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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자 | 투트모세 1세 | 투트모세 3세 | 람세스 2세 |
소재지 | 이집트 룩소르 | 튀르키예 이스탄불 | 프랑스 파리 |
1. 개요
오벨리스크( 고대 그리스어: ὀβελίσκος)는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 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다. 하나의 거대한 석재로 만들며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이다. 중왕국 시대 이후로는 파라오의 통치 기념제 때에 신전 탑문 앞에 한 쌍이 건립되었다.건축 의도에 대해서는 다산을 기원하는 구조물이 아닐까 하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학자들은 오벨리스크가 남근을 뜻하는 모양일 것이라 주장한다. 농경 사회에는 성관계가 쾌락 이전에 가정과 나라를 위해 필요한 행위였다. 또한 성행위는 고대종교나 민간풍습에서 흔히 풍요를 상징하는 주술로도 사용된다. 여러 종교 혹은 다신교 문화에서 농업의 신이 다산을, 그리고 다산이 왕성한 성생활로 연결되는 경우는 흔하다. (예: 바알)
2. 어형
'오벨리스크'라는 단어는 많은 고대 이집트 관련 단어들이 그렇듯이 고전 이집트어가 아니라 고전 그리스어에서 왔다.[1] 그리스어 표기는 ὀβελίσκος(오벨리스코스)이며 '뾰족한 끝'를 뜻하는 ὀβελός(obelos)의 지소형이다. 이집트어로는 테케누(tekhenu)라고 불렸다고 한다. 영어 위백한자어로는 방첨탑(方尖塔)이라고 한다. 각지고 뾰족한 탑이라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2]
3. 위치
현재는 대부분 고대 로마 제국 시대나 후대의 식민지 시기에 유럽으로 반출된 것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가 특히 유명하다. 이집트의 총독이 프랑스의 루이 필리프 1세에게 증정한 것으로 본래 룩소르에 3200년 전부터 있었다.
사실 유럽에 있는 오래된 성당들 중에는 그 앞에 이집트에서 반출된 오벨리스크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 문자가 해독되기 전이라 정확한 의미도 모른 채 장식용으로 갖다놓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라테라노 대성전 앞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로, 원래는 제18왕조의 파라오 투트모세 4세가 완성해 카르나크 신전 앞에 세웠던 것이다.
한편 로마인들이 흉내내서 만든 오벨리스크도 존재한다는 설 또한 존재하나 확실치는 않다.[3]
이들 모두가 제국주의 시절에 약탈된 것은 아니다. 이집트가 과거에 자의적으로 해당 국가들에게 선물로 보내준 것들이거나, 로마 제국 시절과 같이 고대에 이미 유럽으로 옮겨져 있던 것도 많다. 개중 콩코르드 광장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는 무함마드 알리가 친선관계 도모용으로 루이 필리프 1세에게 선물로 내준 것으로 답례품으로 프랑스에게서 대형 기계식 시계를 받았고 이걸 카이로 성채에 설치해놓았지만 이건 10년도 못 가서 고장나버리는 바람에 작동이 되지않은 폐물이 되었다. 당시 이걸 프랑스에 선물로 주는 걸 결사반대하던 오귀스트 마리예트[4]는 폐물이 되어버린 시계탑의 시계를 씁쓸하게 바라보며 "3천 년이 넘어도 변함없는 위대한 보물을 겨우 10년도 못 가 고장나는 고철덩어리와 바꾸고 말았다." 하면서 두고두고 한탄했다고 한다. 이 시계는 이후 백여 년 넘게 골칫덩어리가 되었다가 이집트 정부의 요청으로 2020년 프랑스에서 기술지원을 해 고쳐주기로 했고, 2021년부터 작동되고있다.
아래는 이집트 외의 지역에 반출된 오벨리스크의 위치이다.
- 로마에 있던 악숨 오벨리스크 1기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4. 자매품: 악숨의 오벨리스크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아 누비아에서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처럼, 그 아래의 에티오피아 고대 문명인 악숨 왕국에서도 오벨리스크를 건설하였다. 다만 그 방식은 윗 부분이 뾰족하지 않는 등 조금 다르다.
5. 여담
미국의 워싱턴 D.C.에 있는 워싱턴 기념탑이나 보스턴의 벙커힐 기념탑 같은 것은 이 오벨리스크를 모방하여 새로 새워진 탑이다. 사람이 올라가서 전망할 수 있는 탑인 만큼 크기는 오벨리스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도 오벨리스크가 있는데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모양의 룩소르 호텔 앞에 있다. 음모론에서는 이집트 신의 상징인 오벨리스크가 미국의 상징인 백악관 앞에 떡하니 박혀있는 걸 보고 수만 가지 잡설들을 만들어낸다.러시아의 도시 예카테린부르크는 우랄 산맥의 동쪽 기슭에 가까스로 위치해있기 때문에 대륙 구분상으로 아시아에 속해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오벨리스크가 도시 서쪽으로 40km 거리에 위치해있다. 기단석을 유럽 서쪽 끝 포르투갈의 호카 곶과 아시아 대륙 동쪽 끝인 축치 반도 데즈뇨프 곶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 이 경계비는 1846년 러시아 제국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가 황태자던 시절 방문한 것을 기념해 만들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한복판에 하나 있다.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오벨리스크를 모방하여 세운 것이다.
문장 부호 †( 칼표)를 오벨리스크라고도 부른다.
문명 4에서 이집트 문명의 고유 건물로 등장한다. 기념비를 대체하며, 도시의 주민 둘을 사제 전문가로 변경할 수 있다.
[1]
대표적인 예로
피라미드가 있다. 고전 이집트어로는 '
메르'라고 불렀다.
스핑크스 역시
고전 그리스어이다.
[2]
마찬가지로
고대 이집트의 건축물인
피라미드는
금자탑(金字塔)이라 한다.
[3]
성 베드로 광장의 오벨리스크가 바로 이런 오벨리스크라는 설이 있는데, 이 오벨리스크를 로마인들이 세웠다는 이야기는 가설일 뿐이다. 이 오벨리스크의 기원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사실은 없다.
대 플리니우스가 그의 저서에서 기록한 내용대로, 현재에도 이집트에서 건너온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4]
프랑스인이지만 이집트 문화재 보존 및 연구에 기여했다.
이집트 항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