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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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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관점에서 본 자식 명칭
맏이 외아들 장남 차남 3남 아들/4남 이상 장손 막내
외딸 장녀 차녀 3녀 딸/4녀 이상 고명딸

1. 개요2. 상세3. 현대 한국에서4. 장점5. 단점6. 이름7. 장남인 인물

1. 개요



가장 먼저 태어난 아들을 지칭해 일컫는 말. 순우리말로 맏아들이다. 외동아들이나, 고명아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이 , 오빠가 된다.[1] 아들 중에서만 고려하기에 꼭 맏이가 아니어도 위로 형이 없으면 여자형제가 있는 둘째, 셋째, 심지어 막내여도 장남이다. 외동아들(무녀독남)의 경우 장남으로 간주하지 않지만 엄밀히 말하면 외동아들도 장남이다. 외아들(1남 1녀)이나 고명아들(2녀 이상 1남,아들은 혼자이고 딸들이 2명 이상인 경우)도 위로 형이 없거나 아래로 남동생이 없는 이상 아들이 혼자라면 엄연히 장남이다.

물론 이러한 원칙적 용법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첫자식이 딸이면 그 다음 태어난 아들을 장남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둘째라고 하거나 성별을 붙여 '둘째 아들' 하는 식으로 부르기도 한다. 문맥이나 앞뒤 정황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장남 중에서 외동이 아니라 해당 부모로부터 제일 먼저 태어난 데다가 동생(남동생, 여동생 무관)이 존재하는 장남을 장형(長兄)이라고 부르며 장형이라는 호칭은 외아들[2]에게는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아들 중에서 장남이라도 위에 누나가 존재하면 장형이 아니다. 장형의 기준은 남자로 태어나고 동생이 있어야 하며 자기 위로 아무도 없어야 장형인 것이다. 때문에 아들 중에서는 맏이지만 위에 누나가 있는 사람은 장남이지만 장형이 아니다.

2. 상세

현대에는 많이 덜하지만, 역사가 시작된 이래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전세계적으로 장남은 부모의 편애 1순위였다.

우선 기본적으로 대다수 문화에서 고대 사회부터 남성의 지위가 여성에 비하여 높았던데다가, 첫째는 대개 형제자매들 중 권력과 사회경험이 가장 풍부하므로 특별히 심각한 결격사유[3]가 있는것이 아닌 이상 장남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집안의 차세대 가장으로서 가문을 잇는 경우가 많았기에 장남에게는 부모가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현대에 비해 수명이 짧고 공동체주의가 더욱 강조되었던 전근대에 자녀들이 부모의 삶을 잇는 존재로 여겨지는 건 전세계적으로 일반적인 사고 방식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장남은 아버지의 분신 그 자체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자식들 중 가장 중요시되었다. 피휘 항렬자 문화가 있는 동아시아 권에서는 의아할 수 있지만, 유럽 문화권에서 아들, 특히 장남에게 자기 이름을 물려주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런 문화의 잔재다. 영국 역대 국왕 이름에 헨리가 흔하고, 프랑스 과거 국왕 이름에 루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다 그것때문이다.

괜히 성경에 나오는 모세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이 장자의 재앙이었겠는가. 10가지 재앙의 실존 여부를 떠나서 장남의 죽음이 당시 중동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현대에도 중동 지역의 장남 편애 문화는 많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으로 자기 이름에 집안의 장남임을 나타낸다든지 과거 유럽 왕실마냥 아버지의 이름을 장남이 그대로 물려받는 등 여러모로 많이 보인다.

과거의 왕조사회에서는 군주가 승하하면 정실부인 적장자이자 장남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하는 사회 관습이 매우 당연했던 것이었을 정도로 그만큼 매우 특별한 위치이기도 하다. 누나가 있는 장남의 경우, 그 누나 때문에 서열이 약간은 애매할 수도 있지만 장형의 경우는 형제자매들 중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자랑한다. 물론 누나가 있는 장남이라도 전근대사회에선 전세계 어디든 장남이 당연한 왕위계승서열 1순위였다. 특히 황제(왕)의 적장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조건 확고한 지위를 가졌다.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동아시아 지역들에서는 장남이 제사를 부계조상의 주재하고 가산을 대부분 물려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흔히 고려나 조선 초중기에는 장남 이외의 아들들과 딸들에게까지 재산을 공평하게 물려줬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미 고려 때도 재산의 대부분 혹은 상당수는 장남이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나마 조선 후기 보다는 차남 이하와 딸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조금 더 많았다 정도.

유럽의 귀족사회에서는 장남이 가문의 모든 재산을 상속하고, 차남 이하로는 한푼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중세 초창기에는 균등 상속이였으나 프랑크 왕국의 분할등 균등 상속이 가문의 힘을 나눠 약화시키는 현상이 나타나자 점차 장자에게 몰아주는 것으로 바뀌어갔다. 차남 이하로는 기사, 성직자 등이 되어 알아서 제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래도 보통은 기사, 성직자 등이 되는 데 필요한 훈련이나 교육, 장비 정도는 지원해줬다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으면 장남이 가문을 전부 세습하는 대신 차남 이하 동생들을 휘하 장수나 측근으로 등용해서 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그러니까 왕가로 예를 들면 아버지인 국왕이 승하하면 장남이 임금, 차남이 대장군, 삼남이 승상을 받는 식이었다.[4] 그런데 이런 귀족가 출신 성직자들이 가문의 지원을 받는 식으로 가문과 커넥션을 유지하는 바람에 교회 타락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현대에도 영국 귀족사회에서는 여전히 아버지의 작위는 장남이 물려 받으며, 차남 이하나 딸들은 법적으로 평민이고 자기 대에 한해서 귀족 '대우'[5]만 받으며 유산에서도 자립할 정도의 현금이나 가문과 무관한 재산만 받는게 보통이다.

과거 미국, 중국과 같이 일부 국가에서는 장남은 군면제 대상[6]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거 없다.

장남이라 부모들이 알아서 잘 챙겨주는 경우가 많아서 지원은 빵빵하게 받는다. 단지 그 탓에 '관계(도움)를 통해서' 신뢰, 도움을 얻는 스킬은 동생들에 비해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게 늘 당연히 주어지다시피 하니, 스스로 얻어내려고 노력한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양녕대군이다. 그는 조선시대에서 유일하게 방탕[7]하게 산다는 이유로 폐세자된 사람이다. 임해군은 양녕보다도 더 심각해서 세자 자리조차도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안 받았다고 하더라도 책임질 것은 그대로 남는다. 당연히 심적인 부담감과 기대치도 다른 형제들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덕택에 장남 노릇 제대로 하기 힘들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다 지고 가야 할 것도 많다. 가정형편이 매우 나쁘거나 일찍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기라도 하면 당장 동생들 밥부터 먹여야 하기 때문에 학업이고 뭐고 소년가장이 되어 육체노동을 통해 돈벌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상술했듯 부모가 없거나 형편이 많이 좋지 않을 경우 장남장녀가 사실상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형제가 많거나 동생과 터울이 많이 날 땐 더욱 그러하다. 특히, 장남과 동생이 15살 이상 차이난다면 그 동생의 입장에서는 형이나 오빠가 아니라 그냥 삼촌이나 아버지나 다름없고, 이런 경우는 동생들이 깍듯하게 경어를 사용하는 집안도 많다. 그렇게 동생들의 뒷바라지만 하다가 자신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친 채로 청춘을 흘려보내게 된다. 물론 이런 경우엔 나중에 동생들이 노후까지 장남을 보필하는게 일반적이다. 사실상 아버지와 다른게 없는 셈.

유력가문의 장남들의 입장에서 최악의 조건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윗세대에서 부모님이 둘째/막내 자식이라 차남/차녀 이하로서 겪은 차별과 설움을 자기 장남에게 투영하는 한편 장남으로서 기대와 책임감은 동시에 갖는 경우다. 맏아들이 부모에게 은근히 견제와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동생들은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야심까지 갖춘다면 그야말로 극악. 이런 환경에서는 장남이 비뚤어지기 더더욱 쉬우며, 대표적으로 삼국지의 조비가 이런 유형의 장남[8]이라고 볼 수 있다.[9]

장남의 장남은 장손이다. 장남과 같은 맥락에서 집안의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장손이 사촌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능력이 뛰어난 경우 대놓고 편애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장손은 집안의 나이 순으로 보면 첫째가 아닌 경우도 흔한데, 위로 사촌누나들만 줄줄이 태어날 수도 있고 차남 이하의 아들이 먼저 아들을 낳는 경우도 많기 때문. 2대 이상의 독자도 당연히 장손이다. 장증손도 마찬가지인데, 보통 장남의 장손이 장증손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장손이 요절하면 차손이, 차손도 요절하면 삼손이 장남을 얻으면 된다. 예를 들자면 단종 문종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며, 세종 소헌왕후장손이며, 태종 원경왕후장증손이다. 또한 조선의 기반을 완성한 성종 세조차손이다.

흔히 왕가에서는 장남이 왕위계승 1순위이지만, 유교 국가인 조선은 해괴하게도 장남이 즉위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개국군주인 이성계는 장남이 아닌 거야 그렇다 쳐도, 이성계의 장남 이방우부터 잘된 장남이 거의 없다. 장남이 왕위에 오르는 경우가 27명의 임금 중 고작 9명에 불과했다. 그 세종대왕 역시 삼남이며[10], 세종대왕의 형제들 중 장남이 바로 그 희대의 망나니 양녕대군이다.[11] 이 지독한 징크스를 깬 왕은 숙종(이쪽은 외아들) 정도밖에 없다.[12]

이에 관해 한가지 재밌는 기록이 있는데, 세종의 묏자리를 알아볼 때 정인지 등이 정한 자리를 그동안 허조 등에 의해 "허황된 의견을 낸다"고 탄핵당한 전력이 있는 풍수가 최양선이 절사손장자(絶嗣孫長子) 즉 "이 자리를 쓰면 장자들이 단명하고 후손이 끊길 것입니다."라고 예언한 것이다. 자리를 정한 정인지는 "근거가 어딨어?"라고 크게 반발했고 최양선은 "마음의 눈으로 깨우친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온 조정이 "근거 없이 불온한 말을 한 최양선을 벌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지만, 세종은 "의견을 말한 것을 벌할 수는 없고, 대신 국가의 일에 다신 그를 쓰지 않겠다"고 중재했다. 근데 문종을 시작으로 단종이 다 요절하고 심지어 세조의 장자 의경세자(덕종)와 의경세자의 장자인 월산대군에 예종의 장자 인성대군까지 죄다 요절한다.[13]

예종은 최양선의 말이 걸렸는지 세종의 묘를 이장하지만, 예종 본인마저 20살의 나이로 요절하는 등 장자 수난은 끊이지 않았다. 철종 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선대 임금과 촌수가 어마무지하게 이격된 임금이 즉위했고, 그나마 그 후임 고종은 인평대군[14]의 후손인 이하응[15]의 차남이기까지 했다.[16]

그리고 장남이 만약 자식을 남겼을 경우, 자식들이 일찍 죽거나 못 볼 꼴을 봤다거나 하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이는 당연한 것이, 차남 이후가 황제가 되었을 경우 적장남의 후손들은 정통성이 높기 때문에 차후에 반란으로 왕위를 노리는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그래서 주변의 반란에 휘말려 죽거나 황제의 견제에 몰락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러시아 제국의 류리크 왕조에서조차 이반 뇌제의 후임 차르로 언급된 게 바실리 황태자가 아니라 그의 막내동생인 우글리치 공작 드미트리일 정도. 문제는 3명의 가짜 놈팽이들이 이 우글리치 공작 드미트리를 사칭해서 차르가 되려고 시도했고, 첫번째 가짜놈은 기어이 차르가 되었지만, 재위기간은 고작 9개월에 불과했다.

현대사회도 다르지 않아서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이제는 주체사상의 절대왕정인 북한만 해도 김정일의 삼남 김정은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김정은은 한술 더 떠서 아버지 김정일의 장남인 이복 형 김정남 암살했다.[17] 그야말로 왕조국가의 테크를 제대로 밟고 있는 셈이다.

3. 현대 한국에서

옛날에 비하면 장/차남 구분이 상대적으로 희석되고 무작정 장남들은 모든 것들을 닥치고 다 잘 해야 한다고 엄격하게 교육받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는 별반 다를 바 없이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도 유독 큰아들에게 기대는 것도 원하는 것도 하나같이 많고, 집안일로도 바라는 것도 매우 많은 편에 속한다. 즉, 맏이(특히 장남)들은 어느 집안이든지 어른들에게 장남답게 집안의 대소성사를 꼭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받고, 교육도 동생들에 비해 매우 엄하게 받고, 장남이면 장남답게 동생들한테도 꼭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평소 말과 행동도 매사에 어른스러워야 한다고 교육을 받는 등 매우 당연하고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다. 덕택에 장남들은 책임이 많은 만큼 지원은 지원대로 많이 받는다. 만약 가족기업, 그것도 중소기업을 부친이 경영하고 있다면 맏아들은 십중팔구 낙하산 인사 확정.

물론 장남이라고 해서 다 의젓하게 크지는 않는데,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기는 커녕 막되게 굴거나 하루가 멀다하고 허구헌날 사고나 치고 다니는 사고뭉치로써 집안에서도 투명인간이나 내놓은 자식으로 취급당할 정도의 답이 없어도 너무 없는 개차반이라든가[18]... 이런 케이스는 부모조차도 사실상 포기한 케이스로, 이럴 경우 차남이 장남 노릇을 다 도맡는다든가 하기도 하며, 아예 차남이 장남보다 더 능력이 뛰어나거나 개념인인 경우도 있다.[19]

여자의 결혼 기피 대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부모님 부양이나 제사를 도맡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자녀를 많이 낳았던 시절 얘기.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남자의 60% 이상은 무조건 장남이고 요새는 제사를 안지내는집도 상당히 많아서 장남이 결혼기피의 대상이 되는경우도 잘 없다.

이러한 결혼 기피 대상의 최종 단계는 바로 종갓집 장손. 이건 또한 장남인 당사자 본인으로서도 썩 좋은 일이 못 된다. 할 일도 가뜩이나 상당히 많은 마당에 장손이라는 위치에 책임감에 어른들의 기대까지 크게 합쳐지기 때문에 무척 피곤해진다. 사실 80/90년대생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동생이 손위형제보다 먼저 결혼하는 경우도 상당히 흔해졌고, 장남의 기혼자 비율도 차남 이하보다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큰아들만큼은 꼭 일찍이 결혼을 해서 일찌감치 대를 이어나가기를 원한다.

여담으로, 대한민국의 재벌 창업주들은 유독 장남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어찌 보면 당연지사인 게 집안을 먹여살리기 위해 일선에 나서다 보니 사업에 일찌감치 눈을 뜬 케이스가 많기 때문. 당장 국내 5대 재벌 창업주 5명 중 4명이 장남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최종건( SK그룹), 구인회( LG그룹), 신격호( 롯데그룹). 유일하게 5대 재벌 창업주들 중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만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다.

그리고 상술한 5대 재벌 현 회장 5명 중에서도 4명이 집안에서 장남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최태원( SK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구광모( LG그룹). 유일하게 5대 재벌 현 회장들 중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만 집안에서 차남이다.

4. 장점

장남이기 때문에 모든 게 우선순위가 된다. 특히 왕조에서는 제위를 세습받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물론 양녕대군이나 임해군같이 정도가 지나치면 쫓겨나지만 이런 특이한 경우가 아닌 한 어지간하면 제위를 물려받는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진짜 심각한 문제아가 아닌 한[20] 대부분의 경우 장남에게 세습된다.

또한 형제들 중 서열이 가장 높기 때문에 집안에서 부모님 다음가는 3인자로서 강력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특히 장남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거나,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면 딱히 권력을 휘두르는 성격이 아니어도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자연스럽게 권력자로 대우를 받는다.

5. 단점

전근대사회에선 분명 가정에서 강력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고 특혜도 몰빵받았지만 현대 사회에선 장남으로서 가질 수 있는 권력보단 제약이나 기대, 의무 같은 것이 더 많다. 동생이나 가정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 이런 의무에 따른 제약이 많다보니 오히려 결혼 상대자가 형제가 많은 장남일 경우(자연스럽게 아내도 같이 희생해야하기 때문에) 혼인을 기피하는 풍조도 있을 정도이다.

또한 장남이 맏이기도 하면 자식농사 초짜들인 부모의 미숙함을 몸소 겪는다. 대체적으로 엄청나게 엄하게 키웠거나 아니면 반대로 '오냐오냐'하게 키워서 장남이 과묵한 성격 vs 안하무인한 성격 둘 중 하나가 될 가능성도 크다. 적당히 키우자

서열이 높기도 하고 해서 동생들보다 특수한 포지션이기 때문에 부모의 기대가 커서 기회를 많이 받기는 하지만, 만약 동생에 비해서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지거나 (장남들에게 이런것 저런것 다 시켜보는데 만약 장남이 어느 분야에서든지 적절한 재능을 보이지 못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맥빠진 기분이 든다), 파워에서부터 밀리거나, 아니면 최악으로 장남의 인성마저 좋지 않으면 오히려 가족내에서 주적 1호 대상이고 심각한 견제를 받는 처지가 된다. 딱히 장남의 단점은 아니고 모든 형,누나,언니,오빠들이 공유하는 단점이지만 장남장녀가 능력이 떨어지면 아무래도 눈에 더 띈다.

6. 이름

한자로는 '백(伯)' 또는 '맹(孟)'. 옛날 사람들 중 자(字)에 이 글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큰아들이라고 보면 된다. 손책이라든지. 조조라든지. 자字가 아닌 명名, 즉 이름에 들어간 경우는 대표적으로 이맹희가 있다.

전근대 한자문화권에선 보통 아들들의 자를 지을 때, 백중숙계(伯仲叔季) 순으로 해서 장남, 차남, 삼남, 막내임을 표시했다. 맹중계(孟仲季)의 경우도 마찬가지. 백(伯)은 적자 중 큰아들인 '적장자'를 의미하고 맹(孟)은 서자 중 큰아들인 '서장자'를 의미한다. 사남에게 '끝 계(季)'를 자로 주었는데, 오남이 태어나는 경우는 보통 유(幼)를 자로 주었다. 전근대까지는 질병이나 전란 등으로 성년이 되기 전에 죽는 경우가 많아 아들 여섯이 자(字)를 받는 일이 상당히 드물어, 유(幼) 다음으로 정해진 글자는 딱히 없다. 어차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아니라 그냥 관습적인 유행인지라, 백중숙계까지만 따르고 그 뒤는 자율적으로 짓는 경우도 있었다.

그 외에도, 이름에 大나 泰[21]가 들어가는 사람들도 대체로 장남이다. 차남 이름에 이런 한자가 들어가면 차남이 사실상의 장남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장남이 장남 구실을 제대로 못하며 이 경우는 영락없는 갈모형제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일본에서는 ' 이치로(一郞)'나 ' 타로(太郞)', ‘ 카즈오(一夫)’, ‘ 하지메(一)’ 혹은 '●+이치로/타로'를 장남 이름으로 많이 쓴다. 대표적인 예시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그의 장남 고이즈미 고타로가 있다. 한국인들이 이치로 하면 떠올리는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는 실제로는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다. 이는 스즈키 형제가 한 일() 자를 돌림자로 쓴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7. 장남인 인물



[1] 차남 이하는 형이라고 쓴다. 차녀의 경우 장남보다 누나가 아니라면 오빠라고 부르며, 장녀도 장남보다 어리면 오빠라고 말한다. [2] 외아들이라는 말은 원래 딸이 있든 없든 상관 없이 아들이 오직 한 명일 때 쓰는 표현이었다. 지금은 딸이 있을 경우엔 이 표현을 잘 쓰지 않지만... [3] 지적장애인로 태어났거나, 성격이 지나칠 정도로 심약하거나 반대로 방탕하고 포악한데 무능하기까지 해서 가문을 물려받게 냅두면 그대로 집안을 말아먹겠다 싶어서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수준미달의 장남을 사실상 기수열외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비교적 드문 경우로는 아버지와 정부/ 사이의 사생아/ 서얼로 태어나서 정실부인에게서 태어난 차남이하의 남동생들에 비해 집안 내 권력과 사회적 신분이 밀리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양녕대군 김정남이다. 전자는 양녕대군의 도를 넘는 일탈행위에 질릴대로 질린 태종이 직접 폐세자를 시켜버렸고, 후자는 유부녀와의 불륜관계에서 태어난 사생아라는 약점 때문에 세습구도에서 이복 남동생에게 밀려났다. [4] 삼국지에서 위나라가 진짜 이렇게 했다. 조조가 군주가 된 후 동생 조인을 대사마, 친척동생 하후돈을 대장군 능력대로 하자면 둘을 맞바꾸는 게 정상이지만 등에 임명하여 진짜 형제 조정을 이루었다. [5] 이름 앞에 Lord를 붙일권리가 있다. 자녀부터는 불가. [6]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군대에 갔다가 죽으면 대가 끊어지는 불행한 경우가 혹여 생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차남 등 남동생이 있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징집 대상이 되었으나, 딸부잣집 외아들은 자원입대를 신청해도 얄짤없이 군면제를 시켰었다. [7] 비구니 여종을 궁궐에 들여 간통하거나, 자식이 있는 유부녀를 강제로 납치해 강간하는 등, 조선의 왕족으로서 본분을 지키지 않아서. [8] 사실 이복 형 2명이 요절해서 조조 입장에서는 3남이기는 하다. [9] 다만 다른 아들들도 결점은 있었는데, 조창은 무예는 뛰어났지만 아버지 조조가 글공부를 시켰을 때 유일하게 대놓고 반항했을 정도로 학문과는 거리가 멀었고, 조식은 글재주가 뛰어나고 정치적인 식견도 깊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조비와 직접적으로 후계자 경쟁을 했지만 술을 좋아해 술과 관련된 사고를 많이 친 것이 문제가 되었으며, 조웅은 병약한 체질이라 왕위 계승은 고사하고 본인 몸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게다가 조조는 절친이었던 원소가 장남 원담을 제끼고 막내 원상을 후계자로 삼았다가 형제끼리 싸우면서 가문 자체가 풍비박산났던 것을 먼저 지켜본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10] 엄밀히 말하면 양녕대군보다 먼저 요절한 형들이 3명 있었기 때문에 6남이고, 양녕은 4남이다. [11] 이후로도 문종부터 시작해서 단종, 인종, 경종 등이 대표적 사례. 심지어 단종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의 뒤를 잇는 완벽한 정통성을 자랑했지만, 유년 시절 부모와 조부모를 모두 잃고, 청소년이 됐을 때는 숙부 세조에게 왕위를 계유정난(반란)으로 찬탈당하기까지 이르렀다. [12] 현종은 재위기간이 아주 짧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단명했다. [13] 허황된 야사 같지만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기록이다. 세종실록 99권, 세종 25년 2월 2일 무자 1번째기사 [14] 인조의 삼남이다. [15] 족보상으로는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신군의 양자이기는 하다. [16] 다만 이는 고종이 왕위 계승을 위해 효명세자 신정왕후의 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종법상 장남은 양자로 보내지 않았다. [17] 차남 김정철은 게임 중독과 유약한 성품 때문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고려조차 안 했다. [18]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장남 신동학이 바로 이런 케이스이다. 실제로 신동학은 이렇게 답이 없는 인간이다 보니 경영 활동도 참여한 적도 없고, 후계자 구도에서도 일찌감치 배제당한 뒤 결국 2005년 여름에 태국에서 의문사했다. 한편 신동학이 이렇다 보니 이 일가에서는 차남 신동환이 사실상의 장남 역할을 했다. [19] 더불어서 이런 무개념 장남들은 능력자들인 동생들하고도 비교 대상이 되면서 부모한테도 "너는 명색이 장남이란 놈이 이게 뭐냐?", "동생들 앞에서 부끄럽지도/미안하지도 않냐?", "동생들만도 못한 한심한 놈! ㅉㅉㅉ!" 등으로 꾸중을 듣기도 한다. [20] 예를 들면 상습적으로 사고 내지는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든지, 대학 진학 자체를 하지 못할 정도로 공부를 더럽게 못한다던지, 아니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던지.. 그런 경우라면 차남 내지는 다른 동생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21] 단, 이러한 글자들이 항렬에 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안동 권씨 33세손. [22] 2남 중 차남 [23] 남경필의 첫째 남동생 남경훈이 경기도 용인시를 연고로 하는 종합버스회사 경남여객 사장이다. [24] 형제자매 불명 [25] 2남 중 차남 [26] 2남 중 차남. [27] 2남 중 차남 [28] 외동 [29] 2남 중 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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