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1 14:40:06

말제(금)


금 황제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8223D 0%, #b82647 20%, #b82647 80%, #98223D); color: #ece5b6;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ece5b6>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태조 태종 희종 세종
<rowcolor=#ece5b6>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장종 위소왕 선종 애종 말제
}}}}}}}}}
<colbgcolor=#b82647>금 제10대 황제
말제 | 末帝
묘호 없음 / 소종(昭宗)[1]
시호 없음
제호 말황제(末皇帝)
연호 성창(盛昌, 1234년)
성씨 <colbgcolor=#b82647> 여진어 온얀(Won-{g}ian)
중국어 완안(完顔)
여진어 호돈(呼敦)
중국어 승린(承麟)
생몰 기간 ? ~ 1234년 2월 9일
재위 기간 1234년 2월 9일(아침~저녁)
1. 개요2. 생애3. 사후의 수난4. 사후 추서

[clearfix]

1. 개요

금나라의 마지막 황제. 재위기간이 짧은 군주 가운데서도 맨 앞자리에 위치한 군주이다.

2. 생애

이 황제의 재위 기간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아침에 즉위하고 그날 저녁에 바로 죽었다.

애종 몽골 제국군의 공격을 피해서 채주(菜州, 현 허난성 주마뎬시 루난현)로 달아났지만 안 그래도 몸이 약한 데다 피난 생활로 지치기까지 해서 더 못 도망쳤다. 1234년 2월 9일 새벽, 애종은 자신에 비해 뜀박질을 잘하는 황족이자 호위 대장인 완안승린에게 양위한다. 승린은 애종의 아들이라고도 하며 일설에는 금태조 완안아골타의 형 완안오야속(강종)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완안씨였으니, 가깝든 멀든 황족은 맞다. 완안승린은 당연히 처음에 거절했으나, 양위받지 않으면 금나라가 멸망한다는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양위를 받았다. 양위한 애종은 안심했지만 몽골군과 남송군이 밀고 들어오자 살 의지는 없었는지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황제에 오른 완안승린은 아침에 눈물을 머금고 채주를 벗어나려 했다만 그날 오후도 지나기 전, 바로 정체가 드러나 몽골군에게 붙잡혔고 그 날 저녁 끔살당했다. 만주 역사를 넘어 세계 역사상 최단 기간 재위한 군주다.[2] 그의 죽음으로 금나라는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단, 금의 무장 곽하마가 금이 멸망한 후에도 2년 동안 항전을 계속했다. 성이 함락되려 하자 곽하마와 그의 부하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불길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3. 사후의 수난

애종의 시신이 사후 몽골군에 의해 태워지고 머리는 송나라가 태묘에 바쳐 원수를 갚았음을 알리면서 수난을 겪은 것과는 달리, 완안승린은 몽골군에게 죽었지만 시체는 매장되었다. 무덤은 간쑤성 핑량시 징촨현에 있다.

4. 사후 추서

소종이라는 묘호는, 속자치통감에 따르면 그를 따르던 친족과 병사들이 올렸다고 한다.


[1] 비공식 [2] 공교롭게도 그가 죽은 날은 삼봉산 전투에서 몽골군이 결정적 승리를 거둔지 딱 2년이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