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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섬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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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섬브리아 왕국
Norþanhymbra Rīce
Norþanhymbre
파일:노섬브리아 왕국 국장.svg
국장
파일:노섬브리아.jpg
노섬브리아 세력권
653년[1] ~ 927년[2]/954년[3][4]
고대 영어 Norþanhymbra Rīce / Norþanhymbre
라틴어 Regnum Northanhymbrorum
위치 잉글랜드 북부, 스코틀랜드 남부
수도 베반부르흐[5], 에오포르위치( 요크)[6]
언어 고대 영어[7], 라틴어, 고대 노르드어[8]
종교 게르만 종교, 그리스도교
종족 앵글로색슨, 노르드인
정치 체제 군주제
국가 원수
주요 국왕 오스위그 (654 ~ 670)
앨라 2세 (? ~ 867)
할프단 라그나르손 (876 ~ 877)
에이리크 1세 블로됙스 (947~948, 952 ~ 954)
성립 이전 버니시아, 데이라
멸망 이후 웨식스, 데인로

1. 개요2. 버니시아와 데이라3. 확장기4. 번영과 몰락5. 대중 매체
언어별 명칭
고대 영어 Norþanhymbra Rīce / Norþanhymbre
라틴어 Regnum Northanhymbrorum
영어 Kingdom of Northumbria
[clearfix]

1. 개요

고대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족이 세운 7왕국 중의 하나다. 국명은 고대 영어로 '노르딤브레'(Norþhymbre) 또는 '노르단힘브레'(Norþanhymbre)로 '험버 강 북쪽에 있다'는 데서 유래되었고, 독립된 두 국가인 버니시아와 데이라가 통합해 653년 건국되었다.

2. 버니시아와 데이라

6~7세기 잉글랜드 북부와 스코틀랜드 남부 사이에는 버니시아(Bernicia)와 데이라(Deira)[9]라는 두 개의 왕국이 존재했다. 버니시아는 동부 요크셔 일대를 기반으로 했고, 데이라는 북부의 뱀버러, 린디스판, 컴브리 지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두 왕국 모두 처음에는 해안가 지방만을 통치했으나 차차 브리튼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영토를 내륙 지방까지 넓혀갔다.

버니시아의 건국자 이다(Ida)의 손자인 애델프리드(Æthelfrith)는 593년에 즉위해 604년에는 데이라의 왕을 겸했다. 애델프리드는 정적인 처남 에아드위네(Ēadwine, 노섬브리아의 에드윈)를 제거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에아드위네는 동앵글리아로 망명했다. 이후 여러 차례 뇌물로 에아드위네의 암살을 청탁했으나 616년, 되려 에아드위네가 동앵글리아의 왕 래드왈드(Rædwald)의 지원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애델프리드를 격파했다. 에아드위네는 버니시아를 공식적으로 데이라 왕국에 합병하였다.

하지만 에아드위네는 632년 머시아의 펜다 왕과의 전투 중 전사했고, 634년에 애델프리드의 아들인 버니시아의 오수왈데(Osuualde, 오즈왈드)가 왕이 되어 버니시아와 데이라는 완전히 통합되었다. 오수왈데의 다음 왕이자 오수왈데의 동생인 오스위그(Ōswīg, 오스위우)는 아버지의 숙적이었던 에아드위네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고, 653년에 노섬브리아 왕국의 건국을 선언했다. 결혼 동맹을 통해 통일 국가인 노섬브리아가 건국되면서 버니시아와 데이라의 끝없는 갈등은 막을 내렸다.

3. 확장기

노섬브리아는 에아드위네, 오수왈데, 오스위그 세 왕의 통치기에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에아드위네와 오수왈데의 통치기에는 여전히 버니시아와 데이라, 두 왕국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기 때문에 완전한 통일 왕국으로 볼 수는 없다.

오수왈데가 메이서필드 전투에서 머시아의 펜다 왕에게 패배하여 전사하자 왕위를 계승한 동생 오스위그는 655년 펜다를 전사시켜 브리튼 섬의 패자가 되었다. 오스위그의 시대에 노섬브리아는 스코틀랜드에서 머시아 왕국까지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다. 오스위그는 가톨릭과 토착화된 켈트 기독교의 종교적 차이로 발생하는 갈등을 완화시키려 했지만 결국 가톨릭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 노섬브리아는 다시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4. 번영과 몰락

7세기 후반에서 8세기에 이르는 시기에는 종교, 예술, 학문 등의 문화적인 부분에서 발전이 많았다. 그러나 8세기 후반에 이르러 점차 동부 해안에서 바이킹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노섬브리아 영토였던 린디스판 섬의 린디스판 수도원을 약탈한 것을 시작으로 노섬브리아를 유린하였다.

이후 바이킹 전설에 따르면[10] 스웨덴과 덴마크의 전설적인 군주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는 제멋대로 구는 아들들의 행태에 분노하여 배 단 몇 척만 가지고 노섬브리아를 정복하겠다면서[11] 9세기경 침략해왔고, 노섬브리아 왕 앨라 2세(Ælla II)[12]는 해안가에서 대승을 거두어 그를 사로잡았다. 이후 앨라 2세는 라그나르를 독사가 득시글거리는 뱀굴에 던져넣어 죽여버렸다.

라그나르가 처참하게 죽자 바이킹들은 분노하여 라그나르의 여섯 아들, 즉 굳센 뵤른, 뱀눈 시구르드, 약골 이바르, 흰옷 할프단, 흐비트세르크, 우바[13]가 군대를 이끌고 대대적으로 잉글랜드를 침략하니, 이것이 이교도 대군세의 시작이었다.

866년 수도 에오포르위치(요크)가 함락당했고, 앨라 2세는 붙잡혀 피의 독수리형으로 처형되었다. 그리고 노섬브리아의 남부 일대가 점령당했다. 이후 베반부르흐(뱀버러)를 수도로 한 앵글로색슨족의 노섬브리아[14]와 요르비크(Jórvík, 요크)를 중심으로 한 바이킹의 노섬브리아로 분열되었다.

877년 바이킹 노섬브리아의 왕 할프단 라그나르손(Hálfdan Ragnarsson)이 더블린 왕국의 왕위 계승권을 요구하면서 아일랜드를 침공했다가 전사했다. 그러자 북쪽의 앵글로색슨 노섬브리아의 왕 에즈베르흐트(Ecgberht, 에그버트) 2세는 남쪽으로 진군해 버니시아 지방까지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에그버트 2세 이후 앵글로색슨 노섬브리아는 내부 분열로 쇠락했다.

909년에 대 에드워드가 군사를 보내며 떠보자 910년에 하프단과 에오윌스가 보복으로 머시아 웨식스로 군사를 보냈지만 오히려 참패해 앵글로색슨족의 통치를 받다가, 918년에 라그날 1세에 의해 바이킹의 통치로 탈환된다. 이후 즉위한 시흐트리크는 바로 체셔주를 공격했고, 이후 926년 결국 웨식스에 항복한다.

시흐트리크 사후 927년, 잉글랜드 왕국의 건국을 선포한 웨식스애델스탄( 애설스탠)은 노섬브리아로 진군해 요르비크의 바이킹 노섬브리아를 합병했다. 애설스탠 사후 노섬브리아는 부활했지만 954년 잉글랜드의 왕 이드리드의 공격에 완전히 병합되고 말았다.

다만, 이 시기에도 문화적으로는 발전되었는데 특히 데인로로 인해 다시 도입된 북유럽 신화 기독교 신앙이 합쳐진 예술 작품이 크게 유행했다.

노섬브리아를 계승한 현재의 지명으로 노섬벌랜드가 있다.

5. 대중 매체



[1] 앵글로색슨 7왕국 중 가장 나중에 세워졌다. [2] 웨식스의 마지막 왕이자 잉글랜드 왕국의 초대 왕인 애설스탠의 정복. 이 때 웨식스가 앵글로색슨 7왕국을 모두 통일함으로써 잉글랜드 왕국이 탄생했다. [3] 애설스탠 사후 독립했지만 잉글랜드 왕국 이드리드에 의해 다시 완전히 병합됨. [4] 앵글로색슨 7왕국 중 가장 늦게 잉글랜드에 흡수되었다. [5] Bebbanburh. 현대 지명은 뱀버러(Bamburgh). [6] Eoforwic. 현대 지명은 요크(York). [7] 노섬브리아 방언. [8] 바이킹 통치 하의 요크 노섬브리아. [9] 고대 영어 발음은 각각 '베오르니체'(Beornice)와 '데레'(Dere). [10]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문서와 같이 보면 좋다. [11] 당시 라그나르가 탔던 배는 '크나르'라는 배였는데, 보통 한 척에 100명, 우겨넣어서 많이 타 봐야 200명 정도였다. 즉 끽해봐야 1,000명도 안 되는 전사들과 함께 잘나가는 왕국 하나를 정복해보겠다고 한 것이다. 누가 보아도 만용이었지만, 바이킹의 전성기를 이끈 자신을 도외시하고 아들들이 제멋대로 구는 통에 환멸을 느낀 것이라고도 한다. [12] 노섬브리아의 왕이었음은 확실하나 사료가 적어 어떤 인물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나마 앨라에 대해 언급한 앵글로색슨 문헌들조차 그를 자격도 없는 주제에 왕위를 찬탈한 폭군 정도로 전한다. 어떻게 보면 약탈자 무리에게 시달리다 잡혀 죽은 불쌍한 왕이라는 이미지가 생길 법도 한데, 바이킹도 아닌 앵글로색슨 쪽 기록에서부터 이미지가 나쁜 탓인지 관련 미디어에서는 대부분 악역으로 등장한다. [13] 이중 흐비트세르크라는 이름은 본래 '흰옷'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할프단과 동일인물로 여기기도 한다. [14] '노스레오데'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