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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9:44:45

1990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연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세기
18세기 19세기 20세기 21세기 22세기
밀레니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1990년
대한민국 72년
단기 4323년
불기 2534년
간지 기사년 ~ 경오
주체 79년
대만 민국 79년
일본 헤이세이 2년
( 황기 2650년)
이슬람력 1410년 ~ 1411년
히브리력 5750년 ~ 5751년
페르시아력 1368년 ~ 1369년
에티오피아력 1982년 ~ 1983년
인류세력 11990년
로마 숫자 MCMXC

1. 개요2. 설명3. 주요 화제
3.1. 범죄와의 전쟁 선포3.2. 안면도 핵폐기장 유치 파동3.3. 한소 수교, 45년만의 앙금을 털어내며3.4. 동서독 통일
3.4.1. 한국이 보는 독일 통일
4. 기후5. 사건
5.1. 실제
5.1.1. 1월5.1.2. 2월5.1.3. 3월5.1.4. 4월5.1.5. 5월5.1.6. 6월5.1.7. 7월5.1.8. 8월5.1.9. 9월5.1.10. 10월5.1.11. 11월5.1.12. 12월
5.2. 가상
6. 탄생7. 사망
7.1. 실존 인물
7.1.1. 1월7.1.2. 2월7.1.3. 3월7.1.4. 4월7.1.5. 5월7.1.6. 6월7.1.7. 7월7.1.8. 8월7.1.9. 9월7.1.10. 10월7.1.11. 11월7.1.12. 12월7.1.13. 일자 불명
7.2. 실존 동물7.3. 가상 인물
8. 데뷔
8.1. 가수
8.1.1. 한국8.1.2. 해외
8.2. 배우8.3. 성우8.4. 예능8.5. 만화계8.6. 스포츠
8.6.1. 야구8.6.2. 축구8.6.3. 농구8.6.4. 배구8.6.5. 씨름
9. 은퇴
9.1. 스포츠
10. 히트작
10.1. 드라마
10.1.1. 국산10.1.2. 더빙
10.2. 영화10.3. 가요10.4. 개그 코너10.5. 애니메이션10.6. 베스트셀러10.7. 비디오 게임
11. 출시 상품
11.1. 자동차11.2. 식음료11.3. 생활용품11.4. 화장품
12. 유행어13. 최초
13.1. 방송 프로그램
14.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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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은 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자 1990년대의 첫 번째 해다.

2. 설명


이 해의 이슈는 독일통일이라는 사건 하나로 정리할 수 있다. 동시에 소련의 위성국이던 동유럽 국가들이 공산주의의 색채를 벗고 신 정부 출범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로 대거 전향하게 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50여년 간 지루하게 계속되던 냉전이 사실상[1] 이 해를 마지막으로 종료[2]되었다. 동시에 냉전시대를 대표하는 동독과 서독, 소련이 모두 존재했던 마지막 해이다. 그러나 냉전 동안 이념갈등으로 묻혀 있던 해묵은 과제인 민족주의가 목청을 높이면서 걸프 전쟁,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대변되는 또 다른 '피바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일본인 관광객이 촬영한 1990년의 서울.[3][4] ( 영상2, 영상3) KBS1 <전국일주> 1990년 12월 31일 방영분(서울 종로 편)

그리고, 일본에서는 거품경제를 끝장내기 위해 4월대출 총량규제를 실시했다. 문제는 이게 버블의 절정에서 시행되는 바람에 잃어버린 10년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주가도 폭락해서 1989년에 4만 포인트에 육박했던 닛케이 지수는 2만엔대로 추락하며 자산시장의 거품이 단 1년만에 붕괴되었다. 아직은 고용시장에 칼바람이 본격적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1992년부터 일본 고용시장에 본격적인 칼바람이 들었기 때문에 단초가 되는 사건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비슷한 시기 한국과 대만에서도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정치권에선 민정당이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함께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켜 여대야소 체제를 만들었고, 민자당 독주체제 하에 전까지 활발하던 노동운동, 통일운동, 언론민주화 운동에 대해 공권력을 투입해 무차별적으로 짓밟아 '공안통치' 시대를 형성했다. 대표적인 예로 현대중공업 골리앗 농성 진압, KBS 사태 당시 백골단 투입 등이 있다.

하반기엔 민자당 내에서 내각제 개헌 문제로 3개 계파가 싸웠다. 경제/사회 분야에선 '경제활성화종합대책(4.4 조치)'을 발표해 금융실명제를 유보하고 제2금융권 실세금리를 1% 인하시키자, 이에 따라 물가를 비롯해 집세, 전세 등이 폭풍상승해 서민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었다.

위와 같은 어지러운 상황 속에 공식 공휴일이 가장 많았던 해였다. 우선 양력설이 하루에서 2일 연휴가 되었고( 1999년부터 도로 하루로 축소), 1989년부터 3일 연휴가 된 설날 추석이 있었다. 그 외에 1991년 공휴일에서 폐지되고 기념일이 된 국군의 날 한글날은 아직 연휴로 존속했다. 개천절이 추석과 겹치고 월요일이었던 설날이 일요일과 하루 겹치긴 했지만, 휴일로만 1년에 52+19-2=69일이나 쉴 수 있었다. ( 근로자의 날까지 더하면 70일.) 게다가 원래도 휴일이 많았던 10월이 추석크리로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쉴 수 있었다.[5] 참고로 2013년 이후 현재, 공휴일은 15일 뿐으로, 이 때보다 4일 줄었다.

정부 수립 이래 대한민국이 오랜 적대국이자 북한의 동맹국이었던 소련과 공식 수교를 맺었던 해이기도 하다. 후에 소련은 러시아 연방으로 출범하여 남북한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언론계에선 KBS 사태와 방송법 날치기 등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에도 불구하고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10년 만에 새 방송사들이 잇달아 개국했는데 서울시가 출범시킨 TBS와 천주교와 불교의 종교방송인 가톨릭평화방송, 불교방송 등이 주인공이다. 또 법적으로 민영방송 설립과 운영도 다시 허용되기 시작하면서 태영건설이 대주주로 나선 SBS가 탄생하게 됐다. 그리고 재야 통일운동권에서도 뜻깊은 해이기도 한데, 남-북-해외 3자연대 민간 통일운동 행사인 '범민족대회' 첫 개최와 범민련 출범으로 대변된다.

여담으로 남자 출생성비가 가장 많은 해이기도 하다. 백말띠의 해 라 하여 이때 태어나는 여아는 팔자가 드세다는 근거없는 속설이 나돌고 있었기 때문에 116.5:100 라는 기록적인 성비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이 해 엄청난 여아 낙태가 이뤄졌다. 더불어 양력 1990년 2~3월에 태어난 여자아이는 양력 1990년 1월로 일찍 출생신고를 하기도 했으며, 1990년 말에 태어난 여자아이는 음력 1991년까지 묵혀두다 출생신고를 하는 케이스가 종종 있었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많은 편.

독일에게는 이 해가 역사상 최고의 해가 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독일민주공화국 독일연방공화국이 통일했음은 물론 보너스로 이 해 개최된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했기 때문이다.[6] 또한 동서 독일이 통일된 1990년 10월 3일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이전 세대들과는 달리 구 동독과 구 서독 출신이 아닌 통일 독일연방공화국 출신이라는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2023년 기준으로 33세 이하에 속하는 독일 젊은이들이 그 대상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팀 버너스리 박사가 고안한 월드 와이드 웹의 약자인 WWW 개념이 완성되어 발표된 해였으며, 이 해 12월에 최초의 웹 페이지를 선보인 후 이듬해부터 일반 공개되어 오늘날의 WWW 기반 인터넷으로 발전된 계기가 되었다.

이 해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한 해였다. 그러나 10월에는 강수량이 0.0mm로 기상 관측 이래 최초로 강수 일수가 없었다.[7]

이 해에 출생한 사람들은 총 64만 9천명으로 에코세대의 마지막 세대로 부른다. 이들은 2020년대에 정확히 30대가 되며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지만 1990년 출생자들은 벌써부터 정계에 입문한 케이스가 많다. 또한 1990년생은 2000년대 기준으로 2009년에 대학 입학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대학생이 되었다.

3. 주요 화제

3.1. 범죄와의 전쟁 선포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범죄자들을 상대로 범죄와의 전쟁을 치러 근절하겠다는 10.13 특별선언을 하게 된다. 범죄자들과 전쟁을 선포하겠다는 내용은 전국에 TV로 생중계됐을뿐더러 모든 일간지에 톱 기사로 실렸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범죄자들에게 선전 포고를 한 결과, 모든 조직을 뿌리 뽑지는 못했지만 양지에서 대놓고 활동하는 폭력배들은 대부분 소탕되었으며, 살아남은 몇몇 폭력배들도 음지에서만 활동하게 된다.

1990년 11월에는 새질서 새생활 운동이라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다가오는 21세기를 위해 변화된 시민 의식을 갖자고 강조하였다.

참고로 이 선언을 했던 배경인 1990년은 1989년과 더불어 악명 높은 연쇄살인이 많았던 해이다. 특히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외에도 1990년을 떠들썩하게 만든 악명 높은 연쇄 살인이 샛별룸살롱 살인 사건,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쇄 방화살인 사건, 양평 일가족 생매장 사건이 있었다. 뿐만아니라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2개월 간 무려 3건의 유괴 살인[8]도 일어났다.

3.2. 안면도 핵폐기장 유치 파동

1990년 11월 8일 그 날,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에서는 1만 5천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5일 전인 11월 3일에 과학기술처가 발표한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계획'에 반대하는 집회였다. 이들은 서산경찰서 안면지서와 서장 승용차에 불을 지르고 경찰차를 뒤엎었으며, 경찰관을 연금하는 등의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안면도 내 이장단들은 일제히 사퇴를 하였으며, 중고등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하고 자체 집회를 여는 등 반핵 운동에 가담했다. 이 시위로 주민 7명이 구속되었다.

결국 정부는 주민들의 조직적인 반대에 굴복하여 1993년에 핵폐기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뒤 핵폐기장 후보지 선정을 지역 주민과의 협의 하에 민주적이고 공개적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같은 투쟁은 1991년 전국 6개 지역 핵폐기장 선정 저지, 1995년 인천 굴업도 핵폐기장 유치 저지, 2005년 부안 핵폐기장 유치 저지로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방폐장 유치는 2014년 월성 원자력 환경발전센터 설립으로 실현되었다.

3.3. 한소 수교, 45년만의 앙금을 털어내며

1990년은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이 오랜 적국이었던 소련과 국교를 수립한 해였다. 역사적으로 소련은 1945년 북한에 진주한 이래 대한민국을 친미 성향 국가로 보고 미국에 의한 정치적인 배후임을 인지하여 적국으로 규정하여왔다. 대한민국 역시 1945년 해방 및 분단 이후 북한의 배후로 인정하여 소련을 적국으로 여겨왔으며, 1949년에는 서울 주재 소련 영사관을 폐쇄시키고 전 직원을 추방하였다. ( 주한러시아대사관 참고)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소련이 직접 군대를 파병하지는 않았지만 북한군에게 소련산 탱크와 무기 및 포탄들을 지급하는 군사적 지원을 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실상 간접적으로 북한을 도운 나라로 인식되어서 휴전 이후 대한민국이 적국으로 규정하여왔다. 당시 소련의 독재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은 6.25 전쟁의 배후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이 영향력으로 북한군은 소련의 지원하에 남침을 하고 3일만에 서울을 함락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1988년에 들어서 서울 올림픽 때 소련이 참가를 하면서 점차 이 때부터 한소간의 오랜 앙금이 풀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소련이 한국 국적기의 소련 영공 통과를 승인하면서 유럽행 한국 국적 비행기들이 그 동안 태평양으로 돌아서 갔던 것을 소련 영공을 통과하는 직선거리로 변경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90년 역사적으로 노태우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간의 한소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대한민국과 소련의 역사적인 국교수립이 성사되었다.

3.4. 동서독 통일

1990년 10월 3일, 마침내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서 동서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동서독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동독과 서독은 베를린 장벽을 쌓으며 경계를 서게 되고 각각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친소와 친미로 나뉘어서 각자의 생활과 정치를 누려 왔다.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동서독은 6.25 전쟁과 같은 유혈사태를 겪은 적이 없으며 동서독은 분단 와중에도 하나의 나라이자 민족임을 확인하고 동서 간의 통일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동서독 올림픽 단일팀 출전이 성사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9년 자유를 열망하는 동독과 하나 된 나라를 열망하는 서독이 서로 마음에 맞게 돼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에 동독이 완벽하게 자멸하며[9] 독일은 역사적인 통일을 이루게 된다.

독일의 통일은 21세기인 현재도 남북 분단과 한반도와 한민족에게는 교훈과 숙제를 주었다. 한반도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과 충돌이 있고 6.25 전쟁을 통해서 남북 간 서로의 앙금을 만들었으며 2000년과 2007년, 2018년에 남북정상회담도 있었지만 여전히 남북 간의 긴장과 충돌이 팽팽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3.4.1. 한국이 보는 독일 통일

동서독은 이미 자신들이 하나의 혈통이자 민족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서로 간의 동질감을 가졌고 그렇기 때문에 동서 통일도 될 수 있었던 것 같지요. 서독이 하나 된 조국을 열망했다면 동독에서는 탈공산 자유를 열망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통일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1990년 통일 당시의 독일인
동독인들은 이미 자유를 갈망해 왔기 때문에 장벽을 타고 서독으로 넘어오려고 했던 적도 있었지요. 이미 동독인들 마음속에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 짙어지고 공산당에 대한 반감도 커져서 서독이 희망하였던 하나의 조국과 뜻이 맞아 보였기에 통일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1990년 옛 동독 거주자 독일인
저쪽 동네(독일)가 통일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언제 적이나 북쪽 고향을 갈 수 있을지 그저 슬퍼지기만 할 뿐이지요. 저쪽도 통일이 되어서 지들 가족도 만났는데 하루빨리 우리도 죽기 전에 북쪽 고향에 가서 가족들과 만나 봤으면 원이 없습니다.
- 1990년 실향민
독일이라는 나라가 통일되었다는 소식 듣고 나는 그저 언제 통일되어서 북에 있는 고향에 갈 수 있을지 울고 싶었습니다. 우리도 하루빨리 저 사람들처럼 통일되어서 북쪽에 있는 고향에 가야 할 텐데....
- 1990년 실향민

한국의 입장에서는 먼저 통일한 독일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으려고 하고 있다. 동서 분단 와중에도 전쟁이나 분쟁을 벌이지도 않고 동서 간에 자유와 하나 된 조국을 열망하였고 동서 간의 통일을 위해 정치적, 행정적,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독일의 통일 사례는 한국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아쉽게도 독일과는 다르게 한반도는 아직도 남북이 분단된 채로 언제 통일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있다.

그리고 지금 한반도에는 남북 분단으로 인해서 가족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도 존재하고 있다. 독일도 한때는 장벽 때문에 이산가족들이 있었지만 통일이 되면서 이들의 비극은 풀어지게 되었지만 한국은 현재 진행형이다.
언젠가 한국도 우리나라(독일)처럼 통일이 되는 그날이 오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도 분단을 겪어 왔지만 서로가 마음이 맞았고 합의를 이끈 덕분에 통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동서로 분단되었다가 통일이 된 독일처럼 한국도 통일이 되는 그날이 오게 되어 평화를 맞이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도 통일을 했으니만큼 한국도 통일이 되는 날이 오길 기원합니다.

4. 기후

서울의 연강수량이 가장 많은 해이나 10월에는 강수량이 기록되지 않았다. 5-6월에 이상 저온이 있었지만 2~3월과 11월에는 이상 고온이 매우 심했으며, 연평균기온도 서울 기준으로 12.8℃︎를 기록해 1991~2020 평년과 같고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높았다.

서울의 월평균기온 통계는 다음과 같았다.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서울 월평균기온(°C) -3.2 2.7 7.2 11.3 16.2 20.7 24.9 26.4 21.1 15.4 10.0 0.8 12.8
연 최저기온 연 최고기온 연교차
-17.1 °C(0125) 35.5 °C(0807) 52.6 °C

5. 사건

5.1. 실제

5.1.1. 1월

5.1.2. 2월

5.1.3. 3월

5.1.4. 4월

5.1.5. 5월

5.1.6. 6월

5.1.7. 7월

5.1.8. 8월

5.1.9. 9월

5.1.10. 10월

5.1.11. 11월

5.1.12. 12월

5.2. 가상

6.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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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망

7.1. 실존 인물

7.1.1. 1월

7.1.2. 2월

7.1.3. 3월

7.1.4. 4월

7.1.5. 5월

7.1.6. 6월

7.1.7. 7월

7.1.8. 8월

7.1.9. 9월

7.1.10. 10월

7.1.11. 11월

7.1.12. 12월

7.1.13. 일자 불명

7.2. 실존 동물

7.3. 가상 인물

8. 데뷔

8.1. 가수

8.1.1. 한국

8.1.2. 해외

8.2. 배우

8.3. 성우

8.4. 예능

8.5. 만화계

8.6. 스포츠

8.6.1. 야구

8.6.2. 축구

8.6.3. 농구

8.6.4. 배구

8.6.5. 씨름

9. 은퇴

9.1. 스포츠

10. 히트작

10.1. 드라마

10.1.1. 국산

10.1.2. 더빙

10.2. 영화

10.3. 가요

10.4. 개그 코너

10.5. 애니메이션

10.6. 베스트셀러

10.7. 비디오 게임

11. 출시 상품

11.1. 자동차

11.2. 식음료

11.3. 생활용품

11.4. 화장품

12. 유행어

13. 최초

13.1. 방송 프로그램

14. 달력

1월 2월 3월
1 2 3 4 5 6 1 2 3 1 2 3
7 8 9 10 11 12 13 4 5 6 7 8 9 10 4 5 6 7 8 9 10
14 15 16 17 18 19 20 11 12 13 14 15 16 17 11 12 13 14 15 16 17
21 22 23 24 25 26 27 18 19 20 21 22 23 24 18 19 20 21 22 23 24
28 29 30 31 25 26 27 28 25 26 27 28 29 30 31
4월 5월 6월
1 2 3 4 5 6 7 1 2 3 4 5 1 2
8 9 10 11 12 13 14 6 7 8 9 10 11 12 3 4 5 6 7 8 9
15 16 17 18 19 20 21 13 14 15 16 17 18 19 10 11 12 13 14 15 16
22 23 24 25 26 27 28 20 21 22 23 24 25 26 17 18 19 20 21 22 23
29 30 27 28 29 30 31 24 25 26 27 28 29 30
7월 8월 9월
1 2 3 4 5 6 7 1 2 3 4 1
8 9 10 11 12 13 14 5 6 7 8 9 10 11 2 3 4 5 6 7 8
15 16 17 18 19 20 21 12 13 14 15 16 17 18 9 10 11 12 13 14 15
22 23 24 25 26 27 28 19 20 21 22 23 24 25 16 17 18 19 20 21 22
29 30 31 26 27 28 29 30 31 23 24 25 26 27 28 29
30
10월 11월 12월
1 2 3 4 5 6 1 2 3 1
7 8 9 10 11 12 13 4 5 6 7 8 9 10 2 3 4 5 6 7 8
14 15 16 17 18 19 20 11 12 13 14 15 16 17 9 10 11 12 13 14 15
21 22 23 24 25 26 27 18 19 20 21 22 23 24 16 17 18 19 20 2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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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상인 이유는 당연히 엄연하게 1991년 12월 26일이 냉전 종료일이기 때문. [2] 동시에 미국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등극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가 시작되었다. [3] 당시엔 광화문광장이 아직 들어서지 않아서 이순신 동상 바로 옆으로 차가 다녔고 광화문 뒤로 조선총독부 건물이 아직 남아있었다. 또한 현재는 철거된 몇몇 고가차도가 등장한다. [4] 영상의 설명란에는 1990년의 서울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3번째 영상 중반부에서 에어로시티가 잠깐 지나가는 점과 사람들의 복장, 도시의 분위기를 보아 1991년 겨울에서 92년 초 사이에 촬영한 영상인 듯 하다. [5] 월요일인 10월 8일 월차를 내고 한글날인 10월 9일까지 쉰다면 무려 10일!!! [6] 엄밀히 말하면 독일이 아닌 서독이다. [7] 그외에도 2019년 1월과 정확히 30년 뒤인 2020년 10월도 강수량이 기록되지 않았다. [8]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1990.6.25.), 김희성 유괴 살인 사건(1990.8.26.), 이완희 유괴 살인 사건(1990.9.4.). [9] 이때 동독 상황은 군대와 경찰이 사실상 없어졌다. 끝나기 일보 직전 상황이었던 것. [10] 민주당 정식창당 이전으로, 언론에선 가칭 민주당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11] 무너진 제방을 복구하고 그 위에 도로를 건설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자유로다. [12] 류의 생년인 1964년을 기준으로 역산한 것. 각 캐릭터들의 공개된 나이와 생년월일로 보아 1탄의 배경연도가 1987년, 2탄의 배경연도가 1991~1994년일 때 1탄 2탄 사이의 평행우주로 볼 수 있다. [13] 요르의 생년 1963년과 나이 27세를 기준으로 역산한 것. [14] 모던 타임즈의 여주인공이다. [15] 최규하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렸다. [16] 본명 권성국 [17] 주인공의 엄마. [18] 솔로 데뷔 기준. [19] 양준일의 데뷔 첫 방송으로 알려진 토토즐 1991년 3월 16일 방영분 이전에 그가 이미 1991년 1월~2월경에 ' 겨울나그네'란 곡으로 MBC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긴 했으나, 영상이 남아있지 않은 관계상 팬덤 내에서는 양준일의 동의하에 1집 발매일인 11월 30일을 데뷔일로 지정했다. 다만 여러 방송은 물론이고 양준일 본인 또한 여전히 1991년도를 데뷔년도로 언급하고 있어 '1991년' 문서에도 양준일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0] <사우스파크> 오프닝곡을 부른 밴드. [21] < 슈퍼갤즈> 원작자. [22] 1990 골든디스크 대상곡 [23] 1990 MBC 최고인기가수상 수상곡 [24] 1990 서울가요대상 대상곡 [25] 1990 MBC 최고인기가요상 수상곡 [26] 1990 KBS 가요대상 대상 수상곡 [27] 1990년 데뷔와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1500만 장의 앨범 판매량, 4개의 빌보드 핫 100 1위 곡을 배출했다. [28] 영화 사랑과 영혼 삽입곡으로 사용되면서 다시 인기를 끌었다. [29] 마루코는 아홉살 엔딩곡. [30] 2009년 떠먹는 불가리스로 변경. [31] 1991년 8월 요델리 퀸으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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