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숨 왕국 መንግሥተ አክሱ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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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경의 최대 강역 | |||||
기원후 1세기 ~ 960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다못 왕국 | 시미엔 왕국 | ||||
자그웨 왕조 | |||||
위치 | 동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 | ||||
수도 | 악숨 | ||||
정치 체제 | 전제군주제 | ||||
영토 | 1,250,000 km2 | ||||
국가 원수 | 느구스(왕)[1] | ||||
종교 |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악숨 다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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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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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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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어: Axum, Aksum그으즈어: አክሱም
에티오피아 역사상 최고의 국력과 영향력을 가졌던 국가. 수도이자 중심지는 현 티그라이 지역의 악숨이었다. 로마 제국과 마찬가지로 수도가 곧 국가를 상징한 경우다.
2. 역사
서아시아에 살던 셈족 계열 민족이 기원전 550년 경에 에티오피아 고원 일대에 도착해서 국가의 기반을 닦기 시작하여 기원전 2세기에 건국되었고 기원후 1세기가 되어서는 제국으로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국가 자체는 기원후 10세기 경까지 존속했는데 로마 제국과 이집트, 인도 등의 주변국들을 상대로 상아, 금, 거북 등껍질, 향신료, 노예, 흑요석 등을 팔면서 짭짤한 이익을 취했고 이 무역으로 발생한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강성한 해군력으로 중무장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군사력을 중무장한 뒤인 3세기 경부터는 정복 사업으로 영토를 확장하기까지 했으며 4세기에는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때 마니교의 창시자 마니[3]가 이란· 로마· 중국[4]과 함께 4대 강국이라고 했을 정도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악숨 왕국의 실제 국력은 영토·인구·군사력·기술 등을 따졌을 때 저들에 비해 한참 모자랐다. 오히려 저 4대 강국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은 인도의 쿠샨 왕조가 영토와 국력이 훨씬 더 강력했다. 악숨 왕국은 로마의 영향력 아래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군사 지원도 받았으며 당시 페르시아에서 인도·중국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홍해[5]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와 인도·중국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했던 페르시아에 사는 마니가 악숨 왕국을 과대평가했을 수도 있다.[6] 악숨 왕국은 당대 홍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던 로마와 이해관계가 맞아 동맹을 형성하면서 국력이 신장되었다.[7]
6세기경엔 당시 예멘을 지배하고 있던 힘야르 왕국을 공격해 마리브 댐의 붕괴로 국력이 크게 약화된 힘야르 왕국을 멸망시키고 아라비아 전부를 지배하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로마의 홍해지역 함대의 도움을 받았다. 당시 힘야르 왕국은 페르시아 쪽으로 기울어 있었기 때문에 해당 전쟁은 서로 대립하던 로마와 페르시아 두 제국이 홍해의 패권을 두고 치른 일종의 대리전에 가까웠다. 그러나 악숨 왕국의 지배는 오래가지 않았고 결국 아라비아 중부의 부족들에 의해 쫓겨났다. 참고로 아라비아 부족이 악숨군을 물리친 그 해가 바로 '코끼리의 해', 즉 무함마드가 태어난 해다.
무슬림 피난민을 접견하는 네구스 왕
한편 614년에는 메카의 초기 무슬림( 무하지룬) 공동체의 일부가 우스만 등의 주도로 악숨 왕국으로 망명하였다. 당시 군주 네구스(앗 나자쉬)는 주변의 만류에도 쿠란의 마리아와 예수 부분을 낭송하는 무슬림들에게 동정심을 느껴 그들을 받아주었고 628년 대부분이 귀환했지만 일부는 남아 정착하였다. 14년에 걸친 초기 무슬림들의 정주 동안 메켈레 북쪽에는 앗 네자쉬 모스크가 세워졌고 이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로 여겨진다.
중세 들어 이슬람 국가들이 번성하면서 무역로가 끊기는 바람에 악숨 왕국은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7세기 이후에는 그 명맥만 유지하다가 결국 960년경에 악숨 왕국에 원한을 가진 시미엔 왕국 출신의 여왕 구디트에 의해 수도 악숨이 함락된 후 멸망했다. 1137년에 악숨의 마지막 왕의 사위이자 봉신이었던 마라 타클라 하이마노트와 아가우족이 구디트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자그웨 왕조를 개국하면서 악숨의 계승국이 등장하긴 한다.
상술했듯이 그들은 기독교를 믿어서 수도원을 굉장히 많이 지었는데 에티오피아 북부의 타나 호수 안의 섬들에도 수많은 수도원들이 위치하고 있다. 악숨은 전성기에 돌을 깎아서 동굴 교회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랄리벨라 동굴 교회다. 지금의 도시 악숨에 있는 교회 지하에 성궤가 위치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당대의 교회 건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는데 유대교를 신봉한 여왕 구디트가 악숨을 정복하면서 수많은 교회들을 무너뜨리고 불태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레이주 한 지역에서 고대 도시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발굴된 유물 중에는 기원전 8세기의 악숨 왕국이 성립하기 전의 것도 있어 도시는 악숨 왕국 시기를 포함해 대략 1400년 동안 번성한 것으로 보인다. #
3. 매체에서
이렇듯 파란만장하고 엄청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지만 비중이나 연구가 적은 아프리카 역사인 탓에 대중매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국가기도 하다. 다만 KOEI의 대항해시대 시리즈 중 대항해시대 2에서 조안 페레로, 알 베자스, 피에트로 콘티 등의 시나리오에서 ' 프레스터 존 왕국'[8]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바 있으며 대항해시대 3에서도 ' 프레스터 존 왕국' 이라는 발견물 힌트 및 '악숨' 이라는 항구명으로 등장한 바 있다. 대항해시대 4에서는 아프리카 지역의 패자의 증표가 '악숨왕의 금인' 이다. 토탈 워: 아틸라에서 모래의 제국 dlc로 플레이어블 팩션이 되면서 국내에 조금 알려지게 되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선 악숨 왕국의 공주였던 요디트에 관한 캠페인이 등장한다.로마 재벌가의 망나니에서는 폼페이우스의 최후의 원정 대상으로 선정되어 로마군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는다. 먼저 공격을 받은 쿠시 왕국이 멸망하고 곧장 4만 5천의 대군을 편성해 회전에 나서나 상대가 총지휘관이 그 유명한 폼페이우스인데다 주인공 덕에 장비 버프도 받은 로마군인지라 대패하게 되고 결국 로마의 속주로 편입된다.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도 초기 솔로몬 왕조 소속으로 에티오피아에 아바사니아의 왕국 직위를 가진 국가가 존재한다. 시기상 아직 악숨 왕조가 살아있던 769, 867년에도 존재한다.
토탈 워: 아틸라에서는 사막 왕국 DLC로 타누흐, 힘야르와 함께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등장한다.
하츠 오브 아이언 4 DLC By Blood Alone이 추가되면서 연구 트리를 통해 에티오피아 제국으로 악숨 제국을 세울 수 있다.
[1]
악숨 왕국에서도 일부 왕이
느구서 너거스트(왕중왕) 칭호를 쓰기도 했지만 에티오피아에서 군주 칭호가
느구서 너거스트로 굳어진건
솔로몬 왕조부터다.
[2]
나일 강 유역에 있는 도시. 고대
쿠시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3]
생몰년: 216년~274년
[4]
마니가 살던 시절 중국은
분열기였다.
[5]
19세기에
영국이
수에즈 운하를 뚫은 것도 이
홍해 루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으며 현대
미국도 홍해를 중요하게 여기고
중국도 이 곳을 핵심 이권이 달린 지역으로 여겨 최초의 해외 군사기지를 이 지역에 위치한 지부티에 건설하였다.
[6]
애초에 마니는 3세기 페르시아에 살던 인물이기에 그가 내린 평가가 무작정 정확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7]
사실 고전 시대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왕조는 이 악숨 왕국보다는 나일강 상류에 위치해 있던
쿠시 왕국으로, 현대의
수단 공화국의 전신 격이 되는 곳이다. 다만 마니가 살던 기원후 3세기에는 실제로 쿠시 왕국이 악숨 왕국과의 무력 충돌에서 연거푸 지면서 국력이 상당히 쇠락한 상태였던 것은 사실이다.
[8]
중동의 '맛사와' 라는 항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프레스터 존 왕국에 관련된 이벤트가 완료된 이후에는 항구명이 '맛사와' 에서 '아크슴'으로 바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