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무라 노리후미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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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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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
1986~1989년 퍼시픽리그 최다 도루 | ||||||||
1985년 마츠나가 히로미 ( 한큐 브레이브스) .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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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무라 노리후미 ( 롯데 오리온즈) 36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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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무라 노리후미 ( 롯데 오리온즈) 오오이시 다이지로 ( 킨테츠 버팔로즈) 41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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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무라 노리후미 ( 롯데 오리온즈) 55도루(1988년) 42도루(198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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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아키야마 코지 ( 세이부 라이온즈) 51도루 |
1990년 퍼시픽리그 수위타자 | ||||||
1989년 부머 웰즈 ( 오릭스 브레이브스) .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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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무라 노리후미 ( 롯데 오리온즈) .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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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히라이 미츠치카 ( 롯데 오리온즈) .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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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무라 노리후미 西村徳文 / Norifumi Nishimu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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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60년 1월 9일 ([age(1960-01-09)]세) |
미야자키 현 쿠시마 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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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미야자키현립 후쿠시마 고등학교 |
포지션 | 외야수, 2루수, 3루수 |
투타 | 우투양타 |
프로입단 | 1981년 드래프트 5위 |
소속팀 | 롯데 오리온즈-치바 롯데 마린즈 (1982~1997) |
지도자 |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내야수비·주루코치 (1998)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1999) 치바 롯데 마린즈 2군 외야수비·주루코치 (2000)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2001) 치바 롯데 마린즈 2군 외야수비·주루코치 (2002~2003)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수석·외야수비·주루코치 (2004~2009) 치바 롯데 마린즈 감독 (2010~2012) 오릭스 버팔로즈 1군 수석코치 (2016~2018) 오릭스 버팔로즈 감독 (2019~2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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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일본프로야구 선수, 코치, 해설자이자 前 오릭스 버팔로즈 감독. 애칭은 '달리는 쇼군(走る将軍)'현역 시절엔 4번의 도루왕과 1번의 수위타자를 차지한 롯데 오리온즈/치바 롯데 마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리드 오프였으며, 은퇴 후에도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코치, 감독을 역임하며 2번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2016년부터는 오릭스 버팔로즈의 코치로 부임하였으며 2018년 시즌부터 후쿠라 준이치의 후임으로 오릭스 버팔로즈 감독을 맡게 되었으나 2020년 시즌 도중 자진 사퇴.
2. 프로 데뷔 이전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여 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오토바이에 눈이 간 것과 엄격한 연습에 지친 것 때문에 잠시 야구부를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안가 다시 돌아와 2학년 때 학교를 처음으로 하계 코시엔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다만 코시엔 대회에선 2회에서 타카다 상고에게 난타전 끝에 패배했다.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국유철도 가고시마 철도 관리국[2]의 사회인야구부로 들어가 활동하다가 1981년 롯데 오리온즈, 야쿠르트 스왈로즈, 난카이 호크스에 드래프트 5위로 지명받아, 경합 끝에 롯데 오리온즈에 입단하면서 프로 데뷔를 이룬다.
3. 현역 시절
입단 첫 해에 당시 감독이었던 야마모토 카즈요시 등의 권유를 받아 스위치 히터로 전향 후, 2년차부터 출장 기회를 늘려 3년차인 1985년에 2루수 부문 베스트나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이해부터 주전 2루수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롯데 타선의 주축 리드 오프로써 도루 위주의 스피드를 주무기로 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1986~1989년 4년 연속으로 도루왕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부상으로 인해 기량이 감퇴하며 1990년부턴 외야수로 전향했다. 그리고 외야수로 전향한 1990년에도 다시 부상을 당하며 도루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등의 타격을 입었지만, 타법 개조 등의 노력을 가한 것이 효과를 보아 그해 타율 .338로 퍼시픽리그 사상 첫 스위치 히터 수위타자가 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고, 외야수 부문 베스트나인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러나 치바 롯데 마린즈 체제에 들어서면서 부상과 기량 감퇴 등으로 인해 후배들에게 밀리며 출장기회가 서서히 감소해갔고, 결국 1997년 시즌 종료 후 은퇴하였다.
통산 기록은 1298안타 33홈런 326타점 363도루, 타율 .272이며 통산 363도루는 치바 롯데 마린즈 구단 사상 최다 도루 기록이다.
4. 치바 롯데 마린즈 코치/감독 시절
은퇴 이후 곧바로 치바 롯데 마린즈의 코치로 취임해 주로 수비주루 코치를 맡았고, 바비 발렌타인이 감독으로 복귀한 2004년부턴 수석 코치를 맡아 발렌타인을 보좌하여 2005년, 팀이 31년만의 퍼시픽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루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 후 2009년, 발렌타인이 구단 프런트와의 불화로 감독직에서 물러나면서 후임 감독으로 부임한다.
부임 첫 해엔 전해 발렌타인과 구단 프런트와의 다툼으로 팀 분위기 등이 망가진 것 등 때문에 최하위를 예상하는 목소리도 많았으나, 그 예상을 깨고 치열한 순위경쟁 끝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불과 반게임차로 밀어내고 리그 3위로 이끌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으니...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를 2전 전승으로 밀어낸 데 이어, 파이널 스테이지에선 무려 리그 우승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부전패 포함, 1승 3패의 열세 상황에서 3연승의 리버스 스윕으로 밀어내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도입 이래 사상 초유의, 리그 3위 팀의 일본시리즈 진출을 이끌어내는 하극상을 실현시켰다! 그것도 리그 우승팀을 상대로 부전패 등의 열세 상황에서 이끌어낸 것이기에 당연히 야구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후 일본시리즈에서도 주니치 드래곤즈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간 끝에 5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이해 포스트시즌에서의 하극상으로 일컬어질 정도의 엄청난 선전으로 쇼리키 마쓰타로상까지 수상한다.
2010년 일본시리즈 우승 결정 후 헹가래를 받는 니시무라.
하지만 이후 2011년엔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와 저반발력 공인구 도입으로 인한 타격력 급감[3]으로 리그 최하위로 굴러떨어지고 말았고, 이듬해인 2012년에도 전반기까진 리그 1위를 차지하다가 후반기에 DTD를 시전해 리그 5위로 추락하며 결국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그해 시즌 종료 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5. 오릭스 버팔로즈 코치/감독 시절
이후 폭스 스포츠 등에서 해설가로 일하다가 2016년 같은 미야자키 현 출생이자 현역 시절부터 친했던 후쿠라 준이치가 감독으로 부임한 오릭스 버팔로즈의 수석 코치로 부임했고, 2018시즌 종료 후 후쿠라가 성적부진 책임을 지고 용퇴하자 감독으로 승격되었다.하지만 오릭스 감독으로써의 첫 해인 2019년은 시작부터 최하위로 처지면서 퍼시픽리그가 1~5위부터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는 것과는 상관없이 나머지 5팀과 승차가 꽤 벌어진 채로 현상 유지(...) 어째 전임 감독이 정식 감독으로 치렀던 첫 시즌이랑 비슷하기 짝이 없다. 그 뒤 8월 15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20-8로 20득점을 하며 9월 초 5위로 올라가는가 싶더니 9연패 후 다시 6위로 원상복귀. 2019년 최종 순위 6위.
일본 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西なんとか(니시 난토카)로 불린다. 그 이유는 니시무라 감독의 지명도와 이미지가 옅은 것과 함께, 경기 후 인터뷰에서 거의 매번 「なんとかしないと」(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말을 하기 때문.
2020 NPB 프로야구 개막(6/19) 이후 오릭스는 2승 10패. 2연패 후 1승, 7연패 후 1승. (선발투수 자책점 제로, 그뒤에 역전 끝내기 패배 등 패배방법이 다양하다)
이후 7월 2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오릭스는 6-0으로 7연패를 끝내고 선발투수 스즈키 유(鈴木優)
하지만 팀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최하위를 전전하고 있으며 퍼시픽 리그의 5팀들이 상위권 경쟁에 뛰어드는 와중에도 오릭스만 압도적인 최하위에 머물렀다. 결국 2020년 8월 20일자로 성적부진에 따른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공석이 된 감독자리에는 나카지마 사토시(中嶋聡) 2군 감독을 1군에 올려서 대행 체제로 잔여 시즌을 치른다.
하지만 말이 자진사퇴지 사실상 해임이라고 보는게 맞다. 나카지마 대행만 1군에 올라온것이 아니라 1, 2군 일부 코치진들의 이동도 이루어졌고, 오릭스 프론트 측에서 니시무라에게 자진사퇴 요청을 했고 니시무라 감독이 그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6. 기타
- 애칭 '달리는 쇼군'은 1970년대 미토 고몬 전문 배우 중 하나였던 니시무라 아키라와 이름이 비슷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 4번이나 도루왕을 차지한 플레이 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게, 의외로 중학교 때까지 그렇게까지 발이 빠르진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이때도 멀리뛰기는 6m 이상 기록했다고 한다. 이걸로 봐선 중학교 때도 어느 정도 재능은 갖췄다고 봐도 될듯.
- 일본의 전통 증류주인 쇼츄(焼酎)를 엄청 좋아한다. 치바 롯데 감독 시절엔 감독실에 쇼츄 병이 여러개 보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