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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7:45:03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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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군주의 칭호4. 군주와 책임5. 군주제 폐지
5.1. 영연방 소속 국가들의 군주제 폐지
6. 군주의 귀환7. 군주국의 공화주의8. 군주 없는 군주국9. 군주국 없는 군주10.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external/news.bbcimg.co.uk/_60340332_014780766-1.jpg
2012년, 전 세계의 군주들이 영국 버킹엄 궁전에 모여서 찍은 사진[1]
"백성은 곧 나를 일컬음이라."
조지 5세
군주( / Monarch[2], Sovereign[3])는 주권을 독점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순우리말 표기는 임금.

2. 상세

일반적으로 ''이라 부르지만, 황제 공국 대공인 경우, 그리고 말레이시아 각 주의 술탄[4]이나 아랍에미리트 에미르 등 세계 여러 문화권의 일원적이지 않은 군주 개념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여 본 문서로 이관하였다.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리는 만인지상의 지위가 흔한 군주의 이미지이다. 예부터 수많은 권력자들과 야심가들의 궁극적인 목표였으며, 이 자리에 오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무한한 도취감과 희열을 안겨주는 그야말로 마성의 매력을 가진 직책이다. 주로 왕관, 옥좌, 옥새 등으로 상징된다.

군주라는 지위 자체가 국가라는 집단을 통치하면서 그 구성원인 국민들을 다스리고 보호해야 할 직업인지라, 국가의 NO.1이며 국가의 부와 힘의 상징이다. 그래서 군주는 해당국가에서 최고로 화려하게 지어진 건축물인 궁궐에서 살며 각종 보석으로 치장한 악세사리와 옷, 수입 등 그 어떤 것도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가장 화려하고, 최고가 아닌 게 없다.[5] 군주의 권력이 강할때는 백성을 포함한 국가의 모든 것이 군주 개인의 것으로 여겨졌다.

군주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경우는 드물었다. 왜냐하면 군주는 한명인데 신하는 여럿이기 때문이다. 국가 수뇌부에서 다수를 차지한 관료, 귀족들이 연계해서 군주를 견제하면 왕권은 놀라울 정도로 무력해진다. 이를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 친위세력을 양성하고 종교, 학문 등의 힘을 빌려 시스템을 강화하지만 결국 머릿수 앞에서는 답이 없다. 조금만 삐끗하면 신하들의 견제를 받아 권위가 약화되고 심할 경우 허수아비로 전락하거나 아예 퇴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권력의 중추에 있는 자리이니만큼 국가 정책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왕권이 아무리 약해져도 엄청난 권신이 등장하여 아예 막장이 되지 않는 한 신하 한명 한명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힘을 갖는다. 또한 군주는 하나이므로 그나마 신하의 권력이 강할 때와는 달리 여러 이익집단의 사정이라든가에 덜 휘말리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추진이 가능한 힘이 있으므로 신하의 권력 위주일 때보다 무언가가 많이 추진될 수 있다. 그리고 약해져도 상징적인 힘이라도 강한 경우가 있는데 조선만 해도 한창 막장테크를 타고 있던 세도정치 말기였던 철종 시기에도 군주가 제대로 폭발하자 안동 김씨의 수장이 벌벌 떨어야 했다. 심지어 수백년간 실권 없는 상징적인 존재였던 일본의 천황조차도 막부 말기에 그동안 안하던 정치적인 발언을 조금 하자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바로 백성들의 지지. 전근대 사회에서는 귀족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위에 있는 군주와 힘싸움을 벌이고, 한편으로는 바로 아래에 있는 백성들을 억압하는 구조이므로,[6] 상하관계이기는 하나 직접적인 착취 관계가 아닌 군주와 백성들은 서로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관계이다. 어차피 신하의 권력과는 어느 한 쪽이 강해지면 다른 쪽이 약해지는 구조로 죽을 때까지 서로를 견제해야 하는데 백성들의 지지가 있으면 바로 이 신하의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 따라서 관료들의 장막을 뚫고 민생을 어루만져줄 능력이 되는 군주는 신하들과의 파워 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그리고 신하의 권력이라는 게 여러 신하들에게 나뉘어져 있다 보니 오히려 신하들이 적절히 분열되면 서로 군주에 대한 충성경쟁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서로가 정적이고 나눠먹기 힘든 이권까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군주가 어지간히 막장이 아닌 이상 신하들이 죄다 단결해서 군주에 대항하는 구도 자체가 보기 힘들다. 바로 이런 케이스가 조선의 선조였다. 다만 신하들이 위아더월드로 일단 왕권부터 깎고보자는 식으로 가면 답이 없어지긴 마찬가지다.

서양의 역사에서는 강력한 힘을 가지던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난 뒤 대혼란을 겪고 사방에 깔린 토호들 가운데 힘이 강한 자가 조금씩 조금씩 힘을 길러 주도권을 잡으면서 발전해 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비교적 강한 왕권이 구축되었던 16~18세기를 절대왕정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시기의 군주들은 중상주의, 상비군, 왕권신수설을 무기로 왕권 강화에 성공하여 중앙집권 시스템을 만들어 근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고 그것을 마련한 국가들은 대개 서양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사의 경우 왕권이 강했던 시기에 국가발전이 많이 이루어진 편이고 왕권이 약해졌을 때에는 각 이익집단들의 아귀다툼으로 약해졌던 시기가 있다는 인식이 있다. 많은 예를 들 것도 없이 연개소문이 국가를 쥐고 흔들었던 600년대 중반의 고구려나 조선의 세도정치라는 크고 훌륭한 예가 있다. 추군과 세군 같은 대귀족들의 내전에서 제목소리 안내고 틀어박히거나 어느 권세가문에게 실권을 빼앗겼을 때 고구려와 조선이 어떻게 되었는지 역사나 그것을 가르친다. 대체적으로는 작은 집단 여러 개보단 큰 집단 하나가 더 강력하고 발전의 여지도 크며 위기 시 대응능력이 좋을 수 밖에 없으며(세계사에서도 마찬가지) 군주가 약해지면 중앙권력이 약해지고 그러면 여러 집단이 자기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것을 제지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큰 집단 하나 때보다는 당장 가용한 예산/인력/기타 등이 적어져서 당장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내놓는 것은 쇠퇴해진다. 작은 집단 여러 개가 내놓는 활동도 큰 집단 하나보다는 못한 경우가 많고 번영하더라도 그것은 특정분야 특화 등 한계가 있다. 손잡고 협업하는 것은 말은 몰라도 과거의 예에서 드러나듯이 쉬운 것이 아니다. 당장 현대의 무기개발도 미국 러시아, 그리고 최근에 들어온 중국을 제외한다면 인력/자금/기술,규모의 경제 면에서 한계에 달해 협업을 하려고 하지만 서로의 이익 때문에 파토가 나거나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근세 유럽의 경우 각각의 잘나가는 국가들은 응집력이 있는 절대왕정이었고 이러한 정교한 제도가 유럽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그러지 못한 나라들은 폴란드처럼 갈라져서 사라졌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군주들이 얼굴마담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이 분야의 끝판왕은 사유재산조차 가질 권리가 없는 일본의 천황. 다만 저건 유럽이나 동아시아 쪽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도 아랍 쪽에는 군주가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군주제가 존재한다.

놀고 먹는 것만 같아서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놀고 먹기만 하다 제 명줄에 못 간 군주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일종의 예외 상황, 그러니까 군주가 얼간이거나 또는 또라이라서 그런 것이다.

나랏일의 최종 결정권자이다 보니 온갖 교육, 결재, 면담, 순행 등등을 포함하는 업무량이 장난이 아니며, 당연히 과로사한 군주의 숫자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더군다나 윗자리에서 온갖 막장 상황을 다 겪다보니 정신이 피폐해지고 화병으로 죽어나가는 군주도 수두룩하다. 뭐 절대적인 왕권을 누리는 국가라면 이론상으로는 놀고 먹는 것도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일국의 수장이라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라지게 되니, 그러기도 쉽지 않다. 즉, 가장 높은 자리인만큼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아주 막중하고 무겁다.

친족들끼리도 권력에 눈이 멀어 서로 군주의 자리를 잡기 위해 암투극을 벌이는 왕자의 난 같은 상황도 드물지 않았으며, 그런 상황을 겪지 않은 군주는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부과되는 책임도 상당히 무거운데다 권력의 중추인만큼 자유롭게 살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인 만큼 나라업무는 기본이요, 작은 행동 하나가 평판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만큼 몸가짐을 단정히 하는 것도 필수였다. 때문에 군주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며 자유롭게 살다가 가는 꿈의 직업만은 절대 아니었으며, 실제로는 온갖 책임을 맡고 그에 따라 자유보다는 책임을 더 요구받으면서 사는 것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군주는 문화권마다 다르지만 문관 무관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신분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을 진두지휘해야 하기도 한다. 한국사에서는 전란이 잦았던 삼국시대의 군주들은 친정의 사례가 많았으며, 세계사적으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군주로서 전쟁터를 누빈 대표적인 인물. 때문에 군주는 의복도 여러 가지다. 평상복과 무도회에 참여하기 위한 파티복에 심지어는 전술한 바와 같이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터를 누벼야 하기 때문에 갑옷도 존재한다. 때문에 군주는 문무를 겸비한 능력이 요구된다. 다만 조선시대처럼 군주가 친정하지 않는[7] 경우[8]도 있다.

자신의 선택 하나에 수많은 백성의 운명이 왔다갔다하므로 책임감과 의무감, 높은 도덕성은 군주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덕목이다. 물론 책임감과 의무감, 도덕성 등 규범적인 측면에서의 덕목만 갖추었다고 해서 국정을 잘 이끌어 갈 수는 없기에, 카리스마나 재력, 인맥 등의 기량도 군주로서 요구되는 덕목이다.

참고로 '20세기는 군주들의 무덤'이라는 말도 있다. 20세기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대한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제정 러시아, 청나라, 이집트 왕국 등 웬만한 국가의 왕조들이 말 그대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 1910년대에는[9] 제1차 세계 대전에 앞서 대한제국이 경술국치에 의해 무너지고, 청나라가 신해혁명으로 무너졌고 1차 대전이 끝나면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제정 러시아, 오스만 제국의 황제들이 죄다 퇴출당했고[10]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 이탈리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 유고슬라비아 왕국[11] 등 동부 유럽의 왕들이 집단 퇴장당했다. 1950~60년대를 지나면서는 이집트 왕국, 이라크 왕국, 리비아 왕국을 비롯한 중동계 왕들이 쿠데타로 줄줄이 쫓겨났고 1973년에 아프가니스탄 왕국, 1974년에 에티오피아 제국, 1979년에 이란 제국에서 군주정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전세계의 군주정들은 그야말로 도미노처럼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아프리카, 중동의 왕조, 동아시아의 왕조, 중동부 유럽, 아메리카의 왕조들은 상당수가 전멸해버렸다.

지고한 신분이라는 특징 때문인지 서브컬처 등에서는 역으로 신분 차이를 통한 스토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예, 거지, 떠돌이, 부랑자 같은 최하위 신분과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리니지의 반왕 켄 라우헬. 천한 노예로 태어나 왕으로 죽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캐릭터이며, 농노에서 왕으로 순식간에 신분 업그레이드를 했기 때문인지 작중에서 표현되는 왕위에 대한 집착과 권력욕은 실로 무서울 정도이며, 그것 자체가 이 인물의 매력으로 여겨진다.

3. 군주의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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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주와 책임

군주는 국가의 권한이 집중된 자리라 그만큼 책임이 집중된 자리이다. 특히 국가행정이나 인적역량, 유대감, 기타 등의 요소가 뒷받침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군주는 나라를 통합하고 유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었으며 틈을 보이면 국가나 왕조유지가 매우 힘들어졌었다. 특히 고대에는 서로 가까워질 관계가 없었고 서로 관계가 없이 사분오열되어져서 살고있던 세력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그들을 자신과 자신들 집단에게 충성, 최소 복종하게 만들며 그들을 자신들의 집단과 합쳐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 역할까지 떠맡아야 했었다. 당연히 주(主)세력이 아닌 집단들은 갈아엎고 싶어하는 마음이 자라기 쉬운데, 자기들 머리위에 있는 군주와 주세력들은 자기들과는 별 연고도 없기 때문. 심지어 주세력 내에서도 왕을 끌어내리고 자기가 왕을 해보고 싶은 자들이 있어서 군주는 내외를 전부 경계하면서 국가를 경영해야 했다.

우선 맹자의 언급을 보자.
만장이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 우임금에 이르러 덕이 쇠퇴해서 어진 이에게 천자의 지위를 물려주지 않고 자식에게 물려주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다. 하늘이 현자에게 주려고 하면 현자에게 주는 것이고, 하늘이 임금의 자식에게 주려고 하면 자식에게 주는 것이다. 옛날에 순임금를 하늘에 천거하고 17년 후에 돌아가셨다. 삼년상을 마치고 양성으로 순임금의 아들을 피해가자 천하의 백성들(天下之民)이 그를 따라 오기를 마치 요임금이 돌아가신 뒤에 요임금의 아들을 따르지 않고 을 따랐던 것처럼 하였다.
우임금이 재상 을 천거하고 7년 뒤에 돌아가셨는데 익이 3년상을 마치고 기산의 북쪽으로 피해갔으나 조근하고 소송하는 사람들이 익에게로 가지 않고 우임금의 아들인 에게로 가면서 말하기를, " 우리 임금의 자식이다"라고 했다.
<맹자> 만장 상
물론 맹자는 혁명론의 예에서 들어나듯이 당대의 주요한 관념과는 사상이 이질적이라 이것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당시는 나라를 힘있는 자가 만들고, 개척하고, 발전시키고, 빼앗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였고 맹자는 당시 기준으로도 주위와는 사상이 매우 다른 사상가였다.

한국사의 경우도, < 삼국유사>의 신라 건국설화는 경주에 본래 있던 여섯 마을이 하나로 통합되려는 시기에 왕이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들이 위로 백성들을 다스릴 만한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모두 방종하여 제멋대로 놀고 있으니 어찌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를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창건하고 도읍을 정하지 않을 것이랴!”
<삼국유사> 1권 기이편
삼국유사의 이러한 일화는, 최소한 대외적 차원에서라도 군주가 단순히 높으신 분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특수한 책임을 지니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성경 사무엘기에서도 왕이 탄생할 때의 일이 나오는데, 이스라엘이 왕정을 도입할때를 배경으로 사무엘과 원로들의 대화가 진행된다.
모든 이스라엘 원로들이 모여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가 청하였다.
“어르신께서는 이미 나이가 많으시고 아드님들은 당신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있으니, 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 주십시오.”
사무엘은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정해 주십시오.” 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이 언짢아 주님께 기도하였다.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런 짓을 저질러 왔는데, 그 모든 짓을 너한테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들의 말을 들어 주어라. 그러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 그들에게 알려 주어라.”
사무엘은 자기한테 임금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모두 전하였다. 사무엘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이 여러분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오.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으로 삼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고 수확하게 할 것이며, 무기와 병거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오. 또한 그는 여러분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 제조사와 요리사와 제빵 기술자로 삼을 것이오. 그는 여러분의 가장 좋은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주고, 여러분의 곡식과 포도밭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 내시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이오. 여러분의 남종과 여종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 그리고 여러분의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오. 여러분의 양 떼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갈 것이며, 여러분마저 그의 종이 될 것이오. 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
그러나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기를 마다하며 말하였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임금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기> 상권 8장
여기서는 '왕'으로 대표되는 세속세력과 야훼로 대표되는 종교 세력간의 알력이 보이는데(대표적으로 그들은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엄히 경고하여 그들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 어떠한 것인지 그들에게 알려 주어라.) 종교세력이 그러면 너희들는 신의 품 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오.) 등의 말을 하며 세속세력이 커지는 것을 싫어했지만 결국은 현실의 요구에 의해 왕이 태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종교세력이 세속세력에게 한 수 접어주는 것.

물론 당연하게 만들면 끝이 아니라서 군주는 항상 나라에 내란과 내분이 일어날 확률과 싸우면서 살아야 했다. 예를 들어 흉년이 들면 "왕이 부덕해서 그렇다더라"라는 말이 퍼지고 왕은 자신이 부덕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조선의 경우나 축출되거나 죽임을 당했다는 부여 왕의 경우 등 왕에게 틈이 보이면 공격을 해댔다.

이는 유럽도 마찬가지였는데 로마 제국 이후 각지에서 힘있는 자들이 할거해서 자리를 잡고 힘있는 사람 밑에서 이합집산을 대놓고 했던 유럽은 온갖 궁정음모와 반란 등이 난무했고 이를 제어하고 각종 조치를 취하고 종교를 끌여들여 왕권신수설에까지 호소하며 다스리려 하였다. 이러한 왕권신수설은 심지어 잉글랜드 내전 당시 의회파에서마저도 당연하게 여겨졌으나, 이러한 왕권신수설마저도 종교개혁 시기에는 각 지역의 소수 종파들이 왕실을 공격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왕권신수설은 '주님에게 통치권을 받은 자'를 왕으로 옹호하는 사상이기에, "주님에게 통치권을 받은"이라는 전제가 깨어진다면 그 사람을 왕으로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위그노들, 엘리자베스 1세 이후의 잉글랜드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그들의 군주는 도저히 주님에게 통치권을 받은 왕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맹자의 혁명론과도 어느정도 통하는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맹자의 혁명론은 천명에 의해 권력을 부여 받은 왕을 옹호하는데도, 천명을 받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권력자를 축출하는데도 모두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5. 군주제 폐지

가장 마지막에 군주제가 폐지된 때만 적는다.

5.1. 영연방 소속 국가들의 군주제 폐지

6. 군주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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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군주국의 공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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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군주 없는 군주국

재위 중인 군주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사할 경우 보위가 일시적으로 공석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공위시대라 한다. 물론 운 좋으면 공위시대가 일시적으로 끝나겠지만 아예 왕실 자손의 대가 끊기거나 왕위 계승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왕족들과 정치세력들 간의 왕위 계승 분쟁으로 번지게 될 경우 이러한 공위시대가 수십년 이상 계속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신성 로마 제국 대공위시대. 사실 현대라면 이런 경우 그냥 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국으로 전환되겠지만 고대~중세에는 공화제라는 체제가 일반적이지 않았고 그냥 군주제가 기본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왕실의 대가 잠시 끊기거나 옥좌가 공석이 되어도 왕 없는 왕국 또는 황제 없는 제국이 되는 사태가 종종 발생했다.

특이한 경우로 국체는 군주제인데 정작 군주가 없는 상태에서 섭정이 국가를 통치하는 해괴한 일이 가끔 있다. 대개 이런경우는 권력자가 혈통 등 왕위를 승계할 조건을 갖추지 못해서 스스로 직접 왕위에 오르기는 불가능하지만 옛 왕실의 권위는 이용하고 싶을때 쓰는 꼼수이다. 대표적인 것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붕괴 이후 등장한 헝가리 왕국인데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이 헝가리 왕국의 섭정을 자처했지만 정작 헝가리 왕위를 주장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전 황제인 카를 1세를 추방해버려 함대 없는 제독이 왕 없는 왕국을 통치하는 이상한 모습이 연출됐다.

또 다른 사례로는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 지배하의 스페인인데 프랑코는 스페인 왕국의 섭정을 자처했지만 자신의 살아 생전에는 왕을 옹립하지 않았다. 왕위 계승 1순위였던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 자유주의 성향이었던 것과 기타 등등이 겹친 결과였다. 가 죽은 다음에는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옹립되면서 스페인은 진정한 의미의 왕정복고를 맞이한다.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장군 치하의 그리스 역시 왕 없는 왕국이었다. 1967년 파파도풀로스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당시 그리스의 국왕이었던 콘스탄티노스 2세는 파파도풀로스를 축출하기 위해 역쿠데타를 계획했다가 실패하여 망명한다. 이후 파파도풀로스는 그리스 왕국의 섭정임을 자처하며 한동안 왕 없는 왕국의 섭정놀이를 하다가 1973년에는 아예 군주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한다. 하지만 그는 학생 시위로 인해 곧 퇴진했고 그의 뒤를 이은 페지키스 장군도 키프로스 전쟁에서 터키에게 참패를 당하면서 그리스 군사정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 1974년 왕정복고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시행되었지만 시큰둥한 반응이라서 왕정복고는 무산된다. 콘스탄티노스 2세가 한때 군사정권을 지지해 민심을 잃었던 탓이 컸다.

창작물에서는 이런 현실의 사례보다 한발 더 나가서 반지의 제왕 곤도르 왕국은 왕위를 계승할 자손이 없고 가까운 친족들도 없어서 왕가의 대가 끊긴 상태에서 마지막 왕 에아르누르가 실종되자 왕이 없는 상태에서 후린 가문이 섭정으로서 대리통치를 하는 기묘한 국가체제를 가지고 있는데 후린 가문은 대를 이어 섭정직을 세습하면서 곤도르를 통치하는 등 사실상 왕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진 못해서 옥좌에 앉거나 왕관 왕홀을 사용하지 못하고[48] 대신 섭정의 권력을 나타내는 흰 봉을 사용한다.

태국의 경우 2016년 10월 라마 9세의 사망 후 돌아가신 선왕을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연기하고 2016년 12월 왕세자가 정식으로 즉위하기 전까지 2개월간 왕위가 공석인 상태에서 추밀원장이 섭정으로 국왕 역할을 대신하여 왕세자는 있는데 왕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던 적이 있다. 푸미폰 국왕이 태국에서 워낙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던 데다가 와치랄롱꼰 왕세자가 사생활 문제 등으로 선왕보다 이미지가 좋지 못해서 부왕이 사망하자마자 장례도 치르지 않고 아들인 왕세자가 곧바로 왕위에 오르는 것은 무례하다고 보는 분위기 때문에 벌어진 일.

캐나다와 호주가 속해 있는 영연방 왕국에서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동군연합으로 군주로 재위하고 있었는데 엘리자베스 2세는 정기적으로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 소속 국가들에 방문하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영국에 거주하기 때문에 영연방 왕국 국가들은 군주국이긴 하지만 상주하고 있는 군주가 없고 대신 영국 국왕이 보낸 총독이 군주의 역할을 대리하고 있다. 사실 총독을 영국 국왕이 보낸다는 것도 형식적인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현지인 중에서 그 나라 총리가 총독으로 추천한 인물을 명목상으로 영국 국왕이 임명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9. 군주국 없는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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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이런 사람들은 군주제가 폐지된 공화제 국가에서 자신을 명목상 어느 나라의 군주로 자처하며 왕정복고나 왕위계승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루이 20세[49] 부르봉 왕가와 앙리 7세의 오를레앙 왕가와 그리고 보나파르트 황가가 동시에 왕위/황위를 주장할 뿐더러 후술할 영국의 자코바이트 에드워드 3세의 후손들을 프랑스 왕위 요구자로 내세우고 있으며 이웃나라인 영국과 스페인의 이 각각 노르망디 공작 칭호와 부르고뉴 공작 칭호를 쓰고 있고, 이미 군주국인 영국에도 스튜어트 왕조를 지지하는 자코바이트 및 아일랜드의 독립으로 해체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왕족을 자칭하는 하노버 왕국 왕위 요구자가 있으며, 그 외에도 온갖 왕위 계승 주장자들이 존재한다. 종교 지도자인 티베트 불교 달라이 라마와 이슬람교 아흐마디야파의 칼리파도 넓은 의미에서 이런 군주위 계승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10. 관련 문서


[1] 엘리자베스 2세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하여 활영했다. [2] Mon(홀로, Monopoly(독점)도 여기에서 나왔다.)+arkhein(to rule, 지배하다)의 합성어. [3] 통치자, 주권자. [4] 말레이시아는 대부분 주에 따로 술탄이 있고( 페낭이나 말라카처럼 지금은 없는 주도 있다) 나라 전체의 왕위가 따로 있다. [5] 프랑스의 절대왕정이 절정에 달했을 시기 프랑스 1년 국가 예산의 6%를 왕실이 썼을 정도였다. 현재 한국의 예산이 500조 정도 되는데 왕실 유지 및 사치에 사용하는 돈으로 매년 국가 예산 30조를 사용한 셈이다. [6]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신분제는 백성과 아랫사람에게 자상하게 대하고 보살필 수는 있어도 신분의 구분은 철저히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7] 물론 즉위 이전의 인물들, 특히 이성계는 제외. [8] 조선왕조 역사에서 개국 초 벌어진 조사의의 난 진압을 위해 태종 이방원이 친정한 딱 한 번의 사례가 있을 뿐, 그 이후 조선 국왕이 친정한 사례는 없다. [9] 유독 이 시기에는 황제들이 많이 퇴출당한 시기다. [10]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공화정으로 바뀌었으나 스페인은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왕정을 복고시켰다.[50] 몽골은 운게른의 깽판 이후에 복드 칸이 죽자마자 군주정이 끝장나고 공화정으로 이양했다. [11] 다만,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구성국 중 하나였던 몬테네그로는 현재 완전히 왕정복고 된 것은 아니지만 2011년부터 대통령과 국왕이 권한을 나눠가지는 법이 통과되었다. [12] 1919년 고종 사후 복벽운동이 힘을 잃고, 임시정부가 헌장에서 민주공화제를 최초로 명시하고, 1948년 제헌 헌법에서 이를 못박는다. [13] 독립국가로써의 군주제 폐지는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에 합병된 1910년이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천황가 이왕가가 존재했으므로 넓게 보면 한반도의 군주정이 폐지된 때는 천황가를 기준으로 1945년, 이왕가를 기준으로 1947년이다. [14] 마카오와 홍콩은 각각 1910년(포르투갈 10월 5일 혁명), 1997년( 홍콩 반환)으로 군주제가 폐지된다. [15] 크로아티아는 별도의 국왕이 세워졌으나 이도 2년후 국왕이였던 토미슬라브 2세가 국왕직을 포기하면서 퇴위. [A] 1937년에 새 헌법을 제정하고 동시에 영연방을 탈퇴했으나 이 때에는 국가원수 아일랜드 대통령과 아일랜드(영국) 국왕을 모두 국가원수로 두었으며 둘의 역할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규정되어 있어 충돌할 여지는 없었다. 반쪽짜리 왕국 혹은 반쪽짜리 공화국이었던 셈. 1948년에 아일랜드 공화국법을 제정해 영국 국왕의 아일랜드 국가원수 자격을 박탈했고, 1949년에는 영국이 영연방 탈퇴를 인정해 완전한 공화국이 된다. [17] 하지만 헝가리는 군주정을 수립한 이후 한 번도 왕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실권자였던 호르티 미클로시 섭정이었지 왕은 아니었다. 이는 즉, 군주정인데 왕이 있었던 적이 없는 당시에나 지금이나 상당히 괴이한 나라였다. [18] 하지만 군주정 자체는 파루크 1세의 아들이 허수아비 국왕으로 즉위함에 따라 1953년까지 존속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철폐되었다. [19] 하지만 1970년까지 바드르 국왕은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아 내전을 수행했으나 1970년 살레 왕당파를 완전히 물리침에 따라 예멘은 공화국이 된다. 한편 이집트는 살레의 공화국을 지원했고 덕분에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뒷통수를 맞아 처참하게 패배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20] 이후 탕가니카와 통합 [21] 1963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의 일부인 상태로 독립하면서 말레이시아의 군주인 양 디페르투안 아공을 싱가포르의 군주로 모셨지만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축출되면서 군주정이 자연스레 폐지되었다. [22] 취소선이 쳐져있는 이유는 사모아를 입헌군주국으로 볼지 공화국으로 볼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처럼 의회가 선출하고, 5년 임기이긴 한데 부를 때 전하(your highness)라고 부르고, 특별 계급 내에서만 선출되며,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직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공화국으로 보는 견해와 입헌군주국으로 보는 견해가 갈린다. [국민투표] 국민투표로 군주정 폐지 [A] [헌법제정] 헌법 제정으로 군주정 폐지 [B] 자치령 시절에는 헌법이 없었고, 이 때는 영국 국왕을 모셨다. 그러나 영국과 인도/파키스탄 모두 자치령 체제를 공화국으로 가는 과도기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치령으로 지정되자마자 헌법 제정 절차에 착수해 헌법을 제정해 공화국이 되었다. [헌법제정] [B] [국민투표] [국민투표] [31] 당시 헨드릭 페르부르트 총리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개헌] 헌법개정으로 군주정 폐지 [개헌] [개헌] [개헌] [개헌] [개헌] [38] 현재의 짐바브웨 [개헌] [국민투표] [개헌] [개헌] [개헌] [개헌] [군사쿠데타] 군사쿠데타 군주정 폐지 [개헌] [개헌] [48] 영화를 보면 데네소르가 높이 설치돼있는 옥좌에 앉아있지 않고 그 아래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49] 현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 육촌.


[50] 다만 실제로 후안 카를로스 1세 프란시스코 프랑코에야 스페인의 국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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