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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의 주요 저널·여론조사 선정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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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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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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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 |
|
헌액 부문 | 공연자 (Performers) | ||
멤버 |
데이비드 길모어, 로저 워터스, 닉 메이슨, 시드 배릿, 릭 라이트 |
||
입성 연도 | 1996년 | ||
후보자격 연도 | 1993년 | ||
후보선정 연도 | 1994년, 1996년 | }}}}}}}}} |
영국 음악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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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헌액 |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 1960년대: 비틀즈 1970년대: 밥 말리 1980년대: 마돈나 1990년대: U2 |
|
2004년 헌액 | |
50년대:
클리프 리처드 &
섀도우즈 60년대: 롤링 스톤스 70년대: 퀸 80년대: 마이클 잭슨 90년대: 로비 윌리엄스 |
|
2005년 헌액 | |
핑크 플로이드 유리드믹스 아레사 프랭클린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조이 디비전 / 뉴 오더 더 후 킹크스 블랙 사바스 오지 오스본 |
|
2006년 헌액 | |
제임스 브라운 레드 제플린 로드 스튜어트 브라이언 윌슨 본 조비 프린스 더스티 스프링필드 조지 마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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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음악상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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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1996년 |
폴 매카트니 발트 3국 |
디지 길레스피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 |
퀸시 존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엘튼 존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
조니 미첼 피에르 불레즈 |
|
1997년 | 1998년 | 1999년 | 2000년 | 2001년 | |
브루스 스프링스틴 에릭 에릭슨 |
레이 찰스 라비 샹카르 |
스티비 원더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
밥 딜런 아이작 스턴 |
버트 배커랙 로버트 무그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
미리엄 마케바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
키스 재럿 |
비비 킹 리게티 죄르지 |
지우베르투 지우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
레드 제플린 발레리 게르기예프 |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
소니 롤린스 스티브 라이히 |
핑크 플로이드 르네 플레밍 |
피터 가브리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 엘 시스테마 |
비요크 엔니오 모리코네 |
크로노스 콰르텟 패티 스미스 |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
폴 사이먼 요요마 |
유수 은두르 카이야 사리아호 |
척 베리 피터 셀라스 |
에밀루 해리스 에벌린 글레니 |
맥스 마틴 체칠리아 바르톨리 |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 | |
스팅 웨인 쇼터 |
메탈리카 아프가니스탄 국립 음악 연구소 |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안네 소피 무터 플레잉 포 체인지 |
안나 네트렙코 다이앤 워런 |
없음 | |
2022년 | 2023년 | 2024년 | 2025년 | 2026년 | |
이기 팝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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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의 주요 등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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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의 기네스북 등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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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ness World Records | |||
역사상 가장 오래 빌보드 차트에 머무른 앨범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기록자 | 수치 | 날짜 | 출처 |
핑크 플로이드 ( The Dark Side of the Moon) |
741주 (약 14년) |
1988년 7월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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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 |
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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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시드 바렛, 로저 워터스, 데이비드 길모어, 릭 라이트, 닉 메이슨[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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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다른 사진 보기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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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라인업 (1967년) 왼쪽부터 릭 라이트, 로저 워터스, 시드 바렛, 닉 메이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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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 바렛 탈퇴 이전 라인업 (1968년) 왼쪽부터 닉 메이슨, 시드 바렛, 데이비드 길모어, 로저 워터스, 릭 라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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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 바렛 탈퇴 이후 라인업 (1968년) 왼쪽부터 닉 메이슨, 데이비드 길모어, 릭 라이트, 로저 워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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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워터스 탈퇴 이후 라인업 (1985년) 왼쪽부터 릭 라이트, 데이비드 길모어, 닉 메이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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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8에서의 재결성 당시 라인업 (2005년) 왼쪽부터 데이비드 길모어, 로저 워터스, 닉 메이슨, 릭 라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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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결성한 현재 라인업 (2022년) 왼쪽부터 니틴 사우니, 데이비드 길모어, 닉 메이슨, 가이 프랫 |
<colcolor=#fff><colbgcolor=#000>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
결성 | 1965년 | |
영국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2] | ||
데뷔 |
1967년
3월 11일 (데뷔일로부터 [dday(1967-03-11)]일, [age(1967-03-11)]주년) |
|
싱글 | ||
데뷔 앨범 | ||
해체 | 1995년 | |
재결성 | 2005년[3], 2007년[4], 2012년 – 2014년[5], 2022년[6] | |
리더 |
시드 바렛 (1965 – 1968) 로저 워터스 (1970s – 1985)[7] 데이비드 길모어 (1985 – 1995) |
|
멤버 | <colcolor=#fff><colbgcolor=#000> 해체 직전 |
닉 메이슨 (드럼) 데이비드 길모어 (기타) 리처드 라이트 (키보드) |
전 멤버 |
시드 바렛 (기타)[8] 로저 워터스 (베이스)[9] |
|
장르 | 초기[10] | 사이키델릭 록, 스페이스 록, 익스페리멘탈 록, 사이키델릭 팝, 포크 록 |
중후기[11] |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 | |
레이블 | EMI, 하베스트, 콜럼비아, 타워, 캐피톨, 소니 | |
링크 | ||
[clearfix]
1. 개요
|
핑크 플로이드의 첫 시작은 1965년 리전드 스트리트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스쿨 밴드를 하고 있던 시드 바렛, 로저 워터스, 리처드 라이트, 닉 메이슨이 밴드의 이름을 The Pink Floyd Sound로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밴드의 극초창기에는 장르가 사이키델릭 록 이었으며, 시드 바렛이 기타부터 보컬까지 대부분의 곡 연주와 작곡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시드 바렛이 약물 중독, 정신 건강 악화 등 다양한 이유로 급작스레 2집 제작 도중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다. 이후 시드 바렛의 대타로 공연에서 뛰었던 데이비드 길모어가 밴드의 일원으로 참여하였으며, 시드 바렛의 절친한 친구였던 로저 워터스가 밴드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로저 워터스 체제를 거치면서 점차적으로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는 낮아지고 프로그레시브 록의 분위기가 주를 차지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들어 로저 워터스가 독재 수준으로 밴드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이로 인해 리처드 라이트가 1979년 해고 당했고, 로저 워터스도 1985년 탈퇴하게 되었다. 이후 데이비드 길모어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리처드 라이트가 밴드에 복귀했고, 2장의 음반을 발표한후 1995년 해체했다. 자세한 내용은 핑크 플로이드/역사 문서 참조.
핑크 플로이드는 가사에서 사회고발적인 내용을 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매우 다양한 악기와 소리를 이용해 다소 전위적인 느낌의 곡을 작곡하는 경향이 있다. 철학적인 주제와 그들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노래 뿐만이 아닌, 앨범에도 녹여 내고자 했고 앨범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 또한 있을 정도이다. 이런 음악의 혁신성과 지대한 영향력 때문에, 핑크 플로이드는 레드 제플린, 데이비드 보위 등과 더불어 후대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대표적인 1970년대 록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비평적으로 성공한 것을 넘어서 상업적으로도 매우 성공했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중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로 불리며, 현재까지 통산 역대 앨범 판매량 8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록 밴드로 한정할 시 비틀즈, 레드 제플린에 이은 3위이다.[12]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역대 최장기간 동안 빌보드에 등재된 음반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을 정도고, 지금도 역대 음반 판매량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에도 비틀즈, 레드 제플린, 너바나, 퀸, AC/DC, 롤링 스톤스, U2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밴드이며, 록 씬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드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또한 앞에서 열거된 밴드 중에서도 활동 기간이 롤링 스톤스와 더불어 독보적으로 길어[13] 팬들도 1940년대생부터 1980년대생, 혹은 새로 유입된 밀레니엄 세대까지 매우 다양하게 분포되어있다.
진보(좌파) 사상이 강한 밴드이지만 의외로 1980년대 한국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광고 등에 삽입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았다. 일례로 On the Run은 1986년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제작한 간첩신고 공익광고의 배경음으로 쓰였다. 당시 광고영상 동시대에 정치 성향을 드러내지 않았던 레드 제플린, 퀸의 대부분의 곡들이 한국에서는 금지곡 처리됐던 것을 보면 매우 아이러니한 부분이라 볼 수 있다.[14]
2. 멤버
핑크 플로이드의 구성 멤버 | ||
시드 바렛 Syd Barret | ||
<colbgcolor=#000><colcolor=#fff> 생몰 | 1946년 1월 6일 - 2006년 7월 7일 (향년 60세) | |
출신지 |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케임브리지 | |
활동 | 1965년 - 1968년 | |
포지션 | 보컬, 기타 | |
로저 워터스 Roger Waters | ||
출생 | 1943년 9월 6일 ~ ([age(1943-09-06)]세) | |
출신지 | 영국 잉글랜드 서리 그레이트 부컴 | |
활동 | 1965년 - 1985년 | |
포지션 | 보컬, 베이스 | |
데이비드 길모어 David Gilmour | ||
출생 | 1946년 3월 6일 ~ ([age(1946-03-06)]세) | |
출신지 | 영국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케임브리지 | |
활동 | 1968년 - 1995년 | |
포지션 | 보컬, 기타 | |
릭 라이트 Rick Wright | ||
생몰 | 1943년 7월 28일 - 2008년 9월 15일 (향년 65세) | |
출신지 | 영국 잉글랜드 미들섹스 해치엔드 | |
활동 | 1965년 - 1981년, 1987년 - 1995년 | |
포지션 | 보컬, 키보드 | |
닉 메이슨 Nick Mason | ||
출생 | 1944년 1월 27일 - ([age(1944-01-27)]세) | |
출신지 | 영국 잉글랜드 버밍엄 에지버스턴 | |
활동 | 1965년 - 1995년 | |
포지션 | 드럼, 보컬 | |
그 외
|
밥 클로스 | |
2인조[15], 3인조[16], 4인조[17], 5인조[18] 록 밴드를 모두 거쳐본 특이한 멤버 구성 이력을 가지고 있다. 본래 밴드의 리더는 시드 바렛이었고 밴드 초기 스타일도 시드 바렛의 음악적 취향에 맞게 사이키델릭 록이 다수를 점했다. 그러나 시드 바렛이 건강상의 문제로 탈퇴했고, 로저 워터스가 주도권을 잡으며 프로그레시브 록 성향이 강해진다. 1985년, 로저 워터스가 탈퇴했고, 해체할 때까지 데이비드 길모어가 리더가 되었다.
비틀즈가 리버풀의 쿼리벵크 고등학교에서 시작되었고, 퀸이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스쿨 밴드에서 시작되었듯이 핑크 플로이드는 런던의 리전드 스트리트 폴리테크닉 대학교에서 시작했다. 정확히는 누군가가 만든 스쿨 밴드에 로저 워터스와 닉 메이슨이 가입 했고, 이후 릭 라이트와 시드 바렛이 합류, 이후 데이비드 길모어가 가입했다. 시드 바렛 합류 전 밥 클로스(Bob Klose)라는 기타리스트도 잠깐 합류해 녹음도 했지만 1965년 중순 탈퇴했다.
멤버들이 모두 뛰어난 음악가이자 록 음악의 아이콘과도 같은 인물이며 멤버 모두 프로그레시브 록과 사이키델릭 록 사상 최고의 작곡가들로 거론된다. 특히 시드 바렛은 사이키델릭 록 성향의 음악가들에게 각광을 받는다.
로저 워터스는 사회 비판적인 가사와 음반 컨셉을 구성하는 스토리 텔링으로 유명하며, 데이비드 길모어는 락 음악 역사 상 가장 뛰어난 기타리스트 중 한명으로 꼽힌다. 리처드 라이트는 가장 위대한 키보디스트 순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의 한 축을 담당한 뛰어난 뮤지션으로 평가 받고 있다. 닉 메이슨은 다른 멤버들에게 묻히는 감이 있으나, 역시 뛰어난 뮤지션으로 평가 받고 있다.
초창기 리더 였던 시드 바렛은 신비주의적인 메세지와 사이키델릭 록을 선호했었다. 하지만 바렛이 갑작스럽게 탈퇴를 하면서 밴드는 로저 워터스가 리더를 맡고, 주로 워터스와 데이비드 길모어, 리처드 라이트가 각각 역할을 분담해서 음악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로저 워터스는 사회주의적인 메시지와 상징적인 가사, 전체적인 음반과 곡을 구상했다면, 데이비드 길모어는 하드 록, 블루스 적인 라인을, 리처드 라이트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 재즈적인 화음을 만들어 나갔다.[19] 이러한 세 멤버의 분담역할은 A Saucerful of Secrets, Atom Heart Mother, Meddle 같은 과도기를 지나서 핑크 플로이드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 받는 The Dark Side of the Moon과 Wish You Were Here에서 절정을 이뤘다고 평가 받는다. 특히 이러한 면은 Wish You Were Here 수록곡인 Shine on You Crazy Diamond에서 크게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후 워터스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상징적인 가사, 컨셉 음반 같은 워터스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강화된 반면 라이트 특유의 사이키델릭, 재즈적인 분위기가 사라졌다. 이러한면은 워터스 독주 체제때 발표된 Animals, The Wall, The Final Cut에서 확연히 느껴지다. 반면 워터스가 탈퇴한 이후 길모어가 주도권을 잡고, 라이트가 재 가입하면서 다시 이전에 전성기 시절 음악적 색체와 유사하게 돌아온 반면 워터스 특유의 상징적인 가사, 컨셉 음반 지향적인 분위기는 사라졌다. 이러한 면은 The Division Bell, The Endless River에서 두드러진다.
이렇게 각자의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음악가들이었기 때문에 핑크 플로이드는 록 밴드로서 드물게 시대별로, 그리고 리더별로 음악적인 성향이 딱딱 나눠지는 밴드이다. 제네시스, 플리트우드 맥, 딥 퍼플, 비틀즈,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과 마찬가지로 초기 음악과 후기 음악의 간극이 무척이나 넓다. 이에 따라 팬들도 전체를 좋아하는 팬, 시드 바렛 팬, 로저 워터스 팬, 그리고 데이비드 길모어 팬으로 나뉘어지는 경향이 있다.
비틀즈만큼은 아니더라도 솔로 활동도 꽤나 성공한 축에 속하며 특히 로저 워터스는 록 음악가로서 가장 많은 공연 수익을 벌어들였다.
이외에도 은둔 성향이 강했던 시드 바랫과 대중앞에 나서기를 꺼렸던 릭 라이트를 제외하면 나머지 멤버들 모두 사회 운동 참여에 적극적인 편이다. 데이비드 길모어는 밴드의 Live 8공연의 수익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했고, 이외에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에서 영국 잔류를 지지했다. 로저 워터스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군사 점령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닉 메이슨도 여기에 동참했다. 세 멤버 모두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영국 잔류를 지지한 바 있다.
또한 레드 제플린, 퀸, 라디오헤드와 함께 영국 대중음악계에서 보기 드문 중산층 출신의 록 밴드이다. 비틀즈, 오아시스, 더 후, 섹스 피스톨즈, 더 스미스 등 여러 영국 록 밴드는 노동계급 출신이다. 비틀즈의 경우에는 존 레논을 제외한 멤버 전원이 대학교의 문턱조차 밟지 못했고[20] 오아시스의 경우에는 아예 갤러거 형제가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인 가정폭행을 당했던 반면,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들은 대체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에도 진학한 고학력자들이다. 또 멤버들중 3명의 아버지[21]는 학자 출신이었고 그중에서도 길모어와 바렛의 아버지는 그 유명한 케임브리지 출신이다. 거기다가 3명의 아버지 모두 인기 없는 학과가 아닌, 이공계 학자였다는 점[22]에서 매우 유복하게 자랐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23] 또한 핑크 플로이드는 영국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밴드로, 중산층 출신의 진보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24]
2.1. 워터스-길모어 관계
|
<rowcolor=#FFF> 그나마 사이가 좋았던 Live 8에서의 재결합 당시 둘. |
레논-매카트니와 묘하게 겹치는 점이 많은데, 우선 둘이 같은 고향에서 자란 소꿉친구였다는 점과 한쪽의 행동으로 인해[26] 다른 한쪽이 불만을 가지고 밴드가 사실상 해체되었다는 점에서 레논-매카트니와 비슷하다. 또 워터스와 매카트니는 둘다 베이스를 맡았고, 마찬가지로 길모어와 레논도 밴드 안에서 기타[27]를 맡았다. 또 레논-매카트니와 마찬가지로 길모어와 워터스 둘다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덧붙여 폴 매카트니와 데이비드 길모어는 상대적으로 낮은 톤의 부드러운 미성을, 존 레논과 로저 워터스는 상대적으로 높은 톤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있다.
다만 레논-매카트니의 경우 워터스의 기여도가 확연히 높았던[28] 핑크 플로이드와 달리 폴의 기여가 조금 더 크긴 했지만 거의 동등한 비중이었고, 비틀즈 해체 이후 2년여 만에 화해했던 반면 워터스-길모어는 30년이 족히 넘는 시간 동안 진정한 화해를 하지 못하고 현재까지도 종종 시비를 거는 등[29] 앞으로도 관계를 개선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사실 거의 대부분 앨범 수록곡을 차지했던 레논-매카트니 파트너와는 다르게, 워터스 독주 체제 이전 까진 네 멤버가 공동 작곡을 하는 경우도 흔했었고, 반대로 워터스-라이트나[30] 길모어-라이트[31] 파트너십으로 쓰여진 곡들도 워터스-길모어 파트너십으로 쓰여진곡들 보다 비중이 적진 않다. 특히 초반 밴드의 시드 배릿과 초중반 밴드에서 리처드 라이트나 닉 메이슨 같은 다른 멤버들이 음악성에 영향력을 끼친 바가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32]단순히 레논-메카트니와 워터스-길모어를 비교하기엔 크게 무리가 있다.
이 둘이 같이 작곡한 곡으로 Wish You Were Here, Comfortably Numb가 유명하다.
2.2. 리처드 라이트
|
<rowcolor=#FFF> Richard Wright 1943.07.28 - 2008.09.15 |
“누구 혹은 무엇이 핑크 플로이드였는지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논쟁 속에서도 릭의 막대한 기여는 자주 잊혀졌습니다. 그는 온화했고 잘난 체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얘기를 잘 안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감정 풍부한 목소리와 연주는 가장 잘 알려진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의 필수적이며 매혹적인 요소였습니다.”
- 데이비드 길모어
“60년대와 70년대의 핑크 플로이드에서 그의 음악적 역량의 중요성은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중략) 화성적 진행에 대한 릭의 귀는 우리 음악의 기반이었습니다”
- 로저 워터스
”밴드에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정확히 계량화할 수는 없죠. 하지만 릭이 없었다면 핑크 플로이드는 핑크 플로이드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핑크 플로이드의 사운드는 기타, 베이스와 드럼이 만들어내는 그 이상의 음악이니까요. 릭의 사운드는 이 모든 걸 긴밀히 결합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 닉 메이슨
핑크 플로이드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키보디스트
리처드 라이트의 음악성이다. 라이트 특유의 사운드는 핑크 플로이드 음악에 거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일반 록음악 팬들은
시드 배릿,
로저 워터스,
데이비드 길모어의 막대한 영향력에 비해 라이트의 기여도를 과소평가 하지만, 시드 배릿의 영향력이 강했던 초반 시기, 워터스의 독주 체제 시기, 그리고 길모어의 초반 체제만 제외하고 사실상 밴드의 음악성에 심장같은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 데이비드 길모어
“60년대와 70년대의 핑크 플로이드에서 그의 음악적 역량의 중요성은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중략) 화성적 진행에 대한 릭의 귀는 우리 음악의 기반이었습니다”
- 로저 워터스
”밴드에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정확히 계량화할 수는 없죠. 하지만 릭이 없었다면 핑크 플로이드는 핑크 플로이드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핑크 플로이드의 사운드는 기타, 베이스와 드럼이 만들어내는 그 이상의 음악이니까요. 릭의 사운드는 이 모든 걸 긴밀히 결합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 닉 메이슨
라이트는 핑크 플로이드 초창기 시드 배릿이 대부분 곡을 쓰고 주도했던 시절 대부분 곡에 편곡을 기여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배릿이 탈퇴한 이후 부터 Wish You Were Here까지, 핑크 플로이드 음반에서 작곡과, 상당한 편곡에 기여를 했다. 그의 이러한 음악성이 작곡적인 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게 그가 작곡을 주도했던 Echoes인데 당장 키보드를 뮤트시킨 버전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지 알수 있다.
The Dark Side of the Moon나 Wish You Were Here 같은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중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불리고 있는 음반들을 논할 때 그의 역할을 논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평소 그가 좋아했던 마일스 데이비스나 빌 에반스 같은 재즈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은 독득하고 정적인 화성기법은 그가 작곡한 The Great Gig in the Sky나 Us and Them에서 빛을 발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Dark Side of the Moon 여러곡에서 이러한 면이 도드라진다. Wish You Were Here 음반에선 러닝타임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Shine on You Crazy Diamond에서 그의 음악성을 엿볼수 있다. 곡중에 가장 그의 역할이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게 단독 작곡한 Part 9인데, 장송곡적인 신디사이저 멜로디와 특히 마지막 직전에 시드의 곡 See Emily Play의 첫 멜로디를 인용하면서 한때 절친이였던 시드의 회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연주력적인 면 또한 인정받고 있는데, 특히 초창기 핑크 플로이드의 그의 이집티안 스케일을 활용한 솔로나 즉흥연주는 도어즈의 레이 만자렉의 오르간 연주와 비견될 정도로 최고의 사이키델릭 록 키보드 연주로 인정 받고 있고, 전성기 시절에는 클래식과 재즈의 영향을 받은 그의 특유의 안정적이면서 즉흥적인 연주는 The Dark Side of the Moon나 Wish You Were Here를 더욱 핑크 플로이드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그가 처음으로 작곡에 참여하지 않은 Animals에서도 이러한 연주력이 돋보이는데 대표적으로 Dogs나 Sheep에서 크게 돋보인다. The Wall에선 그가 솔로를 연주한곡은 Run Like Hell 밖에 없지만, 같이시기 라이브인 Is There Anybody Out There? The Wall Live 1980-81에선 여러곡들에서 키보드 솔로를 맡으며 그의 연주력을 돋보였다.[33]
하지만, 멤버들이 언급한데로 그의 막대한 기여는 자주 잊혀지곤 한다. 특히 활동시절 군사정권으로 인해 못들어왔다가 뒤늦게 들어온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더 그러는 경우가 많은데, 당장 이 문서 위에만 봐도 배릿-워터스-길모어의 기여만 강조되어 있지, 정작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적인 부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라이트의 기여는 거의 거론조차 안되어있다.
일각에선 그를 조지 해리슨과 비교하기도 하지만,[34][35] 워터스의 독주체제 이전의 핑크 플로이드와 워터스가 탈퇴한 이후 핑크 플로이드에서 그의 영향력과 기여도를 보면 해리슨보다 훨씬 더 밴드의 음악에 준 영향력이 많기에 단순히 조지 해리슨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2.3. 멤버 변천사
<rowcolor=#fff> 멤버 | 1집 이전 | 1집 | 2집 | 3집 | 4집 | 5집 | 6집 | 7집 | 8집 | 9집 | 10집 | 11집 | 12집 | 13집 | 14집 | 15집 | ||
<colbgcolor=#f5f5f5><colcolor=#000> 바렛 | ||||||||||||||||||
워터스 | ||||||||||||||||||
길모어 | ||||||||||||||||||
라이트 | 세션 | 세션 | ||||||||||||||||
메이슨 |
3. 역사
자세한 내용은 핑크 플로이드/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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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 바렛 체제 당시의 모습 (1967년) |
로저 워터스 체제 당시의 모습[36][37] (197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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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길모어 체제 당시의 모습 (1994년) |
2005년 라이브 8 재결합 당시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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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0월 폼페이 라이브 공연 중 Echoes Part 1 | 1980년 8월 The Wall 라이브 공연 콘서트 중 |
4. 음악성
4.1. 가사
핑크 플로이드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레드 제플린이나 롤링 스톤스 등 여타 록 밴드와 다르게 하나의 공통된 주제의 앨범 즉 콘셉트 앨범을 주로 만드는 것이 특징이 있었다.[38]그래서 혹자는 핑크 플로이드를 "역사상 가장 철학적이었던 밴드"라고 칭하기도 한다. 실제로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 중에서는 사랑 타령을 하는 노래가 거의 없다시피하며, 대부분의 곡들이 소외나 광기, 혹은 부재에 대해 다루고 있다.핑크 플로이드 가사의 핵심적인 주제는 인간들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핑크 플로이드의 전성기 앨범들은 모두 소외라는 공통된 주제로 이뤄져있다. The Wall과 The Dark Side of the Moon에서는 사회로부터 소외를 다루고 있으며, Wish You Were Here은 부재로 인한 소외감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핑크 플로이드가 언제나 이런 철학적인 주제를 표방한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중후반기 시드 바렛 체제에서는 유럽의 동화나 전설 등 사이키델릭 록의 몽환적인 분위기로 앨범이 제작되었으며 또한 공통된 주제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후일 데이비드 보위 등에게도 영향을 주는 우주에 관한 노래도 몇개 만든 바 있다.
시드 바렛이 정신 문제로 탈퇴한 이후 로저 워터스가 1970년대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으면서[39] 몽환적인 분위기는 점차 낮아지고 어둡거나 사회 비판적인 주제를 수용했다. Echoes에선 "사람들이 개개인의 인간성을 인정하고 반감이 아닌 공감으로 이를 대하는 가능성"을 묘사하고자 했고, Shine on You Crazy Diamond에선 밴드의 전 멤버인 시드 바렛의 대한 향수와 그의 부재를 표현하고자 했다.
자전적인 경험이 크게 드러나는 것도 특징이다. The Wall은 음반 전체가 로저 워터스의 자전적인 경험으로 이뤄져있다. The Division Bell의 마지막 트랙에 수록된 High Hopes는 데이비드 길모어의 어린 시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곡이다. 또한 시드 바렛이 탈퇴한 뒤 만들어진 몇몇 앨범에서 시드 바렛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드러나는점도 특징이다. Brain Damage는 시드 바렛 탈퇴 이후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 노선 전환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Wish You Were Here은 앨범 전체가 시드 바렛에 대한 그리움이 주제로 다뤄진다. The Wall 앨범의 주인공인 "핑크"의 모티브중 상당수는 시드 바렛에서 따온 것이다.
이 외에도 사회 비판적인 메세지가 많이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곡들중 상당수는 반전주의를 주제로 작곡되었다. 반전주의적인 주제가 처음 드러나는 곡은 2집에 수록된 Corporal Clegg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상병 Clegg라는 가상의 인물을 두어 전쟁을 풍자하고 있다. 이후 이러한 반전주의 기조는 The Wall, The Final Cut에서 극대화되며, 주로 워터스의 아버지가 전사한 2차 세계대전과 포클랜드 전쟁에 초점이 맞춰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특기할만한데 이는 로저 워터스와 데이비드 길모어의 사회주의적인 신념이 담겨져있다고 할 수 있다. 거대 음반 산업과 황금만능주의, 빈부격차, 그리고 보수주의 성향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을 직설적으로 곡에서 나타냈다. 음악산업의 대한 냉소는 More의 수록곡 Cymbaline에서 처음 드러나며 이러한 기조는 밴드가 The Dark Side of the Moon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점점 상품화되어 가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Welcome to the Machine, Have a Cigar가 대표적인 예다. Money에선 소비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를 풍자하고 있고, Us and Them에선 빈부격차와 시민의 자유, 인종 차별등을 다루고 있다.
길모어의 곡 The Dogs of War에서는 전쟁의 배후에서 돈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나타내어 전쟁과 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회 비판적인 면보는 Animals에 와서 커지게 되는데, 이음반에선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서 테마를 가져와 개, 돼지, 양을 자본주의 사회의 계층으로 상징해 자본주의를 풍자하고 있고, 동시에 영국의 보수주의자인 마거릿 대처 당시 보수당 당수와 사회보수주의 교육가인 메리 화이트하우스, 그리고 당시 총리였던 제임스 캘러헌을 비판하고 있다. 이후 The Final Cut에선 포클랜드 전쟁을 주도한 대처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을 풍자하고 있다. 이후 이러한 기조는 워터스의 솔로음반으로 이어진다.
4.2. 음악
처음 핑크 플로이드는 블루스 밴드로 시작했지만, 배릿이 참가하면서 사이키델릭 록/사이키델릭 팝적인 면보를 보이기 시작했고, 특히 배릿의 주도로 만들어진 첫 음반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은 대표적인 60년대 사이키델릭 록 음반중 하나로 꼽힌다. 두 번째 음반이자 배릿 시기의 마지막 작품인 A Saucerful of Secrets[40]은 전작보다 더 실험적인 음향 효과를 시도한 동시에 일명 '스페이스 록'[41] 적인 우주를 연상시키는 사운드를 구사하면서 프로그레시브 록의 기반을 만들어갔다.배릿이 탈퇴하면서 밴드는 한동안 음악적으로 갈피를 못잡아 다양한 실험을 시도 했는데, 특히 Ummagumma는 이러한 실험적 시도가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 라이트의 곡인 Sysyphus에선 존 케이지를 연상시키는 피아노 연주와, 녹음을 조작시킨 음향적인 실험을 했고, 워터스의 곡인 Several Species of Small Furry Animals Gathered Together in a Cave and Grooving with a Pict에선 구체 음악을 연상케 하는 테이프 기법을 활용했다.
이후 Meddle부터 밴드는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갈피를 잡기 시작했다. 특히 Echoes는 밴드가 그동안 해왔던 사이키델릭 락과 밴드의 여러 음향적 실험의 조화이며, 동시에 프로그레시브 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후 The Dark Side of the Moon, Wish You Were Here, Animals에선 통일된 컨셉, 음향적인 실험, 철학적인 가사, 재즈 코드 도입등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적인 면보가 더 강화되었다. 그후 The Wall, The Final Cut에선 이러한 아트 록적인 색채를 유지한채 록 오페라적인 구성과 프로그레시브 팝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으며, 특히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 당시 유행하던 디스코 리듬을 활용하기도 했다.
워터스 탈퇴이후 A Momentary Lapse of Reason에선 살짝 대중적인 팝 락적인 면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후 The Division Bell에서 다시 이전에 핑크 플로이드적인 색채를 찾았고, 동시에 앰비언트적인 면보도 보이기도 했다. 이는 같은 시기 녹음한 The Endless River에서 더 강화되어 있다.
핑크 플로이드는 곡들간이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는 메들리식 구성을 자주 사용했고, 또한 잘 사용한 밴드이다. 이 효과가 가장 극적으로 사용된 The Dark Side of the Moon과 The Wall은 높은 통일성으로 앨범 전체가 하나의 곡으로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프로그레시브 록을 작업해왔지만 그러면서도 데뷔 초부터 현재까지 사이키델릭 록의 센스를 잃지 않은 얼마 안되는 밴드이며,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중 가장 사이키델릭적 성향이 강한 밴드 가운데 하나이다.
전위적인 음악성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것도 노래인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음악을 단편적으로만 바라본 잘못된 관념이다. 핑크 플로이드는 꾸준히 음악, 음향적인 실험을 항상 지향해 왔고, 실재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은 단순히 로큰롤, 클래식, 재즈를 넘어, 존 케이지를 예로 들수 있는 아방가르드나 셰페르, 슈톡하우젠으로 대표되는 구체 음악, 초창기 전자음악 같은 현대음악 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42] 이것이 이들이 단순히 록이 아닌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분류되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다.
4.2.1. 보컬
초창기 핑크 플로이드는 거의 모두 시드 배릿이 리드보컬을 맡았다.[43] 여기서 로저 워터스, 릭 라이트는 백보컬을 부르거나, 가끔씩 몇몇 곡에서 리드 보컬을 맡기도 했다.[44]배릿의 탈퇴 이후 라이트가 리드 보컬을 맡아 PaintBox, It Would Be So Nice 같은 싱글을 출시하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이후 전성기까지 주로 길모어나 워터스가 리드 보컬을 맡고, 가끔씩 라이트가 리드 보컬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왔다. 주로 길모어가 곡들을 불렀고, 워터스는 Set the Controls for the Heart of the Sun이나 If같은 자작곡이나, Shine on You Crazy Diamond등에서 리드 보컬을 맡았다. 라이트는 Summer ‘68, Stay같은 자작곡에서 혼자 리드 보컬을 맡거나, Echoes나 Time등에서 길모어와 공동 리드 보컬을 맡았다.
이후 워터스의 독주체제로 들어가면서, 워터스의 보컬이 늘어나는 동시에 라이트의 비중은 눈에띄게 작아지기 시작했다. Animals에선 Dogs 한곡에서만 백보컬를 맡다가, 그가 해고되었던 시기에 녹음한 The Wall에선 단 한곡도 녹음하지 않았다. 길모어는 The Wall에서 보컬 비중은 워터스와 비등한 편이었지만, 이후 Final Cut에선 단 한곡 Not Now John에서만 리드 보컬을 맡고, 나머지 곡들은 모두 워터스가 보컬을 맡았다. 워터스 탈퇴 이후 길모어 리드 체제가 되면서 이후 거의 모든 곡들을 길모어가 리드보컬을 맡았고, 다만 라이트가 복귀한 이후 The Division Bell의 Wearing the Inside Out에선 라이트가 리드 보컬을 맡았다. 이 시절 백보컬은 주로 라이트나 세션 키보디스트인 존 카린이 맡았다.
메이슨은 다른 맴버들과 다르게 보컬을 거의 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Corporal Clegg나 Scream Thy Last Scream에서 보컬을 맡은 적이 있다. 그외 몇몇곡에서 음향효과를 통해 그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One of These Days나 Signs of Life가 있다.
이외 The Dark Side Of The Moon부터 여성 코러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Animals에선 잠시 사용을 멈췄다가, The Wall에서 남성 코러스를 사용했고, 이후 워터스가 탈퇴하고 A Momentary Lapse of Reason부턴 다시 여성 코러스의 비중이 커졌다. 또한 게스트 보컬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클레어 토리(The Great Gig in the Sky)와 로이 하퍼(Have a Cigar)가 있다. 그외에도 라이트의 전 아내인 줄리엣 게일이 초창기 밴드의 녹음 자료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워터스의 아들인 해리 워터스가 Goodbye Blue Sky에서 목소리 출연을 한적있다.[45] 이외 오랫동안 밴드의 매니저로 일했던 스티브 오루크의 목소리가 The Division Bell의 High Hopes뒤에 짤막하게 삽입되어 있다.
4.2.2. 악기/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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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가 전성기 시절 많이 사용했던 EMS VCS3 신디사이저 | 초창기 밴드가 사용했던 패닝 컨트롤인 Azimuth Co-ordinat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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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at Pompeii 중 EMS Synthi A로 On The Run을 연주하는 워터스 |
라이트는 초창기 콤보 오르간인 파피사의 Compact Duo를 많이 사용했다. 이후 A Saucerful of Secrets부턴 하몬드 오르간을 도입 했으며, 같은 시기 음반에서 멜로트론, 피아노, 트럼본, 비브라폰,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기도 했다. 70년대 들어선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나 월리처 일렉트릭 피아노같은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동시의 EMS VCS3, EMS Synthi A, Minimoog등과 같은 신디사이저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EMS VCS3와 Synthi A는 주로 라이트나 워터스, 길모어에 의해 많이 활용 됐는데 대표적으로 On The Run, Any Color You Like가 있다. 그외에도 Binson Echorec 에코 이펙터와, 패닝 컨트롤인[46] Azimuth Co-ordinator을 사용해 다양한 음향 실험을 하기도 했다.
4.3. 음악적 영향
배릿은 10대 시절 척 베리나 보 디들리 같은 초기 로큰롤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고 하며, 비틀즈가 등장한 이후 그들의 팬이 되었다. 길모어는 빌 헤일리와 엘비스 프레슬리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고, 특히 엘비스 프레슬리의 Heartbreak Hotel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이후 비틀즈에도 영향을 받았다. 워터스는 10대시절 딕시랜드 재즈나 블루스를 즐겨들었고 이 시절엔 딱히 로큰롤의 큰 흥미를 보이진 않았지만, 비틀즈 등장 이후 비틀즈 음악에 빠지면서 로큰롤의 더 깊숙이 빠져들게 되었다. 또한 이때 당시 이 세명은 라디오 룩셈부르크를 들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라이트는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팝을 전혀듣진 않았고(심지어 초기 비틀즈 같은 초기 로큰롤 음악을 싫어했다고 한다.) 대신 마일스 데이비스나 존 콜트레인, 에릭 돌피 같은 재즈를 즐겨들었다고 하며 그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은 동시대 아티스트인 데이빗 보위, 퀸은 물론 스매싱 펌킨스, 라디오헤드, 나인 인치 네일스, 드림 시어터, U2등과 같은 후대 락 밴드들과 오브등 앰비언트 아티스트나, 반젤리스, 조르조 모로더같은 영화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메이슨은 핑크 플로이드 트리뷰트 밴드 중 라디오헤드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워터스 또한 인터뷰에서 OK Computer를 굉장히 훌륭한 앨범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47] 이에 핑크 플로이드의 굉장한 팬인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는 라디오헤드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 칭하기도 했다. 라디오헤드가 밝히길 OK Computer를 만들 때는 The Wall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하며, The Wall에서 사용된 음악 장비들을 통째로 구매해서 앨범 제작에 활용하였다고 한다. 또 앨범 수록곡인 Karma Police나 Lucky를 들어보면 초중반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을 받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신해철이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서태지는 <The Wall> 앨범을 가장 좋아하는 앨범으로 꼽은 바 있다. 링크 조용필도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48]
4.4. 핑크 플로이드 3대 명반
핑크 플로이드 3대 명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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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rk Side of the Moon | Wish You Were Here | The Wall |
이 3개 음반은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로저 워터스가 작사를 맡고, 전반적인 곡들의 특정 주제와 컨셉, 작곡을 주도했다는 점 이 있다. 또한 세 개의 앨범 모두 사회에서의 소외를 주제로 담고 있다.
다만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점도 있는데, 데이비드 길모어와 리처드 라이트의 음악적 기여가 컸던 Dark Side of the Moon과 Wish You Were Here와 다르게 The Wall은 로저 워터스의 입김이 매우 강하게 들어가 있고,[51] Dark Side of the Moon와 Wish You Were Here는 힙노시스가 음반 커버 디자인을 맡은 반면 The Wall은 워터스와의 불화로 힙노시스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초창기 음반인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은 최근 들어 시드 바렛에 대한 활발한 재평가가 이뤄지며 더욱 평가가 상승하는 추세인데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 리스트의 2020년 개정판에서는 무려 Wish You Were Here를 누르고 핑크 플로이드 전체 앨범중 3번째로 높은 순위를 받았다. NME 선정 500대 명반에서도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중 2번째로 높은 순위에 올랐다. 그 외에 Meddle과 Animals도 명반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Animals는 Rate Your Music에서 The Wall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여담으로 데이비드 길모어와 리처드 라이트는 핑크 플로이드 음반 중 Wish You Were Here를 가장 좋아하고, 반면 로저 워터스는 The Wall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5. 인기
전체 음반 판매량만 놓고보면 역대 음악가 8위이다. 록 밴드로 한정시키면 비틀즈, 레드 제플린에 이은 3위이다. 1970년대에 활동했던 음악가로는 엘튼 존, 레드 제플린에 이은 3위다.[52] 이게 굉장히 놀라운 이유는 핑크 플로이드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프로그레시브 록은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다. 이게 어느정도냐면 어느정도의 상업성을 갖춘 장르인 프로그레시브 메탈에 영향력을 끼친 러시도 4,000만장을 파는데에 그쳤다. 그런데 핑크 플로이드는 혼자서 2억 5천만장을 팔았고, 어지간한 팝 록, 헤비 메탈 밴드들은 물론 현대의 유명 팝, 힙합 가수들보다도 높은 8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매우 놀라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 비교해보자면 제네시스를 뺀 나머지 모든 1970~80년대 고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의 판매량을 합쳐도 핑크 플로이드에 못미친다.[53] 제네시스는 1억장을 팔았는데, 제네시스가 UK 차트 1위를 석권했었던 Duke(1980)부터 We Can't Dance(1991)까지의 앨범들은 필 콜린스의 취향대로 팝 록이 많이 가미된 음반이었다. 그러니까 프로그레시브 록 그 자체로만 놓고봤을 때는 다른 모든 밴드를 합쳐도 핑크 플로이드보다 적게 팔았다는 것이다.다소 전위적이고, 대중성을 노리지 않은 장르인 프로그레시브 록을 주로 추구했던 밴드로서 유례 없는 성공을 거뒀다는 점에서 굉장한 역량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핑크 플로이드보다 적은 음반을 판 밴드들을 보자면 AC/DC(하드), 이글스(컨트리), 퀸(글램/하드/팝), 에어로스미스(하드/블루스) 그리고 전설 롤링 스톤스까지 어느 하나 핑크 플로이드에게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꿇릴 밴드가 아니다. 이런 밴드들보다도 핑크 플로이드가 많은 음반을 팔았다는 것은 핑크 플로이드의 인기가 굉장히 높다는 것을 입증한다.
단순히 1970년대에만 인기있었던게 아니라 세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인기를 구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라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높은 인기를 얻는 것이 특징인데, 미국에서나 영국에서나 거의 비슷한 수준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54] 핑크 플로이드는 영국, 미국, 한국, 유럽 등 나라를 구분짓지 않고 어느 나라에서나 고른 인기를 얻었다.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빌보드 1위에 올랐으며 동기간에 UK차트 2위를 기록했다. 미국 측이나 영국 측이나 록 밴드 인기 투표를 시키면 핑크 플로이드는 최고의 록 밴드 투표에서 10위권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한국에서도 어느정도의 인기가 있는데, 자세한건 하단 항목을 참조. 이는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개개인의 음악 취향과는 별개로 매력 포인트가 있기 때문에 인기 몰이를 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런 점 때문에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레드 제플린의 멤버들은 각 분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매우 유능한 멤버들이며, 곡들도 대체로 블루스 록 혹은 헤비 메탈 곡들이 많기 때문에, 팬들도 대체로 곡조가 신나거나 악기 연주에 참조하려고 팬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핑크 플로이드의 경우에는 멜로디보다도 특유의 메시지에 공감이 가거나 인상을 받아 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록 음악 평론가인 스티븐 하이든(Steven Hyden)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레드 제플린은 성적으로 문란해 보였지만[55] 세상을 정복하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고, 핑크 플로이드는 지루해보였지만 자신의 끊김을 극복하는 것으로 보여졌다"[56]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보다도, 내면에 대한 고찰이나 사회 비판 등의 가사나 주제에 공감하면서 팬이 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들으면서 사색같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 기존 록 음악에 비판적이었던 펑크 씬에서는 사회 문제마냥 다뤄지기도 했었다.
그 외에도 핑크 플로이드가 추구했던 진보적인 사운드도 핑크 플로이드의 인기 요인중 하나다. 테이프 이펙터의 활발한 사용과, 전문적인 키보디스트의 존재 등으로 핑크 플로이드는 당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와고도 차별화되는 사운드를 보여줬고 이 때문에 핑크 플로이드만의 음악성에 심취하는 경우도 있다. 시대별로 음악적인 성향이 나뉘어진다는 점도 핑크 플로이드가 인기를 얻은 이유다. 시드 바렛 시절의 사이키델릭 록을 좋아하는 팬도 있는 반면, 로저 워터스의 록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데이비드 길모어만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 또는 전체를 전부 다 좋아하면서 시대별로 음반을 비교하며 듣는 팬들도 있다. 이처럼 시대별로 다양하면서도 특징적인 스타일을 추구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팬들이 유입된 것이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이, 2011년 롤링 스톤이 독자를 상대로 한 투표로 선정한 "가장 위대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투표에서 핑크 플로이드는 2위에 올랐다.
5.1. 대한민국에서의 인기
롤링 스톤스, 더 후, 레드 제플린, AC/DC 등의[57] 레전드 밴드들이 한국에서 인지도가 바닥인 것에 비해, 비교적 부드러운 음악 스타일로 인하여 대한민국에서 인기있는 밴드로 꼽혔다. 특히 전성기인 1970년대~1980년대에는 외국 음악가들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축에 들었고, 핑크 플로이드의 상징인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와 The Dark Side of the Moon 모두 1980년대 당시 록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록 밴드로서의 대중적인 성공만 따지면 퀸 다음 간다.[58] 이들의 대표곡인 Time은 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한국 광고 BGM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의 경우 1980년대 당시 굉장히 유명한 영미권 음악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처럼 밴드 자체의 인지도는 높은 반면 개별 멤버들을 아는 사람들은 일부 팬들을 제외하고는 잘 없다는 것 또한 레드 제플린과는 상반되는 부분이다.[59]이러한 인기의 이유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과 스탠스에 스며있는 우울함이 당시 한국 리스너들의 '한'의 정서와 잘 맞았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60]
다만 이는 70~80년대를 살아간 4050세대의 경우이며, 세계적인 록의 쇠퇴 때문에 최근 세대는 다른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핑크 플로이드를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매우 많다.
핑크 플로이드는 한국에서 완전체로 공연한 적이 없지만, 로저 워터스는 2002년 In the Flesh 투어로 내한 공연을 했다.
5.2. 유명한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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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핑크 플로이드의 곡을 들으며 작품을 쓴다고 하며 책에서도 곡의 이름이 언급 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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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키 히로히코
애초에 록덕후인 데다가 거의 모든 캐릭터의 이름을 록 음악 에서 따왔을 정도로[61] 핑크 플로이드의 곡 중에서는 크레이지 다이아몬드, 에코즈, 아톰 하트 파더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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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보 아츠시
등장인물의 이름중 시드 바렛이 있으며, 이마지막 최종장의 제목이 전부 The Dark Side of the Moon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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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핑크 플로이드의 굉장한 팬이며[62] 가장 애착이 가는 앨범은 The Final Cut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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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모리슨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생전 핑크 플로이드의 광팬이었다. 그는 1970년대 들어 록 음악에서 점차 멀어지며 소울, 스탠더드 팝, 50년대 로큰롤, 동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민속음악, 클래식 등 다소 보수적인 음악 성향을 보였지만 1970년 중반 핑크 플로이드의 라이브 공연을 보고 엄청나게 마음에 들어하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록 밴드가 바로 핑크 플로이드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63] 아쉽게도 짐 모리슨은 핑크 플로이드의 최전성기가 시작되기 전에 사망하였다.
6. 관련 인물
6.1. 관련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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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기신
스코틀랜드의 작곡가. 아방가르드 성향의 작곡가로, 밴드와 Atom Heart Mother의 타이틀 곡을 공동 작곡했으며, 이외에도 로저 워터스와 인체 다큐멘터리 The Body의 사운드트랙을 공동 제작한 바 있다.[64] 이후에도 워터스와 계속 친구관계를 유지했으며, 그외 그의 2008년 콘서트에서 데이비드 길모어가 특별 출연해 Atom Heart Mother를 연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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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란 파슨스
영국의 엔지니어/음악가, 비틀즈의 Abbey Road에서 보조 엔지니어를 맡으면서 공식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후 핑크 플로이드의 Atom Heart Mother와 The Dark Side of the Moon에서 엔지니어를 맡았다. 특히 The Dark Side of the Moon에선 당시로선 획기적 이었던 사물의 소리와 음악의 음향적인 조화를 표현하면서 그의 이름또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밴드의 Wish You Were Here 엔지니어 부탁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결성하여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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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토리
영국의 싱어. 알란 파슨스의 소개로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릭 라이트의 곡 The Great Gig in the Sky에서 보컬을 맡았다. 이후 1973년 11월 런던 레인보우에서 열린 밴드의 콘서트에서 특별 출연해 The Great Gig in the Sky를 불렀고, 몇년뒤 워터스의 바람이 불 때에 사운드트랙과 Radio K.A.O.S.에서 백보컬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외 1990년 핑크 플로이드의 넵워스 콘서트에서 백보컬로 참여하기도 했고, 이시기 라이트가 The Great Gig in the Sky에 진통제 광고 배경음악 사용을 허가하면서 재녹음한 버전에도 참여했다. 이후 2004년 그녀는 The Great Gig in the Sky에서 자신이 작곡을 기여함을 주장하면서 밴드를 고소했고, 1년뒤 합의가 이뤄지면서 이후 발매된 음반에서는 작곡은 이전처럼 라이트 단독으로 되어 있으나, ‘보컬 작곡:클레어 토리’로 새로 기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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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패리
영국의 색소폰 연주자. 1960년대 중반 케임브리지에서 활동을 하면서, 당시 같은 지역의 밴드인 Jokers Wild의 멤버였던 데이비드 길모어와 친분이 생겼고, 이후 1973년 길모어의 요청으로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Money, Us and Them에서 색소폰 세션을 담당했고, 이후에도 Wish You Were Here의 Shine on You Crazy Diamond에서 색소폰을 담당했다. 그외 1973년 투어 부터 세션 멤버로 참여해 1977년 Animals 투어때 까지 참여했었다.[65] 이후엔 The Who의 1979년-1980년 투어에서 브라스 섹션으로 참여했다가, 잠시 음악계를 떠나 편자공으로 일했었다. 이후 1994년 The Division Bell의 Wearing the Inside Out에서 색소폰을 맡으면서 다시 음악계로 돌아온 동시에, 핑크 플로이드 음반에 약 19년 만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후 Division Bell 투어의 세션 멤버로 참여했고, 이후 2002년, 2006년 길모어의 콘서트, 그리고 멤버들과 워터스와 제회한 Live 8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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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하퍼
영국의 포크 록 싱어. Wish You Were Here의 Have a Cigar에서 보컬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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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위 화이트
영국의 기타리스트. 1977년 케이트 부시의 전 프로듀서 힐러리 워커가 당시 Animals 투어의 세션 기타를 찾고 있던 핑크 플로이드에게 화이트를 추천하면서, Animals 투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후 라이트의 솔로음반 Wet Dream에도 참여했고, 1980년 The Wall 투어의 세션멤버로 참여했지만, 같은 시기 하드록 밴드 씬 리지에 멤버로 합류하게 되면서 1981년 The Wall 투어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이후 솔로음반을 발표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다가, 1990년 워터스의 베를린 장벽 The Wall 콘서트에 참여했고, 이후 화이트는 워터스의 1999-2002년 In the Flesh 투어와 2007년 The Dark Side of the Moon 투어, 2010-2013년 The Wall 투어에서 계속 기타를 담당 했었다. 그외 길모어와도 친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 그의 솔로음반 Highway to the Sun의 Love, Pain and Sorrow에 길모어가 게스트 뮤지션으로 참여했다. 팬더 기타를 주로 이용하는 길모어와는 다르게 깁슨 Les Paul을 많이 애용한다고 한다. 2019년 건강을 이유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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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에즈린
캐나다 출신 음악 프로듀서로, 이미 앨리스 쿠퍼, 피터 가브리엘, 키스(밴드)등 여러 쟁쟁한 뮤지션들의 음반을 프로듀싱한 바 있다. The Wall 제작 도중 외부 프로듀서에 필요성을 느꼈던 워터스에게 당시 워터스의 아내였던 캐롤린 크리스티가 에즈린을 추천하면서 음반 제작에 합류하게 되었고, 워터스가 만든 The Wall 컨셉 구상을 더 구체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외 당시 워터스와 라이트의 불화 중에 라이트가 녹음 못한 키보드 파트 일부를 대신 녹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The Wall 투어 준비 도중 에즈린이 공연 기밀 사항을 누설하는 바람에[66] The Wall 음반 작업 막바지 조금씩 금이 가기시작한 워터스와의 관계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워터스는 에즈린을 계약 위반을 이유로 보수도 안주고 계약을 해지시켰고, 심지어 모든 핑크 플로이드 공연에 참석을 금지 했다.[67] 이후 오히려 길모어와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길모어의 두번째 음반 About Face에서 길모어와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다. 이후 1986년 워터스가 핑크 플로이드를 탈퇴한 이후, 워터스와 길모어의 핑크 플로이드에게 동시에 프로듀서 제안을 받았다.[68] 에즈린은 길모어에 프로듀서 제안을 수락해, The Wall 이후 약 8년 만에 핑크 플로이드 음반에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되었다. 데모작업중 워터스의 부재로 생긴 베이스 파트를 대신 맡기도 했고, Signs of Life, Learning to Fly에 작곡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The Division Bell에서도 프로듀서를 맡았고, 이외에도 나인 인치 네일스, U2등 여러 아티스트의 음반제작의 참여했고, 그외 비디오 게임 회사 7th Level를 설립하거나, 엔지니어들을 위한 실습 교육공간을 설립하는등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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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보운
영국의 베이스, 키보드 연주자. 하드록 밴드 Status Quo의 멤버로, The Wall 투어에서 베이스 세션 멤버로 참여했고, The Final Cut에서 라이트 대신 하몬드 오르간을 맡았다. 그외 워터스의 솔로음반 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에서도 키보드를 담당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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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이멘
미국의 영화음악 작곡가, 오케스트라 편곡가, 지휘자로 The Wall 제작 도중 오케스트라를 집어넣자는 에즈린의 제안으로 고용 되면서 The Wall 음반에 나오는 모든 오케스트라 파트를 편곡했다. 이후 The Final Cut에서 탈퇴한 라이트를 대신에 피아노를 연주한 동시에 음반 프로듀서로도 참여했다. 이후 워터스의 The Wall - Live in Berlin 콘서트에 참여해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았고, 몇년뒤 핑크 플로이드의 The Division Bell의 수록된 High Hopes의 오케스트라 편곡을 담당하기도 했다. 워터스 탈퇴 이후 핑크 플로이드와 워터스의 음반에 모두 참여한 몇안되는 인물중 한명. 핑크 플로이드 말고도 퀸(밴드), 데이빗 보위, 에릭 클랩튼, 본 조비, 허비 행콕, 러시(밴드), 메탈리카, 콜드플레이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음반의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참여한바 있고, 그외 데드존, 폴리에스터, 엑스맨등 수많은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2001년 ~ 2002년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열렸던 길모머의 콘서트에서 피아노와 오보에를 연주했고, 1년뒤 2003년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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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린
미국 출신의 세션 키보디스트. 카린이 브라이언 페리의 공연에서 세션 키보드로 참여하던중,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 페리의 공연에 길모어가 게스트로 참여하면서 길모어와의 친분이 생겼다. 이후 A Momentary Lapse of Reason 작업을 위해 길모어가 카린에게 연락해 왔고, 카린은 길모어와의 Jam에서 Learning to Fly의 모태를 작곡했다. 그외 Momentary Lapse of Reason 거의 모든 곡에서 신디사이저를 연주했고, Momentary Lapse of Reason 투어에서도 이듬해 복귀한 라이트 뒤에서 세션 키보드와 백보컬를 담당했다. 이후에도 La Carrera Panamericana, The Division Bell에도 참여했고, 특히 Division Bell의 수록곡 Lost for Words를 편곡하기도 했다. 이후 Division Bell 투어에서도 세션 키보드와 백보컬을 담당했다. 투어가 끝난 이후 잠시 피트 타운젠드의 백밴드 멤버로 활동했다가, 1999년 워터스의 In The Flash 투어에 세션 키보드로 참여했다.[69] 그리고 같은해 워터스와 라이트와의 18년 만에 재회를 주선하기도 했다. 이후 밴드와 워터스가 재회한 라이브 8에서도 세션 키보드로 참여했고 이후 2006년 길모머의 On an Island 투어와 2007년 워터스의 The Dark Side of the Moon Live 투어 그리고 2013년 The Wall 투어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2015년엔 길모어의 Rattle That Lock 투어에 참여했고,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워터스의 Us + Them 투어에 참여했다. 2022년 현재에도 워터스의 This Is Not A Drill 투어에도 참여하고 있는 동시에 핑크 플로이드가 새로 공개한 A Great Day For Freedom 2022에도 참여하는 등 핑크 플로이드와 워터스 진영에서 모두 활약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밴드의 가족과도 같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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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만자네라
글램록 밴드 록시 뮤직의 기타리스트로 길모어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Momentary Lapse of Reason의 수록곡 One Slip을 길모어와 공동으로 작곡했으며, Endless River에서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그외에도 2006년 길모어의 On an Island 투어에서 세션 기타로 참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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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레너드
미국 출신 작곡가 겸 키보디스트. 마돈나의 La Isla Bonita, Like A Prayer등 여러 히트곡을 작곡했으며, 마돈나의 투어에서 세션 키보디스트로 활약 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Momentary Lapse of Reason의 수록곡 Yet Another Movie를 길모어와 공동으로 작곡했으며, 이후 1990년 핑크 플로이드의 넵워스 콘서트 후반에 존 카린과 함께 세션 키보드를 맡았다. 다만 이 이후엔 워터스와 친해졌는지, 워터스의 음반 Amused to Death에서 공동 프로듀싱과 키보드를 맡는등 워터스의 음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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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무어
영국의 실험음악 작곡가. 1970년대 아방-팝 밴드인 슬랩 해피(Slapp Happy)의 키보디스트로 유명하며, 대표적인 캔터베리 신 밴드중 하나인 헨리 카우와도 협업한 바 있다. 길모어의 요청으로 Momentary Lapse of Reason에서 길모어와 Learning to Fly, The Dogs of War, On the Turning Away를 공동으로 작곡했으며, Division Bell에서 라이트의 곡인 Wearing the Inside Out의 가사를 작사했고, 같은해 녹음된 The Endless River에서 Calling를 길모어와 공동으로 작곡했다. 이후 라이트의 솔로 음반인 Broken China에서 프로듀싱과 작사, 편곡,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일부 곡에서 작곡을 맡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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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렌윅
영국 출신의 기타리스트. 길모어의 케임브리지 친구로, 바렛과 워터스가 다녔던 케임브리지 고등학교 동문이다. 1984년 에릭 클랩튼 대신 워터스의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 투어에 참여 했으며, 이후 A Momentary Lapse of Reason 투어 때부터 길모어의 초대로 밴드의 세션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론 1992년 La Carrera Panamericana 사운드트랙 작업에도 참여하였고, The Division Bell의 7번 트랙인 Take It Back의 기타 연주로 앨범에 크레딧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 뒤로 The Divison Bell 투어에도 참여하였고, 이후 라이트의 솔로 음반 Broken China에도 참여했다. 이후 밴드의 2005년 LIVE 8 재결합 콘서트에서도 세션 기타리스트 겸 베이시스트로 활약하였다.
- 게리 월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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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프랫
영국 출신의 베이시스트. A Momentary Lapse of Reason 투어때부터[70] 밴드의 베이시스트 겸 리드 보컬(Run Like Hell 한정), 백킹 보컬을 맡아 활동하였다.. 그 뒤 1992년 La Carrera Panamericana 사운드트랙 작업에도 참여하였고, A Momentary Lapse of Reason 투어 때부터 연인 관계였던 라이트의 딸 갈라 라이트와 결혼하여 라이트의 사위가 되었다. The Division Bell 앨범 작업과 투어에도 참여하였으며, 이후에도 길모어의 솔로 음반인 On An Island, Rattle That Lock에도 베이시스트로 참여하는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닉 메이슨이 결성한 Nick Mason's Saucerful of Secrets의 멤버로 활동 중.
- 샘 브라운
6.2. 그 외
- 밥 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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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스미스
사운드 엔지니어로 비틀즈와 작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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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오루크
핑크 플로이드의 매니저. 로저 워터스가 독재하며 다른 멤버들을 탄압할 때 로저를 통제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며 데이비드 길모어를 제외한 모든 멤버들을 잘라버리려던 로저 워터스를 뜯어말려 밴드가 그나마 밴드 모양새라도 갖추게끔 했던 사람이다.
- 스톰 소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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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겔도프
1982년에 영화 핑크 플로이드의 벽에 출연하였고, 1985년 라이브 에이드, 2005년 라이브 8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며 이 두 공연 모두 핑크 플로이드가 참여하였다.[71] 특히 라이브 8의 경우 핑크 플로이드의 재결합 공연이면서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꼽힐 정도로 밴드에 내외적으로 영향이 컸던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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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 샘손
영국의 기자 겸 작가로, The Division Bell 세션부터 길모어와 만나 앨범의 작사가로 활동하였다. 앨범이 발매된 후 길모어와 결혼하여 아내가 되었고, 이후 The Division Bell 투어에도 동행하였다고 한다. 그 뒤로도 길모어의 솔로 앨범에 작사 협력가로서 꾸준히 활동하였으며, 밴드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 The Endless River의 수록곡인 Louder than Words를 단독 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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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시스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커버를 담당한 디자인 회사.
7. 디스코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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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
{{{#!folding [ Live Albums ]
{{{#!folding [ Compilations ]
{{{#!folding [ Non-album Singles ]
{{{#!folding [ 관련 문서 ]
핑크 플로이드의 스튜디오 앨범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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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순서 | 이름 | 발매년도 | 장르 | 시기 |
<colbgcolor=#f5f5f5> 1 |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31221D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 1967년 | 사이키델릭 록 | 시드 바렛 체제 |
2 | A Saucerful of Secrets | 1968년 | ||
과도기 | ||||
3 | More | 1969년 | ||
4 | Ummagumma | 1969년 |
사이키델릭 록[72] 프로그레시브 록 |
|
5 | Atom Heart Mother | 1970년 | ||
6 | Meddle | 1971년 | ||
7 | Obscured by Clouds | 1972년 | ||
전성기 | ||||
8 | The Dark Side of the Moon | 1973년 | 프로그레시브 록 | |
9 | Wish You Were Here | 1975년 | ||
10 | 1977년 | 로저 워터스 독재 체제 | ||
11 | The Wall | 1979년 | ||
12 | The Final Cut | 1983년 | ||
13 | A Momentary Lapse of Reason | 1987년 | 데이비드 길모어 체제 | |
14 | The Division Bell | 1994년 | ||
15 | The Endless River | 2014년 |
7.1. 컴필레이션 음반
- The Best of the Pink Floyd(1970)
- Relics(1971)
- A Nice Pair(1973)
- A Collection of Great Dance Songs(1981)
- Works(1983)
- 1967: The First Three Singles(1997)
- Echoes: The Best of Pink Floyd(2001)
- The Best of Pink Floyd: A Foot in the Door(2011)
7.2. 박스 세트
- Shine On(1992)
- Oh, by the Way(2007)
- Discovery(2011)
- The Early Years 1965–1972(2016)
- The Later Years 1987–2019(2019)
- The Dark Side of the Moon 50th Anniversary(2023)
7.3. 연도별 정리
(싱글 제외, 상세란엔 녹음일, 솔로는 정규만 기재)- 1965: Their First Recordings[73]
- The Early Years 1965–1972 Cre/ation[74]
- The Best of the Pink Floyd[75]
- Relics[76]
- A Nice Pair[77]
- Works[78]
- Shine On[79]
- Echoes: The Best of Pink Floyd[80]
- The Best of Pink Floyd: A Foot in the Door[81]
- Discovery[82]
- Oh, by the Way[83]
- London '66 - '67[84]
- 1967: The First Three Singles[85]
- Tonite Lets All Make Love in London[86]
-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87]
- A Saucerful of Secrets[88]
- The Madcap Laughs[89]
- The Later Years [90]
- More(soundtrack)[91]
- Ummagumma[92]
- Picnic – A Breath of Fresh Air[93]
- Barrett[94]
- Zabriskie Point[95]
- Atom Heart Mother[96]
- A Collection of Great Dance Songs [97]
- Meddle[98]
- Obscured by Clouds[99]
- The Dark Side of the Moon[100]
- The Dark Side of the Moon 50Th[101]
- Wish You Were Here[102]
- Animals[103]
- Wet Dream[104]
- David Gilmour[105]
- The Wall[106]
- Is There Anybody Out There? The Wall Live 1980–81[107]
- Nick Mason's Fictitious Sports[108]
- The Final Cut[109]
- About Face[110]
- 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111]
- The Later Years 1987–2019[112]
- Radio K.A.O.S.[113]
- A Momentary Lapse of Reason[114]
- Amused to Death[115]
- Delicate Sound of Thunder[116]
- The Division Bell[117]
- Pulse[118]
- Broken China[119]
- On an Island[120]
- Rattle That Lock[121]
- Is This the Life We Really Want?[122]
-
The Endless River[123]
8. 콘서트 투어
-
First US Tour - Pink Floyd World Tour 1968
- The Man and The Journey Tour
- Atom Heart Mother World Tour
- Meddle Tour
- Dark Side of the Moon Tour
- 1974 tours
- French Summer Tour
- British Winter Tour '74
- Wish You Were Here Tour
- In the Flesh Tour
- The Wall Tour
- A Momentary Lapse of Reason Tour
- Another Lapse Tour
- The Division Bell Tour
9. 개별 문서가 존재하는 곡
자세한 내용은 분류:핑크 플로이드 노래 문서 참고하십시오.10. 여담
10.1. 관련 서적
-
닉 메이슨 - Inside Out: A Personal History of Pink Floyd
유일하게 핑크 플로이드의 원년 멤버인 닉 메이슨이 직접 작성하고 길모어, 라이트, 워터스의 검수를 거쳐 2004년에 출판된 핑크 플로이드의 공식 전기이다. 많은 핑크 플로이드에 관련 서적 중 가장 신빙성이 있으며, 핑크 플로이드의 모든 역사뿐만 아니라 그 뒷 이야기까지 기술되어 있다.
훗날 2005년 LIVE 8 재결합과 2006년 시드 바렛, 2008년 리처드 라이트의 죽음과 관련 서술이 추가되어 재출판 되었다.
-
마크 블레이크 - Comfortably Numb: The Inside Story of Pink Floyd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까지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저널리스트 마크 블레이크의 서적. 밴드 멤버들의 이야기를 상세히 담고 있지만, 바렛-워터스-길모어만 주인공으로 칭하며, 라이트-메이슨을 세센맨 수준으로 서술한다던가, 멤버들의 장비나 마약 이야기, 라이트의 솔로 곡을 잘못 설명하는 등등 신빙성이 없거나, 오류도 많은 책이다. 이경준의 변역으로 Wish You Were Here : 핑크 플로이드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본이 출판되어 있다.
공식 전기는 아니지만, 이 책을 공식 전기로 오해하는 팬들도 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출판된 핑크 플로이드 전문 서적이기에 위에 오류도 잘 알지 못하고 이 책만 맹신하는 팬들도 많은 편이다. 특히 데이비드 길모어와 닉 메이슨은 마크 블레이크의 라이너 노트를 안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Animals의 2018 Remix반 발매가 지연될 정도이니…
10.2. 기타 관련 내용
- 코로나 관련 모금행사를 유튜브에서 예전 라이브공연영상을 틀어주며 한국시간 4월 18일 새벽 1시부터 진행하였다. 링크
- 콘서트들의 볼거리가 풍성하고 돈이 남아나기는 하는지 의문일정도로 과도하게 화려한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했다.[124] 퀸, 레드 제플린 등 어느 정도 콘서트가 화려하다 싶은 밴드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조명이나 도구들이 지금 기준으로도 세련되어있고, 퀄리티가 높은 편이다. 가령 The Dark Side of the Moon에서는 모형 비행기가 벽에 충돌해 폭발을 일으키는 것을 연출한 바 있다. 이런 정신 때문에 The Wall 투어에서는 오히려 적자를 봤다. 로저 워터스의 솔로 콘서트에서 이런 점은 더욱 극대화되는데 폭죽을 쏘거나, 무대 전체를 앨범 커버처럼 만들고 의상이나 조명도 모두 고퀄리티다. 돈이 남아나나 싶지만 정작 로저 워터스의 라이브 콘서트 수익금은 솔로 록 아티스트 역대 1위. 핑크 플로이드의 이런 무대 정신은 후대 글램 메탈 밴드들의 무대 장치에게도 영향을 미쳐, 핑크 플로이드가 아레나 록의 선구자라는 평가도 있다.
- 의외로 동물들과의 관련이 많은 밴드로, 데뷔 앨범 수록곡 Lucifer Sam은 시드의 고양이에 관한 곡이며, Atom Heart Mother 커버는 들판 위의 젖소를 찍은 것이고, Meddle의 수록곡 Seamus는 시무스라는 개가 짖는 소리를 녹음했으며, Animals에서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소설)을 오마주하면서 여러 종류의 인간들을 각종 동물들에 빗댐과 동시에 핑크 플로이드의 시각적 상징인 돼지 인형을 사용하기 시작해 현재의 워터스 솔로 공연까지도 쓰고 있다.
- 존 레논과 사이가 안좋았다는 설이 있는데 한국에서만 떠돌아다니는 근거 없는 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해외 커뮤니티들을 종합적으로 보자면, 존 레논은 아예 핑크 플로이드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같은 밴드 소속의 폴 매카트니는 핑크 플로이드에 어느정도의 관심을 가졌다. 아내 린다 매카트니와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나레이션 녹음에 참여한 적이 있고,[125] 데이비드 길모어와 몇번 협업을 한 바가 있다. 이외에도 로저 워터스와 시드 바렛, 릭 라이트, 닉 메이슨은 실제로 존 레논을 비롯한 비틀즈의 멤버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비틀즈의 멤버들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녹음하고 있었고,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은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을 바로 옆방에서 녹음하고 있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들이 비틀즈를 찾아갔는데, 비틀즈 입장에서는 데뷔도 안한 신생 밴드였던 핑크 플로이드가 낮설었던지 그렇게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 AC/DC와 정반대로 멤버들이 모두 장신이다.[126][127][128] 닉 메이슨은 175cm로 현대 영국인들의 평균 키와 같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전부 180cm를 넘는 편이고 꽤 거구이기까지 했다. 시드 바렛이 180cm, 데이비드 길모어가 183cm, 릭 라이트가 187cm, 그리고 로저 워터스가 191cm[129]였다. 시드 바렛이 당대 기준으로는 나름 장신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로저 워터스 옆에 서면 전혀 장신이라는 느낌이 나지 않을 정도로 유독 키 큰 멤버들이 많았던 것으로도 회자된다.
- 멤버 5명중 3명이 케임브리지 출신이다.[130] 거기다가 시드 바렛과 데이비드 길모어의 아버지들은 당대에 꽤나 잘나가던 학자 겸 대학 교수였고, 당연히 미들클래스(중산층 계급)에 속했다. 그래서 데이비드 길모어, 로저 워터스, 시드 바렛은 정확한 용인발음을 구사한다. 그중에서도 어릴적에 가장 잘 살았던 시드 바렛은 찰진 케임브리지 사투리를 구사해,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로 용인발음으로 노래를 부른 사람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이렇게 멤버들이 대다수 중산층[131]이었지만 동시에 모든 밴드들 중 사회주의적 성향이 가장 강한 밴드로 꼽히는데, 특히 워터스와 길모어는 대중음악계 대표적인 사회주의자로 존 레논과 함께 꼽힌다.[132]
- 리치 블랙모어, 브라이언 메이, 로버트 프립, 러시와 함께[133]1970년대 록 음악가 치고는 드물게도 마약 관련한 구설수가 잘 없는 편이다. 1979년 로저 워터스가 릭 라이트를 해고할 때 든 이유로 코카인 투약을 이유로 들었던 것에서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이 의도적으로 마약을 멀리했음을 알 수 있다.[134] 블랙 사바스,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스, 폴 매카트니, 엘튼 존, 에릭 클랩튼, 섹스 피스톨즈 등 당대 영국의 여러 록스타들이 마약 중독으로 인해 심지어는 사망에 이르기까지 했던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LSD 중독으로 인해 폐인이 되어 결국 밴드를 탈퇴한 시드 바렛 때문에 멤버들이 마약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인듯하다.[135] 또 러시와 마찬가지로 음악에만 집중했던지 대형 록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여성과의 염문도 없다.[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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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Dark Side of the Moon과 Led Zeppelin IV를 합성한 사진. |
- 거의 같은 시기에 전성기를 누렸고, 비슷한 수준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으며, 출신지와 출신 계급까지 같은[137] 레드 제플린과 자주 비교된다.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다른 점도 많았는데, 레드 제플린은 태생 자체가 지미 페이지가 유능한 세션맨들을 영입한 슈퍼밴드에 가까웠지만, 핑크 플로이드는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끼리 만든 학교 밴드에서 출발했다. 또한 레드 제플린은 하드 록, 블루스 록, 헤비 메탈, 포크 록, 인도 및 중동 음악 등 수많은 장르의 음악을 추구한 반면, 핑크 플로이드는 사이키델릭 록이 발전한 형태의 프로그레시브 록을 추구했다는 점 역시 다른 점이다. 이렇듯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듯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두 밴드가 차트 경쟁을 했던 사실 때문에 해외 리스너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는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된다. 이를 반영하듯 구글에서 Led Zeppelin vs 혹은 Pink Floyd vs라는 검색어를 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연관 검색어가 상대 밴드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극성 레드 제플린 빠들과 극성 핑크 플로이드 빠들은 한 쪽을 찬양하면서 한 쪽을 까내리기도 하지만[138], 사실 두 밴드의 멤버들은 서로 친한 사이이며 서로의 콘서트도 자주 보러 갔다고 한다.[139] 한국에서는 여기에 vs 퀸까지 덧붙이기도 하나, 이는 퀸의 인기가 높은 국내 한정이며, 퀸에 대한 과대평가가 줄어든 현재에는 이러한 평가가 많이 줄어들었다.[140]
- 존 라이든의 I Hate Pink Floyd!!!라는 말이 유명하다. 존 라이든이 쟈니 로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 섹스 피스톨즈의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그때 입고간 핑크 플로이드 티셔츠에다가 굳이 I Hate를 덧붙인 것이다. 펑크 록 팬들에게는 꽤 유명한 일화라서, 현재는 존 라이든의 사상 그 자체를 대변하는 문구로 여겨지고 있다. 심지어는 I Hate Pink Floyd를 써넣은 티셔츠까지 팔 정도였다. 존 라이든은 반체제주의자로서, 더 후나 롤링 스톤스 등 당대 유명했던 밴드들을 무참히 비난하며 록씬을 또다른 기득권이라며 욕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존 라이든의 데뷔 시절이었던 1970년대 중반 최고의 인기 밴드였던 핑크 플로이드를 대표적인 "기득권 록 밴드"[141]로 여기고 핑크 플로이드를 싫어한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작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존 라이든은 핑크 플로이드를 싫어하지도 않고, 데이비드 길모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심지어는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
- 배우인 나오미 와츠와 인연이 있다. 나오미 와츠의 아버지인 피터 와츠는 로드 매니저 겸 사운드 엔지니어로 핑크 플로이드의 음반을 담당한 적이 있다. 그래서 피터 와츠가 사망하자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이 나오미 와츠 가족에게 금전적 지원을 좀 해준 적이 있다고. 또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별로 없는 나오미에게 핑크 플로이드의 팬들이 아버지 사진을 선물한 적도 있단다.
[1]
1968년에 찍은 이 사진은
시드 바렛과
데이비드 길모어가 같이 있는 이유만으로 상당히 유명하다. 다섯 명이 찍었던 사진 중 남아 있는 컬러 사진은 존재하지 않으나, 프로필에 기재된 사진은 현대에 컬러 복원 작업을 한 사진이다. 이 외에도 다섯 멤버가 모두 나온 사진은 매우 드물다.
#
#
#
[2]
다만 리더 3명의 출신지는 모두
케임브리지다.
[3]
라이브 8 공연을 위해 재결성.
[4]
시드 배릿 추모 콘서트 공연을 위해 재결성.
[5]
The Endless River 음반제작으로 인한 재결성.
[6]
싱글
Hey Hey Rise Up 제작을 위해 재결성.
[7]
다만 독재자 수준의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은 1976~1977년 이후다.
[8]
1965년 –
1968년 (탈퇴),
2006년 사망
[9]
1965년 –
1985년 (탈퇴)
[10]
시드 바렛 체제 -
로저 워터스 체제, 1965 – 1970s
[11]
로저 워터스 체제 -
데이비드 길모어 체제, 1970s – 1995
[12]
4위는
퀸, 5위는
AC/DC, 6위는
롤링 스톤스.
[13]
쉽게 설명하자면, 핑크 플로이드의 데뷔 앨범은
페퍼 상사와 차트 경쟁을 했고, 마지막 앨범은
오아시스 1집과 같은 연도에 나왔다. 비틀즈가 1960년대 중후반의 전설을 본격적으로 써내려가던 때부터, 비틀즈 빠돌이 밴드의 대표적인 오아시스가 데뷔할 때까지 정규 활동을 했다.
[14]
레드 제플린의 곡들은 가사가 야하다는 이유로 금지곡 처리됐으며, 퀸의 곡들은 가사가 잔인하다는 이유로 금지곡 처리됐다.
[15]
릭 라이트 사망 후 (2012~2015)
[16]
릭 라이트 탈퇴기(1979 - 1985), 로저 워터스 탈퇴기(1985 - 1995)
[17]
시드 바렛 탈퇴 직후(1968) - 릭 라이트 탈퇴 직전(1979)
[18]
1집 이전(1965), 시드 바렛 탈퇴 직전/데이비드 길모어 영입(1968)
[19]
전에 문서에서는 핑크 플로이드가 각 시기 별로 리더가 작곡을 주도 했다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이는 시드 바렛 탈퇴 이후 워터스 독재체제 이전까지 역사적 사실을 재대로 인지 못한 서술이다. 특히 리처드 라이트에 영향력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한 서술이다.
[20]
존 레논은 그나마 어릴적 존을 키워줬던 이모가 중산층에 속했기 때문에 미술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중퇴했다. 링고 스타는 초졸이며, 멤버들중 가장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
폴 매카트니는 어릴 때 정부에서 제공하는 한칸짜리 아파트에서 살기도 했고, 학교에 다닐 때 성적과 글쓰기 실력 등이 매우 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등록금 때문에 대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21]
시드 바렛,
릭 라이트,
데이비드 길모어
[22]
라이트 : 생화학, 바렛 : 병리학, 길모어 : 동물학
[23]
로저 워터스의 어머니는 학자는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교사를 맡은 지식인 출신이다. 워터스의 아버지 역시 2차 대전에서 전사하기 전에는 교편직을 잡고 있었다.
[24]
이는 핑크 플로이드가 기업가 등의 일반적인 중산층이 아닌, 진보 성향이 매우 강한 지식인 계층이었던 것이 가장 크다. 이들은 중산층임에도 불구하고 친 노동당 성향이 웬만한 노동계급 수준으로 강한데, 계급 투표 경향이 크게 드러나는 영국 정치 지형상에서 교수와 같은 지식인 계층은 예외 취급을 받고, 실제로 2019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전국적으로 참패를 당하는 와중에도 케임브리지 선거구에서만큼은 노동당 47%, 자민당 30%, 보수당 16%로 보수 진영이 엄청난 약세를 보였을 정도다.
[25]
사실 저때는 사이가 나쁘진 않아서, 무대를 내려가려던 데이비드 길모어를 로저 워터스가 불러서 멤버들끼리 허그했던 장면이다. 대략 2011년까지도 사이가 좋았던 듯. 그러나 2020년대가 된 지금은 모종의 이유로 다시 사이가 험악하다.
[26]
비틀즈는 폴 매카트니, 핑크 플로이드는 로저 워터스. 다만 비틀즈의 경우에는
오노 요코의 민폐짓,
존 레논의 독단적 행동, 그리고 둘에 못지 않은 송라이팅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묻힌
조지 해리슨의 불만, 애플 레코드의 재정 악화, 폴과 존의 음악 성향 분화, 신임 매니저 선임 과정 당시의 갈등 등 핑크 플로이드보다는 다소 다양한 원인이 해체에 기여했다.
[27]
존 레논은 리드 기타리스트는 아니었지만 리듬 기타를 맡았다.
[28]
특히 작사의 경우 사실상 워터스가 작사에 참여하지 않은 워터스 시기 곡은 거의 없다.
Obscured by Clouds의 Childhood's End 같이 다른 멤버들의 개인 자작곡 정도.
[29]
대표적으로 2020년 5월 로저 워터스가 뜬금 없이 데이비드 길모어를 도발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며 "난 데이비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멤버다" 따위의 개드립 아닌 개드립을 친 바 있다.
[30]
Us and Them이나 Burning Bridges, Stay등
[31]
Breathe (In the Air)나
The Division Bell,
The Endless River 몇몇 수록곡들
[32]
초중반, 후기 핑크 플로이드 음악성에 영향력을 미친 리처드 라이트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닉 메이슨 또한 음향 효과로 음악에 기여를 했으며 간간히 작곡에도 참여하였다.
[33]
워터스가 말하길, 음반 러닝 타임 문제로 인해 라이트의 솔로를 어쩔 수 없이 희생했어야 했다고.
[34]
공교롭게도 둘다
1943년 출생에, 2000년대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35]
실제로 닉 메이슨이 라이트의 사후 추모성명에서 둘을 비교하기도 했다.
[36]
화목해보이는 겉 모습과는 달리, 이 시기는 밴드 내에서 로저 워터스의 영향력이 독주 수준으로 막대했기 때문에, 로저 워터스와 다른 멤버간의 관계는 정말 극악이었다.특히 라이트와 워터스 사이가 눈에 띄게 어색해보인다.
[37]
멤버들이 가슴에 달고 있는 문장은
The Wall의 주인공 핑크가 세운 망치 제국의 엠블럼이다.
[38]
전성기 시절 앨범들은 모두 콘셉트 앨범이다.
[39]
1977년 전권을 잡기 전에도 작사는 워터스의 몫이었다. The Dark Side of the Moon 뿐만 아니라 1968년~1972년 과도기 시기의 앨범들의 가사는 대부분 워터스가 작사한 것이다.
[40]
이 음반 제작시기에 데이비드 길모어가 밴드에 참여했다.
[41]
장르로 취급되지 않으며, 60년대 후반 당시 유행한 우주적 스타일의 음악을 싸잡아 부르는 별칭이다. 핑크 플로이드는 이러한 스타일에 묶이는 것을 싫어해서
Meddle 앨범 제작시에 가사 컨셉과 앨범 커버를 우주에서 수중세계로 바꾸기까지 했다.
[42]
이러한 현대음악 학풍은 핑크 플로이드에만 해당하는건 아니다. 비틀즈, 특히 존 레논은 비틀즈 중반에 슈톡하우젠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심지어 페퍼상사 음반의 인물 중에 슈톡하우젠도 포함되어 있다. 존 레논 이러한 실험적인 면보는 이후 화이트 앨범이나, 오노 요코와 작업한 알몸 커버로 유명한 Unfinished Music 시리즈에서 더 강화된다.
[43]
Pow R. Toc H. 라는 곡에서는 시드 바렛의 비트박스가 들어가있다.
[44]
대표적으로
Astronomy Domine(배릿, 라이트 공동 리드보컬)등이 있다.
[45]
해리는 현재 키보디스트가 되어 가끔식 아버지 로저의 투어를 도와주고 있다.
[46]
사운드 신호를 2채널 스테레오나 4채널로 분산시켜주는 음향기기
[47]
다만 다음 앨범인
Kid A는 그다지 취향에 맞는 음악은 아니었다고.
[48]
악기구성이나 뮤지컬 같은 13집 컨셉앨범 4집 수록곡 생명을 들어보면 느낄 수 있다.
[49]
Rubber Soul,
Revolver,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The Beatles,
Abbey Road
[50]
Beggars Banquet,
Let It Bleed,
Sticky Fingers,
Exile on Main St.
[51]
특히 The Wall은 리처드 라이트가 모종의 이유로 작곡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다.
[52]
다만 엘튼 존의 판매고는 1970년대뿐만 아니라 이후 커리어까지 전부 합친 수치이기에, 순수 1970년대만 따지면 레드 제플린에 이은 2위이다.
[53]
제쓰로 툴 6천만장 + 러시 4천만장 +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4천8백만장 + 예스 5천만장+무디 블루스 7천만장+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5천만장+슈퍼트램프 6천만장=3억 7천 8백만장. 참고로 여기에 제네시스 1억장을 합쳐도 4억 7천 8백만장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2억 5천만장을 간신히 상회하는 것에 불과하다.
킹 크림슨은 앨범 판매량이 제대로 정산되지 않았지만 UK차트 및 빌보드를 대조해보면 예스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양을 팔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54]
국가별로 선호하는 음악 취향이 갈린다는 점을 보면 이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미국에서는
밴 헤일런과
레드 제플린,
건즈 앤 로지스를 위시한 헤비 메탈이 인기를 누렸던 반면, 영국에서는
데이비드 보위,
다이어 스트레이츠,
퀸 등
팝 록과
글램 록이 대세였고, 동아시아에서는 마찬가지로 팝 록이 인기있다.
[55]
레드 제플린은
롤링 스톤스와 더불어 막장 사생활로 유명한 70년대 록 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개판인 걸로 손에 꼽는 밴드이다.
[56]
whereas Led Zeppelin had looked outward, toward "conquering the world" and was known at the time for its outrageous sexual antics while on tour, Pink Floyd looked inward, toward "overcoming your own hang-ups" and seemed so sedate and boring.
[57]
사실 레드 제플린과 AC/DC는 각각 7,80년대를 풍미한 밴드인 만큼 구세대에게는 나름 알려진 편에 속한다. 그에 반해 롤링 스톤스와 더 후는 이상할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다.
[58]
일반적으로
비틀즈는 한국 한정으로 록 밴드라기보다는 팝밴드로 받아들여지며 밴드 자체가 유명할 뿐 노래는 몇몇곡을 제외하면 잘모르는 경우가 많다.
[59]
레드 제플린은 상술한 것처럼 국내에서의 밴드 인지도는 바닥이지만
로버트 플랜트,
지미 페이지,
존 본햄,
존 폴 존스 모두 각 분야의 본좌들 중 한 명이기에 개개인의 인지도는 높은 편이다.
[60]
비슷하게
이글스는 물론, 대중적이라 할 수 없었던
킹 크림슨의 노래들 또한 이러한 사회상을 타고 유행했다.
[61]
주인공인
죠죠의 이름을
비틀즈의
Get Back에서 나왔다고 한다.
[62]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핑크 플로이드라고 말할 정도.
[63]
반면
레드 제플린과 같은 밴드의 음악은 너무 시끄러워서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했다.
[64]
이 음반은 같은 해 사운드트랙
Music from The Body로 발매되었다.
[65]
Animals 투어에선 건반 세션도 담당했었다.
[66]
사실 이는 에즈린이 의도한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에즈린이 LA에 핑크 플로이드 팬인 친구에게 The Wall 투어 LA 첫 공연 티켓을 예매해줬는데, 공연 일주일전 갑자기 그 친구가 시간이 안된다며 공연 내용이 어떻게되는지 물어봤고, 그러고선 얼마뒤 빌보드 매거진 기사에 ‘밥 에즈린과의 저녁식사를 통해 묘사된 대로’라는 내용으로 모든 공연 내용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67]
하지만 에즈린은 이에 굴하지 않고 티켓을 구해 공연 보러 갔다고 한다. 당연히 경호원들에 제지를 받았지만 경호원중 과거 키스와 함께 일했던 경호원이 그를 알아보고 공연장 안으로 들여 보냈다고 한다.
[68]
처음에 워터스가 에즈린에게 연락해 과거의 일에 대해 사과하고 음반 이야기를 위해 영국으로 와달라고 부탁했지만, 에즈린은 당시 LA에서
로드 스튜어트 음반을 작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있는 LA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둘은 결국 그 중간인 뉴욕에서 만나 워터스는 음반작업을 위해 3개월간 영국으로 와달라고 부탁 했다. 하지만 에즈린은 음반 프로듀싱이 3개월안에 할 수 있는게 아니라며 제시한 스케줄에 현실성을 지적했고 동시에 당시 LA에 머물고 있었고 4명의 자식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워터스는 영국에 자신에 집을 빌려주고 얘들을 영국에 있는 미국학교로 다닐수 있게 하라고 했지만, 에즈린의 아내가 고민끝에 영국에 가는 것을 거부하면서 무산되었다. 근데 몇주뒤 우연의 일치로 길모어가
A Momentary Lapse of Reason 작업을 위해 연락해왔고, 워터스와는 다르게 길모어는 아들 매튜와 함께 직접 LA에 있는 에즈린의 집에 찾아와, 3일간 머물면서 “난 가족적인 남자야. 너 역시 가족적인 남자고. 우린 잘해볼 수 있어”라고 말하면서 에즈린에게 공동 프로듀서를 제안했다고 한다. 에즈린은 길모어의 프로듀서 제안을 수락했고, 밴드는 심지어 녹음중간에 휴가를 LA에 있는 에즈린의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후 당연하겠지만 에즈린과 워터스와의 관계가 다시 소원해 졌다. 워터스는 인터뷰에서 에즈린이 길모어의 제안을 수락한 이유가 계약당시 핑크 플로이드가 제시한 엄청난 개런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69]
길모어의 핑크 플로이드에서 활약했다가 워터스의 공연에 참여한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배신(?)으로 볼수도 있겠지만, 사실 길모어가 워터스 투어에 참여하라고 적극 권했다고 한다.
[70]
원래는 A Momentary Lapse of Reason 앨범의 세션 베이시스트로 참여한 토니 레빈에게 투어에 동행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여 가이 프랫이 대타로 서게 되었다고 한다.
[71]
다만 전원이 참여한 건 라이브 8이고, 라이브 에이드는
데이비드 길모어가 참여하였다.
[72]
Wish You Were Here까지 일부 남아있다 Animals 이후 완전히 제거됨
[73]
1964년 12월 – 1965년 1월, 컴필레이션 앨범
[74]
1964년 - 1972년과 1974, 박스 세트
[75]
1967년 - 1968년, 1970년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76]
1967년 - 1969년, 컴필레이션 앨범
[77]
1967년 – 1968년, 컴필레이션 앨범
[78]
1967년 – 1973년, 컴필레이션 앨범
[79]
1967년 – 1987년, 박스 세트
[80]
1967년 – 1993년, 컴필레이션 앨범
[81]
1967년 – 1993년, 컴필레이션 앨범
[82]
1967년 – 1994년, 박스 세트
[83]
1967년 – 1994년, 박스 세트
[84]
1967년 1월 11일 - 12일, 영상과 함께 제작된 라이브 앨범
[85]
1967년 1월 29일 - 10월 27일, 컴필레이션 앨범
[86]
1967년 1월 - 5월, 다큐멘터리 사운드트랙
[87]
1967년 2월 21일 - 5월 21일, 정규 1집
[88]
1967년 5월 9일 – 1968년 5월 3일, 정규 2집
[89]
1968년 5월 28일 – 1969년 8월 5일, 시드 배릿 1집
[90]
1969년과 1986년 - 1990년 또 1993년 - 1994년 그리고 2013년 - 2019년, 박스 세트
[91]
1969년 1월 - 2월, 영화 사운드트랙이자 정규 3집
[92]
1969년 4월 27일과 5월 2일, 라이브 앨범이자 정규 4집
[93]
1970년, 발매되지 않은 샘플이 모인 컴필레이션 앨범
[94]
1970년 2월 26일 - 7월 21일, 시드 배릿 2집
[95]
1970년 3월, 영화 사운드트랙
[96]
1970년 3월 1일 - 7월 26일, 정규 5집
[97]
1971년 1월-8월과 1975년 1월-7월 그리고 1979년 4월-11월 또 1981년, 컴필레이션 앨범
[98]
1971년 1월 4일 - 9월 11일, 정규 6집
[99]
1972년 2월 23일 - 4월 6일, 정규 7집
[100]
1972년 5월 31일 – 1973년 2월 9일, 정규 8집
[101]
1974년 11월 15일 - 16일, Wembely 라이브 앨범이 새로 수록된 컴필레이션 앨범
[102]
1975년 1월 13일 – 7월 28일, 정규 9집
[103]
1976년 4월 - 12월, 정규 10집
[104]
1978년 1월 10일 - 2월 14일, 리처드 라이트 1집
[105]
1978년 2월 - 3월 데이비드 길모어 1집
[106]
1978년 12월 - 1979년 11월, 정규 11집
[107]
1980년 8월 7일~9일과 1981년 6월 14일~17일, 라이브 앨범
[108]
1979년 10월과 1979년 12월 그리고 1980년 5월, 닉 메이슨 1집
[109]
1982년 7월 - 12월, 정규 12집
[110]
1983년, 데이비드 길모어 2집
[111]
1983년 2월 - 12월, 로저 워터스 1집
[112]
1986년 – 2019년, 컴필레이션 앨범
[113]
1986년 10월 - 12월, 로저 워터스 2집
[114]
1986년 10월 ~ 1987년 5월, 정규 13집
[115]
1987년 – 1992년, 로저 워터스 3집
[116]
1988년 8월 19 - 23일, 라이브 앨범
[117]
1993년 ~ 1994년, 정규 14집
[118]
1994년 8월 17일 - 10월 23일, 라이브 앨범
[119]
1996년, 리처드 라이트 2집
[120]
2001년 – 2005년, 데이비드 길모어 3집
[121]
2010년 - 2015년, 데이비드 길모어 4집
[122]
2010년 – 2017년, 로저 워터스 4집
[123]
1969년과 1993년 그리고 2013년 – 2014년, 정규 15집
[124]
실제로
The Wall의 월드 투어 당시엔 음반이 그토록 히트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았음에도 무대에 너무 공을 들여서 적자를 봤다고 한다.
[125]
하지만 이 녹음본은 음반에서 사용되지는 않았다. 폴은 간단한 질문에는 최대한 성의있게 대답해줬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혹은 '달의 어두운 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와 같은 심오한 질문에는 특유의 유머로 대충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며 (비틀즈에 대한 존경과는 별개로) 빡친 워터스가 인터뷰 자체를 없던 것으로 해 버렸다.
[126]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 중 가장 키가 큰 로저 워터스와 AC/DC 멤버들 중 가장 키가 작은 앵거스 영과의 키 차이는 34cm(!!)나 된다.
[127]
혹시 잘 모르겠다면 The Wall의 컨셉트 포토를 볼 것. 다수 거구임을 확인할 수 있다. AC/DC는 멤버 평균 키가 164.4cm이며, 핑크 플로이드는 멤버 평균 키가 183.2cm다. 거의 20cm 가까이 차이나는 것이다.
[128]
AC/DC의 경우 앵거스 영은 고작 157cm로 어지간한 여자들보다 작으며 친형인 말콤 영또한 160cm 밖에 되지 않고 말콤 영의 후임으로 들어온 조카 스티비 영도 157cm다. 브라이언 존슨은 165cm, 필 러드는 168cm, 클리프 윌리엄스가 170cm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원래 보컬이었던 본 스콧이 173cm로 가장 크지만 이마저도 당시 영국인 신장보다 약간 모자라다.
[129]
다만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187cm로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큰 키다.
[130]
로저 워터스는 서리에서 태어났지만 케임브리지에서 자랐다.
[131]
로저 워터스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교편을 잡았었기 때문에 먹고 사는데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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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이 둘은 서로 사이가 나빠서, 워터스는 길모어를 우파몰이한 전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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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킹 크림슨과 퀸, 초기의 딥 퍼플은 프로그레시브 록 계열, 러시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계열로 핑크 플로이드과 대체로 장르가 겹친다.
[134]
릭 라이트는 당시 자신은 코카인 중독자가 아니라고 주장했고, 죽을 때까지 여러번 인터뷰에서 마약 투약설을 부정해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당시 워터스와 라이트 사이에서 발생한 음반 프로듀서권을 두고 생긴 불화에, 당시 밴드 내에서 영향력이 강했던 로저 워터스가 릭 라이트를 쫓아내기 위해 워터스가 꾸며낸 일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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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마리화나는 조금 피우는 수준이었다고한다. 특히
데이비드 길모어는 마리화나를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코카인 흡입 논란도 있었는데, 길모어의 지인이 마약을 숨겨둔 지하실에 드나들었을 때 코카인은 안보였다고 한다. 애초에 당시에나 지금에나 서구권에서는 오락 목적의 마리화나 합법화가 이뤄지는 나라들이 많을 정도로 마리화나는 조금 강한 담배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로저 워터스는 시드 바렛 탈퇴 이후에도 LSD를 한번 핀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LSD를 피우고 나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식료품점에 가다가 주저 앉아버려 혼절했을정도의 충격을 받아 이후로는 LSD에는 손도 안댔다.
[136]
다만 시드 바렛은
오노 요코를 비롯한 몇몇 여성과의 염문이 좀 있는 편이었다.
[137]
레드 제플린 : 1970년대 초중반 / 록 밴드 역대 2위 / 아티스트 전체 6위 / 런던 / 중산층, 핑크 플로이드 : 1970년대 중후반 / 록 밴드 역대 3위 / 아티스트 전체 8위 / 런던 / 중산층
[138]
물론 진지하게 이 두 밴드중 어느 밴드가 더 위대하거나 대단한지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부터 두 밴드가 추구했던 음악이 개성이 강했기 때문에 1대 1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밴드가 현역시절이었을 때는 비교하는 경우가 적었다.
[139]
이를테면 1970년에
데이비드 길모어가
폴 매카트니와 함께 레드 제플린 공연을 보러갔을 때 찍힌 사진도 있고,
로버트 플랜트는 라이브 8에서의 핑크 플로이드의 재결성 공연에 감동받아 레드 제플린 재결성 공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물론 워터스-길모어가 이후 사이가 다시 틀어졌 듯 플랜트-페이지 역시 사이가 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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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두 밴드와 비교했을 때 퀸에 대한 음악적 평가는 평론가들과 리스너들에게 훨씬 떨어진다. 물론 최근에는 그동안 퀸이 평론가들에게 지나치게 과소평가 되었다는 여론이 있어서 예전보단 나아졌지만 그래도 한참 못미친다.
[141]
자고로 핑크 플로이드는 대표적인 사회주의자 밴드이다. 데이비드 길모어와 로저 워터스는 실수로 스폰서를 받아도 그걸 다 기부해버리고, 재규어를 샀다가도 사치를 하지 않기 위해 바로 팔아치워버리는 입진보와도 거리가 먼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이다. 다만 세금을 많이 걷는 큰정부를 극혐하는 존 라이든의 정치 성향상 이들이 위선자로 보였을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관심을 받을 목적으로 핑크 플로이드를 깐 것일 수도 있다. 존 라이든이 현재 핑크 플로이드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고려해본다면 두가지가 합쳐져서 핑크 플로이드를 싫어한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