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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18:34:57

세티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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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제6대 파라오
세티 2세
Seti II
파일:head-of-king-setiII-wearing-a-blue-crown.jpg
세티 2세의 두상[1]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세티 2세(Seti II)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1197년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1203년 ~ 기원전 1197년
(약 6년)
전임자 메르넵타[2]
후임자 십타
부모 아버지 : 메르넵타
어머니 : 이제트 2세
배우자 타카트, 투스레트
자녀 세티-메렌프타
무덤 왕가의 계곡 KV15

1. 개요2. 내전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통치
2.1. 《두 형제의 이야기》
3. 기타

[clearfix]

1. 개요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의 제6대 파라오.

자신의 왕위 계승에 반발해 누비아와 상이집트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복형제 아멘메세스의 반란을 진압하는 업적을 남겼지만 반란 진압 후 1년도 안되어 사망했다. 재위 기간이 6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비운의 파라오였다.

2. 내전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통치

세티 2세는 전대 파라오 메르넵타와 이세트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메르넵타가 직접 점찍은 후계 파라오였다. 그러나 정작 메르넵타가 사망하자 이복형제인 아멘메세스가 세티 2세의 왕위 계승에 반감을 품고, 상이집트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키면서 세티 2세는 즉위하자마자 반란 진압에 힘써야만 했다. 아멘메세스가 반란을 일으킨 시점은 대략 세티 2세 즉위 2년 후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멘메세스는 누비아의 총독과 카르나크 신전의 아문 대신관들을 꼬셔 자신의 반란에 동참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테베를 중심으로 반란을 선포하면서 파라오를 자칭했다.

당시 수도인 멤피스의 왕궁에 머물던 세티 2세는 바로 반란 진압에 착수했다. 아무래도 수도를 장악하고, 정당성 면에서도 우위였던 세티 2세가 아멘메세스에 비해 훨씬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충성하는 귀족들의 수도 더 많았다. 결국 아멘메세스의 반란은 치열한 전투 끝에 파라오 자칭 4년도 되지 못하여 세티 2세의 진압군에 밀려 그 막을 내렸다. 세티 2세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아멘메세스를 가혹하게 처리했다. 이미 왕가의 계곡에 묻힌 그의 미라를 파내 부쉈으며, 기록말살형에 처해 그의 부하들까지 모조리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그렇게 반란을 진압했다는 기쁨도 잠시, 세티 2세가 진압 후 1년도 안되어 사망하면서 이집트는 다시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3]

세티 2세의 짧은 통치기간 내내 테베를 포함해 전 이집트가 상당한 혼란에 시달렸다. 당시 세티 2세 시대의 일화들을 기록한 파피루스 문서가 대표적으로 2개 전해져내려오는데, 정치 상황을 풍자한 《두 형제의 이야기》와 테베의 왕실 묘지 도굴에 대한 재판을 기록한 《파네브의 재판》이다. 《두 형제의 이야기》는 아래에 따로 하술하고,《파네브의 재판》은 악독한 관리이자 무덤 감독관이었던 파네브를 재판하는 내용이다. 당시 왕가의 계곡에는 파네브라는 이름의 무덤 감독관이 있었다. 파네브는 무덤 도굴, 인부 학대, 세금 탈세 등 수많은 죄목들로 기소되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파네브는 심지어 세티 2세의 무덤이 채 완공되기도 전에 석재와 그 안에 묻힐 매장품들을 빼돌렸다고 한다. 또한 재상에게 뇌물을 바쳐 제 아버지를 쫒아낼 정도로 패악이 심한 인간 쓰레기였다는 말이 남아있다. 파네브가 실제로 이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당시 테베를 포함한 이집트 전역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는 것이다.

2.1. 《두 형제의 이야기》

고대 이집트에 형제가 함께 살고 있었다. 형의 이름은 안푸, 동생의 이름은 바타였다. 형은 이미 결혼해 아내를 두었으며 동생은 아직 결혼하지 않아 형의 집에서 같이 살았다. 안푸와 바타는 서로 밭을 갈고 가축을 기르며 나름 잘 살고 있었는데, 형수가 동생 바타에게 호감을 느껴 그를 유혹하려 들면서 일이 벌어졌다. 형수는 바타를 유혹하려했으나 바타는 그녀를 거절했고, 이에 앙심을 품은 형수는 안푸에게 바타가 자신을 강제로 취하려 했다면서 무고했다. 분노한 안푸는 바타를 죽이려들었고, 바타는 도망쳤다. 형제가 서로를 쫒고 쫒기던 와중, 앞서 가던 바타가 태양신 라 호라크티에게 자신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들은 라는 바타와 안푸 사이에 악어들이 우글거리는 거대한 호수를 만들어 둘 사이를 일단 갈라놓았다. 바타는 안푸가 호수를 건너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를 틈타 안푸에게 사건의 전말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바타는 설명을 마친 후 자신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고환을 잘라 연못에 던졌고, 연못에 살고 있었던 메기가 그 고환을 집어삼켰다. 동생이 이렇게까지 하자 안푸도 그의 말을 안들을 수가 없었고, 결국 둘은 화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생은 형의 집으로 돌아가길 거부하면서 자신은 삼나무 계곡으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선 혹시 모르니 만약 형이 먹는 맥주에 서리가 낀다면 자신이 죽은 것이니 구하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즉 미리 삼나무 계곡에 있는 삼나무 꼭대기에 자신의 심장을 매달아놓을테니, 그 심장을 통해 자신을 부활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동의한 형 안푸는 집으로 돌아와 동생을 무고한 아내를 죽였다. 한편 동생 바타는 말한대로 삼나무 계곡으로 향해 그곳에서 새 집을 짓고 살았다. 바타를 동정하던 엔네아드들 중 한 명인 크눔 신은 그에게 아내를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바타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신이 직접 만든 여자답게 바타의 아내는 극도로 아름다웠고, 때문에 마침 사냥을 하던 파라오의 눈에 띄게 되었던 것이다. 파라오는 온갖 보물로 그녀를 꼬셔 바타의 아내를 왕궁으로 데려가는데 성공했다. 바타의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데리러올 것이 두려웠던지 파라오에게 바타의 심장이 매달린 삼나무를 베어버리게 할 것을 간청했고, 파라오가 그대로 시행하면서 바타는 억울하게 죽고 말았다.

동생 바타가 죽었을 때, 형 안푸는 마시던 맥주에 서리가 낀 것을 발견하고 동생의 죽음을 직감했다. 즉시 안푸는 삼나무 계곡으로 향해 동생의 심장을 찾아 곳곳을 뒤졌고, 결국 4년 만에 바타의 심장을 찾아냈다. 안푸가 찾아낸 심장을 차가운 물 속에 넣었더니 바타는 부활했다. 형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난 바타는 황소의 모습을 하고, 전처와 파라오를 찾아갔다. 황소가 죽은 자신의 남편 바타임을 눈치챈 아내는 파라오에게 황소를 죽여 그 간으로 요리를 해달라고 부탁했으며, 파라오는 그대로 해주었다. 그러나 황소가 죽기 직전 두 방울의 피가 떨어져 땅에 튀었고, 그 자리에서 녹나무 2그루가 자라났다. 남편 바타가 녹나무로 또 환생한 것을 본 아내는 녹나무를 잘라 가구를 만들어버렸지만, 나무를 자르는 순간 나뭇조각이 튀어 그녀의 입에 들어갔다.

아내는 나뭇조각을 삼킨지 얼마 되지 않아 태기가 돌더니 임신했다. 그녀는 결국 왕자를 낳았으며, 파라오는 기뻐하면서 그 왕자를 왕세자로 세웠다. 그러나 그 왕자는 사실 녹나무에서 다시 환생한 바타의 영혼이었다. 장성해 왕좌를 물려받은 바타는 형 안푸를 불러와 다음 왕세자로 임명했고, 결과적으로 안푸와 바타 두 사람 모두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3. 기타


[1] 현재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중간에 아멘메세스가 반란을 일으켜 파라오를 자칭했다. [3] 세티 2세의 출생연도는 불확실하지만 메르넵타가 파라오가 되었을때 이미 6~70대였음을 감안하면 그의 나이도 상당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