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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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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 존 타일러 제임스 K. 포크 재커리 테일러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밀러드 필모어 프랭클린 피어스 제임스 뷰캐넌 에이브러햄 링컨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앤드루 존슨 율리시스 S. 그랜트 러더퍼드 B. 헤이스 제임스 A. 가필드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체스터 A. 아서 그로버 클리블랜드 벤저민 해리슨 그로버 클리블랜드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윌리엄 매킨리 시어도어 루스벨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우드로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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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G. 하딩 캘빈 쿨리지 허버트 후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해리 S. 트루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B.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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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대통령 문장.svg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주요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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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민주당(미국) 엠블럼.svg 민주당 지미 카터 2위
월터 먼데일 낙선1
파일:공화당(미국) 엠블럼.svg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1위
조지 H. W. 부시 당선
Ind 무소속 존 B. 앤더슨 3위
패트릭 루시 낙선
1 현직 미국 정·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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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대통령 문장.svg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주요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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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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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피터 하더만 버넷 존 맥도걸 존 비글러 존 닐리 존슨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존 B. 웰러 밀튼 래섬 존 G. 다우니 릴런드 스탠퍼드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프레드릭 로우 헨리 헌틀리 하이트 뉴턴 부스 로무엘도 파체코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윌리엄 어윈 조지 클레먼트 퍼킨스 조지 스톤맨 워싱턴 바틀렛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로버트 워터먼 헨리 마크햄 제임스 버드 헨리 게이지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조지 파르디 제임스 질레트 하이럼 존슨 윌리엄 스티븐스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프렌드 리처드슨 클레멘트 칼훈 영 제임스 랄프 프랭크 메리엄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컬버트 올슨 얼 워런 굿윈 나이트 팻 브라운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로널드 레이건 제리 브라운 조지 듀크미지언 피트 윌슨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그레이 데이비스 아놀드 슈워제네거 제리 브라운 개빈 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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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States Congressional Gold Medal
미합중국 의회 명예 황금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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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1777년 1779년 1781년
조지 워싱턴 소장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 앤서니 웨인 사령관 헨리 리 3세 준장 대니얼 모건
1781년 1787년 1800년 1805년 1813년
소장 너새니얼 그린 존 폴 존스 대령 토머스 트럭스턴 준장 에드워드 프레블 대령 아이작 헐
대령 스티븐 디케이터
대령 제이콥 존스
1813년 1814년
대령 윌리엄 베인브리지 대령 올리버 해저드 페리
대령 제시 엘리엇
대위 윌리엄 워드 버로스 2세
대위 에드워드 매콜
대령 제임스 로렌스 대령 토머스 맥도너
대령 로버트 헨리
대위 스티븐 카신
1814년 1814년, 1848년 1814년
대령 루이스 워링턴 대령 존스턴 블레이클리 소장 제이콥 브라운 소장 윈필드 스콧 소장 피터 부엘 포터
준장 엘리저 윌락 리플리
대령 제임스 밀러
1814년 1815년 1816년
소장 에드먼드 P. 게인스 소장 알렉산더 마콤 소장 앤드루 잭슨 대령 찰스 스튜어트 대령 제임스 비들
1818년 1835년 1846년, 1847년, 1848년 1847년 1854년
소장 윌리엄 해리슨
주지사 아이작 셸비
대령 조지 크로간 소장 재커리 테일러 소머스 호
장교 및 승무원 구출
중령 덩컨 잉그함
1858년 1863년 1864년 1866년 1867년
프레더릭 로즈 소장 율리시스 S. 그랜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로버트 크레이튼
에드윈 J. 로
조지 C. 스투퍼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
1867년 1871년 1873년 1874년, 1904년 1883년
조지 피바디 조지 F. 로빈슨 대령 재러드 크랜달 그 외 존 혼 주니어 존 폭스 슬레이터
1888년 1890년 1900년 1902년 1909년
조셉 프랜시스 수석 엔지니어 조지 W. 멜빌 그 외 중위 프랭크 H. 뉴컴 중위 데이비드 H. 자비스
소위 엘스워스 P. 버트홀프
새뮤얼 J. 콜 박사
라이트 형제
1912년 1914년 1915년 1928년
선장 아서 로스트론 폴 H. 크라이봄 그 외 로물로 세바스티안 나온
에두아르도 수아레스 무히카
찰스 린드버그 로알 아문센
움베르토 노빌
1928년 1929년 1930년 1936년
토머스 에디슨 최초로 성공한 대서양 횡단 비행사 소령 월터 리드 준장 리처드 에벌린 버드 링컨 엘즈워스
1936년 1938년 1939년 1940년
조지 M. 코핸 리처드 올드 리치 부인
안나 불리니
하워드 휴즈 목사 프랜시스 퀸 윌리엄 시넛
1942년 1945년 1946년
롤런드 바우처 1939~1941년 미국 남극 탐험대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해군 원수 어니스트 킹
육군 원수 존 조지프 퍼싱 준장 빌리 미첼
1949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58년
앨번 W. 바클리 어빙 벌린 조너스 소크 박사 남북 전쟁의 참전 용사 준장 하이먼 리코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로버트 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토머스 앤서니 둘리 3세 밥 호프 샘 레이번
1962년 1968년 1969년 1973년 1977년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월트 디즈니 윈스턴 처칠 로베르토 클레멘테 매리언 앤더슨
1978년 1979년
중장 아이라 이커 로버트 F. 케네디 존 웨인 벤 아브러조
맥시 앤더슨
래리 뉴먼
휴버트 험프리
1979년 1980년 1982년
미국 적십자 케네스 테일러 1980 미국 하계 올림픽 팀 베아트릭스 여왕 대장 하이먼 리코버
1982년 1983년
프레드 워링 조 루이스 루이스 라머 레오 라이언 대니 토머스
1984년 1985년
해리 S. 트루먼 레이디 버드 존슨 엘리 비젤 로이 윌킨스 조지 거슈윈
아이라 거슈윈
1986년 1987년 1988년
네이선 샤란스키
에비탈 샤란스키
해리 차핀 에런 코플런드 메리 래스커 제시 오언스
1988년 1990년 1991년
앤드루 와이어스 로런스 록펠러 대장 매튜 B. 리지웨이 대장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 콜린 파월
1994년 1996년 1997년
랍비 메나헴 멘델 쉬니어슨 루스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프랭크 시나트라 마더 테레사 바르톨로메오스 1세
1998년 1999년
넬슨 만델라 리틀록 9인 제럴드 포드
베티 포드
로자 파크스 시어도어 헤스버그
2000년
존 오코너 찰스 M. 슐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널드 레이건
낸시 레이건
나바호족 코드 토커
2002년 2003년
대장 휴 셸턴 토니 블레어 재키 로빈슨 도러시 하이트 박사 조셉 디레인
해리 & 일라이자 브릭스
레비 피어슨
2004년 2006년
마틴 루터 킹
코레타 스콧 킹
터스키기 에어맨 달라이 라마 14세 바이런 넬슨 노먼 볼로그 박사
2007년 2008년
마이클 데바키 박사 아웅 산 수 치 콘스탄티노 브루미디 에드워드 윌리엄 브룩 3세 아메리카 원주민 코드 토커
2009년 2010년
여성 공군 군무원 조종사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존 글렌
아널드 파머 무함마드 유누스 제100 보병대대
제442 보병연대 전투단
군사정보국
2011년 2012년 2013년
몬트포드 포인트 해병전우회 9.11 테러 참사 사망자 라울 발렌베리 애디 메이 콜린스
데니스 맥네어
캐럴 로버트슨
신시아 웨슬리
제1 특수임무단
2014년
둘리틀 특공대 멤버 미국의 공군 에이스 제2차 세계 대전
민간 항공 초계 부대 멤버
시몬 페레스 모뉴먼츠 맨
2014년 2015년 2016년
제65 보병연대 잭 니클라우스 셀마 몽고메리 행진 제2차 세계 대전 필리핀인 참전 용사 OSS
2017년 2018년
밥 돌 래리 도비 제2차 세계 대전
중국계 미국인 참전 용사
USS 인디애나폴리스 승무원 안와르 사다트
2019년
스티브 글리슨 캐서린 존슨 크리스틴 다든 도로시 본 메리 잭슨
2019년 2020년 2021년
무명의 수여자들 그렉 르몬드 미국 국회의사당 경찰
컬럼비아구 경찰청 소속 경찰관
제369 보병연대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전사한 13명의 장병
2022년 2023년
미 육군 제23부대 본부 특수부대
제3133 신호 복무 중대
제6888 중앙우편대대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상선 선원
에밋 틸
메이미 틸모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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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타임지 로고 화이트.svg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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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100: The Most Important People of the Century
지도자들 & 혁명가들 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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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어 루스벨트 블라디미르 레닌 마거릿 생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엘리너 루스벨트
아돌프 히틀러 윈스턴 처칠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다비드 벤구리온 마오쩌둥
마틴 루터 킹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마거릿 대처 로널드 레이건 미하일 고르바초프
레흐 바웬사 넬슨 만델라 요한 바오로 2세 호찌민 탱크맨
같이 보기: 과학자 & 사상가 부문, 예술가 & 연예인 부문, 건설자 & 거인 부문, 영웅 & 아이콘 부문 }}}}}}}}}

파일:E8379242-641F-4E16-9EC4-4DDE7A61F63B.png 스미스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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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 재단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colbgcolor=#000047><colcolor=#ffc224> 개척자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헨리 허드슨 · 아메리고 베스푸치 · 존 스미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존 뮤어 · 메리웨더 루이스 · 사카자위아 · 키트 카슨 · 존 웨슬리 파월 ·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 로버트 E. 리 · 토머스 페인 · 존 브라운 · 프레드릭 더글러스 · 수전 B. 앤서니 · W. E. B. 듀보이스 · 테쿰세 · 타탕카 이요탕카 ·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 말콤 엑스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 토머스 제퍼슨 · 율리시스 S. 그랜트 · 우드로 윌슨 · 에이브러햄 링컨 · 제임스 매디슨 · 앤드루 잭슨 · 시어도어 루스벨트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W. 부시
첫 여성들 포카혼타스 · 엘리너 루스벨트 · 힐러리 클린턴 · 마사 워싱턴 · 오프라 윈프리 · 헬렌 켈러 · 소저너 트루스 · 제인 애덤스 · 이디스 워튼 · 베티 데이비스 · 세라 페일린
범법자들 베네딕트 아놀드 · 제시 제임스 · 존 윌크스 부스 · 알 카포네 · 빌리 더 키드 · 윌리엄 M. 트위드 · 찰스 맨슨 · 와일드 빌 히콕 · 리 하비 오즈월드 · 러키 루치아노 · 존 딜린저
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앤디 워홀 ·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 잭슨 폴록 · 존 제임스 오듀본 · 조지아 오키프 · 토머스 에이킨스 · 토머스 내스트 ·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 앤설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 윌리엄 펜 · 브리검 영 · 로저 윌리엄스 · 앤 허치슨 · 조너선 에드워즈 · 라파예트 로널드 허버드 · 엘런 화이트 · 코튼 매더 · 매리 베이커 에디 · 빌리 그레이엄
팝 아이콘들 마크 트웨인 · 엘비스 프레슬리 · 마돈나 · 밥 딜런 · 마이클 잭슨 · 찰리 채플린 · 지미 헨드릭스 · 마릴린 먼로 · 프랭크 시나트라 · 루이 암스트롱 · 메리 픽포드
제국 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 헨리 포드 · 존 D. 록펠러 · J. P. 모건 · 월트 디즈니 · 토머스 에디슨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 하워드 휴즈 · 빌 게이츠 ·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 스티브 잡스
운동선수들 베이브 루스 · 무하마드 알리 · 재키 로빈슨 · 제임스 네이스미스 · 아놀드 슈워제네거 · 타이 콥 · 마이클 조던 · 헐크 호건 · 짐 도프 · 세크리테리엇 · 빌리 진 킹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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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0 -15px 0"
※ 2005년 AOL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가장 위대한 미국인’ 명단이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로널드 레이건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6위 7위 8위 9위 10위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엘비스 프레슬리 오프라 윈프리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빌리 그레이엄 토머스 제퍼슨 월트 디즈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토머스 에디슨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존 F. 케네디 밥 호프 빌 게이츠 엘리너 루스벨트 랜스 암스트롱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무하마드 알리 로자 파크스 라이트 형제 헨리 포드 닐 암스트롱
영문 위키 참고.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tablebordercolor=#e90606> 파일:타임지 로고 화이트.svg 올해의 인물 ( 1980년대)
Time Person of the Year 1980's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nopad>파일:attachment/time_1980.jpg 파일:attachment/time_1981.jpg 파일:attachment/time_1982.jpg 파일:attachment/time_1983.jpg 파일:time-person-of-the-year-84.jpg
<rowcolor=#fff>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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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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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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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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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time_1985.jpg 파일:external/img.timeinc.net/1101870105_400.jpg 파일:attachment/time_1987.jpg 파일:attachment/time_1988.jpg 파일:attachment/time_1989.jpg
<rowcolor=#fff> 1985년
{{{#!wiki style="letter-spacing: -1.0px; font-size: 0.9em;"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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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4a1a1><colcolor=#fff,#000> 이름 로널드 레이건
RONALD REAGAN
분야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텔레비전 심볼.jpg 텔레비전
입성날짜 1960년 2월 8일
위치 6374 Hollywood Blvd. }}}}}}}}}


미합중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Ronald Reagan
파일:Official_Portrait_of_President_Reagan_1981.jpg
<colbgcolor=#0d164a><colcolor=#ffc224> 본명 로널드 윌슨 레이건
Ronald Wilson Reagan
출생 1911년 2월 6일
일리노이주 화이트사이드 카운티 탬피코 그레이엄 빌딩
사망 2004년 6월 5일 (향년 93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벨에어 세인트 클라우드 로드 668[1]
묘소 캘리포니아주 벤투라 카운티 시미밸리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재임기간 제40대 대통령
1981년 1월 20일 ~ 1989년 1월 20일
서명
파일:레이건 대통령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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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164a><colcolor=#ffc224> 부모 아버지 잭 레이건[2]
어머니 넬리 윌슨 레이건[3]
배우자 제인 와이먼 (이혼)
낸시 레이건[4] (재혼)
자녀 장녀 모린 레이건[5]
장남 마이클 레이건[6]
차녀 크리스틴 레이건[7]
삼녀 패티 레이건[8]
차남 론 레이건[9]
학력 딕슨 고등학교 (졸업)
유레카 대학교 ( 경제학· 사회학 / B.A.)
복무 미합중국 육군 항공대
미합중국 공군
최종 계급 대위 (미합중국 육군 항공대)
예비역 소령 (미합중국 공군)
주요 참전 제2차 세계 대전[10]
종교 개신교 ( PCUSA)[11]
신체 185cm / O형
최종 당적

문장 파일:Coat_of_Arms_of_Ronald_Reagan.png }}}}}}}}}
파일:48.t56dee88e.m1200.tif.pv.xOFZmeH16lVIJ3a6s.jpg
백악관 공식 초상화

1. 개요2. 약력3. 생애4. 평가5. 한국과의 관계6. 기타
6.1. 일화6.2. 마거릿 대처와의 비교
7. 연설과 어록8. 소속 정당9. 선거 이력10. 대중매체에서11. 각종 타이틀12.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제40대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12]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로널드 레이건의 대선 캠페인 슬로건.[13][14]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당시 역대 최고령의 나이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이자[15] 미국 대통령 선거 사상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다음으로 가장 큰 선거인단 수로 이긴 대통령이었다.[16] 뛰어난 언변을 앞세워 국민들과의 소통을 중시하여 위대한 소통가( the Great Communicator)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17] 미국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통령으로, 그의 임기 이후 공화당 뿐 아니라 민주당을 포함한[18] 미국 정치판 전체가 (특히 경제적인 면에 있어) 보수로 기울었다.

영국 마거릿 대처와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건축한 대표적인 지도자로 손꼽힌다. 또한 미국 보수층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신적 지주에 근접한, 80년대 이후 현대 미국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존재로 평가되며, 이에 21세기 현재의 미국 공화당은 레이건 행정부를 계승하는 정당임을 자처하고는 한다.[19] 미국의 보수층에게는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1970년대 불황을 극복시켰으며 미국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대통령이라고 고평가받지만, 진보층에게는 지나친 감세 정책[20]과 군비 증강으로 막대한 적자를 만들고 소수자 및 빈곤층 인권을 퇴보시켰다고 비판받는 등 진영에 따라 다양한 평가를 받는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2. 약력

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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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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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되면서 구성된 행정부다.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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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과의 관계

전두환 박정희의 핵무장 프로그램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면서 레이건의 대통령 취임 후 두번째로 백악관을 방문한 외국 정상이 되었고, 이후로도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한 바 있다. 레이건 역시 1983년에 미국 대통령으로서 방한을 하는 등[21] 남북대치상태 때문에 신경을 쓴 편이다. 레이건 정부 초기 정책이 독재국가더라도 일단 반소련 진영이면 독재를 어느정도 인정해준다 주의였기 때문. 하지만 고르바초프와 회담을 하고 화해 국면으로 접어든 이후에는 변화가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도 한국의 보수 계열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대통령[22]이며, 민주당 계열 지지자들도 그의 훈훈하고 좋은 이미지와[23] 안보, 공산권 정책을 나름 높게 평가하며 비록 공화당 인물일지라도 인정한다는 여론이 많다.[24]
흔히 반공을 위해서라면 뭐든 봐준다는 강경보수 인식과는 달리 레이건이 전두환의 뒤를 무조건 봐준 것은 아니다. 1987년 때에는 전두환 정권에게 압박을 가해 군대가 투입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하면서(레이건 친서), 유혈사태가 일어나는 걸 방지하여 한국이 민주화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2016년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보면, 전두환 측에서 제5공화국 헌법에 대한 공개 지지를 표명해달라고 했지만 내정간섭을 우려해 거절했다. #

그후 6월 민주 항쟁에서 미국은 6.29 선언을 종용하고, 직선제 실시 후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을 지지하기도 했다.[25] 직선제가 16년만에 처음으로 치러진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이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논평을 내서 한국 내의 반미세력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KBS MBC 다만 대놓고 전두환 지지급의 논란은 없어서 현재로서는 심각하게 반미단체의 공격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당시 카터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신군부에 의해 수감되고 사형판결을 받은 김대중을 구명하기 위해 외교채널을 통해 노력했으며 신군부를 승인하고 전두환을 백악관에 초청했던 것은 김대중의 사면과 미국망명이라는 반대급부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

그런데 한국인 최초의 미 국무성 통역가 통 김(Tong Kim, 한국명 김동현)의 증언에 따르면 퇴임 이후 알츠하이머 때문에 서서히 기억력이 떨어지고 있었던 레이건은 전두환과 만나는 4번째 회담임에도 불구하고 회담을 30분 남겨둔 브리핑 자리에서 전두환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참모들이 레이건에게 전두환을 "서울에 방문했을 때 (서울에 있는) 학생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말하던 사람"이라 설명했다. 레이건은 그때야 비로소 "아, ' 학생들은 죄다 공산당(빨갱이)'이라고 했던 그 친구!"라며 기억해냈다.[26]

6. 기타

파일:external/reaganlibrary.archives.gov/C315-2.jpg 파일:external/8263b7d7116a53ce794936947b65869d8c2ea02c2912899ec46db1e28609647e.jpg

6.1. 일화

그의 일화들을 보면 그는 평소 엄청난 입담과 유머 센스를 자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유머가 미국인들에게 크게 다가와 현재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으로 꼽히게 된 큰 근거가 되었다.
* 해당 총격사건이 있었던 약 2달 뒤 베를린에서 연설을 할 때 커다란 풍선이 터지는 일이 있었다. 마치 총소리처럼 들리는 해당 풍선 소리가 제법 커서 좌중의 이목이 집중되었으나 레이건은 움찔하지조차 않았고 잠시 뒤 시크하게 "빗나갔군요.(Missed me.)"라고 말한 뒤 연설을 이어갔다. 당연히 좌중은 폭소하며 환호갈채.

6.2. 마거릿 대처와의 비교

파일:external/resources0.news.com.au/614988-ronald-reagan-with-margaret-thatcher-in-1982.jpg

신자유주의의 서막을 여는 지도자로서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서로 많이 비교된다.

비슷한 시기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호감도와 평가가 지역, 계층, 성향에 따라 너무 극명하고 극단적으로 갈리는 데 비하면, 레이건은 물론 정치인으로서의 평가는 갈리긴 하지만 '개인'으로서의 호감도와 인기는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다. 워낙 대외적으로 원숙하고 위트있는 이미지를 구축했기에,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정치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레이건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호감을 보이는 레이건 민주당원이라 불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영국은 상원 선거를 따로 치르지 않고, 하원의 권한이 막강하다 보니 마거릿 대처가 별다른 견제를 받지 않고 업무를 수행했던 데 반해, 당시 레이건 정권은 상원은 공화당이 장악했긴 했지만[40] 하원은 민주당이 우세였기에[41] 정책 수행에 견제를 받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처보다는 온건했다. 실제로 레이건은 당시 민주당 출신 팁 오닐 하원의장과 수시로 전화 통화 및 대화를 하였고 야당인 민주당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대화하는 자세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재치있는 언변과 훌륭한 연설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정책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능숙한 대화와 소통의 자세를 보였다. 또한 챌린저호 폭발사고 당시에 당일에 사고로 충격을 받은 미국 국민들에게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감동적인 명연설을 하여 큰 지지를 받기도 했다.

또한 한국 입장에서는 레이건은 6월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에 압력을 행사하여 군사력 투입을 막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측면이 매우 크다. 이 점에서 오히려 인권 외교를 내세우면서도 5.18 민주화운동에서 신군부를 억제하지 못해 참극을 초래했던 지미 카터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아무튼 레이건의 평가가 보다 긍정적인 것은 전임자인 지미 카터가 자신의 사상에 기초한 독설을 미국 국민들에게 퍼부어서 질리게 만들었던 것도 있고 역시 카터가 임명한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유임시켜 고금리정책을 집행해서 실업률이 초기에 상승하긴 했지만, 부실기업들의 구조조정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국가경제의 경쟁력을 높였기 때문이었다.

7. 연설과 어록

배우 출신답게 재치있는 언변과 깔끔하고 위트있는 어투를 구사했고, 이런 어휘력으로 자신의 인간미를 살리면서 인기 비결 중 하나로 삼았다.[42]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 토요일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생각을 밝힌 라디오 국정연설을[43] 생방송으로 진행해왔으며 특히 취임 후 첫해 무려 7회에 달하는 TV 국정연설을 해왔다. 이러한 매스미디어를 적극 앞세워, 자신의 장기인 위트넘치는 화술으로 재선 당시 압도적 지지율로 임기를 연장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44]

대선 당시 TV 토론의 수혜를 입었다는 평가가 있다. 당시 레이건은 카터의 공격에 "또 시작이군요." 라는 식으로 여유있게 웃으며 받아쳤고, 이러한 자신있어 보이는 레이건과 뭔가 짜증나 보이는 카터의 모습이 대조적인 이미지로 TV 시청자들에게 어필하여 결과적으로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또한 TV 연설에서 카터는 "지금 미국의 문제는 국민 너희들이 잘못해서 그렇다." 라는 '불쾌한 연설(malaise speech)'를 한 데 비해, 레이건은 국민들을 꾸짖는 대신 '미국을 다시 발전시키겠다.' 라며 자신이 희망의 등대가 될 것을 어필해서 큰 효과를 봤다. 사실 TV에 멋있게 나오는 것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배우이니... 물론 이 당시 이미 레이건이 지지율에서 꾸준히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TV가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는 평가도 많다. 카터의 인기가 워낙 바닥을 기기도 했고.

1980년 대선 유세 중 그를 반대하는 좌파 시위대들이 야유를 부리는 통에 연설 진행을 못하자 일갈하는 장면. "Oh, Shut up."

병원으로 이송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사건 발생 몇 주 후 일기에 "총을 맞는 것은 아프다."며 "나를 쏜 젊은이에 대해 증오심을 느꼈으나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고 썼다. 그는 또 "나는 낸시가 그곳에 있는지 찾으려고 눈을 떴다. 그녀가 그곳에 없는 날을 맞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며 낸시 여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드러냈다.
If history teaches anything it teaches that simple-minded appeasement or wishful thinking about our adversaries is folly. It means the betrayal of our past. the squandering of our freedom.
“만일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순진한 유화정책이나 적에게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는 행위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가 주는 가르침에 대한 배신이며 우리의 소중한 자유를 부수는 행위다.”
- 1983년 3월 8일 '악의 제국' 연설
"A nuclear war cannot be won and must never be fought."
핵전쟁은 승리가 불가능하며, 벌어져서도 안된다.
1984년 1월의 의회 연두교서 중에서. 불과 1년 전의 '악의 제국' 연설에서 나타났던 강경함과는 대조적이다.
"I now begin the journey that will lead me into the sunset of my life. I know that for America there will always be a bright dawn ahead."
저는 이제 인생의 황혼을 향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저는 미국이 언제나 빛나는 아침을 맞을 것이라 믿습니다.
1994년 자신이 알츠하이머로 투병중인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편지. 그가 사실상 마지막으로 남긴 공식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소통가'로서 그의 명성을 보여준 사례들 중 하나.
Trust, but verify
상대를 믿되, 반드시 검증하라
원래는 소련의 속담이었는데 레이건이 가져와서 잘 써먹었다. 소련과의 군축협상을 임하는 자세를 설명하는데에 썼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When you can't make them see the light, make them feel the heat.
만약 그들이 빛을 보지 못한다면 그 열기를 느끼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감세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한 말. 의원들이 감세정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국민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압력을 가하라는 뜻이다. 후에는 낙수효과를 뜻하는 상징적인 말로도 받아들여졌다.
"A recession is when your neighbor loses his job. A depression is when you lose yours. And recovery is when Jimmy Carter loses his.'"
"불경기란 당신의 이웃이 실직할 때를 말합니다. 불황이란 당신이 실직할 때를 말합니다. 경기회복이란 지미 카터가 실직할 때를 말합니다."
80년 선거전 당시 어록으로 카터의 경우 재선 도전이었다. 원래는 33대 대통령인 해리 S. 트루먼이 한 말로 그 뒤에 카터를 까는 표현을 추가한 것.
"Are you better off today than you were four years ago?"
"여러분의 삶은 4년 전보다 나아졌습니까?"
"How do you tell a Communist? Well, it’s someone who reads Marx and Lenin. And how do you tell an anti-Communist? It’s someone who understands Marx and Lenin."
"당신은 공산주의자에 대해 설명할 때 어떻게 말합니까? 음, 그건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는 사람. 그리고 반공주의자에 대해 설명할 때는 어떻게 말합니까? 그건 마르크스와 레닌을 이해하는 사람."
보통 의역된 표현인 "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 레닌을 읽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반공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이해한 사람입니다." 라고 흔히 알려져 있다.
“Freedom is never more than one generation away from extinction. We didn't pass it to our children in the bloodstream. It must be fought for, protected, and handed on for them to do the same, or one day we will spend our sunset years telling our children and our children's children what it was once like in the United States where men were free."
"자유가 말살되는 데에는 단 한 세대도 걸리지 않습니다. 자유는 우리 후손들에게 혈통을 통해서 유전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는 쟁취해야하며 지켜야 되고 후손들도 그런 자유를 누리라고 물려주는 것입니다."
"I have left orders to be awakened at any time during national emergency, even if I'm in a cabinet meeting."
"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날 깨워도 좋습니다. 국무회의 중이라도 얼른 나를 깨워주세요."
레이건은 국무회의 중에 자주 졸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본인이 자학개그를 한 것.[45]
"Economists are people who wonder if what works in reality can also work in theory."
"경제학자란 현실에서 발생하는 뭔가를 보고 그게 이론적으로 성립할지 여부를 궁금해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보청기를 착용한다는 건 비밀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에 갑자기 작동이 잘 안 됐습니다. 알고 보니 KGB 제 보청기에 도청장치를 했더라고요." 귀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소련과 미국 헌법은 모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미국은 표현 이후의 자유도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 미국인 소련인이 자기 조국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인이 "우리 나라에서는 백악관으로 쳐들어가서 대통령의 면전에서 책상을 두드리며 '대통령 각하, 난 당신이 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자 소련인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크렘린으로 쳐들어가서 '서기장 동무, 난 레이건 대통령이 자기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라고 할 수 있다고요."
고르바초프에게 이 유머를 들려줬는데 그도 웃었다고 한다. 영상
Future doesn't belong to the faint-hearted. It belongs to the brave.
"미래는 나약한 자들이 아니라 용감한 자들이 만들어냅니다."
1986년 1월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참사를 추모하는 대국민 연설 중에서.
Government is like a big baby - an alimentary canal with a big appetite at one end and no responsibility at the other.
"정부란 커다란 아기와 같아서 식욕은 왕성하지만 배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못합니다."

7.1. 악의 제국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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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이 장벽을 허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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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Gorbachev, open this gate. Mr. Gorbachev, Tear down this wall!"
고르바초프 씨, 이 을 여십시오. 고르바초프 씨, 이 장벽을 허무십시오!
1987년 6월, 베를린에서 한 유명한 연설. 이 연설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물론 동유럽 공산권의 ' 철의 장막' 붕괴를 상징하는 말로 잘 알려져 있다. [46]

8.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 - 1962 입당


1962 - 2004 정계 입문
정계 은퇴
사망

9. 선거 이력

<rowcolor=#ffc224>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 당선 여부 비고
1966 미국 주지사 선거 캘리포니아

3,742,913 (57.55%) 당선 (1위) 초선
1970 미국 주지사 선거 3,439,664 (52.83%) 재선
1980 미국 대통령 선거 미합중국 43,903,230 (50.75%, 489명) 초선
1984 미국 대통령 선거 54,455,472 (58.77%, 525명) 재선

10. 대중매체에서

백 투 더 퓨처 시리즈 1편에서 1950년대로 간 마티가 브라운 박사를 만났을 때, 박사는 마티에게 네가 사는 시대의 대통령은 누구냐고 묻는다. 마티가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자 "로널드 레이건? 그 영화배우? 그러면 부통령은 누구야, 제리 루이스? 그러면 영부인은 제인 와이먼이겠군!"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에 마티가 카메라로 녹화된 방송을 티비로 보여주자 브라운 박사는 "왜 대통령이 영화배우여야 됐는지 알겠구나. 텔레비전에서 호감으로 보여야 할테니 말이다."라고 감탄한다. 당시 영화 제작진들은 '괜히 이 장면을 넣었다가 큰 일 나는 거 아닌가'하고 벌벌 떨었지만, 정작 레이건 대통령은 이 대사가 나오는 부분을 계속 돌려봤을 정도로 아주 좋아했었다고 한다. 브라운 박사가 무명배우였던 레이건의 이름을 외울 수 있었던 것은 레이건이 출연한 영화 몬타나의 여걸이 힐 밸리에서 막 상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레이건은 1편 개봉 후 이듬해인 1986년 2월 4일 연두교서에서 백 투더 퓨처의 대사 하나를 인용하기도 했다.( 해당 부분, 연설문 전문) 바로 "Never has there been a more exciting time to be alive, a time of rousing wonder and heroic achievement. As they said in the film 'Back to the Future,' 'Where we're going, we don't need roads."이다.



레이건의 태도를 비꼬는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스킷 '레이건: 흑막'이 있다. 대통령이 겉으로는 헐헐거리는 인자한 나이든 인물로 연기하지만 사실은 뒤에서 모든 스캔들을 배후조종하는 흑막이라는 내용으로 당시에 제법 큰 반향을 일으켰다. 레이건이 "자네가 물러나줘야겠네"라며 희생양으로 삼는 대상은 도널드 리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이란-콘트라 사건 당시 레이건 측근들로부터 '당신이 백악관 관리를 못한 총체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나서 대통령을 지키라'는 압박을 받고 사임한 일을 비꼬는 대목이다. 사임 직후 폭로에 가까운 회고록을 출판하는데, 이 책에서 낸시 레이건이 점술가에게 국정을 자문했다는 것을 처음 공개하였고, 자신은 영부인과 그 측근들이 벌이는 농단을 막으려고 애썼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이 사람 성은 Regan으로 레이건과 비슷하다.

SCP 재단에선 취급이 좋질 않다. 암살 미수 사건 등 그의 정치 여정을 소재로 한 만화시리즈( SCP-095)가 SCP로 등록되어있지 않나, 심지어 자기 연설을 완전히 고인드립 수준으로 능욕한 고어 괴영상( SCP-1981)이 나왔었다.

카이저라이히: 대전의 유산에서는 무명 배우가 아니라 그럭저럭 유명한 배우로 성공하지만 미국 내전 통에 의문사당한다.

데이터 이스트사에서 개발한 드래곤닌자라는 격투게임에서는 악의 닌자단에 의해 납치당한 레이건 대통령을 구출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막상 구출된 레이건 대통령은 포상이랍시고 겨우 햄버거 1개만 준다.

스티븐 킹 11/22/63( 11.22.63)에서는 케네디 암살 미수 사건[47] 이후 망해가는 미국에서 휴버트 험프리 다음으로 취임한다. 취임시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이 더 큰 스케일로 벌어지고 이란에 군사적 개입을 하는 바람에[48] 인질 전원이 참수되는 것으로 마무리. 다만 호메이니 치하 이란은 사형은 자주 해도 참수는 안했으니 실제로 인질들이 처형됐다면 참수보단 자기들 전매특허인 기중기 교수형이나 총살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에서 알란 릭맨이 레이건으로 나오는데 상당히 인간적인 미를 선보인다. 주인공 세실 게인즈 부부를 만찬에 초대하기도 하였고 백악관 내 흑인과 백인 직원의 임금, 승진 기회를 평등하게 했다. 세실이 은퇴하자 역대 대통령을 대표해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세실이 은퇴 후 주미 남아공 대사관에서의 항의 시위[49]에 참가한 것을 보면 그가 남아공의 경제제재를 반대한 것이 주인공의 신념을 흔든 계기 중 하나로 보인다. 비록 미국 내의 인종차별은 아니지만 작중에서 인종 차별에 반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유일한 대통령으로 아이젠하워 이래 세실이 갖고 있던 '대통령이 우리를 위해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흔든 것으로 보인다.[50]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선 영화판과 소설판 모두 등장한다. 영화판에선 레이건이 백악관 정원에서 일하는 인부에게 벽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말했는데, 하필 주인공이 그걸 녹음해버리고, 주인공에게 녹음된 걸 전해받고 들은 고르바초프가 베를린 장벽에 대한 말인줄 알고 "레이건 놈이 벽을 무너뜨리지 말라면 우리는 무너뜨려야지!"라며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라고 지시해버린다.

테디 루스벨트 전기로 유명한 에드 모리스의 레이건 전기가 꽤 유명하다. 가상의 사람들을 통한 레이건의 이미지 구현으로 논란이 심했는데 의외로 객관적이라는게 중평이다.

마블 코믹스 데드풀에서 악령으로 부활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 한명으로 나오며, 데드풀이 배를 가르자 젤리빈이 쏟아져 나왔다.

DC 코믹스 배트맨 가족의 죽음에서 조커가 레이건 때문에 돈이 없다는 듯이 그를 깟다.

앨런 무어의 그래픽노블 왓치맨에도 역시 레이건이 배우 출신 대통령이었던 것을 개그소재로 삼는 장면이 나온다. 마지막 부분에서 로어셰크의 메모장이 배달되기 전, 삼류 일간지 신문사 편집자들이 기사에 넣을 소재가 떨어졌다고 고민하다 한 사람이 로버트 레드포드가 대선 후보로 나올 거라는 얘기를 하자 하는 말, "뭐? 말도 안돼, 누가 카우보이를 백악관에 놓길 원한단 말이야?" 비록 배우는 바뀌었지만 서부 영화 출신 배우라는 점, 공화당원이라는 점[51], 리처드 닉슨 퇴임 이후에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점, 이니셜이 RR인 점 등 누가 봐도 레이건을 패러디했다. 재밌게도 왓치맨 몇십 년 이후를 그린 HBO의 왓치맨에서도 이를 반영해 진짜로 레드포드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집권 중인 것으로 나온다.

2006년에 나온 공포영화 "The tripper" 에서는 80년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복지예산 감축으로 몇몇 정신병원이 돈을 아끼려 몇몇 정신병자들을 퇴원시켰는데 그중엔 싸이코패스 환자도 있었고, 이 환자가 자기가 어떻게 퇴원되었는지를 알게 된 뒤 레이건 대통령을 존경하다 못해 신인 것처럼 찬양하며 아예 레이건 대통령 가면을 쓰고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 희생자 대부분은 히피고 공화당 지지자도 죽인다.

의외로 홍콩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최가박당 3편 막판에 주인공 킹콩 일행에게 임무를 맡기러 홍콩까지 찾아온다.


펑크 록 밴드 라몬즈의 노래 중에 Bonzo goes to Bitburg라는 것이 있다. 이는 1985년 레이건이 독일 비트부르크의 국립묘지를 방문하여 헌화한 "비트부르크 논란"에 관한 곡인데, 문제는 이 국립묘지에 무장친위대 전사자들이 묻혀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한국으로 치면 현역 대통령이 야스쿠니를 방문한 격. 보컬 조이 라몬부터가 유대계 미국인이어서 더욱 분노가 컸다. 정치적인 곡을 거의 발표하지 않은 라몬즈의 유일한 정치적인 곡. 참고로 노래 제목은 레이건 대통령의 1951년 출연작 Bedtime for Bonzo의 후속작 Bonzo goes to collage를 패러디 한 것이다. 이 영화들은 본조라는 침팬지가 인간들과 함께 살면서 겪는 해프닝을 다룬 코메디물인데, 쉽게 말해 라몬즈는 레이건을 원숭이 취급을 했다. 게다가 더 웃긴 지점은 정작 노래 제목의 기원이 된 후속작에는 출연진이 싹 다 교체되는 바람에 레이건이 아예 안 나온다.



2012년, FPS 게임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 인트로에서 그의 연설 장면이 잠시 나온다.[52]



그리고 블랙 옵스 시리즈의 2020년 신작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에서 직접 등장한다. 위 영상 1분 53초부터, 블랙 옵스 1편의 존 F. 케네디처럼 주인공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소련 간첩 페르세우스를 잡는 흑색 작전을 승인한다.[53] 그리고 배드엔딩에서는 페르세우스가 유럽 국가들에 매장되어 있던 핵탄두들을 기폭시키는 것으로 인해 모든 정보들을 지우고 위기를 전두지휘하는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성우는 제프 버그만으로 레이건 성대모사를 아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한국어 더빙판은 원로 성우 온영삼이 연기했다.

나치 독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세계관이 배경인 게임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직접 각본을 쓴 프로파간다 영화에 오디션을 보러 온 젊은 배우로 등장한다.[54] 하지만 히틀러 앞에서 너무 깝쭉거리는 바람에 바로 끔살당한다.... 이 때문인지 레이건의 풀네임이 게임 내에서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데, 캐릭터가 본인을 소개할 때는 이름인 '로널드'만 말하고, 그가 앉는 의자 등받이에 써있는 성씨도 앞글씨는 수건으로 가려진 채 뒤의 'GAN'만 노출된다. 아무튼 여기서는 미국이 나치에게 해방된 후에도 대통령직은 물 건너갔다....

아메리칸 대드에서는 시간여행을 한 주인공 스탠이 마틴 스콜세지에게 대마초를 끊으라고 설득해서 택시 드라이버가 개봉되지 않아 버렸고 그로 인해 존 힝클리 주니어도 주디 포스터를 보지 못해 사랑에 빠지지도, 로널드 레이건을 암살시도 하지 않는 세계관이 형성되어 재선에 실패해버린다. 그 후 미국은 1년 후 소련의 속국이 되어버리고 2000년대까지 소련은 건재하고 미국은 완전히 소련 땅이 되어버려 어쩔 수 없이 스탠이 글록을 레이건에게 갈겨 원상태로 돌아온다. 그러나 브래디와 기타 인원은 총에 맞지 않아 브레디법이 제정되지 않아서 현실과 달리 총을 바로 살 수 있다. 그리고 레이건이 도탄된 22구경 총탄에 한 발만 맞은 것과는 달리 글록의 10mm탄에 3~4발을 직통으로 맞았으니 현실보다 더 중상을 입었을 듯하다.

원더우먼 1984에서는 해당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그의 집권기였던 1984년인 만큼 당연히 등장하였는데, 살찐 레이건 느낌이 강하다. 맥스웰 로드에게 털리는 역할로 나온다.

소련이 먼저 달착륙에 성공한 대체역사물 미드인 포 올 맨카인드(For All Mankind)에서도 등장한다. 여기선 에드워드 케네디 대통령을 위협하는 보수세력의 대선주자로 등장하며, '좋았던 옛 시절로 돌아가자'는 캐치프레이즈로 미국의 중장년층에게 인기를 끈다.[55] 그리고 결국 시즌 2의 배경이 되는 1976년 대선에서 실제 역사보다 4년 일찍 케네디를 꺾고 대통령이 되었으며, 소련과의 군비 경쟁을 더욱 강화하려고 한다. 결국 미-소 간의 긴장이 더욱 심해진 끝에 달 기지에서 미국 우주비행사가 오해로 인해 소련 우주비행사를 사살하고, 그 보복으로 소련 우주비행사들이 미국 달 기지를 습격하여 많은 희생자가 나오자 소련과의 핵전쟁을 결심하지만, 중단하라는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가 우주에서 성사되자 태도를 바꿔 유리 안드로포프 소련 서기장과 긴급 정상회담을 갖고 평화를 회복시킨다.

웨이스트랜드 3에서 레이건의 재림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그 인공지능을 신으로 따르는 '기퍼즈(Gippers)'란 세력이 등장한다. 여사제는 영부인의 이름을 따 낸시라 자칭하며, 거대한 레이건 흉상 로봇은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발사한다. 로봇 코뮌과 갓-피셔란 두 조직의 조직원들을 체포했는데, 갓 피셔는 레이건 교도 사람을 잡아다가 그대로 사지를 잘라버린 후에 연에 매달아놓은 것 때문에 잡혔고, 로봇 코뮌은 단순히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가 붙잡혔다. 그런데 우습게도, 갓-피셔는 히피라면서 살려보내지만 로봇 코뮌은 "코뮌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그의 이상향이자 조상"이라는 말을 하니 공산주의라는 말만 듣곤 광분해 태워죽인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그에게 육체를 주거나 가둘 수 있다. 웨이스트랜드 원작이 나온 시기가 레이건 재임 시절이었던 때이기도 하고 제작진의 미국 정치에 대한 태도가 드러나기도 한다.

2001년작 TV영화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The Day Reagan Was Shot) 에서는 영화 람보 시리즈에서 샘 트라우트먼 대령 역으로 유명한 리처드 크레나가 레이건 대통령을 연기함.

코엔 형제의 영화 파고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판 파고의 시즌 2에서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미네소타 쪽을 방문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배우는 이블 데드로 유명한 브루스 캠벨. 생전에 달변가였던 레이건의 모습을 잘 살린 장면이 드문드문 나온다. 파고의 스토리가 정치적인 면은 크게 다루지 않기 때문에 큰 비중은 없으나, 묘사되는 모습은 레이건 행정부가 밀어붙인 신보수주의의 도래와 함께 도태되는 인간군상들의 모습과 전통적인 아메리칸 드림의 좌절을 다룬 시즌 2의 테마를 한층 강조해 보여준다.

2024년 8월 말에는 거의 사상 처음으로 그의 일생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전기 영화 '레이건'이 개봉할 예정이다. 레이건 역할은 데니스 퀘이드이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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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 악의 제국 연설 · 이 장벽을 허무시오
사건사고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 · 이란-콘트라 사건
선거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 ·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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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 퇴임 이후 레이건 부부가 거주했던 사저이다. 낸시 레이건 여사가 사망하고 제리 페렌치오라는 사업가가 주택을 매입했으며 2020년에 철거되었다. [2] 위키백과 [3] 위키백과 [4] 위키백과 [5] 1941년 출생하여 2001년 사망했다. 동생인 크리스틴과 마찬가지로 레이건과 전 부인 제인 와이먼 사이에서 낳은 자녀이다. [6] 1945년 출생 직후 레이건과 전 부인 제인 와이먼에게 입양됐다. [7] 1947년 출생했으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8] 1952년 출생하여 미국에서 배우 작가로 활동 중이다. [9] 1958년 출생하여 무소속으로 활동하며 MSNBC 기고가 겸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알츠하이머를 앓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알츠하이머 환자의 가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미국의 의료제도를 비판하는 등 알츠하이머에 관심이 많다. [10] 실제 전투에 참여하거나 파병된 적은 없고 주로 국방부 선전 영화를 만드는데 참여했다. 공보정훈장교들의 업무를 맡았으나, 병과는 항공이었다. [11] 본래 어머니를 따라 그리스도의 교회를 다녔으나(모교인 유레카 대학교도 그리스도의 교회 계열 미션스쿨) 성인이 된 후 장로회로 교파를 바꾸었고 연설 도중에도 성경구절을 인용하거나 신앙에 대해 언급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사망할 때까지 아내 낸시 레이건과 함께 PCUSA의 벨 에어 교회에 출석했다. [12] 미국 의사당 서쪽편에서 개최된 첫번째 취임식 [13] 당시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가 악화되어 상당한 피해를 받고 있었는데, 레이건은 이때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악화된 미국 경제를 반대로 선거 운동의 발판으로 삼아 유권자들 사이에 애국심을 불러 일으켰다. [14] 1984년 대선에서는 "It's Morning Again in America"(미국에 다시 아침이)라는 구호를 사용했다. [15] 취임 기준 만 69세 349일, 이 기록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에게 깨졌으며, 트럼프 또한 4년 후 조 바이든에게 깨졌다가 4년 후 다시 갱신하였다. [16] 525명 VS 13명 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이겼다. 루스벨트는 1936년 선거에서 레이건보다 적은 523명을 확보했지만 공화당 후보가 불과 8명을 획득했기 때문에 515명 차로 압승했다. [17] 레이건 대통령에게 붙은 이 별명은, 명료하고 유창한 언변을 활용한 연설을 앞세워 평소에도 기자회견을 꺼리지 않고 자주하고, 국민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의회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대화하려고 했던 자세에 힘 입은 바이기도 하다. # [18] 1980년대 이후 마이클 두카키스, 빌 클린턴, 앨 고어 등 경제적 평등보다 기술 혁신과 온건한 사회정책을 강조하는 보수파가 2010년대까지 미국 민주당 당권을 꽤 오래 잡고 있었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다시 좌경화된다. [19] 다만, 트럼프 행정부 이후 공화당은 보호무역과 불개입 자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등 여러모로 레이건 시절의 공화당에서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리어 RINO라고 폄하되는 공화당 온건파가 레이건을 더 적극적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20] 레이건이 세율을 크게 낮췄기 때문에 세입이 줄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미국 연방정부의 세입은 5170억 달러에서 1조 달러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28%나 증가한 것으로 산출되며, GDP 대비 연방정부 세입 또한 18.9%에서 18%로 미미하게 감소하는 것에 그쳤다. # [21] 특히 방한 한 달 전 발생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인해 취소 혹은 연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으나 예정대로 방문했다. [22] 레이건 시대에 미국이 군비확충을 박차면서 가장 강력한 미군을 만드는데 일조했고 강대강 매치로 고르바초프와 대화를 이끌어냈으며 결과적으로는 소련을 붕괴시킨 공적 때문이다. [23] 소통과 유머감각, 그리고 배우에서 대통령까지 된 인생사 등 [24] 다만 강경 민주화 운동가들 입장에선 한반도 전술핵무기 배치, 농산물 등 수입개방 때문에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25] KBS, MBC 자료 참고. [26] 전두환 역시 레이건처럼 90 넘어서까지 장수했으며, 말년에 치매를 앓다가 사망했다. [27] 전두환의 11대 대통령 시절은 지미 카터의 재임 기간과 겹치며 12대 대통령 임기가 레이건의 재임기간과 겹쳤다. [28] 시카고 컵스 2016년 월드 시리즈 진출 이전까지 마지막으로 나갔던 1945년 월드 시리즈 당시에 레이건은 군인이었다. 고로 살아 가면서 민간인 신분으로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응원팀이 월드 시리즈에 올라가는 모습을 못 보고 죽은 셈이었다. [29] 다만 존 웨인이 살아있던 당시 레이건은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못했다. 존 웨인 사망 후인 198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저 사진에 존 웨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저때는 아직 레이건이 대통령이 아니었다. [30] 지금 대부분 노령으로 사망했다. [31] 이 기록은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깨졌다. 트럼프는 2번 이혼했고, 트럼프가 최고령 기록을 경신했다. 이 최고령 기록은 후임자 조 바이든이 또 다시 경신했다. 그리고 그 다음 대선에서 또 다시 트럼프가 재임하면서 도널드 트럼프에 의해 다시 한번 더 경신되게 된다. [32] 이 사람은 평생 공화당 지지자였다. 오히려 이 당시의 레이건은 민주당 지지자였었다. [33] 장래가 불투명하게 보였다는 말을 재치를 담아 전한 것. 매우 예리한 시선이 담긴 말일 수도 있는 게, 레이건은 용모와 훤칠한 체격을 다 갖춘 덕분에 인지도는 갖췄으되 배우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47년 미국노동총연맹 산하 영화배우협회 회장에 선출된 후부터 정치적 역량을 길러나가며 본격 성공가도를 밟기 시작한 것. 다만 배우협회장에 선출된 시기가 제인과 사이가 멀어지던 시점이었고, 낸시와 재혼 후 정치에 입문해 상전벽해 수준으로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낸시가 옆에 있어준 덕분에 로널드가 저렇게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호사가들도 있었다고 한다. [34] 이 당시 중국 방문을 두고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이 당시 중국의 화장실 대다수가 재래식에 화장실에 칸막이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고, 주요 관광지와 백화점들의 화장실도 위생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는 경우가 많아 위생적인 화장실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당연히 중국 당국에서도 문제점을 인식하고는 있던 만큼 나름대로 화장실에 신경을 썼고, 그래서 레이건과 영부인인 낸시는 위생적인 귀빈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만리장성 바디링 화장실에 다른 그 관리자가 어지간히 골통이라서 낸시 여사가 화장실 이용을 다 마치자 바로 문을 잠궜고, 결국 다른 고위급 인사들은 볼일을 볼 수 없게 되었는데 그 관리자가 레이건과 영부인만 고위급 인사고 주변인물도 고위급 인사라는 생각을 안하면서 고집을 부렸다. 결국 다른 고위급 인사들은 재래식 화장실에서 쪼그려 앉으며 경호원과 같이 볼일을 봐야했고, 이러한 일로 곤혹을 치른 후에 경호원들이 방문경로에 위생적인 화장실을 발견할 때마다 점거(?)해서 현지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 바람에 중국 국무원과 마찰을 빚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35] 앞서 레이건은 1차 토론에서 평소와 다르게 심하게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고, 사회자도 이를 염두에 두고서 나이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불리한 상황을 이 재치 있는 답변으로 단번에 역전시켰다. [36] 먼데일은 이 순간 자신이 선거에서 졌다는 걸 예감하고 토론 끝나고 자기 부인에게 가서 "여보, 아무래도 선거 끝난거 같아"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37]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존 웨인은 할리우드 내 유명 보수주의자이다. 레이건의 드립 실력이 어디까지 갔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예시. [38] 드립에 수석 의사가 "지금 이 순간은 저희들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 대통령님."이라고 받아쳐줬다고 한다. [39] 'Yes'의 의역. 영어에서 부정의문문의 사용이 한국어와 정 반대라 '예'라고 직역할 수 없다. 자세한 사항은 no문서 참조. [40] 이후 1986년 중간 선거에서는 뒤집혔다. [41] 미국 하원은 1954년부터 1994년까지 민주당이 40년간 계속 다수당을 지켜 왔다. 1900년대 중반부터 민주당이 점점 진보화되면서 공화당 텃밭이던 북부로 진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반대로 보수화되면서 민주당 텃밭이었던 남부로 진출하기 시작했지만, 이 과정이 민주당보다는 조금 늦었기 때문에 서로의 텃밭이 뒤바뀌는 이 기간 동안은 민주당이 새로운 텃밭이 되어 가던 북부+기존에 남아있던 남부 기반(일명 딕시크랫)을 바탕 삼아 하원만큼은 굳건히 지켜 왔다. [42] 비슷하게 조지 W. 부시는 레이건처럼 완벽하지 않으면서도 친근하고 털털한 이미지를 내세웠다. 그래선지 아버지 조지 H. W. 부시는 재임기간 업적이 어느정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임에 그친데다가 인기도 그저 그런 반면 아들인 조지 W. 부시는 업적 하나 꼽기가 난감한데도 사람은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재선에 성공했다. [43]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루즈벨트의 노변정담식 라디오 연설에서 그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44] 대통령 임기 이전인 1976년 뉴욕 타임스의 러셀 베이커는 그에게 위대한 소통가라는 수식어를 붙인 바 있다. [45] 치매의 전조 증상 중 하나가 낮에 꾸벅꾸벅 조는 것이고 이를 근거로 레이건이 대통령 재직 중에도 치매를 이미 앓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제법 있으나 레이건의 주치의는 부정하였다. [46] 원래는 참모들이 존 F. 케네디의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처럼 독일어로 번역해서 원고를 준비했다. 그런데 레이건이 "난 미국 대통령인데 왜 독일어를 해야 하냐"고 해서 다시 영어로 되돌렸다는 후문. 그래도 당시 연설 영상을 보면, 베를린 시민들은 잘만 알아듣고 환호를 보냈다. 거기에 독일어가 들어간 케네디의 연설 후에도 베를린 장벽은 20년이 넘게 건재했지만, 영어만 쓴 레이건의 연설로부터 불과 2년 후 베를린 장벽이 정말 무너졌다. [47] 그러니까 리 하비 오즈월드 댈러스에서 저격했던 사건을 주인공이 타임슬립해서 막았던 사건. [48] 다만 이때의 레이건을 변명하자면 군 병력 증원없이 돈만 퍼부었던 베트남이 케네디 2기 정권 시절에 망했고 하노이에 핵을 투하한 터라 핵을 동원한 위협은 소용이 없어서 군사개입을 했었다. [49] 흑인 인권 운동을 벌이던 아들이 주동했다. [50] 물론 더 부정적으로 나온 건 역시 닉슨이다. 인종차별도 입장을 드러내지 않은 것 뿐이고, 레이건이 단행한 흑인 백인 직원의 동일 대우는 닉슨이 60년 대선에 출마하며 세실과 동료들에게 약속한 것이지만 자기가 대통령이 되고는 실행 안 했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다. 다만 그 닉슨도 완전히 악당이 아닌 인간적인 시선을 유지하여 묘사하였다. [51] 레드포드는 2012년 버락 오바마 지지 선언을 하며 민주당 쪽으로 전향했다. [52] 이 게임의 메인 악역 라울 메넨데즈가 미국을 증오하게 된 원인이 이란-콘트라 사건 때문이다. 레이건이 이 사건의 장본인이기 때문에 연설 장면이 삽입된 듯 하다. [53] 그리고 깨알같이 젤리빈 애호가답게 젤리빈 통도 등장했다. [54] 나치가 미국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55] 이걸 보고 케네디 대통령은 "대체 언제가 좋았다는 거냐? 대공황? 베트남 전쟁? 짐 크로우?"라면서 비꼰다. [56] 취임 기준 만 69세 349일 [57] 역사상 최다 선거인단 수 차이를 기록한 선거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당선된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