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케인의 주요 수상 및 수훈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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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 ||||||||||||||||||||||||||||||||||||||||||||||||||||||||||||||||||||||||||||||||||||||||||||||||||||||||||||||||||||||||||||||||||||||||||||||||||||||||||||||||||||||||||||||||||||||||||||||||||||||||||||||||||||||||||||||||||||||||||||||||||||||||||||||||||||||||||||||||||||||||||||||||||||||
남우주연상 | |||||||||||||||||||||||||||||||||||||||||||||||||||||||||||||||||||||||||||||||||||||||||||||||||||||||||||||||||||||||||||||||||||||||||||||||||||||||||||||||||||||||||||||||||||||||||||||||||||||||||||||||||||||||||||||||||||||||||||||||||||||||||||||||||||||||||||||||||||||||||||||||||||||||
제36회 ( 19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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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 198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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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 198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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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킹슬리 ( 간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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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먼 ( 투씨) 마이클 케인 (리타 길들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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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S. 응고르 ( 킬링 필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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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 ||||
남우주연상 - 뮤지컬 및 코미디(영화) | ||||
제40회 ( 19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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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 198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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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 1985년) |
더스틴 호프먼 ( 투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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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인 (리타 길들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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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들리 무어 (하나를 위한 삼중주) |
제55회 ( 19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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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 19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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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회 ( 2000년) |
잭 니콜슨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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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인 (작은 목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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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캐리 ( 맨 온 더 문) |
남우주연상 - 미니시리즈 | ||||
제45회 ( 198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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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 198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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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회 ( 1990년) |
랜디 퀘이드 (LBJ: 초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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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인 ( 잭 더 리퍼) 스테이시 키치 (헤밍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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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듀발 (론 썸 도브) |
영화부문 남우조연상 | ||||
제5회 ( 19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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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 2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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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 2001년) |
로버트 듀발 (시빌 액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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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인 ( 사이더 하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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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피니 ( 에린 브로코비치) |
<colbgcolor=#373535><colcolor=#ffffff> 마이클 케인 경 Sir Michael Ca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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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마이클 케인 Michael Caine[1]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33년 3월 14일 ([age(1933-03-14)]세)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런던 서더크 로더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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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88cm[2] |
가족 |
부: 모리스 조셉 미클화이트(1899년 출생~1956년 사망) 모: 엘렌 마리아 버첼(1900년 출생~1989년 사망) |
이부형: 데이빗 버첼(1925년 출생~1992년 사망) 남동생: 스탠리 케인(1936년 출생~2013년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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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배우자: 퍼트리샤 헤인스(1932년 출생~1977년 사망, 1955년 결혼~1962년 이혼) 배우자: 샤키라 바크시(1947년 출생, 1973년 결혼~현재)[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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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도미니크(1956년 출생) 딸: 나타샤(1973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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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 1952년 – 1954년[4] |
직업 | 배우, 군인 |
종교 | 개신교( 성공회)[5] |
배우 활동 | 1946년 – 2023년 |
데뷔 | 1946년 '모닝 디파처(Morning Departure)'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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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저명한 원로 배우이자 프로듀서. 젊을 때부터 188cm의 큰 키와 개성적이고 섹시한 외모, 패션 센스로 유명했다. 테렌스 스탬프, 제인 버킨, 트위기, 제인 애셔 등과 함께 60년대 영국의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 문화의 한 축이기도 했다. 실제로 젊은 시절 대표작인 알피는 스윙잉 런던 시절 영국을 보여주는 영화로 꼽힌다.다작배우이기도 하여 현재까지 할리우드 영화를 포함해서 115편이 넘는 영화에 주연 및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기사 작위도 받았다.
2. 생애
워킹 클래스 출신으로, 런던 서민층 특유의 코크니 억양이 있다. 배우 본인이 직접 시연하는 마이클 케인 억양[6] 오만한 영국 장교역으로 나온 줄루(1964)나 상류계급으로 출연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를 보면 귀족적인 발음도 잘 한다. 하지만 후자의 마지막 등장 장면에서는 고상했던 말투를 벗어던지고 코크니 억양으로 You dirty little fucking prick!이라는 사자후를 발함으로써 올드팬들을 감동시켰다.어시장 짐꾼과 청소부의 아들로 태어난 노동 계급(Working Class) 출신이며, 부계 쪽으로는 아일랜드 혈통을 이어받았다. 마이클 케인 특유의 반쯤 감긴 눈은 어릴 적 눈병을 앓아 얻은 것인데, 오히려 이 점이 무표정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평.[7] 영국에서 1944년 교육법으로 제정된 초등학교 졸업생 대상의 중등학교 입학 및 영재발굴의 일환으로 만들어지는 11플러스의 첫 대상자이기도 하며 이 시험에 통과하였다.
우리나라에겐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영화사의 사환 등으로 일하다가 6.25 전쟁에 알보병으로 참전한 이력이 있다. 1951년 영국 육군에 징집되여 서독의 이절론에 주둔하던 중, 파병부대에 지원하면 빨리 제대시켜주겠다는 제안에 혹해서 1952년부터 주한영연방군 로열 퓨질리어 연대 소속 사병으로 6.25 전쟁에 참가했다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인터뷰에 의하면 남양주시 근처의 골짜기로 정찰을 나섰다가 얼어붙은 논 위에서 중공군에 포위당한 적도 있다. 당시 4명의 분대원 모두가 전사하거나 포로가 될 위기에 처했는데, 퇴로를 미리 차단하려고 하던 중공군의 허를 찔러 일부러 적진을 향해 전력질주한 덕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고.
이 경험은 훗날 강렬한 트라우마로 남아 그의 인생 전체를 규정하다시피했고, 그런 인연 때문인지 영국에서 만들어진 유일한 6.25 전쟁 관련 영화인 <한국의 언덕(A Hill in Korea)>(1956)에 출연하면서 자문 역할을 맡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사회주의에 호의적이었으나 6.25 전쟁 참전을 계기로 생각[8]이 바뀌었다고 한다.[9]
군 복무가 끝난 이후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극단에서 무대감독 보조로 일하기 시작했다. 원래 쓰려고 했던 예명은 '마이클 스코트'였는데, TV 시리즈에 캐스팅 제안을 받고 영국 배우노동조합에 가입하려고 보니 이미 마이클 스코트란 배우가 등록되어 있었다.[10] 그래서 케인의 에이전트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30분 안에 예명을 생각해내라고 했다. 당시 그는 런던의 시네마 메카 레스터 광장에 있었는데, 거기서 케인이 아주 좋아하는 배우였던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바로 태평양 전쟁기 미 해군 소해정을 배경으로 한 영화 "케인 함의 반란(1954)"이었는데, 거기서 힌트를 얻어 '마이클 케인'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11]
2.1. 전성기
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역사/전쟁 영화인 줄루(1964)와 세태 코미디 영화인 알피(1966)를 통해서였다. 다만 줄루 시절만 해도 19세기의 영국군 장교역을 했는데 거만하게 오른손이나 뒷짐지고 다니는, 손도 못 쓰는 연기자라는 평을 들었다.[12] 이후 국제 첩보국[13]에서 인기를 얻었고, 이탈리안 잡(1969)에서는 코크니 출신의 젊은 범죄자 찰리 크로커, 겟 카터(1971)에서는 런던의 갱스터 잭 카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시기에는 공군 대전략(1969)을 위시한 2차대전 영화에도 위관급 장교역으로 종종 출연했고, 이것은 70년대 들어서는 독수리는 내리다(1976)와 머나먼 다리(1977) 등에서의 강인한 영관급 야전 지휘관 역할로 이어졌다.서술된 《줄루》, 《알피》, 《국제 첩보국》, 《이탈리안 잡》, 《겟 카터》는 영국 영화 협회 BFI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영국 영화 100편에도 선정되는 등, 60~70년대 자국내 활동만으로 한 획을 그었다.
80년대 들어서는 미국에서도 크게 활약한다. 1980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드레스드 투 킬에서 예상을 깬 반전의 역할로 주목받았고, 1983년에는 드라마 <리타 길들이기>로 골든글러브 최우수 남자배우상과 전미배우조합상을 둘 다 수상했다. 마침내 1987년, 한나와 그 자매들로 첫번째 오스카상을 받더니 2000년에는 사이더 하우스로 그의 두번째 오스카상을 쥐게 된다.
2.2. 노년
그 후로는, 오스틴 파워의 아버지 역,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서 브루스 웨인의 집사 알프레드 페니워스 역 등의 조연으로 활약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마이클 케인은 크리스토퍼 놀란과 인연이 깊어서, 배트맨 비긴즈(2005) 이래 프레스티지(2006), 인셉션(2010), 인터스텔라(2014), 테넷(2020)을 위시한 거의 모든 놀란 영화에 출연해서 화제가 되었다.[14] 놀란은 인터뷰에서 명배우인 케인을 존경할뿐더러 영화의 성공을 불러오는 '행운의 부적'으로 간주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1987,2000) 2회 수상,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2회,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전미비평가 협회 남우주연상, 전미 배우조합 남우조연상 수상같이 수상 경력도 굵직하여 2000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Knight Bachelor)도 받았다. 다만 1987년에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 한나와 그 자매들에 나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처음 받을 때 졸작 죠스: 더 리벤지에 나오느라고 시상식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찍은 영화가 흥행과 평에서 쫄딱 망한 탓에 사람들은 되려 케인을 안타깝게 여겼고,[15] 2000년에는 라세 할스트롬 감독 영화인 사이더 하우스 룰스로 13년 만에 아카데미상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당연히 시상식에 나가 상을 받았다.
나우 유 씨 미 2 촬영 이후인 2015년 12월 이후 은퇴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연기에 임할 때마다 '오스카 상을 수상하거나' 혹은 '돈을 벌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하는데 오스카상도 이미 2개나 수상했고 돈도 충분히 벌었기에 더 이상 연기에 욕심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비밀 프로젝트에는 자신도 참여할 것이라 밝힌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만 같지도 않았는데... 덩케르크(2017)의 초반에 무전기에서 들리는 영국 공군 포티스 편대장의 목소리로 카메오 출연했고, 이것은 영국 본토 항공전을 다룬 걸작 공군 대전략(1969)에서 케인이 맡았던 역할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2021년 은퇴를 선언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마이클 케인 본인이 직접 트위터로 은퇴한 적 없다고 밝혔다. #
2023년 9월, 걷기도 힘든 상태임을 밝히며 결국 공식적으로 은퇴 선언을 하였다. 같은 해 10월에 개봉한 글렌다 잭슨과 함께 출연한 더 그레이트 이스케이퍼가 은퇴작이 되었다.[16]
3. 필모그래피
영국 영화 협회 BFI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영국 영화 100편에 포함된 마이클 케인 출연작은 다음과 같다.- 16위 - 겟 카터 (1971)
- 31위 - 줄루 (1964)
- 33위 - 알피 (1966)
- 36위 - 이탈리안 잡 (1969)
- 59위 - 국제 첩보국 (1965)
- 84위 - 리타 길들이기 (1983)
영국 더 가디언에서 2019년에 선정한 마이클 케인 최고의 영화 10편은 다음과 같다. 원문[17]
- 10위 - 머펫의 크리스마스 캐롤 (1992)
- 9위 - 이탈리안 잡 (1969)
- 8위 - 모나리자 (1986)
- 7위 - 콰이어트 아메리칸 (2002)
- 6위 - 화려한 사기꾼 (1988)
- 5위 - 국제 첩보국 (1965)
- 4위 - 알피 (1966)
- 3위 - 겟 카터 (1971)
- 2위 - 한나와 그 자매들 (1986)
- 1위 - 왕이 되려던 사나이 (1975)
주로 미국 헐리우드 진출작보다는 60~70년대, 잉글랜드 남성의 거친 모습을 담아낸 젊은 시절 영국 영화 출연작에서의 평가가 더 좋다.
3.1. 영화
<rowcolor=#fff>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1950 |
모닝 디파처 Morning Departure |
티보이[18] | |
1969 |
공군 대전략 Battle of Britain |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조종사 | |
1969 |
이탈리안 잡 The Italian Job |
찰리 크로커 | |
1971 |
겟 카터 Get Carter |
잭 카터 | |
1977 |
머나먼 다리 A BRIDGE TOO FAR |
조 밴델러 중령 | |
1978 |
스웜 The Swarm |
브래드퍼드 "브래드" 크레인 박사 | |
1980 |
드레스드 투 킬 Dressed to Kill |
로버트 엘리엇 의사 | |
아일랜드 The Island |
블레어 메이너드 | ||
1999 |
사이더 하우스 The Cider House Rules |
윌버 라치 박사 | |
2005 |
배트맨 비긴즈 Batman Begins |
알프레드 페니워스 | |
그녀는 요술쟁이 Bewitched |
존 포스터 | ||
웨더 맨 The Weather Man |
로버트 스프리첼 | ||
2006 |
프레스티지 The Prestige |
존 커터 | |
2008 |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
알프레드 페니워스 | |
이즈 애니바디 데어? Is Anybody There? |
클라렌스 | ||
추적 Sleuth |
앤드류 와이크 | ||
2009 |
해리 브라운 Harry Brown |
해리 브라운 | |
2010 |
인셉션 Inception |
스테픈 마일즈 교수 | |
2011 |
카 2 Cars 2 |
핀 맥미사일 | |
2012 |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신비의 섬 Journey 2: The Mysterious Island |
할아버지 알렉산더 앤더슨 | |
다크 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
알프레드 페니워스 | ||
2013 |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 Now You See Me |
아서 트레슬러 | |
미스터 모건스 라스트 러브 Mr. Morgan's Last Love |
매튜 모건 | ||
2014 |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
브랜드 교수 | |
2015 |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Kingsman: The Secret Service |
체스터 킹 / 아서 | |
2016 |
나우 유 씨 미 2 Now You See Me 2 |
아서 트레슬러 | |
2017 |
고잉 인 스타일 Going in Style |
조 하딩 | |
덩케르크 Dunkirk |
스핏파이어 편대장 | 목소리 카메오 | |
마이 제너레이션 My Generation |
본인 | 다큐멘터리 영화 | |
2020 |
컴어웨이 Come Away |
찰리 | |
포 키즈 앤드 잇 Four Kids and It[19] |
사미아드 | 목소리 | |
테넷 Tenet |
마이클 크로스비 경 | ||
2021 |
크리미널 트위스트 Twist |
페이긴 | |
베스트셀러 Best Sellers |
해리스 쇼 | ||
2022 |
미디벌 Medieval |
보레쉬 경 | |
2023 |
더 그레이트 이스케이프 The Great Escaper |
버나드 조던 | 은퇴작 |
4. 여담
- 그의 말에 따르면 스스로 컴퓨터와 같이 대사를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 저서 <명배우의 연기수업(원제 'Acting in Film: An Actor's Take on Moviemaking')>은 케인의 연기 인생과 연기 노하우, 그리고 배우로서의 행동 지침 등이 세심히 쓰여 있는 책이다. 이명세 감독이 "배우를 꿈꾼다면 무조건 읽어라!"라고 할 정도로 강추했던 서적이다.
- 마이클 케인은 짓궂은 유머 감각의 소유자로 이런 일화들과 본인의 오랜 활동 경력 등등에 대해 남긴 "내가 출연한 영화 중에 새벽 두 시에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게 하도 많아서 사람들이 내가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다. #"란 조크가 [age(2007-11-01)]년 전 2007년 11월 1일에 출간된 『 501 영화배우』에도 인용되었다. 최소 70대 때부터 자신의 죽음에 관한 수위 센 자학개그를 날릴 정도로 익살맞고 담이 센 성격.
- 2017년 초 마이클 케인 시한부 설이 보도됐으나 오보로 밝혀졌다. 암이 무서워 몸 관리 삼아 다이어트를 했다는 인터뷰가 암 때문에 살이 쪽 빠진 걸로 오역돼 버렸다. 기사
-
현재는 다크 나이트의 알프레드 등, 젠틀한 역할을 맡는 배우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시절에는 출세작 〈알피〉(1966)[20]의 바람둥이 코크니 청년 역할에서 보듯 섹시한
나쁜 남자의 매력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순도 100% 잉글랜드 양아치 이미지가 강했고 그에 걸맞은 무시무시한 냉혈한 깡패나 총잡이 역할도 자주 맡았다. 〈겟 카터〉(1971)[21] 바로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그 시절의 포스가 워낙 엄청났던지라[22] 그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올드팬들에게는 "젊었을 적이라면 배트맨이 아니라 알프레드가 직접 빌런 잡고 다녔을 것"이라는 드립도 종종 나왔다.
채널 해협 너머 동시대 프랑스의 알랭 들롱이나 장폴 벨몽도랑 유사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보다 어린 알랭 들롱은 주로 독고다이를 연기했다. 동갑인 장폴 벨몽은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고뇌하는 남성상이었다면 마이클 케인은 꾼들을 이끌고 크게 한탕 하는 꾼들의 우두머리, 혹은 집요한 추적 끝에 무자비한 복수와 응징을 하는 갱단원 같은, 훨씬 더 선이 굵고 남성적인 Badass의 터프함과 반항기를 풍겼다. 그래서 60~70년대 마이클 케인 주연작들 중 상당수는 21세기 기준으로도 상당히 수위가 센 작품들이 많다.
- 본의 아니게 촬영현장에 4시간 지각했는데, 상대 배우가 되갚아준다며 다음 날 똑같이 4시간을 지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그 배우를 조용히 찾아가 '낮잠 잘 수 있어 좋았으니 내일도 그렇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 노동 계급 출신으로 별다른 정식 연기 공부 없이[23] 바닥에서 시작해 한 국가의 국민성을 대변하는 위치의 배우로 올라섰다는 점에서 숀 코너리와 흡사하다. 러디어드 키플링 원작의 걸작 모험영화 왕이 되려던 사나이(1975)에서 공연하기도 했던 이 두 사람은 실제로도 막역한 친구 사이다.[24]
- 노동 계급 출신으로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한 경력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실제로 한 성깔한 듯하다. 그런데 나름 성질을 부리면서도 자기보다 후배거나 나이가 어리면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임은 잘 알고 있었다고.
- 노동 계급 출신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당 지지자이다. 노동당 정부의 높은 세율 정책때문에 영국을 떠나 미국에서 장기간 거주하였으며 마거릿 대처 정부가 들어서서 감세를 하자마자 바로 영국으로 귀국하였다.
- 현재 할리우드에서 상당히 나이가 많기로 유명한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보다 놀랍게도 4살이 더 많다. 1933년생인 마이클 케인과 비슷한 연령의 한국 배우로는 1934년 11월생인 이순재가 있다. 참고로 이순재가 고등학교 1학년생이던 시기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영국군 신분이던 마이클 케인은 1952년 주한영연방군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이순재 외 생존인물 중 비슷한 연배의 유명인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진 해크먼(2명 모두 1930년생)[26] 브리지트 바르도(1934년생), 우디 앨런(1935년생), 로버트 레드포드(1936년생), 신구(1936년생), 엄앵란(1936년생), 이회창 (1935년생), 로버트 듀발(1931년생), 고은(1933년생) 등이 있다.
1984년 제6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드리 헵번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마이클 케인이 겨우 4살밖에 어리지 않다!
-
결혼은 한번 이혼하고 재혼했는데 그 후로는 백년해로 하고 있다. 부인 샤키라 바크시는 인도계 무슬림이다. 양측 모두 서로의 종교로 개종하지 않았으며, 신앙의 차이로 인한 충돌은 없다고 한다. 그가 보수적인 성향이긴 해도 무슬림에게 편견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샤키라와의 결혼 일화가 재밌는데 마이클 케인은 샤키라를 광고에서 보고는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이며 브라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샤키라를 만나기 위해 실제 브라질로 떠날 생각이었는데 사실 런던에 거주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샤키라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으로 술도 끊었다고 한다.
- 비슷한 연배의 매기 스미스과 닮았다는 평이 많다. # 구글에 maggie smith looks like michael caine이 자동완성 문장으로 뜬다. 이 두 사람은 실제로도 절친이었고, 젊은 시절 각각 정통 미남상, 미녀상은 아녔지만 한 시대를 이끈 인기남, 인기녀들이었으며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를 무척 잘했고 실제로도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성격이었단 공통점도 있다.
[1]
2016년 7월에 그의 예명을 진짜 이름으로 아는 공항 보안요원들 때문에 겪던 일들을 견디다 못해 결국 본명을 마이클 케인으로 바꿨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모리스 조셉 미클화이트 주니어 (Maurice Joseph Micklewhite Jr.).
[2]
모건 프리먼과 키가 같다.
[3]
인도계
가이아나인으로 1967년도
미스 월드 가이아나 출신 배우.
[4]
6.25 전쟁 참전용사.
[5]
참조. 참고로 현 부인은
무슬림이다.
[6]
본인이 지금도 그런 억양을 쓴다는 게 아니라 코미디 프로에서 자신의 억양을 따라하는 개그맨들을 묘사한 것이다.
예시
김영철의
하춘화 모사개그를 하춘화 본인이 패러디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
[7]
처진 눈 등의 외모와 표정에서 풍기는 묘한 분위기가 미국의 선배 명배우
로버트 미첨과도 많이 닮았다.
[8]
영국에서 드문
보수당을 지지하는 배우이다. 동년배인
크리스토퍼 리가 상류층이고 케인이 서민층인 것을 감안하면
정치 지형 상 드문 케이스.
[9]
당시 시대 영화는
한국군의 역할을 잘 부각안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주한영연방군 파견 한국군(지금은 폐지된 KATCOM,
KATUSA와 같은 목적이다)이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10]
이렇게 배우 조합에 동명이인이 있어 예명을 만드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국내서도 선배 배우와 이름이 겹치면 다른 예명을 선택한다.
[11]
동생이자 같이 배우 생활을 잠깐 같이 했던 스텐리 케인(Stanley Caine)도 형을 따라 성을 바꾸었다. 동생은 2013년에 백혈병으로 사망. 생전에 형과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한다.
[12]
나중에 마이클 케인의 회고에 의하면 찰스 황태자의 거만 떠는 모습을 참조했다고 한다.
[13]
1965년 작. 원작명 The Ipcress File. 007 시리즈가 점점 판타지로 직행하는 것에 실망한 초기 제작진들이 뭉쳐서 만들었다. 사실적이면서도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가져서 007을 능가하는 60년대 최고 첩보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마이클 케인은 주인공 해리 파머를 3편까지 맡았다. 두꺼운 안경을 쓴 범생이같으면서도 은근히 불량함이 넘치는 첩보 요원 역할.
[14]
심지어 덩케르크에서는 직접적인 등장 없이 목소리로만 출연했다.
[15]
그러나 정작 케인 본인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태도를 보여줬다. 한 인터뷰에서 "그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들리는 말로는 끔찍하다더군요. 하지만 (출연료로) 그 영화가 지어준 집은 아주 멋졌어요."라는 명언을 남겼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일단 위대한 역할들을 찾는다. 위대한 역이 오지 않으면 적당한 역할을 구한다. 적당한 역이 오지 않으면, 집세를 낼 수 있는 역을 구한다”며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밝힌 바 있다.
[16]
공교롭게도 글렌다 잭슨도 이 영화를 찍고 나서 타계해, 두 명배우의 은퇴작이 되었다. 둘은 1975년 〈행복한 방황〉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다.
[17]
원문에는 50위까지 선정되어 있음
[18]
사무실, 공장, 병원 또는 직장에서 커피, 음료를 제공하는 아이
[19]
영국 소설
모래요정과 다섯 아이들(Five Children and It)의 리메이크.
[20]
2004년
주드 로 주연의 〈나를 책임져, 알피〉로 리메이크 되었다.
[21]
2000년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겟 카터〉로 리메이크 되고, 마이클 케인 본인도 악역으로 출연했다. 원작에선 돈 많은 사업가가 주인공의 동생을 죽인 범인인데 리메이크작에선 오랜 동업자가
흑막으로 이 모든 일을 꾸민 메인 빌런이란 각색이 추가로 들어갔다. 분량은
카메오 수준이었지만 메인 빌런이므로 스토리상 당연히 중요한 역이었다. 단, 1971년 원작은 처절한 복수전 끝에 잭 카터 자신도 끝내 사망하지만 리메이크작은 멀쩡히 살아남거나, 이런 원작 주인공 배우를 메인 빌런으로 밀기 위한 뜬금포 전개로 망했다..
[22]
사실 나이가 든 지금도 어느 정도 이런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젊은 깡패들을 쏴죽이고 다니는 퇴역 군인 할아버지로 나오는 〈해리 브라운〉(2009)이 대표적이다.
[23]
영국 영화/연극계는 값비싼 사립 연기 학교 중심으로 흘러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24]
로저 무어와 셋이 함께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부문 시상자로 나와
콩트를 하기도 했다.
영상 이때 깨알같이 〈
한나와 그 자매들〉 당시 오스카 시상식 불참으로 못했던 수상소감을 하겠다고 능청을 떨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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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ocaine을 제대로 읽으면 마이클 케인의 억양으로 "마이클 케인"이라고 읽는 것과 발음이 같다. 바로 위에 마이클 케인 억양 영상에서도 본인이 마이 코케인이라 발음한다. 참고로 미국식 발음은 "클"부분이 "ㄲ"에 가깝고 l 발음 부분이 뒤의 케인부분과 구별이 가기 하기 때문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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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코너리는 2020년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