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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계 칠레인들은 칠레에 거주하는 영국 출신 후손들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칠레로 이주한 잉글랜드인, 스코틀랜드인, 웨일스인, 콘월인, 북아일랜드인 등등을 포함한다. 아일랜드인의 경우는 다소 애매한 것이 영국 여권을 들고 칠레로 이민 온 아일랜드인보다는 베르나르도 오이긴스처럼 스페인으로 귀화한 아일랜드인 후손들이 칠레에 정착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2. 역사
1824년부로 칠레 정부는 스위스, 독일 그리고 영국 등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칠레에 공장을 설립하고 이를 운영할 이민자를 모집할 법령을 발표하였다. 그 결과 영국 자본가들 상당수가 칠레에 자본을 투자하여 사업체를 운영하였는데, 1907년 칠레 상업 회사의 1/3, 1908년 기준 고가 부동산의 20%, 1914년 기준 전체 산업 시설의 49%가 55,000여 명 남짓한 유럽계 이민자들의 수중에 있었고, 이들 중 가장 부유한 사업가들은 바로 영국 출신 이민자들이었다.영국은 호주와 뉴질랜드 식민지를 개발하는 와중에 식료품을 포함한 생필품 상당수를 칠레로부터 수입하였는데,[1] 이러한 연유로 1840년부터 1914년 사이에 상당수의 영국인 사업가들이 칠레에 정착하기도 했다. 한 편 칠레에서 비료로 쓸 인광석 채굴 산업이 번창하자, 영국 기업들은 콘월 지방의 광산 기술자들을 데려와서 칠레 현지의 광산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유로 칠레는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에서 가장 영국계 비중이 높은 나라이다. 인광석이 고갈되고, 파나마 운하가 개통된 것을 계기로 많은 영국인들이 칠레를 떠났으나, 그럼에도 영국계 칠레인 후손 상당수가 남이 있다. 인구 추정치는 약 45만 명에서 70만 명 정도로 보이고 있으며, 이는 칠레 전체 인구의 약 4%를 차지한다.
19세기 후반 영국 자본이 칠레에 대거 투자되었는데, 파나마 운하가 뚫리기 이전 칠레의 항구도시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주요 해양 경유지였고, 이를 영국이 눈 여겨 보았기 때문이다. 영국계 이주민 대부분은 칠레의 남부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정착했으며, 그 중 하나인 푼타아레나스는 영국계 비중이 가장 높은 도시로 유명하다.
3. 관련 문서
[1]
호주에서 필요한 생필품 대부분을 영국 본토에서 조달하기에는 운송 비용이나 시간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