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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제20왕조 Twentieth Dynasty of Egy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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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189년 ~ 기원전 1077년 | ||
위치 | 이집트 | |
수도 |
피람세스 멤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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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 전제군주제, 제정일치 | |
국가 원수 | 파라오 | |
파라오 |
세트나크테 람세스 3세 람세스 4세 람세스 5세 람세스 6세 람세스 7세 람세스 8세 람세스 9세 람세스 10세 람세스 11세 |
|
언어 | 고대 이집트어 | |
종교 | 고대 이집트 종교 | |
주요 사건 |
기원전 1189년
세트나크테에 의해 제20왕조 창건 기원전 1186년 람세스 3세 즉위 기원전 1178년 바다 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 기원전 1157년 노동자 파업 기원전 1155년 람세스 3세 암살 미수 사건 기원전 1145년 천연두로 인해 람세스 5세 사망 기원전 1113년 왕가의 계곡 도굴 사건 기원전 1077년 람세스 11세의 사망으로 제20왕조 종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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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 이전 | 이집트 제19왕조 | |
이후 | 이집트 제21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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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1189년부터 기원전 1077년까지 지속된 고대 이집트의 왕조이다. 이집트 신왕국에 해당한다.2. 특징
신왕국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왕조로,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전성기이면서 쇠락이 시작되는 시대이다.왕조의 창건자인 세트나크테는 이집트 제19왕조의 방계 왕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 제19왕조는 메르넵타 사후 아멘메세스의 반란과 가나안 군벌 이르수의 등장으로 혼란을 겪었는데, 세트나크테는 투스레트를 몰아내고 이르수를 처치하면서 이집트 제20왕조를 개창했다.
이 왕조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는 람세스 3세이다. 당시에 지중해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던 바다 민족의 침입을 막아냈으나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로 인해 파업이 발생했는데, 이는 파업에 관한 역사적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대부분의 군주의 명칭이 람세스였기 때문에, 별칭으로 람세스 왕조라고도 불린다.
3. 역사
기원전 1189년 세트나크테가 제19왕조의 투스레트를 몰아내고 파라오로 즉위하며 이집트 제20왕조가 개창되었다. 이 시대에 왕권이 다시 강화되면서 람세스 3세 시대의 중흥기의 발판을 닦았다.기원전 1186년에는 세트나크테가 사망하고 아들인 람세스 3세가 2대 파라오가 되었다. 이때 지중해 세계는 바다 민족이 휩쓸고 다녔다. 미케네 문명과 히타이트 등이 멸망당해 암흑시대에 접어들었고, 이들의 마수는 이집트까지 뻗쳤다. 그러나 이집트는 여전히 강대국이었고, 기원전 1178년에 일어난 바다 민족의 침입을 막아냈다.
이후 군사적으로는 평화가 찾아왔으나 국가의 경제력은 약해지고 있었고, 노동자들에게 줄 봉급이 부족해지자 기원전 1157년 기록상 최초의 파업이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로 인해 발생한 화산재가 지중해를 덮으면서 농사를 망쳤다.
기원전 1155년 람세스 3세의 부인 티예와 아들 펜타웨레트가 람세스 3세 암살 사건을 벌였다. 이로 인해 람세스 3세는 식도가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즉사했던 것으로 추정하며, 한 왕족이 음모자들보다 먼저 왕궁을 확보하고 왕세자가 재빨리 군대를 이끌고 멤피스로 진입하여 정권 탈취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람세스 3세의 다른 아들이었던 람세스 4세가 3대 파라오가 되었다. 즉위 직후 람세스 4세를 신하들 중에서 수사관들을 임명해 음모자들을 조사해 재판에 회부하고, 가담자 28명을 사형에 처했다. 음모자들 중 펜타웨레트는 왕족이었기에 자살을 허락받아 목을 메어 죽었다고 전해졌는데, 람세스 3세의 무덤 근처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불길하게 여긴 염소 가죽에 싸인 바짝 마른 시신이 나왔고 유전자 검사 결과 람세스 3세와 부계 하플로그룹 및 상당수 유전자가 일치했으며 사인도 목을 메어 죽은 것으로 밝혀져서 펜타웨레트가 확실시된다. 이후 6년 간 이집트를 다스리며 건설 사업을 벌였으나, 이는 람세스 3세의 프로젝트를 완료한 정도였다.
기원전 1149년 람세스 3세의 손자이자 람세스 4세의 아들 람세스 5세가 4대 파라오가 되었다. 이때부터 이집트의 파라오의 권위는 급락하고, 지방 관리와 신관들의 권력이 막강해졌다. 람세스 5세 본인은 4년 간 파라오 노릇을 하다가 천연두에 감염되어 사망했는데 기록으로 남은 가장 이른 천연두 사망자이다.
기원전 1145년 람세스 3세의 또 다른 아들이자 람세스 5세의 삼촌인 람세스 6세가 5대 파라오로 즉위했다. 람세스 5세에게 자신이 밀렸다고 생각한 람세스 6세는 즉위하자마자 람세스 5세의 미라를 무덤에서 꺼내 대충 묻어버리고, 그 무덤을 본인의 무덤으로 재활용했다. 역대 파라오들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자신의 조각상을 세우는 데 열심이었으나, 람세스 4세에 테베의 아문 대신관 자리에 오른 람세스낙트가 재정감사권과 부를 바탕으로 권위와 권력을 높이기 시작하면서 중부와 상이집트 지역은 사실상 아문 대신관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가나안과 시나이 반도에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람세스 6세의 치세는 눈에 띌 정도로 국력이 쇠퇴했다.
기원전 1137년 람세스 3세의 손자이자 람세스 6세의 아들 람세스 7세가 6대 파라오로 즉위했다. 그는 7년 간 재위했고 어떤 통치가 이루어졌는지조차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기원전 1130년에는 람세스 3세를 암살하려 했던 부인 티예의 또 다른 아들 람세스 8세가 7대 파라오로 즉위했다. 하지만 1년 만에 사망했고 조카 람세스 9세에게 왕위가 넘어갔다.
기원전 1129년, 람세스 3세의 왕자 중 하나인 몬투헤르코세프에게서 태어난 람세스 9세가 8대 파라오가 되었다. 즉위 후 16년이 지난 기원전 1113년에는 왕가의 계곡이 이미 대규모로 도굴되었다는 게 밝혀졌다. 경제가 꾸준히 쇠퇴했고 통치력이 떨어지니 무덤을 건설하는 근로자들이 월급이 밀리니 무덤을 건설하면서 도굴용 통로를 따로 만들어 봉인되자마자 몰래 도굴하거나, 무덤을 관리하는 사제와 관리들과 결탁해 무덤을 도굴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무덤을 조사하던 관리들은 파라오의 질책을 두려워하여 무덤이 대부분 온전하다고 거짓 보고를 올렸고 이를 둘러싼 관리들의 대립을 정리한 문서가 에봇 파피루스다.
기원전 1111년 람세스 10세가 9대 파라오로 즉위했으나 4년 후 사망했고, 기원전 1107년 람세스 11세가 마지막 파라오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 중부와 상이집트 지역은 테베의 아문 대신관이 실질적으로 통치했으며, 파라오가 있던 하이집트마저도 람세스 11세 생전에 제21왕조의 개창자이자 초대 파라오가 된, 아문 대신관의 자식으로 추정되는 스멘데스가 장악했다. 재위 기간은 30년이었으나 왕권이 한없이 약했던 탓에 특별한 업적을 남가지 못했고, 수도를 나일강 삼각주의 타니스로 옮긴 뒤 기원전 1077년 사망했다. 이후 그의 장례를 집전했던 스멘데스 1세가 새로운 파라오로 즉위하면서 이집트 제21왕조가 개창되었다. 이 시대부터는 이집트 제3중간기라고 지칭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