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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라오(𓀲/𓀵, ⲡⲣ̅ⲣⲟ)는 고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이자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았던 존재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를 호루스의 화신으로 보아 신격화하며, 신이 하계에 내려와 통치하는 것으로 여겼다.2. 명칭
파라오라는 말은 이집트 상형문자 pr-ꜥꜣ에서 온 단어이다. 고대 이집트의 문자 체계는 모음을 표기하지 않기 때문에 pr-ꜥꜣ의 정확한 발음은 추정해야 하며, 이집트학에서는 편의상 페르아아(pɛr ɑːʔɑ)로 읽는다. 고대 이집트어의 후신인 콥트어로는 퍼로(ⲡⲣ̅ⲣⲟ, pərro)로 읽는다. 뜻은 '큰(ꜥꜣ) 집(pr)', '궁정'이나 '왕궁'이다. 고대 이집트 초기 왕조부터 쓰였던 흔적이 있으며, 여기서 파생되어 통치자 자신을 이르는 말로 변했다. 조선 시대의 대전(大殿), 중전(中殿), 동궁(東宮), 자전(慈殿), 자궁(慈宮) 등도 존귀한 이를 부를 때 그가 거주한 건물로 부른 경우에 해당하며, 중국 송나라에서 황제를 '관가(官家)'라고 둘러 말한 것이나, 과거 ' 청와대'를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호칭 중 하나로 썼던 일,[1] ' 백악관'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호칭으로 쓰는 일 등과 비슷하다.[2] 파라오는 pr-ꜥꜣ의 후기 이집트어 발음이 히브리어를 통해 그리스어로 계승된 것이다.한국의 개신교 《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가 파라오를 法老( 중국어 발음은 fa lao)로 음차한 사례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역사를 잘 몰라서인지 이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아 많은 개신교인들이 '바로'를 인물명으로 알고 있다.[3] 고전적인 표현을 현대 통용 표현으로 옮기는 데 적극적인 한국 가톨릭에서 쓰는 《성경》에서는 '파라오'라고 번역하고 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성경/번역 문서와 성경/번역/한국어 표기 문제 문서를 참고하자.
《 쿠란》에서 아랍어로 'فرعون'(firʿawn, 피르아운)으로 읽는다.
사실 파라오는 "왕"이나 "황제" 등의 군주의 "직함" 보다는 폐하 혹은 전하 등의 "호칭"에 가깝다. 이집트에서도 군주의 직함은 왕(비티)이었고, 파라오를 칭하는 상형문자와 왕을 칭하는 상형문자는 별도로 존재한다. 신왕국까지는 왕의 행동을 칭할 때만 썼으나(예 : '파라오'께서 신전/석상을 세우라 명하셨다 등) 이집트 제3중간기에 접어들어서 변화가 생긴다. 구체적으로는 제21왕조 시아문 치세 때부터 왕의 이름 앞에 파라오를 써서 '파라오 시아문', '파라오 프수센네스 2세' 와 같이 직함으로 쓰는 용법이 일반화되었다.
3. 다섯 가지 이름
파라오는 총 다섯 가지 이름을 받는다.순서대로 호루스 이름(Horus name), 네브티 이름(Nebty name)[4], 황금 호루스 이름(Golden Horus name), 즉위명(Prenomen), 출생명(Nomen)이다.
다섯 가지의 이름들 중 호루스 이름이 가장 오래되고 근본이 되는 이름이다. 이집트 선왕조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이집트 극초기의 파라오들은 이 호루스 이름만 알려져 있다. 파라오의 호루스 이름을 벽에 새길 때는 반드시 세레크(serekh)라고 부르는 틀 안에 넣어 새겼다. 세레크는 궁전의 모습을 형상화한 틀로, 이 세레크 안에 이름을 적는다는 것은 곧 신성한 파라오의 이름을 보호한다는 의미였다. 세레크 위에는 언제나 호루스의 형상을 새겼다. 이때문에 '호루스 이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5] 다만 예외적으로 제2왕조의 파라오 세트-페리브센이 세트의 모습을 그려넣기도 했다.[6]
네브티 이름은 '호루스 이름'에 이어 파라오의 이름들 가운데 두 번째로 연혁이 오래된 이름이다. 네브티 이름은 두 여신 이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름의 이유는 상이집트의 여신 네크베트 하이집트의 여신 와제트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는 상이집트와 하이집트가 하나로 묶여서 만들어진 국가였고, 파라오는 남쪽의 상이집트와 북쪽의 하이집트를 동시에 다스리는 통치자였기에 (상•하 이집트) 양쪽 모두를 다스린다는 의미로 네브티 이름을 사용했다. 네브티 이름을 정해서 사용하면 네크베트와 와제트가 파라오를 수호해줄 것이라 믿기도 했다.
황금 호루스 이름은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 논란이 있다. '황금 호루스'라는 독특한 명칭이 붙은 이유는 이 이름을 쓸 때마다 황금을 의미하는 히에로글리프와 호루스의 매를 바로 옆에 새겨넣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이 이름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지만 주류는 ' 세트에 대한 호루스의 위대한 승리'를 상징한다는 가설이다. 황금은 고대 이집트에서 영원(永遠)을 의미했고, 황금을 의미하는 상형문자를 함께 새겨넣은 것은 호루스의 승리를 영원토록 기억하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황금 호루스 이름은 네브티 이름과 마찬가지로 굳이 세레크를 주위에 둘러치지는 않았다. 세레크는 오직 호루스 이름에만 사용하는 신성한 것이었다.
즉위명은 고대인들이 가장 흔하게 쓰는 명칭이었다. 동시대 이집트인들이나 역사서에도 대부분 이 즉위명으로 파라오들의 이름을 부르고 기록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즉위명 자체를 'nswt-bjt'라고 부르고, 벼와 벌 모습의 히에로글리프로 나타냈다. 앞부분 'nswt'는 '불멸이자 영원한 왕권'을 상징했다. 반대로 뒷부분 'bjt'는 그 직위를 현재 맡고 있는 사람 개인을 묘사하는 부분이었는데, 이로써 하나의 이름 안에 불멸성과 필멸성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학계에서는 이 뜻을 적당히 의역해 '두 땅의 군주'라는 번역을 쓰기도 한다. 즉위명을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틀이 그 유명한 카르투슈이다.[7] 왕명을 전하는 문서를 작성할 때나 친서를 작성할 때, 공문서를 쓰거나 신전에 파라오의 이름을 남길 때 보통 이 즉위명을 사용했다.
마지막 출생명은 노멘이라고도 한다. 태양을 상징하는 상형문자를 쓰고, 그 앞에 아들을 의미하는 이집트 단어 'za'의 동음이의어인 오리의 상형문자 'za'를 새겨넣었다. 즉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이다.[8] 이집트 고왕국 시절 제4왕조 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했고, 파라오가 곧 라의 지상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출생명 역시 카르투슈에 넣어서 표기했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파라오의 이름들은 이 출생명이다. 예를 들어 대왕 람세스 2세의 출생명이 '아문의 사랑을 받는 라메세스'이기에 간단히 줄여서 '람세스 2세'라고 부르는 것이다. 원래 이름 자체는 '라메세스'일 뿐이지만 순서를 구분하기 위해 임의로 서수를 붙여서 2세, 3세, 4세 등 숫자를 매긴다.
예를 들어 람세스 2세의 경우, 호루스 이름은 '라의 사랑을 받는 강한 황소'(Ka nakht mery Ra), 네브티 이름은 '외방(外邦)을 억제하는 이집트의 수호자'(Mek Kemet Waf Khasut), 황금 호루스 이름은 '오랫동안 부유한 자, 승리에서 위대한 자'(User renput aa nehktu), 즉위명은 '라의 정의는 강하다 - 라가 선택한 자'(User Maat Ra - Setep en Ra), 출생명은 '아문의 사랑을 받는 라메세스'(Ramessu mery Amun)이다.
4.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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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오의 상징 |
위에서부터 각각 헤제트, 데슈레트, 프셴트, 케프레시, 네메스, 아테프 순서이다. |
파라오를 상징하는 기물들은 상당히 많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소개해보면 머리에 쓰는 줄무늬 두건 네메스(Nemes)가 있다. 보통 파라오가 쓰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두건이 이것이다.[9] 두건을 머리에 씌운 뒤 띠를 둘러 고정했고, 두건을 양 갈래로 나누어 어깨로 늘어뜨렸으며 뒤쪽을 묶어 마무리했다. 띠의 앞쪽 이마 부분에는 코브라 모습을 한 여신 와제트와 독수리 모습을 한 여신 네크베트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모습으로 장식했다. 여신 와제트는 북쪽 하이집트의 수호신, 여신 네크베트는 남쪽 상이집트의 수호신으로 이는 파라오가 상•하 이집트를 모두 아우르는 대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성이 크다. 파라오의 가장 일반적인 머리 장식이었고, 실제로 남아있는 석상들도 보면 죄다 이 네메스를 쓰고 있다.
네메스 외에도 다양한 왕관들을 사용했다. 하이집트의 붉은 왕관 데슈레트와 상이집트의 하얀 왕관 헤제트를 합쳐 만든 이중관 프셴트가 대표적이다. 데슈레트는 하이집트의 군주들이 쓰던 붉은색의 왕관이었고, 헤제트는 상이집트의 군주들이 쓰던 백색 왕관이었다. 이집트가 하나로 합쳐지자 일부러 두 왕관을 합쳐 프셴트를 만들고 이에 통일 이집트라는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프셴트를 세켐티, 즉 '두 강력한 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파라오가 실제 착용한 왕관들 중 현재까지 보존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기록에 의하면 갈대나 야자수, 아마 등을 이용한 부드러운 식물 섬유로 짜서 만들었다고 한다.
전시에는 케프레시라고 하는 독특한 모습의 푸른색 전투모를 착용했다. 앞에는 태양신의 상징 우라에우스[10]가 장식되었으며, 셈계 힉소스인에 대응해 항쟁했던 제2중간기 시절부터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케프레시의 재질이 뭐였는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조각상들을 보면 오돌도톨하게 돌기들이 돋아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를 토대로 가죽이나 딱딱한 천, 혹은 금속을 이용해 만들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이다. 참고로 2000년대까지만 해도 케프레시하면 전투용 군모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전쟁 뿐만 아니라 의식을 치를 때도 파라오가 이 케프레시를 쓰고 있는 모습들이 다수 발견되면서 현재 학계에서는 전투모라고 아예 단정짓지는 않고 있는 상황이다.
네메스, 프셴트, 케프레시 정도가 가장 유명하지만 그 외에도 모자들은 다양했다. 대표적인 것이 '아테프'와 '헴헴'이다. 아테프는 깃털로 장식된 헤제트 모양의 모자였다. 신화에서 오시리스가 항상 쓰고 있는 모자가 바로 아테프이다. 오시리스의 현신이라고도 여겨졌던 파라오들은 이 아테프를 쓰고 다니기도 했다. 헴헴은 아테프 3개를 겹치고 2개의 양뿔, 2개의 우라에우스를 더해서 만든 극도로 화려한 모자였다. 이집트의 왕관들 중 가장 화려한 왕관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어로 '헴헴'은 '외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헴헴 모자가 전시나 전쟁 중에 사용되었을 것이라 추정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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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탕카멘의 관 |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투탕카멘의 관. 관은 마트료시카처럼 총 3겹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 2번째 관이다.
파라오 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들은 모두 눈가에 짙은 아이라인을 그리고 다녔다. 이 아이라인을 코흘(Kohl)이라고 부른다. 코흘을 그리면 눈이 더 커보이는 미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날벌레, 햇빛 등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효과도 있었다. 태양빛이 강렬했던 고대 이집트에서 눈 아래에 짙은 코흘을 그려넣고 다니면 눈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검은 방연광이나 납, 공작석 등이 주 재료였는데, 위쪽 눈꺼풀은 검은색으로, 아래쪽 눈꺼풀은 녹색 공작색 가루를 발랐다.
파라오들의 턱에 보면 기다란 수염이 달려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건 가짜 수염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위생을 굉장히 중요시했는데, 이때문에 수염을 포함해 몸의 체모들을 대부분 싹 밀어버렸다. 일부 가난한 사람들이나 몇몇 취향이 독특한 사람들은 수염을 풍성하게 기르고 다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귀족들은 수염이 부숭부숭 나있는 걸 불결하게 여겼다. 파라오도 마찬가지라서 자연적으로 난 수염은 싹 면도를 했고, 그 대신에 위엄을 더하기 위해 가짜 수염을 붙이고 다녔던 것이다. 여자라서 수염이 나지 않았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는 일부러 이 가짜 수염와 함께 남자 복장을 차려입고 다니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 벽화를 보면 파라오를 포함한 고위 계급들은 하나같이 목에 넓은 칼라 모양의 목걸이를 하고 있는데, 이걸 우셰크라고 부른다. 주로 색칠한 돌 구슬이나 황금, 보석들로 만들었고, 목 뒤로 끈을 묶어 연결해 달고 다녔다. 이집트인들은 우셰크를 하고 다니면 신들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파라오는 우셰크 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기물들을 사용해 몸을 휘황찬란하게 꾸미고 다녔다. 다만 아무리 화려하게 차려입는다고 해도 날씨가 워낙 더운 탓에 옷을 겹겹이 껴입고 다니지는 않았고, 대신 보석류나 황금을 이용한 팔찌, 목걸이, 반지 등 악세사리들을 착용했다. 고대 이집트 유물들 중 유난히 목걸이나 반지 등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너무 더워서 제 몸을 꾸밀 수단으로 화려하지만 긴 옷보다는 악세사리류들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파라오들이 들고다니는 독특한 모습의 갈고리와 도리깨는 각각 '헤카'와 '네카카'라고 불렀는데, 원래 오시리스의 상징이었다. 갈고리 헤카는 왕권을 상징했고 도리깨 네카카는 풍요로움을 의미했다. 워낙 중요한 상징이었기에 벽화나 관을 보면 파라오들이 항상 갈고리 헤카와 도리깨 네카카를 가슴위로 손을 겹쳐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는 실제로 투탕카멘이 사용하던 갈고리 헤카와 도리깨 네카카가 발견된 적이 있었다. 갈고리와 도리깨에 투탕카멘의 재위 초반부 이름인 '투탕카톤'이 새겨져 있는 걸 보면 아마 투탕카멘이 즉위식에 사용했던 갈고리와 도리깨일 가능성도 있다.
5. 왕위 계승과 왕의 아내, 어머니
과거에는 왕비 계승권을 가진 최고위 왕족 여성과 혼인한 남성이 파라오로 즉위하는 <여계 계승자 이론>(Heiress Theory)에 따라 이집트 왕위 상속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는 1980년대에 부정되었다.[11] 제18왕조 왕위 계승 기록이 저 모계 계승자 설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18왕조는 신왕국 시대의 왕조. 신왕국 시대의 아멘호테프, 아크나톤, 투트모세, 하트셉수트, 투탕카멘 등 대중에게 제일 잘 알려진 파라오들이 등장하는 시기다. 일단 '최고위 여성 계승자'를 정하는 기준 자체가 불분명할뿐더러, 파라오의 왕비가 정말 '파라오'로 간주되었는지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남성 계승자는 선왕이 정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는 반면, 여성 계승자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기록에 나오질 않는다. 여계 계승자설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하트셉수트와 같이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왕비는 파라오로 간주되지 않았다고 본다. 후술할 '위대한 왕의 아내'는 황태후에 가까운 개념일 뿐 왕은 아니다.당장 18왕조의 여성 통치자로 유명한 하트셉수트를 보면, 남편이자 이복형제인 투트모세 2세가 죽고서 바로 공식적인 파라오로 인정받지 않았다. 일단은 어린 투트모세 3세를 대신해 통치를 담당할 섭정으로 지명되는 데서 그쳤다. 하트셉수트가 벽화나 부조에서 파라오로 묘사됨은 투트모세 3세의 치세가 시작되고 시간이 흐른 뒤 일이다. 하트셉수트는 투트모세 2세 사후 왕위를 주장하여 왕좌에 올라 제1파라오로서 활동했는데, 이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승계였다. 여기에 여계 계승자 이론을 적용하면 이미 최고위 여성 파라오로서 왕위 계승권을 쥔 하트셉수트가 왕좌를 적극적으로 요구하여 쟁취했다는 말이 되므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참고로 남편이 급사하여 섭정 통치를 맡은 이집트 왕비들은 하트셉수트 외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왕비들은 다음 남자 후계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통치를 담당하는 수렴청정 역할을 담당했던 듯하고 기록에서 왕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실제로 여성의 몸으로 파라오에 즉위한 사람은 투스레트 1명 뿐인데, 그나마도 양아들인 십타 생전에는 섭정이었고 십타가 죽고 나서야 단독으로 재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단독 재위 기간이 2년에 지나지 않으며, 세트나크테에게 군사력으로 축출되었다.
현재는 왕위 상속이 선대 파라오에서 장남에게 계승되는 일종의 '장자 우선 상속제'에 의거했다고 본다. 즉, 부계 중심 계승인 것이다. 몇몇 선대 파라오들은 생전에 미리 후계자를 섭정으로 지명하고 공동통치를 진행했다.
파라오는 정실을 제외하고도 여러 명의 측실을 두었으며, 이렇기에 수많은 동맹국의 공주를 자기의 아내로 맞이하여 동맹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왕의 처가 다수라고 하더라도 '위대한 왕의 아내(Great Royal Wife)'라는 호칭을 받는 아내는 하나뿐이었다. 단순히 '정비', '으뜸 아내'라는 개념만이 아니라 '왕의 어머니'란 의미까지 있는 용어인데, Great Royal Wife의 아들만 파라오의 직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아들이 왕위에 올랐다면 파라오는 어머니에게 Great Royal Wife의 칭호를 부여할 수 있었다.
6. 왕의 무덤
자세한 내용은 피라미드/이집트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왕가의 계곡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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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푸의 대피라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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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계곡|{{{#A0522D 왕가의 계곡}}}]]에 위치한 [[람세스 6세|{{{#A0522D 람세스 6세}}}]]의 무덤 |
신인 파라오가 죽는다는 것은 그저 왕의 죽음이 아니라 세계의 대사건이었으므로, 파라오는 생전에 후계자를 점지해 미리 권좌에 앉혔다. 파라오가 죽으면 그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지하에 매장했다. 초기에는 직육면체의 건물을 만들고 그 아래 지하실에 미라를 안치하는 방식을 썼다. 이걸 '마스타바'라고 부른다.[12]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마스타바가 점점 층층이 쌓인 모습으로 발전했고, 이렇게 계단식의 초기형 피라미드가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제3왕조의 시조 조세르의 피라미드. 시간이 더 지나자 층이 구분된 계단식 피라미드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겉면이 매끈한 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최초로 매끈한 사각뿔 피라미드를 지은 건 쿠푸의 아버지이기도 한 스네프루다. 무덤을 기껏 지어놓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 무려 3번에 걸쳐서 피라미드를 지었던 파라오이기도 하다. 스네프루의 뒤를 이은 인물이 그 유명한 쿠푸다. 기자의 대피라미드의 주인공으로, 3,871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무덤을 지으며 피라미드 건설의 정점을 찍었다. 쿠푸의 아들 카프레도 카프레의 피라미드를, 그 손자 멘카우레도 멘카우레의 피라미드를 세우면서 기자에 3개에 달하는 거대한 피라미드들을 지었다. 가히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의 황금기였던 셈.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피라미드 건설도 점차 파라오에게 관심을 잃어갔고, 피라미드 대신 바위에 암굴을 파서 그 안에 미라를 안치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피라미드에서 왕가의 계곡으로 묘지가 바뀐 것은 피라미드 건설 비용이 지나치게 비싼 이유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도굴 때문이다. 피라미드 안치 후 며칠 만에 도굴당하는가 하면 아예 피라미드 자체가 허물어져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후기 파라오들의 선대 피라미드에 대한 인식도 성스러운 것만이 아니어서 선왕의 피라미드 자재를 떼어내 자신의 피라미드를 짓는 데 쓰곤 했다. 이런 상황이 몇 백년 가까이 지속되었으니 더이상 파라오들이 피라미드 건설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사방에서 잘보이는 큼직한 피라미드를 짓는 건 도굴꾼들에게 '내 무덤이 여기 있으니 제발 좀 도굴해달라'고 광고하는 짓이나 다름없었으니, 파라오들은 점차 피라미드 건설을 꺼리게 된다.
결국 도굴 문제로 왕가의 계곡으로 묘지를 옮겼지만, 도굴꾼들의 의지와 솜씨가 훨씬 위였다. 투탕카멘은 때때로 기록조차 말살당할 정도로 당대에는 존재감이 없어, 오히려 심하게 도굴당하지 않은 극히 희귀한 사례다. 투탕카멘의 무덤도 흔히 한 번도 도굴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무덤 조성 직후에 몇 번 조금이나마 도굴당한 적이 있었다. 이후 입구가 파묻히고 세월이 지나면서 잊힌 것이다. 그 외에 제3중간기 시대의 파라오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이 유일하게 단 한번도 도굴당하지 않은 무덤이지만, 유물의 질도 투탕카멘의 것에 비해 훨씬 떨어지고 발견 시기가 하필이면 1939년에 발견되어서 유명하진 않다.
7. 미라
자세한 내용은 파라오/미라 문서 참고하십시오.8. 역대 파라오 계보
자세한 내용은 파라오/계보 문서 참고하십시오.8.1. 유명 파라오
다른 나라의 군주로 더 유명한 파라오는 $표 처리.- 나르메르: 3070년 동안 이어질 통일 이집트 왕조의 시작인 이집트 고왕국 제1대 왕조의 초대 파라오.
- 니토크리스
- 다리우스 1세$
- 다리우스 2세$
- 다리우스 3세$
- 람세스 2세
- 람세스 3세
- 아멘호테프 3세
- 아케나톤
- 알렉산드로스 3세$: 아케메네스 왕조의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를 정복한 이래로 역대 아케메네스 왕조의 군주들은 파라오를 겸했고, 아케메네스 왕조를 정복한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이후의 역대 왕들도 파라오를 겸했다. 고대 이집트 최후의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멸망시킨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파라오를 공식적으로 겸하진 않았지만 신전 벽에 자신을 파라오로 표현하는 등 신경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필리포스 3세$
- 알렉산드로스 4세$
- 제데프레
- 쿠푸왕
- 카프레
- 멘카우레
- 투탕카멘
- 크세르크세스 1세$: 위에 언급했듯이 이집트를 지배할 당시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대 군주들은 파라오를 겸했다.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 클레오파트라 7세: '클레오파트라 여왕'으로 유명한 그 사람이다. 또한 공식적으로 독립 국가 이집트의 군주로서 파라오로 즉위한 마지막 인물이다.
- 투트모세 3세
- 프톨레마이오스 1세
- 하트셉수트
- 호렘헤브
- 막시미누스 다자: 최후의 파라오이다.
9. 여담
- 파라오를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보면 기묘한 굵은 턱수염이 눈에 띈다. 여성 파라오였던 하트셉수트나 소년왕 투탕카멘도 달고 있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진짜 수염이 아니라 탈부착이 가능한 장식품이다.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머리도 밀고 가발을 쓰고 다녔는데, 적도 근처의 고온 지역이라 진짜 머리에 비해 관리가 편했다는 설이 있다.
-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한 이슬람볼리가 재판정에서 "나는 독재자 파라오를 쓰러뜨렸을 뿐입니다."라고 발언한 일화와 무슬림 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 前 대통령 시절 일어났던 파라오 헌법 논란에서 엿보이듯, 현대 이집트에선 파라오를 독재자나 권위주의적인 통치자를 지칭하거나 비꼬는 용법으로 칭하고 있다. 비슷한 예로 튀르키예에서 술탄을 언급하고, 중국에서 황제를, 러시아에서 차르, 서기장을 언급하는 것이 있다.
- 물론 현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라는 말이 부정적인 호칭으로 쓰이는것만은 아니고 긍정적인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이자 리버풀 FC의 공격수 모하메드 살라의 별명으로 사용되는 것이 그 예이다. 그의 월드클래스급 활약으로 인한 국위선양으로 이집트 현지에서 살라는 실제로 파라오와 같은 입지의 인물이라고 한다. 그의 위상은 이집트의 총리가 직접 나서서 살라의 군면제를 도왔다는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10. 창작물
자세한 내용은 파라오/창작물 문서 참고하십시오.11.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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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H(Blue House)'라는 약칭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2]
개인을 이른 한국사의 유사 사례로는
흥선대원군이 있다. 그의 별명 중 하나인 '운현 대감'은
운현궁에서 따왔다.
[3]
물론 최근 들어서는 개신교 목회자들도 성경에 나와 있는 바로를 파라오로 설명해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4]
두 여신 이름(Two ladies name)으로도 불린다.
[5]
그래서 요즘 학계에서는 조금 더 중립적인 명칭으로 세레크 이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6]
아직 이집트 신화가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은 시대였기도 했고, 나라의 종교가 호루스파와 세트파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7]
소총의 탄환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탄환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카르투슈'에서 이름을 따왔다.
[8]
파라오가 여성일 경우에는 앞의 문자를 '딸'로 해석한다.
[9]
투탕카멘의 가면의 영향으로 이 두건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10]
태양을 상징하는 원반을 머리 위에 얹은 뱀의 형상이다.
[11]
O'Connor and Cline (Editors), Amenhotep III: Perspectives on his reign, pg 6 그리고 Jump up ^ G. Robins, A Critical examination of the Theory that the Right to the Throne in Ancient Egypt Passed through the Female Line in the Eighteenth Dynasty. GM 62: pg 67-77
[12]
그 납작한 모습이 벤치와 비슷하다고 해서
아랍어로 벤치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어원을 따왔다.
[13]
자세한 내용은 이집트학 박사
곽민수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