살, 아버지
조성민까지 2013년 자살. 이러니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고, 2년 주기로 양친에 외숙부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했으니, 정서적으로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수준. 여기에 언론의 과한 취재 등까지...
[30]
다만 칼리굴라는 소위 영화에서 묘사하는 그런 괴물은 아니다.
검투사 경기를 선호한 점에서 볼 수 있듯이 로마인들조차 인정할 만큼 잔인한 면이 있었고 돈을 물쓰듯 썼으며 여동생 드루실라 신격화 등 의심갈 짓을 많이 하긴 했지만 후대의 콤모두스 같은 진짜 막장 황제들과는 거리가 있었고 물쓰듯 쓴 돈도 자기에게 들어간 것은 의외로 얼마 없고 대부분은 각종 잔치, 건축 등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데 쓰인 것들이었다. 문제는 그 스케일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3년 반만에 티베리우스가 20년간 쌓아온 견실한 재정을 다 말아먹었다는 점이다.
[31]
위소왕이 장종의 황후를 싫어하여 장종의 유복자를 임신 중이던 후궁이 사실은 황후의 꼬드김으로 인해 임신한 척하고 있는 거라는 말을 하면서 황후가 후궁과 함께 피살당하게 되었다. 아마 위소왕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통성에 해가 갈까봐 그랬던 것일 가능성이 크다.
[32]
챔피언쉽 1번, 프리미어 리그 1번
[33]
다만 아버지 스스로 자초한 면도 없잖아 있긴 한데 퇴출과 관련해서 항의를 하고 아들을 감싼것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심각한 사안이라도 감독과 전혀 상의없이 선수를 내쫒은 것은 엄밀히 말해 감독의 권리를 침해한게 맞긴 하다. 그리고 아들의 행위를 감싼 것은 감독이 아닌 아버지로써 행한 행동으로 이해한다면 약간의 동정의 여지는 있다.
[34]
요숭과 함께 재상을 역임했던 노회신의 아들이다. 노회신은 현종 시절
메뚜기로 인해 흉년이 들었을때 요숭이
메뚜기 퇴치를 주장하자 "옛 성현들이 '
메뚜기를 잡으면
가뭄이 든다'고 했다"며 상소를 올린 사람으로, 부지런하고 겸손하기만 했지 무능했다고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노회신과 노혁의 관계를 따지면 견부호자일듯하다.
[35]
"밧세바의 일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하느님의 마음에 합당하였다"는 내용이 실제로
성경에 적혀 있다.
[36]
성전을 짓는데 7년을 들인 건 그래도 종교적으로는 의미가 큰데(사실 다윗이 재산을 모아둔 것도 성전 건축을 준비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뒤 자기가 살 왕궁을 짓는데 무려 13년을 들였다... 치세에 끊임없이 세금과 노역을 무겁게 내린 탓에 백성들의 불만이 크게 쌓였고, 이는 훗날 이스라엘 분열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37]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훗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는) 여로보암을 내세워 "못 살겠으니 세금과 노역을 줄여달라"고 르호보암에게 탄원했다. 솔로몬 때부터 출사한 노장파 신료들은 "그 말을 수용하고 백성들을 섬겨야 한다"고 간언했으나, 르호보암 또래의 소장파는 "백성들을 더 가혹하게 다뤄야 왕의 위엄이 산다"며 충동질을 했다. 결국 르호보암은 자기 듣기 좋은 말을 따라서 "아버지가 채찍으로 너희를 다스렸다면 난 전갈로 너희를 다스리겠다"며 Po허세wer를 시전했고.
[38]
다만, 조건이 있다.
당고종의 건강이 멀쩡했어야 한다. 개 수준의 체력이었다면 할 말이 없지만.
[39]
인도에서 개종은 한국에서 호적을 파는것과 같다.
[40]
본명 메구로 토라이치
[41]
본명 카도니시 야이
[42]
게다가 이 막장 여성편력은 아들 중 하나에게도 이어졌다.
[43]
이 경우는 아버지가 일찍 사망해서 할아버지가 키운 경우이므로 세 사람 다 싣는다.
[44]
스에 하루타카 토벌만해도 모리 타카모토의 강력한 주장때문이었다. 또한 모리 타카모토는 모리 가문의 당주로서 모토나리의 그림자 하에서도 여러 해를 활약하였으나 독살 의심을 받을 정도로 일찍 죽는 바람에 역량을 다 쓰지 못했다.
[45]
모리 타카모토는 성실하고 온화하여 당대 주코쿠의 패자였던
오우치 요시타카의 인질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양사위가 되는등 매우 사랑을 받았고, 의리 또한 있어서 요시타카가
스에 하루타카의 배반으로 사망하자 상대적으로 약소했던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복수를 주장하여 복수를 성공시킨 의리남이고, 할아버지인 모리 모토나리는 효웅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나 애처가로서 유명하고, 자식들에게 특히 술 마시지 말라고 시시콜콜하게 잔소리하는 편지들이 엄청나게 남아있는 등 실제의 모습은 역사속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달랐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의 모토나리의 이미지가 효웅으로서의 이미지라면, 전국무쌍의 모리 모토나리의 이미지는 최근의 온화한 모습을 바탕으로 함.
[46]
사실 이 사람은 그저 바지사장에 불과했지만 이 사람이 최소한 우유부단한 성격만 아니었어도 가문은 그대로 보전될 수 있었다.
[47]
농성하던 적을 못 뚫은거라면 이해가 가지만 이건 경계를 게을리하다 기습에 당한거다.
[48]
일반적으로 權은 2성, 犬은 3성으로 다르지만, 3성이 연속으로 된 단어에서는 앞의 3성을 2성으로 발음한다.
[49]
이전 버전에서는 '삽질만 하고' 라고 되어 있었는데, 너무 무리하게 밀어붙여서 그렇지 대운하 공사는
당나라를 비롯해 이후의 제국들에게 지대한 도움을 준. 꼭 필요한 공사였다.
[50]
견부견자에 속하는 케이스다.
[51]
아버지는 전쟁 말인 1945년 2월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을 뻔했다가 혼자 간신히 구조되었는데, 이때 추락해서 포로로 잡힌 그의 다른 동료들은 전부
인간의 탈을 쓴 일본의 미친 악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 사람도 만약 붙잡혔다면 아들 부시는 아마 안 태어났을지도 모르고동료들과 똑같은 꼴이 될 수도 있었던 것! 그래서 사적으로
일본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73] 다만 공적으로 대통령으로썬 일본과의 관계를 중시해서 일본을 대 소련 포위망을 위해 비
NATO 주요 동맹국으로 지정하는 등[74]의 일을 했다. 한마디로 공과 사는 구분한 것.
[52]
사실
후미히토는 실제로는
극우가 아니고, 단지 형인
나루히토를 견제하느라고 극우 코스프레를 한다는 지적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극우주의자들과 결탁한 것 자체가 문제이고, 게다가 설령 그가 실제로는 극우가 아니라고 해도 워낙 하는 짓이
개초딩 수준이라서 어차피 옹호받을 부분도 없다.
[53]
다만, 이 쪽은 아버지가 갑작스레 죽은지라 가독 상속 준비도 다 안 된 상태에서 가독을 상속받은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우지자네는 사람들에게서 완전 무능력하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론 교양에 어느 정도 재능이 있었다.
[54]
제갈근도 역시
신숙주처럼 저놈이 집안을 망칠 거라고 호부견자 인증했다.
[55]
다만 제갈각은 남동생과는 달리 능력은 출중해서 오나라 2세대 장수 중에서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56]
오나라에서 제갈근의 대가 완전히 끊기는 동안 제갈교는 숙부인
제갈량의 양아들로 들어가 있었고,
제갈첨이 태어나자 숙부의 허락을 맡고 제갈근의 가문을 계승했다.
[57]
엘리자베스 1세의 명성 때문에 묻히는 수준을 넘어서 축적된 국력까지 날려먹은 무능한 군주로 인식받기도 했지만, 현대에는 재평가를 받아서 상당한 능력을 가진 국왕이었으며 비판적으로 봐도 엘리자베스 1세를 능가하는 명군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기력한
암군은 더더욱 아니라는 해석을 받고 있다.
[58]
현재의
유니언 잭의 프로토타입이었던
잉글랜드 국기와
스코틀랜드 국기를 합친 깃발이
제임스 1세의 치세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다만, 당시에는 다소 안습하게도 잉글랜드로부터는 국기의 붉은 십자가가 스코틀랜드 국기 때문에 작아져 보인다고 까이고, 스코틀랜드로부터는
세인트 앤드류 기가 잉글랜드 국기인
세인트 조지 기의 십자가 때문에 4토막이 났다고 디스당했다.
[59]
찰스 1세는 그동안 스스로를
잉글랜드인으로 생각해서
스코틀랜드를 무시하는 정책을 마구 폈는데, 막상 내전이 터지고
잉글랜드 내부의 왕당파가 밀리기 시작하자, 본인은 스코틀랜드로 냅다 도망가버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양쪽의 공분을 샀다. 결국에는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 정부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 찰스 1세를 폐위시켜서 잉글랜드에 넘기면서 내전이 끝났다.
[60]
보통
총독이라고 번역한다.
네덜란드어로는 스타트홀더르(Stadtholder)
[61]
다만, 40만이라는 주장은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약 10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조나라가 큰 타격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진의 전면적인 침공 이전까지 그럭저럭 국력을 유지했고 진의 침공 이후에도 상당기간 버텼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62]
다만 실제로 말아먹은 것은 조나라 왕이고 조괄은 희생양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조괄 문서 참고.
[63]
결국,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종준과 종산은 살려주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64]
사실 말이 3대지 항씨가문이 내세운 황제를 중심으로 진나라 이곳저곳이 야금야금 갉아먹히던 중이라 호해의 아들이 영제로 올랐을땐 이미 진나라는 제국은 커녕 왕국이나 영토라고 불러야 할정도로 쇠락한 상태였고 내정이나 군사등은 진시황시절에 비해 훨씬 처참했다.
[65]
다만 체차와 체차의 여동생인 리디야 벨리코비치는 언니의 남편이자 형부였던 아르칸이 2000년도에 죽고 이후 범죄 혐의로 수감되었던 언니가 복역생활을 마치자 서로 화해를 하였다. 원수 같은형부가 사망하고 나서 언니와 같이 찍은 사진도 돌아다닐 정도.
# 심지어 어린 시절 아르칸과의 결혼 과정에서 부모와 갈등을 빚고 친정 부모님과 의절하며 결혼 생활을 하다 남편을 암살자의 총탄에 잃고 범죄 혐의로 자신도 감옥까지 갔었던 잘못된 인생을 살아왔던 일에 후회를 느꼈는지 체차는 남편이 사망한 이후 여동생이 결혼하려고 하자 여동생과 제부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고 허락해줬다.대인배.
[66]
당시 라틴어는 국제적 학술 용어였으므로, 이베리아 반도 쪽 언어밖에 하지 못했다는 소리. 독일어에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플랑드르어 등등 다양한 언어에 능했던 카를[75]에게는 크게 못 미쳤다. 다만 이건 카를 쪽이 대단하다고 할 일이지, 펠리페를 깔 이유는 못 된다.
[67]
이런 연유로 카를로스 2세는 이 문서에서 제외한다. 참고로 지적장애나 선천적인 정신병이나, 정상인이었지만 실권이 없거나 사회의 흐름이 부모 세대와는 달라서 본인이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경우 중에 하나가 해당하기 때문.
[68]
당시는 결혼 전
[69]
미노도 장인이
바이에른 뮌헨에서 해고된 이후 쭉 무적 상태로 기록돼 있다.
[70]
이와 비슷한 사례로
네덜란드의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 -
마르크 판 보멀이 있다. 이쪽도 장인과 사위 사이.
유로 2012 당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가족애가 너무 지나친 나머지 기량 다 떨어져 가던 판 보멀을 다른 선수들보다 우선적으로 사용해 선수단 분열을 자초했고 결국 네덜란드는 전패로 유로 2012에서 떨어졌다. 둘 다 국가대표팀에서 하차한 건 당연지사.
[71]
당시 일본 전국의 절반이 헤이케 가문의 영지였을 정도로 세력이 강했다.
[72]
프랑코 독재정권 시절 당시 독재자 프랑코 총통의 입맛에 맞게 지명되었던 왕위계승자였던 만큼 영국이나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같은 유럽 왕국들의 왕이나 여왕들처럼 입헌군주제가 아니라 전제군주제 통치를 할 것이라는 예상과 우려가 당시에 많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