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5대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1세 Cleopatra I Sy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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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
클레오파트라 1세 Κλεοπάτρα | Cleopatra[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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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기원전 204년 | |
셀레우코스 왕조 | ||
사망 | 기원전 176년 (향년 28세) |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
재위 기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193년 ~ 기원전 176년 (약 17년) | ||
부모 |
아버지:
안티오코스 3세 어머니: 라오디케 3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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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프톨레마이오스 5세 | |
자녀 | 프톨레마이오스 6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클레오파트라 2세 | |
종교 | 이집트 다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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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5대 파라오. 왕조 역사상 최초의 시리아 출신 파라오이다.2. 생애
기원전 204년경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와 라오디케 3세의 딸로 출생했다. 기원전 193년 초, 10세의 나이로 16세의 프톨레마이오스 5세와 결혼하고 공동 파라오가 되었다. 안티오코스 3세는 이 결혼을 통해 이집트를 복종시켜서 다시는 셀레우코스 왕조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그는 일전에 패배한 장소인 라피아에서 결혼식을 올리도록 해, 전 세계에 자신의 위용을 과시했다. 훗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측은 클레오파트라 1세가 지참금으로 코엘레-시리아를 이집트에 넘겨줄 예정이었으나 이행되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나, 이것이 사실인지는 불분명하다.클레오파트라 1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파라오였기에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시리아 출신인 점을 감안하여 '쉬라(Σύρα: 시리아인)'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녀는 남편과 동등한 존재로서 신격화되었고, 남편의 승인하에 수많은 존칭을 받았다. 그녀는 프톨레마이오스 5세와의 사이에서 프톨레마이오스 6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그리고 클레오파트라 2세를 낳았다.
기원전 180년 9월, 시리아를 침공하려던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갑자기 죽었다. 클레오파트라 1세는 즉시 장남 프톨레마이오스 6세를 파라오로 세우고, 어린 프톨레마이오스 6세의 공동 파라오 지위까지 자신이 섭정하여 실권자가 되었다. 남편이 추진하던 시리아 정벌 계획을 취소하고 셀레우코스 왕조와의 우호 관계를 이어갔으며, 시리아 출신 노예로 자신이 결혼 후 이집트로 갔을 때 수행원이었던 레네오스를 요직에 앉히는 등 시리아 출신 인사들을 중용했다. 이 조치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궁정은 시리아 출신 소수 관료가 권력을 독차지하고, 나머지 관료들은 소외감을 느끼는 위험한 구도가 조성되었다. 다만 그녀 생전엔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프톨레마이오스 5세 시절의 혼란스러웠던 내정이 회복되었다.
기원전 176년경, 클레오파트라 1세가 붕어했다. 그녀는 환관이자 프톨레마이오스 6세의 가정교사인 에우라이오스와 레네오스를 섭정으로 세운다는 유언을 남겼다.
3. 여담
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 나라를 패망케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 구약성서》 <다니엘> 11장 17절
《성경》에 클레오파트라 1세에 대한 예언이 있는데, 《구약성서》 <다니엘> 11장 17절에서 언급되는 '여자의 딸'이 그녀를 가리킨다.《 구약성서》 <다니엘> 11장 17절
[1]
이명은 '클레오파트라 쉬라(Κλεοπάτρα Σύρ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