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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23:29:29

안티파트로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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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안티파트로스: 마케도니아 왕국의 섭정2.2. 카산드로스: 알렉산드로스 3세의 후손을 멸족시키고 왕위에 오르다2.3. 몰락
3. 역대 왕

1. 개요

마케도니아 왕국의 두 번째 왕조. 알렉산드로스 3세 사후 헬레니즘 제국의 섭정을 맡았던 안티파트로스를 기원으로 한다. 왕조의 초대 왕 카산드로스를 따 '카산드로스 왕조'라고도 한다. 기원전 305년 카산드로스가 왕을 칭하면서 탄생했지만, 카산드로스가 사망한 지 3년만에 왕조가 무너졌다. 이후 카산드로스의 조카 안티파트로스 에테시아스가 군대의 추대로 잠시 왕위에 올랐으나 오래 버티지 못했다.

2. 역사

2.1. 안티파트로스: 마케도니아 왕국의 섭정

안티파트로스 마케도니아 왕국의 전성기를 이끈 필리포스 2세의 신임받는 장군이었다. 기원전 342년 필리포스 2세가 트라키아와 스키타이 부족을 정벌하고자 출진했을 때, 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맡았다. 이때 아테네가 에우보이아 도시들을 장악하려 하자 즉시 군대를 파견하여 막아냈다.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가 끝난 뒤, 그는 전투에서 전사한 아테네인들의 유골을 반환하고 평화 조약을 협상하기 위해 아테네에 사절로 파견되었다.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가 사망하자 알렉산드로스 3세를 지지했다. 파르메니온과 함께 결혼을 하여 후계자를 낳은 뒤 아시아로 원정을 떠나라고 조언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듣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가 출정한 뒤 마케도니아 섭정을 맡았으며, 기원전 331년 페르시아의 그리스인 장군 멤논의 사주를 받은 스파르타가 전쟁을 단행하자,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출진하여 기원전 330년 메갈로폴리스에서 스파르타 왕 아기스 3세를 패사시킴으로써 후방을 안정시켰다.

그는 그리스의 참주들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그리스 시민들의 미움을 받았지만, 필리포스 2세가 구축한 코린토스 동맹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게다가 알렉산드로스 3세의 모친인 올림피아스와의 관계가 갈수록 악화되었다. 기원전 324년, 알렉산드로스는 올림피아스와 안티파트로스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안티파트로스를 아시아로 불러들이고, 크라테로스에게 마케도니아 섭정을 맡겼다. 그러나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에서 갑자기 사망하면서, 안티파트로스는 마케도니아에 그대로 남을 수 있었다. 로마 역사가 유스티누스 등 몇몇 역사가들은 안티파트로스가 아들 카산드로스를 시켜 알렉산드로스를 독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고대부터 여러 역사가들에게 근거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고, 현대 학자들 역시 알렉산드로스가 말라리아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새로운 섭정 페르디카스에 의해 그리스를 통치하였는데, 아테네, 아이톨리아, 테살리아가 알렉산드로스의 사망을 틈타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스 연합군은 약 25,000명에 달했고, 안티파트로스의 부대는 13,000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은 한때 알렉산드로스와 맞서 싸웠으며 전투 경험이 풍부한 용병대장 레오스테네스였다. 안티파트로스는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레오스테네스에게 패배한 뒤 테살리아의 도시 라미아로 퇴각했다. 그는 적군의 맹공을 가까스로 막아내면서 사방에 구원을 요청했다. 기원전 322년 프리지아 총독 레오나토스가 이에 응해 군대를 이끌고 테살리아에 도착했다. 이어진 전투에서 레오나토스는 패배하고 전사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연합군이 포위망을 떠났고 레오스테네스도 전사했다. 안티파트로스는 이 틈을 타 라미아에서 빠져나와 마케도니아로 이동한 뒤, 아시아에서 추가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이 과정에서 레오나토스의 보병 잔여 병력을 수습했다. 또한 크라테로스 장군이 이끌고 온 퇴역 군인 16,000명도 가세했고, 그는 크라테로스와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해 딸 필라를 그의 아내로 삼게 했다.

기원전 322년, 안티파트로스와 크라테로스는 크라논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격파했다. 이후 테베의 폐허에서 평화를 갈망하는 아테네 사절단과 만나서 과두정을 설치하고, 반란을 선동한 데모스테네스와 하이페레이데스를 잡아서 넘기라고 요구했다. 데모스테네스는 잡히기 전에 자살했고, 하이페레이데스는 체포되어 투옥된 후 혀가 뽑혔다. 같은 해 말, 안티파트로스와 크라테로스는 소아시아의 안티고노스 1세로부터 페르디카스가 제국의 완전한 통치자가 될 것을 고려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두 사람은 당시 아이톨리아인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페르디카스를 무너뜨리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아이톨리아인과 평화 협정을 맺은 뒤 이집트의 사트라프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동맹을 맺고 페르디카스와 전쟁을 벌였다. 기원전 321년, 크라테로스는 에우메네스와 맞서기 위해 카파도키아로 진격했고, 안티파트로스는 페르디카스와 싸우기 위해 남쪽으로 진군했다.

시리아에 도착했을 때, 그는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한 통은 크라테로스가 에우메네스와 맞붙었다가 패배하고 전사해버렸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페르디카스가 이집트 공략에 실패한 후 부하들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트라파라디소스에서 회의를 주재하여,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게 이집트를, 셀레우코스 1세에게 바빌로니아를, 리시마코스에겐 트라키아를, 그리고 안티고노스에게 소아시아의 많은 지역을 맡기고, 자신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에 대한 섭정을 맡기로 했다. 또한 크라테로스를 살해한 에우메네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또한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와 이복형 필리포스 3세를 마케도니아로 보내고 그들의 섭정을 맡기로 했다. 기원전 320년 아들과 함께 마케도니아로 돌아왔으나 기원전 319년 병에 걸려 사망했다.

2.2. 카산드로스: 알렉산드로스 3세의 후손을 멸족시키고 왕위에 오르다

안티파트로스는 아들 카산드로스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서 섭정을 맡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유능한 사령관 폴리페르콘을 섭정으로 삼았다. 카산드로스는 이에 반발하여 폴리페르콘을 몰아내고자 안티고노스,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재차 동맹을 맺었다. 폴리페르콘은 이에 두려워하여 그리스 도시 국가들에게 마케도니아로부터 독립시켜주겠다며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카산드로스는 아테네에 옛 정치체제를 회복시켜주기로 했고, 알렉산드로스에게 철저하게 파괴되었던 테베를 재건해 민심을 끌어모았다. 그 결과, 그리스인들은 카산드로스의 편을 들기로 했다.

기원전 317년 카산드로스는 아테네 남서쪽 페게우스에 기지를 세우고 메갈로폴리스에서 폴리페르콘을 격파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가두었다. 이후 필리포스 3세의 부인인 에우리디케와 동맹을 맺고 마케도니아의 섭정에 올랐으며, 부하 데메트리오스에게 아테네를 맡겼다. 폴리페르콘은 에페이로스의 올림피아스에게 지지를 호소했고, 올림피아스는 에페이로스 군주 아이아키데스를 설득해 군대를 모아 며느리 록사나, 손자 알렉산드로스 4세를 데리고 카산드로스가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원정 중인 틈을 타 마케도니아로 쳐들어갔다. 필리포스 3세와 에우리디케가 이에 맞서 군대를 이끌고 대치하자, 올림피아스는 알렉산드로스 4세를 병사들에게 공개해, 마케도니아군의 항복을 받고 무혈 입성했다. 이후 필리포스 3세 부부와 카산드로스의 동생 니카토르를 생포한 뒤 기원전 317년 12월 필리포스 3세, 에우리디케, 니카토르를 잡아 죽였다.

이에 분노한 카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로 쳐들어갔고, 기원전 316년 피드나에서 폴리페르콘에 충성하던 병사들이 병력 차가 너무 나는 걸 보고 귀순한 덕분에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두었다. 폴리페르콘은 간신히 몸을 피한 뒤 올림피아스를 탈출시키려 했으나 실패했고, 그는 올림피아스를 생포한 뒤 왕을 죽인 죄목을 적용해 올림피아스를 처형했다. 이후 필리포스 2세의 딸이자 알렉산드로스 3세의 이복동생인 테살로니케와 결혼하여 아르게아스 왕조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테살로니케와의 사이에서 필리포스 4세, 알렉산드로스 5세, 안티파트로스 1세를 낳았다.

제3차 디아도코이 전쟁이 일어나면서 기원전 314년에 안티고노스와 대립했다가 안티고노스 1세가 그리스 전역의 폴리스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티레 선언을 하면서 카산드로스에게 반발해 여러 폴리스들이 봉기하자 안티고노스와 화평을 맺었으며, 폴리페르콘이 지배한 펠레폰네소스를 공격했지만 협상을 맺고 펠레폰네소스 이외의 그리스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기원전 313년에 에페이로스에서 국민들이 아이아키데스를 왕위에 복귀시키자 동생 필리포스를 시켜 아이아키데스를 죽이도록 했으며, 기원전 312년에는 아이아키데스의 뒤를 이은 알케타스 2세를 쫓아내기 위해 공격했다가 평화 협정을 맺었다.

기원전 310년 글라우키아스에게 명령을 내려 트라키아의 암피폴리스에서 은거 중이던 알렉산드로스 4세와 록사나를 독살시켰다. 또한 폴리페르콘에게 뇌물을 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서자 헤라클레스까지 독살하게 했다. 그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폴리페르콘을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기원전 307년 안티고노스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1세 폴리오르케테스가 카산드로스가 에페이로스를 장악하러 간 사이에 아테네를 기습 점령했다. 데메트리오스는 이듬해 키프로스의 살라미스 해전에서 프톨레마이오스 해군을 섬멸하고 키프로스를 장악했다. 그는 기세를 이어가 기원전 305년 로도스를 포위하고 엄청나게 거대한 공성탑 헬레폴리스까지 동원하여 공격했지만,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보낸 지원군에게 막혀 결국 로도스를 공략하지 못했다. 한편, 카산드로스는 꿋꿋이 에페이로스 공략전을 이어갔고, 기원전 306년에 알케타스 2세가 살해당하고 피로스 1세가 즉위하자 기원전 302년에 에페이로스를 공격해 피로스를 쫓아냈다.

기원전 305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국왕에 공식적으로 즉위하였고, 데메트리오스가 로도스로 간 사이에 아테네를 포위하였지만 공략이 지지부진하다가 아테네로 돌아온 데메트리오스에게 격파되었다. 데메트리오스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전부 귀속시키고 마케도니아로 진군할 태세를 갖추자, 카산드로스는 안티고노스에게 휴전을 맺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안티고노스는 카산드로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내놓지 않으면 평화는 없다고 답했다. 이에 카산드로스는 트라키아의 리시마코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그리고 아시아의 셀레우코스에게 연합을 호소하는 사절단을 보냈다.

바로 옆에 있던 리시마코스는 즉시 카산드로스와 합류하였고, 카산드로스가 테실리아에서 데메트리오스를 상대하는 사이 자신은 병력을 총동원하여 소아시아를 전격 침공했다. 얼마 후 사절단을 접견한 프톨레마이오스 역시 안티고노스에 대항하는 동맹에 가담하기로 하고, 시리아의 시돈을 침공했다. 기원전 302년 소아시아를 침공한 리시마코스는 안티고노스가 안티고니아에서 축제를 즐기는 틈을 타 플라펠루스 장군의 활약을 앞세워 많은 영역을 빠르게 점령했다. 이 소식을 접한 안티고노스는 즉시 대군을 일으켜 소아시아로 진군했다. 그는 아나톨리아 고원 일대에서 리시마코스의 군대와 조우해 곧바로 결전을 벌이려 했다. 하지만 리시마코스는 결전을 미뤘고, 그 사이에 겨울이 오면서 양측은 날씨가 풀릴 때를 기다리기로 하고 동계 숙영에 들어갔다.

기원전 301년 인도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셀레우코스 1세가 카산드로스의 메시지를 받고 즉시 반 안티고노스 연합에 가담해 소아시아로 진격했다. 안티고노스는 그리스에 있는 아들 데메트리오스에게 전갈을 보내 당장 자신에게 합류하라고 명했다. 이리하여 안티고노스-데메트리오스 부자와 리시마코스-셀레우코스 연합군이 입소스 전투에서 맞붙었는데, 안티고노스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데메트리오스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군대를 거의 잃어버렸다. 카산드로스는 이 틈을 타 데메트리오스의 통치를 받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대부분 복속시켰다. 그러나 기원전 297년 카산드로스가 사망한 뒤, 왕조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2.3. 몰락

카산드로스가 사망한 후, 장남 필리포스 4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결핵에 걸려 얼마 안가 사망했다. 이후 테살로니케가 남은 두 아들 안티파트로스 1세, 알렉산드로스 5세를 공동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안티파트로스는 어머니가 동생을 편애하자 반감을 품고 어머니를 살해하고 동생을 추방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데메트리오스 1세 폴리오르케테스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마케도니아 동부 해안과 암브리아, 아카르나니아, 암필로키아 속주를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 데메트리오스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마케도니아로 진입하여 기원전 294년 안티파트로스를 격파하고 마케도니아를 장악했다. 이후 데메트리오스는 돌아가는 척 하다가 자신을 배웅하러 온 알렉산드로스 5세를 테살리아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시킨 후 죽여버렸다. 한편 안티파트로스는 트라키아로 망명했지만 리시마코스에게 살해되었다. 이리하여 마케도니아는 데메트리오스 1세의 수중에 들어갔다.

15년 후인 기원전 279년, 카산드로스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들 안티파트로스 에테시아스 켈트족의 침략에 맞서려는 마케도니아 군대에 의해 추대되었다. 그러나 그 역시 켈트족을 상대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45일 만에 소스테네스 장군에게 폐위되었다. 이후 소수의 추종자들에 의지하여 왕위에 도전했으나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에게 패배해 이집트로 망명했다. 이리하여 안티파트로스 왕조는 멸망했다.

3. 역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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