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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7:05:38

선거군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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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체 및 정체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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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체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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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역사4. 사례
4.1. 현재
4.1.1. 유사하거나 애매한 경우
4.2. 과거
4.2.1. 아시아4.2.2. 유럽4.2.3. 아메리카4.2.4. 오세아니아
4.3. 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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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거군주제(選擧君主制, elective monarchy)는 ' 군주 지위 선거에 의하여 계승되는 정치 체제'이다. 특별한 신분의 귀족 가운데에서 군주를 선출했던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군주제의 한 형태로 군주를 세습으로 세우는 게 아니라 선출하여 세우는 정치 체제이다. '선출군주제'라고도 한다.

2. 특징

군주 혈연에 의해 세습되는 여타 군주제와 달리, 선거군주제는 말 그대로 군주를 별도의 선출 과정을 거쳐 세운다. 이는 공화제, 특히 대통령제와 유사하지만, 이들과 선거군주제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선거권이나 피선거권 신분, 계급, 혈통, 가문 등의 비민주적인 요소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즉, 보통 선거의 원칙이 선거군주제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선거로 뽑혔다 뿐이지 군주이므로 선출된 후에는 종신의 임기를 가진다.

사실 선거군주제는 대통령제와의 구별이 모호한 감이 있다. 위의 조건을 뒤집으면 대통령제는 민주적인 보통 선거로서 국민 대다수가 투표 가능하며 대다수가 피선거권을 가지면서도[1] 임기가 정해진 군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의외로 두 체제가 공화주의라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최초의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서 대통령이 탄생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영국 국왕을 대체할 목적으로 만든 자리였는데, 막 건국된 초기만 하여도 갓 국가연합의 티를 벗어나 느슨한 연방제 국가로 나아가던 미국 정치체제 상 군주제를 시행했다가는 군주의 지위가 모호해질 상황이었다. 식민지였으니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류층도 끽해야 영국으로 치면 젠트리에 가까운 유지와 명사들이었으며,[2] 그렇다고 다른 나라의 왕실에서 군주를 모셔오자니 명분도 부족했다.[3]

그리하여 미국은 군주는 아니지만, 미국을 대표하고 미국 독립선언의 가치를 실현해 줄 국가수반으로서의 연방 최고지도자가 필요했다. 이에 연방의회에서 논의 끝에 '상석에 앉은 자' 또는 '회의를 주관하는 자' 정도를 의미하는 "President"(대통령)라는 단어를 만들어 국가 수반의 명칭으로 삼았다. 이렇듯 기존의 군주를 대신하는 존재였으므로, 당시 미국 국민들은 물론 초대 부통령인 존 애덤스의 관점에서도 대통령은 일종의 선거군주로 인식되었으며, 애덤스는 워싱턴에게 폐하, 전하(His Elective Highness) 등의 군주와 유사한 호칭을 제안하였으나 그는 스스로를 "대통령 (Mr. President)"으로 부르도록 했다. 다만 스스로 3인칭으로 말하는 등 군주제의 의전을 행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일단 군주와 같은 직위를 취하는 것은 워싱턴 본인이 분명히 반대하였다.[4][5] 그리고 워싱턴은 국민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종신집권을 거부하고 낙향하는 모범을 보였고, 그 덕분에 선거군주제와는 구별되는 현재의 대통령제가 확립될 수 있었다.

양자 간 모호성은 미국보다 앞서 성립한 네덜란드 공화국을 살피면 더 잘 드러난다. 네덜란드 공화국은 명목상 공화제 연방국가로서 선출직인 스타트허우더가 국가원수였으나, 실제로는 오라녀나사우 가문이 독점하다시피하는 군주제나 다름 없었다. 그래서 공화국 시대 동안 오라녀파와 공화파 간 갈등이 벌어지고는 하였고,[6] 결국 프랑스 제1제국 괴뢰국이 되었다가 해방되었을 때는 연합 네덜란드 주권공국을 거쳐 네덜란드 연합왕국이 되어 완전히 군주제로 전환되었다.

일반적으로 민주공화제 귀족공화제, 선거군주제 중 어느 것으로 분류할지 여부는 주권 문제, 즉 정체 국체를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예컨대 주권자가 국가원수를 선거로써 선출한다면 이 세 유형에 속하되, 주권의 행사가 전적으로 국가원수에게 달려있다면 선거군주제가 되고 법이 정하는 공공에 의하면 공화제가 되는 것이며,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국민 전체에 부여되면 민주공화제가 되고 특정 집단에 한정되어 주어지면 귀족공화제가 되는 것이다. 사실 대통령제보다도 귀족 공화제야말로 선거군주제와의 경계가 애매한데, 로마 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등의 사례에서 보듯 서로 체제가 전환되기도 하였다.[7]

3. 역사

가장 오래된 선거군주제는 고대 로마 왕정 시대에 나타났다고 하는데, 로마 국왕 7명 가운데 2이 선거로 뽑힌 왕이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 왕정에 대한 기록은 신화적인 요소가 많고 사실적인 기록이 별로 없으며, 무엇보다도 당대에 쓰인 기록이 외부의 침공 내전으로 인해 남아 있지 않아서 실제로 선거군주제였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는 선거군주제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신성 로마 제국이 있다. 카를 5세 이후로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독점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 증조부이자 2대 전 황제인 프리드리히 3세 이후로 이미 독점 상태였고, 그 뒤로도 선거권을 가진 선제후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뿌리고 이권을 양보하는 등 제위 세습을 위해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의 바이에른 선제후 카를 7세로 즉위한 적도 있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이웃나라 프랑스 왕국도 초기에는 선거군주제로 시작하였다. 루이 5세의 죽음으로 인해 서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가 단절되자 파리 백작이었던 위그 카페가 프랑스의 초대 국왕으로 선출되었는데, 그는 이슬람 세력 등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 갑자기 왕위가 비면 위험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자신의 아들 로베르 2세 공동 왕으로 선출하게 했다. 그리고 카페 왕조가 계속 적장자로 대를 이으며 정통성을 강화하면서 국왕 선거는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했고, 나중에는 아예 폐지되어 세습군주제가 정착되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또한 선거군주제였고[8], 덴마크 역시 1660년까지 선거군주제였으나 이후 절대왕정으로 전환했다. 중세 루마니아 왈라키아 공국 몰다비아 공국 파나리오테스 이전까지는 선거군주제였다.

이슬람 제국 칼리파 무함마드 사후부터 4대 칼리파까지는 선출제로 뽑았지만 우마이야 왕조가 들어서면서 반대파를 제압하고 세습제로 전환되었다.

한국사의 사례로는 신라의 전신인 서라벌의 촌장이 선거로 선출된 직위라는 사례가 있으며 신라의 시조 혁거세 거서간부터가 6부 촌장들의 만장일치로 즉위한 군주였다. 아직 국가가 되기 이전이었으나 한국사 최초로 지도자를 선거로 뽑은 사례로서는 의의가 있다. 신라는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은 후, 그리고 진덕여왕 사후 성골의 씨가 마르자 화백회의를 통해 선덕여왕 태종 무열왕을 추대하기도 했고, 고구려 역시 초창기에는 다섯 부족의 족장들이 통치자를 선출하였다. 고구려의 이 다섯 부족 족장 가문은 나중에 중앙 귀족으로 진출한다.

오세아니아에서는 하와이 왕국의 카메하메하 5세가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하여 카메하메하 왕조가 단절되자, 선거군주제가 도입되어 마지막 여왕 미군에 의해 폐위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4. 사례

4.1. 현재


그 외 티베트 망명정부의 경우, 달라이 라마 14세가 입적하면 달라이 라마 14세의 뜻에 따라 선거군주제를 도입할 수 있다.

4.1.1. 유사하거나 애매한 경우

한편 아래 예시처럼 선거군주제로 보기에는 애매한 나라들도 있다.

4.2. 과거

4.2.1. 아시아

4.2.2. 유럽

4.2.3. 아메리카

4.2.4. 오세아니아

4.3. 가상


[1] 이 조건이 전 국민이 되기까지는 대통령제 등장 이후에도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옛 제한들 중에서 연령만큼은 완화되었을지언정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2] 다들 고만고만한 출신성분을 지닌 까닭에, 어느 한 가문이 즉위하여도 권위가 없으니 이에 수긍하기보다는 불만을 품을 가능성이 컸고, 자칫 군주를 배출한 출신주와 그렇지 못한 주들 사이에서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3] 당대의 영국 왕실인 하노버 왕조이나 후대의 그리스 왕국 등 여러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군주를 나라 밖의 인물로 추대하는 일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 국왕을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하여 "독립"까지 한 상황에서 새로운 왕을 "외국에서" 불러들여 추대하는 것은 그 " 취지"에 맞지 않았다. [4]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주권국가로서 국가 간 지위가 대등하다면 국가원수 또한 대등해야 하는데, 당시 기준으로 대부분 군주제 국가였으니 많은 이들이 단순 '대통령'보다는 군주급의 칭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5] 어차피 당시에는 대통령이라는 제도 자체가 미국밖에 없었으므로 뭔가 다른 나라로부터 적당히 제도를 따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진 거나 다름없었으니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 지 전례가 전혀 없었던 탓. 대한민국 수립 후에도 이승만이 스스로를 과인이라고 하는 등 혼선이 있었는데 이 역시 이제까지 한반도 국가 역사상 공화제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과거 군주제 시절의 경험이 일시적으로 준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워싱턴은 최초의 대통령으로서 제도를 정비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군주제 요소를 차용한 것이지, 스스로 군주 직위를 원하였다고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리고 당연히 미국이든 대한민국이든 경험과 전례가 쌓이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6] 예컨대 영국-네덜란드 전쟁 및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의 영웅이었던 미힐 더라위터르 제독도 이러한 정쟁에 휘말려 숙청당했다. 심지어 이 사람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공화파 총리 요한 더 비트(Johan de Witt)는 아예 오라녀파 폭도에게 살해당한 후 식인까지 당했다. [7] 사실상 귀족들이 선거로 누군가를 뽑아서 그를 왕으로 부른다면 선거군주제이고 다른 명칭으로 부르면 귀족공화제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8] 이 쪽은 아예 대외적 비공식 국가 명칭으로 귀족 공화정(Rzeczpospolita Szlachecka)이란 이름을 자처했으며, 국왕은 선출직이며 왕권은 귀족의회에서 정한 헨리크 조항과 리베룸 베토에 따라 제한됐다. [9] 캄보디아 불교의 수장 [10] 바티칸 정부에 대한 소개 및 설명 페이지(이탈리아어)에 따르면 본인들의 정부 체제(forma di governo)가 전제군주제(monarchia assoluta)라고 하고 있다. [11] UAE가 7개 구성국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 아부다비 두바이 외의 다른 구성국은 들어본 적조차 없을 정도로 두 곳의 위상이 압도적이다. 세 번째로 큰 구성국은 샤르자인데 여기는 두바이와 연담화되어 있는 도시권이다. 이 세 구성국이 UAE 인구의 90% 가까이를 차지한다. [12] 엄밀히 말하면 야기에우워 왕조는 루블린 연합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탄생하기 전 폴란드 왕국에서는 선거군주제였다.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우워의 후손들이 대대로 국왕으로 선출되어 잘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야기에우워 왕조가 본가 게디미나스 왕조를 이어 세습해온 영토여서 자연스럽게 세습했다. [13] 독립군 지도자 장 자크 데살린이 초대 황제 자크 1세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자크 1세가 피살된 후 제정이 폐지되어, 아이티의 선거군주제는 1대로 그치고 말았다. [14] 원래는 혈통세습이었지만 직계 단절 이후 방계 중에 선거로 군주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다만 작은 섬나라라 유력자의 경우 카메하메하 혈통과 연관이 없을 수가 없었다. [15] 실제 이벤트 기간 동안에는 '첵스초코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독재자 체키가 대통령 당선 된 이후 왕정으로 갈아치웠다 카더라 당연한 말이지만 재현 오류다. 왕국은 선거군주제를 해도 왕을 뽑지 대통령을 뽑지 않는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나라는 공화제 국가 밖에 없다. [16] 즉, 중증의 시스콘인 국왕이 어떻게든 누나에게 권력을 양도하고 싶어서 만들었지, 오래 갈 제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17] 아마도 콘클라베같은 제도를 두었을 듯하다. [18] 트리시스는 원래 국가로서 정체성 자체가 옅었기 때문에 게이시르 제국에 합병되었고 아스타니아는 동쪽 투르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으며 비프로스트는 제국을 먼저 건드리는 등 알력다툼을 하다가 국력에서 밀려 멸망하였다. [19] 종교 지도자라는 입지가 더 강하지만 성국 자체가 귀족 대신에 사제들로 구성된 국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