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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왕국 Βασίλειον τῆς Ἑλλάδος Kingdom of Gree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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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1] | 국장 | |
Ἐλευθερία ἤ Θάνατος(전통 표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Ἰσχύς μου ἡ ἀγάπη τοῦ λαοῦ(왕실 표어) 국민들의 사랑은 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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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자유의 찬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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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당시 그리스 왕국 | 1973년 당시 그리스 왕국 | |
1832년 ~ 1924년 | ||
그리스 제1공화국 | 그리스 제2공화국 | |
1935년 ~ 1941년 | ||
그리스 제2공화국 | 그리스국 | |
그리스 망명 정부 | ||
1944년 ~ 1973년 | ||
그리스국 | 그리스 군사정권 | |
그리스 망명 정부 | ||
위치 | 오늘날의 그리스 | |
수도 | 아테네 | |
인구 |
1913년 540만 명 1947년 760만 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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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입헌군주제 | |
국가원수 | 왕 | |
주요 국왕 |
요르요스 1세 요르요스 2세 콘스탄디노스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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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수상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요안니스 메탁사스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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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어 | 그리스어[2] | |
국교 | 정교회( 그리스 교회) | |
민족 | 그리스인 | |
통화 | 그리스 드라크마 | |
주요 사건 |
1832년 왕정 성립 1862년 국왕 추방 1897년 오스만에 패전 1913년 발칸 전쟁 승전 1920년 튀르키예에 패전 1923년 영토 협정 1924년 제2공화국 성립 1935년 1차 왕정 복고 1936년 군사 반란 1941년 추축국에 점령 1944년 2차 왕정 복고 1947년 영토 협정 1967년 군사 반란 1973년 왕정 폐지 1974년 제3공화국 성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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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근대 그리스 지역에 세워진 왕국.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그리스 독립 전쟁을 거쳐 그리스가 독립하였고 비텔스바흐 가문(바이에른 왕국), 글뤽스부르크 왕조(덴마크 왕국)의 자손들이 그리스 왕국의 군주가 되었다.[3]2. 국기
정부기가 따로 지정되어 국기가 2종류인 나라들도 있지만, 그리스 왕국의 경우 국기가 2종류인 데다 그에 맞는 정부기가 따로 있어, 합쳐서 4종류였다.육상에서 쓰는 민간기로 1822년 채택됐다. 올림픽 대회에서 그리스 왕국 선수단은 주로 이 깃발을 앞세워 입장했다. 하지만 군부 정권이 1970년 폐지했다.[4]
육상에서 쓰는 정부기이자 군기(War flag)다. 1863년 채택. 하지만 이 역시 군부 정권이 1970년 폐지했다.
현 그리스 국기로, 외교업무에서 사용하거나 상선에서 게양하는 깃발로 사용되었다.
십자가의 교차점에 왕관 마크를 넣으면 해군기와 정부선(船)의 깃발이 된다. 1863년 채택.
3. 역사
3.1. 메갈리 이데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Greekhistory.gif메갈리 이데아(Μεγάλη Ιδέα,[5] 위대한 이상[6])라는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수복하려는 정책에 근거하여 점점 땅을 넓혀 나가는 것이 그리스 왕국의 국책이었다. 독립 직후 4만 7천 ㎢에 불과하던 영토가 1864년에는 코르푸 섬을 필두로 한 이오니아 제도를 영국으로부터 증여받고[7], 1881년에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테살리아 지방을 얻어 64,790㎢가 되었다. 발칸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1913년에는 동로마 제국 제2의 도시였던 테살로니키를 비롯한 마케도니아, 에피로스, 크레타 지방을 얻어 영토가 대폭 늘어난 12만 125 ㎢가 되었는데, 기존 영토이던 남부 그리스 지역(Παλαιά Ελλάδα)과는 이미 80년 넘게 다른 국가였기 때문에 새로운 땅(Νέες Χώρες)이라 불린 이 영토를 통합하기 위해 테살로니키에 마케도니아 총독부를 설치하는 등 중앙의 행정과 어느 정도는 별개로 운영하였다.[8] 원래부터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던 그리스는 이렇게 영토를 늘려서 추가로 인구를 확보한 1913년에 540만 명으로 증가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국왕 콘스탄티노스 1세와 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사이에서 어느 편을 들어 참전할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고 국가를 분열시켰다.(국론 분열:Εθνικός Διχασμός) 국왕은 독일 출신이라 친독적 중립을 주장했고, 베니젤로스는 협상국 편을 들었는데 국왕의 총리 해임으로 인한 반발 등을 거쳐 결국 협상국으로 참전했고 (불가리아에게 발렸지만, 결국 협상국이 승리하며) 승전국이 되면서 1919년에는 불가리아로부터 서부 트라키아를, 이듬해에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동부 트라키아( 코스탄티니예 외곽) 지방을 연이어 쟁취하고, 이즈미르(스미르나) 주변을 점령하여 아나톨리아의 영토까지 사실상 확보하며 영토가 17만 3779 ㎢로 늘어났다.
내친김에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아나톨리아까지 점령하려고 앙카라 근교까지 진격했다가 튀르키예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1923년에 이탈리아의 영토였던 도데카니사 제도를 제외한 에게 해 섬들을 차지하는 대신 동부 트라키아와 이즈미르 지방을 튀르키예에 반환했다. 게다가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이 일어나 동부 트라키아와 아나톨리아의 정교회 신자들이 아테네 근교와 북부 지역에 대거 정착하였다.
3.2. 왕당파와 공화파의 대립
▲ 아테네의 그리스 왕실 근위대 병영의 입구. 군사 쿠데타 1달 전인 1967년 3월 25일 촬영.
튀르키예 독립 전쟁의 패전으로 인한 좌절로 그리스는 1924년부터 1935년까지 '제2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지만, 결국 왕당파가 다시 정권을 잡아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막상 왕정복고를 하고 총선을 치러보니 제2공화정을 강력히 지지하던 자유당 등이 왕당파에 맞먹을 세력을 확보하여 정부 구성이 이뤄지지 않았고, 왕당파 군인 중 하나인 요안니스 메탁사스 장군이 1936년에는 군사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국왕을 무력화한 권위주의적 군사 독재 정부(8월 4일 체제)를 수립했다.
1940년 이탈리아 왕국의 그리스 침공에 이어 나치 독일의 점령을 겪었고, 왕국 정부는 카이로에서 망명 정부를 세웠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민투표로 지지를 얻어 요르요스 2세가 복고되었고 이탈리아로부터 도데카니사 제도를 획득하여 현재의 국경을 완성했다.(13만 1990 ㎢)
이런 상황에서도 그리스의 인구는 상당히 빠르게 증가해서 영토를 확정지은 1947년에는 760만 명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왕당파를 중심으로 한 군부와 공화파를 중심으로 한 추축국에 맞섰던 공산군의 갈등으로 1949년까지 그리스 내전이 일어났다. 결국 공산군이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방면으로 축출되면서 왕당파가 완전히 승리했다.
1952년에는 헌법이 개정되었는데, 제21조에서는 왕국의 국체를 "왕관을 쓴 민주주의/왕관을 쓴 공화국(Βασιλευομένη Δημοκρατία)"[9]으로 규정하였다. 또한 남성을 우선하되 남성이 없으면 여성도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왕위 계승 법칙이 개정되었다. 이는 당시 그리스 왕실에 자손을 남길 가능성이 있는 계승권자가 두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파블로스보다 앞서 즉위한 두 형은 아들이 없었는데 1952년 당시 파블로스에게는 아들이 왕세자 한 명뿐이었고 더 먼 남계 왕족은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초대 국왕인 요르요스 1세의 자손들이었는데, 요르요스 1세는 5명의 아들을 두었지만 차남 요르요스 왕자(1869~1957)[10]의 외아들 페트로스는 귀천상혼으로 계승권을 포기했고, 3남 니콜라오스 왕자는 딸만 셋이었고, 4남 안드레아스 왕자의 외아들 필리포스는 영국 왕실의 추정상속인이었던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하면서 계승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왕위계승서열 3위이자 마지막 계승권자는 5남 흐리스토포로스 왕자의 외아들 미하일(1939~2024)뿐이었다.(미하일은 계승법 변경 이후 1965년 귀천상혼으로 계승권 포기) 때문에 만일 왕세자가 아들을 얻지 못하고 미하일마저 계승권을 포기하거나 아들을 얻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계승법을 바꾸게 되었다.
3.3. 멸망
그리스 공산당은 내전 이후 불법화되었고, 이후 우파 진영은 알렉산드로스 파파고스 원수와 콘스탄디노스 카라만리스 총리가 이끄는 그리스 집회(Ἑλληνικὸς Συναγερμός/Greek Rally, 1951~1955)와 그 후신인 국민급진연합(Ἐθνικὴ Ῥιζοσπαστικὴ Ἕνωσις/National Radical Union, 1956~1974)을 결성하여 여당으로 있었다. 그러나 1958년 총선에서 좌파성향의 정당인 연합민주좌파(ΕΔΑ)가 선전하자 국가급진연합은 노골적으로 견제를 시도했고 1961년 총선에서는 야당인 중도연합과 좌파민주연합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에 대해 노골적인 투표방해와 체포협박 등의 부정 선거 공작이 일어났음을 이유로 불복하였다. 하지만 2년 후인 1963년 총선에서 중도연합이 정권교체에 성공하였고, 이듬해 총선에서도 중도연합이 과반을 확보, 재집권하였다.그러나 총리가 계속 바뀌다가 급기야 1967년 4월 21일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가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 그 결과 좌파와 중도 정당은 물론이고 우파 정당들까지 강제해산당하며 7년간 군부가 집권하게 된다.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는 1967년 12월 13일 군사정권이 장악한 아테네를 떠나 테살로니키 동쪽 카발라로 몽진, 쿠데타에 가담하지 않은 해공군을 주축으로 군사반란을 진압하려 했다. 그러나 이 시도가 실패하고 이튿날 국왕이 로마로 망명하면서 왕정은 사실상 끝이 난다.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는 한동안 섭정놀이를 했지만, 왕당파가 민주화 세력과 연대해 군정 반대 투쟁을 벌이자 1973년 7월 29일 국민투표를 거쳐 왕정을 폐지한다. 군사정권은 키프로스 전쟁에서 패배한 후 무너졌으나, 왕정복고 여부에 관한 국민투표 결과 7:3으로 공화파가 승리하여, 그리스는 공화국이 된다.
4. 연표
- 왕국 성립 이전
- 왕국 성립
- 1832년: 유럽 열강의 런던 회의, 비텔스바흐 가문의 오톤이 왕위에 올라 그리스 왕국 성립.
- 1862년: 오톤 폐위.
- 1863년: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크리스티안 빌헬름 페르디난 아돌프 게오르그 공이 요르요스 1세로 왕위에 오름, 이오니아 제도를 영국으로부터 증여받음.
- 1881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테살리아 등 중부 그리스 지방 획득.
- 1897년: 오스만-그리스 전쟁 패배, 오스만 제국에 배상금을 지불했으나 열강의 중재로 크레타섬이 1898년 그리스 왕국의 괴뢰국으로서 독립, 크레타국은 1913년 그리스에 합병됨.
- 1912년: 발칸 전쟁 승리, 테살로니키를 중심으로 한 북부 그리스 지방 획득.
- 1919년: 제1차 세계 대전 승리, 불가리아로부터 서부 트라키아 지방 획득.
- 1922년: 튀르키예 독립 전쟁 패배, 그리스군의 반란, 콘스탄디노스 1세 폐위.
- 1923년: 콘스탄디노스 1세 사망, 요르요스 2세가 왕위를 이어받음.
- 그리스 제2공화국
- 1924년: 군주제 폐지, 공화정 정부 수립.
- 왕정 복위
- 1935년: 요르요스 콘딜리스의 친위 군사 반란, 왕정 부활.
- 1936년: 메탁사스의 8월 4일 체제 수립.
- 1941년: 추축국의 점령, 그리스국 수립.
- 1946년: 국민 투표를 통해 왕정 부활, 이탈리아로부터 도데카니사 제도 획득.
- 그리스 군사정권
- 1967년: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의 군사 반란으로 그리스 군사정권 설립, 콘스탄디노스 2세 군사 반란 시도하다 망명.
- 1973년: 그리스 군사정권, 국민투표를 통해 왕정 폐지.
- 1974년: 군사정권 전복, 왕정복고 투표 부결, 그리스 제3공화국 수립.
5. 역대 지도자
5.1.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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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뤽스부르크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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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군주 | 즉위 | 퇴위 |
오톤 | 1832년 | 1863년 |
요르요스 1세 | 1863년 | 1913년 |
콘스탄티노스 1세 | 1913년 | 1917년 |
알렉산드로스 | 1917년 | 1920년 |
콘스탄티노스 1세 | 1920년 | 1922년 |
요르요스 2세 | 1922년 | 1924년 |
그리스 제2공화국(1924년~1935년) | ||
요르요스 2세 | 1935년 | 1941년 |
추축국의 그리스 점령[11](1941년~1944년) | ||
요르요스 2세 | 1946년 | 1947년 |
파블로스 | 1947년 | 1964년 |
콘스탄티노스 2세 | 1964년 | 1973년 |
그리스 제3공화국(1974~) |
5.2. 섭정
섭정은 임시로 왕권을 대신 행사하는 직위라서, 대수를 세지 않는다.- 파블로스 쿤투리오티스[12][13]: 1920년 ( 군부)
-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로마노바[14]: 1920년 (왕실)
- 요르요스 콘딜리스[A][B][17]: 1935년 (군부)
- 아테네 대주교 다마스키노스[18][19]: 1944년~1946년 (무소속)
- 요르요스 조이타키스[A][21]: 1967년~1972년 (군부)
-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B][23][24]: 1972년~1973년 (군부)
5.3.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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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제1공화국| 제1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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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
알렉산드로스 마브로코르다토스 | 페트로스 마브로미할리스 | 요르요스 쿤투리오티스 | 안드레아스 자이미스 | |
제5대 | 제6대 | |||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 아브구스티노스 카포디스트리아스 | |||
[[그리스 왕국| 비텔스바흐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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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 제8대 | 제9대 | 제10대 | |
스피리돈 트리쿠피스 | 알렉산드로스 마브로코르다토스 | 요안니스 콜레티스 | 요제프 루트비히 폰 아르만스페르크 | |
제11대 | 제12대 | 제13대 | 제14대 | |
이그나츠 폰 루트하르트 | 오톤 | 알렉산드로스 마브로코르다토스 | 오톤 | |
제15대 | 제16대 | 제17대 | 제18대 | |
안드레아스 메탁사스 | 콘스탄티노스 카나리스 | 알렉산드로스 마브로코르다토스 | 요안니스 콜레티스 | |
제19대 | 제20대 | 제21대 | 제22대 | |
키초스 자벨라스 | 요르요스 쿤투리오티스 | 콘스탄티노스 카나리스 | 안도니스 크리지스 | |
제23대 | 제24대 | 제25대 | 제26대 | |
알렉산드로스 마브로코르다토스 | 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 | 아타나시오스 미아울리스 | 요안니스 콜로코트로니스 | |
제27대 | 제28대 | 제29대 | 제30대 | |
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 | 아리스티디스 모레티니스 | 지노비오스 발비스 | 디오미디스 키리아코스 | |
제31대 | ||||
베니젤로스 루포스 | ||||
[[그리스 왕국| 1차 글뤽스부르크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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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대 | 제33대 | 제34대 | 제35대 | |
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 | 콘스탄티노스 카나리스 | 지노비오스 발비스 | 콘스탄티노스 카나리스 | |
제36대 | 제37대 | 제38대 | 제39대 | |
베니젤로스 루포스 | 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 에파미논다스 딜리요르이스 | 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 | |
제40대 | 제41대 | 제42대 | 제43대 | |
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 에파미논다스 딜리요르이스 | 베니젤로스 루포스 | 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 | |
제44대 | 제45대 | 제46대 | 제47대 | |
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 아리스티디스 모레티니스 | 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 | 트라시불로스 자이미스 | |
제48대 | 제49대 | 제50대 | 제51대 | |
에파미논다스 딜리요르이스 | 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 트라시불로스 자이미스 | 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 | |
제52대 | 제53대 | 제54대 | 제55대 | |
에파미논다스 딜리요르이스 | 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 |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 | 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 |
제56대 | 제57대 | 제58대 | 제59대 | |
에파미논다스 딜리요르이스 | 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 에파미논다스 딜리요르이스 | 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 |
제60대 | 제61대 | 제62대 | 제63대 | |
콘스탄티노스 카나리스 | 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 | 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 |
제64대 | 제65대 | 제66대 | 제67대 | |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 | 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 | 테오도로스 딜리얀니스 | |
제68대 | 제69대 | 제70대 | 제71대 | |
디미트리오스 발비스 |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 | 테오도로스 딜리얀니스 | 콘스탄티노스 콘스탄토풀로스 | |
제72대 | 제73대 | 제74대 | 제75대 | |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 | 소티리오스 소티로풀로스 |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 | 니콜라오스 딜리얀니스 | |
제76대 | 제77대 | 제78대 | 제79대 | |
테오도로스 딜리얀니스 | 디미트리오스 랄리스 | 알렉산드로스 자이미스 | 요르요스 테오토키스 | |
제80대 | 제81대 | 제82대 | 제83대 | |
알렉산드로스 자이미스 | 테오도로스 딜리얀니스 | 요르요스 테오토키스 | 디미트리오스 랄리스 | |
제84대 | 제85대 | 제86대 | 제87대 | |
요르요스 테오토키스 | 테오도로스 딜리얀니스 | 디미트리오스 랄리스 | 요르요스 테오토키스 | |
제88대 | 제89대 | 제90대 | 제91대 | |
디미트리오스 랄리스 | 키리아쿨리스 마브로미할리스 | 스테파노스 드라구미스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 |
제92대 | 제93대 | 제94대 | 제95대 | |
디미트리오스 구나리스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 알렉산드로스 자이미스 | 스테파노스 스쿨루디스 | |
제96대 | 제97대 | 제98대 | 제99대 | |
알렉산드로스 자이미스 | 니콜라오스 칼로예로풀로스 | 스피리돈 람브로스 | 알렉산드로스 자이미스 | |
제100대 | 제101대 | 제102대 | 제103대 |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 디미트리오스 랄리스 | 니콜라오스 칼로예로풀로스 | 디미트리오스 구나리스 | |
제104대 | 제105대 | 제106대 | 제107대 | |
니콜라오스 스트라토스 | 페트로스 프로토파파다키스 | 니콜라오스 트리안타필라코스 | 아타나시오스 하랄람비스 | |
제108대 | 제109대 | 제110대 | 제111대 | |
소티리오스 크로키다스 | 스틸리아노스 고나타스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 요르요스 카판타리스 | |
[[그리스 제2공화국| 제2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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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대 | 제113대 | 제114대 | 제115대 | |
알렉산드로스 파파나스타시우 | 테미스토클리스 소풀리스 | 안드레아스 미할라코풀로스 | 테오도로스 팡갈로스 | |
제116대 | 제117대 | 제118대 | 제119대 | |
아타나시오스 에프탁시아스 | 요르요스 콘딜리스 | 알렉산드로스 자이미스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 |
제120대 | 제121대 | 제122대 | 제123대 | |
알렉산드로스 파파나스타시우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 파나이스 찰다리스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 |
제124대 | 제125대 | |||
알렉산드로스 오토네오스 | 파나이스 찰다리스 | |||
[[그리스 왕국| 2차 글뤽스부르크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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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대 | 제127대 | 제128대 | 제129대 | |
요르요스 콘딜리스 | 콘스탄티노스 데메르치스 | 요안니스 메탁사스 | 알렉산드로스 코리지스 | |
제130대 | 제131대 | 제132대 | 제133대 | |
엠마누일 추데로스 | 소포클리스 베니젤로스 |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 니콜라오스 플라스티라스 | |
제134대 | 제135대 | 제136대 | 제137대 | |
페트로스 불가리스 | 다마스키노스 대주교 | 파나요티스 카넬로풀로스 | 테미스토클리스 소풀리스 | |
제138대 | 제139대 | 제140대 | 제141대 | |
파나요티스 풀리차스 | 콘스탄티노스 찰다리스 | 디미트리오스 막시모스 | 콘스탄티노스 찰다리스 | |
제142대 | 제143대 | 제144대 | 제145대 | |
테미스토클리스 소풀리스 | 알렉산드로스 디오미디스 | 요안니스 테오토키스 | 소포클리스 베니젤로스 | |
제146대 | 제147대 | 제148대 | 제149대 | |
니콜라오스 플라스티라스 | 소포클리스 베니젤로스 | 니콜라오스 플라스티라스 | 디미트리오스 키우소풀로스 | |
제150대 | 제151대 | 제152대 | 제153대 | |
알렉산드로스 파파고스 |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 | 콘스탄티노스 요르가코풀로스 |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 | |
제154대 | 제155대 | 제156대 | 제157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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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상에서 쓰는 민간기이다. 하지만 1970년 군부에 의해 폐지되고, 마지막 3년간은 진파랑색을 쓴 현 그리스 국기 도안을 사용한다.
[2]
문어체인 '카사레부사'와
구어체인 '디모티키'로 나뉘어
양층 언어 현상이 있었다.
[3]
타국의 오랜 지배로 독립시 왕조를 재건 혹은 개창할 만한 토착세력이 없어 외국에서 왕을 데려오는 케이스는 드문 일도 아니었다. 유럽 왕실은 서로 통혼하여 거슬러 올라가면 그 지역의 영유권이 전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외국에서 왕조를 수입하는 것도 가능했던 것. 더구나 그리스는 열강들에 의해 독립이 된 만큼 열강의 입맛에 맞는 이를 군주로 세워야 했다. 이 사실은 그리스인들도 잘 알아서 그리스인이 원했던 왕족은 영국왕족이었으며 왕 옹립투표에서도 1등했다. 세계최강대국과 같은 왕족이면 안보에 있어서 도움이 될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견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무산되었다.
[4]
공화국 수립 후 짧은 기간 부활(1975~1978)하기도 했다.
[5]
다소 시대착오적이긴 하지만, 대중들에게 익숙할 고전 발음으로 읽으면 '메갈레 이데아'이다.
[6]
고대 그리스어의 Ιδέα(이데아)는 한자어 '형상'이나 고유어 '꼴'에 가까운 의미였으나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이상'이나 '관념'의 의미로 쓰인다.
[7]
원래는
이오니아 제도 합중국이라는 영국의 괴뢰국으로 되어 있었는데,
당시 영국 왕세자의
처남인
요르요스 1세(요르요스 1세의 바로 위 누나인
알렉산드라는 에드워드 7세와 혼인했다.)의 즉위 선물로 준 것이다.
[8]
마케도니아 총독부는 1945년에 트라키아 총독부와 합쳐쳐 북부그리스 총독부로 바뀌었다. 1955년 북부그리스부(部)로 바뀌어 총독제도는 사라졌으며, 1988년 마케도니아-트라키아부(部)를 거쳐 2009년에 내무부 산하 조직으로 격하되어 지금까지도 존속 중이다(2012~2015년 한때 다시 부로 승격).
[9]
그리스어에서 민주주의와 공화국은 Δημοκρατία로 같다.
[10]
이 때 살아있어서 왕위계승 서열 2위였지만 1952년 당시 나이가 83세였다.
[11]
이 기간 동안
요르요스 2세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망명정부를 이끌었다.
[12]
해군
대장
[13]
알렉산드로스
국왕이 사망하자 섭정으로 추대되었으나, 얼마 안 가서
올가 콘스탄티노브나에게 섭정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14]
요르요스 1세의 아내이자
콘스탄티노스 1세의 모후였고,
망명 중이던 아들이 귀국하여 복위하기 전까지 섭정을 맡았다.
[A]
육군
중장
[B]
섭정 겸
총리
[17]
왕정복고가 결정된 직후부터
요르요스 2세가 귀국하여 복위하기 전까지 섭정을 맡았다.
[18]
본명은 '다마스키노스 파판드레우(Damaskinos Papandreou).' 그리스의
국교인
그리스 교회의 수장으로서, 망명 중이던 요르요스 2세가 복위하기 전까지 섭정을 맡았다.
[19]
1945년에는 일시적으로 총리를 겸직했다.
[A]
[21]
1967년
콘스탄티노스 2세가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군사정권을 축출하기 위한 역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하여 해외로 망명하자, 파파도풀로스에 의해 섭정으로 옹립되었다.
[B]
[23]
육군
대령
[24]
1967년
쿠데타로 집권한 후
총리로서 군사정권을 이끌었고,
1972년부터 섭정을 역임하다가,
1973년에
공화정을 선포하고
대통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