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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01:50:00

이집트 속주(무함마드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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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속주
إيالة مصر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속령
파일:이집트 국기(1844-1867).svg_20221222_021838.png
국기
파일:이집트터키.png
무함마드 알리 시대 이집트 속주의 최대 영토
1805 ~ 1867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오스만령 이집트 이집트 헤디브국
수도 카이로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과두정, 종속국
국가 원수 파디샤(명목상), 왈리
민족 이집트인, 아랍인, 수단인, 유대인
언어 오스만어(궁정언어), 표준 아랍어, 이집트 아랍어
종교 이슬람교 수니파
통화 이집트 파운드
현재 국가 이집트, 수단, 리비아, 이스라엘
1. 개요2. 역사
2.1. 맘루크 정권 수립과 프랑스의 침공2.2. 메흐메드 알리의 부상2.3. 수단 정복2.4. 헤자즈, 시리아 점령2.5. 동방 위기와 서양의 개입2.6. 메흐메드 알리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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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흐메드 알리 1805년 이집트를 장악하고 수립한 정권이다. 오랜 기간 이집트의 권력층이었던 맘루크 계층을 말소하였고 근대화를 추진했다. 수단, 에티오피아 지역과 레반트, 시리아, 헤자즈를 점령하면서 이전 이집트 왕조의 영광을 재연하려고 하였으며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여 거의 달성에 성공하였다. 이집트의 마지막 외래 왕조인 무함마드 왕조의 시조다.

2. 역사

2.1. 맘루크 정권 수립과 프랑스의 침공

이집트는 셀림 1세의 정복 이후 오스만 제국 영토로 편입되었으나 기존 기득권 세력인 맘루크들은 여전히 이집트를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맘루크계 총독이었던 알리 베이 알 카비르의 반란 이후 오스만은 이집트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오스만의 총독들은 유명무실해졌다. 이후 오스만으로부터 독립한 알 카비르를 축출한 이도 또다른 맘루크이자 그의 부관인 무함마드 파샤였기에 대놓고 독립하지만 않을 뿐 독자적인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오스만 제국은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이집트에는 무함마드 파샤의 부하인 무라트 베와 이브라임 베이의 연립정권이 존속했다.

그러던 중 프랑스 제1공화국 나폴레옹은 맘루크의 학정을 끝내고 오스만 조정에 이집트를 귀속하겠다는 명분으로 이집트를 침공했다. 프랑스의 이집트 원정으로 이집트 전역은 무정부 상태에 접어들었고 프랑스군의 약탈 행위와 학살로 인해 명분과는 반대로 이집트에서 맘루크에 대한 지지는 공고해졌고 점령지의 반란과 오스만 지원군의 등장, 맘루크 군대의 공세, 영국군의 해상봉쇄로 프랑스군은 대대적인 침공을 감행했던 개전 초기와 반대로 금방이라도 전멸할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1801년 프랑스군은 오스만-영국 연합군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항복하며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를 탈환하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스만 조정에서 파견된 총독들은 여전히 맘루크 세력 때문에 이집트를 통제하지 못했다. 철군 이후 4년간 이집트는 공식적으로만 오스만령일 뿐 맘루크 군벌들에 의해 통제되었다.

2.2. 메흐메드 알리의 부상

이렇듯 명목상의 주군만 있는 봉건제 영지가 되어버린 이집트에 오스만 조정은 알바니아 용병 사령관 메흐메드 알리를 행정관으로 임명한다. 야망있고 정치적으로 유능한 메흐메드 알리는 자신의 군대를 맘루크로 변장시켜 마을을 약탈하게 하고 범죄자를 처벌한다는 명목으로 맘루크 제후들을 토벌했다. 그리고 알바니아인 용병들로 하여금 조세를 걷도록 하여 행정구역을 장악하고 자신의 상관인 이집트 총독을 압박했다. 그리고 과도한 세금과 탄압으로 발생한 토착민과 맘루크의 반란을 자신의 알바니아 용병들로 잔혹하게 진압하고 자신이 아니라 조정에 충성하는 군인들을 숙청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친위대인 알바니아인 군대가 군벌로 성장하는 걸 견제하기 위해 장교들의 갈등을 조장하여 반란의 가능성을 차단했다.[1]

그리고 조정으로부터 총독직을 임명받은 후엔 맘루크의 씨를 말리기 위하여 환영회를 가장하여 카이로에서 맘루크를 초대하고는 이들을 전부 몰살하는 대학살극을 벌이면서 전제 권력을 성립한다. 이런 혼란을 틈타 1807년 영국군 1만 5천명이 이집트를 침공하지만 라쉬드 전투에서 이들을 격파하며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영국에게 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제공하며 서구로부터 독립 정권으로 인정받는다.

2.3. 수단 정복

2.4. 헤자즈, 시리아 점령

2.5. 동방 위기와 서양의 개입

2.6. 메흐메드 알리 사후


[1] 알바니아인 용병부대는 메흐메드 알리의 사병이었기에 완전히 서구화된 군대와 행정부를 가지기 전까지 주요 관직을 독점하였다. 이들은 무함마드 알리 가문에서 천거한 친위세력과 경쟁을 이루었고 특히 메흐메드 알리가 사망한 후 국정의 상당부분이 이 양대세력의 손에 있었다. 훗날 이집트 헤디브국의 초대 총리가 되는 누바르 파샤 역시 알바니아 용병부대의 부사령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