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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0 17:33:54

명군이 되어보세!/등장인물/3부

명군이 되어보세!
등장인물 ( 1부 · 2부 · 3부 · 4부 · 이재석 · 김상희)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대한(大韓)
2.1. 재석의 가족2.2. 황실
2.2.1. 숙조계2.2.2. 현왕계2.2.3. 기타
2.3. 성친왕파
2.3.1. 8차 견서사2.3.2. 카자크 6형제2.3.3. 기타 유주인2.3.4. 여흥 민씨2.3.5. 기타 한인
2.4. 예왕파
2.4.1. 예왕 가족2.4.2. 반란군 주축2.4.3. 기타 지지세력
2.5. 조정
2.5.1. 내각승상→국무총리대신 2.5.2. 좌, 우 승상 → 참정대신2.5.3. 6부 대신 → 12부 대신2.5.4. 금위사장2.5.5. 익문사장2.5.6. 외관(外官)2.5.7. 기타 관원
2.6. 군부2.7. 대한령 미주
2.7.1. 미주대총관2.7.2. 한인2.7.3. 원씨 가문2.7.4. 토인2.7.5. 기타
2.8. 종교인
2.8.1. 천주교2.8.2. 불교2.8.3. 덕성도
2.9. 기타2.10. 대한의 외번(外藩)
2.10.1. 대명공2.10.2. 심왕부2.10.3. 하와국
2.10.3.1. 역대 국왕2.10.3.2. 왕실2.10.3.3. 추장2.10.3.4. 한인2.10.3.5. 기타
2.10.4. 조홀국
2.10.4.1. 역대 국왕2.10.4.2. 왕실2.10.4.3. 신료
2.10.5. 술루국
2.10.5.1. 역대 국왕2.10.5.2. 왕실2.10.5.3. 신료2.10.5.4. 군부2.10.5.5. 기타
2.10.6. 주산군도
3.
3.1. 역대 황제3.2. 황실3.3. 신료
4. 후금
4.1. 역대 대칸4.2. 황실4.3. 보르지긴 가문4.4. 신료
5. 일본6. 유구
6.1. 역대 국왕 → 황제6.2. 황실6.3. 신료
7. 아모국8.
8.1. 역대 황제8.2. 신료8.3. 서의 내번(內藩)
8.3.1. 운남8.3.2. 광동8.3.3. 광서
9. 후송
9.1. 역대 황제9.2. 황실9.3. 신료9.4. 군부9.5. 홍씨 가문9.6. 기타
10. 안남11. 섬라12. 준가르13. 천축국14. 파사국15. 현돌궐16. 대유주

1. 개요

슈타인호프 작가의 웹소설 명군이 되어보세! 3부의 등장인물들.
실존 인물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가상인물

2. 대한(大韓)

1, 2부에서 역사가 너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인지 2부에 비해 대다수가 가상인물이 되었다.

2.1. 재석의 가족

대한 추존 태황
원종 | 元宗
대한 중종의 황태자
사도태자 | 思悼太子
원종사도수덕돈경홍인신문환무장헌광효태황
元宗思悼綏德敦慶弘仁神文桓武莊獻廣孝太皇
[A]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묘호 원종(元宗)
존호 사도수덕돈경홍인
(思悼綏德敦慶弘仁)[A]
시호 신문환무장헌광효태황
(神文桓武莊獻廣孝太皇)[A]
출생 1692년 12월 24일 (음력 11월 17일)
대한 남미주 지선성 성친왕저(미주별궁) 안채
사망 1736년 5월 7일 (음력 3월 27일)
대한 한성부 경희궁 동궁전 침실
능묘 경릉(□陵)(본묘)
원릉(남미주 지선성 미주별궁 뒷산 가묘)
절일 □□절(□□節)
재위 대한 황태자
1700년 ~ 1736년 5월 7일
(음력 1700년 ~ 1636년 3월 27일)
대한 태황 대리청정
1710년,[7] 1711년[8], 1723년 등,[9]
1724년[10]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colbgcolor=#ffffff,#1f2023> 전주(全州)
은(訢)
전호 비현각(丕顯閣)
부모 중종 건흥제, 인현황후 민씨
부인 인목태후 한씨, 숙녀 이씨
자녀 3남 5녀. 원강제 이영, 의현군주 이성연,
의진군주 이□□, 황손녀 이□□,
진왕 이원, 황손녀 이□□, 황손 이□,
의순공주[11]
}}}}}}}}}
조선 제19대 국왕
대한 제5대 태황
현종 원강제 | 顯宗 元康帝
현종소휴연경돈덕수성순문숙무경인창효태황
顯宗昭休衍慶敦德綏成純文肅武敬仁彰孝太皇
[13]
출생 1717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자선당
즉위 1740년
대한 황도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775년 5 (음력 )
대한 한성부
재위 대한 황태손
1736년 ~ 1740년
대한 태황 대리청정
1739년 ~ 1740년
대한 태황
1740년 3월 8일 ~ 1775년
(음력 1740년 2월 10일 ~ 음력 1775년)
연호 원강(元康)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본관 전주(全州)
영(□)
부모 부황 사도태자 원종, 모후 인목태후
부인 황후 유씨 }}}}}}}}}
건흥제의 후궁
황귀비 |皇貴妃
비호 황귀비(皇貴妃)
올렝카
출생 1666년 7월 13일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 비텝스크
사망 1721년 12월 18일(건흥 22년)(향년 55세)
대한 한성부 경복궁 연수당
천행수( 독감)로 인한 사망
재위 1700년 ~ 1721년
매장지 대한 한성부 마포성당
부모 얀 3세 소비에스키, 헬레나 질린스카
부군 건흥제 이현
자녀 장녀 수빈공주 이명주(차리차 루시아 표도로브나 로마노바)
차녀 수명공주 이향주(율리아)

2.2. 황실

2.2.1. 숙조계

조선 제19대 왕비
대한 제3대 황후
□□皇后 □□황후
존호 진성□□(□□□□)
시호 □□(□□)
출생 1636년(선조 10년, 건원 5년)
대한 충청남도 아산군 일동면 삼거리[29]
사망 1708년 12월 24일 (음력 11월 17일)
대한 한성부 창경궁 경춘전
능묘 정릉(□陵)
절일 □□절(□□節)
재위 대한 황태자비
?? ~ 1650년
대한 황후
1650년 ~ 1678년
대한 황태후
1678년 ~ 1699년 3월 27일
(음력 1678년 ~ 1699년 2월 26일)
대한 태황태후
1699년 3월 27일 ~ 1708년 12월 24일
(음력 1699년 2월 26일 ~ 1708년 11월 17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3px"
본관 덕수(德水)
부모 □□후 이□□, □□후부인 □씨
부군 열조 연가제
자녀 4남 3녀 }}}}}}}}}
조선 제17대 국왕
대한 제3대 태황
숙조 건복제 | 肅祖 建福帝
숙조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태황
肅祖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太皇
[B]
묘호 숙조(肅祖)
존호 현의광륜예성영렬
(顯義光倫睿聖英烈)[B][36]
시호 장문헌무경명원효태황
(章文憲武敬明元孝太皇)[B][38]
출생 1659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C]
즉위 1678년
대한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C]
사망 1699년 3월 27일 (음력 2월 26일)
대한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
능묘 태릉(泰陵)
절일 □□절(□□節)
재위 대한 황태자
?? ~ 1678년
대한 태황 대리청정
?? ~ 1678년[41]
대한 태황
1678년 ~ 1699년 3월 27일
(음력 1678년 ~ 1699년 2월 26일)
연호 건복(建福)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본관 전주(全州)
윤(阭)
전호 선정전(宣政殿)
부모 부황 열조, 모후 진성황후
부인 순현황후, 귀비 박씨, 진빈 홍씨, 미인 백씨 }}}}}}}}}
조선 제20대 왕비
대한 제4대 황후
□□皇后 □□황후
존호 순현□□(□□□□)
출생 1657년(연가 7년) 10월 8일(음력 9월 2일)
대한 □□[43]
사망 1746년 날짜 미상 (음력 월 일)
대한 한성부 창덕궁 대조전
절일 □□절(□□節)
재위 대한 황태자비
?? ~ 1678년
대한 황후
1678년 ~ 1699년 3월 27일
(음력 1678년 ~ 1699년 2월 26일)
대한 황태후
1699년 3월 27일 ~ 1740년 3월 8일
(음력 1699년 2월 26일 ~ 1740년 2월 10일)
대한 태황태후
1740년 3월 8일 ~ 1746년
(음력 1740년 2월 10일) ~ 1746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3px"
본관 □□(□□)
부모 □□후 양□□, □□후부인 □씨
부군 숙조 건복제
자녀 2남 1녀 }}}}}}}}}
대한 숙조의 황태자
효장태자 | 孝章太子
작호 황태자
시호 효장태자(孝章太子)
본관 전주(全州)
원(□)
부황 숙조 건복제
모후 황후 양씨
부인 덕비 허씨
묘소 □□원(□□園)
절일 □□절(□□節)
재위
기간
대한 황태자
음력 ?? ~ 1697년 4월 15일
양력 ?? ~ 1697년 6월 3일
생몰 기간
음력 1676년 ~ 1697년 4월 15일
양력 1676년 ~ 1697년 6월 3일

2.2.2. 현왕계

2.2.3. 기타

2.3. 성친왕파

재석이 황태제로 책봉되고 대리청정을 시작하며 대한을 통치하기 이전부터 성친왕 계열이었던 인물들.

2.3.1. 8차 견서사

8차 견서사는 정사 성친왕 포함 총 11명으로 정사 성친왕, 부사 이형준, 서장관 정호찬, 아르망 다라미츠 신부, 의관 이진원, 익위사 무관 2명(홍상훈, 김종건), 통변 이홍석, 시종 3명(박종선, 지말복, 오돌천)이다.

2.3.2. 카자크 6형제

2.3.3. 기타 유주인

2.3.4. 여흥 민씨

건흥제의 처가.

2.3.5. 기타 한인

2.4. 예왕파

2.4.1. 예왕 가족

사후세계를 다룬 외전에서 언급되기를, 죽은 뒤 지옥에서 불타고 있다 한다.

2.4.2. 반란군 주축

2.4.3. 기타 지지세력

2.5. 조정

황실과 다르게 조정에는 실존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는 편이다. 그러나 대한이 원역사의 조선과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든 만큼, 실존 인물들 다수가 운명이 뒤바뀌었다.

2.5.1. 내각승상→국무총리대신

삼승상의 명칭은 선조의 칭제건원 후 영의정이 내각승상, 좌, 우의정이 좌, 우승상으로 변경되었으며, 건흥제가 6부를 12부로 개편한 후 1717년경 다시 내각승상을 국무총리대신(국상), 좌, 우승상을 좌, 우 참정대신(좌상, 우상)으로 변경한다.

2.5.2. 좌, 우 승상 → 참정대신

2.5.3. 6부 대신 → 12부 대신

2.5.4. 금위사장

2.5.5. 익문사장

2.5.6. 외관(外官)

2.5.7. 기타 관원

2.6. 군부

2.7. 대한령 미주

2.7.1. 미주대총관

2.7.2. 한인

2.7.3. 원씨 가문

2.7.4. 토인

2.7.5. 기타

2.8. 종교인

2.8.1. 천주교

2.8.2. 불교

2.8.3. 덕성도

2.9. 기타

2.10. 대한의 외번(外藩)

2.10.1. 대명공

2.10.2. 심왕부

2.10.3. 하와국

2.10.3.1. 역대 국왕
2.10.3.2. 왕실
2.10.3.3. 추장
2.10.3.4. 한인
2.10.3.5. 기타

2.10.4. 조홀국

2.10.4.1. 역대 국왕
2.10.4.2. 왕실
2.10.4.3. 신료

2.10.5. 술루국

2.10.5.1. 역대 국왕
초대 술루국왕
디에고 1세 | Diego I
작호 술루국왕
본관 전주 이씨[122]
진서(秦誓)
부모 부황 건흥제
생모 멘도사 백작부인, 양모 귀비 소씨
부인 술루국왕비 하씨
생몰 기간
양력 1682년 11월 23일 ~ 1745년
재위
기간
술루국왕
양력 1714년 ~ 1745년
2.10.5.2. 왕실
2.10.5.3. 신료
2.10.5.4. 군부
2.10.5.5. 기타

2.10.6. 주산군도

3.

3.1. 역대 황제

3.2. 황실

3.3. 신료

4. 후금

4.1. 역대 대칸

4.2. 황실

4.3. 보르지긴 가문

4.4. 신료

5. 일본

5.1. 역대 쇼군

5.2. 도쿠가와 가문

5.3. 마츠다이라

5.4. 천황

5.5. 사무라이

5.6. 기타

6. 유구

6.1. 역대 국왕 → 황제

6.2. 황실

6.3. 신료

7. 아모국

8.

8.1. 역대 황제

8.2. 신료

8.3. 서의 내번(內藩)

원래는 왕자들의 작위를 색상에서 따와 왕작에 봉하고 그쳤으나, 영창제 장형운이 죽기 전에 군국제를 부활시켜 봉국을 나눠주는 대신 승평제에게 충성하도록 한다. 이들도 자기들이 내란을 일으킬 경우 후송이 쳐들어올 것을 알고 일단은 승평제에게 충성하는 척 하며 자기 봉국의 기반을 다진다.

서나라 황실 가계도: #
광동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아래 세 왕은 왕작은 유지되었으나 봉국의 통치권은 흥시제에게 모두 몰수당했다.

8.3.1. 운남

8.3.2. 광동

8.3.3. 광서

9. 후송

9.1. 역대 황제

9.2. 황실

9.3. 신료

9.4. 군부

9.5. 홍씨 가문

9.6. 기타

10. 안남

11. 섬라

12. 준가르

13. 천축국

14. 파사국

15. 현돌궐

16. 대유주

16.1. 불랑국

16.1.1. 역대 국왕

16.1.2. 왕실

16.1.3. 신료


16.1.4. 기타

16.2. 폴수국

16.2.1. 역대 국왕

16.2.2. 소비에스키 가문

16.2.3. 기타

16.3. 도이치

16.4. 루스국 러시아 제국

16.4.1. 역대 차르

16.4.2. 황실

16.4.2.1. 루시아와 그 자식들
16.4.2.2. 기타 황족

16.4.3. 기타

16.5. 잉글국

16.5.1. 역대 국왕

16.5.1.1. 스튜어트 왕조
16.5.1.2. 하노버 왕조

16.5.2. 자코바이트

16.5.3. 기타

16.6. 내달국

16.7. 황제령[170]

16.8. 법왕청

16.9. 서반아

16.9.1. 역대 국왕


16.9.2. 빌라다리아스 후작가

16.9.3. 칼레아 후작가

16.9.4. 신서반아

16.9.5. 서반아령 필리핀

16.9.6. 페루 부왕령

16.10. 수배국

16.11. 단막국



[1] 금천 강씨 집안은 현재 진주 강씨 인헌공파로, 조상 중 유명인으로 강감찬이 있다. 명군 세계관이 아닌 실제 역사의 조선 중기 조선 왕실과 혼인한 적이 있는데 그 유명한 민회빈 강씨다. 이쪽의 부친의 이름이 강석기인 것을 생각해보면 모티브일 가능성도 있다. [2] 죽으면서도 이 목걸이는 손에 꼭 쥐고 있었다. [3] 재석은 그녀와 만나게 되면 올렝카, 나중에 찾을 상희까지 함께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생전에 그녀를 보진 못하게 된다. [A] 원 역사 사도세자와 동일 추정. [A] [A] [7] 경인조약 체결 기간 [8] 심양회맹 기간 [9] 총 5회 [10] 모후 인현황후 국상 기간 1개월 [11] 강녕왕의 딸이지만 화번공주로 하와국에 가지 위해 5촌 당숙 원종에게 입적 [12] 재석은 이때 간이 나쁜데 왜 토혈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상희가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이는 식도정맥류라고 하는데 간경화의 흔한 합병증으로 주 증상이 토혈이며, 간경화 환자 대부분의 사망 원인이다. [13] 원 역사 조선 현종과 동일 추정. [14] 다른 사람이 마시는 데에는 간섭하지 않지만, 태황이 차와 물만 마시는데 신하들이 마음 편히 부어라 마셔라 하기엔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 숙부 이준은 궁에서 열리는 주연이 많이 심심해졌다고 여길 정도다. [15] 작중 날짜가 정확히 나온 7월 11일 이후 출생이다. [16] 작중 조선에 이 기록을 가진 중전은 태종의 중전인 원경왕후 민씨(7명 출산, 3명 요절), 세종의 중전인 소헌왕후 심씨(8명 출산), 열조의 중전으로 숙조와 성친왕의 모후인 진성태황태후 이씨(4명 출산, 2명 요절)까지 3명 있었다. 진성태황태후의 첫째와 둘째는 요절하고 셋째가 숙조, 막내가 성친왕이다. 태조의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도 4명 이상 낳았지만(6명 출산, 1명 요절), 조선 건국 전 사망하였기에 중전으로 재위한 적이 없으며, 건국 후에 추존되었다. [17] 병으로 죽은 첩 1명과 싫증나서 위자료를 주고 내보낸 몇 명은 제외한 숫자이다. 며칠 데리고 놀다 버린 여인들은 셀 수도 없을 지경(...) 친형들과 이복동생들을 막론하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첩을 하나씩밖에 두지 않았는데 본인만 이렇다. [18] 7년간 외모가 꽤 달라져서 처음엔 이준도 알아보지 못했고 토인 통역 따위에 관심이 없었기에 본인만 자연스럽게 행동했으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들킬까봐 공포에 질려서 대놓고 수상하게 행동하다가 오히려 그게 의심을 사서 들켜버린다. 게다가 형에게 들킨 후에도 선친왕 시절 쓰던 귀고리가 나올 때까지 자기는 한인 혼혈 우대개인일 뿐이라고 거짓말을 하다가 더 쳐맞는다. [19] 심왕이 뜬금없이 '토인 이씨'를 반 죽도록 폭행한 이유는 '토인 이씨가 죽은 이홍의 귀걸이를 갖고 있어서 황족의 물건을 도둑질한 벌을 줬다'는 것으로 처리하고 넘어간다. [20] 명군이었던 부황을 충격으로 급사하게 만들어버렸으니, 이 정도면 대한을 넘어 동양 역사에 길이 남을 불효이자 불충이다. [21] 그런데 이준은 그냥 토인 아내가 남편이 걱정돼서 와봤다가 그러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이것도 이홍이 미리 이준에게 정체가 발각될 상황을 대비해서 토인 말로 아내에게 잠시 후 돌아오라고 말해둬서 연출한 상황이다. [22] 그러다가 상희가 췌장암에 걸려 회복이 불가능해지자 결국 배운다. 청개구리. [23] 또다른 이복오빠 디에고와 서모 올렝카의 예도 들었다. 물론 재석은 디에고는 야합(혼외관계)으로 태어났고, 올렝카와는 왕녀로서 국혼을 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지만. [24] 여담으로 다른 인기 대체역사소설인 동방의 라스푸틴 주인공이 니콜라이 2세에게 받은 작위도 보스토크 백작이고, 부인인 공주가 남편바보인 것도 똑같아서 대역갤에서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25] 수정 전의 3부 1화는 재석이 올렝카에게 핸드잡을 해서 올렝카가 오르가즘 끝에 실신해버리는 내용이었는데, 문피아 측에서 문제를 삼아서 결국 말로 올렝카를 다그치는 내용으로 수정되었다. 이후 문피아 남성향 검열 논란이 터지자 슈타인호프 작가가 당시 상황에 대해 밝혔는데, 문피아 측에서 수위와 더불어 올렝카가 현대 대한민국 기준으로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미성년자의 성행위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아청법에 걸린다고 하여 제재당한 것이라고 한다. # [26] 처음에는 황자라고 묘사되었으나 3부 294화 댓글에서 작가가 황녀로 정정했다. [27] 실존 인물로, 충무공 이순신의 친구이자 사돈이다. 홍가신의 아들인 홍비가 이순신의 딸과 혼인했다. [28] 해당 시점까지는 대한에서 여성이 받은 관직으로는 가장 높은 기록이다. [29] 작중 묘사 없음. 충무대왕 이순신 생가 추정. [30] 재석은 2부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꿈을 꿔서 울면서 상희에게 토로할 정도로 '나도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며 어머니의 부재를 슬퍼했는데 3부에서 소망이 이루어진 셈이다. [31] 나가서 정신 좀 차리라는 의미로 건복제가 성친왕을 견서사로 추방할 때 개입하지 않는 대신 성친왕의 측근인 이형준과 정호찬을 겨우 견서사에 동행시킨다. [32] 경종비로 영조의 형수인 선의왕후를 왕대비로, 숙종비로 영조의 계모인 인원왕후를 대왕대비로 [33] 그렇지만 평소와 같이 대하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본인도 어떤게 맞는지 번민하고 있는 듯 하다. [B] 원 역사 숙종과 동일. [B] [36] 작중에서는 숙종의 시호를 존호로 언급하므로 숙종이 가장 처음 받은 존호 표기. [B] [38] 작중에서는 숙종의 시호를 존호로 언급하는데, 오류로 추정. [C] 작중 묘사 없음. 추정. [C] [41] 연가제 사망 전 6개월. [42] 조정 대신들을 앞에 두고 순진무구한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서 재석은 망신을 당한 셈이지만, 건복제는 제위를 염두에 두고 자식들을 키운 예왕과 달리 성친왕은 그런 고려 따위 없이 순수하게 아버지로서 이은을 키운 것으로 보여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43] 작중 묘사 없음. [44] 그래도 딸이 낳은 외손주가 2명 있다. [45] 영선공주 소생 외손 2명 [46] 원역사에선 1680년에 사사(賜死) 당했다. 실제 생몰년으로도 타임라인이 얼추 맞고, 작중 조선의 정치는 실제 역사보다 훨씬 안정됐으니 더 오래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47] 건강한 아들딸들을 무려 11명이나 낳았다고 한다. [48] 처음에는 성친왕과 22살 차이인 1643년생이라고 나와서 그럼 열조는 9살때 첫 아들을 낳은 것이냐며 잠시 논란이 되었으나 작가가 오타였다며 1653년생으로 정정했다. 똑같은 숫자로 2번이나 연속으로 틀리게 썼고, 열조가 현왕을 태자일 때 낳았다고 해석하기 쉽도록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현왕의 나이가 진짜 오타였는지 설정 오류를 뒤늦게 수정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49] 적자는 50세에 이형준보다 일찍 사망한다. 당시 기준으로 딱히 단명한 것은 아니고 70대가 넘도록 살아있는 이형준이 장수한 것. 본처는 드센 성격이라 이형준은 계집질을 좋아하지만 첩은 들이지 못했다. 서자 보리스를 데리고 귀국한 후에는 본처에게 참교육 당해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는지 원래 쓰던 안경 대신 자수정으로 만든 선글라스를 끼고 나온다. [50] 성친왕을 잘못 교육시킨 것을 책임지라는 의미도 있었고, 태후의 부탁으로 성친왕과 친한 사람을 넣어준 것이기도 하다. [51] 고인물재석이 태제 책봉 이후 경연에 참석해서 경연관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자 세간에선 '견서사 파견 중에 망나니 성친왕의 학식이 풍부해졌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이런 급격한 승진에도 반발이 없었다. [52] 미주에 있던 기간 동안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향교를 방문하고, 제자를 양성하고, 직접 쓴 책을 전파하는 등, 사대부들이 이주하길 꺼린 탓에 사실상 유학이라 할만한 게 없던 미주에 유학을 전파한 시조나 다름없는 셈이다. [53] 원체 공부와 담을 쌓아서 높은 수준의 교육까진 못 시켰지만, 유학의 가르침은 의외로 잘 받아들여서 무인지변 때 흔쾌히 자신의 가족들보다 재석의 가족들을 챙겨서 공을 세운다. [54] 정호찬이라는 이름은 슈타인호프 작가의 지인의 이름으로, 슈타인호프 작가의 모든 대체역사 소설에는 정호찬이라는 이름의 가상인물 캐릭터가 보너스로 등장한다. 댓글로 드립치는 거 되게 좋아한다. [55] 경주 정씨인 1부 정호찬과 달리 연일 정씨로 정몽주의 직계 후손도 아니다. [56] 각각 1669, 1670, 1672년생. [57] 이사벨라는 정호찬의 막내아들보다도 나이가 어리다. 본처는 키가 150cm 정도로 작지만 관대한 성격이라서 양첩을 들인 것을 비난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인은 본처와 이사벨라는 각각 오다 마코 셀린 패러크를 모델로 할거라고(...) [58] 본래 왕세자에게만 붙여줬지만 칭제한 후에는 다른 황자들에게도 붙여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59] 묘사를 보면 한 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거나 반란군에 가담하지 말아달라는 협박도 아닌 성친왕은 살아있고, 구하러 가니 막지 말라는 한줄 뿐이었는데, 장희재에게는 마음을 흔들어 놓는 편지였다고 한다. [60] 재석은 76세의 최석정도 일한다고 붙잡으려 했지만, 국무총리대신은 문신이니 그럴 수 있지만 무신은 늙어서는 일할 수 없다며 퇴직이란 명분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61] 성(D' Aramitz)이 삼총사의 아라미스와 비슷해서 재석은 혹시 아라미스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인가 싶어 루이 13세 때 총사대에서 근무한 적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삼총사의 아라미스의 모델이 된 인물은 앙리 다라미츠이며 3부 시점에 이미 고인. 친인척일 수는 있다. [62] 자혜원이 이태원(梨泰院)에 위치해있어서 같은 음을 가진 이태원(異胎院)이 자혜원의 멸칭이 되었다. 즉 다른 배에서 났다는 뜻의 모욕에 가까운 멸칭이다. [63] 재석이 열심히 변호했고 다른 문책을 내리기 전에 건복제가 사망해서 여기서 그친다. 그가 견서사에서 한 보고 덕에 재석의 이미지가 개선됐으니 재석에게도 은인이었다. [64] 다리의 상처가 감염된 아파치 포로를 살리기 위해 다리를 잘랐는데, 당사자는 자신을 전사가 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었다며 대한에 증오를 품게 된다. [65] 모든 사람을 멀리했던 의심스러운 태도와 예왕과 최신원의 대화에서 독약을 쓸 수도 있다는 언급이 복선이었다. [66] 4회차 인생인 재석이 아니더라도 너무 어설픈 태도라 의심을 안할 수 없었다. 외과 전문가가 뜬금없이 벌벌 떨면서 한 번도 올린 적 없는 보약을 대령하니 뭐... [67] 암살 시도가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공론화해봤자 예왕을 그것만으로 범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고, 황실의 명예가 실추됨은 물론 김종건과 이진원이 처벌받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미주에서 실종되었다는 소문을 내서, 예왕으로 하여금 암살시도를 눈치챈 성친왕이 공론화를 막고 조용하게 둘을 처리해버렸다고 믿게 만드려는 것이다. [68] 남정네만 수백명이 드글대는 곳에 자기 첩을 데려오고 싶다고 말하는 등. [69] 이때 재석이 자기 가족들만 챙긴다며 미안해 하자, 아버지 이형준에게 배웠다며 "주군은 부모와 같으니 머리와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는 유학 구절을 읊으며 괜찮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재석이 장조 시절 북방에 친정을 갔을 때 대리청정을 하던 세자를 선동해서 난을 일으키려다가 실패하고 수감된 사관들이 자살하면서 유서에 남긴 말이기도 하다. 이형준은 불충분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그가 시킨 교육은 빛을 발했다. [70] 모친이 서반아인이고 출생 시기도 다르므로 원 역사의 희빈 장씨와 이름만 같은 가상인물로 봐야한다. [71] 두돌도 안된 아기인데다 서녀이기 때문에 건복제가 봐줬다고. [72] 처음엔 이고르까지만 한국식 이름이 알려져서 나머지 카자흐들도 이형준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만큼 다 이씨 성을 받은 것으로 보였으나, 다른 이름들을 보면 그냥 본명에서 음차한 이름들을 쓴 듯. [73] 포르토와 다토스는 대놓고 삼총사를 노린 캐릭터인 듯 하다. 2부의 임꺽정, 서림과 비슷한 설정인 듯. 달타냥의 모델인 실존인물 샤를 드 달타냥 백작에 대한 언급도 짧게 나온다. [74] 현실의 타호 호수. [75] 현실의 콤스톤 은광 [76] 실존인물 안용복은 부산 출신에 수군에 복무했다는 것 말고 별 정보가 없어서 재석도 이 안용복이 그 안용복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출생지도 확실히 다르고, 장희빈 남매와 마찬가지로 실제 인물을 모티프로한 가상 캐릭터라고 봐야할듯. [77] 형식상으로 권율의 5대손이지만 권익경은 권율의 양자이므로 유전적으로 직계는 아니다. [78] 재석이도 자신의 전생에서 각별한 인연이었던 권율의 후손인 그가 곤경에 빠지길 원하지 않았던 것도 있다. [79] 다만 구휼을 워낙 많이 하기에 세간에서는 좋은 마차를 쓰는 등의 사치스러운 면모도 그다지 나쁘지 않게 본다. [80] 금위사 첩자들을 잡아 고문할때 직접 참관하며 은근히 즐겼다고 한다. [81] 다만 이 시점까지는 성친왕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과거의 악행 문제 때문에 예왕에게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82] 그런데 빙의 전 성친왕의 악명 때문인지 성친왕이 예왕이 사약을 들기 전 형제의 정으로 대접한 팥죽이 예왕을 살려줄 것처럼 속이고 독이 든 팥죽을 줘서 죽였다로 와전되어서 퍼져서, 작중 세계관에서는 '독이 든 팥죽'이 간장게장과 감을 대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83] 세도정치로 유명한 신 안동 김씨가 아닌 구 안동 김씨다. [84] 상희에게 '성친왕이 새 사람이 된 건 오직 올렝카 덕'이라는 의심암귀를 심어주려고 하지만 인생 4회차인 상희에겐 그저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85] 원래 엄청난 동안 미녀 였는데, 30살은 더 먹은 것 같은 얼굴이 됐다고. [86] 과거 재석이 하던 거열형과 달리 소를 이용해 찢어죽이는 것이 아닌 머리와 사지를 잘라 죽이는 것이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참수부터 한 뒤에 팔다리를 자르는데 최신원은 산 채로 팔다리부터 자르고 머리를 자른다. 그나마 임해군처럼 형을 다 집행하기 전에 죽는 걸 막기 위해서 아편을 복용시켜서 고통은 덜어줬다. [87] 시가전에서는 몇번 못 쏠 총포를 지닌 수어청 병사들보다는 냉병기를 장비한 한성부 병사들이 더 낫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훈련도감군은 총포를 쏘니 대부분 오군영 공병대 출신이고 화재와 싸우는데 익숙한 금화군 병사들에게 전투력 약한 한성부 병사들의 무기와 장비를 들려서 양익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자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면 성친왕 일가는 아예 탈출하지 못했을 수 있었는데 실패로 돌아가면서 난은 사실상 실패했고, 후자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면 성친왕군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88] 결국 그가 우려했던 부분들은 다 현실이 되어서 예왕군의 패배에 일조했다. 다만 본인도 실책을 저질렀는데, 훈련도감군과 싸우는데 수적 우위를 살리려면 야밤에 기습해야 했는데 아군의 피해가 우려되어서 아침에 정면승부를 건 것이었다. [89] 3부 시점에서는 머리를 자른 다음 팔다리를 자르는, 사실상 참수형이다. [90] 원역사에서는 모반 혐의로 김자점에게 처형당한 그 인물로 보인다. [91] 원역사에서는 효명옹주의 남편, 즉 인조의 부마였고 조부 김자점이 몰락할 때 함께 처형된다. [92] 태황의 친부가 살아서 대원왕에 봉해져 혼란이 발생하는 미증유의 상황을 막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붙일 셈이었다. [93] 성친왕이 결국 본색을 드러내서 폐태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휴 일어난 일을 보면, 어차피 김세룡은 작중 역사에선 명신인 김자점의 후손이고, 이미 자신의 지위도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각승상이니 비상한 결단까지 하며 사위를 태황에 올릴 만큼 절박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살던 대로 살기로 했을 수도 있다. [94] 민성윤이 한 것은 없으나, 정치적 배경에 더해서 차남이 공을 세운 공으로 보인다. 실제로 원로나 고위 대신이 한 것이 없어도 정치적 배경으로 공신이 되는 건 흔히 있던 일이다. 해당 문서 참조. [95] 딸의 죽음으로 인한 원한은 잊을 수 없어서 성친왕 편을 들 수도 없지만 태황을 배신할 수도 없기에, 예왕파가 다수인 조정에서 경거망동하지 못 하게 자신이 편을 드는 척하면서 다 주저앉히고 자신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진 것으로 보인다. [96] 물론 김세룡 뜻대로 되었더라도 성친왕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 애초에 안 될 일이었다. [97] 작가에 의하면 실존인물 이완과는 다르다고 한다. [98] 성친왕에 앞서 하와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자신이 먼저 정복을 주장했을 것이라며, 대한에 적대적인 세력이 하와이를 차지한다면 이를 근거지로 삼아 북대동양 전체를 뒤흔들수 있으니, 다른 세력이 차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점유해야 한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99] 이로 인해 본의 아니게 김세룡의 은인이 되었다. 김세룡은 예왕의 음모에 깊게 발 담그고 있었지만, 금위사 감시망이 무력화되었으니 난이 일어나기 전 김세룡이 했던 언행들은 증언이 불가능해져 버렸고, 그 결과 김세룡은 예왕을 손절하고 장남을 시켜 무인지변을 고변한 것만으로 1등 공신이 되어 가문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100] 자기 첩을 귀비라고 부르는 것은 태황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살벌했던 무종 시기였다면 이것 하나만으로 예왕은 의금부에서 손톱이 뽑혔겠지만, 건복제는 '술에 취해서 아끼는 첩에게 애정표현이 과했다'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고, 성친왕이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예왕을 숙청하는 것은 후계 구도를 불안정하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에 문제삼지 않기로 한다. [101] 광동군도 주서사인 줄은 몰랐고, 광주절도사의 간자로 착각했기 때문. [102] 원역사의 김만중은 1692년 사망했지만 귀양생활을 하지 않아서인지 수명이 늘어났다. 현재 기준으로도 83세까지 장수한 원역사의 송시열이 더 평탄한 정치인생을 겪은 작중 역사에선 90세까지 살고 자의로 목숨을 끊었을 정도이니 충분히 가능하다. [103] 대한과 서반아령 필리핀 총독부와의 전쟁이 임박한 지금, 제목만 같고 내용은 완전히 다른 '사씨남정(南征)기'를 쓰는게 아니냐는 독자들의 드립이 있었는데 결국 정씨남정기를 쓰게 되었다. [104] 재석이 느끼기에 나만 고생할 수 없다는 최석정의 오기가 느껴졌다고 한다. [105] 여동생 장옥정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장희재와 이름만 같은 가상인물이다. [106] 그러나 장옥정이 그다지 총명하지 않다는걸 알아서 이 편지도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성친왕을 직접 곁에서 본데다가, 어차피 태제로 가책봉됐는데 난을 일으킬리 없다며 예왕으로부터 온 격문을 믿지 않았다. [107] 원 역사에서 이순신의 장남 이회는 이지백, 이지절 두 아들이 있었고, 둘째 이지절은 아들이 없던 이회의 동생 이예에게 입적된다. 이순신의 장손 이지백도 아들이 없어 이지절의 장남 이광윤이 이지백에게 입적되었으므로, 이원기와 여동생인 태후 이씨는 가상인물이다. [108] 부하였던 홍상훈도 2등공신인데 명색이 총관인 자가, 정위인 김진식이나 황족이지만 이끈 병력이 100명 남짓에 불과했던 영해공과 동급인 3등공신이라는 건, 평생 먹고살 길은 열어 줄 테니 그것만 먹고 떨어지라는 소리다. [109] 재석이 대기근을 대비해 호부의 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계획을 짜두자고 했다는 것에도 소극적이었다가 이후 실제로 허가가 떨어지자 재석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예를 표해서 형황의 눈치를 보며 업무를 하던 재석을 기겁하게 만든다. [110] 미주에서 살던 어린 시절 입던 옷. [111] 작중에서는 선조 때 신설된 직위이며, 불교계의 캔터베리 대주교에 해당한다. [112] 손흥민이 득점왕을 차지하며 화제가 된 다음날 연재분에 첫 등장했으니 거의 확실하다. [113] 작중 재석의 표현이 걸작인데 '코끼리를 보러 다니기만 하던 녀석이 드디어 제 몸에 달린 코끼리를 쓰는구나'. [114] 그나마 7년이나 지나 좀 누그러진 것으로, 7년 전에 알았으면 한양으로 압송하여 처형하라고 고하고, 만약 이영이 목숨은 살려주면 자기가 사법권을 가진 심왕부로 끌고가 죽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그러진 것도 이준은 그래도 친형제라 그런 것이고, 성균이나 정빈이 동반했다면 한양으로 압송하자고 했을 것이지만 마침 가족들이 동반을 거절해 홀로 수행원들만 데리고 여행하던 중이라 이 일을 묻어둘 수 있었다. [115] 원역사의 카메하메하 1세의 고조할머니. 하지만 작중에서는 퇴위당했으니 카메하메하 1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116] 원래는 분가했으니 연좌의 대상이 아닌데, 난이 성공했으면 그가 황태자가 되었을 테니 절대 용서할 수 없어서 연좌시키기 위해 강제 이혼을 시킨 것으로 보인다. [117] 일개 촌장이었던 마우이 일가를 하와국 국왕으로 만들기 위해서 행한 모든 공작들이 담겨 있어서 대한에서 제후국의 치부가 퍼질까봐 금서로 지정하였다. [118] 실존인물 정지룡과는 이름만 같은 가상인물이다. 작가의 언급에 의하면 실존인물 정지룡은 역사의 변동으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했으나 후에 후송에 밀무역하는 가문이라고 정지룡의 자손인 정경, 정극장이 등장했다. [119] 대한 조정의 신료들은 정지룡이 진짜 대한 배는 안 터는 줄 알았으나 태황 건복제는 다 죽여서 증거가 없는 걸 수도 있다 의심했는데 진짜 그런 거였다. [120] 대한의 번국이라 공식적으로 묘호를 쓸 수 없기에 과거 조선이 명나라 몰래 묘호를 올렸던 것처럼 내부 문서에만 기록했다. 대한에서도 알고는 있으나 외왕내제 정도는 자기들도 다 해봤던거라 대한으로 보내는 공식 외교 문서에 적지만 마라 정도로 묵인하는 중. [121] 시간 상 16대 Mustafa Shafi ud-Din 술탄의 아들로 추정. 실존인물 여부는 불명. [122] 사생아였기에 족보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본관은 전주 이씨다. 훗날 전주 이씨 비수파 같은 이름으로 분류될 수도 있을듯. [123] 졸본천 옆의 지명에서 나온 말로, 고주몽이 나라를 세운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찾아온 디에고와 비슷한 주몽과 연관 있는 지역에, 디에고의 출신지인 비스카야 지방에서 따왔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124] 정확히 말하면 디에고가 읽은 서반아판은 <해 뜨는 동방의 나라에서 태어난 용맹하고 현명하며 자애로운 기사 돈 디에고의 세 대륙과 세 바다에 걸친 모험>이라는 문장형 제목이다.(...) [125] 조공국은 대부분의 경우 독립적이기 때문에 유럽 기준으로도 King이지만, 디에고가 봉해진 술루국은 번국이기 때문에, 디에고는 유럽 기준으로는 Prince, 즉 대공이다. [126] 상희 입장에서는 친한 언니의 의동생이 의붓며느리가 되는 요상한 관계가 되었다. [127] 가북(加北)은 이사변 북쪽 섬 카부칸에서 따왔다. [128] 실제로는 청 세조의 연호이다. [129] 박화탁의 차남은 어릴때 요절. [130] 원 역사에 사용된 태화 연호의 한자는 太和, 泰和 2가지지만 후자가 금 장종의 연호로 가능성이 높다. [131] 대복진이 못난게 아니라 파포태가 그저 눈이 높은 것이다. 절세미녀인 제수인 율리아에게도 흑심을 비쳐, 부수가 봉기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한족 농노 처녀들을 수없이 잡아다 겁탈하고, 임신하면 독한 낙태약을 먹여 사생아는 없지만 약 부작용으로 죽은 시녀들이 많다. [132] 그러나 대복진은 파포태가 보르지긴을 토사구팽하고 최강국인 대한의 공주인 율리아를 대복진으로 삼을것이라고 생각했다. [133] 북위 태무제가 사용했던 연호이다. [134] 율리아의 설득은 다른 것은 다 효과가 없었지만, 파포태가 자신을 노리는 것을 언급하면서 자극하자 부수가 각성한다. [135] 12월 30일에서 며칠 전. [136] 특히 자신을 향해서 흑심을 드러내는 것에서. [137] 현실의 5대 정이대장군은 도쿠가와 츠나요시이다. [138] 현실의 도쿠가와 이에노부(1662년생)와 이름만 같은 가상인물. [139] 현실의 도쿠가와 요시무네(1684년생)와 이름만 같은 가상인물. [140] 심지어 이 때 일본측에서는 쇼군(대군)이라고 칭하기는 하지만 태황에게 꿀리지 않는다고 얘기를 꺼내는데 대한에서도 바로 긍정하면서 만족스러워한다. 즉 정치적 이유로 신하를 칭할 뿐, 외국에서 황제로 여기는 것은 천황이 아니라 쇼군이라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141] 2대 다카마쓰 번주와 쓰나에다가 서로 사촌으로 각각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142] 永樂 [143] 패하면 국력이 깎이고 이겨도 흑왕의 힘이 커질 뿐이기 때문. 게다가 승평제는 면밀한 분석과 검토를 통해 부황이 장안을 얻지 못한 것은 그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44] 처음 등장 시에 한자까지 조중선이라고 나오고 그 후에는 황중선으로 나오는데, 작가의 오타로 추정. [145] 실제로는 남명 문종의 연호이다. [의문] 10.5장 1화에 의하면 조형서는 4살에 즉위하여 건주가 침공한 1695년까지 13년간 섭정을 받았다고 하는데 13장 4화에 의하면 조형서는 1680년생으로 4살에 즉위하여 14년간 섭정을 받았다고 한다. 연도가 미묘하게 어긋나는데 설정이 꼬인 것으로 보인다. [147] 사실 조호덕 본인과 5살 차이밖에 안된다. [148] 부친과 한자가 다르다 [149] 유명한 장 바티스트 타베르니에 본인은 아니고 그 아들 혹은 조카 정도로 설정했다고 한다. [150] 실존인물. 원역사에서는 영국에서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이 포르모사(대만)에서 왔다고 주장하고 다녔던 사기꾼이었다. [151] 로마 출신이라면서 이탈리아어는 못하고 프랑스어만 하는 것을 이렇게 해명한다. [152] 1679년생이고 프랑스 랑그도크 출신이라는 점. 원역사의 살마나자르와 같다. [153] 이름은 쿠오 바디스의 작가로 유명한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소설 십자군의 기사에서 따왔다. [154] 표트르는 대한이 급속도로 발전한 이유가 서반아와 접촉하면서 '동양적'인 면을 버리고 서양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루스국도 마찬가지로 동양적인 면을 버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155] 과거 조선이 유럽으로부터 받았던 것처럼 인력, 기술, 물자들을 요청했는데 개중에는 곤란하거나 들어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156] 다만 사망원인은 원역사와 달리 폐렴이 아니라 요로결석이다. [157] 작가의 말에 의하면 표트르가 마르타에게 너무 빠졌기 때문이라고. [158] 표트르 1세는 조선에 유학 보낸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데 실제로 알렉세이는 재석이 신경써서 교육을 시켰기에 행정 등 내부적인 일 외에도 군사를 다루는 일에도 무지하지 않도록 군사학 관련 교육도 제법 시켜놓았다. 덕분에 군대를 다룰 때 기본적인 안목 이상은 갖춰서 공을 세울 수 있었다. [159] 생모인 올렝카의 출신지인 폴'수'국에서 따온 봉호. [160] 금발 백인과 한국 황인의 자식이 금발로 자라날 확률은 아주 낮다. 대부분 아기라서 머리 숱이 적기 때문에 옅은 색으로 보이는 것으로 자라면서 엄마가 금발 백인인 축구선수 박주호 나은이처럼 갈색 머리로 바뀐다. [161] 그 초상화는 19세기에 일리야 레핀이 그린 상상화다. [162] 예카테리나 1세와 동명이인. [163] 알렉세이가 2년 늦게 태어난 것은 마르타의 영향이라고 한다. [164] 군 경험이 전무한 골리친이 친정을 한 이유는 워낙 반대가 많은 전쟁이라 귀족들이 지휘를 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 [165] 전투는 한 번도 하지 않고 행군만 하다가 돌아왔는데 10만 병력 중 4만 5천을 손실했으며 이래놓고 이겼다고 허위보고를 했다가 걸린다. 실제 역사에는 이 패전 때문에 소피아와 골리친에 대한 귀족들의 지지가 떨어진 틈을 타 표트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소피아를 숙청하고 친정 체제를 세운다. [166] 그래도 표트르는 그가 자신의 유럽행을 찬성한데다가, 무능하지만 애국자라는 것은 인정하고 재산 약간은 갖고 갈 수 있게 해준다. [167] 명예혁명을 돕는 것은 남의 나라 반란에 명분도 없이 참여한 것이니 형황에게 찍힐 일이고 제임스 2세를 도와서 명예혁명을 막으려다가는 잉글국 귀족들에게 죽을 수도 있다. [168] 원 역사에서도 미분 피에르 드 페르마가, 적분 요하네스 케플러가 처음으로 완성했지만, 이를 최초로 증명해낸 아이작 뉴턴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수학계에선 더 고평가받는다. [169] 재석은 2부 장조 시절 1607년의 핼리 혜성을 눈으로 목격했으나 사망하기 1년 전 시점이라 눈이 침침했고 당시 조선에는 구름이 많아서 제대로 관측하지 못했다. 또한 당시의 조선은 재석이 자신의 죽음의 원인이 된 기우제를 고려해야 했을 정도로 기후가 좋지 않았기에 이 1607년의 혜성은 나쁜 징조로 여겨졌다고 한다. 1682년의 핼리 혜성은 3부 성친왕의 몸으로 프랑스 체류 중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목격한다. [170] 도이치는 신성 로마 제국을 가리키며 황제령은 합스부르크 영지를 의미한다. 즉 레오폴트 1세는 도이치의 황제이자 황제령의 영주이다. [171] 엄청 자의적으로 끼워맞춘 것으로 디에고의 어머니가 성친왕을 따라가도 당시 이미 조선에 있을 때 결혼한 본처인 강씨가 있었으니 황후가 될 수 없으므로 디에고도 태자나 태황이 될 수 없었고, 강씨가 죽자 민씨(상희)를 보내 새로운 본처가 된 상황이며, 설사 올렝카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태황이 되었다고 해도 대한의 종교에 대한 문화상 임금이 특정 종교 신자라도 모두가 개종을 할 리도 없다. 그리고 덕비 허씨가 기독교인이 된 건 태자가 죽은 이후다. 디에고도 이 점을 설명하려고 해봤지만 아무리 말해도 변하는 게 없으니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 사람은 이 정도 선에서 그쳤기에, 도와줄 테니 반란을 일으켜 제위에 오르라고 부추기는 멍청이들보다는 나았다고. [172] 하지만 성친왕은 이사벨과 관계 후 바로 거리를 두고, 얼마 뒤 이탈리아로 튀었다. [173] 도로테아가 친한 사촌인 다니엘라를 만나서 들은 바로는 그 동안 도로테아가 보낸 편지를 전부 불태웠다고 한다. [174] 자기 딸을 데려간 보상으로 디에고와 도로테아의 딸인 손녀라도 내놓으라며 어차피 이교도들 땅에서 제대로 자랄 리가 없으니 스페인으로 데려와 후작가 사람으로 키우겠다 말한다. [175] 실제 역사에서 미국의 앨버커키 시가 이 사람의 작위에서 이름을 따왔다. [176] 몬타네스 주교 때문에 불편해진 상황이 나오는데, 몬타네스 주교 주도의 대학살 이전에는 대한과 우호적인지라 경계를 크게 할 필요도 없었고 태평양을 건너는 것도 하와이 등을 통해서 간편했었다. 필리핀을 잃고, 신서반아를 위협당하는 것 외에도 이전에는 당연시 되던 것들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인지라 대한을 적대해서 얻은 불이익이 까면 깔수록 계속해서 나온다. [177] 사실 금화도 줄 생각 없었지만, 우르수아가 펠리페 2세와의 인연에 매달려 호소해서 과거 펠리페 2세에게 신세진 것을 갚는다는 뜻으로 금화라도 준 것이었다. [178] 경인왜란록과 을미동정록을 읽었는지 이때 전범들의 받은 혹형을 거론하며 자신도 그렇게 처벌할 것이냐고 비아냥댄다. 그러나 그 대상들은 본토 침략자이자 대역죄인 이진 등의 특별사례라고 강조하면서 포로가 된다면 대우와 안전보장을 약속받았음에도 싸워보지 않고 항복할 수 없다며 거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