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오아시스 & 사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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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클라 | 카르가 |
히비스 신전과 대추야쟈 숲
바가와트 콥트 무덤군과 시내
전통 가옥의 모습
아랍어: الخارجة
콥트어: ϯⲟⲩⲁϩ `ⲛϩⲏⲃ (와하 엔힙)
영어: Al Kharja
1. 개요
이집트 남부 알와디 알자디드 주의 주도. 룩소르에서 서쪽으로 180km, 아시유트에서 남쪽으로 160km 떨어진 알 카리자 오아시스에 위치한다. 카르가는 서부 사막에 위치한 5대 오아시스 중 최남단에 해당하며, 인구는 약 7만 5천명이다. 아랍어로 카르가 (표준 발음은 카리자)는 '바깥'이란 뜻이며, 서쪽으로 100여 km 떨어진 '안쪽'이란 의미의 다클라 오아시스와 대조를 이룬다. 과거부터 아시유트에서 누비아로 이어지는 40일 교역로 (다르브 엘 아르바인)의 거점으로 발전하였고, 고중세에는 네스토리우스의 유배지로 유명해졌다. 현재는 이집트 서부의 고립된 오아시스들 중 유일하게 인구가 늘고 있으며, 주도이기에 대학교와 공항 등 현대적인 기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주요 유적으로 고대 이집트 말기 ~ 아케메네스 왕조 건축의 대표작인 히비스 신전과 바가와트 콥트 묘지, 로마 시대에 남북 100km의 군소 오아시스를 따라 세워진 수십여개의 방어용 요새 및 부속 신전 등이 있다.2. 역사
히비스 신전
2.1. 엘 아르바인 무역로
로마시대 성채들 중 하나인 데이르 엘 무니라
고대 이집트 시기 지명은 크늠트였다가 점차 '쟁기'를 뜻하는 헤베트로 바뀌었고, 후자의 그리스어 발음인 히비스로 알려졌다. 고왕국 시절부터 중부 이집트의 아시유트에서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으로 향하는 사막 횡단로가 카르가를 지나 이어졌다. 이집트와 누비아 사이의 굴곡져 흐르는 나일 강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대신 일직선으로 사막을 관통하는 이 여정은 딱 40일이 소요되기에 다르브 엘 아르바인으로 불렸다. 주요 교역 품목은 금, 상아, 향신료, 밀, 가축, 곡물 등이었다. 헤로도토스 역시 40일이 걸리는 이 길이 이집트와 누비아의 주요 내륙 무역로라고 기록하였다. 로마 제국은 이 교역로를 보호하기 위해 길을 따라 수십 여개의 다양한 크기의 요새들을 건립하였다. 일부 요새는 농경지를 포함한 작은 도시 규모였고, 다른 것들은 외딴 초소에 불과하였다. 성벽은 진흙 벽돌로 축조하였고, 일부 요새들에는 석조 신전이 자리한다.
2.2. 히비스 오아시스
아문 신에게 공양하는 다리우스 1세 (좌측)
고대에는 오아시스 북쪽의 히비스가 일대의 중심 도시였다. 시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히비스 역시 신왕국 시절의 신전을 기반으로 26왕조 시대 (기원전 590년 경)에 세워진 아문 신전으로 유명하였다. 70여년 후 이집트는 아케메네스 제국령이 되었고, 샤한샤이자 27왕조의 '파라오' 다리우스 1세는 히비스 신전에 벽화 등 내부 장식을 더하였다. 히비스 신전은 이른바 후기 왕조 (기원전 7세기 ~ 기원전 4세기) 시대의 건축물 중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사례로, 가치가 높다. 또한 이집트에 남은 얼마 안되는 고대 페르시아의 흔적 중 하나로도 유명하다. 이후로도 29왕조의 하코르, 30왕조의 넥타나보 2세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및 로마 제국에 의해 보수와 증축이 이루어졌다. 다만 이집트의 다른 신전들과 마찬가지로 2세기 이후 기독교가 확산되며 신전은 폐쇄되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편 로마 시대에 카르가는 오아시스 마그라라 불렸다.
2.3. 기독교 거점
엘 바가와트 콥트 묘지
히비스는 고립된 특성 덕에 기독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유입되었고, 수도원이 세워졌다. 히비스 북쪽의 네크로폴리스에는 3-7세기에 걸쳐 263기의 기독교 묘지인 엘 바가와트가 세워졌다. 진흙 벽돌로 지어진 무덤에는 돔이 올려지기도 했다. 내부에는 아담과 이브, 사자 우리 속의 다니엘, 고래 속의 요나, 아브라함의 희생제 등 구약의 내용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그러던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되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에서 축출된 네스토리우스는 435년 8월, 테오도시우스 2세의 칙령에 의해 안티오크에서 히비스 오아시스의 수도원으로 유배되었다. 수도원은 사막 유목민들의 습격에 시달렸고, 네스토리우스 역시 도중 부상을 입었다. 그는 450년경 사망할 때까지 히비스에서 여생을 보내었고, 그동안 집필한 '헤라클레이데스의 바자르'는 온전히 남은 유일한 네스토리우스의 저서로써 아시리아 동방교회 등 네스토리우스파의 주요 신학서이다.
2.4. 근현대
이집트 철도망과 카르가 역 |
로마 시대 이후 최초로 카르가 오아시스를 방문한 이는 영국인 탐험가 윌리엄 조지 브라운으로, 1792년 시와에 이어 1793년 6월 다르푸르로 향하는 카라반에서 이탈해 카르가에서 며칠간 머물렀다. 그는 이집트의 맘루크 이브라힘 베이의 긴디 (기병 장교)가 배치되어 카라반에 관련된 일을 관장했다고 기록하였다. 1907년 카르가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퀴나와 다시 홍해 연안의 사파가 항구로 이어지는 철도가 개통하고 주 2회 기차가 다니게 되며 본격적으로 외부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하였다. 1909년부터 1911년까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히비스 신전을 발굴한 것을 시작으로 1976년부터 일대에 대한 전면적인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1961년 카르가는 '제2의 나일 강' 협곡을 조성하려는 나세르의 의지로 설립된 알와디 알자디드 주의 주도가 되었다. 1996년에는 퀴나까지만 운행하는 정기 노선이 생기기도 했지만 곧 폐지되었고, 대신 카이로행이 있는 카르가 공항이 설립되었다.
3. 갤러리
3.1. 히비스 신전
- [히비스 신전 기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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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바그와트 묘지
- [엘 바그와트 기타 사진들]
3.3. 로마 시대 요새들
카스르 엘 구에이타
카스르 엘 자이얀 : 안토니누스 피우스 시대의 요새
옛 히비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나두라 성채
카스르 엘 라바카
- [두쉬 등지의 성채와 신전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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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타울레입
아인 움 엘 다바딥
두쉬 성채
두쉬 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