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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2024 시즌 코칭스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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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e5a1d> 감독 | 83 아베 신노스케 |
1군 |
76
니오카 토모히로 (헤드코치 겸 타격수석코치) · 74
무라타 요시노리 (종합코치) · 81
스기우치 토시야 (수석투수코치) 77 우츠미 테츠야 (투수코치) · 78 카와이 마사히로 (내야수비코치) · 79 카메이 요시유키 (외야수비·주루코치) 88 사네마츠 카즈나리 (배터리코치) · # 아나부키 이쿠오 (트레이닝코치) |
|
2군 |
73
쿠와타 마스미 (2군 감독) · 75
안도 츠요시 (헤드코치) · 71
야마구치 테츠야 (수석투수코치) · 72
오타케 켄 (투수코치) 85 와키야 료타 (내야수비·주루코치) · 82 스즈키 타카히로 (외야수비·주루코치) · 87 하시모토 이타루 (타격코치) · 89 카토 켄 (배터리코치) # 이시모리 타카시 (트레이닝코치) |
|
3군 |
70
코마다 노리히로 (3군 감독) · 86
후루키 시게유키 (타격코치) · 100
미사와 코이치 (수석투수코치) 104 노가미 료마 (투수코치) · 105 요시카와 다이키 (내야수비코치) · 103 킨죠 타츠히코 (외야수비·주루코치) 102 이치카와 토모야 (배터리코치) · 108 박석민 (육성코치) · # 존 터니 (트레이닝코치) |
|
순회 | 84 쿠보 야스오 (순회투수코치) · 110 젤러스 휠러 (순회타격코치)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선수 | ||
틀: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돌아가기 다른 NPB 팀 명단 보기 |
니오카 토모히로의 수상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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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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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 2002 |
후루타 아츠야 ( 야쿠르트 스왈로즈) |
→ |
니오카 토모히로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
스기우치 도시야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
|
<colbgcolor=#000000><colcolor=#fd5a1e> 요미우리 자이언츠 No.76 | |
니오카 토모히로 二岡智宏 | Tomohiro Nioka |
|
출생 | 1976년 4월 29일 ([age(1976-04-29)]세) |
히로시마현 미요시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0cm, 81kg |
포지션 | 유격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8년 드래프트 2위 |
소속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9~2008) 닛폰햄 파이터즈 (2009~2013) |
지도자 |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6)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17~2018) 토야마 GRN 썬더버즈 감독 (2019) 요미우리 자이언츠 3군 종합코치 (2020) 요미우리 자이언츠 3군 감독 (2020~2021)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감독 (2022~2023) 요미우리 자이언츠 수석코치 겸 타격수석코치 (2024~)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전 야구선수. 포지션은 유격수로, 요미우리와 닛폰햄을 거쳐 은퇴 이후 요미우리 코치와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토야마 GRN 썬더버즈 감독을 거쳐 현재는 요미우리 3군과 2군 감독을 거쳐 2024년부터는 1군 수석코치를 역임하고 있다.한국 야구팬들에게는 이승엽의 요미우리 시절 3번타자 유격수로써 공격의 중추를 이끌었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히로시마의 명문고교인 고료고교에서 활약했으나 1993년 현내 추계대회 도중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는 아픔을 겪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니오카는 프로입단 후에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자선활동을 하기도 했다.그 후 긴키대학에서의 활약을 토대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2라운더로 지명받으며 프로에 입단했다. 정확히는 역지명제도[1]를 통해 입단했는데, 그 과정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2]
2.2. 요미우리 시절
|
|
MVP를 수상했던 2002년 일본시리즈 3차전 승리 후, 쿠도 키미야스와 함께[3] |
입단하자마자 카와이 마사히로를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했으나 신인왕은 입단동기 우에하라 코지가 차지했다. 2000년에는 손가락 골절상으로 규정타석 도달에는 실패했지만 요미우리의 4년 만의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끝내기 홈런을 날리는 등의 활약으로 주전으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굳히는 데 성공했고, 이후로도 4번의 20+홈런 시즌을 기록하는 등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공격형 유격수로 활약했다. 2006년에는 일본 최초, 아시아에서 2번째로 연타석 만루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유리몸이었던 탓에 결장이 은근 잦았던 점도 있었고, 동시기에 활약했던 센트럴리그 유격수들이 미야모토 신야, 토리타니 타카시, 이시이 타쿠로, 소요기 에이신, 이바타 히로카즈 등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기에 니오카는 명문구단 요미우리의 간판 유격수라는 스타성은 뛰어났을지언정 이들에 비해 활약상 등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편은 아니었다. 같은 시기 퍼시픽리그에서도 니시오카 츠요시, 카와사키 무네노리, 나카지마 히로유키, 코사카 마코토, 메이저 이적까지 따지자면 마츠이 카즈오 등이 한창 활약하던 때라 그만큼 니오카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질 못했고...
어찌됐든 요미우리를 대표하는 유격수로 승승장구하며 2008년에는 타카하시 요시노부의 뒤를 이어 팀 주장을 맡게 되었으나 이 해 시즌 개막부터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면서 장기이탈이 불가피해졌는데, 2군에서 재활하던 도중 동갑내기 아나운서 야마모토 모나와 불륜소동을 일으키고 말았다. 팀 주장이란 사람이 취임한지 1년도 안 되어 신사 이미지를 강조하는 요미우리 구단의 체통에 먹칠을 해 버리는 사고를 친 것. 이 당시 후배 선수인 야노 켄지[4]를 술집으로 불러놓고는 바지를 벗기고 라이터로 음모를 태우며 야노가 고통스러워하자 킥킥대는 등의 가혹행위를 자행했다는 보도까지 터졌으나 이 가혹행위 건은 불륜 소동 당시 주간지에서 덤으로 냈던 찌라시성 보도로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불륜 스캔들로 물의를 일으킨 니오카는 삭발을 하고 사과 기자회견을 했으나 이 일로 기존까지의 모범적인 이미지를 스스로 박살내버리고 말았다. 일본 네티즌들에게도 두고두고 놀림을 당했는데 인터넷 게시판에 니오카 얘기만 나오면 불륜 건으로 두고두고 씹는 건 예사에, 심지어는 니오카가 경기에 나오기만 하면 관객들이 니오카를 향해 "모나오카!!!"[5]라고 불륜 스캔들을 비꼬는 콜을 외치기까지 하는 등 야구장 안팎에서 제대로 까였다. 물론 경기중 이걸 매번 듣다시피한 니오카는 영 좋지 못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6]
설상가상으로 니오카가 부상으로 이탈해 있을 동안 대체 유격수로 나섰던 사카모토 하야토가 니오카의 공백을 완벽히 메꿔주는 활약으로 오히려 주전 자리를 꿰차버리며 니오카의 자리는 없어져 버렸고, 결국 2008년 시즌 종료 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문책성 트레이드를 당하며 불명예스럽게 요미우리를 떠났다.
여담으로 12년 후에 정반대로 닛폰햄이 사고 친 선수를 요미우리로 보내는 상황이 일어났고, 그 다음 해에는 후임 유격수가 니오카보다 더 큰 사고를 터뜨리면서 이 소동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7]
2.3. 닛폰햄 시절
닛폰햄으로 쫓겨난 니오카는 이후 완전한 하락세와 함께 규정타석, 두 자릿 수 홈런 등 그 어느 것도 해내지 못했고, 수비력도 퇴화하면서 주로 지명타자로 나왔다. 다만 요미우리에서의 말년보다는 나은 행실로 인기를 어느정도 회복했고, 팬 투표로 올스타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전성기와 비교했을 때 추해지고 초라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백업, 땜빵 주전, 전문 대타 요원으로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특히 득점권에 강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2012년 일본시리즈에도 출장하기도 했다. 2013년 시즌 종료 후 닛폰햄에서 방출되었고, 현역 연장을 노렸지만 끝내 새로운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은퇴했다.3. 지도자 시절
은퇴 후에는 코치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복귀했고, 2019년엔 독립리그 감독으로 활동했으나 1년 만에 다시 요미우리 코치로 돌아왔다.이후 3군 종합코치로 활동하다가 3군 감독 이노우에 신지가 팜 디렉터로 영전하면서 3군 감독으로 승진했고, 2021년 시즌 도중 아베 신노스케가 1군 작전코치로 영전하자 2군감독 대행을 맡다가 2022년부터 정식으로 2군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3 시즌이 종료된 이후 하라 타츠노리 감독이 사임하고 아베 신노스케가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1군 수석코치로 영전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밀어치기에 능한 우타자로 우중간을 넘기는 홈런을 자주 기록했다. 다만 홈런 비거리가 짧아 비아냥을 듣기도 했는데, 실제로 도쿄돔이 홈런친화구장임을 감안하면 구장빨을 탄 선수임을 부정하긴 힘들 듯하다.그래도 적당한 펀치력에 느리지 않은 발, 강한 어깨를 갖춘 준수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수비력은 공격력에 비하면 아쉽지만 그런대로 쓸만한 수준. 어찌보면 후임 유격수인 사카모토 하야토의 하위호환에 가까운 선수.[8]
문제는 유리몸. 2008년 장기결장 이외에도 매년 잔부상을 당하면서 규정타석을 아슬아슬하게 채우는 경우가 잦았다. 몸 자체가 뻣뻣한 느낌.
5. 연도별 성적
역대 성적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1999 | 요미우리 | 126 | 462 | 121 | 14 | 0 | 18 | 49 | 51 | 8 | 33 | 92 | .289 | .342 | .452 | .794 | |
2000 | 119 | 335 | 79 | 10 | 0 | 10 | 35 | 32 | 9 | 23 | 57 | .265 | .325 | .399 | .724 | ||
2001 | 86 | 256 | 56 | 5 | 1 | 5 | 35 | 23 | 10 | 13 | 44 | .233 | .278 | .342 | .620 | ||
2002 | 112 | 444 | 112 | 21 | 1 | 24 | 64 | 67 | 3 | 27 | 79 | .281 | .329 | .520 | .849 | ||
2003 | 140 | 624 | 172 | 18 | 2 | 29 | 88 | 67 | 14 | 31 | 92 | .300 | .338 | .487 | .825 | ||
2004 | 91 | 360 | 88 | 10 | 0 | 9 | 27 | 49 | 0 | 25 | 72 | .269 | .331 | .382 | .713 | ||
2005 | 139 | 593 | 162 | 25 | 0 | 16 | 64 | 58 | 3 | 37 | 79 | .301 | .354 | .436 | .790 | ||
2006 | 146 | 598 | 159 | 26 | 0 | 25 | 67 | 79 | 1 | 30 | 113 | .289 | .329 | .472 | .801 | ||
2007 | 139 | 562 | 150 | 22 | 0 | 20 | 68 | 83 | 1 | 34 | 91 | .295 | .346 | .457 | .803 | ||
2008 | 31 | 98 | 24 | 3 | 0 | 1 | 7 | 7 | 0 | 9 | 24 | .279 | .351 | .349 | .700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2009 | 닛폰햄 | 69 | 187 | 43 | 5 | 0 | 4 | 25 | 25 | 0 | 10 | 36 | .253 | .303 | .353 | .656 | |
2010 | 103 | 355 | 86 | 15 | 0 | 7 | 26 | 47 | 0 | 18 | 59 | .262 | .300 | .372 | .672 | ||
2011 | 55 | 117 | 29 | 5 | 1 | 5 | 12 | 14 | 0 | 13 | 22 | .282 | .362 | .388 | .750 | ||
2012 | 65 | 94 | 30 | 1 | 0 | 2 | 4 | 14 | 0 | 7 | 13 | .353 | .404 | .435 | .839 | ||
2013 | 36 | 45 | 3 | 1 | 0 | 0 | 0 | 6 | 0 | 2 | 16 | .071 | .111 | .095 | .206 | ||
NPB 통산 (14시즌) |
1457 | 5139 | 1314 | 182 | 3 | 173 | 571 | 622 | 48 | 312 | 889 | .282 | .331 | .433 | .764 |
6. 여담
인기 구단의 스타급 유격수이기도 했고, 외모가 꽤나 곱상했던 덕에 여성팬이 상당히 많았다. 때문에 스캔들이 터졌을 때 팬들의 실망감이 더 컸던 것일지도.팬 서비스는 생각보다 별로였다고. 특히 남성 팬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https://sports.v.daum.net/v/20060412160406207
7. 관련 문서
[1]
자신이 원하는 팀을 선택하여 입단할 수 있는 제도
[2]
본래 니오카는 고향팀인
히로시마 카프의 지명이 유력했었는데 스스로가 요미우리로 희망구단을 급선회, 고향인 히로시마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음은 물론 오해로 인한 잡음까지 생겼다. 한국으로 치면
박재홍과 비슷한 사례라 할수 있지만 박재홍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윗선에 의해 그런거라 어쩔수 없었던 것이지만 니오카는 본인이 결정했다는 차이가 있다.
[3]
쿠도는 이날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고 니오카도 4회 초에 시원한 만루홈런으로 세이부를 격파했다. 다만 쿠도는 이날 1회 말에
그곳를 스치는 타구 때문에 선취점을 허용하는 아찔한 해프닝을 겪었다.
[4]
프로 초창기엔 준주전급
외야수로 뛰었으나 팔꿈치 부상 등이 발목을 잡아 이후로는 커리어 내내 백업으로 나왔다. 이후 2015년 시즌 도중 공교롭게도 니오카가 트레이드되었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이적하게 되었고(다만 니오카는 2013년 은퇴해서 두명 모두 닛폰햄 재적기간이 겹치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백업 외야수 롤을 맡다가 2018년을 끝으로 은퇴하여 현재는 닛폰햄의 외야수비, 타격 보조코치를 역임중이다.
[5]
야마모토 모나+니오카 토모히로 두 이름을 합성한 언어유희로, 불륜 스캔들 이후 니오카를 지칭하는 멸칭으로 통용되었다.
[6]
메이저리그에서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불륜을 저질렀을 때 이후 앞자리 특석 관객들이 불륜 상대와의 합성사진을 들어올리며 매 경기마다 A로드를 조롱했고 그때마다
영 좋지 못한 A로드의 표정이 나오곤 했는데 그것과 비슷한 케이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7]
공교롭게도 이쪽 역시
섹스파트너와의 메시지에서 항문성교를 강요한 정황이 나오는 바람에 타석에 설 때마다 니오카처럼 팬들에게 "똥꼬모토(けつもと)~!"라는 야유를 듣게 되었다(...) 차라리 모나오카는 불륜상대의 이름과 합친 언어유희니 그나마 낫기라도 하지
[8]
다만 사카모토는 니오카와는 반대로 당겨치기가 특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