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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스 등대 터에 세워진 카이트베이 요새
알렉산드리아의 지도
1. 개요
الإسكندرية ( 아랍어)
Αλεξάνδρεια ( 그리스어)
Alexandrea / Alexandria ( 라틴어)
Alexandria ( 영어)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주의 주도. 아랍식 명칭은 이스칸다리야.
이스칸다리야라는 명칭은 알렉산드리아의 아랍어형인데, 도시 이름의 유래가 된 건립자의 이름인 'Αλέξανδρος( 알렉산드로스)'의 중기 페르시아어형 'Aleksandar'의 앞부분의 'Al-'이 아랍어의 관사 '-ال(알-)'과 혼동되고, 중간의 '-ks-'에서의 k와s가 도치되어 Aleksandar(알렉산다르)→Al-Iskandar(알-이스칸다르)가 되고(표준 아랍어에는 e발음이 없다.), 지명에 사용되는 어미 'ية-(-이야)'가 붙어 '알-이스칸다리야'가 되었다[1]. 현지 이집트 방언에서는 관사를 빼고 اسكندريه, 즉 '에스켄데레야'라고 부른다.
별명은 지중해의 진주. 이집트에서 카이로 다음으로 큰 제2의 대도시이며, 나일강 삼각주 서북부 지중해에 접한 항구도시이다. 인구는 2017년 현재 약 517만 명. 면적은 2679 ㎢.
이집트 해군의 제1의 군항이기도 하다. 해군본부와 주력 함대가 이 곳에 주둔하고, 파로스의 등대 유적에 해군 박물관도 있다.
2. 역사
로마 시대의 극장 유적
본래 이집트인들이 세운 라케데트(Râ-Kedet)[2]가 있던 자리에 기원전 4세기[3]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붙여 처음 세운 신도시로, 주변 약 50 km 이내에 사는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켜 인구를 채우고 건축가 디노크라테스가 설계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이어진 디아도코이 전쟁 결과 알렉산드로스의 부장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전 이집트를 지배하며 이곳을 수도로 정하였고, 기원전 3-2세기에 문화적 번영을 일구었다.
다른 알렉산드리아들이 대부분 사라지거나 이름이 바뀌거나 쇠퇴했을 때에도 여기는 중요한 지역으로 계속 살아남아 현재에도 알렉산드리아( 이집트 아랍어로는 '알이스칸다리야[4]')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 명성과 이름에 걸맞게 실제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하자 그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기도 하였다.
2.1. 고대
고전기 그리스 학문의 중심지가 아테네였다면,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 학문의 중심지는 바로 알렉산드리아였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 토착 왕조의 중심지가 멤피스(고왕국)와 룩소르(중왕국, 신왕국)였다면, 그리스·로마 치하 고대 이집트의 중심지는 알렉산드리아였다.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삼고 대대적으로 확장, 그 유명한 도서관을 세우고 많은 유대인들을 시가지 동부로 이주시켰다. 또한 그는 그리스의 죽음의 신 하데스를 이집트에 토착화시켜 세라피스란 이름으로 받아들였는데,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이 공통으로 숭배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기를 기점으로 이집트와 유리되기 시작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주민들은 그리스인들이 다수를 차지했고, 스스로 이집트인이 아닌 그리스인임을 표방하고 다녔다. 이집트 외부에서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가 아니라 '이집트 옆의 알렉산드리아'로 이집트와 알렉산드리아는 구분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를 비롯한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인을 경멸하였으며 그리스와 이집트의 융합은 늘 이집트의 복종을 강요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알렉산드리아의 이집트인들은 점차 배제되기 시작하였고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의 문화를 유지하고 이집트의 문화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배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래도 알렉산드리아의 이집트인들은 철저히 노예와 같이 수탈당한 알렉산드리아 밖의 이집트인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다음대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부터 알렉산드리아는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또한 무세이온 (연구소)과 그 부속 도서관, 천문대, 해부학 연구소, 동물원 등을 세웠다. 그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것은 세계 7대 불가사의에도 들어가는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헬레니즘 시대의 가장 큰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5]이었다. 대도서관은 장서가 무려 70만 권에 이르는, 당시로선 세계에서 책(두루마리)가 가장 많은 시설이었다.
또한 약 2200년 전, 에라토스테네스가 최초로 지구의 둘레를 추산하는데 이용한 두 도시 중 하나이다. 하짓날 정오에 시에네에서는 태양이 정확히 머리 위(천정)에 위치하는데,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천정에서 7도만큼 아래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 그는 사람을 시켜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 사이의 거리를 알아낸 뒤, 이를 이용해 지구의 자오선 길이를 역산하여 25만 스타디아(약 46,250 km)라고 결론을 지었다. 실제 지구의 자오선 길이인 약 40,009 km에 비해선 오차가 좀 있는데,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가 동일한 경도에 있지 않고, 지구가 완전한 구형이 아니며, 인간의 걸음 수에 의존하여 부정확하게 측정했던 탓이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추산한 시기가 기원전임을 감안하면 놀랍도록 정확한 결과이다.
이렇듯 당대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대도시였으나, 그 장대한 도서관은 애석하게도 후대에 모두 불타고 파괴되어 거의 대부분의 장서는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다. 이 파괴의 원인에 대해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침략 때 로마군이 이 도시에 진주하면서 도서관과 박물관을 불살라버렸다는 설, 아우렐리아누스의 침략으로 불탔다는 설, 콥트 정교회 주교가 원인이라는 설, 무슬림의 침략[6] 때문이라는 설 등등이 있다. 물론 각각의 설 중 무엇이 맞는지, 특히 완전한 파괴를 야기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도 없고 학계의 정설도 없다 보니 진범은 아직도 불명. 학계에서도 도서관은 한 번에 파괴된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며 서서히 허물어졌고, 위의 사건들은 그런 과정의 일부였다고 본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기리는 의미의 새로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2002년에 (이집트의 재정 문제로) UNESCO가 개관했다. 알렉산드리아 동쪽 해안의 샤트비(El Shatby) 거리에 있으며, 현존 장서는 대략 100만 권 수준이다.[7]
그외에 알렉산드리아는 무역과 유리공업이 발달하며 지중해권 최대급 도시로 번영하였다.
로마 제국이 이집트를 지배하면서 알렉산드리아는 수도 로마의 뒤를 이은 제국 제2의 도시이자 이집트 통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스계인 알렉산드리아 주민들은 알렉산드리아 시민권이라는 로마 시민권과 유사한 권리를 보장받았고 그들은 자신들이 로마시민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일대의 그리스도교 중심지기도 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서기 69년 성 마르코가 그리스도교를 알렉산드리아에 전파했고, 이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성 마르코의 뒤를 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권의 중심도시로서 로마 등과 함께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인정받았다. 이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5대 총대주교좌에 속한다. 하지만 3-4세기 들어 도시는 쇠퇴하였고 365년 7월 21일 해일이 일어나 수천 명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2.2. 중세
파로스의 등대 터에 지어진 카이트베이 요새
이후 동로마 제국이 계속 지배했는데 기독교도와 이교도 (다신교도와 유대교도)간의 싸움으로 계속 쇠락해갔고, 619년 사산조 페르시아가 이집트에 침입해 10년간 지배하기도 했다. 629년 동로마 황제 이라클리오스가 탈환했지만 이슬람 제국의 등장으로 아랍인이 차지했고, 이집트의 정치 중심이 현 카이로 인근 푸스타트로 옮겨가면서 행정중심지 기능은 잃고 항구도시로 남았다. 641년 아랍군대가 이곳을 점령했을 때 당시 사령관 아므르 이븐 알 아스에 의하면 궁전 4천 채, 목욕탕 4천 곳, 기름상점 1만 2천 곳, 정원사 1만 2천 명, 유대인 4만 명, 극장 4백 곳이 있었다. 구체적 수치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대단히 번영한 도시였음은 분명하다. 664년 아므르가 사망한 후 이집트 총독으로 부임한 우트바 이븐 아비 수피안 ( 무아위야 1세의 동생)은 이곳에 총독궁 (다르 알 이마라)을 세우고 1만 2천의 아랍 군대를 배치하는 등 아랍화를 시도했으나 이듬해 사망하기도 하였다.
군사적으로 7세기에 동로마 제국과 정통 칼리파 / 우마이야 왕조, 12세기에 예루살렘 왕국과 파티마 왕조 / 장기 왕조 간의 공방전이 벌어졌다. 12세기의 전쟁은 결국 살라흐 앗 딘의 승리였다. 맘루크 왕조 시기인 1365년 10월에는 피에르 1세가 이끄는 키프로스 왕국군이 기습하여 일시 점령했다가 철수하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 십자군) 이때 5천여 주민이 학살되었고, 여러 유서깊은 모스크와 교회들이 소실되었다. 1422년에도 키프로스 해군이 접근하여 이집트 선박 한 척을 나포해 갔다. 이에 대한 복수로 1424년 술탄 바르스베이가 키프로스를 침공해 야뉘 왕을 생포하고 복속시킨다. 15세기 말의 맘루크 술탄 카이트베이는 기존에 허물어진 파로스 등대의 잔해를 수습하여 해안에 요새를 지었다.
그러다 15-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새로운 인도항로가 개척되고 알렉산드리아의 중요성은 떨어지고 한동안 쇠퇴했다가 메흐메드 알리가 알렉산드리아와 나일강을 연결하는 마흐무디야 운하를 개설하는 등 도시 개조를 통해 확고한 이집트 제2의 도시로 자리잡았다.
3. 관광
몬타자 궁전
알렉산드리아 시디 모르시 아부 알아바스 모스크
로마 시대 카타콤
역사가 유구한 도시로 유적과 박물관이 많다. 로마시대의 폼페이 석주, 원형극장, 카타콤(지하묘지), 파로스의 등대터(해군 박물관), 알렉산드리아 박물관 왕궁정원 문타자 등. 재건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많은 방문객이 찾으며, 소수지만 수몰된 해저 유물을 보기 위한 스쿠버다이버들도 찾아온다.
4. 방언
기본적으로 이집트 방언을 쓰기는 하나, 카이로의 이집트 방언과는 발음, 억양, 단어 등에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아랍어 단어 مشروع (마슈루아)는 표준 아랍어와 카이로의 이집트 방언에서는 '계획'이라는 뜻이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마이크로 버스(봉고차 버스)'라는 뜻이다.5. 기후
또한 지중해에 접하다 보니 아랫동네에 비해서는 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내리는 편이지만 지중해 지역도 건조한 편이기 때문에 강수량이 적은 편이다. 특히 이집트는 겨울(11월~1월)이 우기인데, 비가 내리더라도 5~10분 정도로 짧게 내리는 카이로와 달리 여기는 30분~1시간 단위로 내린다. 그러나 강수량에 비해 낙후된 배수시설로 인하여 홍수가 번번히 일어난다. 2015년에는 홍수로 인하여 길거리에 오리가 헤엄치는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기도 했다.6.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왕릉
2002년 시내에 건립된 알렉산드로스 대왕 동상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왕릉이 소재한 곳으로 가장 유력하게 추측되고 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이집트를 차지한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바빌론에서 고향 마케도니아로 운송 중이던 알렉산드로스의 유해를 중간에 탈취해 알렉산드리아에 안장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후대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왕릉을 방문했다거나 카라칼라가 부장품 일부를 도굴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적어도 문헌상으로는 로마 제국 초중반까지는 무덤의 위치가 알려져 있었다고 추정되지만 400년 경부터 무덤의 위치가 실전되어 버렸다.
왕릉을 찾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발굴조사가 진행중이며 최근에도 발굴 성과는 나오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에 개재된 2019년의 발굴 성과. 문제는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해수면 상승, 지진 등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지형도 상당히 변해 수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알렉산드리아에는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유적이 많다고 한다.
7. 기타
- 인천광역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 부산광역시와 공통점이 많은 도시로 항구도시이자 제2의 도시이며, 한때 나라의 수도 역할을 했다는 점, 지도상 동서로 길게 늘어진 도시라는 점이 있다.[8]
- 파워 메탈 밴드 카멜롯의 노래 Alexandria는 이 알렉산드리아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입을 빌려 찬양하고 있다.
- 마르코 폴로의 발자취에서는 여행 가능한 대도시 중 하나로 등장하는데, 대다수 캐릭터의 출발위치인 베네치아에서 이동력 한 칸만 소모하여 바로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때문에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아다나-코치 해로를 타는 루트도 사랑받는 편이다. 항해 게임이나 지중해 관련 게임에는 어김없이 나오는 주요 도시다.
- 1951년 제1회 지중해 게임을 개최하였다.
- 이집트 항공의 허브공항인 보그 엘 나랍 국제공항이 위치하고 있다
8. 매체에서의 등장
8.1. 도미네이션즈
부두 원정 목적지 중 하나로 등장한다.자세한 내용은 알렉산드리아(도미네이션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8.2. 대항해시대 시리즈
항상 등장하는 항구도시. 지중해 남부지역의 핵심도시로 등장해 지중해 항해 때는 꼭 들르게 된다. 오스만의 영지로 나올 때도 아닐 때도 있다.8.3.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였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갈 수 있는 도시, 마을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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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시 | 기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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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오폴리스 (머쓰르 엘게디다) |
라마단 10일시 |
[1]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서 이 명칭으로 등장한다.
[2]
콥트어로는 라고티,
그리스어로는 라코티스(Ῥακῶτις)로 불렸다.
[3]
주로 추정하는 연도는 기원전 332년.
[4]
al-iskandarīyah
[5]
무제이온이라는 전문 연구기관에 소속된 도서관이었다.
[6]
18세기 유럽에서는 이 설이 정설로 여겨졌으나
에드워드 기번이나
볼테르가 확실한 증거도 없으면서 다른 종교 탓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리 따지자면 그리스도교 근본주의도 용의자라고 깠다. 실제로 같은 그리스도교끼리도 분파가 다르다고 서로 죽고 죽인 역사가 너무나 장대하며, 극렬 근본주의자들이 이집트를 비롯한 타 국가의 고대 유적에 대하여 테러나 방화를 가했던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7]
건물을 짓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부터 50만 권을 기증받은 뒤에야 체면치레를 했다. 그럼에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장서가 1400만 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초라한 숫자다. 물론 이렇게 된덧이 이집트 국가대표도서관의 자리를 차지하는게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국가도서관이고 주요 공문서 및 역사자료는 이집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맡고있기때문에 재건시기가 늦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위상이 상당히 떨어지기때문이기도 하다.
[8]
제1의 도시이자 수도가 내륙에 있다는 점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