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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11:26:18

나카타 쇼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03595><tablebgcolor=#003595> 파일:주니치 드래곤즈 엠블럼.svg 주니치 드래곤즈
2024 시즌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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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000000,#e5e5e5
2 타나카 미키야 · 3 타카하시 슈헤이 · 5 무라마츠 카이토 · 6 나카타 쇼 · 9 나카지마 히로유키 · 25 이시카와 타카야 · 27 츠다 케이시
29 츠지모토 린타로 · 32 이시가키 마사미 · 45 츠치다 류쿠 · 60 야마모토 야스히로 · 66 다얀 비시에도 · 68 후쿠나가 히로키
95 크리스티안 로드리게스 · 97 히구치 세이슈 · 99 올란도 칼리스테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선수
틀:주니치 드래곤즈로 돌아가기
다른 NPB 팀 명단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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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타 쇼의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6298>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엠블럼(유색배경).svg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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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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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298><colcolor=#fff>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쇼와 시대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tablewidth=100%>
1965년 ~ 1988년
1965년 1966년 1차 1966년 2차 1967년 1968년
모리야스 토시아키 (2)
(森安敏明)
사쿠라이 켄
(桜井憲)
타카하시 요시마사
(高橋善正)
요시다 마코토
(吉田誠)
오오하시 유타카
(大橋穣)
1969년 1970년 1971년 1972년 1973년
카타오카 켄
(片岡建)
스기타 히사오
(杉田久雄)
요코야마 하루히사
(横山晴久)
니이미 사토시
(新美敏)
우카이 카츠오
(鵜飼克雄)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1978년
스가노 미츠오
(菅野光夫)
후쿠시마 히데키
(福島秀喜)
쿠로다 신지 (6)
(黒田真二)
이시이 쿠니히코
(石井邦彦)
타카시로 노부히로 (1)
(高代延博)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 1983년
키다 이사오 (2)
(木田勇)
타카야마 이쿠오 (1) (6)
(高山郁夫)
타나카 유키오
(田中幸雄)
타나카 토미오 (2)
(田中富生)
시라이 카즈유키 (1)
(白井一幸)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코노 히로후미 (1)
(河野博文)
히로세 테츠로 (1)
(広瀬哲朗)
니시자키 유키히로 (1)
(西崎幸広)
타케다 카즈히로 (1)
(武田一浩)
나카지마 테루시 (2)
(中島輝士)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헤이세이 시대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989년 ~ 201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사카이 미츠지로 (1)
(酒井光次郎)
스미요시 요시노리 (1)
(住吉義則)
우에다 요시노리 (1)
(上田佳範)
야마하라 카즈토시
(山原和敏)
세키네 히로유키 (3)
(関根裕之)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카네무라 사토루
(金村曉)
나카무라 유타카 (1) (3)
(中村豊)
야노 사토시
(矢野諭)
시즈미 아키오 (3)
(清水章夫)
사네마츠 카즈나리 (1)
(實松一成)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쇼다 이츠키
(正田樹)
이바 토모카즈 (3)
(井場友和)
에지리 신타로 (3)
(江尻慎太郎)
오자키 마사야
(尾崎匡哉)
이토이 요시오 (3)
(糸井嘉男)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다르빗슈 유
(ダルビッシュ有)
양다이강 (2) (4)
(陽岱鋼)
요시카와 미츠오 (1) (4)
(吉川光夫)
나카타 쇼 (2) (4)
(中田翔)
오노 쇼타
(大野奨太)
야기 토모야 (5)
(八木智哉)
미야모토 켄 (3) (5)
(宮本賢)
타다노 카즈히토 (1) (5)
(多田野数人)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나카무라 마사루 (1)
(中村勝)
사이토 유키 (2)
(斎藤佑樹)
스가노 토모유키 (2) (6)
(菅野智之)
오타니 쇼헤이
(大谷翔平)
와타나베 료 (1)
(渡邉諒)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아리하라 코헤이 (2)
(有原航平)
우에하라 켄타 (1)
(上原健太)
호리 미즈키 (1)
(堀瑞輝)
키요미야 코타로 (2)
(清宮幸太郎)
요시다 코세이 (1)
(吉田輝星)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레이와 시대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2019년 ~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카와노 류세이 (1)
(河野竜生)
이토 히로미
(伊藤大海)
타츠 코타
(達孝太)
야자와 코타
(矢澤宏太)
호소노 하루키 (1) (2)
(細野晴希)
}}}}}}}}}
(1) 하즈레 1라운더: 첫 지명에서 중복 지명된 선수의 교섭권 획득에 실패했을 때 차순위로 선택한 선수.
(2) 중복 지명 추첨 성공.
(3) 역지명, 희망 입단 범위: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존재한 제도로, 선수를 확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4) 고교생 드래프트, (5) 대학생, 사회인 드래프트: 2005년~2007년의 3년간은 고교 선수와, 대학&사회인 야구에서 뛰었던 선수의 지명이 분리되어 있었다.
(6) 지명 후 미입단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0000> 파일:요미우리 자이언츠 엠블럼.svg 요미우리 자이언츠
역대 4번 타자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91919,#ffffff
<rowcolor=#f49c00>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파일:일본 국기.svg 나가사와 후지오
(永沢富士雄)
파일:일본 국기.svg 이토 켄타로
(伊藤健太郎)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지마 하루야스
(中島治康)
파일:일본 국기.svg 츠츠이 오사무
(筒井修)
파일:일본 국기.svg 마에카와 하치로
(前川八郎)
1936夏 1936夏-1943 1936夏-1948 1936秋 1937秋
<rowcolor=#f49c00>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파일:일본 국기.svg 미즈하라 시게루
(水原茂)
파일:일본 국기.svg 카와카미 테츠하루
(川上哲治)
파일:일본 국기.svg 아오타 노보루
(青田昇)
파일:일본 국기.svg 키구레 리쿠조
(木暮力三)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무라 마사미
(中村政美)
1937秋 1939-1958 1943-1952 1943 1943-1944
<rowcolor=#f49c00>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스다 히로시
(須田博)
파일:일본 국기.svg 콘도 사다오
(近藤貞雄)
파일:일본 국기.svg 카와바타 히로시
(川畑博)
파일:일본 국기.svg 쿠로사와 토시오
(黒沢俊夫)
파일:일본 국기.svg 코마츠바라 히로키
(小松原博喜)
1944 1944 1944 1946 1947
<rowcolor=#f49c00>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파일:일본 국기.svg 히라야마 키쿠지
(平山菊二)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미츠오
(宇野光雄)
파일:일본 국기.svg 미나미무라 후카시
(南村不可止)
파일:일본 국기.svg 테즈카 아키하루
(手塚明治)
파일:미국 국기.svg 미야모토 토시오
(宮本敏雄)
1948 1951-1953 1951-1952 1953-1954 1955-1961
<rowcolor=#f49c00>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파일:일본 국기.svg 히가사 카즈오
(樋笠一夫)
파일:일본 국기.svg 후지오 시게루
(藤尾茂)
파일:일본 국기.svg 카시와에다 분지
(柏枝文治)
파일:일본 국기.svg 요나미네 카나메
(与那嶺要)
파일:일본 국기.svg 나가시마 시게오
(長嶋茂雄)
1955 1955-1961 1955 1958 1958-1974
<rowcolor=#f49c00>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자키 카즈히코
(坂崎一彦)
파일:일본 국기.svg 쿠니마츠 아키라
(国松彰)
파일:대만 국기.svg 오 사다하루
(王貞治)
파일:일본 국기.svg 이케자와 요시유키
(池沢義行)
파일:일본 국기.svg 모리 마사아키
(森昌彦)
1959-1962 1960-1968 1962-1980 1963 1964-1965
<rowcolor=#f49c00>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제35대
파일:일본 국기.svg 아이바 요시히로
(相羽欣厚)
파일:일본 국기.svg 요시다 카츠토요
(吉田勝豊)
파일:일본 국기.svg 타나카 쿠스오
(田中久寿男)
파일:일본 국기.svg 타카쿠라 테루유키
(高倉照幸)
파일:일본 국기.svg 모리나가 카츠야
(森永勝也)
1965 1965 1967 1967 1967
<rowcolor=#f49c00> 제36대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파일:일본 국기.svg 시바타 이사오
(柴田勲)
파일:일본 국기.svg 스에츠구 토시미츠
(末次利光)
파일:일본 국기.svg 야나기다 마사히로
(柳田真宏)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하리모토 이사오
(張本勲)
파일:일본 국기.svg 아와구치 켄지
(淡口憲治)
1969 1970-1975 1974 1976-1979 1976
<rowcolor=#f49c00>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 존슨
(ジョンソン)
파일:미국 국기.svg 존 시핀
(シピン)
파일:일본 국기.svg 야마모토 코지 파일:미국 국기.svg 로이 화이트
(ホワイト)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하타 키요시
(中畑清)
1976 1978-1979 1979-1980 1980-1982 1981-1988
<rowcolor=#f49c00> 제46대 제47대 제48대 제49대 제50대
파일:미국 국기.svg 게리 토마슨
(トマソン)
파일:일본 국기.svg 마츠바라 마코토
(松原誠)
파일:일본 국기.svg 하라 타츠노리
(原辰徳)
파일:미국 국기.svg 레지 스미스
(スミス)
파일:미국 국기.svg 워렌 크로마티
(クロマティ)
1981 1981 1982-1995 1983-1984 1984-1990
<rowcolor=#f49c00> 제51대 제52대 제53대 제54대 제55대
파일:대만 국기.svg 루밍쑤
(呂明賜)
파일:일본 국기.svg 코마다 노리히로
(駒田徳広)
파일:일본 국기.svg 요시무라 사다아키
(吉村禎章)
파일:미국 국기.svg 마이크 브라운
(ブラウン)
파일:미국 국기.svg 필 브래들리
(ブラッドリー)
1988 1988-1992 1990-1998 1990 1991
<rowcolor=#f49c00> 제56대 제57대 제58대 제59대 제60대
파일:미국 국기.svg 로이드 모즈비
(モスビー)
파일:미국 국기.svg 제시 바필드
(バーフィールド)
파일:일본 국기.svg 오카자키 카오루
(岡崎郁)
파일:일본 국기.svg 오쿠보 히로모토
(大久保博元)
파일:일본 국기.svg 오치아이 히로미츠
(落合博満)
1992-1993 1993 1993 1993 1994-1996
<rowcolor=#f49c00> 제61대 제62대 제63대 제64대 제65대
파일:일본 국기.svg 히로사와 카츠미
(広沢克実)
파일:일본 국기.svg 마츠이 히데키
(松井秀喜)
파일:미국 국기.svg 셰인 맥
(マック)
파일:일본 국기.svg 키요하라 카즈히로
(清原和博)
파일:일본 국기.svg 이시이 히로오
(石井浩郎)
1995-1998 1995-2002 1996 1997-2005 1997-1999
<rowcolor=#f49c00> 제66대 제67대 제68대 제69대 제70대
파일:일본 국기.svg 타카하시 요시노부
(高橋由伸)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도밍고 마르티네스
(マルティネス)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로베르토 페타지니
(ペタジーニ)
파일:일본 국기.svg 코쿠보 히로키
(小久保裕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승엽
(李承燁)
1999-2014 1999 2003-2004 2004-2006 2006-2008
<rowcolor=#f49c00> 제71대 제72대 제73대 제74대 제75대
파일:일본 국기.svg 니오카 토모히로
(二岡智宏)
파일:일본 국기.svg 아베 신노스케
(阿部慎之助)
파일:일본 국기.svg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小笠原道大)
파일:일본 국기.svg 알렉스 라미레스
(ラミレス)
파일:일본 국기.svg 초노 히사요시
(長野久義)
2006 2007-2019 2007 2008-2011 2011-2016
<rowcolor=#f49c00> 제76대 제77대 제78대 제79대 제80대
파일:일본 국기.svg 무라타 슈이치
(村田修一)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호세 로페스
(ロペス)
파일:미국 국기.svg 존 보우커
(ボウカー)
파일:멕시코 국기.svg 레슬리 앤더슨
(アンダーソン)
파일:쿠바 국기.svg 프레데릭 세페다
(セペダ)
2012-2017 2013-2014 2013 2014-2015 2014
<rowcolor=#f49c00> 제81대 제82대 제83대 제84대 제85대
파일:일본 국기.svg 오오타 타이시
(大田泰示)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하야토
(坂本勇人)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이 다이스케
(中井大介)
파일:일본 국기.svg 카메이 요시유키
(亀井善行)
파일:미국 국기.svg 개럿 존스
(ジョーンズ)
2014-2015 2015~ 2015 2015 2016
<rowcolor=#f49c00> 제86대 제87대 제88대 제89대 제90대
파일:멕시코 국기.svg 루이스 크루즈
(クルーズ)
파일:미국 국기.svg 케이시 맥기
(マギー)
파일:아이티 국기.svg 알렉스 게레로
(ゲレーロ)
파일:일본 국기.svg 오카모토 카즈마
(岡本和真)
파일:일본 국기.svg 마루 요시히로
(丸佳浩)
2016 2017-2018 2018 2018~ 2020
<rowcolor=#f49c00> 제91대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타 쇼
(中田翔)
2022
1) 연도는 해당 선수가 4번 타자로 1경기 이상 출장한 해.
2) 볼드체 일본야구전당 헌액자.
}}}}}}}}}}}} ||

나카타 쇼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우승 엠블럼 V3.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16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5 프리미어 12
{{{#c63 동메달}}}
2015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5 WBSC Premier 12™ All-World Team
{{{#!wiki style="color:#0066B3; margin: -0px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WBSC 네덜란드 국기.png OF

파일:WBSC 미국 국기.png OF

파일:WBSC 대한민국 국기.png OF

파일:WBSC 네덜란드 국기.png SS

파일:WBSC 미국 국기.png 2B

파일:WBSC 대한민국 국기.png 3B

파일:WBSC 일본 국기.png SP

파일:WBSC 일본 국기.png 1B

파일:WBSC 대한민국 국기.png DH

파일:WBSC 멕시코 국기.png C

파일:WBSC 캐나다 국기.png CP
}}}}}} ||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3~2014 퍼시픽 리그 외야수 부문 베스트나인
2012
윌리 모 페냐( 소프트뱅크)
우치카와 세이이치( 소뱅)
카쿠나카 카츠야( 롯데)
2013
나카타 쇼( 닛폰햄)
우치카와 세이이치( 소뱅)
미첼 아브레우( 닛폰햄)
2014
나카타 쇼( 닛폰햄)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나카무라 타케야( 세이부)
2015
이대호( 소프트뱅크)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키요타 이쿠히로( 롯데)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5~2016 퍼시픽 리그 1루수 부문 베스트나인
에르네스토 메히아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나카타 쇼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긴지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20년 퍼시픽 리그 1루수 부문 베스트나인
2018~2019
야마카와 호타카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나카타 쇼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브랜든 레어드
( 치바 롯데 마린즈)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5~2016 퍼시픽 리그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T-오카다
( 오릭스 버팔로즈)
나카타 쇼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긴지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8년 퍼시픽 리그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긴지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나카타 쇼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우치카와 세이이치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20년 퍼시픽 리그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우치카와 세이이치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나카타 쇼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나카무라 아키라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21~2023
나카무라 아키라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22년 센트럴 리그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020~2021
다얀 비시에도
( 주니치 드래곤즈)
나카타 쇼
(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오야마 유스케
( 한신 타이거스)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4년 퍼시픽 리그 최다타점
아사무라 히데토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나카타 쇼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나카무라 타케야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16년 퍼시픽 리그 최다타점
나카무라 타케야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나카타 쇼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알프레도 데스파이네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2020년 퍼시픽 리그 최다타점
나카무라 타케야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나카타 쇼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마우치 히로아키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
나카타 쇼의 보유 기록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NPB 로고.svg 일본프로야구 보유 기록
외야수 단일 시즌 최다 병살 (2012년, 9개)
헤이세이 최다 단일 시즌 희생플라이 (2018년, 13개)
최다타점 타이틀 홀더의 최저 타율 (2020년 .239)
세 자릿수 타점 최저 타율 (2020년 .239)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타점이 안타보다 많은 최다타점 타이틀 홀더 (2020년)
일본인 최초의 단일 시즌 복수 구단에서의 결승홈런 기록자 (2021년)
일본인 최초의 전구단 상대 홈런 달성 (2022.05.28 対 닛폰햄)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엠블럼.svg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보유 기록
외야수 단일 시즌 최다 보살 타이 기록 (2012년)
}}} ||
나카타 쇼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등번호 6번
타나카 유키오
(1991~2007)
나카타 쇼
(2008~2021)
아리스멘디 알칸타라
(2022~2023)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10번
저스틴 스모크
(2021~2021.6.17)
나카타 쇼
(2021~2023)
결번
{{{#ffffff [[주니치 드래곤즈|주니치 드래곤즈]] 등번호 6번}}}
히라타 료스케
(2014~2022)
나카타 쇼
(2024~)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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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240201 나카타 쇼.jpg
<colbgcolor=#003595><colcolor=#ffffff> 주니치 드래곤즈 No.6
나카타 쇼
中田翔 / Sho Nakata
생년월일 1989년 4월 22일 ([age(1989-04-22)]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신지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나카구
포지션 1루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7년 NPB 신인 드래프트 1위 ( 닛폰햄)
소속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8~2021)
요미우리 자이언츠 (2021~2023)
주니치 드래곤즈 (2024~)
등장곡 ビーグルクルー - 『My HERO』
응원가 닛폰햄 시절[1]
요미우리 시절
계약 2024 - 2025 / ¥600,000,000
연봉 2024 / ¥300,000,000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논란 및 사건사고
4.1. 후배 폭행사건
5. 연도별 기록6. 이모저모

[clearfix]

1. 개요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 소속의 야구선수. 주 포지션은 1루수.[2]

나카무라 다케야 T-오카다 이후 퍼시픽리그에 나타난 토종 거포로 많은 기대를 받았던 선수였으나 높은 기대치만큼 성장하진 못했고 후술할 사건으로 인해 쫓겨나듯 트레이드를 당하며 이미지마저 나빠진 선수.

2. 선수 경력

2.1. 프로 이전

중학교때 통산 51홈런을 쳤고, 고교 통산 87홈런을 때려 아마 시절부터 ' 헤이세이의 괴물' 이란 소리를 듣던 거물이었다. 중학교까지는 히로시마에서 다녔으나, 고등학교는 오사카의 야구 명문인 토인 고교[3]로 진학했다. 이 당시 토인고교 야구 유학에 대해 말들이 많았는데, 워낙 문제아로 유명해서 어렸을 적부터 경찰서를 제 집 드나들듯 했다, 소년원에 가기 직전까지 갔다, 폭주족이었다, 아버지가 야쿠자였기에 어머니가 혼자서 키울 수밖에 없었다 등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아서 히로시마 지역의 명문고들은 스카웃을 거부했기에 굳이 멀리 떨어진 오사카로 유학을 갈 수밖에 없었다는 썰이다.

투수로서도 151km/h의 강속구를 뿌렸지만, 고 2때 어깨 부상이 발견되어 타자에 전념했다.[4] 추정 비거리 170m 짜리 홈런을 날렸다고 하는 등 알루미늄 배트 버프를 받고고교무대를 호령했지만, 3학년 여름 때 지역대회 결승에서 투수로서는 1이닝 3실점, 타자로서는 5타수 무안타의 삽질로 팀의 패배에 일조하며 코시엔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그래도 파워툴은 높게 평가를 받아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비롯한 몇몇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구단들의 스카우터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을 정도였다. 2007년 드래프트에서 사토 요시노리, 카라카와 유키와 함께 고교 빅3로 평가받으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한신 타이거스, 오릭스 버팔로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으로 닛폰햄이 교섭권을 획득한다.[5] 그리고 고졸 신인으로서는 사상 5번째인 1억엔의 계약금을 받으며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하게 된다.

고교 시절의 활약상이 우리나라 언론에도 보도된 적이 있다. 기사

2.2. 프로 경력

2.2.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70px-Sho_Nakata_on_April_3%2C_2012.jpg
닛폰햄 초기 시절. 지금과 타격폼이 많이 다르다.

기대를 받으며 입단했지만 나무 배트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비위치도 3루수를 지원했다가 전력불가 판정을 받으며 2008년에는 결국 한번도 1군에 올라오지 못한다. 이 시기에 이승엽에게 한국 기자들이 나카타가 어때보이냐고 묻자, 이승엽이 웃으면서 "아직 애기네요"라고 했었다. 2009년에는 1루수에 전념하며 2군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6], 1군 데뷔에 성공하고 일본시리즈에도 대타로 출장한다. 2009년 시즌 후 외야수로 전향한다.

2010년에는 터멜 슬레지의 퇴단과 모리모토 히초리의 부상이탈 등으로 외야가 휑해져, 1군에서 개막전을 맞이하게 된다. 개막전에서도 스타팅으로 출전하지만, 바로 2군행을 통보받고 게다가 2군 시합에서 반월판 부상을 당하며 공백기를 갖게 된다. 7월에 복귀해서, 프로 첫 홈런을 포함해 한달동안 9개의 홈런을 날리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2010년 성적은 0.233 9홈런 22타점.

2011년에는 개막전부터 쭉 레굴러로 출장해서, 18홈런 91타점을 기록하며 슬슬 프로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리그 최다에 1개 모자란 133 삼진 타율은 파리그 꼴지에서 2등인 0.237, 출루율은 리그 꼴지인 0.283을 기록하는 등 공갈포 기질이 다분했다. 어찌됐건 슬러거가 부족한 팀의 주포로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한다.

2012년에는 쿠리야마 히데키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시즌 초반 삽질에도 불구하고 모든 경기에 4번으로 출장한다. 후반기에만 14홈런을 몰아치며 투고타저 속에서도 20홈런을 넘겼다. 최종적으로 24홈런 71타점을 기록했지만, 타율은 0.239로 여전히 저조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와 일본시리즈에서도 모든 시합에 4번으로 출장했지만, 일본시리즈 6차전에서의 3점 홈런 외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팀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2승 4패로 패배했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중심타자로 기대를 받으며 선발되었지만, 대만전의 결승 희생플라이 외에는 그다지 활약하지 못했다. 도쿄돔에서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폭죽쇼를 할 때도 홈런을 치지 못했다. 하지만 2013년 정규시즌에서는 정상화된 공인구 효과와 함께 드디어 아마시절의 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타율도 3할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홈런도 한경기 3홈런을 때리는 등 커리어 하이 페이스를 보였다. 그러나 8월 21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 미마 마나부의 공에 손등을 맞아 골절상을 당하며 남은 시즌 출장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결국 사실상 시즌아웃. 이때까지의 성적은 타율 3할 3리 28홈런 73타점, 출루율 3할7푼7리 장타율 5할5푼1리.

2014년에는 전경기에 출장하며 0.269의 타율에, 27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다. 100타점은 퍼시픽리그 1위의 기록. 특히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이 눈부셨는데, 일본 기록인 포스트시즌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니폰햄의 선전을 견인했다. 하지만 팀은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에서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패배하며 일본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2015시즌에는 .263 30홈런 102타점의 성적을 기록,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프리미어 12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었고, 조별예선에서 무려 13타점을 치며 미쳐 날뛰었다.[7]

2016시즌은 0.250, 25홈런, 110타점을 기록, 개인 통산 두 번째 타점 타이틀을 차지하고, 닛폰햄의 4년만의 퍼시픽리그 우승 일등공신이 된다. 포스트시즌에서도 클러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1차전 쐐기 투런, 5차전 추격의 솔로홈런을 포함, 18타수 6안타(2홈런) 5타점을 기록하며 시리즈 MVP가 된다. 일본시리즈에서도 홈런을 때려내며 6차전 밀어내기 볼넷으로 타점을 얻고 이 볼넷이 팀의 빅이닝의 시작점을 알린 결승타가 되며 비록 MVP는 못되도 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WBC 대표로 발탁, 타율은 낮았지만 6시합에서 3홈런 8타점을 기록하며 츠츠고 요시토모와 함께 일본타선을 이끌었다. 그러나 츠츠고와 동일하게 WBC 후유증을 겪는 건지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장타율이 3할대로 폭락했다. 팀도 오타니 쇼헤이의 부상등 악재를 겪으며 전년도 챔피언에서 5위로 추락, 이래저래 최악의 시즌으로 남게 됐다. 이러고 올해 fa란다... 결국 FA를 신청하기엔 처참한 성적인지는 몰라도 FA를 선언하지 않고 잔류하였으며, 연봉은 2017년의 2억8000만엔에서 8000만엔 삭감된 2억엔에 계약체결을 하였으며, 2018년부터는 닛폰햄의 새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2018년 8월 24일,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200홈런을 기록했다. 장타가 조금 살아나며 시즌통산 0.265의 타율에 25홈런 106타점을 기록했다. 24병살로 리그 1위를 기록한건 덤..

시즌 후 3년 10억엔에 재계약했다.

2019년에는 타율 .242에 24홈런 80타점 OPS .778을 기록했다. 병살은 16개로 팀메이트 오타 타이시가 더 처참한 공갈포가 된 데다가[8] 팀 자체가 장타력이 박살나버려서[9] 그렇게 까이지는 않았다.

2020년에는 6월 개막 이래 9경기 5홈런으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2020년 8월 20일 53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시즌 19호포를 기록하면서 옆동네 홈런왕인 오카모토 카즈마보다 1개의 홈런을 더 쳐내며 홈런부문 리그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홈런치는 순간 해설이 갑자기 영어로 중계를 한다.(...)[10]
It is going! see! you! later! goodbye!!!(영상의 실제 중계 멘트이다.)

2020년 8월 22일 55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시즌 20호포를 기록하였다.
It is gone!!!(중계멘트 中)[11]

2020년 9월 10일 롯데전, 1회 초 첫 타석에서 시즌 24호 홈런, 프로 통산 250호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후 성적은 0.239 31홈런 108타점 1도루로 아사무라에게 홈런왕을 1개 차이로 뺐겼으나 3번째 타점왕을 차지했다.

2021년 2월 20일 오키나와에서 진행된 라쿠텐과의 연습경기에서 2666일만에 일본에서의 등판을 가진 다나카 마사히로를 상대로 첫 타석부터 3점홈런을 때려냈다.


2021시즌 작년에 홈런왕 직전까지간 타격감은 살려내긴 커녕 신인시절 만도 못하는 모습으로 팀의 물타선화를 적극적으로 이끌고 있다.[12] 그러나 후술할 사건으로 인해서 시즌을 일찍 마첬다. 그런데…

2.2.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후술할 폭행사건으로 인해 결국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되었다. 대가를 받지않는 무상 트레이드인데 이는 트레이드 상대가 없었다면 방출될수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쿠리야마 히데키 닛폰햄 감독이 하라 타츠노리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나카타의 야구인생을 이대로 끝나게 할 수는 없다는 간곡한 요청이 있었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무상 트레이드가 진행된 것.

출전정지처분은 트레이드 당일인 20일에 곧바로 해제된다. 이적이 발표된 이후 회견을 가졌는데 요미우리 구단의 규율에 맞게 수염을 밀고 염색했던 머리도 다시 흑발로 되돌려놓은데다 삭발까지한채로 회견장에 나타났다. 회견장에서 폭력사태에 대해 다시금 사과의 뜻을 전했다. 등번호는 10번으로 정해졌다.

이적 다음날인 2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으로 등록 되었다. 이후 21일 DeNA와의 경기에서 요미우리 선수로써 처음 타석에 섰고 볼넷으로 진루하였다.

22일 5번타자 1루수로 선발출전하여 이적 후 첫 안타를 1점차로 추격하는 투런홈런으로 장식했다. 뒤이어 터진 젤러스 윌러의 동점홈런까지 터지면서 팀은 4-4 무승부를 기록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대왕삽질 때문에 결국 나카타 쇼 못지 않게 한성질하는 아베 신노스케, 김기태가 있는 2군으로 강등조치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2군에서 아베 감독 밑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베 감독이 쇼의 타격감 회복과 야구를 진지하게 임하도록 정신력을 잘 잡아줬다고.

2군에서 재조정을 거치며 나름대로 정신을 차리긴 했으나 그동안 까먹은 성적을 복구하긴 역부족이었다. 추락하던 팀은 가까스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 내내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할 정도로 보여준 것이 마땅히 없었고 결국 파이널 스테이지 3차전 마지막 타자로 나와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팀의 시즌을 끝내버리고 야쿠르트의 일본시리즈 진출을 확정시켜주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21시즌 연봉 3억4000만엔에서 1억 9000만엔이나 삭감된 1억 5000만엔에 사인을 하였다. 현지 팬들은 이마저도 많다며 경악하는 중. # 이제 닛폰햄 시절과 다르게 한성질하는 코치진들인 김기태, 아베 신노스케, 무라타 슈이치와의 본격적인 동행이 시작되었다. 반등은 했지만 성적은 여전히 저조하고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이 다가오고 있어 2022년 반등이 없다면 프로생활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시즌 시작 전 20KG를 증량해서 나타났다. 파워 증가를 위해 일부러 찌웠다고 하는데,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은 편. # 운동 최상급자의 경우 1개월에 얻을 수 있는 골격근량이 1kg 정도이기 때문에 오프시즌인 3개월~4개월동안 밥먹고 웨이트만 해도 5킬로정도가 한계고, 나머지 15㎏이상은 당연히 죄다 지방이기 때문. 살크업도 파워에 도움이 되긴 한다만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근육을 늘리는 자연스러운 증량이 아닌 이런 단기간의 벌크업은 관절에 무리를 주기 때문이다. 특히 나카타는 왼쪽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더 무리가 갈 수 있다.[13]

개막 직후에는 그럭저럭 타격감이 괜찮은 듯 보였지만 이내 20타수 동안 무안타에 그치며 부진에 빠졌다. 그러다가 4월 3일 한신전에서 1회부터 한신의 개막 9연패를 확정짓는 만루포를 날렸고 이날 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해 반등의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그 만루홈런 이후 별다른 성과없이 지지부진하면서 0.186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다 본인의 생일날 2군행을 통보 받으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대신 1루에 중용되는 불혹의 노장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오히려 더 나은 타격을 선보이는 실정이라[14] 나카타 개인의 입장에선 반등이 절실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다만 7월에 그럭저럭 반등에 성공하면서 전반전 종료 시점에서 64시합 출장, 타율 .271/OPS .848 12홈런 32타점으로 작년보단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가 8월부터 오카모토 카즈마의 부진때문에 요미우리 제91대 4번타자로 이름을 올렸다. 시즌 당초까지만 해도 작년에 이어 엄청나게 부진한 모습을 보여서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란 우려까지 나왔지만 전반기 말부터 다시 부활하면서 괜히 왕년의 스타가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시즌 109경기 출장 타율 .269 24홈런으로 완벽히 부활한 성적으로 마쳤다. 규정타석 미달이긴 하지만 2013년 이후 오랜만에 장타율 5할을 넘겼다. 시즌후 1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2년만에 개인상도 하나 챙겼다.

이번 시즌을 마치면 FA권한을 취득하기에 FA를 신청해 닛폰햄으로 돌아갈 것인지 주목을 모았으나 신청하지 않고 교진에 남았다. 단기계약이 아닌 3년계약이다. 아예 요미우리에 눌러앉으려는 듯. 연봉 3억에 3년 계약으로 전성기 때 연봉도 거의 다 복구했다.

2023년은 역시 클린업을 맡으며 꽤 잘 나가는 중이다. 개막 한 달여만에 타율 .301, 홈런을 7개나 치며 승승장구하는 중. 그러나 부상으로 이탈이 잦았고, 결국 전년보다 못한 92경기 출전 타율 .255 홈런 15개라는 성적을 기록했다.

그런 와중에, 직전시즌에 3년계약을 했음에도 시즌 종료 후 옵트아웃으로 FA를 행사할 확률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 그리고 옵트아웃을 선언하며 요미우리를 떠나게 되었다. 형식은 자유계약선수로서 조건없는 방출. 부상으로 인해 올해 부침이 심했는데, 부상으로 빠진 동안 아키히로나 가도와키 등 젊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와서 시즌 후반부에 복귀해서도 주전 자리를 완벽히 되찾지 못했기 때문에, 주전 자리를 찾아 떠나게 된 것. 정확히 말하면 나카타는 주전 1루수였지만 카도와키 마코토가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으면서 기존 유격수였던 사카모토 하야토가 3루수로 이동, 3루수였던 오카모토 카즈마가 1루수로 이동하면서 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현재로써는 올 시즌 끔찍한 식물타격으로 양대리그 통합 최하위를 기록해서, 오랜만에 돈을 풀기로 한 주니치 드래곤즈 행이 유력한 상황.

2.2.3. 주니치 드래곤즈 시절

12월 3일 새벽 2년 6억엔에 주니치에 입단하게됐다. #

3. 플레이 스타일

고타율은 어렵지만 한 시즌에 20개 이상의 홈런을 쳐낼 수 있는 타자. 다만 프로 입단 이후 3할 타율과 5할 이상의 장타율을 기록한 건 2013년을 빼고 한 차례도 없다. 게다가 2013년엔 시즌 도중 부상으로 아웃되어 간신히 규정타석에 도달하는 데 그쳤기에 저 기록을 달성한 풀타임 시즌은 없다.

프로 입단 초창기에는 대형 유망주라는 말이 무색하게 변화구에 대한 대처가 극악한 수준이었다. 2011년만 해도 타석 당 볼넷률은 8.4%로 그럭저럭이었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투구에 대한 헛스윙률이 30%에 이를 정도로 심각했었다. 그러나 2012년 겨울부터 타격폼을 왼다리를 살짝 들어올리는 타법으로 바꾸면서 각성했다. 여전히 삼진은 많이 당하는 편이지만 볼넷도 적절하게 얻어내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시즌이 끝나고 보면 알버트 푸홀스의 LA에인절스 시절을 연상케하는 비율스탯과 홈런, 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홈런이나 타점은 그럴싸하지만 비율스탯이 좋지 않아서 보여지는 스탯에 비해 타격 생산성이 떨어지는 유형.

아마시절의 기대치나 국대에서의 활약 때문에 과대평가를 받는 타자라고 혹평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홈구장이 일본 최고의 투수친화 구장인 삿포로 돔이란 걸 생각하면 닛폰햄 전력에서 대체하기 힘든 장거리포다. 본인도 스스로의 역할을 '타점을 때려내는 것'이라 생각하고, 득점권 상황에서 최소한 1점이라도 내는 팀배팅을 중시한다고 한다. 덕분에 타점왕을 자주 차지하게 되었다.

데뷔 이후 수비 면에선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못 들었으나, 고등학생 시절 투수로 150km/h를 넘기고 2011 ~ 2012년 리그 최다 보살을 기록할 정도로 정확하고 강한 어깨를 가지고 있다.[15] 다만 수비범위가 넓은 편이 아닌것도있고 부상의 영향으로 니시카와 하루키 등 보다 발빠른 외야수들이 가세한 2014년 이후부터는 주로 1루수로 출장하고 있다. 1루 수비는 괜찮은 평가를 받는다. 2015년 이후 1루수로 완전히 전향한후 골든글러브를 꾸준히 받게되었다.

MLB 스카우터들이 보러 오고 4구단 동시 1차지명을 받았으며, 일본야구를 제패한 뒤 빠른 시일 내로 미국에 갈 거라고 생각했던 데뷔 초창기에 비하면 부족한 비율스탯과 기대치보다 아쉬운 장타력 등 생각보다 많이 성장하지 못하긴 했으나 그래도 2할 중후반대에 20+홈런을 보장할 수 있는, 한 팀의 클린업으로서는 충분히 뛰어난 타자다.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후배 폭행사건

사건은 2021년 8월 4일 DeNA와의 연습경기를 앞두고 발생했다. 폭행 피해자는 투수 이구치 카즈토모[16]인데 평소 본인이 자주 장난을 주고받던 스기야 켄시를 대하듯 장난을 걸었다가 이구치가 불편한 내색을 보이자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주변에서 말리긴 했으나 이구치는 뇌진탕 증세까지 보일만큼 심하게 얻어맞았다.

이 사건으로 카와무라 구단 사장이 직접 사과에 나서는가 하면 쿠리야마 히데키 감독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가뜩이나 부진한 팀 성적 탓에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라는 작자가 동료를 뇌진탕이 올 때까지 폭행하였으니 팀 입장에선 상당히 타격이 크다.

더군다나 나카타는 사건이 터지기 며칠 전 넷째 아이를 출산하며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단 며칠만에 폭행을 저질러 많은 비난을 받고있다. 일단 구단 측에서는 자택 근신처분 및 출장정지 기간은 무기한이라고 공시했으며 언제 정지가 해제될지는 정해진게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개인 성적도 2할 2푼도 못넘길정도로 매우 구린 타격으로 가뜩이나 욕 대차게 먹는 와중에 폭력사건으로 야구 팬들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낙인이 찍혔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이구치 뿐만 아니라 다른 후배 선수들도 나카타식 장난에 불만이 쌓여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져 나카타가 팀케미를 망가뜨리는데 크게 일조했다는 것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나카타는 이제껏 요미우리 내에서 파벌까지 만들어 악행을 저지른 것으로 유명한 키요하라 카즈히로[17][18]를 따라하듯 팀 내에서 장난을 위시한 온갖 악행을 저질러 왔고 이 사건이 공론화가 되면서 그동안의 악행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되었다. 현재는 근신 처분을 받은 상태이지만 팀 OB들 사이에선 방출 가능성도 언급되는 상황에 있다. 악재가 겹친데다 행적도 매우 심각해 불명예스럽게 야구계에서 퇴출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오랜시간 집에서 근신해야 하는 처지라 매우 답답해 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카타 쇼 주변인물로 부터 나왔다는 소문도 있는 실정이다.

후배 폭행으로 무기한 활동 정지 처분을 받은 나카타 쇼에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일본 인터넷매체 J캐스트는 15일 '나카타는 한때 사무라이 재팬(일본 야구 대표팀 애칭) 멤버로 국제 대회에서 활약하며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선수로 알려졌지만, 정말 싫어했던 선수도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매체는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나카타가 2014년 마무리캠프 때 후배의 엉덩이를 걷어차다 코치에게 지적 받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며 '나카타의 눈에 거슬리는 언동에도 후배들은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고민이 컸다. 최근 팀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잔류 가능성도 없는것은 아니다. 쿠리야마 감독이 2021시즌 이후 물러나는게 확실해보이고 후임으로 일본대표팀 감독이었던 이나바 아츠노리가 부임할 가능성[19]이 점쳐지는데 이나바는 선수시절부터 나카타를 대단히 아꼈었다. 은퇴 당시에도 '나카타를 잘 부탁한다.'라고 말할 정도이니 그래서 이나바가 나카타와 함께 용서를 구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고 있다. 더군다나 올해 좀 부진하다지만 작년에 30홈런에 타점왕을 차지한, 10년 이상 팀 부동의 4번타자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를 방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고.[20]물론 나카타의 거취는 구단 수뇌부에 달려있고 쿠리야마 감독은 방출의견에 가깝다.

하지만 결국 8월 2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무상 트레이드가 결정. 쿠리야마 감독은 "나카타의 인생에서 야구는 계속해야 할 것이나, 우리 팀에서는 더이상 어려울 것 같다" 고 방출에는 합의했으나 완전 방출은 아니고 트레이드로 한 발 물러선 정도의 의견을 밝혔다. 결과적으로는 과거 니오카 도모히로 트레이드 시즌 2가 된 셈이다. 이때와의 차이점이라면 니오카때와는 정반대로 닛폰햄 구단이 사고를 친 선수를 요미우리에 넘겼다는 점.

5. 연도별 기록

파일:NPB 로고.svg 나카타 쇼의 역대 NPB 타자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09 닛폰햄 22 38 10 2 0 0 3 1 0 1 15 .278 .289 .333 .612 -0.1
2010 65 230 49 5 1 9 20 22 0 15 61 .233 .291 .395 .687 -0.3
2011 143 572 125 32 2 18 49 91 4 31 133 .237 .283 .408 .691 1.9
2012 144 606 131 25 1 24 79 77 5 50 101 .239 .307 .420 .727 3.2
2013 108 459 124 14 1 28 67 73 1 45 77 .305 .381 .550 .932 4.3
2014 144 602 143 18 0 27 64 100 0 58 89 .269 .344 .456 .800 1.4
2015 143 611 142 26 0 30 72 102 2 64 120 .263 .339 .479 .818 3.1
2016 141 624 142 26 1 25 61 110 2 47 126 .250 .308 .431 .739 1.7
2017 129 542 102 23 0 16 56 67 0 61 103 .216 .310 .367 .677 0.4
2018 140 599 143 32 0 25 61 106 0 43 81 .265 .316 .463 .779 1.8
2019 124 514 109 21 0 24 55 80 0 55 83 .242 .329 .449 .778 0.6
2020 119 506 105 18 0 31 52 108 1 55 109 .239 .320 .491 .811 1.8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21 닛폰햄
/ 요미
우리
73 256 40 7 0 7 19 20 0 28 60 .177 .273 .301 .574 -0.5
<rowcolor=#000000>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22 요미
우리
109 375 91 8 0 24 39 68 0 27 72 .269 .327 .506 .833 1.5
2023 92 288 67 8 1 15 27 37 0 19 63 .255 .306 .464 .770 -0.2
NPB 통산
(15시즌)
1696 6822 1523 265 7 303 724 1062 0 599 1293 .250 .319 .445 .764 20.6

6. 이모저모



[1] 勝負決める一振り 血と汗の勲章 その手で夢掴め さぁ翔ばたけ中田(승부를 결정짓는 한번의 스윙 피와 땀의 훈장 그 손으로 꿈을 잡아라 자 날아라 나카타) [2] 입단 초기엔 좌익수 였으나 2014년때 좌익수로 계속 뛰다 시즌 도중에 1루수로 전향했다. 나카타로 인한 외야수 공백은 본래 1루수였던 니시카와 하루키가 대체하게 된다. [3] 이 학교 출신 선수로 니시오카 츠요시, 나카무라 다케야, 이와타 미노루, 아사무라 히데토, 후지나미 신타로, 모리 토모야 등이 있다. 나카타는 선배인 니시오카와 매년 자율 훈련도 같이 할 정도로 친분이 깊다고 한다. 또 만년백업이라서 인지도는 낮지만 에무라 나오야는 나카타 쇼 한 명만을 바라보고 히로시마에서 이 학교로 진학했을 정도. [4] '06년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같은해 봄 고시엔 제패팀이자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출신고로 유명한 요코하마 고등학교를 1회전에서 꺾었으나, 2회전에서 와세다 실업고의 사이토 유키에게 4타수 무안타 3삼진을 당하며 탈락했다.그리고 그 둘은 같은 프로팀에서 뛰게된다.팀내 입지는 완전히 다르지만... [5] 여담으로 저 3명에 타카하마 타쿠야를 추가해서 빅4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한신을 포함해서 두 팀은 1순위 지명 추첨에서 떨어지자 타카하마 타쿠야를 중복지명해서 또 추첨을 해야 했다. 그 결과 한신이 타카하마를 획득했다. [6] 85경기에서 100안타 30홈런 95타점을 달성했다. 5타점만 더 했으면 3할 30홈런 100타점도 가능했을 정도로 괴물같은 페이스를 보여주었다. 당연히 홈런왕+타점왕. 타율도 3할 2푼 6리로 좋았지만 롯데의 2군전용용병타자 후안 카를로스 무니즈가 3할 4푼을 치면서 타격왕을 가져갔다. [7] 일본이 이기고 있다가 후반에 따라잡혀 동점상황을 만든 경기들에서, 동점상황 이후 다시 승리를 확정짓는 결승타를 가장 많이 친 선수가 바로 이 선수였다. [8] 타율 .289에 20홈런을 쳤는데 OPS .776으로 나카타보다 OPS가 낮다(...) 거기다가 병살 22개. [9] 두 자릿수 홈런을 친 타자가 24홈런의 나카타 외에 20홈런을 친 오타와 11홈런을 친 와타나베 료까지 총 3명밖에 없었다. 2018년만 해도 브랜든 레어드가 26홈런, 나카타가 25홈런, 오스왈도 아르시아와 오타 타이시가 14홈런, 니시카와 하루키가 10홈런을 치면서 나름 홈런타자가 많은 타선이었는데 아르시아는 방출, 레어드는 치바 롯데로 이적, 니시카와는 원래 똑딱이라 홈런이 급감하면서 이렇게 망했다. 그리고 오타는 홈런과 타율이 모두 올라갔는데 극악의 선구안으로 OPS는 2018년 .812에서 2019년에 .776으로 추락한거라 생산력은 오히려 추락... [10] GAORA의 닛폰햄 홈경기 해설울 전담하는 콘도 유지(近藤祐司)의 홈런콜이다. 원정팀이 홈런을 쳐도 영어로 말한다. 다만 닛폰햄이 칠 때에 비해선 조금 맥빠진 말투로 한다. 일본 내에선 이 분 홈런콜이 참 유명해서 It is gone 모음집(...)등도 있다. [11] Gone!! 부분이 "거ー언느ー!!!" 라고 길게 늘어지는데 이 멘트는 나카타 팬들도 사용하는 멘트가 됐다. [12] 처음으로 1군 올라왔을 2009년엔 2할 3푼대로 쳤으나 이젠 그것만도 못친다는 얘기. 1할대 까지 내려갈 뻔했으니 말 다했다. [13] 닛폰햄 시절부터 외야수 수비를 보면서 왼쪽 무릎 상태가 악화되어 2014년부터 1루수로 간간히 출장(참고로 나카타가 1루를 보면서 생긴 외야수 공백은 니시카와 하루키가 외야로 전향하면서 해결됐다.)하다 2015년에 아예 1루수로 전향했다. [14] 더군다나 이쪽은 명구회 가입기준인 통산 2000안타가 걸려있다. [15] 넓은 수비범위를 가지지 못했음에도 2012년에 UZR 전체 1등을 기록할정도. [16] 추격조로는 잘 하는데 필승조로 쓰면 두들겨맞는 패동렬 기질이 있는 선수. 아직 27살로 어리고 대졸이라 프로 경력이 아주 긴 것도 아니라서 닛폰햄에서 꽤 중요하게 보고 있는 불펜 유망주이다. [17] 참고로 키요하라는 나카타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다. [18] 심지어 키요하라의 후배들이자 90년대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에 메이저리거로써 레전드인 스즈키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조차 키요하라의 이러한 만행들에 혀를 내둘렀고 아무 말도 못했을 정도였다. 특히 마쓰이는 키요하라와 요미우리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했었다. [19] 정작 이나바는 GM으로 부임하고 감독 자리는 신조 츠요시가 맡았다. [20] 특히 현재 닛폰햄에서 나카타를 확실히 대체할 선수가 거의 없다. 키요미야는 갈수록 발전은 커녕 퇴보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고 코너 내야 자원이던 요코오는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온 구단에 의해 라쿠텐으로 트레이드 당했다. 투수구장인 삿포로 돔을 홈으로 쓰기 때문에 나카타를 방출하면 공갈포로 악명높은 오오타 타이시에게 장타자 역할을 맡겨야 하는 수준이라 팀이 과감하게 가지 않는다면 잔류할 가능성이 크긴 하다. 참고로 그 오타는 타율 2할대 후반에 20홈런을 치고도 나카타보다도 출루율과 OPS가 낮을 정도로 선구안이 매우 나쁘다(…) [21] 테레비 아사히에서 방송한 「夢対決2016とんねるずのスポーツ王は俺だ!!5時間スペシャル」의 한 기획이다. 방송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5시간짜리 방송의 일부. [22] 야구장 필드를 여러 구역으로 나눠놓고 구역별로 공이 떨어지면 1루타, 2루타, 홈런, 병살 등등이 되는 것인데, 그래서 잘맞아도 아웃이고 빗맞아도 2루타고 여러가지 상황이 펼쳐진다. [23] 야구실력과는 무관한 게임인데다 선수들에게 각종 패널티를 잔뜩 준다. 그래놓고 지면 재대결을 위해 도게자까지 시킨다. 스기야는 나카타의 도게자를 보고 "선배 도게자는 처음 봐요!! 기분 째지는구만!!!" 이라고 외친다... [24] 참고로 저 위에 언급된 예능에서 스기야가 나카타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스기야의 타석이 돌아오자 스위치 히터인 스기야에게 나카타가 "좌타석에서 쳐라. 내 말을 듣는 게 좋을거야."라고 했다. 깨갱하면서 좌타석에 서는 스기야는 덤(…). 그 후에 나카타의 타석이 되자 스기야가 나카타에게 사무라이 재팬의 패배의 원흉이라고 하질 않나… 나카타가 도게자를 하자 스기야가 나카타에게 선배의 도게자를 처음 봤다면서 속이 시원하다고 한다든가… 일반적으로 보면 스기야가 깐죽대다가 나카타에게 관광당하는 테크인듯. [25] 이런 식으로 나카타랑 맨날 놀다 보니 스기야의 주전을 꿰차지 못하고 항상 백업 요원에 그치는 저조한 야구실력까지 더해져서 스기야 켄시는 부업이 야구인 개그맨(...) 취급 받기도 한다. 심지어 위에 언급된 예능에서의 야구게임은 2015년뿐만 아니라 몇 번 더 했는데 스기야 혼자 아예 연예인팀으로 출전한 적도 있다(...) [26] 다만 키요미야 코타로가 스트레스성 장염에 걸린 적도 있고, 나카타가 같은 포지션인 키요미야를 대놓고 견제하는 것 같다는 증언이 있는 것으로 봐서 스기야가 아닌 신진급 선수(특히 직접적으로 자기 포지션을 위협할 키요미야)에게는 어느정도 군기를 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그리고 2021년 이구치 카즈토모 폭행사건으로 인해서 자기 말을 잘 듣거나, 자기랑 친한 선수가 아니라면 냉혹하게 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이구치는 스기야랑 다르게 나카타의 장난을 받아주지 않고 정색했다고 한다.) [27] 나카타와 야노는 사라지는 스기야를 바로 쫓아간다... [28] 주 무대가 닛폰 햄의 연고지인 홋카이도다. [29] 2009년 가을 애니화. [30] (아르바이트에 관하여) 미나츠: 그리고 대타! 삿포로돔에서 오후 9시전쯤에! 크림: 돔이라니, 아빠랑 그전에 갔었다고. 미나츠: 대타로 내가 나가는 거야. '쇼'라는 녀석 대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