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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24 시즌 코칭스태프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000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colbgcolor=#006298><colcolor=#ffffff> 1군 |
1
신조 츠요시감독 · 77
하야시 타카야수석 · 81
타테야마 요시노리투수 82 카토 타케하루투수 · 73 타케다 히사시투수 · 89 야기 히로시타격 · 72 야마다 카츠히코배터리 85 야치 료타내야수비·주루 · 80 모리모토 히초리외야수비·주루 · 79 다이타 타케노리데이터 분석관·주루 |
2군 |
90
이나바 아츠노리2군 감독 · 78
시미즈 마사지종합 · 84
이토 타케시투수 · 91
카네코 치히로투수 83 우라노 히로시투수 · 87 사토 토모야키타격 · 75 오다 토모유키타격 · 75 야마나카 키요시포수 인스트럭터 74 이와다테 마나부내야 수비·주루 · 76 콘타 토시마사외야 수비·주루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선수 | ||
틀: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돌아가기 | ||
다른 NPB 리그 팀 명단 보기 |
이나바 아츠노리의 수상 경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
|||
1995 | 1997 | 2001 | 2006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c7bc69 우승반지}}} |
|
2009 |
2017 APBC {{{#c7bc69 우승감독}}} |
2017
|
2019 WBSC 프리미어 12 {{{#c7bc69 우승감독}}} |
2019
|
2020 도쿄올림픽 {{{#c7bc69 금메달(감독)}}} |
2021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외야수 베스트나인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단일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tablewidth=100%> 1940년, 1947년 ~ 1949년 | ||||
<rowcolor=#ffffff> 1940 | 1947 | 1948 | 1949 | |||
키토 카즈오 라이온군 야마다 덴 한큐군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교진군 |
오오시타 히로시 토큐 카네다 마사야스 오사카 츠보우치 미치노리 킨세이 |
아오타 노보루 요미우리 벳토 카오루 오사카 츠보우치 미치노리 킨세이 |
코즈루 마코토 다이에이 카네다 마사야스 오사카 오오시타 히로시 토큐 |
}}}}}}}}}}}} ||
[br] 2006~2009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 ||||
2012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 ||||
고쿠보 히로키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 |
이나바 아츠노리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 |
아사무라 히데토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수위타자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단일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tablewidth=100%> 1936년 ~ 1949년 | ||||
<rowcolor=#ffffff> 1936秋 | 1937春 | 1937秋 | 1938春 | 1938秋 | ||
나카네 스스무 나고야군 / .376 |
마츠키 켄지로 오사카 / .338 |
카게우라 마사루 오사카 / .333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345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361 |
||
<rowcolor=#ffffff>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
카와카미 테츠하루 도쿄쿄진군 / .338 |
키토 카즈오 라이온군 / .321 |
카와카미 테츠하루 도쿄쿄진군 / .310 |
이시이 마사유키 도쿄쿄진군 / .286 |
이시이 마사유키 도쿄쿄진군 / .300 |
||
<rowcolor=#ffffff> 1944 | 1946 | 1947 | 1948 | 1949 | ||
오쿠무라 토시아키 킨키닛폰 / .369 |
카네다 마사야스 오사카 / .347 |
오시타 히로시 토큐 / .315 |
아오타 노보루 요미우리 / .306 |
코즈루 마코토 다이에이 / .361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센트럴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362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377 |
니시자와 미치오 나고야 / .353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347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361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338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338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343 |
타미야 켄지로 오사카 / .320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334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334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353 |
모리나가 카츠야 히로시마 / .307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341 |
에토 신이치 주니치 / .323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에토 신이치 주니치 / .336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344 |
나카 토시오 주니치 / .343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326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345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325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320 |
와카마츠 츠토무 야쿠르트 / .329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355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332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야마모토 코지 히로시마 / .319 |
야자와 켄이치 주니치 / .355 |
와카마츠 츠토무 야쿠르트 / .358 |
미즈타니 지츠오 히로시마 / .348 |
펠릭스 미얀 타이요 / .346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야자와 켄이치 주니치 / .369 |
후지타 타이라 한신 / .358 |
나가사키 케이이치 타이요 / .351 |
마유미 아키노부 한신 / .353 |
시노즈카 카즈노리 요미우리 / .334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랜디 바스 한신 / .350 |
랜디 바스 한신 / .389 |
시노즈카 카즈노리 요미우리 / .333 쇼다 코우조 히로시마 / .333 |
쇼다 코우조 히로시마 / .340 |
워렌 크로마티 요미우리 / .378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짐 파치오렉 타이요 / .326 |
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 .340 |
잭 하웰 야쿠르트 / .331 |
토마스 오말리 한신 / .329 |
알론조 파웰 주니치 / .324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알론조 파웰 주니치 / .355 |
알론조 파웰 주니치 / .340 |
스즈키 타카노리 요코하마 .335 |
스즈키 타카노리 요코하마 .337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 .369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킨죠 타츠히코 요코하마 / .346 |
마츠이 히데키 요미우리 / .333 |
후쿠도메 코스케 주니치 / .343 |
이마오카 마코토 한신 / .340 |
시마 시게노부 히로시마 / .337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 .344 |
후쿠도메 코스케 주니치 / .351 |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 .346 |
우치카와 세이이치 요코하마 / .378 |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 .322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 .358 |
초노 히사요시 요미우리 / .316 |
아베 신노스케 요미우리 / .340 |
토니 블랑코 DeNA / .333 |
맷 머튼 한신 / .338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카와바타 신고 야쿠르트 / .336 |
사카모토 하야토 요미우리 / .344 |
미야자키 토시로 DeNA / .323 |
다얀 비시에도 주니치 / .348 |
스즈키 세이야 히로시마 / .335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사노 케이타 DeNA / .328 |
스즈키 세이야 히로시마 / .317 |
무라카미 무네타카 야쿠르트 / .318 |
미야자키 토시로 DeNA / .326 |
타일러 오스틴 DeNA / .316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퍼시픽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오시타 히로시 토큐 / .339 |
오시타 히로시 토큐 / .383 |
이이지마 시게야 다이에이 / .336 |
오카모토 이사미 난카이 / .318 |
래리 레인즈 한큐 / .337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332 |
토요다 야스미츠 니시테츠 / .325 |
야마우치 카즈히로 마이니치 / .331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314 |
스기야마 코헤이 난카이 / .323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에노모토 키하치 다이마이 / .344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336 |
잭 브룸필드 킨테츠 / .374 |
잭 브룸필드 킨테츠 / .335 |
히로세 요시노리 난카이 / .366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320 |
에노모토 키하치 도쿄 오리온즈 / .351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336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336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333 나가부치 요조 킨테츠 / .333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383 |
에토 신이치 롯데 / .337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358 |
카토 히데지 한큐 / .337 |
하리모토 이사오 닛폰햄 / .340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백인천 타이헤이요클럽 / .319 |
요시오카 사토루 타이헤이요클럽 / .309 |
아리토 미치요 롯데 / .329 |
사사키 쿄스케 킨테츠 / .354 |
카토 히데지 한큐 / .364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레론 리 롯데 / .358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326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325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332 |
부머 웰즈 한큐 / .355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367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360 |
아라이 히로마사 킨테츠 / .366 |
타카자와 히데아키 롯데 / .327 |
부머 웰즈 한큐 / .322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니시무라 노리후미 롯데 / .338 |
히라이 미츠치카 롯데 / .314 |
사사키 마코토 다이에 / .322 |
츠지 하츠히코 세이부 / .319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85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42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56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45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58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43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 .387 |
후쿠우라 카즈야 롯데 / .346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340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360 |
마츠나카 노부히코 다이에 / .358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와다 카즈히로 세이부 / .322 |
마츠나카 노부히코 소프트뱅크 / .324 |
이나바 아츠노리 닛폰햄 / .334 |
릭 쇼트 라쿠텐 / .332 |
츠치야 텟페이 라쿠텐 / .327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니시오카 츠요시 롯데 / .346 |
우치카와 세이이치 소프트뱅크 / .338 |
카쿠나카 카츠야 롯데 / .312 |
하세가와 유야 소프트뱅크 / .341 |
이토이 요시오 오릭스 / .331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363 |
카쿠나카 카츠야 롯데 / .339 |
아키야마 쇼고 세이부 / .322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352 |
모리 토모야 세이부 / .329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요시다 마사타카 오릭스 / .350 |
요시다 마사타카 오릭스 / .339 |
마츠모토 고 닛폰햄 / .347 |
톤구 유마 오릭스 / .307 |
콘도 켄스케 소프트뱅크 / .314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91db><tablebgcolor=#0091db> |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다안타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단일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tablewidth=100%> 1936년 ~ 1949년 | ||||
<rowcolor=#ffffff> 1936秋 | 1937春 | 1937秋 | 1938春 | 1938秋 | ||
후지이 이사오 오사카 / 40개 |
마츠키 켄지로 오사카 / 70개 |
버키 해리스 고라쿠엔 / 62개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50개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56개 |
||
<rowcolor=#ffffff>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
카와카미 테츠하루 도쿄쿄진군 / 116개 |
키토 카즈오 라이온군 / 124개 |
카와카미 테츠하루 도쿄쿄진군 / 105개 |
나카지마 하루야스 도쿄쿄진군 / 111개 |
이시이 마사유키 도쿄쿄진군 / 89개 |
||
<rowcolor=#ffffff> 1944 | 1946 | 1947 | 1948 | 1949 | ||
오쿠무라 토시아키 킨키닛폰 / 48개 |
카네다 마사야스 오사카 / 152개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137개 오시타 히로시 토큐 / 137개 |
아오타 노보루 요미우리 / 174개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187개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센트럴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 191개 |
고토 츠구오 오사카 / 155개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163개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162개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172개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147개 요시다 요시오 오사카 / 147개 |
카와카미 테츠하루 요미우리 / 160개 |
요나미네 카나메 요미우리 / 160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3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0개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1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8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1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63개 |
쿠와타 타케시 타이요 / 161개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콘도 카즈히코 타이요 / 152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63개 |
후지타 타이라 한신 / 154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7개 |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56개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38개 |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 155개 |
키누가사 사치오 히로시마 / 138개 |
오 사다하루 요미우리 / 152개 |
마츠바라 마코토 타이요 / 157개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이노우에 히로아키 주니치 / 149개 |
하리모토 이사오 요미우리 / 182개 |
와카마츠 츠토무 야쿠르트 / 158개 |
마츠바라 마코토 타이요 / 164개 |
오시마 야스노리 주니치 / 159개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타카하시 요시히코 히로시마 / 169개 |
짐 라이틀 히로시마 / 157개 |
타오 야스시 주니치 / 174개 |
타오 야스시 주니치 / 161개 |
타오 야스시 야자와 켄이치 주니치 / 166개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랜디 바스 한신 / 174개 |
랜디 바스 한신 / 176개 |
카를로스 폰세 타이요 / 159개 |
짐 파치오렉 타이요 / 165개 |
워렌 크로마티 요미우리 / 166개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짐 파치오렉 타이요 / 172개 |
노무라 켄지로 히로시마 / 170개 |
짐 파치오렉 한신 / 159개 |
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 161개 와다 유타카 한신 / 161개 |
노무라 켄지로 히로시마 / 169개 |
|
<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노무라 켄지로 히로시마 / 173개 |
알론조 파웰 주니치 / 176개 |
루이스 로페스 히로시마 / 170개 |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 174개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 192개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로버트 로즈 요코하마 / 168개 |
이시이 타쿠로 요코하마 / 171개 |
시미즈 타카유키 요미우리 / 191개 |
알렉스 라미레스 야쿠르트 / 189개 |
시마 시게노부 히로시마 / 189개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 202개 |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 192개 |
알렉스 라미레스 야쿠르트 / 204개 |
우치카와 세이이치 요코하마 / 189개 |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 186개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맷 머튼 한신 / 214개 |
맷 머튼 한신 / 180개 |
사카모토 하야토 초노 히사요시 요미우리 / 173개 |
맷 머튼 한신 / 178개 |
야마다 테츠토 야쿠르트 / 193개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카와바타 신고 야쿠르트 / 195개 |
키쿠치 료스케 히로시마 / 181개 |
마루 요시히로 히로시마 / 171개 호세 로페스 DeNA / 171개 |
다얀 비시에도 주니치 / 178개 |
오오시마 요헤이 주니치 / 174개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오오시마 요헤이 주니치 / 146개 |
치카모토 코지 한신 / 178개 |
사노 케이타 DeNA / 161개 오카바야시 유키 주니치 / 161개 |
나카노 타쿠무 한신 / 164개 마키 슈고 DeNA / 164개 |
나가오카 히데키 야쿠르트 / 163개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퍼시픽 리그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
|||||
<rowcolor=#ffffff> 1950 | 1951 | 1952 | 1953 | 1954 | |
벳토 카오루 마이니치 / 160개 |
키즈카 타다스케 난카이 / 130개 |
이이다 토쿠지 난카이 / 153개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146개 |
래리 레인즈 한큐 / 184개 |
|
<rowcolor=#ffffff> 1955 | 1956 | 1957 | 1958 | 1959 | |
이이다 토쿠지 난카이 / 163개 로베르토 바르본 한큐 / 163개 |
사사키 신야 타카하시 / 180개 |
나카니시 후토시 니시테츠 / 154개 |
카츠라기 타카오 다이마이 / 147개 |
카츠라기 타카오 다이마이 / 163개 |
|
<rowcolor=#ffffff> 1960 | 1961 | 1962 | 1963 | 1964 | |
에노모토 키하치 다이마이 / 170개 |
에노모토 키하치 다이마이 / 180개 |
에노모토 키하치 다이마이 / 160개 |
히로세 요시노리 난카이 / 187개 |
도이 마사히로 킨테츠 / 168개 |
|
<rowcolor=#ffffff>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
노무라 카츠야 난카이 / 156개 |
에노모토 키하치 도쿄 오리온즈 / 167개 |
도이 마사히로 킨테츠 / 147개 |
조지 알트만 도쿄 오리온즈 / 170개 |
나가부치 요조 킨테츠 / 162개 |
|
<rowcolor=#ffffff> 1970 | 1971 | 1972 | 1973 | 1974 |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176개 |
오오스기 카츠오 토에이 / 154개 |
하리모토 이사오 토에이 / 169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152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156개 |
|
<rowcolor=#ffffff> 1975 | 1976 | 1977 | 1978 | 1979 | |
히로타 스미오 롯데 / 148개 |
후지와라 미츠루 난카이 / 159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165개 |
후쿠모토 유타카 한큐 / 171개 |
카토 히데지 한큐 / 163개 |
|
<rowcolor=#ffffff> 1980 | 1981 | 1982 | 1983 | 1984 | |
레론 리 롯데 / 175개 |
후지와라 미츠루 난카이 / 157개 |
오치아이 히로미츠 롯데 / 150개 |
스티브 온티베로스 세이부 / 153개 |
부머 웰즈 한큐 / 171개 |
|
<rowcolor=#ffffff>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부머 웰즈 한큐 / 173개 |
부머 웰즈 한큐 / 173개 |
아라이 히로마사 킨테츠 / 184개 |
타카자와 히데아키 롯데 / 158개 |
부머 웰즈 오릭스 / 165개 |
|
<rowcolor=#ffffff>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
짐 트라버 킨테츠 / 150개 |
사사키 마코토 다이에 / 158개 |
사사키 마코토 다이에 / 164개 |
이시이 히로오 킨테츠 / 147개 |
이치로 오릭스 / 210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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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
이치로 오릭스 / 179개 |
이치로 오릭스 / 193개 |
이치로 오릭스 / 185개 |
이치로 오릭스 / 181개 |
마츠이 카즈오 세이부 / 178개 |
|
<rowcolor=#ffffff>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182개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닛폰햄 / 195개 |
마츠이 카즈오 세이부 / 193개 |
타니 요시토모 오릭스 / 189개 |
마츠나카 노부히코 카와사키 무네노리 다이에 / 171개 |
|
<rowcolor=#fff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와다 카즈히로 세이부 / 153개 |
오오무라 나오유키 소프트뱅크 / 165개 |
이나바 아츠노리 닛폰햄 / 176개 |
쿠리야마 타쿠미 카타오카 야스유키 세이부 / 167개 |
나카지마 히로유키 세이부 / 173개 |
|
<rowcolor=#ffffff>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
니시오카 츠요시 롯데 / 206개 |
사카구치 토모타카 오릭스 / 175개 |
우치카와 세이이치 소프트뱅크 / 157개 |
하세가와 유야 소프트뱅크 / 198개 |
나카무라 아키라 소프트뱅크 / 176개 |
|
<rowcolor=#ffffff>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아키야마 쇼고 세이부 / 216개 |
카쿠나카 카츠야 롯데 / 178개 |
아키야마 쇼고 세이부 / 185개 |
아키야마 쇼고 세이부 / 195개 |
아키야마 쇼고 세이부 / 179개 |
|
<rowcolor=#ffffff>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146개 |
오기노 타카시 롯데 / 169개 |
시마우치 히로아키 라쿠텐 / 161개 |
야나기타 유키 소프트뱅크 / 163개 |
타츠미 료스케 라쿠텐 / 158개 |
최다안타는 1994년부터 공식 타이틀로 시상했다. |
이마에 토시아키 ( 치바 롯데 마린즈) |
→ |
이나바 아츠노리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 |
나카무라 노리히로 ( 주니치 드래곤즈) |
이나바 아츠노리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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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야쿠르트 스왈로즈]] 등번호 41번}}} | ||||||||||||||||||||||||||||||||||||||
카나자와 츠기오 (1990~1994) |
→ |
이나바 아츠노리 (1995~2004) |
→ |
키다 마사오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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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등번호 58번 | |||||||||||||||||||||||||||||||||||||||
카미시마 타카시 (2000~2003) |
→ |
이나바 아츠노리 (2005) |
→ |
타카구치 타카유키 (2006~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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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등번호 41번 | |||||||||||||||||||||||||||||||||||||||
카토 카츠히토 (2003~2005) |
→ |
이나바 아츠노리 (2006~2014) |
→ |
브라이언 로드리게즈 (2018~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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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등번호 80번 | |||||||||||||||||||||||||||||||||||||||
야마모토 코지 (2008) |
→ |
이나바 아츠노리 (2015~2021) |
→ | 공번 |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등번호 90번 | |||||||||||||||||||||||||||||||||||||||
와타나베 히로시 (2021~2023) |
→ |
이나바 아츠노리 (2024~) |
→ | 현역 |
|
|
<colbgcolor=#006298><colcolor=#ffffff>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No.90 | |
이나바 아츠노리 稲葉篤紀 | Atsunori Inaba |
|
출생 | 1972년 8월 3일 ([age(1972-08-03)]세) |
아이치현 니시카스가이군 시카츠초 (現 아이치현 키타나고야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추쿄 고교 (아이치)[1] - 호세이대학[2] |
신체 | 185cm, 94kg |
포지션 | 외야수, 1루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94년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30번, 야쿠르트) |
소속팀 |
야쿠르트 스왈로즈 (1995~2004)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5~2014) |
지도자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군 코치 (2013)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13~2017)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7~202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군 감독 (2024~) |
프런트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GM (2022~2023) |
등장곡 |
야쿠르트 시절:
필살사괘인 OST - 황야의 끝에 닛폰햄 시절: Queen - I Was Born to Love You |
응원가 |
야쿠르트 시절[3] 닛폰햄 시절[4] 닛폰햄 시절 찬스 시(이나바 점프)[5] |
[clearfix]
1. 개요
전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군 감독이다.선수시절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간판 스타로 활약했었다.
2. 선수 경력
2.1. 프로 데뷔 이전
고등학교 3학년때 치른 여름 고시엔 지역예선 아이치 대회 준결승에서 스즈키 이치로를 내세운 아이치공대 부속 메이덴 고교 에 4-5로 석패하는 바람에 고시엔 무대는 고등학교 3년동안 밟아보질 못했다. 졸업 후에는 호세이대학 경영학부에 입학하며 야구를 계속했고 1993년 봄 대회에서 주전 1루수로 활약했다. 같은해 열린 제 22회 미일 대학야구 대표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4학년때는 팀의 4번타자로 활약. 호세이대학의 추계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이 해에 도쿄 6대학 야구 춘계리그 베스트 나인, 2년 연속 미일 대학야구 대표팀에 선정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대학 졸업 후 1994년 드래프트 회의에 참가하였고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3순위에 지명하였다.
2.2.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
2001년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 이와쿠마 히사시를 상대하는 이나바 |
이후 1998~2000, 2003년에 부상으로 고전한 것을 빼면 2004년까지 야쿠르트의 중심타선의 일원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특히 2001년엔 타율 .311 25홈런 90타점으로 활약하여 야쿠르트의 센트럴리그- 일본시리즈 제패를 이끌며 데뷔 첫 베스트나인에도 선정되었다.
2004년 시즌 종료 후 FA 선언을 통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노렸으나 트라이아웃까지 시도했음에도 영입 의사를 보이는 구단이 나오질 않으면서 결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했고 2005년 2월에 연봉 23% 삭감(7800만엔 → 6000만엔)을 감수하고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입단에 협의하며 야쿠르트를 떠나게 되었다.[6]
2.3.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이적 첫해 125경기에 나서서 타율 .271 15홈런으로 2004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성적으로 시작했다. 2006년에는 야쿠르트 시절부터 사용했던 등번호인 41번을 달았고 2001년 이후 모처럼 3할타율에 복귀하는가 하면 커리어 최다인 26홈런을 때려내며 닛폰햄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 활약상은 가을야구에서도 이어져 2006년 일본시리즈 MVP까지 수상하는데 이르렀고 데뷔 첫 골든글러브까지 받게되었다.[7]
2007년에는 .337의 타율로 수위타자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2009년까지 3할타율을 기록하며 4년 연속 3할을 기록했다.
2012년 개인 통산 250홈런과 2000안타, 1000타점, 2000경기 출전을 달성하였다.
2013년 시즌 전 40대의 몸으로 wbc 대표팀에 발탁되었고[8] 네덜란드전에서 홈런을 쏘아올리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쇠화를 이기지 못하고 리그 성적이 급락했다. 2014년 왼 무릎 수술을 받고 7월 무렵 복귀하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 해 9월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한다. 오릭스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선 대타로 나와 적시타를 쳐 팀을 파이널 스테이지로 이끌었으나 결국 소프트뱅크에 막혀 일본시리즈 진출은 끝내 좌절되었다. 결과적으로 파이널 스테이지 일리미네이션 게임이 이나바의 은퇴경기가 된 셈.
3. 은퇴 이후
은퇴 직후인 2015년에는 테레비 아사히 홋카이도 테레비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5년 초에 열린 평가전에서 대표팀의 코치를 맡으며 지도자 경력도 쌓기 시작했다. 그해 말에 열린 제 1회 프리미어12에도 타격코치를 역임했다.2016년에도 대만, 네덜란드,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도 코치로 발탁되었고 2017 wbc에서도 코치직을 역임하면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전임자였던 고쿠보 히로키가 2017 wbc를 끝으로 사임하자 차기 감독으로 물망에 올랐고 7월 31일에 일본 야구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4. 지도자 경력
4.1.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감독 취임 후 처음으로 나서게 된 대회인 2017 APBC에서 3전 전승을 거두며 초대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감독 취임 이후 첫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2018시즌이 끝나고 치러진 미일야구 올스타전에서도 도합 5승 1패를 거두는 등 그럭저럭 무난히 감독직을 수행하는 모습이다.2019 프리미어 12를 앞두고 선수 선발에서 의문점을 자아내기도 했다. 시즌내내 애니콜이었고 4점대로 다소 부진한 타구치 카즈토를 발탁하고 1할 9푼이라는 절망적인 타율임에도 단지 주루 능력만 믿고 소프트뱅크의 슈토 우쿄를 데려가는 등 뽑아 갔어야 했나? 싶은 선수 선발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결승에서 한국을 누르고 2회 대회를 우승하면서 우려를 불식시켰다.
아니 오히려 2017 APBC의 우승주역들인 속칭 '이나바의 아이들'이 대회에서 쏠쏠하게 활약했다. 타구치는 롱릴리버로 나서서 깔끔한 투구를 보여주었고 이마나가 쇼타는 예선에선 투구내용이 나빴으나 슈퍼라운드에서 호투하며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야마사키 야스아키 역시 대회기간동안 대표팀의 9회를 원천봉쇄하며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다. 겐다 소스케도 호주전 결승 스퀴즈 득점과 안정적인 수비로 대표팀을 든든히 지탱하였다.
그리고 17년 '이나바의 아이들'의 멤버는 아니지만 발만 믿고 발탁한 슈토 우쿄는 신들린 주루 플레이로 호주전 역전승의 주역이 되며 단기전에서 대주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켰다.
어쨌든 현재까지의 감독 이나바는 대체적으로 평가가 좋은 편. 특히 일본이 국제대회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일전에서 아직까지 패배가 없다는 점이 고평가의 주요 원인이다. 그것도 사무라이 재팬을 내세워 인기를 끌던 하라 감독 시절처럼 빅볼로 조져대고 있어서 더더욱 고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선 평가가 급격히 나빠졌는데 대표팀 멤버 선출에서 너무 이름값에만 치중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라쿠텐과의 평가전에서 역전패를 당하면서 APBC와 프리미어12에서 쌓아왔던 좋은 평가를 까먹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 개막전을 맞이했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에게 3대 1로 패배 위기까지 갔다가 겨우 역전승을 거두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한국과의 경기에서도 8회까지 2대 2로 접전을 벌인 끝에 한국의 실책성 플레이로 간신히 5대 2로 이겼다.
올림픽 기간 내내 대부분의 경기를 어렵게 끌고가며 전반적인 경기 운영과 선수 기용 문제 등으로 까이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는 중. 분명 비판적인 요소는 많으나 이기기는 하다보니 대놓고 뭐라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2021년 8월 7일, 올림픽 결승에서 미국을 2대 0으로 꺾고 드디어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오랜 염원이었던 올림픽 금메달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경기 종료 직후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었는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9]
올림픽 종료 후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임기가 만료되며 감독직에서 아름답게 물러나게 되었다. 박수칠 때 떠난 셈이다. 또한 그 유명한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가 생각나는 대목의 반대로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나는 대목이다.
5. 프런트 경력
5.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GM
2012년부터 2021년까지 팀을 지휘한 쿠리야마 히데키의 사임 발표 후 후임 감독으로 거론되는 가장 유력한 후보였으나 구단 GM으로 가면서 프런트 쪽으로 노선을 틀었다. # 결국 26일 차기감독은 신조 츠요시로 내정되었다.감독직을 고사한 것에 대해선 여러 추측이 있지만 아내의 선수단 내 갑질 문제가 발목을 잡은 것 아니냐는 설이 나오는 등 정확한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6. 플레이 스타일
이나바의 타격폼 |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2006~2009년까지, 1루수 골든글러브를 2012년에 수상한 실적이 있는 만큼 수비력도 나쁘지 않았다. 외야 수비시 위치판단 능력이 좋으며 우익수로 출전한 2002년, 2006년에 리그 외야수 레인지 팩터 1위에 오르는 등 수비 범위도 넓은편이었다. 리그 외야수 보살 1위를 2차례 기록할만큼 송구 능력도 탁월하다. 멀리던지기 기록이 80미터에 그칠만큼 강견은 아니지만 송구동작이 상당히 민첩하고 송구 정확도가 좋아서 평범한 어깨를 가지고도 많은 보살을 기록할 수 있었다.
도루 시도 자체는 적지만 1루까지 3.96초, 3루까지 11.45초를 내달릴 만큼 느린 주자는 아니다. 평소 공수교대 때에도 전력질주를 하는 만큼 주루플레이에서도 전력을 다해 뛴다고.
7. 여담
- 야쿠르트 시절 팀 동료인 알렉스 라미레스가 입단 당시 우익수 계약을 맺었으나 스프링캠프에서 이나바의 수비를 보고 "포지션 경쟁에선 이나바에게 못 이기겠다"라고 판단해 스스로 좌익수로 옮겨간 일화가 있다. 결과적으로 두 선수 모두 외야 주전으로써 팀 공격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 프로필 상에는 좌투좌타라고 명시되어있으나 젓가락질, 필기는 오른손으로 한다. 골프를 칠 때도 오른쪽으로 친다고...
- 한때 근시였던 탓에 시력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콘택트 렌즈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야쿠르트 입단 이후에 라식수술을 받으면서 시력을 회복했다.
- 통산 사구가 138개로 이는 좌타자는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위는 요미우리의 아베 신노스케.
- 유년 시절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쉽게 울음을 터뜨리는 유약한 성격이었고 그 때문에 학창시절 많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선배들의 담배 셔틀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이 일이 아버지에게 알려져 크게 훈계를 받게 되었고, 이때 훈계를 받으면서 "강해져야 한다"는 결심을 한 뒤 자신을 괴롭히던 학교 선배와 담판을 벌여서 이후로는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개인 성적보다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경향인데 2000안타를 달성했을 때도 "딱히 마음먹고 노린 것은 아니었고, 득점 찬스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려는 마음 뿐이었다.", "2000개의 안타를 때리려고 시즌을 치르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감독님을 헹가래하기 위해서(우승을 하기 위해서) 시즌을 치르는 것이다.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고 개인 성적은 뒷전이다."한 코멘트로 2000안타를 크게 의식하지 않은 채 팀의 승리가 더 중요하다는 코멘트를 남겼다.[10]
- 현역시절 경기 전에 동료들과 캐치볼을 할 때 몇몇 좌완 투수들의 투구폼을 흉내내서 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 닛폰햄 이적 첫 시즌인 2005년에 58번을 단 것을 제외하면 계속해서 등번호 41번을 고수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41이 자신의 이니셜인 'AI(Atsunori Inaba)'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 좋아하는 음식은 감자칩. 오프시즌 때 하도 감자칩을 많이 먹는 바람에 체중조절이 안될 때가 있었다고 하며, 실제로 은퇴 시즌인 2014년 1월엔 감자칩을 엄청나게 먹어댄 탓에 체중이 기존의 94kg에서 100kg 이상까지 늘어났다. 이러한 체중 변화를 억제하기 위해 저칼로리 감자칩을 먹으면서 체중 조절을 한다고 한다.
- 홋카이도에서는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해, 홋카이도 가스 CF에 나오기도 했다.
- 득점권 찬스에서 주로 행해지는 '이나바 점프'로 일컬어지는 응원법이 있다. 발단은 2006년 당시 미야기 구장의 규정상 트럼펫 등 소리가 큰 응원 도구를 쓸 수가 없어 육성 위주로만 응원이 행해졌는데 이 때문에 찬스에서 사용할 팡파르를 제대로 구현하기 어려웠다. 큰 소리를 내기 어려우니 점프라도 해서 분위기를 살려보고자 했는데[11]초반엔 소규모로 행해지던 이 응원 방식은 점차 규모가 커지더니 2000년대 후반부터는 삿포로 돔이 들썩일 정도[12]로 장관을 이루는 응원 방법으로 거듭났다. 이나바의 은퇴경기에선 소프트뱅크 호크스 팬들도 함께 이나바 점프를 즐겼을 만큼 # 꽤나 인기있었던 응원. 이나바 본인도 이 응원을 당연히 알고 있으며 응원이 시작될때마다 초구를 거의 놓쳤다고 한다. 이나바의 은퇴 이후엔 나카타 쇼가 물려받았다. 나카타가 후배를 폭행하는 대형 사고를 저지른 바람에 요미우리로 트레이드 돼서 현재는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상황. 워낙 인기가 커서 다른 선수들이 물려받을 듯하다.
[1]
현
추쿄대학 부속 추쿄 고교
[2]
경영학부
[3]
狙いすまして 鋭く打ち返せ 稲葉篤紀 頼りになる男 (단단히 노려라 날카롭게 되받아쳐라 이나바 아츠노리 믿음직한 사나이)
[4]
今、見せろ お前の底力を 突き進め 勝利を掴み取れ (지금 보여줘라 너의 저력을 힘차게 나아가라 승리를 차지해라)
[5]
가사는 동일하며 전주만 추가되었다.
[6]
닛폰햄 파이터즈 구단 역대 최초의 FA 영입이자 2022년 시즌 종료 후
후시미 토라이를 영입하기 전까진 닛폰햄이 유일하게 타구단 출신 선수를 FA로 영입한 사례였다. 중간인 2018년에 츠루오카 신야를 FA로 영입하긴 했으나 이쪽은 닛폰햄에서 데뷔 후 2015년 소프트뱅크로 FA 이적했다가 다시 FA로 되돌아온 거라
홍성흔,
양의지처럼 이전 소속 선수를 다시 데려온 사례다.
[7]
이 당시 좌익수 모리모토 히쵸리 - 중견수 신조 츠요시 - 우익수 이나바 아츠노리가 모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한 팀의 외야수 세 명이 모두 글든글러브로 선정된 건 대단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8]
그것도 소속팀에서는 플레잉코치신분이었다.
[9]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기도 했고, 올림픽에서 퇴출되었다가 다시 부활한 종목인 만큼 이번 기회에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하면 자국내에서 엄청난 비판 여론이 나올것이고 언제 다시 금메달에 재도전 할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나바 본인도 이를 모를리가 없었기에 금메달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올림픽에 임했고 그에 따른 엄청난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올림픽 이전부터 받다가 대회가 좋게 마무리 되었으니 그간 쌓여왔던 감정들이 북받쳐 오른것.
[10]
여담으로 2000안타를 때려낸 공은 잃어버렸다고 한다.
[11]
반면 일본 위키피디아에서는 응원 분위기가 아니라 단지 초봄의 센다이 날씨가 추워서 소수의 관중들이 점프를 하기 시작한 것에서 착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2]
삿포로 돔 규정상 내야석은 점프가 금지되어 있지만 이나바 점프를 할때만은 예외다. 대신 전주가 끝나면 빛의 속도로 착석. 이때 발생되는 진도는 대략 3~4 정도에 해당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