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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우즈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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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62626><colcolor=#fff> 더스틴 호프먼 Dustin Hoff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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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Dustin Lee Hoffman 더스틴 리 호프먼 |
출생 | 1937년 8월 8일 ([age(1937-08-08)]세)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5.1cm[1] |
직업 | 배우, 프로듀서 |
활동 | 1958년 – 현재 |
학력 | 패서디나플레이하우스 (졸업) |
배우자 |
앤 번(1969년 결혼 1980년 이혼) 리사 가체겐(1980년 결혼~현재) |
자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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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미국의 배우. 《 졸업》, 《 미드나잇 카우보이》,《 빠삐용》, 《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 투씨》,《 레인 맨》, 《 세일즈맨의 죽음》 등으로 유명한 배우이며, 《 쿵푸팬더》의 시푸 역을 더빙하기도 하고 2012년에는 미드 《머니 레이스》에도 출연하며 아직도 현역으로서의 활동이 풍부하다.[3]
연기파 배우로서 167cm의 작은 키에도 카리스마적인 연기와 더불어 여장남자부터 인자한 스승, 사회부적응자와 장애인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배우다. 동안 속성으로도 나름 유명하다.[4]
2. 작품 활동
스스로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생각해[5] 배우는 꿈도 꾸고 있지 않다가 여자애들 관심을 끌 수 있을 까 싶어 연극을 시작, 1960년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리 스트라스버그에게 메소드 연기를 배운 뒤 1966년경부터 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하다 1967년 《 졸업》의 주인공으로 출세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평론가들과 기자들은 그가 잘 생기지 않았다고 뭐라고 했다. 실제로 오슨 웰스는 '난 난쟁이는 캐스팅하지 않는다(No ethnic dwarfs with a weird face)'라는 심한 모욕을 하며 호프먼을 기피했다.[6]당시엔 주인공=미남이라는 암묵적인 공식이 있었는데, 무명에다 키도 작고 (비교적)평범하게 생긴 호프먼이 주연을 한다는게 탐탁지 않았다고 한다. 졸업의 원작소설에 묘사된 주인공은 키가 큰 금발 백인이었는데, 호프먼은 키도 작고 갈색 머리에 유대인이었으니. 실제로 처음 오디션 제안을 받았을 땐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심지어 라이프 매거진은 대놓고 그가 못생겼다고 쓰기까지 했다...[7][8]
하지만 《졸업》이 당해 흥행 1위를 기록하면서 호프먼은 스타가 됐고, 그렇게 미남 아니면 터프가이 ( 찰스 브론슨, 리 마빈, 리 밴 클리프 등)로 양분되던 헐리우드에서 평범한 외모로 성공하면서 '주연은 꼭 미남이 해야 된다'라는 고정 관념을 깨뜨렸다. 심지어 미남의 기준이 그로 인해 조금 바뀌는 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미드나잇 카우보이에서 또다시 명연기를 해내며 할리우드의 주역으로 자리잡는다.[9][10]
무명 시절 신혼부부였던 진 해크먼에게 빌붙어 살았는데, 해크먼이 다른 룸메이트를 찾아줘서 내보냈다. 그 룸메이트는 로버트 듀발.
1972년에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는 특이하게 이탈리아 감독인 피에트로 제르미의 바람둥이 알프레도(Alfredo Alfredo)를 추가했다. 스테파니아 산드렐리와 함께 주연으로 열연했는데, 물론 이탈리아 영화다 보니 그의 대사는 페루초 아멘돌라(Ferruccio Amendola)라는 성우의 이탈리아어 연기로 더빙될 수밖에 없었다.
《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와 《 레인 맨》으로 두번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 투씨》로는 다섯 번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후보로 오르면서 총 7번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76년 영화 《 마라톤 맨》에선 달랑 사타구니만 가리고 밤거리를 달리는 명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그도 생각도 하기 싫은 실패작에 나온 것도 있는데 1987년에 나온 코미디 《 이슈타르》(Ishtar)[11] 같은 경우 그와 이자벨 아자니, 워렌 비티(아자니와는 이 영화 나오면서 사귀기도 했다.) 같은 호화 캐스팅으로 나왔으나 평이나 흥행이나 쫄딱 망했다. 당시 엄청난 제작비인 5천만 달러 이상을 들여 만들고 배우들도 550만 달러라는 당시로는 거액 출연료를 받으며 주목받았으나 총흥행 수익이 1500만 달러도 되지 않았고 평도 극악이었다. 배우이자 감독인 여배우 일레인 메이가 감독했다가 이게 마지막 감독 영화(2016년 단짝이던 마이크 니콜스를 추모하는 다큐멘터리를 감독한게 그나마 신작.)가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그 다음 영화인 《 레인맨》이 흥행과 비평에서 좋은 소리 듣은 것도 이 《이슈타르》가 너무나도 망해서 보상 차원으로 호평을 더했다는 미국 내 우스개까지 있었을 정도.
그리고 1991년에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감독한 로버트 벤턴이 감독한 갱스터 영화 《빌리 베스게이트》[12]에서 주연으로 나왔다. 이 영화는 당시 거액인 5천만 달러 이상 들여 만들었지만, 1550만 달러를 벌며 흥행과 평에서 쫄딱 망해서 지금은 잊혀진 경우이다. 그래도 그는 이런 실패작도 나왔다 거론되며 넘어가지만 이 영화로 첫 주연급으로 나온 신인배우 로런 딘은 아예 사라진 이름이 되었다.[13] 더불어 브루스 윌리스도 이 영화에서 카메오로 나왔는데 같은 해 그가 주연한 《 허드슨 호크》도 쫄딱 망하면서 그에겐 두 영화 다 거론하기 싫은 경우이다.[14]
이름에서 보듯 유대계 혈통이 맞고, 큰 매부리코와 곱슬머리 등 샤일록같이 이미지가 보통 생각나는 전형적인 유대인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유대인 역으로 나온 적도 꽤 많다. 하지만 부모나 그도 비종교적이었고, 그는 "유대인들끼리 지내는 잔치도 즐겨본 적이 없고 하누카나 욤 키푸르 같은 유대인 명절 같은 것 또한 집에서 지내지도 않았다."라고 회상했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청소년 때이고, 부모도 "무슨 핏줄이 뭐건 그게 귀족이라도 되는지 아니? 우린 그냥 미국인이야."라고 강조하던 걸 듣고 자랐기에 막상 유대인이라는 걸 알고나서도 별 느낌 없었다고 한다. 역시 유대인 배우 겸 제작자가 주연하고 만든 미트 페어런츠 시리즈에서는 적극적으로 유대인 노부모 역을 하였다.
위에 얘기 나왔듯 167cm란 키는 지금 기준으로 보나 그때 기준으로나 단신이다. 덕분에 작은 거인(Little big man)이란 영화의 주연을 맡기도 했고, 역시 단신인 톰 크루즈와 형제로 나온 레인맨도 있다. 여장남자 역을 하였던 투씨도 체격 덕이었을 것이니, 연기력과 노력으로 단신이란 단점을 극복한 케이스라 하겠다.
현재는 파파라치와 즐겁게 숨바꼭질도 하고 사이좋게 놀고 다닌다.
한국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더빙을 배한성이 전담하고 있다. 그러나 2012년과 2015년에 KBS1에서 방영되었던 《 후크》[15]와 《 아메리칸 셰프》[16]나 MBC 등 타방송사에서 방영되었던 호프만의 외화 작품들에서는 이정구나 김기현 등 다른 성우가 더빙하기도 했다.
3. 논란
으레 메소드 연기자들은 괴팍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남주인공을 맡은 더스틴 호프먼은 실제 성격이 괴팍한 면이 있다. 《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이혼한 아내 역으로 분한 메릴 스트립이 호프먼의 괴팍함 탓에 꽤 고생했다. 다만, 메소드 연기가 괴팍한 것이 아니라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의 성격이 괴팍한 경우다. 당장 메릴 스트립도 메소드 연기자다. 똑바로 하라는 의미로 뺨을 맞기까지 했다고.[17][18] 또 레스토랑에서 언쟁하는 씬에서는 말미에 더스틴 호프먼이 분에 못이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와인잔을 벽 쪽으로 날려버려 깨트린다. 문제는 이게 애드립이란 것. 촬영 직전 호프먼은 카메라 감독에게만 그 사실을 알렸고[19] 아무것도 모르는 스트립은 놀란 와중에도 프로정신으로 감독의 컷사인을 기다렸고 이후 호프먼에게 분노를 표했다고.성추행 스캔들이 있었는데 세일즈맨의 죽음의 촬영 당시 인턴으로 활동하던 애나 그레이엄 헌터가 폭로를 하게 됨으로써 성추행 스캔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서 하비 와인스틴, 존 토백, 브렛 래트너, 라스 폰 트리에, 올리버 스톤, 케이시 애플렉, 케빈 스페이시 등에 이어서 유명한 할리우드 인사가 성추행 스캔들에 연루되게 되었다.
4. 출연 작품
- 졸업
- 존과 메리
- 작은 거인
- 바람둥이 알프레도
- 빠삐용
- 미드나잇 카우보이
- 레니
- 마라톤 맨
-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 투씨
- 세일즈맨의 죽음
- 레인 맨
- 후크
- 리틀 빅 히어로
- 매드 시티
- 잔 다르크
- 아웃브레이크
- 왝 더 독
- 존 말코비치 되기
- 문라이트 마일
- 런어웨이
- 네버랜드를 찾아서
-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
- 세번째 사랑
-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 쿵푸팬더 - 시푸 사부 성우
- 쿵푸팬더 2
- 쿵푸팬더 3
- 쿵푸팬더 4
- 작은 영웅 데스페로
- 아메리칸 셰프
- 에시오 트롯: 거북아 거북아
- 보이콰이어
-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1]
젊은 시절에는 167cm.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 줄었다.
[2]
앤 번이 전 결혼 생활 때 낳은 자녀를 호프먼이 입양.
[3]
머니 레이스는 경마에 관한 미드였는데 동물단체의 항의로 첫 시즌 후 종영했다...
[4]
그는 젊은 시절부터 어마어마한 동안이었다. 졸업 출연 당시 30살이었는데 20대 초반 대학생 '벤저민' 역을 맡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당시 호프먼의 나이를 알고 충격먹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벤저민보다 20살 정도 많은 로빈슨 부인을 맡은
앤 밴크로프트는 36살로 더스틴 호프먼보다 6살밖에 많지 않다.
1993년 모습. 저때 56세였다. 옆의 여배우가
앤 밴크로프트인데, 당시 62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노안인 편이지만 호프먼이 아무리 보아도 40대 정도로밖에 안 보이기 때문에 묻힌다.
[5]
벤 애플렉처럼 잘생겼다면 연기력쯤은 포기할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외모 고민이 심했다.
[6]
한 가지 웃긴 건 키는 웰스가 훨씬 더 클지라도 얼굴은 잘생겼다는 소리를 못 들은 호프먼 쪽이 훨씬 낫다.
[7]
"만약 자신의 얼굴이 자신의 재산이 된다면 더스틴 호프먼은 평생 가난했을 것이다.(if Dustin Hoffman's face were his fortune, he'd be committed to a life of poverty)"저게 못생겼다니
[8]
호프만이 화려한 미남은 아닐지라도 단정해보이고 관객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으며, 오히려 부각되지않는 얼굴이라 다양한 배역을 연기하는데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니치게 아름답거나 잘생긴 얼굴을 지녀 이미지가 고착되어서 한 때의 창춘 스타로 남는 배우들도 많다.
[9]
이때 애드립으로 친 대사인 "I'm walkin here!"는 그가 한 유명한 대사들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힌다.
[10]
당시 거리를 통제하지 못하고 실제 거리를 찍던 배우들 바로 코앞에서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호프만은 놀라긴커녕 캐릭터를 유지하며 차 보닛을 두들기며 성질을 내는 연기를 해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11]
비디오판 제목은 '더스틴 호프먼의 사막 탈출'.
SBS 금요
영화특급에서 1994년 4월 3일에 이쉬타라는 제목에
배한성 더빙으로 방영했다.
[12]
망한 영화지만 특이하게도 1세대 마피아의 몰락과 세대 교체를 다루는 실화 기반 갱스터 무비다. 미국 갱스터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한테는 의미가 있는 영화이다.
[13]
그 이후에 맡은 그나마 인상적인 역할을 뽑으라면
가타카의 주인공의 동생 정도. 이
가타카도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참패하고 후에야 명작으로 재평가받았다.
[14]
감독인 로버트 벤턴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대박 이후로 흥행이 영 아니었고, 마피아 보스 더치 슐츠의 몰락을 그린 빌리 베스게이트 참패 이후
폴 뉴먼 주연인 드라마 영화 노스바스의 추억(1994)도 흥행이 부진했고 몇 편 더 감독했지만 모두 흥행은 그저 그랬다. 그러다가, 2007년 <피스트 오브 러브>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그나마 이 영화의 장점(?)이라면 젊고 아름다운 시절의
라다 미첼의 헤어누드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참고로 《빌리 베스게이트》에선 젊은 시절 니콜 키드먼의 헤어누드를 볼 수 있다.
[15]
단, 이 경우는 배한성이 자신의 전담 1순위인
로빈 윌리엄스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이정구에게 넘어간 것이다.
[16]
여기서는
김규식이 맡았다.
[17]
여지없이 그냥 구타다. 후문에 의하면 호프먼이 스트립의 기를 죽이려고 구타했다는 의견이 크다. 이후 메릴 스트립은 호프먼과 두 번 다시 만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8]
호프먼이 자라던 시대(클래식 시대)에는 선배 배우가 후배의 싸대기를 날리는 일이 흔했다. 당장
말런 브랜도도 11세 연상의 배우
비비안 리와 연기 스타일이 다르다는 이유로(브랜도는 메소드 연기, 리는 극적인 연기) 훈수 뒀다가 싸대기를 얻어맞은 적이 있다. 물론 이후에 화해하고 리가 죽을 때까지 친구로 지냈지만 말이다. 그러나 시대상이 그렇다 해도 후술될 호프먼의 돌발애드립은 잘못한 것이 맞다.
[19]
그마저도 화면에 못 잡을까봐 알린 것이다. 확실히 호프먼이 일어서서 프레임 아웃이 됐는데도 유리잔을 찍기 위해 그냥 쭉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