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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루 술탄국 Kasultanan sin Sūg타우수그어 Kesultanan Sulu 마인어 Sultanate of Sulu 영어 Kasultanan ng Sulu at Sabah 타갈로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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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국기 | 문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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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61524><colcolor=#fff> 1405년 ~ 1915년 | ||
성립 이전 | 성립 이후 | |
브루나이 | 필리핀 도독령 | |
필리핀 군도 도민정청 | ||
잠보앙가 공화국 | ||
북 보르네오 | ||
불룽안 술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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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부안사 마임붕 ( 1878) 팔라완 남부 ( 1893) |
|
언어 |
타우수그어 아랍어 바자우어 비사얀어 마인어 등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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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이슬람교 (수니파) | |
통치자 | 술탄 | |
현재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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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술루 술탄국은 필리핀 술루해를 중심으로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존재했던 국가이다.2. 역사
2.1. 성립 이전
참파 왕국과 전쟁을 벌였던 기록이 존재한다.힌두교계 마자파힛 제국의 신하국이였으며 반란을 일으켜 독립적인 군벌로 성장한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닿기 141년 전인 1380년, 말라카에서 온 이슬람 선교사 마흐둠 카림(Makhdum Karim)에 의해 타위타위(Tawi Tawi) 등 필리핀 남부에 모스크가 세워지는 등 이슬람교가 공인된다.
라자(Rajah راجا)는 왕을 뜻하는 우르드어 또는 산스크리트어인데, 이것은 이미 술루 술탄국 이전에도 이 지역에 이슬람 계열의 나라와 역사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인접국인 라나오,마긴다나오 등과 이슬람 연합을 형성하고 세부, 부투안 등 비사야 지역 국가들을 상대로 오랜 전쟁을 했다.
1390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있던 미낭카바우 왕국의 왕자 라자 바긴다 알리(Rajah Baguinda Ali)가 필리핀 홀로 섬의 부안사(Buanza 또는 Buansa)에 당도한다. 부안사의 원주민들은 라자 바긴다의 배를 공격했으나, 라자 바긴다는 그들의 공격에 반격하지 않고 막아내기만 하면서 왜 가라앉혀 죽이려고 하느냐고 되물었다. 이에 원주민들은 라자 바긴다가 여행 중이며, 그들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무슬림이라는 것을 알고는 공격을 멈추고 그를 받아들였다.
2.2. 성립
말레이시아 조호르 술탄국[1] 출신 아랍인인 샤리프 울 하심(Sharif ul-Hashim)이 라자 바긴다가 있는 술루에 당도한다. 샤리프 울 하심은 탐험가이자 종교학자였으며, 술루에 와서 원주민들에 수도와 예배당이 어디인가 물어 봤고, 사람들은 부안사로 그를 안내했다. 샤리프 울 하심을 만난 라자 바긴다는 그를 받아들였으며, 그의 딸인 다양다양 파라미술리(Dayang-dayang Palamisuli)[2]와 결혼하였다. 1405년 라자 바긴다의 뒤를 이어 샤리프 울 하심이 술탄으로 즉위하였으며, 술루 술탄국이 성립되었음을 선포한다.라자 바긴다의 아들도 아닌 샤리프 울 하심이 왕이 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그가 무함마드의 후손인 하심 가문[3]인, 이른바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인 것도 한 몫 했다. 그리고 라자 바긴다가 딸인 파라미술리 이외에 남자 후계자가 없었던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술루 술탄국을 구성하는 주요 종족은 술루족이다. 하심 가문의 샤리프 울 하심이 술루 제도에 당도하자, 그를 왕으로 옹립한 토착민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술루크족(Suluk) 또는 타우수그족(Tausūg)라고 불리운다. 타우수그의 뜻은 물결(Sūg)의 사람들(Tau)이라는 뜻이다. 술루 술탄국 왕조의 시작은 말레이계 혈통이지만 대다수 주민은 술루족이며, 토착 귀족층들도 모두 이들이였다. 현재도 술루 주에는 약 80만명의 술루족들이 살고 있다. 섬 규모에 비해 인구가 상당한 편이며, 이들은 타갈로그나 비사야가 아닌 타우수그어를 사용한다. 술루족을 비롯하여 민다나오, 팔라완 등에 살고 있는 이슬람교를 믿는 민족을 통틀어서 모로족(Moros)이라고 한다.
2.3. 성장
나라가 세워지기는 했으나 초반에는 브루나이의 영향력이 아직 남아있었다. 브루나이의 다섯 번째 술탄 볼키아(Bolkiah, 재위 1485-1524)와 샤리프 울 하심의 손녀이자 아미르 울 옴브라(Amir Ul-Ombra)의 딸인 공주 푸트리 레일라 멘차나이(Putri Leila Menchanai)이 결혼[4] 하는 등 브루나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술탄 볼키아는 필리핀 팔라완과 민도로 등을 점령하고 루손 섬에 있는 톤도 왕국과 지금의 마닐라까지 영향을 끼치는 등 브루나이 역사상 가장 강성한 세력을 구축한 술탄이었다. 술루 술탄국도 브루나이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여러 형태의 모로(Moro) 경번갑 쿠라브 아 쿨랑(Kurab-a-kulang). 물소 뿔로 만든 판을 황동제 고리로 연결한 형태로, 경우에 따라 은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
그러던 중 17세기 중반인 1658년에 브루나이에 내전이 터지는데, 이때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술루 술탄국의 도움을 받아 10년 넘게 이어지던 내전이 종료된다. 이때 브루나이의 술탄은 도움을 준 댓가로 술루 술탄국에게 사바 주 동부를 할양한다. 이는 술루 술탄국이 독립적인 지위를 갖추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의 영토분쟁 떡밥이 된다.
스페인이 필리핀에 필리핀 도독령을 설립한 후, 세부를 중심으로 마닐라, 파나이, 레이테, 민도로, 팔라완 등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는 술루 해를 근거지로 삼은 술루 술탄국에서 직면한 위기였다. 이에 술루 술탄국을 비롯하여 마긴다나오 왕조[5] 등 필리핀 남부에서 북부로 세력을 넓히기 위한 모로계 이슬람 세력과 필리핀 중부를 근거지로 식민지를 넓히려는 스페인계 카톨릭 세력 간에 무려 300년 간 전쟁이 이어졌는데, 이를 모로전쟁(Moro war)이라 한다.
17세기까지는 큰 전쟁 없이 술루 술탄국이 스페인 세력의 주요 거점을 습격하거나 교역선을 해적질을 통해 터는 등 소규모
민다나오 전역에서 운용되던 아퀴버스총. 스페인이 필리핀에 도착했을 당시 술루는 공방을 세워 자체생산 중이었다. |
필리핀 도독령의 스페인 세력과만 싸운 것이 아니라 영국, 네덜란드와도 해전을 벌인 기록이 남아 있으며, 필리핀 전역과 인도네시아 북부, 보르네오 섬 등 사실상 동남아시아 동부 해역을 오가며 해적질과 약탈, 특히 사로잡은 원주민들을 노예로 파는 노예무역을 통해 성장해나갔다.[7] 단순히 약탈만이 아니라 교역과 상업을 통해서도 부를 축적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필리핀 제도에 당도하기 전 16세기 초중반부터 이슬람 네트워크 속에서 컬버린, 아퀴버스, 란타카(Lantaka) 등의 화기를 받아들여 운용하였다.
19세기에 들어 같은 이슬람계 세력이었던 마긴다나오 왕조가 술루 술탄국의 세력이 견제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지자 친 스페인계로 돌아서고 스페인도 술루 술탄국의 수도를 일시적으로 점령하는 등 세력이 약화되었다. 하지만 술루 술탄국을 비롯한 필리핀 도독령, 1851년 스페인 도독령에 점령된 마긴다나오 왕조,
2.4. 미국-모로 전쟁 및 멸망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이 벌어지면서 스페인이 차지하고 있던 카리브 해 일대의 쿠바와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에 점령되고, 서태평양 지역의 필리핀 역시 전쟁이 벌어진다. 이미 전성기가 끝난 스페인 해군과 미합중국 해군이 마닐라 만 전투에서 격돌했고, 미국이 압승한다. 스페인은 그 스스로도 외교적으로 고립된 처지[8]였다. 미국-스페인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고, 스페인의 도독령이었던 루손과 세부, 팔라완 북부, 비사야 제도(파나이, 레이테 등) 등은 곧바로 미국령이 된다.문제는 스페인이 미국에 항복하면서 필리핀 도독령이 실제로 통치하던 필리핀 북부 이외에 술루 술탄국 및 마긴다나오 왕조가 다스리던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술루 제도, 팔라완 남부)까지도 그들이 다스리던 지역이라고 이야기 한 것. 이는 1885년 스페인이 영국, 독일 제국과 맺은 마드리드 의정서에 의한 주장이었다. 마드리드 의정서의 주요 내용은 술루 제도는 스페인이, 보르네오 섬은 영국이 통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술루 제도를 다스리던 것은 술루 술탄국이었다, 스페인은 어디까지나 서류상으로 자신들이 필리핀 제도 전체를 다스리고 있었지만, 스페인이 미국에 항복하여 필리핀 도독령이 모두 미국령이 되자 미국이 필리핀 남부에서 전쟁을 할 명분을 제공했다.
이후 미국은 술루 술탄국을 비롯한 필리핀 남부를 점령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고, 이를 미국-모로 전쟁이라고 한다.[9] 1899년 5월 19일 홀로에서 미군과 술루 술탄국은 처음 조우했으며[10] 같은 해 8월 상호 간 피해를 줄이기 위해 베이트 협정을 맺어 종교적 자유와 권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미국이 노예 제도를 금지시키자 술루 술탄국 내부에서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극심해지기 시작했다. 3년 후인 1902년 협정은 파기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전투가 지속된다. 이전까지 미군은 주로 해안가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이 시점부터 다투스(Datus)라고 불리는, 술루 제도 섬들마다 있던 행정구역 겸 요새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미군 측 기록에 의하면 술루 술탄국은 다투스에 배치된 란타카와 스페인식 구식 대포를 이용하여 대항하였고, 백병전 시 매복과 돌격 등 단순한 전법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미국에 의해 술루 술탄국에 근대적 제도와 교육, 토지등록법이 도입되었다. 이로써 술루 술탄국의 근간이었던 이슬람의 권위가 무너졌고, 특히 토지가 국유지가 되거나 외국기업이나 루손 지역에서 넘어온 비무슬림[11]에게 넘어가 경제적 부분에서 타격을 받게 됐다. 1915년에 술루 술탄국은 미국에게 멸망했다.
미군에 의해 필리핀에 편입되었으나 자치권을 가진 지방정부 형태가 강하며, 현재도 이 지역에서는 이슬람교에 기반한 반군들이 현재도 활동하고 있다.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의 전신인 MNLF(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 모로 민족 해방 전선)가 술루 지역 타우수그족과 술루 술탄국 추종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됐다.[12][13]
3. 문화
(좌측부터) 이슬람 종교 학자, 술탄 자말룰 키람 2세(Jamalul Kiram II), 법원 관리. 자말룰 키람 2세는 1894년에서 1936년까지 술루 술탄국을 통치했다. |
명나라와 청나라 때 중국에 조공 무역을 한 기록이 남아있다. 소록국(蘇祿國)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명나라 영락제 17년(1419년) 때 술루 술탄국 동부 지역 통치자인 파두카 바타라(Paduka Batala)가 직접 명나라로 조공을 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병으로 죽자, 영락제는 그 정성을 기리기 위한 비석을 1421년 덕주(현 중국 산둥성 더저우시)에 세웠다. 이때 함께 온 340명의 소록국 사람들은 술루 술탄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덕주에 머물렀다고 한다. # 명나라 때는 영락제를 비롯하여 선덕제 때까지 접촉했으며, 이후 한동안 공식적인 접촉이 없다가 만력 38년(1610년) 양력 8월에 마지막으로 조공을 했다고 전해진다.
술루 왕족사진 |
청나라 때 제작한 《황청직공도(皇清職貢圖)》에 의하면 그 땅의 기온은 더우며, 사람의 성질이 강하고 사납다, 진주를 채취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으며,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사탕수수로 술을 담근다는 등의 내용이 남아 있다. 황청직공도에 나오는 소록국 소개
미국 측 자료에 의하면 일부다처제 문화와 노예 제도가 남아있었다고 하며, 특히 미국이 노예 제도를 금지시키자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필리핀 홀로 섬 마임붕에 있던 마지막 임시궁전 '아스타나 다룰 잠방간' 20세기 전후, 기독교 세력의 토벌로 인해 궁궐이 함락 당하거나 태풍, 지진 등으로도 여러 번 무너졌다 세워졌다. 1932년, 태풍으로 인해 파괴됐고, 이후 다시는 재건 되지 않았다. |
술루족 이외 다른 모로족들도 술루 술탄국의 정신적인 구심점 아래 통합된 상태를 유지했다.
무장한 모로 전사들. 반드시 승리를 추구해내는 상무정신으로 유명했다. |
술루 술탄국은 이처럼 종교적인 상무정신을 기반으로 한 군사강국이었다. 스페인 측의 기록에 따르면 술루 술탄국의 군사가 15만명이었다고 한다. 앞에 소개한 대로 브루나이 내전에서 영토가 작은 소국인 술루 술탄국의 지원을 받아 승리했거나, 영국과 네덜란드, 스페인 해군을 상대로 해전을 벌여 승리한 기록이 남아있다. 유럽 상선들도 털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16~17세기 당시 스페인군이 유럽 최고의 보병이였고 고작 몇 백의 군대로 아메리카 대륙을 석권했던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때 술루 술탄국이 300년 이상 스페인 세력과 전쟁을 지속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군사적 강인함이 입증되었음을 뜻한다.
아시아 대국에 속하는 중국,인도가 굴복하고 주변에 인접한 지역 강국들인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이 일찍부터 식민지로 넘어갔고 필리핀 제도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스페인에 충성 맹세를 할 때에 이들은 굴복하지 않는다. 이들은 20세기초 까지도 끝까지 버티며 살아남는다. 그것의 원동력은 종교적 투쟁심과 군사적 자신감, 그리고 국제무역으로 창출된 부유함에서 비롯된 것이였다.
서양 국가들과의 해상전에서는 인도네시아계 군선도 사용했고, 크고 작은 다양한 황동, 청동제 화포들을 사용하였다. 술루 술탄국이 서양 함대를 상대로 결정적인 우위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카라코아 또는 바랑가이 같은 흘수가 낮고 속도가 빠른 아웃리거 형식의 독특한 배 앞머리에 란타카(Lantaka) 라고 부르는 선회식 대포[15]를 설치하여 사용해 빠르게 접근하여 함선의 흘수선 아랫부분에 대포를 쏴 침몰시키는 전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1899년 미국-모로 전쟁에서 경번갑을 입은 모로족 전사가 미군 장교에게 권총 여섯 발을 맞았지만 끝내 칼로 난자했다는 기록이 있다. 자세한 건 경번갑 항목 참조. 시기상 및 지리상 술루 술탄국 전사일 확률이 높으며, 아니면 서로 긴밀한 영향을 받아온 마긴다나오 지역 모로족으로 추정된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을 참고
4. 술루 술탄국이 남긴 유산, 사바 영토 분쟁
1878년, 술루 술탄국의 술탄 자말 울 아잠(Jamal-Ul Azam)은 말레이시아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 북보르네오 칙허 회사(North Borneo Chartered Campany, British North Borneo Company)와 사바 주 동부에 대한 조약을 체결한다.북보르네오 칙허 회사는
문제는 이때 조약에 사용한 한 단어 때문에 발생했다. 조약문에 'Pajaka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Pajakan은 말레이어로 점유의 의미이지만 영어로는 대여, 임대권의 의미인 'Lease'로 번역되기 때문. 한마디로 사바 주를 빌려준 것이냐, 아예 넘긴 것이냐라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1963년 독립하면서 영국에서[16] 사바 주에 대한 권리 일체를 양도받았으며, 독립 당시 사바 주에서 두 차례의 주민투표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자발적으로 편입했으니 사바 주는 말레이시아의 영토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술루 술탄국 왕족들에게 매년 5,000링깃[17]을 사용료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다는 점을 든다. 말레이시아는 술루 술탄국과 역사적 관점에서 봤을 때 단 한 번도 같은 나라였던 적이 없는 남남이었다. 하지만 술루 술탄국도 사바 주 전체를 통치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부 일부 지역만 다스리고 있었고, 이미 미국에 의해 멸망한 나라인 술루 술탄국인데 이를 필리핀이 승계했다고 땅을 내놓으라는 것은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 즉 말레이시아 입장에서는 봤을 때는 정당한 절차에 따라 연방으로 편입된 명백한 말레이시아 땅인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판단을 받자는 필리핀의 요구에도 말레이시아는 꿈쩍도 안하고 있다.
반면 술루 술탄국을 병합한 미국을 상대로 독립한 필리핀은 "저 땅은 술루 술탄국이 영국에 빌려준 땅이고, 술루 술탄국이 필리핀의 역사이자 일부이니 당연히 사바 주는 우리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필리핀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이런 주장을 하는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사바 주를 무력으로 되찾기 위해 민병대를 육성하다가 발각된 적이 있으며, 1977년 아세안의 발전을 위해 사바를 포기하겠다고 했으나 마르코스 정권이 무너지고 대통령이 된 코라손 아키노 역시 지난 정권에서 한 선언을 무효로 한다고 발표하여 말레이시아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역시 2016년 대통령 당선인 신분일 때부터 사바주 영유권 탈환을 언급했고 당연히 말레이시아에서는 반발했다. 2020년 테오도로 록신 필리핀 외무장관도 트위터에 말레이시아에 사바 주는 없다는 식으로 트윗을 올렸다가 말레이시아가 외교라인을 통해 항의한 적이 있었다. # 또한 같은 해 필리핀 하원의원에서 사바 주, 남중국해 분쟁지역을 포함하는 지도를 여권에 추가하자는 대체 법안을 승인하여 이 역시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술루족은 술루족대로 "필리핀이고 말레이시아고 니들은
[1]
현
말레이시아
조호르주에 있던 이슬람 술탄국
[2]
다양다양은 귀한 신분의 여성을 뜻하는 존칭, 영어로 Princess라고 번역된다.
[3]
모계 혈통을 통해 무함마드의 손자인
후세인 이븐 알리의 14대손.
[4]
이는 브루나이와 술루 술탄국 사이의 첫 번째 결혼이기도 했다.
[5]
혹은 마구인다나오(Maguindanao) 왕조. 필리핀
민다나오 마긴다나오 주를 거점으로 한 이슬람 왕조
[6]
이후 브루나이와의 갈등으로 철수한다
[7]
많은 수의
바자우족 또한 술루 술탄국의 노예였다.
[8]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 미국을 지지하였다.
[9]
이 전쟁을
미국-필리핀 전쟁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10]
이때 술탄은 미군 지휘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왜 이곳에 왔는가? 너희가 땅이 필요하다면 너희 집에 있을 것이고, 너희가 돈이 필요하다면, 너희는 나보다 부유하고 나는 가난하다." 이 말은 술루 술탄국은 전쟁을 원했던 건 아니었다는 것을 뜻한다. 계속된 모로전쟁으로 전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국력이 이미 피폐해진 상태인 이유도 있었다.
[11]
필리피노(Filipinos)라고 불리는 이들은
모로족(Moros)과는
오스트로네시아계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역사적, 종교적으로 전혀 다른 민족이며, 이들에 대한 모로족들의 적개감은 무슬림
반
군 형태로 나타나는 현재보다도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2]
반면 MNLF가 필리핀 정부와의 협상을 진행하자 이에 반발하여 조직된 MILF는 민다나오 마긴다나오 지역을 중심으로 마긴다나오 왕조 추종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13]
출처: 김동엽 2015, 필리핀 사회 속의 무슬림 소수민족: 필리피노와 모로의 평화적 공존을 위하여
[14]
섬에서는 식수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탕수수로 만든 술을 물 대신 마셨을 것으로 추정된다. 식수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이슬람교도라 하더라도 술을 마실 수 있다고 보는데, 자살하는 것이 더 심각한 죄이기 때문이다. 중동에서도
대추야자로 만든 술은 무함마드가 마셨다는 전승이 있어 마실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15]
우리나라에서는
불랑기포라고 부르는 후장식 대포다.
[16]
북보르네오 칙허 회사가 1946년까지 사바를 통치했고, 이후 사바는 영국 정부 직할의
북보르네오 왕령식민지가 되었다.
[17]
2021년 기준 한화 138만 4천원 정도
[18]
술루 술탄국의 마지막 술탄은 후계자를 정하지 못했고, 이에 그의 여러 후손들이 통치권을 주장하고 있다.