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제22왕조 5대 파라오
오소르콘 2세 Osorkon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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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 오소르콘 2세(Osorkon II) | |
출생 | 미상 | |
사망 | 기원전 837년 | |
재위 기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872년 ~ 기원전 837년 (약 3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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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 | 타켈로트 1세 | |
후임자 | 셰숑크 3세 | |
부모 |
아버지 :
타켈로트 1세 어머니 : 카페스(Kap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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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카로마마 1세(Karomama I) | |
자녀 | Tjesbastperu, 님로트 C, 셰숑크 D, 호르나크트(Hornakht) | |
무덤 | 타니스의 NRT-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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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제3중간기 제22왕조의 5대 파라오이자, 통일 이집트를 다스렸던 제22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이다. 후계자인 셰숑크 3세 때부터는 분계왕조인 제23왕조가 등장하면서 실질적으로 중부와 상이집트의 지배권을 상실했다.오소르콘 2세는 즉위하자마자 테베와 상이집트 지역을 점거하고 자신의 정통성에 반기를 든 하르시에세(Harsiese) A의 반란에 직면했으나 그가 후계자없이 기원전 860년에 사망하자 다른 이가 그 빈 자리를 메우지 못하도록 자신의 친아들인 님로트 C를 테베의 아문 대신관으로 임명하였고, 이를 통해 오소르콘 2세의 치세에는 통일 이집트를 유지할 수 있었다.
2. 외교 정책과 기념물 건설
이집트의 국력이 약화된 제3중간기였지만 오소르콘 2세는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펼쳐야만 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발흥한 아시리아의 세력이 이집트의 전통적인 영향권인 시리아와 가나안 일대로 침투했기 때문이었다.한편 그의 치세는 안정적이어서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는데 부바스티스의 바스테트 신전을 증축한 것을 시작으로 멤피스, 테베, 레온토폴리스 등 여러 곳에서 공사가 진행되었고, 말년에는 카르나크 신전에 신전 J를 지었다. 이 신전을 장식하는 책임자는 님로트 C의 아들인 타켈로트 F였는데 훗날 타켈로트 2세로 즉위했다.
3. 무덤
1939년 2월 27일, 옛 타니스에서 한창 발굴작업을 하던 피에르 몽테[1]에 의해 무덤이 발굴되었다. 무덤을 조사한 결과 오소르콘 2세는 거대한 화강암 석관에 안장되었고 그 뚜껑은 제20왕조 시기의 것을 재활용했는데 고대에 이미 도굴당해서 매의 머리가 달린 석관과 카노푸스 단지 몇 조각만으로 무덤의 주인을 추정해야 했다.하지만 도굴꾼들의 손을 운좋게 벗어난 펜던트가 카르나크 신전에서 출토되었는데 상당한 솜씨를 자랑해서 제21왕조와 제22왕조 시절의 이집트가 국력이 쇠퇴해갔다는 고정관념을 수정해야 할 정도다. 왕권의 신 호루스와 그 어머니인 이시스 여신이 오소르콘 2세의 카르투슈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모습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을 발굴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