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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디르 항구와 카스바 언덕의 글귀 (신, 국가, 국왕)
아가디르 해안선 전경
1. 개요
아랍어 أكادير베르베르어 ⴰⴳⴰⴷⵉⵔ
영어 Agadir
모로코 중남부의 항구 도시. 마라케쉬에서 서남쪽으로 200여 km 떨어져 있으며, 북쪽의 아틀라스산맥과 남쪽의 수스 강이 대서양과 합류하는 지점 사이에 입지하고 있다. 인구는 약 50만명으로, 모로코에서 9번째로 큰 도시이다. 주민의 대다수는 베르베르인이다. 16세기 포르투갈 성채에서 시작하여 수스 지방의 외항으로 번영했지만 18세기 지진 이후 폐허가 되었다. 20세기 초엽 프랑스 당국에 의해 근대적인 항만 도시로 지어졌지만 1960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 그후 다시 재건되었으며 흰색의 도색과 유럽적인 건물들이 특징이다. 아가디르 만에 뻗은 5km의 모래 사장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로 손꼽히며, 온화한 기후 조건이 겹쳐 아가디르는 모로코의 대표적인 휴양도시이다. 해안을 따라 리조트들이 줄지어 있고, 시내 남쪽에는 골프장들도 많다. 시내 동남쪽에는 테슬라 공장 단지와 아이트 멜룰 대학교가 있다. 그 부근에는 아가디르 알 마시라 국제공항이 있다.
2. 역사
아가디르 메디나의 포르투갈식 건물
기원전 1100년 무렵 페니키아 인들이 건설한 마을 가디르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스페인의 카디스와 같은 어원으로, 성채의 뜻으로 추정된다. 중세 들어 메스귀나 베르베르 인들이 정착하여 대항해시대에 '포르토 메세기나'로 알려졌다. 그러던 1505년 와타스 왕조의 쇠락을 틈타 모로코 해안을 잠식해가던 포르투갈 인들이 바다 쪽 언덕에 산타 크루즈 두 카부 지 아게르 성채를 건설하여 총독을 두고 무역 거점으로 삼았다. 이에 반발한 현지인들은 종종 성채를 공격하였고, 따라서 1510년 '전쟁 중인 아가디르' (아가디르 알 하르바)로 불리게 되었다. 사드 왕조 휘하에 뭉친 현지인들은 1530년부터 성채를 포위하였고, 사드 왕공 무함마드 앗 셰이크가 1541년 3월 12일 마침내 점령하였다.
포로가 된 6백인의 포르투갈 인들 중에는 총독 구테레 지 몬로이의 딸 도나 메키아가 있었는데, 전투 도중 남편을 잃은 그녀는 무함마드 앗 셰이크의 아내가 되었다. 비록 1544년 그녀는 출산 도중 사망했지만, 장인 구테레와 친해진 무함마드 앗 셰이크는 같은해 그를 석방하였다. 아가디르 함락은 모로코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충격을 받은 포르투갈은 북쪽의 사피, 아제무르를 포기하였다. 이로써 영웅으로 부상한 무함마드 앗 셰이크는 형을 누르고 술탄에 오른 후 북진하여 1549년 페스를 정복, 한세기 만에 모로코를 통일하기에 이른다. 동시에 포르투갈이 브라질에 더욱 집중하며 16세기 중반 포르투갈령 모로코는 탕헤르 ~ 세우타 해안과 안파 ( 카사블랑카), 마자간 (엘 제디다) 일대로 축소되었다. 무함마드 앗 셰이크를 계승한 술탄 압둘라 알 갈립은 1572년 아가디르에 기존 성채를 확장하여 카스바를 건설하였고, 이후 도시는 '요새화된 평원'이라는 의미인 아가디르 늘기르로 불리게 되었다.
2.1. 번영과 지진
아가디르 카스바
17세기 아흐마드 알 만수르의 사후 사드 조가 내분으로 쇠퇴하자 모로코는 다시 분열되었다. 남부 수스 지방에 세워진 타제르왈트 왕조는 내륙의 일리그가 수도였지만 대외 무역을 중시하였기에 아가디르를 그 외항으로 여겨 중시하였다. 비록 부두와 같은 항만 시설이 미비했지만 유럽 상인들이 왕래하여 설탕, 밀랍, 구리, 가죽 등을 수출하였고 무기와 직물 등의 제품들을 수입하였다. 1670년 타제르왈트 왕조는 모로코를 재통일하는 알라위 왕조에게 정복되었다. 알라위 조는 프랑스 대신 영국, 네덜란드에 우호적이었기에 아가디르에도 해당 국가의 상인들이 왕래하였다. 모로코 남부의 대표 항구이던 아가디르는 1731년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항구로의 기능이 정지되었고, 북쪽의 사피와 모가도르로 대체되었다. 1746년 술탄의 허가 하에 네덜란드 인들이 카스바 아래에 상관을 세우고 도시의 재건에 일조하였다. 당시 글귀 '신을 두려워하고 왕을 존중하라'가 지금도 성문에 남아있다.
하지만 1764년 모가도르를 개조하여 유럽식 항구도시 에사우이라로 재창조한 술탄 무함마드 3세는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수스 지방에 대한 징벌로 그 외항인 아가디르 대신 에사우이라를 모로코의 유일한 대외 교역항으로 지정하며 1767년에는 아가디르 주민들마저 그곳으로 이주시켰다. 이에 1773년 반란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1789년 유럽인 방문자의 기록에 의하면 아가디르는 몇몇 가구만이 남은 유령 마을에 불과하였다. 그렇게 한세기가 지난 1881년 술탄 하산 1세는 외세의 간섭이 있던 수스 지역의 개발을 위해 아가디르를 다시 개항하였다. 다만 3년 후 도시를 지난 프랑스인은 무역이 없는 가난하고 작은 마을이라 기록하였다. 1911년 2차 모로코 위기 당시에 독일 제국은 전함을 파견했는데, 이에 영국이 강력 반발하자 프랑스의 모로코 지배를 인정한 후 함대를 철수시켰다. 한편 독일측의 명분 제공을 맡은 헤르만 빌베르크는 계산 오류로 전함이 도착하고 3일 후에야 아가디르에 당도하는 촌극을 빚기도 하였다. 2년 후인 1913년 6월 15일 프랑스 군이 아가디르에 상륙하였다.
2.2. 대지진과 재건
1930년의 아가디르
1990년대의 아가디르
프랑스의 지배 하에 1916년에는 남쪽 푼티에 첫 방파제가 세워졌고, 근대적인 항만 시설이 들어서며 아가디르는 2세기 간의 침체를 겪고 다시 발전하였다. 1930년대에는 도시 설계가 앙리 프로스트의 주도 하에 신시가지가 세워지기 시작했고, 말굽형 구조와 대로들이 건설되었다. 아가디르는 프랑스령 모로코의 주요 항공 우편 거점이자 남부의 중심 항구로 성장하였다. 1950년대에는 모로코 그랑프리가 열리기도 하였고, 1959년에는 윈스턴 처칠과 그리스의 주요 선박 회사의 사장이 요트를 타고 방문하기도 하였다. 1960년, 인구 4만의 도시로 성장한 아가디르에 규모 5.7의 지진이 덮쳤다. 불과 15초 동안 지반이 가라앉고 최소 1/3의 주민들이 사망하였다. (최종 희생자는 1만 5천으로 추정)
모로코 국왕 무함마드 5세는 '만약 운명이 아가디르의 파괴를 결정했다면, 그의 재건은 우리의 신앙과 의지에 달렸다.'고 선포하였다. 이후 원래보다 1.6km 남쪽에 재건된 도시는 내진 설계를 갖추어 후일을 대비하였다. 지진으로 기존 부두가 파괴던 덕에 재건된 아가디르는 항만 시설을 북쪽 카스바 쪽에 집중시켜, 만을 따라 5km에 달하는 모래사장을 갖게 되었다. 이와 함께 연중 내내 따뜻한 기후와 아름다운 바다로 인해 아가디르는 휴양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고, 카사블랑카-페스-마라케쉬와 함께 모로코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로 성장하였다.
3. 갤러리
아가디르 해변과 카스바 언덕의 글귀
아가디르 항만과 카스바 언덕 야경
카스바 성문의 네덜란드어-아랍어 명문
아가디르 메디나
20세기 초의 아가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