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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4 13:50:16

희종(금)


금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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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ce5b6>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태조 태종 희종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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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 위소왕 선종 애종 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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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82647><colcolor=#ece5b6>
금 제3대 황제
희종 | 熙宗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50px-Wanyan_Hela.jpg
출생 1119년 8월 14일
회령부 회령현 완안부
(現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아청구)
사망 1150년 1월 9일 (향년 31세)
상경 회령부 황궁
(現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아청구)
능묘 사릉(思陵)
재위기간 암반발극렬[1]
1132년 4월 26일 ~ 1135년 2월 10일
제3대 황제
1135년 2월 10일 ~ 1150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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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82647><colcolor=#ece5b6> 성씨 완안(完顔)
중국식 : 단(亶)
여진식 : 합라(合剌)
부모 부황 휘종
모후 혜소황후
형제자매 3남 2녀 중 장남
배우자 도평황후
자녀 2남 6녀
작호 동혼왕(東昏王)
묘호 민종(閔宗) → 희종(熙宗)
존호 숭천체도흠명문무성덕황제
(崇天體道欽明文武聖德皇帝)
시호 무령황제(武靈皇帝)
→ 홍기찬무장정효성황제
(弘基纘武莊靖孝成皇帝)
연호 천회(天會, 1135년 ~ 1138년)
천권(天眷, 1138년 ~ 1141년)
황통(皇統, 1141년 ~ 1149년)
절일 만수절(萬壽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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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사후4. 금사의 논찬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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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나라의 3대 황제. 묘호는 희종(熙宗) 또는 민종(閔宗), 시호는 홍기찬무장정효성황제(弘基纘武莊靖孝成皇帝). 휘는 완안합라(完顔合剌). 한자로는 완안단(完顔亶).

금태조의 적자였던 종준(宗峻,繩果)의 장자였다. 본처는 여진 귀족 배만홀달(裴満忽達)의 딸 배만씨(裴満氏). 아들은 배만씨(裴満氏)가 낳은 태자 제안(濟安). 어머니는 여진 귀족의 딸 포찰씨(蒲察氏).

2. 생애

금태종이 자기 자식에게 제위를 물려주려고 시도하다 여진족 부족장들의 반발로 실패하자 1132년에 황태자에 책봉되어 1135년 태종이 사망하자 제3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희종은 여진족 부족장들의 지원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즉위 후부터는 부족장들을 탄압하고 황제 독재의 확립을 통한 중국풍의 관제를 도입하였으며 과거 제도를 처음 시행했다. 희종 자신도 금나라 황제들 중 최초로 중국식 면류관 곤룡포를 착용하였다.[2] 또 중앙 집권화로 중국 북부 지배를 강화시켰다. 단 금나라의 중국화 자체는 희종 때부터 시작이었지만 본격적인 중국화는 해릉양왕 때부터였다.

이 시기에 남송의 재상 진회와 화평을 맺었는데, 그 결과 금나라는 매년 25만냥의 은과 25만필의 비단을 조공으로 받았고, 남송의 황제가 금의 황제한테 '신하의 예'를 취했다.

여기까지는 나름 잘 통치하던 황제라고 볼 수 있겠지만...[3] 아들들이 줄줄이 요절하고 공신인 완안종한(完顔宗翰)마저 명을 달리하자 국정에 대한 흥미를 잃고 술과 향락에 빠져 살기 시작했다. 성격도 점점 포악해져서 여진족 중신과 완안씨 황족들을 숙청하는 등 공포 정치를 폈다.

결국 1149년 희종의 폭정을 보다 못한 부하들이 사촌 동생인 해릉양왕 완안양(完顔亮)을 황제로 삼고 반란을 일으켰다. 완안양은 호위 군관을 매수한 뒤 일부 귀족 대신들과 짜고 금 희종의 침실에 뛰어들어 결투를 벌이다 희종을 처형해버렸다. [4] 이 때 희종은 겨우 31세의 젊은 나이였으며 이후 동혼왕(東昏王 : 동쪽의 혼미한 임금)이란 시호를 받았다. 참고로 혼()이라는 이름은 선대 황제인 금태종 송휘종에게 준 이름(혼덕공)이었다. 그나마 육조 시대의 동혼후보다는 조금 낫지만.

다만 폭군을 몰아낸다며 사촌형의 목숨을 잃게 만든 뒤 제위를 찬탈한 완안양은 사촌형의 막장 행각은 가볍게 뛰어넘은 금나라 최악의 막장 황제가 돼버렸으니...

3. 사후

뒷날 해릉왕이 부장들의 반란으로 처참히 목숨을 잃고 금세종 완안옹(完顔雍)이 즉위하자 다시 황제로 추증받아 희종의 묘호를 얻었다.

4. 금사의 논찬

희종이 재위한 시기에는 사방이 무사하였고, 종실과 대신들을 존경하고 국정을 위임하여, 그가 황위를 이어받아 문치를 지켰으니 족히 볼만한 것이었다. 말년에는 술에 빠져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여서 사람들이 염려와 두려움을 품었다. 이른바 앞에는 참언이 있었으나 보지 못했고, 뒤에는 도적이 있었으나 알지 못한 것이다. 그 재앙에 이른 것은 일조일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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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

5. 둘러보기

금사(金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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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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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권 「세기(世紀)」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여진 완안아골타 완안오걸매
4권 「희종기(熙宗紀)」 5권 「전폐제기(前廢帝紀)」 6·7·8권 「세종기(世宗紀)」
완안합랄 완안적고내 완안오록
9·10·11·12권 「장종기(章宗紀)」 13권 「후폐제기(後廢帝紀)」 14·15·16권 「선종기(宣宗紀)」
완안마달갈 완안과승 완안오도보
17·18권 「애종기(哀宗紀)」 19권 「세기·보(世紀補)」
완안영갑속 완안승과 · 완안와리타 · 완안호토와
※ 20권 ~ 58권은 志에 해당. 59권 ~ 62권은 表에 해당. 금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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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b82647> 63·64권 「후비전(后妃傳)」 ||
명의황후 · 사황후 · 절황후 · 공정황후 · 위순황후 · 소숙황후 · 익간황후 · 정선황후 · 정선황후 · 경희황후 · 성목황후 · 광의황후 · 흠헌황후
선헌황후 · 소숭비 · 흠인황후 · 도평황후 · 도단부인 · 대부인 · 도단폐후 · 흠자황후 · 정의황후 · 소덕황후 · 이원비 · 효의황후 · 소성황후
흠회황후 · 이원비 · 도단왕후 · 왕황후 · 명혜황후 · 도단황후
65·66권 「시조이하종실전(始祖以下宗室傳)」
완안알로 · 완안배로 · 완안사고덕 · 완안사이보 · 완안사리홀 · 완안호고출 · 완안발흑 · 완안숭성 · 완안핵손 · 완안마파 · 완안알대 · 완안알새 · 완안알자 · 완안앙 · 완안조 · 완안외가 · 완안호십문 · 완안합주 · 완안괵보 · 완안충 · 완안제 · 완안출로 · 완안호석개 · 완안종현 · 완안달라 · 완안변 · 완안고 · 완안혁 · 완안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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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권 「태조제자전(太祖諸子傳)」 70권 「완안살개등전(完顔撒改等傳)」
완안종준(宗儁) · 완안종걸 · 완안종간 · 완안종민 · 완안원 완안살개 · 완안습불실 · 석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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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알로 · 완안알로고발근 · 완안파로화 · 오찰홀 · 완안도모 완안누실 · 완안은출가 · 완안습고내
73권 「완안아리합만등전(完顔阿離合懣等傳)」 74권 「완안종한등전(完顔宗翰等傳)」
완안아리합만 · 완안알종도 · 완안종웅 · 완안희윤 완안종한 · 완안종망
75권 「노언륜등전(盧彥倫等傳)」
노언륜 · 모자렴 · 이삼석 · 공경종 · 이사기 · 심장 · 좌기궁 · 우중문 · 조의용 · 강공필 · 좌필
76권 「태종제자등전(太宗諸子等傳)」
완안포로호 · 완안호로 · 완안아로 · 완안알야 · 완안알본
77권 「완안종필등전(完顔宗弼等傳)」 78권 「유언종등전(劉彥宗等傳)」
완안알철 · 장방창 · 유예 · 완안창 유언종 · 유규 · 시립애 · 한기선
79권 「역경등전(酈瓊等傳)」
역경 · 이성 · 공언주 · 서문 · 시의생 · 장중부 · 장중언 · 우문허중 · 왕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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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제안 · 완안도제 · 사묘아리 · 완안돌합속 · 오연포로혼 · 적잔휘 · 대달불야 · 포속월 · 완안아리보
81권 「골모파등전(鶻謀琶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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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권 「이석등전(李石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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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권 「흘석렬지녕등전(紇石烈志寧等傳)」 88권 「흘석렬양필등전(紇石烈良弼等傳)」
흘석렬지녕 · 복산충의 · 도단합희 흘석렬양필 · 완안수도 · 석거 · 당괄안례 · 이랄조삼
89권 「소보형등전(蘇保衡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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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권 「조원등전(趙元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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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권 「모석등전(毛碩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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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권 「협곡청신등전(耶律化哥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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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권 「이랄리등전(移剌履等傳)」
이랄리 · 장만공 · 포찰통 · 점할알특랄 · 정휘 · 유위 · 동사중 · 왕울 · 마혜적 · 마기 · 양백통 · 이방고감
96권 「황구약등전(黃久約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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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권 「완안광등전(完顏匡等傳)」 99권 「도단일등전(徒單鎰等傳)」
완안광 · 완안강 도단일 · 가현 · 손탁 · 손즉강 · 이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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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중원 · 완안아린 · 완안정 · 오고론장수 · 완안좌 · 완안교주 · 석말중온 · 오고론례 · 포찰아리 · 오둔양 · 완안포랄도 · 협곡석리가 · 술갑신가 · 흘석연환단 · 완안아리불손 · 완안철가 · 납란호포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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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권 「서정등전(胥鼎等傳)」 109권 「완안소란등전(完顏素蘭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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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합달 · 이랄포가 완안새불 · 완안백살 · 적잔합희 백화 · 사묘애실 · 석말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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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안노신 · 최립 · 이기 · 섭대기 · 적잔위흔 도단올전 · 석잔여로환 · 포찰관노 · 완안승립 도단익도 · 점가형산 · 왕빈 · 국용안 · 시청
118권 「묘도윤등전(苗道潤等傳)」
묘도윤 · 왕복 · 이랄중가노 · 무선 · 장보 · 장진 · 정안민 · 곽문진 · 호천작 · 장개 · 연령
119권 「점갈노신등전(粘葛奴申等傳)」
점갈노신 · 유천기 · 완안대루실 · 완안중루실 · 완안소루실 · 오고론호 · 장천강 · 완안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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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론원충 · 당괄공 · 오림답림 · 단도공필 · 단도명 · 단도사희
121·122·123·124권 「충의전(忠義傳)」
호사보 · 특호 · 복홀득 · 점할한노 · 조규 · 온체한포도 · 와리야 · 납란작적 · 위전 · 완안선양 · 협곡수중 · 석말원의 · 백덕매화상 · 오고손올둔 · 고수약 · 화속가안례 · 왕유한 · 이랄고여열 · 송의 · 오고론영조 · 오고론중온 · 구주 · 이연 · 이덕기 · 왕의 · 왕회 · 제응양 · 출갑법심 · 고석 · 오승가 · 오고론덕승 · 장순 · 마양 · 백덕와가 · 오둔추화상 · 종탄 · 패출로복수 · 오방걸 · 납합포랄도 · 여해열알출 · 시무선 · 온체한로아 · 양지승 · 가방헌 · 이랄아리합 · 완안육근 · 흘석렬학수 · 포찰누실 · 여해열자록 · 조익 · 후소숙 · 왕좌 · 황괵구주 · 오림답걸주 · 타만사열 · 이방고포로호 · 올안외가 · 올안외출호 · 점할정 · 도단항 · 완안진화상 · 양옥연 · 오고론흑한 · 타만호토문 · 희여작 · 애신 · 우현 · 장방헌 · 유전 · 마경상 · 상형 · 출갑탈로회 · 양달부 · 풍연등 · 오고손중단 · 오고손노신 · 포찰기 · 채팔아 · 온돈창손 · 완안강산 · 필자륜 · 곽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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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권 「순리전(循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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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권 「혹리·영행전(酷吏佞幸傳)」
고염산 · 포찰합주 · 소이 · 장중가 · 이통 · 마흠 · 고회정 · 소유 · 서지국
130권 「열녀전(列女傳)」
사리질 · 강주주 · 완안아로진 · 풍묘진 · 포찰명수 · 섭순영 · 장봉노
131권 「환관·방기전(宦官方技傳)」
양충 · 송규 · 반수항 · 유완소 · 장종정 · 이경사 · 기천석 · 장원소 · 마귀중 · 무정 · 이무 · 호덕신
132권 「역신전(逆臣傳)」
병덕 · 당괄변 · 오대 · 대흥국 · 도단아리출호 · 복산사공 · 도단정 · 이노승 · 완안원의 · 흘석렬집중
133권 「반신전(叛臣傳)」
장각 · 야율여도 · 이랄와간
134·135권 「외국열전(外國列傳)」
서하 · 고려 , 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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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국지(大金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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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5D7DE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2권 「태조기(太祖紀)」 3·4·5·6·7·8권 「태종기(太宗紀)」 9·10·11·12권 「희종기(熙宗記)」
완안민 완안성 완안단
13·14·15권 「해릉양왕기(海陵煬王紀)」 16·17·18권 「세종기(世宗紀)」 19·20·21권 「장종기(章宗紀)」
완안량 완안옹 완안경
22·23권 「동해군후기(東海郡侯紀)」 24·25권 「선종기(宣宗紀)」 26권 「의종기(義宗紀)」
완안윤제 완안순 완안수서
27권 「개국공신전(開國功臣傳)」
완안점한 · 장석 · 완안알리부 · 완안포로호 · 완안올출 · 완안누실 · 완안달라 · 완안살리갈 · 와리온 · 오릉사모
28·29권 「문학한원전(文學翰苑傳)」
우문허중 · 채송년 · 채규 · 고사담 · 마정국 · 시의생 · 학우 · 이안 · 왕적 · 유앙 · 양운익 · 사숙 · 소공 · 이휼 · 풍정등 · 양지승 · 풍벽 · 한옥 · 왕약허 · 마구주 · 고정옥 · 장만공 · 동사중 · 서정 · 장행중 · 노중현 · 야율리 · 왕여가 · 이헌보 · 당회영 · 조병문 · 주앙
30권 「장방창록(張邦昌錄)」 31권 「유예록(劉豫錄)」
장방창 유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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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 재위 계승 내정자라는 뜻의 여진어로 한자어 황사(皇嗣)라는 뜻이다. [2] 여담이지만 금나라가 멸망시킨 요나라의 역대 황제들은 태조 야율아보기 치세부터 중국식 면류관과 곤룡포를 착용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화의 정도는 요나라가 금나라보다 덜했다. [3] 사실 이 때도 마냥 상황이 좋은건 아니라서 남송에게는 저렇게 잘 싸웠으면서 하필 당대에 몽골 초원에는 카불 칸이라고 몽골을 세운 군주가 있어서(뒷날 몽골 제국을 세우는 칭기즈 칸의 증조부다.) 금태종 시기부터 금나라와 싸웠고 이 시기에도 싸우고 있었는데 문제는 카불 칸이 너무 잘 싸웠다(...) 그래서 금나라는 할 수 없이 몽골에게 땅 떼주고 가축, 곡물을 바치고 독립국가 지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화해했다. [4] 금사에는 당시 황제의 침전 문지기를 맡고 있던 권근시국직장(権近侍局直長) 대흥국(大興国)이 이들과 짜고 침전 문을 열어주었다고 전한다. 대흥국은 성씨에서 보듯 발해인인데, 잎사 황통(皇統) 9년(1149년) 완안량의 생일에 금 희종이 대흥국을 시켜 생일 선물로 사마광(司馬光)의 초상화를 비롯한 여러 물품을 보냈는데, 당시 희종의 황후로 정사에 관여하고 있던 배만씨(裴満氏)도 마찬가지로 완안량에게 선물을 보냈음을 알게 된 희종은 불쾌해져서 선물을 도로 가져오게 했고, 완안량에게 선물을 가져간 사자인 대흥국도 그 화풀이로 곤장 100대를 맞았다. 졸지에 곤장을 맞게 된 대흥국은 이 일로 희종에게 앙심을 품어 희종 시해에 가담했으며, 침입자를 발견한 희종은 평소 침대 머리맡에 세워두던 호신용 패도(佩刀)로 맞서 싸우려고 했지만 이 패도마저도 대흥국이 어디론가로 치워버린 바람에 결국 희종은 속수무책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대흥국은 완안량이 즉위한 뒤 크게 출세하지만, 완안량이 쫓겨난 뒤 재산은 몰수되고 그 자신도 금 세종에 의해 희종의 능침 앞에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