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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17:51

장종(금)


금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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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 위소왕 선종 애종 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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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82647><colcolor=#ece5b6>
금 제6대 황제
장종 | 章宗
출생 1168년 8월 31일
무주 유원현
(現 허베이성 창베이현)
사망 1208년 12월 29일 (향년 40세)
중도 대흥부 황궁 만복전
(現 베이징시)
능묘 도릉(道陵)
재위기간 금의 황태손
1186년  12월 29일 ~  1189년 1월 20일
제6대 황제
1189년 1월 20일 ~ 1208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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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82647><colcolor=#ece5b6> 성씨 완안(完顔)
중국식 : 경(璟)
여진식 : 마달갈(麻達葛)
부모 부황 현종
모후 효의황후
형제자매 7남 8녀 중 2남
배우자 흠회황후
자녀 6남 3녀
작호 금원군왕(金源郡王) → 원왕(原王)
묘호 장종(章宗)
시호 헌천광운인문의무신성영효황제
(憲天光運仁文義武神聖英孝皇帝)
연호 명창(明昌, 1190년 ~ 1196년)
승안(承安, 1196년 ~ 1200년)
태화(泰和, 1201년 ~ 1208년)
절일 천수절(天壽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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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몽골, 금, 그리고 남송3. 장종의 치세4. 후사5. 기타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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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나라의 제6대 황제.

이름은 완안마달갈(完顔麻達葛)로 중국식으로는 완안경(完顔璟)이었다. 아버지는 세종의 아들이자 황태자인 완안윤공(完顔允恭)[1]으로, 제8대 선종은 장종의 서형(庶兄)이었다. 아버지는 세종의 황태자였으나 요절했기 때문에 손자였던 그가 조부의 지명을 받아 황태손이 되었다. 1189년 세종이 붕어하자 뒤를 이었다.

2. 몽골, 금, 그리고 남송

칭기즈 칸이 젊은 시절 케레이트 옹 칸과 함께 장종의 신하로서 타타르와 싸운 적이 있었다. 이에 장종은 용병의 대가를 지불하고 중국식 칭호를 내려주었다. 금나라가 북쪽의 타타르 등의 침략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금나라는 약체화되었다고 본 남송의 권신 한탁주 남송의 비원인 금나라 타도를 성공시킨다면 권력을 확고부동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개희북벌을 감행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실제 금나라는 곤란한 상황이었으나, 그 이상으로 남송군의 약체화가 현저했던 것이다.[2] 1207년 금나라가 조기 화평을 희망하고, 한탁주의 머리를 요구하자, 이것을 들은 예부시랑(문부 대신) 사미원에 의해 한탁주는 살해되었고 그의 머리는 소금에 절여져 금나라로 보내지는 것으로 화의가 맺어졌다. 한탁주의 머리는 수도인 중도 대흥부(中都大興府, 지금의 베이징)에 걸렸고 장종은 종묘에 나가 다시 한 번 승리를 조상에게 고했다.( 태화정벌)

3. 장종의 치세

장종의 치세때 금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삼황오제 은나라, 주나라, 한나라, 당나라의 역대 군주 17명에 대해 제사를 올렸다. 이것은 금나라가 중원의 한족 왕조들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금나라의 중국화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금나라가 조금만 더 오래갔더라면 남북조시대의 북위 등 선비족 왕조들처럼 한족에 완전하 동화되었을지도 모른다.
파일:external/www.guoxue.com/20140408_004.jpg
장종의 글씨

세종 때부터 이어진 금나라의 전성기는 장종의 치세까지도 지속되었다. 장종은 서화(書畵)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수금체(瘦金體)[3] 등 서예에 매우 능한 문예인이었다. 금나라의 제도 정비도 장종때 완성되었고 문화도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급속한 한화로 인하여 사치 풍조가 만연해졌고 정복 왕조임에도 무(武)를 천시하는 풍조가 생겼다.[4] 장종 재위 후반에 몽골이 준동하기 시작했고[5] 황하의 제방이 3번이나 터졌다. 또한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여 재위 후반기로 갈수록 재정난이 가중되었다. 장종이 붕어한 후 전성기는 끝이 났고 몽골이 침략하면서 결국 멸망테크를 타게 되었다.

원래 금나라 완안씨 황실에는 황후로 맞이할 수 잇는 가문들이 정해져 있었고, 이 가문들 이외 출신의 여성들은 황후가 될 수 없었다. 도단(徒單), 당괄(唐括), 포찰(浦察), 나나(拏懶), 복산(僕散), 흘석렬(紇石烈), 오림답(烏林答), 오고론(烏古論), 배만(裴滿)씨 등 여진 귀족 가문 여성들이 황후가 되었는데 장종은 한족인 이사아(李師兒)를 사랑했다. 심지어 이사아는 평범한 여성이 아니라 죄인의 자식이었다. 금나라는 전쟁 포로, 혹은 죄인의 자식을 황실의 노비로 삼게 했는데 이사아가 바로 그 케이스였다. 워낙 아름다운 데다가 다재다능하고 총명하기까지 한 이사아에게 홀딱 반한 장종은 마침 황후가 일찍 죽어 자리가 비어있었기 때문에 이사아를 황후로 책봉하고 싶어했으나 대신들이 완강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황후 책봉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서 장종은 이사아를 황후 다음 가는 귀비인 원비(元妃)로 책봉할 수밖에 없었다. 장종은 이사아를 황후로 못들였던 것이 한스러웠는지 그후 후대 황제들은 민간에서 황후를 들일 것을 명령하는 칙조를 내렸고 금선종 역시 한족인 왕운, 왕예 자매를 궁중에 불러들여 그중 왕예를 황후로 책봉했다.

비록 이사아는 황후가 되지 못했지만 장종의 사랑을 바탕으로 조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사아의 가족들 역시 그 덕에 벼락 출세를 했고 큰 권세를 누리게 되었으며 이사아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뇌물을 바쳤다.

이사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장종 말엽을 기점으로 뇌물 수수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등 국정이 쇠퇴하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도 개희북벌을 단행한 한탁주 역시 금나라의 쇠퇴를 감지하고 전쟁을 일으킨 것이기도 했다.[6]

4. 후사

장종에게는 6명의 황자가 있었지만 모두 요절하여 황태자가 없었고, 사후 숙부였던 위소왕이 뒤를 이었다. 사실은 후궁 가씨의 뱃속에 장종의 유복자가 있었으나... 이사아를 싫어했던 위소왕은 "임신하지도 않은 가씨가 이사아 측의 꼬드김으로 임신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가씨의 뱃속에 들어있는 태아는 장종의 자식이 아니다. 이 모든 게 이사아의 음모다!"라고 개드립을 치는 바람에 가씨와 이사아가 피살되어 그대로 복중에서 죽었다. 아마 위소왕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통성에 해가 갈까봐 그랬던 것 같다.

5. 기타

파일:attachment/장종/장종.png
징기스칸 4 일러스트

6. 둘러보기

금사(金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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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135권 「외국열전(外國列傳)」
서하 · 고려 , 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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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국지(大金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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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태조기(太祖紀)」 3·4·5·6·7·8권 「태종기(太宗紀)」 9·10·11·12권 「희종기(熙宗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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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량 완안옹 완안경
22·23권 「동해군후기(東海郡侯紀)」 24·25권 「선종기(宣宗紀)」 26권 「의종기(義宗紀)」
완안윤제 완안순 완안수서
27권 「개국공신전(開國功臣傳)」
완안점한 · 장석 · 완안알리부 · 완안포로호 · 완안올출 · 완안누실 · 완안달라 · 완안살리갈 · 와리온 · 오릉사모
28·29권 「문학한원전(文學翰苑傳)」
우문허중 · 채송년 · 채규 · 고사담 · 마정국 · 시의생 · 학우 · 이안 · 왕적 · 유앙 · 양운익 · 사숙 · 소공 · 이휼 · 풍정등 · 양지승 · 풍벽 · 한옥 · 왕약허 · 마구주 · 고정옥 · 장만공 · 동사중 · 서정 · 장행중 · 노중현 · 야율리 · 왕여가 · 이헌보 · 당회영 · 조병문 · 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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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방창 유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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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종(顯宗)으로 추존되었다. [2] 개희북벌 추진 당시에도 금나라와 남송의 차이를 안 많은 이들은 북벌에 반대했고, 찬성파들조차도 20년 정도는 준비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할 지경이었지만 개희북벌 자체가 약해지는 자신의 권력을 다잡기 위한 한탁주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 막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또한 성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3] 이 서체는 북송의 암군인 휘종이 개발한 것이었다. [4] 세종 대정 7년에 남송의 사신을 맞이하는 연회를 열었을 때 활쏘기 경연을 했는데 남송 사신이 쏜 화살은 과녁에 50발이나 맞았지만 사신을 호위하는 금나라 사람들의 화살은 7발만 명중했다. [5] 칭기즈칸이 몽골 초원을 통일한 시기이다. 즉, 장종의 붕어 이후 금나라와 몽골은 본격적으로 부딪히게 되었다. [6] 다만 그럼에도 개희북벌이 실패한 건 근본적으로는 그에 못지않게 남송도 약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7] 능력치는 정치 68, 전투 55, 지모 47이며, 내정특기로 농업, 문화가 있고, 전투 특기는 복병 뿐이다. [8] 당시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키자 고려는 긴장했고, 전설의 소드마스터 장군 척준경이 왕에게 금나라를 상국으로 모시자고 했다. [9] 이후 13세기 초 칭기즈 칸과 후손들에게 금나라가 작살나 멸망의 길을 걸으면서, 천도까지 하게 되자 저절로 이 관계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고 얼마 못가 원나라의 신하 나라가 되었다. 금나라는 천도 이후에도 어느 정도 버텨서 바로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몽골에게 이미 습격을 당하고 남천하게 되어 사실상 고려는 금나라의 영향권에서 벗어났으므로 1234년 멸망하기 전에 관계를 끊어버렸다. 금나라가 구원군을 요청했을 때도 사신 접견을 노골적으로 거부했을 정도였다. 어차피 그렇다고 해서 몽골하고도 싸우기 힘든 금나라가 고려에 쳐들어올 군사력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애초에 조공-책봉 관계가 일방적인 갑을관계가 아니기도 하지만, 특히 금나라는 내부 단속에도 지쳐서 허덕이는 지경이었기에, 더더욱 형식적인 상전 노릇만 하고 남송이나 몽골, 유목 부족들을 제외한 주변국들의 일에는 관심을 끊다시피 했다. 오죽하면 조위총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고려 영토의 상당수를 금나라에 바치려고 했으나, 금나라 조정이 이를 거부하고는 오히려 조위총의 사신을 붙잡아 고려로 송환해서 고려 조정의 환심을 사려고 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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