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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영국(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아일랜드 왕국, 아일랜드 공화국, 아일랜드 자유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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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아일랜드 통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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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아일랜드 관계, 영국-아일랜드-북아일랜드 관계, 아일랜드-스코틀랜드 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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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독립운동 | |||||
관련 인물 | 마이클 콜린스, 로저 케이스먼트, 에이먼 데 벌레라 | ||||
관련 사건 | 영국의 자치권 이양, 부활절 봉기, 아일랜드 독립 전쟁, 아일랜드 내전 | ||||
북아일랜드 분쟁 | |||||
피의 일요일 사건, 아일랜드 단식투쟁 |
북아일랜드 분쟁 Na Trioblóidí The Troub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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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
1960년대~ 1998년[1] | |||||
장소 | |||||
북아일랜드(주요 분쟁지), 영국, 아일랜드, 일부 유럽 국가 | |||||
원인 | |||||
개신교와 가톨릭/독립 반대파와 찬성파로 갈린 정치, 종교 갈등 영국군의 북아일랜드 지역 시위 과잉진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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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국가 및 세력 | |||||
국가보안군 [[영국| ]][[틀:국기| ]][[틀:국기| ]] [[아일랜드| ]][[틀:국기| ]][[틀:국기| ]] |
아일랜드 공화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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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스터 충성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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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국가 및 세력 | |||||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틀:국기| ]][[틀:국기|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아일랜드계 미국인들 아일랜드 마피아 |
[[남아프리카 연방| ]][[틀:국기| ]][[틀:국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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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 |||||
벨파스트 협정 | |||||
피해 | |||||
3,532명 사망[3][4] 47,541명 부상[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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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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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행진(1964~1972) 데리 행진(1968년 10월 5일) 인민민주주의 행진(1969년 1월 1일~1월 4일) 영국군 배치(1969년 8월 14일~2007년 7월 31일) 억류(1971~1975) 피의 일요일 사건(1972년 1월 30일) 직접 통치 도입(1972년 3월 30일) 피의 금요일 사건(1972년 7월 21일) 서닝데일 협정(1973년 12월 6일~9일) 얼스터 노동자 위원회 파업(1974년 5월) 더블린-모너핸 폭파(1974년 5월 17일)[7] IRA 휴전(1975년 2월 9일~1976년 1월 23일) 제헌 회의(1975년 5월 8일~1976년 3월 5일) UUAC파업(1977년 5월 3일~13일) 아일랜드 단식투쟁(1981) 북아일랜드 의회(1982년 11월~1986년 6월) 영국-아일랜드 협정(1985년 11월 15일) 브루크/메이휴 회담(1991년 4월~1992년 11월) 평화 절차(1993~현재) 오마 폭파(1998년 8월 15일)[8] |
[clearfix]
1. 개요
영어: The Troubles, Northern Ireland conflict[9]아일랜드어: Na Trioblóid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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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북아일랜드 분쟁의 기원 | 역사저널 그날, 브라이튼 호텔 테러 |
2.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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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브리튼(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및 아일랜드의 민족 구분은 혈통이 아니라 출신 지역별로 구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잉글랜드 출신 부모를 가진 아이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면 이 아이는 Irish로 분류했고 21세기에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다. 아일랜드 독립 운동의 거두였던 찰스 스튜어트 파넬(Charles Stewart Parnell) 같은 경우 Irish로 분류되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족보나 가문을 따라가 보면 잉글랜드계(Anglo-Irish)였으며 본인도 개신교 신자였다.[10] 때문에 오늘날 북아일랜드의 갈등은 Irish vs. English, Irish vs. Scottish의 민족 갈등보다는 신교 vs. 구교, 왕당파 vs. 공화파, 연합주의 vs. 아일랜드 민족주의 사이의 다양한 종교, 이념, 사상 갈등으로 봐야 할 것이다. 수도인 벨파스트는 개신교 지역과 가톨릭 지역이 벽으로 확연히 나뉘어 있는 분단된 듯한 도시로 거리 곳곳에 지지 정파를 드러내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영국의 다른 지역과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중세부터 아일랜드의 농민들은 영국의 지주로부터 큰 수탈을 당해 왔고 산업 사회가 되면서 영국의 산업 자본 밑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노동자가 되었다. 영국은 북아일랜드를 버리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로 영국군이 물러날 경우 이주 영국인과 개신교도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본토로의 이주를 강권하자니 죽어도 이주는 안 하겠다고 하고[11] 막대한 지원비만 타내고 쓸 만한 산업 기반이나 노동력도 없는 북아일랜드는 엄청난 짐이라는 게 영국의 설명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독립으로 자극을 받은 스코틀랜드까지 떨어져 나가면 '연합 왕국'이라는 체제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인 것도 있다.
이 지역의 무장 단체로는 IRA가 유명하고 영국 충성파가 만든 UDA 등 반 IRA 폭력 단체도 극성을 부렸다. 일단 IRA는 2005년 무장 해제를 선언해 극소수 원칙주의자를 제외한 IRA의 무장은 공식적으로 해체된 상태다. 그래도 산발적으로 테러가 일어나기도 한다. 일단 북아일랜드는 다른 영국의 지역에 비해 광범위한 자치를 보장받고 있는 편이기는 하다.
좌우 이념 갈등도 있어서 대개 영국 충성파는 우익이고 반대로 독립파는 좌익이다. 1920~60년대 사이 IRA는 노골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을 주장했고 IRA가 이것에 집착해 실제로 가톨릭 신자인 주민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에 반발해서 60년대 후반에 분리해 나간 다수파 PIRA도 반민족주의적 극좌 성향을 배격하긴 했지만 최종적인 슬로건은 여전히 통일된(united), 민주적인(democratic), 사회주의(socialist) 아일랜드 공화국(Irish Republic) 성립을 유지하고 조직에도 단순한 반영 민족주의를 넘어 이런 성향이 있다. 신페인도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을 많이 미는 등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은 예나 지금이나 좌익 성향이 있다.
3. 피의 일요일 사건
자세한 내용은 피의 일요일 사건(북아일랜드) 문서 참고하십시오.Domhnach na Fola( 아일랜드어) 혹은 Bogside Massacre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의 런던데리(혹은 데리)[12]에서 영국군이 비무장 시위대와 민간인들에게 발포하여 14명이 사망했다.
[13]
사건 당시 북아일랜드에 파병된 영국 육군 공수부대원.
4. 아일랜드 단식투쟁
자세한 내용은 아일랜드 단식투쟁 문서 참고하십시오.5. 벨파스트 협정
자세한 내용은 벨파스트 협정 문서 참고하십시오.6. 외부 링크
7. 기타
8. 둘러보기
아일랜드의 대외 전쟁·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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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분쟁 | 교전국 | |
<colbgcolor=#FF883E>
아일랜드 독립 전쟁 ,1919 ~ 1921, |
영국 | ||
콩고 내전 ,1960 ~ 1964, |
카탕가국 | ||
북아일랜드 분쟁 ,1968 ~ 1998, |
영국 UVF IRA | }}}}}}}}} |
[1]
분쟁 종식 기준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1999년설, 2005년설 등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양하게 갈린다. 심지어 현재진행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2]
남아공 무기상들은 IRA에게도 무기를 댔다.
[3]
민간인 1,840명
[4]
https://cain.ulster.ac.uk/sutton/tables/Status_Summary.html
[5]
https://cain.ulster.ac.uk/ni/security.htm
[6]
참고 자료. 여기 적힌 사건들은 북아일랜드 분쟁의 일부로
영어 위키백과에 문서가 존재하는 관련 사건 수는 엄청 많다.
[7]
친영 민병대인 얼스터 의용군이 더블린과 모너핸에서 저지른 차량 폭탄 테러로 34명이 사망했다.
[8]
RIRA가 저지른 차량 폭탄 테러로 29명이 사망했다.
#
[9]
영미권에서는 The Troubles를, 그 외 국가에서는 주로 북아일랜드 분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10]
이런 구분이 못마땅했던
조지 버나드 쇼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고 Irish라니! 그럼 공기 중에서 태어나면 Airish겠군!"이라고 비꼰 적도 있다. 참고로 조지 버나드 쇼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으로 두 국가의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11]
사실 영국 본토 이주 지원도 엄청난 자금이 소요된다.
[12]
원래 데리라는
게일어에서 비롯된 현지 지명이다. 그런데
북아일랜드를
영국이 지배하면서 아일랜드 지명 앞에
런던을 붙인 것. 현지인 중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런던데리라고 부르지 않고 데리라고만 부른다. 요즘은 잉글랜드를 위시한 영국의 타 지역에서도 이곳을 Derry / Londonderry라고 병기하는 경우가 많다.
[13]
이미지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