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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이오티아 동맹은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335년까지 존속했던 보이오티아 도시국가들의 동맹이다. 주로 테베가 지배했으며, 보이오티아 동맹의 존재는 테베의 세력권과 직결되어 있었다.2. 운영방식
보이오티아는 11개의 칸톤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테베는 총 네 개의 칸톤을 차지했으며, 나머지 도시들인 오르코메노스, 히시아에, 테스피에스는 각각 2개를 보유했다. 마지막 칸톤은 에우트레시스와 티스베 사이에 교대로 맡는 식이었다. 테베가 자연스레 다른 도시들보다 강력한 발언권을 갖고 있었는데, 그만큼 인구도 컸고 연합군에 천 명의 호플리테스와 백 명의 기병을 내어주어야 했으니 의무도 더 무거웠다.각 칸톤은 자신들을 대표할 60명의 코이논 대표들을 선출했다. 코이논 의회는 총 660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다. 최고지도자인 보이오타크 (boeotarch)는 칸톤마다 한 명만 선출할 수 있었다. 테베는 두 명을 보이오타크를 보유했지만, 395년부터 테베의 권력이 강화되어 총 네 명을 보냈다.
3. 역사
보이오티아 동맹이 정확히 언제 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대략 기원전 6세기 중반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보이오티아에 위치해있지만 테베를 증오하고 그에 저항할 만한 군사력을 보유했던 플라테이아는 보이오티아 동맹에 참여하지 않았다.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1]의 일환으로 457년에 펼쳐진 오이노피타 전투에서 아테네가 보이오티아 국가들을 압도하면서 보이오티아 동맹은 해체된다. 기원전 447에 코로네이아 전투에서 테베가 아테네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보이오티아 동맹은 다시 결성된다.보이오티아 동맹은 코린토스 전쟁에서 테베가 스파르타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델로스 동맹국들과 그리고 제2차 아테네 동맹국들이 리더 도시인 아테네를 싫어했듯이, 보이오티아 동맹국 또한 테베의 지배를 달갑게 여기지만은 않았다.
페르시아의 도움을 받아 겨우 코린토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스파르타는 보이오티아 동맹국들의 억하심정을 이용해서 보이오티아 동맹을 해체하고 테베를 약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기원전 374년에 테베의 뛰어난 장군인 펠로피다스가 동맹국들을 군사력으로 억누르면서 다시 보이오티아 동맹을 결성했고, 그 덕에 371년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를 누르고 그리스 최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테베가 마케도니아 상대로 대패하면서 필리포스 2세가 보이오티아 동맹을 해체하는가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335년에 테베가 필리포스 2세가 죽고 젊은 알렉산드로스 3세가 권력을 잡은 틈을 타서 마케도니아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알렉산드로스 3세는 테베를 억누르고 도시를 파괴한 뒤 보이오티아 동맹을 해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